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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기원-2 (서민호 교수의 한국인의 기원)
 


신약성경은 사도행전에서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셨다"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다" 고 하여 모든 족속,
즉, 한국인 뿐 아니라 흑인, 백인 모든 사람이 한 혈통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보는, 구약에서 신약까지 성경 전반의 일관된 지식입니다

 

* 목차

1. 서론

2. 기원 추정의 근거(증거)들

3. 한민족의 이동 원인과 이동 경로

4. 고대 한민족의 신앙과 번영

5. 고대 중국에 끼친 영향

6. 소호 금천씨의 후손들

7. 고대 한국인이 고대 아메리카 인디언과 고대 일본에 끼친 영향

8. 현대 한민족의 사명과 기독교

 

 

1. 서론

 한국인의 기원에 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신약성경은 사도행전에서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셨다"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다" 고 하여 모든 족속, 즉, 한국인 뿐 아니라 흑인, 백인 모든 사람이 한 혈통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보는, 구약에서 신약까지 성경 전반의 일관된 지식입니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알려진 많은 과학적인 지식으로 볼 때 과연 한국인의 기원은 이러한 성경의 지식과 어떻게 연결될 것이며, 한국인의 기원의 현실은 어떠한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 과학적으로 한국인의 기원을 알 수 있는 증거는 크게 여섯 가지 중요한 기준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언어, 즉 입니다. 왜냐하면 민족은 곧 어족이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어는 알타이어족에 속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고대인이 쓰던 아주 중요한 도구가 한국인의 기원에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합니다.

세 번째로 장사지내는 매장문화인데, 그때 사용하는 붉은 흙을 우리는 황토라고 부르지요. 그런데 대부분의 아시아 사람들은 아직도 '오클라' 라고 부릅니다. 지금도 물감에서 사용되는 붉은 색을 '오클라' 라고 부릅니다.

네 번째로 날개, 즉 깃털이나 를 숭상하는 문화, 이것이 한국인의 기원을 추정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증거를 줍니다.

다섯 번째로 우리나라의 국화인 무궁화. 이 무궁화라는 것이 신통하게도 한국인의 기원에 아주 깊이 관여되어 있습니다.

또 여섯 번째는 기타 여러 가지 것들인데요, 아시아 북방계 지역에 있는 유적의 분포. 특히 재미있는 것은 의상, 곧 핫바지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한국인의 기원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줍니다.

 

 

2. 기원 추정의 근거(증거)들

1. 언어학적 증거

그럼 먼저 언어, 곧 말에 대해서 보시면,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민족의 기원에 대한 가장 중요한 증거는 바로 언어입니다.
왜냐하면 민족(民族)이라는 것은 어족(語族)으로 분류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어는 알타이어에 속하고, 알타이어라고 하는 것은 터키 아라랏산 근처가 발원지입니다. 또 현재 알타이어에 속하는 말은 터키어, 몽골어, 만주어, 그리고 우리 한국어 등등입니다.

이러한 언어들에는 유사한 말이 대단히 많습니다. 한 예로 중앙아시아에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등 '----스탄(stan)' 이라는 나라가 대단히 많습니다. 이 스탄이라는 뜻이 사전에 첫 번째로 나오는 것이 영어의 'Land' 곧 '땅'  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민족이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땅이라는 글자를 'ㅅ당' 으로 표현을 해 왔습니다. 발음대로 읽으면 '스땅' 입니다. 그러다 이제 쌍 디귿으로 통일해서 '땅' 으로 발음하게 된 것이지요.

이것이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고, 그 외에도 많은 증거가 있습니다. 이러한 언어의 연구는 한국인의 조상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출발했고 중앙아시아를 거쳐서 시베리아와 몽골을 지나 만주 땅에 정착했으며, 그 후 한반도, 일본까지 뻗어갔다고 하는 것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위 그림은 바로 알타이어의 발원지인 터키의 아라랏산 근처의 마을입니다. 과거의 어느 때인가 우리 조상들이 이 근처 어딘가에 살았을 가능성이 대단히 많은 것입니다.


2. 흑요석의 분포

두 번째 한국인의 기원의 대단히 중요한 증거는 흑요석이라는 특수한 돌의 분포입니다. 화살이나 칼 등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재료가 바로 이 흑요석이라는 새까만 돌입니다. 그것을 깨어 가지고 그 파편을 이용해서 도루코 칼처럼 사용하는데요, 갈아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깨면 생선비늘처럼 납작하게 벗겨지듯 깨어집니다. 그래서 지금도 하바드 대학같은 최고의 대학병원 외과의사들이 스텐레스로 된 수술셋트를 선호하는 것이 아니고 흑요석 수술세트를 더 선호합니다. 그러면은 더 정확히 되고, 수술 후 회복에도 훨씬 더 요긴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이 흑요석으로 만든 화살 촉, 칼 등등이 메소포타미아 등지에서 중앙아시아, 몽골, 만주, 한반도 그리고 미국 인디언 주거지역까지 그대로 연결되어 흩어져 있습니다. 그러데 이 흑요석이라는 것이 전세계 아무데서나 생산된다면 이것은 어떤 민족의 기원을 찾아가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될 것입니다. 모든 땅에 다 난다면 말이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 흑요석이라는 돌은 터키의 아라랏산 근처에서만 생산됩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중앙아시아에서 발견되었건 아메리카 인디언에게서 발견되었건 터키에서 돌을 가지고 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요즘 같으면 터키에서 흑요석을 수입해 가지고 한국에서 만들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수입, 수출이라는 형태가 아닌 까마득한 고대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몽골, 만주, 한반도의 주민들이 흑요석을 썼다는 사실은 바로 과거 어느 때인가 아라랏산 근처에서부터 민족의 운명을 바꿀 중대한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에 먼 여행을 떠나면서 흑요석을 잔뜩 등에 짊어지고 가면서 조금씩 사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위의 그림은 흑요석으로 만든 연장들입니다. 이와 같이 갈지 않아도 옆으로 탁 치면 벗겨지듯 나오는 비늘 모양의 파편을 조심스럽게 쥐고 가죽 같은 것들을 자르면 면도 칼 보다 더 잘 잘립니다. 바로 아주 날카로운 연장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오른 편 그림은 아라랏 산인데 이 아라랏 산 근처에서만 흑요석 돌이 나기 때문에 어느 민족이 쓰고 있건 여기서부터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진속에 서있는 돌은 흑요석은 아님)


3. 황토 매장 문화

세 번째로 우리 민족이 장례 시에 시신을 묻었던 매장문화가 민족의 기원을 연구하는데 대단히 중요합니다. 고대 한국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황토로 덮어서 매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황토를 구하기 힘들어서 유족들이 관의 일부만 황토를 뿌리고 나머지는 주변에 있는 보통 흙으로 덮어버립니다. 그러나 몇십년 전까지만 해도 끝까지 황토로 덮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한국인만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붉은 흙 곧 오클라(okla)로 사람을 매장하는 문화는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중앙아시아, 몽골, 만주, 한반도 등에 이르기까지 다 이러한 풍습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중앙아시아에서 부터 대륙을 건너서 인디언까지 아직도 이 붉은 흙을 오클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한 예로 미국의 '오클라호마' 라고 하는 주 이름도 인디언 말로서 '붉다' 혹은 '붉은 땅이다', '붉은 땅에 사는 사람이다' 라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오클라' 라고 하는 흙의 사용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아메리카까지 넘어갔고, 말까지 그대로 사용한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도 물감 중에 황토색을 오컬, 오클러 등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공인된 말입니다.

위 그림은 죽은 사람을 오클라, 곧 황토로 매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인데 우리나라 옛날 그림이 아니고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지역에 살던 사람들의 매장 풍습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이와 같이 똑같은 매장문화가 퍼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새, 깃털 숭배문화

또 하나의 한국인의 기원을 알 수 있는 문화적 증거는 날개 혹은 새(鳥) 숭배문화입니다. 고대 한국인들은 새와 날개를 매우 숭상했기 때문에 족장이 죽을 때는 깃털로 싸서 붉은 흙으로 매장을 했었습니다. 또 우리 민족의 깃발도, 지금은 태극기입니다만, 원래 우리 민족 고대의 깃발은 신성한 새 (봉황[鳳凰]새)를 그린 '봉도등(鳳圖騰)'을 사용하였습니다.

또 우리 민족의 장관들, 관료들은 그 계급을 새의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지금도 남아 있는 것이 그 이름을 작위라고 해서, 공작, 후작, 자작하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한 새의 이름들이 바로 우리 민족의 관료의 이름에 붙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중국인이나 다른 민족이 배워 간 것이지요.

그리고 이 깃털 숭배 문화는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중앙아시아, 몽골, 만주 한반도를 거쳐 미국 인디언들까지도 관찰됩니다. 특히 미국 인디언들이 깃털을 소중히 여겼다는 것은 서부영화를 통해서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완전히 깃털로 뒤덮여서 나오는 것이 인디언들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날개나 깃털, 새를 숭상했을까요? 그 이유는 날개라는 것은 바로 천사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사를 간단하게 표현하다 보니까 천사의 몸체 중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 날개이니까 그렇게 된 것입니다. 날개는 바로 천사의 날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자인 천사를 숭상하는 것, 거기서부터 기원된 것이 날개 숭배사상인 것입니다.

