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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기원-3 (김성일 장로의 뿌리 찾기)

 

1. 東洋思想에 나타난 성경이야기

a) 셈과 제사권

b) 셈과 수메르

c) 샹띠에게 제사 드린 中國皇帝

d) 샹띠와 엘 샤다이

 

 

2. 한국 說話에 나타난 聖經이야기

 

a) 조선의 천자계(天子系)설화

b) 환국(桓國)과 천(天)

c) 천주(天主)와 태양

d)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하나님

e) 동방의 해뜨는 나라

f) 마지막 구원의 사명


3. 아리랑은 아라랏에서 시작된 나그네의 한을 담고 있다

a) 한민족의 존재근거

b) 이별의 슬픔을 노래

c) 이별이 시작된 곳

d) 방랑을 의미하는 아라

 

 

4. 무궁화는 구원역사의 향기를 뿜어낸다

 

a) 일신지미(日新之美)

b) 새 아침 이라는 꽃

c) 샤론의 장미

d) 구원의 꽃

e) 무궁화의 이름말

 

 

5. 봉황은 하나님을 섬기는 그룹의 흔적이다

 

a) 하나님의 협조자로서의 새

b) 새의 설화를 가진 민족

c) 성천자와 평화를 상징하는 새

d) 무궁화를 감싸고 있는 두 봉황

 

 

1. 東洋思想에 나타난 성경이야기

노아홍수 후 셈과 함과 야벳의 자손들은 어디에 정착했을까? 바벨탑 사건 후 언어혼란으로 흩어진 그 후손들은 어디에 뿌리를 내렸을까? 그리고 우리는 어떤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 흔적은 무엇일까? 한국의 흔적을 알아보기 전에 먼저 중국의 문헌과 성경 비교를 통해 그 뿌리가 노아의 자손이라는 가능성을 제시해본다.

 

기나 긴 4천년의 중국역사에는 상제(上帝)에게 드려온 제사사상(국경제사)의 뿌리가 있다. 그런데 이 제사문의 내용은 성경 창세기 사상을 담고 있다. 고대 상형문자의 기록은 인류의 기원이 상제 하나님에 의해 시작되었고, 노아홍수와 바벨탑사건 후의 언어혼란으로 인한 민족이동을 통해 한 후손들이 조상들의 순전한 믿음을 이어받아 그들의 문자제정과 제사사상에 기초로 삼고 반영해 두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다.

 

 

a) 셈과 제사권

 

노아 홍수 이후 셈과 함과 야벳은 각자의 터전을 삼았다. 의 후손은 산 아래로 내려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 있는 메소포타미아(강들 사이의 땅이라는 뜻)평원에 정착했다. 야벳의 자손들은 서쪽의 타우르스 산맥을 지나서 바다를 끼고 좀더 전진하다가 결국 바닷가의 땅에 자리를 정하였다(창10:5). 모든 형제들이 다 새로운 땅을 찾아서 떠날 때에 그대로 산 중턱의 불편한 땅에 눌러 앉은 것은 바로 노아의 장자, 의 자손들이었다. 아마도 종가(宗家)인 장자의 자손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오자마자 하나님을 위해 단을 쌓고 번제를 드린 것은 홍수 이전부터 셋의 가계(家系)를 통해서 내려온 전통이었고, 그것은 그대로 장자인 셈의 가문에 계승되어 장자권제사권을 맡게 되었을 것이다. 모든 제사를 주관해야 했던 셈의 자손들은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은 높은 곳에 계신다고 믿어서 산꼭대기에서 제사를 드렸다. 따라서 산 아래로 멀리 내려가면 제사 때마다 다시 올라가기가 더욱 힘들었기에 산 중턱에 주저앉았을지도 모른다.

 

 

b) 셈과 수메르

 

셈의 장자인 '엘람'의 이름은 '높은 곳'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사내'란 말은 '사나이'의 준말인데 곧 '산에서 내려온 사람'이라는 뜻이다. 역사상 모든 셈족의 조상이 되는 종족은 산지에서 내려와 우르 지방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수메르 사람으로 이야기하는데 이 '수메르'라는 말은 아마도 ''이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즉 셈족은 모두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일 것이다.

 

''은 '이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셈'이 '이름'을 뜻한다면 곧 셈의 언어, 즉 우리가 말하는 수메르어는 아담이 짐승들과 새들의 '이름'을 지을 때부터 있었던 원초적 언어였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수메르어를 들여다보면 하나님께서 인류의 역사를 혼잡케 하셨던 바벨탑 사건(창11:9) 이전의 언어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상하게도 세계 모든 종족의 언어학자들이 수메르어를 자기네 언어의 원형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시카고 대학의 강신택 박사는 우선 수메르어에서 수없이 나타나는 우리말의 원형을 그 예로 든다.