왼쪽그림은 독수리의 활기찬 날개의 모습이지요. 오른 쪽 아래의 그림은 고구려(高句麗)의 고대(古代) 고분(古墳)에서 발견된 그림입니다. 우리 민족은 높은 사람들의 무덤에 반드시 신성한 새 (예를 들면 지금 이 그림과 같은 봉황(鳳凰)새...)를 그려 놓았습니다. 그것도 동서남북 중에서 죽은 사람이 쳐다보는 가장 중요한 방향인 남쪽에다가 새 그림, 즉 천사의 날개를 그려 놓았습니다. 그래서 천사의 인도를 받아 천상의 세계로 가고자 하는 소망을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오른 쪽 그림 역시 고분(古墳)의 남쪽에 그려져 있는 신성한 새입니다. 붉은 색 때문에 붉을 주(朱) 자를 써서 주작(朱雀)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마는 봉황에서 기원된 것입니다. 그래서 좌 청룡(靑龍), 우 백호(白虎), 남 주작(朱雀), 북 현무(玄武) 하지 않습니까?

반드시 남쪽에 새가 앉아 있습니다. 죽은 사람이 쳐다보는 가장 중요한 방향이 바로 남쪽입니다. 가장 중요한 곳에 천사가 지키고 서 있는 것이지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봉황(鳳凰)새의 수컷은 봉(鳳)이고 암컷은 황(凰)입니다. 그래서 선배한테 얻어먹을 때 남자 선배를 붙들었을 때는 봉(鳳) 잡았다 라하고 여자 선배를 붙들었을 때는 황(凰) 잡았다고 해야 합니다. 봉황이라는 것은 이와 같이 수컷, 암컷 한 쌍을 말하는 것입니다.


5. 무궁화 숭배문화

다섯 번째로 한민족의 기원을 따지는 중요한 문제가 우리 민족의 국화인 무궁화, 무궁화 숭배사상에서 나옵니다. 무궁화의 학명(學名)은 '히비스쿠스 시리아쿠스(Hybiscus syriacus)'입니다. 여기서 보시듯이 원산지가 우리나라가 아니고 메소포타미아 중동에 있는 시리아 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궁화를 영어사전에서 찾아보시면 'the Rose of Sharon'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샤론의 꽃'입니다. 이것은 아가서에도 나오듯이 '샤론의 꽃', '샤론의 장미' 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에 과거에 급제한 어사에게 씌워주는 어사화도 바로 무궁화입니다. 그리고 화랑들이 쓰고 다니던 모자에 달려 있던 꽃 그것도 무궁화입니다. 그러니까 무궁화가 실재로 활용되고 있던 것이 신라시대부터 이미 확실히 나와 있고, 단군의 이야기에 보면, 그 때 이미 무궁화의 한자식 표현인 목근화 씨를 가지고 왔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우리나라 청와대의 대통령 집무실을 보십시오. 대통령의 뒤쪽에 대통령을 나타내는 문장을 보시면, 중간에 무궁화가 있고, 좌우에 봉황새 두 마리가 그려져 있습니다. 천사가 좌우에서 호위하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무궁화가 한 가운데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이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 선하고 지혜로운 분만 앉아 있다면 이 민족이 급속히 발전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위 그림은 현재 우리나라 국화로 쓰이고 있는 분홍색 무궁화를 보여 드리고 있습니다. 꽃잎은 분홍색이고 중간은 빨갛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수술이 달려 있는 것이지요.

무궁화 장식은 우리 민족이 고대 때부터 여러 군데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우리 민족의 높은 지위에 있던 여인들이 사용하던 고급 거울 (동경; 銅鏡)로 이 거울 전체가 무궁화 모양을 본 따서 만들어 놓았습니다(오른 편 그림).

또 우리나라의 훈장 중에 최고의 훈장, 그것은 무궁화 대훈장입니다. 이것은 대통령급 이상의 사람들에게만 주는 최고의 훈장입니다(아래 왼쪽). 그런데 이 무궁화 대훈장을 오른쪽에 확대해 놓은 것을 보십시오(아래 중간), 노란 부분이 꽃입니다. 그리고 붉은 부분은 형상화해서 크게 빼낸 것이지요. 그리고 중간에 보시면 화랑들이 쓰는 모자가 있습니다. 모자에 장식된 것이 무궁화입니다. 전체도 무궁화고 장식도 무궁화여서, 무궁화로 뒤덮인 이것이 우리나라 최고의 훈장인 것입니다.

 


무궁화의 학명(學名)이 말하듯이 무궁화는 중동에 대 제국을 이루었던 시리아, 인류 최초의 문명인 에블라 문명의 발상지, 그 나라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 오른쪽)

 

 

 


위 왼쪽 그림은 시리아의 정궁(正宮), 가장 큰 궁전의 장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큰 기둥들이 있고, 전체를 무궁화 장식으로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크게 확대를 해 보면 위 오른 쪽 그림과 같습니다. 군(軍)에 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부대대장쯤 되면은 소령이지요? 소령이 무궁화 꽃입니다. 무궁화가 소령 무늬하고 같습니다.

 

위 왼쪽 그림은 시리아 정궁을 멀리서 본 것입니다. 이렇게 기둥들이 있고, 그 기둥 밑에 무궁화 꽃들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발코니같이 생긴 난관, 이것도 무궁화 잎으로 장식해 두었습니다. 또한 외성 (바깥성벽)도 무궁화 잎으로 장식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위 중간)

메소포타미아를 떠나서도 흑해연안 곧 한민족이 이동해 왔을법한 이동경로를 따라 살펴보면 무궁화들이 끊임없이 피어있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위 오른 쪽).

 

6. 복식, 의상의 분포

기타 우리 민족의 기원을 추정할 수 있는 것으로서 도기 등의 유적 분포는 생략하고 의상의 분포를 살펴보겠습니다.
위 왼쪽 그림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그려놓은 기마민족(騎馬民族)의 기상을 표현한 그림입니다. 말 타고 다니던 민족들이지요. 흔히 우리민족을 농사를 짓던 농경민족으로 역사학자들이 잘못 가르치고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위 가운데 그림은 몽골사람들의 기마민족(騎馬民族)의 위상입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중앙아시아 그리고 몽골에 이르기까지 기마민족들이 지배를 해 온 것으로 밝혀져 있습니다. 이 몽골의 말타기 좋은 핫바지, 승마바지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위 오른 쪽 그림은 우리 민족의 고대 고구려의 고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고구려의 고분에서도 이 승마바지, 핫바지의 그림을 볼 수 있고, 또한 신라에까지도 연결됩니다. 곧, 신라 경주의 천마총에 보시면 천마가 그려있는 말안장이 발견되었습니다. 이곳은 임금의 무덤인데요, 천마가 그려진 말안장은 자작나무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 자작나무는 북방 시베리아쪽에서 자라는 나무입니다. 이것은 곧 메소포타미아를 떠나서 몽골 만주 한반도를 거쳐오면서 기마민족(騎馬民族)들이 북방 아시아를 지배하고 다스려 온 것이고 그 후예가 신라에까지 내려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민족은 북방에서부터 내려온 기마민족(騎馬民族)이었던 것입니다.

 

 

3. 한민족의 이동 원인과 이동 경로

그럼, 한민족이 메소포타미아에서 머나먼 극동(極東), 영어로 'Far East' 라고 하는 한반도까지 왜 왔을까? 에 대한 원인과, 어느 길로 왔을까? 하는 이동경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왼쪽 그림은 알타이어의 발원지인 터키의 아라랏산이고, 오른 쪽 아래 그림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백두산 천지입니다. 아라랏산에서 천지까지 머나먼 길을 우리조상들은 왜 이주해 왔을까요? 그리고 어떤 경로로 이동했을까요?

거기에 대한 해답은 세상 어디를 가도 대답이 없습니다. 유일하게 문서로 기록된 증거는 구약성경 창세기에 있습니다. 창세기 11장 9절에 보면, 잘 아시듯이 바벨탑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바벨탑 사건 때 말이 갈리면서 온 지면에 흩으셨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때 우리나라 사람들도 말이 갈리면서 극동까지 온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합니다. 성경 외에는 어디에도 우리 민족의 기원에 대해 말해주는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왼쪽 그림은 바벨탑과 유사한 지구라트의 모양입니다.

성경의 이야기와 여러 가지 증거들을 모아서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스의 아들 니므롯이 무력으로 메소포타미아를 장악하고 우상을 숭배하고 많은 민족을 압제하였습니다. 그래서 장자권자(長子權子)였지만 장자권(長子權) 수호에 실패한 셈의 첫째 아들 엘람 가문과 둘째아들 앗수르 가문 등은 함의 손자요 구스의 아들인 니므롯의 통치 하에서 시달리다가 바벨탑 사건이 터지자 동방으로 이주하였습니다. 그들은 이후 성경에서는 그 이름을 찾을 수가 없게 됩니다. 바벨탑 사건이후에 큰 회개운동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장자권 (長子權)을 잃게 된 것을 통탄해 하면서 이제야말로 신앙적으로 바로 살아보자는 굳은 의지로 빛 되신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는 동방(東方)을 향해 대장정을 떠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동방(東方)이라는 곳은 해가 떠오르는 곳이고 해라는 것은 바로 빛입니다. 빛 되신 하나님을 형상화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빛 되신 하나님께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땅 그곳이 바로 극동(極東), 'Far East' 인 것입니다. 오른쪽 그림은 백두산 천지의 일출광경입니다.

그리고 노아 홍수 이후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약속하실 때 무지개가 나타났습니다. 몽골 사람들이 한국을 쏠롱고스(무지개의 나라)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무지개가 동방(東方)에 나타났던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이 셈족들이 빛 되신 하나님과 더 가까이 하고자 약속의 땅(무지개 땅), 빛의 땅 동방으로 이동하게 된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잠깐 성경에 나오는 중요한 족보를 잠시 살펴보고 가겠습니다. 창세기 10장 21절에 보시면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다'라고 해서 셈족 자손 중에서는 에벨이 가장 유명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셈을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라고 거꾸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지요. 셈이 여러 아들을 낳았는데, 성경에는 셈의 셋째 아들인 아르박삿, 그리고 그 이후의 자손들을 거쳐 데라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하듯이 셋째 아들의 족보가 나와 있습니다.

이상하지요. 장자권자가 가장 중요한데요. 맏아들 엘람과 둘째아들 앗수르라는 가문은 사라져 버린 것이지요. 그 이유는, 아우에게 능욕을 당하고 있던 정통 장자권자들이 바벨탑 사건을 계기로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되자 이번에야말로 신앙적으로 바로 살아보자 하는 신앙각성으로 동방으로 떠나 버렸기 때문에 성경에는 사라져 버렸고, 셋째 아들
아르박삿 가문만이 남아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오시게 되는 히브리인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히브리인이라는 이름은 에벨이라는 이름에서 왔습니다. 에벨이라는 이름은 구약성경에서는 에벨이라고 되어 있지만, 신약성경에서는 헤버라고 되어 있습니다. 헤버는 헤벌로서 이것이 바로 히브리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잘 모르던 시절에 일부 신학자들이 히브리라는 말은 이집트의 노예인 하피루에서 왔다고 주장하였지만, 사실은 에벨에서 온 말인 것입니다.

셈의 정통 장자권자들이 빛을 찾아 동방으로 떠났을 때 "셈의 장막에 거하면 복을 받으리라"던 노아의 명령을 따라 야벳의 일부 후예들이 셈족을 따라 나섰고, 이들은 그 후에 중국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함의 맏아들 구스 가문의 일부도 셈족을 따랐는데, 이들은 인도인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 예로서 중국인의 고대 지도자들의 미이라가 발견되었는데요, KBS 특집에도 나왔었지요. 중국인들의 조상의 골격은 놀랍게도 동양인이 아니라 백인, 즉 코카시안(Cocasian)의 두개골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보고에 의하면 미이라에 머리카락이 붙어 있었는데, 머리카락도 금발이었습니다. 그래서 흑발의 몽골리안을 따라오던 이들이 몽골리안의 아내들을 많이 맞아서 동양적으로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말이나 생활문화는 바뀌지 않기 때문에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중국말은 영어에 훨씬 더 가깝습니다. 그리고 의자를 좋아하는 입식(立式)생활을 하는 것도 야벳의 자손임을 알 수 있는 증거인 것입니다.

이것은 중국의 역사책인 사마천의 사기(史記), 서전 요전(書傳 堯傳)과 같은 역사책에도 증거가 남아 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 오제본기(史記 五帝本紀)를 보시면 '곡이 진봉의 딸을 취하여 요(堯)를 낳았다'고 하였습니다.  이 요(堯)는 요(堯)임금, 순(舜)임금 할 때 요(堯) 임금을 말합니다. 요(堯)의 아버지는 곡이었다고 되어 있는데요, 곡은 성경에도 나옵니다. 이 곡은 야벳의 아들입니다. 마곡이라고 부르지요.

서전 요전(書傳 堯傳)에 보시면 순(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순(舜)의 아버지는 고수였다. 그런데 그 고수는 완고하고 그 어미는 악하며 순(舜)의 아우 상은 교만하였는데, 유독 그 집안에서 순(舜)만이 효로서 화합하고 아름답고 어질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요(堯)의 대를 이어 중국인의 지도자가 된 것이지요. 이 고수도 성경에 나옵니다. 고수는 바로 함의 아들 구스입니다.

셈의 아들인 엘람과 앗수르 중에서 엘람은 성직자적인 분위기였고, 앗수르는 행정, 군사를 담당한 기마민족, 곧 고구려 , 신라까지 연결되는 집안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야벳 가문의 일부와 구스 가문의 일부를 데리고 아라랏 산을 넘어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몽골을 거쳐 만주 땅에 이르는 대장정에 올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명에 우스 라는 이름을 가진, 즉 우스토브, 우스벤스키, 우즈베키스탄 등 의 지역이 대단히 많습니다. 이 우스라는 말의 성경적인 뜻은 천사가 인도해준 땅, 약속의 땅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아라랏산에서부터 만주까지 오는 길이 너무 머니까 좋은 땅이 나타나면 "아이고 여기가 바로 '우스'다." 하며 의지가 약한 순서대로 주저앉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메소포타미아 가까이에서부터 만주 근처까지 우스 라는 말이 붙은 지명이 대단히 많은 것이지요. 이렇게 중간중간 주저앉을 때 "아니다." 하며 계속 나아가고 "아직도 저렇게 해가 뜨고 있잖니?" 하며 끝까지 나아가서, 마치 월드컵때의 투지와 같이 민족의 이동시에도 16강, 8강, 4강에 드는 민족이 바로 우리 민족이었던 것입니다.

여기까지 살펴보면서 한국인의 이동경로를 지도로 나타내면 왼쪽 그림과
같습니다.   터키의 동쪽 아라랏. 알타이어의 발원지이자, 흑요석의 발원지이고, 오클라의 발원지, 여기서부터 우리 민족이 대장정을 거쳐 중앙아시아 무슨 스땅을 거쳐 몽골리아, 만추리아 그리고 한반도까지 오게 된 경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더 부지런한 사람들이 바다를 거쳐 일본까지 진출하게 되었고 또 일부의 사람들이 북동쪽까지 가다가 그 당시 빙하기의 영향으로 얼어붙어 있던 베링해협을 건너 알래스카 에스키모가 되었고, 거기서부터 일부는 빙하의 계곡을 따라 캘리포니아 쪽으로, 그리고 미국의 동부 쪽으로 뻗어 가서 오늘날의 아메리카 인디언, 남미의 인디오가 되게 된 것입니다.

셈족을 주축으로 한 일부 야벳과 구스족은 시베리아를 거쳐 바이칼 호수를 건너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큰 강변의 넓은 땅을 보고, 좌 청룡 우 백호도 아라랏산 근처와 비슷한 곳에 정착하였는데, 이 큰 강을 보니까 수많은 오리, 기러기가 내려앉는 강(오리라, 아리라)이었는데, 이곳이 지금의 송화강(松花江)입니다. '아리라' 라고 강을 부르게 되었고, 그 강변의 넓은 땅의 이름을 아사달, 즉 우스달, 아스달 하여 약속의 땅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우스달이죠. 아사달이란 말은 한자(漢字)식 표현이고, 우리 조상은 우스달이라고 불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곳은 지금의 지명의 보면 '하얼빈' 지역입니다. 이곳이 바로 약속의 땅, 빛나는 아침의 땅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이름을 '아침의 나라' 곧 '조선(朝鮮)'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빛나는 아침의 나라, 그것은 바로 고대 우리 조상들이 세운 고조선(古朝鮮)입니다.

 

 

 

그곳을 지도로 보시면 위 왼쪽의 그림과 같습니다. 만주 땅 한가운데 하얼빈 (안중근 의사가 이또오 히로부미를 저격한 그 장소지요), 이곳이 바로 아사달 지역인 것입니다.

위 가운데 그림은 하얼빈 지역의 넓은 들판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바로 아사달 땅이고요. 그리고 이곳은 그 이후에도 고조선의 대를 잇는다고 주장하는 아골타가 중국에 금(金) 제국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아골타는 놀랍게도 고려사람 김함보의 자손으로서 한국사람임이 밝혀졌습니다. 즉 아골타는 금(金)씨(김씨의 고대발음)로서, 자신의 성을 따서 나라 이름을 금(金) 나라, 곧 금(金)제국을 지은 것입니다.