 

수메르의 쐐기문자로 기록된 어휘의 발음을 편의상 알파벳으로 표현해보면 gir는 우리말의 ''이며, 'bad'는 ''을 의미하고, 'nim'은 윗분에게 붙이는 경칭이니 우리말의 ''과 같은 것이다. '하늘'은 가장 높다는 뜻의 'an-ur'에서 온 것이며 아버지를 부를 때 'abba'라 하고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서 말할 때에는 'abi'로 낮추는데 이것은 같은 셈계인 히브리어와도 공통이다.

 

수메르어가 아담의 때로부터 전해온 바벨탑 이전의 언어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문자의 역사도 역시 수메르에서 시작되고 있다. 지금까지 인류가 찾아낸 최고(最古)의 기호문자, 즉 기호로 발음과 뜻을 나타낸 문자는 바로 수메르의 '쐐기문자' 뿐인 것이다.

 

수메르의 쐐기문자 중에 네 개의 쐐기를 포개놓은 것 같은 쌀 미(米)자 모양의 문자가 있다. 이것은 'an'이라고 읽는데 즉 '하늘'을 의미하는 글자이다. 그러나 이 글자가 신의 이름, 즉 '하늘의 신'을 의미할 때는 'Anu'라고 읽는다. 또 수메르어에서는 윗 분을 높여서 부를 때 우리 한국에서 그렇게 하듯 'nim'이란 존칭을 붙이는데 'Anu'에다 'nim'을 붙이면 우연일 수도 있겠으나, 기이하게도 'Anu-nim', 즉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수메르나 이집트에 살던 민족들이 나름대로의 독특한 상형문자를 사용했던 비슷한 시기에 중국의 고대문명도 상형문자로서 한자를 발명하였다. 그림문자(상형문자)는 세계에서 쓰여진 초기의 문자형태이다. 중국에서의 한자는 상형문자를 둘 이상 조합시켜 뜻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해서 표의문자(의미를 나타내는 문자)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런데 고대한자를 히브리 민족이 쓴 성경내용과 비교해 보면 실로 놀랍기 그지없다. 내용에 있어 중국과 히브리의 고대문명 사이에 나타나는 역사적 설화가 서로 일치하고 있다. 샹띠를 경배하는 국경제사의 기도내용을 성경 창세기의 구절을 들어 비교해보면 지극히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c) 샹띠에게 제사 드린 中國皇帝

 

고대 중국의 왕들은 지난 과거 4천여 년 동안에 걸쳐, 해마다 국경지역을 방문하여, 그 곳의 옥외제단에서 하늘의 통치자인 샹띠에게 흠없는 어린 수소로 제사를 드려왔다. 이 국경제사는 중국의 역대왕조에 있어서 하나의 통치이념 자체였으며, 통치자 자신이 이 의식을 관장했다. 그러나 청나라의 왕군통치가 종식되던 1911년이 축제의식은 그 막을 내렸다.

 

이 대제사 의식에 성현 공자(기원전 551-479)도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데 공자는 중국을 효과적으로 다스리는데 있어서 이 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공자 자신도 샹띠에게 드리는 이 제사의식의 바른 의미를 잘 알지 못했고 그것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하늘과 땅이 드리는 제사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공자가 쓴 서경(西經)에 순황제(기원전 2230년경)가 <샹띠에게 제사를 드렸다>고 하는 기록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중국의 제사의식에서 드려지는 송축문을 읽어보면 중국인들이 어떤 마음으로 샹띠에게 제사를 드렸는지 짐작이 간다. 황제는 황궁우(皇穹宇)에 이르러서는 명상을 시작하고, 옷을 차려입은 가무들은 악단을 따라 주문을 읊기 시작한다.

 

역사하시는 조물주시여, 당신을 경배하옵니다. 당신께서 거하시는 궁창은 어찌 그리 고상하온지요. 당신을 경배하여 이제사를 드리옵니다... 미미하오나 내가 궁중의 일을 행하며 모든 규례와 율례를 지켜 행하겠사옵니다. 이 낮은 땅에서 당신이 거하시는 천국을 향해 우러러 보옵나니 이 제단으로 임하시옵소서... 오 주여, 이 제물을 받으시옵고 우리로 당신의 영원하신 선하심을 경배하게 하옵소서.”(cf : 왕상8 :27-30)

 

기원을 드리고 나서 황제는 추수 감사를 올리고 수소의 번제로 마지막 송축을 올린다.