위 오른쪽 그림과 같은 비석이 서 있습니다. 금나라의 수도 상경 회령부 의 유적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4. 고대 한민족의 신앙과 번영

다음으로, 아사달에 정착한 고대의 한민족은 어떠한 신앙을 가졌으며, 어떻게 살아갔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왼쪽 사진은 환웅천강도라는 중국에서 발견된 그림입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단군신화를 중국인마저도 그대로 믿고 그려놓은 것이지요.

동방에 정착한 셈계의 장자의 백성들은 땅에 충만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아사달의 넓은 들판과 한반도에 퍼져 나가며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았으나 임금을 세우지 아니하고 그들에게는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만이 신앙이 대상이었습니다.

그것은 규원사화 단군기라는 고대 역사책에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신으로 가장 높은 으뜸 자리에 계시며 천지를 창조하고 전 세계를 주관하고, 수 없이 많은 사물을 만드시니 넓고 넓게 둘러싸므로 들어 있지 않은 것이 없고, 아주 밝고 밝아 작은 티끌하나 새지 않도록 하시었다"
이 단군기에 보는 바와 같이 우리민족의 신에 대한 정의가 확실히 보여지고 있습니다. 유일신이요, 창조의 신이요, 빛과 같이 밝은 신이다. 더 이상 논의할 것이 없을 정도로 유대인의 야훼 하나님하고 정의가 똑 같습니다.

또한 고대 한국인들도 삼위일체 하나님을 섬겼다는 사실이 고조선의 역사학자였던 신지(臣智)의 역사책 삼일신고(三一神誥)에 나타나 있습니다.
"체일용삼(體一用三)이요 삼신일체(三神一體)요 회삼귀일(會三歸一)이라"
이렇게 쓰여 있는데, 이것은 몸은 하나인데 활동만 창조의 신, 구원의 신, 역사의 신 이런 식으로 활동만 셋으로 한다.
그리고 이 세 신은 사실은 하나이다. 이 셋이 모이면 하나이다. 이런 뜻입니다. 오늘날의 삼위일체 이론하고 완전히 똑같습니다. 그 까마득한 고대의 우리 조상들이 어찌하여 기독교의 신학에서도 가장 어려운 삼위일체 신학을 정통으로 꿰뚫었을까요?

그것은 원래 우리 민족의 집안이 셈의 제사장 집안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학자인 윤내헌 교수의 고조선사 연구에 보면 "이는 3.1 사상 또는 삼위일체 사상이라고 하는데 그 후에 한민족 사상의 주요한 요소를 형성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흑백논리도 아니고, 있다 없다도 아닌, 항상 세 개의 요소로 설명하고자 하는 의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임금일지라도 항상 나무로 된 집을 짓고 살았고, 돌로 된 집을 짓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이 땅은 나그네와 같은 삶이고 돌아갈 집이 저 세상에 있다는 나그네 정신이 투철했기 때문입니다. 이 나그네 정신과, 훗날에는 구원, 천국, 낙원이 올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복음의 전파가 없었을 때에도 자생적으로 메시아 신앙이 생겨나게 되었고, 옛날부터 지금까지 가지고 오게 된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어떤 때는 미륵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정도령으로 표현되기도 하였지만, 사상 자체는 메시아를 갈망하는 사상이 우리 민족의 고유의 사상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김진홍 목사님의 강연에도 나옵니다.

그 다음으로, 고대 한국인이 지켜 오던 법으로서 팔조(八條)의 금법(禁法)은 유대인들의 십계명과 매우 유사합니다. 오히려 열 개로 늘려 있는 것을 십계명의 뜻은 다 들어 있는 일곱 가지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여덟 번째 계명이 들어 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너희는 오직 한분이신 하나님만을 섬기라.

2. 너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모든 생명있는 것을 사랑하라.

3.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보내신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

4.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한다.

5. 서로 시기하지 말며 간음하지 말라.

6. 물건을 도둑질한 자는 도둑당한 집의 노비로 삼는다.

7. 남을 상해한 자는 곡물로서 갚아야한다.

8. 약한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또한 고대 한국인들은 수천 년 동안 왕을 세우지 않고 신정일치의 전통을 잘 이어왔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사무엘이 그토록 원했던, 하나님이 그토록 원했던 그 사상을 고대 한국인들은 오래도록 잘 지켜 온 것입니다. 즉 천군(天君)이라는 제사장의 인도 하에 신정을 유지해 왔습니다. 그리고 도읍의 이름도 신시(神市), 즉, 하나님의 도시, 하나님의 마을로 불렀던 것입니다.

나라를 세운 목적도 특정인의 이익이나 특정 종교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민족은 놀랍게도 '홍익인간(弘益人間)' 즉, 널리 사람 사회에 유익을 끼친다, 모든 인류에게 봉사한다는 뜻의 '이타주의 사상', '박애(博愛)사상', 즉 기독교로 볼 때 '아가페 사상'을 구현하기 위해서 나라를 세웠던 것입니다. 이런 사상을 위해 세워진 나라는 우리나라 외에는 이 세상에 아무 곳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단군(檀君)이 나라를 이끌어 왔는데요, 단군은 어떤 개인의 이름이 아니고 직책의 이름이었습니다. 단군(檀君)이란 신단수(神檀樹)라는 거룩한 나무 밑에서 제사를 인도하던 신정일치 사회에서의 천군(天君)을 뜻합니다.  
즉 미스터 헤븐(Mr. Heaven)이지요. 생명나무(生命樹), 즉, 신단수(神檀樹) 아래에서 거룩한 제사를 지내던 천군(天君)을 줄여서 단군(檀君)이라고 한 것입니다. 고대 유대인들도 신이 정한 성역인 에덴동산 중앙에 서 있던 나무아래에서 신에게 경배하였는데요, 우리 민족도 신이 임하셔서 여러 가지를 듣고 지도하던 나무, 즉, 신단수(神檀樹)도 생명나무(生命樹)와 같은 개념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동방으로 이주한 우리민족은 하나님의 규례대로 장자권자(長子權者)가 백성을 보살피는 사랑의 공동체를 형성하였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대제국(大帝國)을 형성하였건만 아무도 영웅호걸을 숭상하지 않고 대제국이라는 이름을 절대로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무 기록도 남지 않아 그 대제국의 모습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국인들이 우리민족을 격하시키기 위해 오랑캐라는 뜻의 동이족(東夷族)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 글자 속에 큰 활이 들어가 있습니다. 동방에 있는 활을 잘 쏘는 나라라는 뜻이지요. 지금도 올림픽에서 활 쏘는 종목은 항상 금메달을 따오지요. 그것은 과거부터 우리민족에 그러한 소질이, 유전자가 들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동방족(東方族)이라 불리는 고대 한민족의 여러 나라들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동쪽으로 이주한 한 형제요 공동체의 나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평화와 우애로 살았기 때문에 전쟁이 있을 이유가 없고 자기 자랑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바빌로니아다, 앗시리아다, 징기스칸이다 하며 자기 이름을 남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러한 지식의 부족으로 일부 학자들에 의해 약하고 부족한 민족으로 평가절하 되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평화를 사랑한 우리 조상들은 흰옷을 즐겨 입어서 '백의민족(白衣民族)' 이라고 불려 졌으며, 큰 자는 작은 자를 섬기고, 작은 자는 큰 자를 공경하여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사를 기록한 역사서 중의 하나인 회남자(淮南子)는 이 동방에 있는 장자권의 나라, 곧 엘람과 앗수르의 나라를 군자의 나라라고 기록했던 것입니다. 회남자 대형훈(淮南子 隊形訓)을 한번 읽어보시겠습니까?

"동방에 군자의 나라가 있으니 동방의 덕목이 어진 고로 군자의 나라가 있다 하느니라."
'중국의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중국의 정치가 혼란에 이르면 동방에 가서 배워 오라.' 이것이 고대 중국사람들이 오랫동안 진심으로 의존했던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21세기의 중국인들이 오늘날의 한국인들을 회남자(淮南子)의 이 말대로 보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되지 않을까요?
"동방에 돈 독(毒)이 오른 나라가 있으니... 돈 독(毒) 의 나라라 하느니라."
한류열풍도 돈과 관련하여 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섬김과 사랑으로 이웃나라를 도와서 고대에 빛나던 한민족의 이름을 다시금 높여야 할 것입니다.

왼쪽 그림은 고인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고인돌에 대해서는 무덤이다 제단이다 여러 가지 학설이 많습니다마는 원래는 제단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제단을 지키던 원로가 돌아가시니까 평생 정들었던 고인돌 밑에 묻어드리고,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 보니까 제사보다는 형식만 남아가지고 조상 제사 드리는 무덤으로만 인식 되어 버린 것입니다.

고인돌은 대단히 큽니다. 어떤 것은 상판의 길이가 10m, 폭이 4m 되는 것도 있습니다. 엄청나게 큰 제단, 거대한 돌 강대상입니다. 그래서 그 위에 제물을 올려놓고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편집자 주: 세계적으로 고인돌은 'Dolmen'으로 불리운다. 이것은 우리말의 '돌멩이' 바로 그것이다)
전 세계에 고인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 세계 고인돌의 50퍼센트가 한반도와 만주 땅에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우리 민족이 거의 대부분이 성직자 집안이었다. 곧, 전 세계 강대상의 50퍼센트가 우리나라에 있었으니, 우리는 제사장 집안이었다 하는 것입니다. 굉장히 종교적인 민족이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세운 고조선의 영역을 지도로 나타내면 오른쪽 그림과 같습니다. 동방족들은 아리라, 곧 지금의 송화강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만주와 한반도, 그리고 일본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흩어져 살면서 서로 섬기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따라온 중국인들, 곧 야벳 족속들은 중원대륙으로 내려갔을 때, 기술, 종교, 문화적으로 그 능력이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동방족 형님들에게 계속적으로 도움을 청하게 되었으며, 동방족들은 중국인들을 계속해서 도와주다가 그중의 일부는 아예 산동반도에 정착하여 살았습니다.

산동반도와 중국의 동해안에 걸쳐 동이족들이 정착하여 살았습니다. 중국인들을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은 중국의 역사기록을 토대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동방족들은 이 일대를 중심으로 해상왕국을 만들게 됩니다. 훗날 장보고 시절에도 이 지도가 그대로 복원됩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이주해온 경로를 잘 알기 때문에 심지어는 수메르의 잔재로 남아있던 나라, 비록 니므롯의 나라가 되어 버렸고 바벨론의 나라가 되어 버렸지만, 그 추억을 더듬어서 고대 고구려와 신라의 사신들이 도로 찾아가는데, 그 당시 역사기록을 보면 중동에 '수밀이국'이라는 나라가 있어서 '수밀이국'과 교통하였으며, 무슨 왕 몇 월 며칠에 '수밀이국' 사람 몇명이 찾아 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록 수메르는 망했고, 이미 나라 이름이 바뀌었지만, 과거의 기억을 통해 여전히 수메르라고 불렀으며, 한자로 표현하다 보니 '수밀이'가 된 것입니다.

 

 

 


왼쪽 그림은 수메르국 여인의 장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위 왼쪽 그림은 수메르 땅의 제국인 페르시아, 곧 성경의 '파사'지역에 남아있는 벽화입니다. 이 벽화에 보면 외국사신들을 맞이하고 있는 모습인데요, 제일 오른쪽에 보시면 긴 도포를 입고 머리에 깃털 장식을 하고 당당하게 칼을 차고 있는 이 청년은 바로 한국 (고구려나 신라)에서온 청년입니다. 그래서 고구려와 신라 사람들이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여러 나라와 활발하게 교류를 나누었음을 이 벽화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위 오른 쪽 그림은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였던 페르세폴리스에 남아있는 사신들의 행렬도 벽화입니다. 전 세계의 사신들이 페르시아 (파사)의 왕에게 알현하면서 선물과 조공을 바치는 모습이지요. 그런데 이 많은 사신 중에 몇몇 사람들은 까마득한 땅 끝, 동방에서부터 온 동방족 사신들도 있었던 것입니다.

 

 

 

5. 고대 중국에 끼친 영향

고대 한국인이 고대 중국에 끼친 영향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왼쪽 그림은 중국인들은 고궁(古宮)이라고 부르고, 우리들에게는 자금성(紫禁城)이라고 알려져 있는 베이징의 왕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중국인들의 기원에 대해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셈의 장자들인 엘람과 앗수르 가문이 동방으로 대장정을 시작했을 때 셈의 장막에 거하면 복을 받으리라는 노아 할아버지의 명령을 따라 야벳 가문의 일부가 따라 나섰습니다. 또한 함의 맏아들인 구스 가문의 일부도 셈족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래서 야벳이 주축을 이루고 구스도 일부 섞인, 그리고 셈 가문 여자들을 며느리들로 맞아들여 다양하게 섞여버린 그들이 지금의 중국인들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대로 사마천의 사기 오제본기에 요의 아버지는 곡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곡은 아벳의 아들인 곡, 마곡과 연결이 됩니다. 또 서전요전에 보면 요임금의 대를 이은 순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순의 아비는 고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수는 함의 아들 구스와 연결되고, 구스의 아들이 순이 됨으로써, 고대중국의 왕조와 성경의 족보가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고대 중국의 문화를 잠깐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국인과 한국인의 관계를 알기 위해서는 문화를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크게 두 개의 문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앙소문화권(仰韶文化圈)과 용산문화권(龍山文化圈) 두 가지입니다. 앙소문화권(仰韶文化圈)은 서남문화권(西南文化圈)이라고도 하는데 설립자는 중국인 스스로이고, 중국의 남쪽에 있으며, 하남성 앙소촌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규모는 소규모이고 원시적이고 상당히 시시합니다.

그런데 중국의 대부분의 훌륭한 문화권을 이루고 있는 용산문화권(龍山文化圈)은 놀랍게도 설립자가 동방족 혹은 동이족이라고 불리는 고대 한국인이 세운 것입니다. 그래서 용산문화권은 다른 말로 동방문화권(東方文化圈)이라고 부릅니다. 그 중심은 산동반도의 용산현 근처입니다. 용산문화권은 중국문화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찬란했던 문화권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중국인 고고학자들이 밝힌 사실들입니다. 이러한 중국역사의 문화적 배경을 보면 중국이라는 나라는 동이족들, 곧 한국인들이 도와줘서 그 기틀을 세웠구나 하는 것을 당장에 알 수 있습니다.

산동성의 용산문화권은 고대 동방으로부터 파견된 동방족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중국인들은 중국으로 파송된 동방족들을 '소호 금천(金天)씨'라고 불렀습니다. 중국인의 역사 기록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소호족의 거하던 곳은 중국대륙의 동해 바깥쪽에 있었는데, 바로 요동반도였으며, 거기서 들어와서 산동반도(山東半島)에 거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고구려 시대까지만 해도 요동반도는 우리 땅이었습니다. 요동에 거하던 동방족들이 중국인들을 도와 주다가 도와 주다가 끝이 없으니까, "에라, 안되겠다. 아예 중국에 들어가서 살면서 도와주자" 하고 산동반도로 들어가 살면서 돕게 된 것입니다. 그 산동반도 지역이 완전히 코리아타운으로 화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소호는 동쪽의 해 돋는 곳 (해가 돋을 때 동쪽 하늘이 금빛으로 물들지요?) 금빛 하늘에서 왔다하는 의미에서 쇠 금(金)자 하늘 천(天)자로 금천(金天)씨가 된 것입니다. "금천(金天) 땅에서 왔다"고 해서 이들은 금천(金天)이라는 성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들은 중국으로 파견된 동방족 출신의 엘리트 지도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고대 한국인들은 중국인들이 요를 중심으로 새 땅을 개척하기 위해 떠날 때 그들을 돕기 위해 산동반도로 많이 따라갔던 것입니다. 아직 자립이 안 되고 기술도 부족하고 홍수가 나면 대책이 없었거든요. 그 모든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가서 도왔던 것입니다. 요의 대를 이어 지도자가 된 순을 도와줬던 사람은 '부루(夫婁)'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루(夫婁)는 한국의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는 단군(檀君)의 아들이었고, 이 부루(夫婁)가 금천(金天)씨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금천(金天)씨란 특정한 혈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을 통틀어 코리언(Korean)이라 하듯, 그 당시에 금천(金天)씨라 부른 것입니다.

산동반도에 파견된 소호 금천씨와 자손들은 모두 중국 남방의 형제들을 말씀으로 가르치고 양육한 하나님의 파수꾼들이었던 것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우리나라 명성황후 시절에 한반도에 들어와 복음을 전하던 선교사님들과 같습니다. 그들은 의료인으로, 혹은 기술자로 들어와서 병원도 짓고 기술도 가르치고 학교도 세우면서 신앙도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신라 김유신 장군의 비석과 삼국사기 열전에 의하면, "김유신은 헌원의 후예이고 소호 금천씨의 자손인데, 그는 가야 왕의 후손이므로 가야의 시조인 수로왕의 성도 그의 동성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헌원입니다. 이 헌원은 한자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지, 이 이름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후난, 즉 셈의 자손인 앗수르 가문의 족보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라는 유적으로 보나 삼국사기로 보나 성경으로 보나 엘람 형님, 제사장 형님을 도와 행정과 정치, 경제, 군사 업무를 장악하고 있던 셈의 둘째 아들 집안인 정통 기마민족인 것이 가장 유력합니다.

즉, 소호 금천씨는 니므롯에 의해 밀려난 앗수르의 헌원의 직계자손이며 셈과 야벳과 함의 일부 형제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 동방을 찾아서 대장정을 감행한 주도세력이었던 것입니다.