 

저희가 거룩한 당신의 거룩하신 이름의 보석에 기록하고 경배하였사옵니다. 이제 그것을 당신 앞에서 불에 던지었사옵니다. 귀한 제물로서 비단과 고기를 드리고 기도와 함께 그것들을 불태웠나니 불길을 따라 드높이 올리워질 것이옵니다.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당신을 우러러 봅니다. 이 땅의 모든 인생들과 모든 만물이 그 크신 이름을 기뻐하옵니다.”

 

북경에 있는 이 천단(天壇)은 지금 관광객들의 명소가 되어있다.

 

 

d) 샹띠와 엘 샤다이

 

지극히 오래 전 태초에 공허하고 큰 혼돈이 있었사옵니다. 다섯 행성은 아직 운행되지 않았었고 태양도 달도 빛을 발하지 않았었습니다. 거룩하신 신황(新皇)께서 이곳에 모든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주께서 모든 만물을 만드셨사옵니다. 그리고 사람을 지으셨사옵니다. 당신의 능력으로 모든 만물이 지음을 받았사옵니다.”(cf : 창1:1-2, 9-10, 16, 27-28)

 

본문은 중국의 '대명회전'(大明會典)이라는 책의 일부분이다. 고대 중국의 한자기록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명칭은 '하늘의(上) 황제(帝)'란 뜻의 샹띠(上帝)라고 불렀다 한다. 국경제사문의 내용을 읽어보면 피조물을 향한 샹띠의 관심과 사랑하시는 마음을 찾아볼 수 있다.

 

모든 생물들이 당신의 뜻으로 말미암았사옵니다. 샹띠시여, 인간도 만물도 모두가 당신의 지혜로 말미암았습니다.... 오 주시여, 당신만이 이 모든 만물의 참 어버이가 되십니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다(사64 :8)”

 

당신의 선하심을 측량할 길이 없습니다. 당신은 토기장이와 같이 모든 생물들을 빚으셨사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2 :7)”

 

주 샹띠가 말씀하시니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과 만물들을 두시고 궁창을 펼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기운으로 이루었도다...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시33 :6-9)”

 

또한 공자는 <중용>에서 '하늘과 땅에 드리는 제사 의식들을 통해 샹띠를 섬기느니라'고 하고 있다. 고대 중국에서 드려진 국경제사는 두 가지가 있다. 여름철 하지 때는 북쪽 국경에서 땅에 드리는 제사가, 겨울철 동지가 되면 남쪽 국경에서 하늘에 드리는 제사가 중심이 되었다. 기원전 2205년 이전인 중국의 <전설시대>, 이른바 황제통치시대 이전의 중국에서는 동쪽 산뚱지방의 태산에서 샹띠에게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기원전 6세기이후 공자 사상과 도교가 등장하였고, 기원전 1세기에 인도로부터 불교가 전래되면서 샹띠에 대한 신앙이 전체적으로 잊혀지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님에 관한 자료들이 모두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새로이 창조된 지구상에 첫 인류가 시작되는 아름다운 역사들이 한자 속에 고스란히 보전되어 왔던 것이다.

 

이상에서 바벨탑 이후 언어혼란으로 인해 흩어졌던 노아 자손의 그 흔적들을 중국의 '국경제사문'을 통해서 살펴보았다. 그 내용이 성경 창세기와 거의 동일하다는 것을 통해서 중국인들이 섬기던 샹띠는 바로 한 분이신 성경의 하나님과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실제로 하나님을 나타내는 히브리식 이름 중 하나는 <엘 샤다이>인데 음성학적으로 볼 때, 샹띠와 매우 유사하며, 중국 관동지역에서는 샹띠가 <샹다이>로 발음되고 있어 흡사 일치성을 보여준다. 그래서 현대의 관동어는 고대 중국어의 발음에 더 가깝다고 생각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제사권을 가진 노아의 장자인 셈의 후손은 아마도 중국을 걸쳐 이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정착을 했다는 가능성을 충분히 제시해주는 것이 아닐까?