왼쪽의 지도를 보시면, 요동반도에 거하면서 중국인들을 도와주다가 아예 산동반도 근처로 들어와서 살았던 사람들이 바로 고대 한국인들이었던 금천(金天)씨들이고, 그들이 영적인 장소로 지정해서 (아마 아라랏산을 형상화했겠지요) 정한 곳이 바로 태산이라는 지역입니다. 지금도 중국사람들이 가장 신성한 곳으로 여기는 곳이 바로 여기 태산이고, 중국 역사에 의하면 금천씨들, 즉 동방족들이 살던 곳이 바로 태산 지역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태산 바로 옆이 곡부입니다. 곡부는 무엇으로 유명합니까? 중국 정신사에 매우 중요한 공자가 바로 곡부에서 태어난 사람이며 그가 동방족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공자는 기원전 500년경 사람입니다. 그 조상은 기원전 2000여년경에 여기 와서 살았고, 그 이후 공자가 태어난 것이지요. 그래서 중국의 문화도, 종교도, 정신세계도 거의 다 동방족이 이루었다는 사실을 중국역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은 오히려 근래에 이르기까지 사대주의에 빠져서 "황공하옵게도 우리가 어찌 대국인 중국을 가르쳤습니까? 우리가 중국에서부터 배워 온 것이지요." 하면서 그 모든 것을 숨기고, 지우고, 왜곡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중국의 역사책까지 쫓아 가서 지울 수는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중국의 역사책에는 이 대부분의 내용들이 남아있게 된 것입니다.
 

 

 


위 그림은 태산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중국의 역사에 보면 유명한 산이 다섯이 있습니다.   그 중에 태산이 가장 중요한 산이라 하여 오악지종(五岳之宗)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위 그림은 태산의 정상인데요, 태산의 정상은 완전히 성전(聖殿)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태산의 정상에는 천상신(天上神), 곧 하늘 황제인 상제(上帝)신의 성전(聖殿)이 지어져 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허물어지고 새로 세워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원래의 모습이 아니고 불교식, 유교식으로 건물모양이 변화되어 세워지게 되었을 뿐이지, '천상신부'라 하여 상제신을 섬기던 정신은 그대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맞은편을 보면, 상제신을 섬기던 제사장 소호 금천(金天)씨의 무덤이 있습니다.(위 왼쪽).  소호 금천씨 무덤에는 그 위 오른쪽 그림과 같이 금천씨 상이 있습니다. 금천(金天)씨가 금(金)씨, 금(金)씨가 김(金)씨가 되어 현재 우리나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성(姓)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중국의 고대 역사를 살펴보면, 중국은 전설적인 다섯 왕이 있습니다.  황제, 전욱, 제곡 그리고 요 임금, 순 임금입니다. 이미 순임금 시절에 상제(上帝)신에게 제사를 드렸다고 공자의 서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때가 기원전 2230년경입니다. 바벨탑 사건이 기원전 2247년경이니까 바벨탑 사건이 터지고 17년 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입니다.

그리고 황제, 전욱, 제곡은 중국인들의 조상이지만, 메소포타미아에 살던 중국인의 조상이고, 이후 동방으로 오면서 엘람과 앗수르 가문과 함께 동행했던 중국인의 조상은 아마도 요임금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임금이 아사달에서부터 중국인들을 인솔하여 중원대륙으로 들어갔고, 순임금 때 중원에 자리를 잡아서 안심하고 제사를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순임금 다음으로 왕조가 들어섰는데, 하나라, 은나라, 그 다음에 주나라, 그 다음에는 진시황이 통일국가를 세운 진나라,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한나라, 수나라, 당, 송, 원, 명, 청나라 순으로 내려갑니다. 결국은 전설적인 왕 다음에 실질적인 중국의 왕들은 바벨탑 사건 이후부터 시작되어 요임금, 순임금 시대, 그리고 그 후 하-은-주, 진, 한-수-당-송-원-명-청 이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중국의 간단한 역사입니다.

그러면 고대 중국에 끼친 한국의 역할을 알기 위해서 몇 가지 기록을 읽어보겠습니다. 서전 호서에 기록된 것을 보시면, 순의 제자 우(禹)는 장가를 잘 가서 출세한 사람입니다. 어디로 장가를 갔는가 하면 동방족의 도산국 여자와 결혼하였으며, 그 처갓집이 똑똑한 사람들이 많아서 처가의 도움으로 황하의 홍수를 해결하여 명성을 얻고 순임금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역대 신선통감 제 3권에 보시면 앞의 글과 연결이 됩니다. 순의 제자 우는 형산에서 창수사자(蒼水使者)로부터 금간옥첩(金簡玉牒)이라는 비결책을 얻었던 것입니다. 이 금간옥첩(金簡玉牒)이 최초의 토목공학 원서가 되겠지요. 창수사자(蒼水使者)란 누구인가에 대해 세종실록지리지 평양부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는 도산(塗山)회의에 참석한 부루(夫婁)로부터 금간옥첩(金簡玉牒)을 받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창수사자란 동방족 출신의 지도자로 단군의 아들인 부루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처가의 도움이라는 것은, 중국인 우의 처가는 한국의 왕족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원래는 코카시안(Cocasian)의 얼굴을 가졌던 중국인들이 자꾸 한국인 얼굴처럼 변한 것입니다. 그러나 말과 문화와 의자생활과 볶고 튀겨 먹는 문화는 그대로 남아서 지금의 중국의 모습이 된 것입니다. 또 우(禹)는 동방의 지도자를 방문하여 가르침을 받고 중국의 역법과 절기를 모두 동방의 것에 맞추었다고 중국의 정사인 사마천 사기 오제본기 (史記 五帝本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요, 순, 우 로 이어지면서 한번도 세습을 하지 않고 능력위주로 왕의 자리를 이었는데, 우는 자신의 아들 계에게 자리를 물려주어서 이 세습된 지도체계는 곧 반발에 부딪혀서 혼란을 야기했습니다. 그때 설의 아들인 탕이 강력한 지도체계를 확립하고 대륙의 질서를 바로 잡았는데, 이 탕은 곧 산동반도에 들어와 있던 동방족 출신의 지도세력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탕의 시대로부터 동방족이 직접 중국대륙을 치리 하였는데, 이렇게 한국인이 통치하던 시기가 바로 하-은 시대입니다.

그리고 중국인들이 섬기던 신은 '샹따이'인데 히브리인이 섬기던 하나님 '엘 샤다이'와 발음도 뜻도 같다는 것을 고대 중국인들의 국경제사문 (國境祭祀文)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극히 오래 전 태초에 공허하고 흑암의 큰 혼돈이 있었사옵니다. 다섯 행성은 아직 운행되지 않았었고 태양도 달도 빛을 발하지 않았었습니다. 거룩하신 신 상제(上帝)께서 이곳에 모든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주께서 모든 만물을 만드셨사옵니다. 그리고 사람을 지으셨사옵니다. 당신의 능력으로 모든 만물이 지음을 받았사옵니다."

위의 국경제사문(國境祭祀文)과 기독교인이 믿는 경전인 성경(聖經) 창세기(創世記) 1장의 내용과 비교해 볼까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 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리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 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자기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 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세기 1장 1절-27절)

상제(上帝)를 창조(創造)의 신(神)으로 묘사함으로서, 국경제사문(國境祭祀文) 의 내용과 창세기(創世記) 내용이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다른 국경제사문 (國境祭祀文)을 보시면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생물들이 당신의 뜻으로 말미암았나이다. 上帝시여, 인간도 만물도 모두가 당신의 사랑으로 이 낙원에 살게 되었나이다. 모든 생명체가 당신의 선하심으로 지음 받았사오니, 그 축복은 당신으로 말미암음이옵니다. 오 주시여, 당신만이 이 모든 만물의 참 어버이가 되시옵니다."

세상의 어떤 종교에도 기독교 이외에는 이런 기도문이 없습니다. 제사문이라는 것이 결국 신(神)에게 드리는 기도문(祈禱文)인데, 바벨탑 사건 이후 하나님을 기억하던 백성들이 동방으로 이주해온 후 하나님을 기억하며 드렸던 기도문으로 생각됩니다.

공자(孔子)의 중용(中庸)에 보면 제사란 무엇인가가 기록되어 있는데, "하늘과 땅에 드리는 모든 제사를 통해 사람이 상제(上帝)를 섬기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원래의 공자(孔子)는 하나님을 섬기라고 말하고 있지만, 가짜 공자가 판을 치면서 진짜 상제(上帝)인 하나님에 대한 소식이 들어 왔을 때 얼마나 핍박을 주었습니까? 그래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것처럼, 어용학자들이 만든 가짜 공자가 죽고 상제를 섬기는 진짜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잘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직접 한국인이 통치하는 하나라 은나라(夏-殷시대)가 지속되다가 14대째 지도자인 한국인 주(紂)가 난폭하여 중국인인 주(周)의 서백창(西佰昌)에게 쫓겨나고 주(周)나라가 통치하였습니다. 그 후로 얼마가지 않아 또 여러 나라로 갈려 혼란이 거듭되다가, 마침내 중국 최초의 황제인 시황제(오른 쪽)가 나타나서 기원전 221년에 중국을 통일하고 진(秦)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메소포타미아(바빌로니아) 지역과 장사를 하여 수많은 돈을 번 장사꾼 여불위가 제국을 세우고자 하는 뜻을 가졌는데, 이를 알고 그의 아들 여정이 아버지를 제거하고 통일제국을 이룬 것이 시황제의 진나라입니다. 그래서 이 진(秦)나라는 서구사회에 중국이 알려진 최초의 나라가 되어서 지나(秦) - 차이나 가 된 것입니다.

장사꾼 여불위의 혈통인 진시황제 정(政)은 바벨론의 악한 문화를 받아들여서 그때까지 받들던 선한 천사의 상징 봉도등(鳳圖騰)을 포기하고 용을 황제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깃발도 용도등(龍圖騰)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때부터 하나님과의 결별을 선언했던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백성들과 학자들이 종교의 자유를 달라, 민주화를 하라 외치니까 큰 압제를 하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진시황은 산동(山東) 곡부(曲埠) 출신 공자(孔子)가 하늘의 도리를 가르치고자 지은 많은 책들을 모두 불사르고 가르치는 학자들을 생매장하여 죽인 분서갱유(焚書坑儒) 사건입니다.

왼쪽 그림은 공자의 집 벽 곧 노벽(魯壁)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아무리 공자의 제자를 생매장하고 그 책을 다 불태웠어도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의 집 벽안에 숨겨 놓은 책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공자의 집이 많이 허물어지면서 그 벽 속에서 공자의 책들이 발견되게 되었습니다.

옛날 책들은 오른 쪽 아래 그림과 같이 대나무 쪽에 기록해서 서로 연결하여 보관하였습니다. 이 책이 발견되면서 공자의 뜻이 잠시 빛났건만 그 당시 정권인 한나라의 어용 정치학자들이 임금에게 해로운 말은 빼고 필요한 말로 바꾸어서 원본은 숨기고 금문학파라고 해서 어용 유교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전 중국과 한국에까지 전파되어 이것이 진짜 공자의 가르침인줄 알고 잘 못 가르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금문학파의 조작 사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위 왼쪽은 공자의 집에 남아 있던 우물입니다.

이제 진시황은 아사달과의 사이에 만리장성(萬里長城, 아래 그림)을 쌓음으로서 동방족 사람들이 만리장성을 넘어오지 못하게 하여 종교의 자유운동을 완전히 잠재우므로써 중국은 하나님과 그리고 동방과 결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6. 소호 금천씨의 후손들

그러면 중국인을 돕고 또한 통치까지 했던 소호 금천 (金天)씨들과 그 후손들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진시황제의 압제와 만리장성의 건설로 인해 중국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동방족들은 차차 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산동성에 거하고 있던 금빛 하늘의 파수꾼들은 차츰 한반도의 남단으로 물러가서 AD42년 가야(伽倻)를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의 요직에 있었고, 많은 기술(技術)과 부(富)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한반도에 당당하게 들어온 것입니다. 한반도의 다른 지역들은 예부터 한국인들이 이미 살고 있었기 때문에 금천(金天)씨들은 한반도의 남쪽, 즉, 아직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에 들어와 가야를 건설하였습니다.

오른 쪽 그림은 가야인들의 무덤에서 발견된 철제(鐵製) 투구와 갑옷입니다. 가야가 건립되기 전만 해도 우리 한반도에서는 철기문명(鐵器文明)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가야가 들어옴으로써 우리나라에 철기문화가 시작합니다.

아래 왼쪽은 가야의 금관(金冠)입니다. 가운데 그림은 가야의 금동관(金銅冠)들이고요, 오른 쪽은 각종 금속으로 만든 장식품들입니다.

 

 

 

 


아래 왼쪽 그림은 가야사람들이 쓰던 술잔입니다. 이것은 놀랍게도 메소포타미아의 힛타이트 족속의 술잔(오른쪽 그림) 스타일과 매우 비슷합니다. 동물의 머리와 가슴이 받침이고 몸이 술잔입니다.

 


가야문화연구소의 김도윤 소장은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許黃玉) 이 들고 들어온 성 도마교회의 복음이 AD48년에 먼저 가야에 전래되어 가야와 신라가 기독교를 믿게 되었다는 많은 증거를 제시하였습니다. 아래 왼쪽 사진은 허(許) 황후(皇后)의 능입니다.
 


위 오른쪽 사진은 김수로왕 능으로, 왕릉정문에 떡 그릇과 물고기 두 마리 그림이 남아 있고, 가야라는 말이 인도 드라비다어로서는 물고기라는 뜻입니다. 여담으로 인도의 허황옥이 아들을 열을 낳았는데, 그 중에 마지막 두 왕자는 엄마의 성을 따서 허(許)씨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김해 김(金)씨와 김해 허(許)씨는 혼인을 안 합니다. 그들이 한 조상을 가졌기 때문이죠.

신라 김유신 장군의 비석에 의하면 그가 헌원의 후예이고 소호 금천(金天)씨의 자손인데 그는 가야 왕의 후손이므로 가야의 시조인 수로왕의 성도 그와 동성이다 라고 써 있다고 삼국사기 열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기독교의 영향이 컸던 초기의 신라에서 외래종교인 불교는 좀처럼 발을 붙이지 못하고 있었으나, 불승 이차돈의 설득에 넘어간 법흥왕이 AD 527년에 대신들의 반대를 꺾고 비로소 불교를 공인했습니다. 그 후 법흥왕은 AD532년에 기독교 국가였던 가야를 전복시켰고 그 후로는 불교가 한반도 전체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법흥왕은 어째서 불교를 신봉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본래 기독교적인 풍토에서는 고대로부터 왕권이 강하게 작용할 수 없었기에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종교를 바꾼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불교를 호국불교 왕권불교로 만든 것이지요. 왼쪽 그림은 화려한 신라의 금관입니다. 강력한 왕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한 편 고구려의 사정은 어떠했을까요? 고구려인들은 스스로를 '하백(河伯)'의 자손이라 했는데, 이는 순 고구려 말로 '해밝'의 자손, 곧 빛의 자손이라는 뜻입니다. 중국의 역사책인 삼국지 고구려편에 보면 고구려 사람들이 10월에는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성회를 열었는데 이를 동맹이라 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여사람들은 영고라고 하여 똑같은 일을 했으며, 동예 사람들은 무천이라 하여 똑같은 일을 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었고, 흰옷을 즐겨 입으며 술 마시고 노래하기를 좋아했다고 중국의 역사서는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을 통해 북쪽으로 들어온 불교가 고구려의 승인을 받은 것은 AD372년 이었습니다. 유일신인 하나님을 섬겼던 고구려가 불교를 공인하는 데는 오랜 세월이 걸렸던 것입니다. 불교가 언제 시작되었습니까? 기원전 500년경에 시작되었거든요. 그러므로 고구려에 불교가 들어온 것은 불교가 시작된 지 900년이나 지나서이고, 신라에는 불교가 시작되고 1100년이나 지나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고구려의 뒤를 이은 발해가 멸망하게 된 원인이 규원사화 단군기에 잘 나와 있습니다. 발해가 나라이름을 진(震)이라 하고 건원을 천통(天統)이라 하여 항상 공경하여 하늘에 제사지냈을 때는 번성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자손들이 교만해져서 차차 이것을 폐지하고, 유교와 불교를 함께 일삼아 드디어는 나라가 시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삼신(三神)할머니의 비밀을 밝히겠습니다. 이것도 역시 규원사화 단군기에 나와 있는데요.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이 사라지고 이제는 삼신(三神)과 제석(帝釋)을 숭상하는 풍습이 성행하였다. 매년 10월이 되면 햇곡식으로 떡을 쪄서 귀신에게 드리고 복 받기를 빌었다. 이것은 삼위일체(三位一體)의 하나님을 섬기던 선조들의 신앙에서 온 것인데, 변질되어서 이제 하나님이 아닌 귀신을 섬기고 부귀와 장수를 무당과 박수에게 부탁하니 이것은 옛 풍속의 찌꺼기로서 커다란 폐단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래 삼신(三神) 할아버지였다가 약한 여자로 바꾸어 삼신(三神) 할머니로 바꾸고, 제석(帝釋)은, 원래 불교에는 신이 없지만 사람들의 신앙을 완전히 떨치지 못해 제석(帝釋)이라는 것을 신으로 제공한 것입니다.

 

 

7. 고대 한국인이 고대 아메리카 인디언과 고대 일본에 끼친 영향

지금부터 고대 한국인이 고대 아메리카 인디언과 고대 일본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겠습니다.

1. 고대 한국인과 고대 아메리카 인디언과의 관계

고대 아메리카 인디언은, 동방족들의 일부가 알래스카와 베링해협을 거쳐 북미대륙과 멕시코와 남미 대륙까지 뻗어 가게 되었으며, 이러한 사실은 이들의 언어와 풍습에서 증명되고 있고, 지질학적으로도 베링해협이 얼어붙어 있었기 때문에, 과거에는 걸어서 이 곳을 건널 수 있었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어 있습니다.(왼쪽 그림)

그리고 흑요석의 분포도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오른쪽).
또한, 인디언의 말 중에 한국인의 언어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도 있습니다.