 

 

 

 

2. 한국 說話에 나타난 聖經이야기

 

우리 한 민족의 뿌리는 어디에서 시작되고 있는가? 노아홍수와 바벨탑 사건 이후 인류의 대이동은 시작되었다. 한민족의 뿌리도 그 흩어짐 속에서 중원과 산동반도와 북만주 일대와 한반도 유역의 방대한 지역에 정착하게 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우리나라의 곳곳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들은 그 뿌리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보여주고 있다. 이중 '단군' 및 '동명'에 관한 내용을 통해 그들의 神에 대한 개념을 살펴보고 성경적으로 어떻게 상통하는지 알아본다.

 

 

a) 조선의 천자계(天子系) 설화

 

조선설화의 가장 큰 줄기는 '하늘의 아드님이 인간에 내려와 나라를 다스린다'는 '천자계'(天子系)설화이다. 이 설화가 조선설화의 70-80%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단군신화인데 이는 단군으로부터 시작하는 조선의 최고(最古)또 최저(最著 :가장 두드러짐)한 신화형태라 할 수 있다.

 

<삼국유사>에 인용한 단군고기(檀君古記)에 의하면 환(桓)이라는 신계(神界:천국)가 있었고, 그 주신(主神, 天帝)의 아드님 한 분인 환웅(桓雄)이 인간세계 중 훌륭한 산악의 꼭대기, 즉 태백산(백두산의 옛 이름으로 '밝은 곳', '신성한 산'이라는 뜻)에 내려와 신국(神國)을 만든다는 얘기로 시작된다.

 

<삼국사기>에 의거한 이규보의 ‘동명왕 ’의 건국설화도 태자인 해모수가 내려오는 광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다섯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종자 백여인은 흰고니(白鵠)를 탔는데, 채색구름이 위에 뜨고 음악 소리가 그중에 진동하고, 웅심산(雄心山, 백두산의 다른 이름)이란 산 위에 오랫동안 머뭇거리다가 비로소 세상으로 내려오니, 머리에는 까마귀 깃으로 만든 갓을 쓰고 허리에는 놀라운 광채 나는 칼을 차셨다 ”

 

 

b) 환국(桓國)과 천(天)

 

여기서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것은 桓國의 개념이다. 고대의 동방인들은 인간세계의 위에 광명의 신령세계가 있어 선신(善神)이 거하는 곳()이라고 했다. 이것은 요즘말로 광명세계를 의미한다. 이 '<환> 나라'를 한문으로 쓰면 (), 즉 '하늘'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단군신화의 '환국(桓國)'은 '환한나라', '밝은나라', 곧 하늘나라, 천국(天國), 신국(神國), 영계(靈界)이다. 단군신화에서는 <동방>의 옛말을 음으로 쓰고 동명신화에서는 그것을 한문으로 번역해 사용한 것으로, 실체는 동일한 천상세계를 가리킨다.

 

*()은 우리말의 '밝다', '환하다'라는 말에서 유래하였으며 ''은 환하다'할 때의 '환'을 단지 漢字로 표기한 것뿐이고, '韓國'이라 할 때의 ''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면 '환국'이 후에 '한국'이 된 것으로 유추해 볼 수도 있다.

 

 

c) 천주(天主)와 태양

 

이 천상의 광명계(光明界)는 많은 신령이 거주하는데, 이들의 가장 큰 어른으로 세계를 주재(主宰)하시는 최상신(最上神)은 광명의 근본인 태양이라 했다. 그들은 태양을 '하느님' 곧 천주(天主)로 생각했다. 동명왕 건국설화에도 천제자(天帝子)가 세상에 하강하는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면 아침에 해가 떠서 하늘에는 놀이 뜨고 눈부신 광선이 높은 산으로부터 시작하여 세상을 비추는 광경을 그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구약성경 시84:11에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고 말씀하는 것과 더불어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을 광명으로 비유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윗의 마지막 예언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본질을 해로 설명하고 있다(삼하23:4). 그 나라에서는 빛되신 하나님이 비춰주심으로 밤이 없고 등불이나 햇빛이 필요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계22:5, 사60:19).

 

결국 천제(天帝)가 곧 태양임을 명백히 알 수 있다. 또한 백곡(白鵠)을 탄 종자해 뜰 때의 구름이 뭉게뭉게 뜬다는 것을 형용한 것이요, 조우(鳥羽,까마귀깃)의 관이니 용광(龍光)의 칼이니 한 것은 다 일륜(日輪:해)일광에 대한 표현인 것이다. 이와 비슷한 내용의 성경말씀을 여러 곳에서 기록하고 있는데, 먼저 어두운 심령 속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요한복음 1장에서 기록하고 있다(요1:4-5, 9).