아래 그림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상징인 버팔로 들소가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는 모습입니다. 원래 인디언은 배고플 때만 버팔로를 잡았지 재미로 잡은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백인들이 인디언들을 멸족시키기 위해서 버팔로를 멸종시켰죠.
먹지도 않고 가죽도 쓰지 않으면서 오로지 인디언을 굶겨 죽이기 위해서 말이죠. 그래서 멸종될뻔 했던 버팔로가 현대과학적 노력으로 지금은 다시 복구되기 시작했습니다.

인디언들이 썼던 말들 중에 한국인과 유사한 말이 많습니다. 아리조나 주에 살던 인디언들 중에서 아파치족들이 있었는데, '아파치'라는 말은 인디언 말로서, 영어로 번역하면 'Father', 즉, 우리말로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미국의 가장 아름다운 국립공원 '요새미티' 공원은 인디언 말로 '웅주마티'에서 왔습니다. 이것을 영어로 번역하면 'there are many bears', 즉, '여기는 곰이 많지' 이런 뜻입니다. 이것도 우리말과 매우 유사합니다. 곰 수가 많다는 뜻에서 '웅수 많지' 라고 발음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 동부지방 '커네티컷'은 인디언말로 '큰네터갓' 라고 하여 강가의 넓은 땅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말로 하면 '큰 내터 가' 가 되지요. 오른 쪽 그림은 커네티컷 지방의 큰 내터 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디언 중에 '이시이' 족이라고 있습니다. 이 이시이 족이 쓰고 있는 깃발을 보면 갑골문자로 나무 목 자와 아들 자 자를 기록해 두었습니다. 나무 목(木) 자 밑에 아들 자(子) 자가 있으면 한자 말로 무엇입니까? '오얏 이(李)' 자 이씨(李氏) 지요? '이씨'니까 '이시이'가 된 것입니다.

왼쪽 그림은 캐나다의 도시 토론토입니다. '토론토'라는 말도 인디언 말인데 그것을 영어로 번역하면 'meeting place' 라는 뜻입니다. 인디언 추장들이 모여서 토론하던 터, 즉, '토론 터'인 것입니다.

그리고 북미 인디언들이 철인5종 경기를 할 때 동네 원로들이 모여서 응원을 합니다. 이들이 응원가를 20번이나 30번 할 때까지 젊은이들이 돌도 지고 가고 통나무도 지고 가서 산 위에까지 다녀오는 것입니다. 그 노래가 너무나 놀랍습니다. "에이 챵해이라 코시앵헤 창헤이라" 이렇게 부릅니다.

그 동안에 청년들이 산꼭대기까지 다녀오면은 철인5종 경기 메달을 따는 것입니다. 이 노래가사를 자세히 들어보면 "에이 장해라! 고생해, 장해라!"라고 부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말 그대로의 응원가인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말들이 북미대륙의 곳곳에 남아 있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언어학적인 확실한 증거인 것입니다.

또한 인디언들은 머리를 땋고요(아래 왼쪽), 짚신 신고 삽니다(아래 가운데). 새와 깃털을 숭상하고요, 집을 비울 때는 정랑을 걸며, 인디언 신생아의 엉덩이에는 몽고반점이 있습니다. 미국이나 멕시코의 인디언 박물관에 가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우리 한국의 민속박물관과 꼭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가장 정확한 증거는 인디언과 한국인의 혈연관계에 나타납니다. HLA 에 의한 혈연관계를 조사해 보면 분명한 증거가 나타납니다(위 오른 쪽). 인간 조직적합성항원 연구의 세계적 중심기관인 미국 UCLA의 HLA센터 교수들이 연구해 본 결과 한국인과 인디언들이 100퍼센트 똑같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HLA A2 나 B62, C3 와 같은 것은 한국인 외에는 세계 어디에도 안 나오는데 인디언들에게 나옵니다.

 

2. 고대 한국인과 고대 일본과의 관계

고대 일본의 천황(天皇)들은 우리 민족하고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 많은 증거로 밝혀져 있습니다.

첫째로, 전에 죽은 2차 세계대전의 원흉 '히로히또' 천황(天皇)이 천황 집안의 오래 전 생활을 그린 그림책을 보여 주었는데 거기에 놀라운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하지 않고 천황족(天皇族)들만 하는 특수한 문화가 있는데요, 천황족(天皇族)들만 먹는 특수한 떡을 만드는 방법과 떡을 그려 놓고, 그 옆에 가다가나(일본어)로 '시루또꾸'라고 써 놓았습니다. 그 떡은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는 '시루떡'이었습니다.

그리고 일본 여자들은 과거에 원시적이어서 팬티를 안 입고 살았는데, 천황족(天皇族)들만 유일하게 팬티를 입고 살았습니다. 그 팬티를 그려놓고 가다가나로 '고쟁이'라고 써 놓았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입던 '고쟁이'입니다.
그래서 천황족들은 우리하고 혈연관계가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천황이 히로히또의 아들 '아끼히또'이지요? 이 사람이 얼마전 신문에 고대 일본천황은 한국인과 혈연관계가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자신의 몇 대 할머니는 백제 왕의 누구였고... 하는 것을 말했습니다. 위 왼쪽의 그림은 일본 천황족과 관련이 깊은 백제 무령왕의 무덤입니다. 위 오른쪽은 '칠지도(七支刀)' 인데요, 그 안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높으신 백제왕이 그 밑에 급인 일본 왕에게 주노라.

왼쪽 그림은 일본의 기토라 고분의 무덤 천정에 그려진 천체도인데요, 일본 어디에도 이런 모습을 관찰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천체도는 바로 한국땅 평양의 하늘에서 보이는 천체도였던 것입니다.

아마도 고구려 평양출신의 한국인이 일본에 와서 천황족으로 살다가 죽을 때가 되자 꿈에도 잊지 못할 자신의 조국 평양의 하늘을 사모하여 무덤에서라도 내 고향의 하늘을 보겠다고 유언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말 속에도 우리말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말 '나라'를 일본에서도 '나라' 라고 하지요? 우리말의 '왔소'가 일본에서 '왔쇼이', 우리말의 '도착'이 일본에서 '도차꾸' 가 되지요. 일본사람들이 크게 낭패를 만났을 때 일본말로 '백제가 망했는데... (더 이상 무슨 희망이 있느냐)'라는 표현을 씁니다. 백제가 망한 지 천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고대 일본이 백제와 얼마나 긴밀한 관계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대 일본의 글자 '가나'는 알고 보니 신라 사람들이 만들어 준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지난 2002년 4월에 일본의 NHK에서 방영되었습니다(아래 그림은 불경에 각필로 토를 단 것입니다).

 


일본의 신사에서 기도드릴 때 중년의 여인이여 어서 오셔서 우리를 어려움에서 구해 주오 라는 뜻의 기도문을 외웁니다. 이것은 일본 황실제사에서도 그대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일본 발음 그대로 읽어보면: "아! 아지매! 어서 오게, 오게!"
경상도 말 그대로입니다. 번역할 필요가 없습니다.

고대 한국인들 특히 경상도 아주머니들이 일본에 가서 글도 가르치고 문화도 가르치고 문명도 가르쳤기 때문에 그 도움을 입었던 일본의 천황족과 원로들이 아쉬울 때마다 경상도 아주머니(아지매)를 그리워한 것입니다. 일본 사람도 HLA 연구결과가 한국인과 똑같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8. 현대 한민족의 사명과 기독교

가야를 통해 전해진 기독교는 불교의 그늘에 묻혀 버리고 그 후 우리민족은 천 오백 년 간 하나님을 떠나 살게 되었고 수많은 내우외환을 겪으며 한 많은 세월을 보내 왔습니다.

그러나 한민족의 탄식이 하늘에까지 닿게 되어 야벳 족속의 후예인 서양 여러 나라를 통해서 의료선교를 중심으로 다시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 후 기독교는 평양과 대구를 중심으로 급속히 성장하여 그 당시 기독교인이 2퍼센트 밖에 되지 않았건만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사람의 50퍼센트가 기독교인이었고 전국에 독립운동을 감행한 모든 지도자는 기독교인이었습니다. 2퍼센트의 사람이 민족을 이끌어간 것입니다.

아! 아라랏에서 천지까지!

 


이제 한민족은 일어나 빛을 발할 때가 온 것입니다. 한민족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바로 서서 이 나라와 이 세계 모든 민족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장자권자의 사명을 과감히 수행하여야 합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인도의 시성 타고르의 한국찬가를 읽음으로써 '한국인의 기원'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동방의 등불)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였던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마음에는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지식은 자유스럽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는 곳,

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하여 팔을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림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 벌판에 길 잃지 않는 곳,

무한히 펴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국으로

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 Written by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미생물학 교실 서민호 교수

1955년생

1980년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1985년 경북대학교 대학원에서 의학박사학위 취득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전임강사 역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쎈디에고) 분자유전학쎈타에서 종양바이러스와 항암유전자 연구

한국창조과학회 대구경북지부장 역임

現: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및 주임교수  

한국창조과학회 이사 및 학술위원  

미국 미생물학회 정회원  

미국 뉴욕 과학아카데미 정회원

minho@dsm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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