 

계시록에는 다시 오실 예수님, 즉 재림하시는 인자의 모습을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표현하고 있다(계1:7). 그리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 같다'고 말씀한다(계1:16). 구약 시104:2-3의 말씀은 지금까지의 설명을 더욱 선명하게 해준다. "주께서 옷을 입음 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 같이 치시며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d)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하나님

 

일반적으로 동양을 의미하는 Orient는 '해가 뜬다' 등의 좋은 의미로 쓰인다. 반면에 서양을 의미하는 Occident는 '해가 진다', '죽다'는 의미를 포함하는 죽음과 파멸을 의미한다. 고대 점술가들도 동양을 행운의 상징으로 여겼다. 이는 일출이 생명과 만물의 시작을 뜻하기 때문이다.

 

당시 동방인들에게 있어 '하나님'은 눈으로 보는 바 몸으로 겪는 바 무한한 광명과 온열(溫熱)과 위력으로써 온 세계를 뒤덮고 만물에 생명을 주시는 구체적 존재요, 경험상 사실인 저 태양을 천지의 주재자로 인정했다. 무서운 위엄과 고마운 사랑으로 항상 인간세상(下界)을 내려다 보시다가, 인간에 악이 쌓이고 화가 득실거림을 보시면, 인간을 구제할 양으로 그 아들 중의 한 분을 내려 보내셔서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게 하시는 줄로 믿었던 것이다. 이는 독생하신 예수님이 이 땅에 구원자로서 오심과도 동일한 내용이라 할 수 있다(요3:16).

 

 

e) 동방의 해뜨는 나라

 

수십 년 전 인도의 유명한 시성 타골은 한국 민족의 앞날을 '동방의 빛'이라는 시로 표현했다. 그렇다면 동방, 즉 '동양의 해뜨는 나라'로 여겨진 '조선(朝鮮)'은 성경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성경은 동방에서 일어나는 역사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먼저, 동방에서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적 소유와 보증을 나타내는 인치는 역사(계7:2-3)가 일어난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넘쳐 나와 갈급한 심령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는 말씀 운동의 역사가 일어난다(겔47:1-2, 6-12, 슥14:8, 계22:1-2). 또한 이 동방에서 구원자가 일어날 것이며(사41:2, 46:11),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역사가 일어남(사24:15)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이 구절들에 나타난 동방의 의미는 종말론적인 비유와 상징으로 '태양되신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 말세에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을 의미한다'고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f) 마지막 구원의 사명

 

한(韓) 민족의 역사적인 뿌리를 단군신화와 동명왕 설화의 일부 내용을 통해 하나님을 태양으로 비유하고 있음을 살펴 보았고, 그 내용을 성경과 비교해 보았다. 이를 통해 한 민족의 뿌리를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아보고자 한 것이다.

 

어떤 이는 조선의 영어 표기인 'Chosun'을 chosen("choose:선택하다"의 과거분사형)에서 변형된 것으로 보아 "선택받은 민족"(Chosen people)을 암시하고 있다고 한다. 근거 있는 말이 아닐 수도 있지만, 성경의 역사를 통해서 볼 때, 한국은 마지막 구원의 역사를 이뤄낼 민족임에는 틀림없다. 동쪽 끝에 위치한 한국이 마지막 '생명의 말씀'인 '구원의 빛'을 세계 땅 끝까지 비춰야 할 사명이 있음을 그 누가 부인할 것인가?

 

 

 

 

3. 아리랑은 아라랏에서 시작된 나그네의 한을 담고 있다

 

한국민족의 정서를 대표하는 것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恨)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을 담고 있는 노래가 바로 '아리랑'이다. 전국에 걸쳐 186종이나 되는 이 민요는 우리 민족의 감춰진 '슬픔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이 아리랑은 아라랏산에서 시작된 '이별의 슬픔'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아리랑과 아라랏의 어원을 통해 우리 민족의 '나그네의 삶'을 알아본다.

 

 

a) 한민족의 존재 근거

 

그 시작점이 언제부터인지 어딘지도 모르는 '아리랑'. 그러나 한민족이 있는 곳엔 언제든지 아리랑이 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아리랑이 저 깊은 곳에 언제나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왜 아리랑이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민족의 노래가 되었는가? 김열규씨는 '아리랑 역사여, 겨레여, 소리여'라는 책에서 아리랑 민요를 '한민족의 뿌리를 캐고 한민족의 존재근거'로 제시한 바 있다. 그렇다면 한민족의 '푸념'과 '넋두리' 곧 '맺힘'과 '풀림'의 소리를 간직한 채 지금까지 이어온 이 민요는 무엇을 말하는가?

 

 

b) 이별의 슬픔을 노래

 

한 민족은 늘 '이별'을 가슴에 묻은 채 살아오곤 했다. 아리랑은 이를 노래했다고 할 수 있다. 김연갑씨는 '아리랑'이라는 저서에서 그 어원의 여러 가지 학설을 말하고 있다. 그 중 '처와 이별을 슬퍼하는 뜻'에서 유래한 아리랑(我離랑)설과 '가정을 떠나는 어려움을 읊은 것'에서 유래했다는 아난리(我難離)설 등이 있다. 그리고 송인성의 '갓 결혼한 신부가 남편이 전쟁터에 나가면서 홀로 떨어진 슬픈 운명을 노래한 것'이라는 '아리'(我離)설이 있다.

 

남사고는 그의 저서 격암유록에서 '이상향으로 가는 마지막 고개'로서의 '아리령'(我離嶺)설을 기록하고 있다. 브리태니커 세계대백과사전은 '나의 사랑하는 님을 떠난다'는 의미로 아리랑을 말한다. 이러한 내용들을 정리해 볼 때, 아리랑은 고개를 넘고 넘어 어쩔 수 없이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별의 슬픔을 노래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이별의 시점을 창세기에 언급된 아라랏산에서 찾아볼 수 있다.

 

 

c) 이별이 시작된 곳

 

5,165 미터의 아라랏산은 홍수 후 노아의 방주가 처음에 머물렀던 곳이다. 아라랏산이 언급된 곳은 창세기 8장 4절이다. '7월 곧 그 달 17일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다'는 기록이다. 지금의 터어키의 동북방에 있는 한 지역으로 추측되는 곳이다. 그 외에 성경에 기록된 아라랏은 앗수르왕 산헤립을 두 아들인 아드람멜렉과 사례셀이 칼로 쳐 죽이고 도망한 곳으로 나와 있다(왕하 19:37, 사 37:38, 렘 51:27). 이곳은 서아시아의 아라크세스강 중류의 분지에 전개되는 아르메니아의 한지방으로 알려진 곳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라랏산에서부터 인류의 또 다른 시작이 있었다는 것이다. 곧 인류의 큰 분단이 이루어졌던 곳이 바로 아라랏산이다. 노아의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손들이 이 아라랏의 고개를 넘고 넘어 전세계에 퍼져 나간 것이다. 이 과정에는 창세기 11장에 언급된 '바벨탑의 사건'이 있었다. 이로 인해 여호와께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던 것이 작별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창11:9).

 

어쨌든 아리랑은 인류의 고향인 이 아라랏 산을 중심으로 인류 최대의 작별을 노래한 것이다. 셈의 후손인 한민족은 바로 이런 이별의 한을 품고서 계속 동방으로 이동해 온 것이다(창 11:2). 다시 말해 한민족은 한반도에 정착하기까지 이별의 한을 품은 나그네의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d) 방랑을 의미하는 아라

 

아리랑과 아라랏의 관계는 그 의미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성경에서 언급된 '아라랏'의 의미가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라랏의 어근인 히브리어 '아라'는 '가다', '여행하다', '걷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명사형인 '오래하'는 '여행자'(삿19:17, 삼하12:4, 렘14:8), '나그네'(렘9:2)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배회', '유랑'의 뜻인 '아라'라는 이름을 가진 아셀자손 예델의 아들과 울라의 아들도 기록하고 있다(대상7:38-39, 스2:5, 느7:10).

 

아라랏은 방황하는'나그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라랏을 중심으로 나그네, 곧 작별과 이별의 슬픔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아리랑은 세상에서의 성도의 삶이 나그네의 삶이라는 성경의 진리를 가르쳐주는 노래이기도 하다.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2권)라는 책에서 김성일 장로가 인용했듯이, 나그네의 삶이 매우 '아리고 쓰리다'는 노래가 바로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일 것이다. 언젠가는 본향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나그네의 삶이 바로 아리랑에 담겨져 있는 것이다(히11:8-11).

 
 

아리랑

아리랑(我離랑)설, 아리(我離)설

아난리(我難離)설 : 사랑하는 처 또는 갓 결혼한 신부와의 어려운 이별의 슬픔을 노래한 것

아리령(嶺)설 : 이상향으로 가는 마지막 고개

아라랏

동사형 '아라' : 가다, 여행하다, 걷다

명사형 '오래하' : 여행자(삿19:17, 삼하12:4, 렘14:8), 나그네(렘9:2)

'아라'(배회, 유랑의 뜻)라는 이름의 사람 : 아셀자손(대상7:38-39, 스2:5, 느7:10).

 

 

 

 

4. 무궁화는 구원역사의 향기를 뿜어낸다

 

한국이 원산지로 알았던 무궁화. 영어로는 '샤론의 장미'(Rose of Sharon)인 무궁화는 예수를 지칭하는 성경에서 비롯된 말이다. 더불어 무궁화는 '시리아에서 온 꽃'(Hibiscus Syriacus)이라는 학명을 가지고 있다. 이 시리아는 이스라엘을 포함한 지역이다. 그렇다면 시리아에서 온 꽃인 무궁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무궁화가 결코 한국에만 제한된 꽃이 아니라, 전 세계의 구원역사를 품고 있는 꽃임을 성경과 꽃 이름의 어원적 특성을 통해 알아본다.

 

 

a) 일신지미(日新之美)

 

단군신화에 의하면 환웅은 무궁화가 핀 적성산에서 신시를 열었다 한다. 고대로부터 동이족으로 인식되어져, 신라시대 화랑의 머리에 장식하는 꽃 그리고 조선시대 때는 장원급제자에게 내리는 어사화, 그리고 오늘날 우리나라 대통령의 문장 가운데 있는 꽃도 무궁화요, 우리나라의 국화(國花)도 바로 무궁화이다.

 

'나날이 새로워지는 아름다움'을 뜻하는 '일신지미'(日新之美)라는 말에 딱 맞는 꽃이다. 꽃송이 하나 하나는 저녁에는 시들지만, 약 100일 동안(7-10월) 매일 새벽 신선한 새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이는 산해경(山海經)이라는 지리서에 기록된 글에서도 동일하게 볼 수 있다. “군자의 나라에 무궁화가 많은데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지더라 ”(君子之國有薰華草 朝生暮死). 중국의 고전인 고금기(古今記)에도 '군자의 나라엔 지방천리에 무궁화가 많이 피었더라 '는 기록이 있다.

 

또 신라의 최치원 선생이 중국에 보내는 國書에서 우리나라를 근화지향(槿花之鄕)이라 하여 무궁화의 나라임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 이런 기록들은 1,400여 년 전인 4세기 중엽에도 우리나라 가는 곳곳마다 무궁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기록이다. 그리고 자생력이 강해 어디에서나 잘 자라고 쉽게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10년 이후 36년간의 일제치하에선 우리민족의 상징적 꽃이라는 이유 때문에, 전국적으로 뽑아 없애버려 큰 수난을 겪기도 했다.

 

우리 민족과 수난을 같이 했던 이 무궁화의 용도는 주로 정원수와 나무울타리로 사용된 것 외에 매우 다양하다. 나무껍질의 섬유는 고급제지원료로, 꽃봉오리와 나무껍질, 그리고 뿌리는 위장병 및 피부병 치료제로 옛부터 사용되었다. 또 꽃봉오리는 요리에, 꽃은 꽃차의 재료로 애용되기도 한다. 하나도 빠짐없이 이로움만을 남기고 가는 꽃이다.

 

 

b) 새 아침 이라는 꽃

 

이처럼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내어주는 무궁화는 새벽 아침에 평화를 알리는 꽃이기도 하다. 온 인류에게 생명을 주는 태양빛처럼 사랑과 구원의 평화를 알리는 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태양, 빛, 영원한 사랑, 평화와 관계된 말이 많은 무궁화의 꽃말에서 엿볼 수 있다(도표 참조). 그 중 '새아침', '신태양', '새빛', '평화', '늘사랑', '한누리'등은 대표적인 꽃말이라 할 수 있다. 朝鮮이라는 명칭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더욱더 흥미로운 것은 '히비스쿠스 시리아쿠스'(Hibiscus Syriacus)라는 무궁화의 '학명'(學名)이다. 이것은 '시리아에서 온 꽃'이란 뜻으로, 그 근원지를 밝히는 말이다. 시리아는 알렉산더 사후(死後)4명의 장군 중 안디오쿠스가 다스린 지역으로 이스라엘을 포함한 곳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바벨론과 니느웨성 등 고대 앗시리아 지역에는 현재 무궁화 모양으로 장식된 고대 건축물들과 성벽들이 발견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 무궁화의 영어이름(英名)이 '샤론의 장미'(Rose of Sharon)라는 것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왜냐하면 '샤론'이라는 곳이 이스라엘에 속한 지역이름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shrub Althea'라는 학명도 있는데, 여기서 '알테아'(Althea)는 그리스어로 '치료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c) 샤론의 장미

 

앞에서 언급한 샤론(Sharon)은 이스라엘의 욥바에서 갈멜산까지 이르는 길이 약 90km, 너비 약 18km의 해안평야지대이다. 이 곳은 살림벌채로 인해 대규모적인 목초지가 있을 정도로 비옥하고 경관이 좋은 곳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성경의 속담으로 자주 언급된 장소다(대상27:29, 아2:1, 사35:2).

 

오늘날 샤론은 대대적인 관계시설을 갖춘 채 감귤류 숲과 다른 상업적인 농장을 위해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는 비옥한 땅이다. 이곳은 옛날에 아름다운 야생화로 덮여 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 중 대표적으로 자생하는 꽃이 수선화인 것이다. 성경에는 백합화로 대부분 기록돼 있고, 대부분 팔레스틴 전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서식하며 자주색 또는 흰색 꽃을 피우는 아네모네를 가리키기도 한다.

 

성경에서 일반적인 '샤론'은 원래 넓은 평야와 관계가 있는 빽빽한 초원을 말한다. 샤론이 '평탄한', '곧은', '옳은', '의로운'이라는 뜻의 '야사르'에서 파생된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샤론을 여호와의 영광으로 새롭게 변화된 인간의 상태, 곧 구원과 영원무궁한 평화의 안식처로 기록하기도 한다(사35:2, 사65:10).

 

 

d) 구원의 꽃

 

성경에서 샤론의 장미로 알려진 '샤론의 수선화'(KJB: the rose of sharon, NIV: a rose of sharon)는 모습과 색깔과 향기에 있어서 꽃 중의 꽃, 여왕이라 할 수 있다. 열매는 중요 식품의 재료로 사용하기도 하며 의류용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가장 아름답지만 가장 평범한 꽃이다. 어디에서나 자라기에 누구나 주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별다른 고귀함이나 화사한 아름다움은 갖추지 못한 흔한 들꽃이다. 예수의 고난을 예언한 이사야 53장 2절에서 기록한 것처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는 꽃 '이다.

 

아가서 2장 1절은 '사론의 수선화'를 '신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으로 기록하고 있다. 영국의 대설교가인 스펄전(C.H.Spurgeon)은 아가서 2장 1절을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의 예표'로 설명하고 있다. 곧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스스로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장차 이 땅에 오실 예수'(빌2:5-6)로 말하고 있다.

 

결국 이 무궁화는 시리아인 이스라엘에서 시작한 인류에 대한 사랑과 구원을 말하는 꽃이다. 무명 시인이었던 아이다 가이리(L.A. Guirey)여사는 '샤론의 꽃 예수'(찬89장)이라는 시로 이것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궁화가 '샤론의 장미'라고 지금까지 불리워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무궁화의 이름말

 

꽃종류

꽃이름

홑꽃

새아침, 신태양, 배달, 영광, 블루버드, 옥토끼, 님보라, 일편단심, 새빛, 옥선, 화랑

반겹꽃

사임당, 아사녀, 산처녀, 아랑, 세레나데, 꽃뫼, 한누리, 순정

겹꽃

루시(Lucy), 폼폰루즈, 평화, 새한, 눈보라, 늘사랑, 설단심(雪丹心)

 

 

 

 

5. 봉황은 하나님을 섬기는 그룹의 흔적이다

 

알타이 어군에 속하는 셈계의 민족들은 ''를 좋아했다. 그래서 알타이계의 신화들은 하나님의 협조자로서의 '새'에 관한 얘기들을 갖고 있다. 시베리아를 건너와 만주에 정책했던 동방족, 곧 한국의 선조들도 봉황새로 국가의 상징을 삼았다. '새의 나라'라고 불리웠던 한국의 뿌리를 '그룹'과 관련하여 역사와 성경에서 찾는다.

 

 

a) 하나님의 협조자로서의 새

 

알타이 계의 민족들은 하나님의 협조자를 '새'로 표현한다고 창조사학회 부회장인 김성일 장로는 말한다(성경으로 여는 세계사 2권). 이 계열의 신화들은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조물주'와 그를 따라 다니는 협조자를 '새', '오리', '기러기'등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조물주'를 성경 창세기 1장 2절은 "...하나님의 신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구원의 상징인 노아의 방주 역시 물 위를 떠 다녔고, 노아는 비둘기와 까마귀를 통해 물이 감한 여부를 알고자 하는 역사도 볼 수 있다(창6-8장).

 

'운행한다'는 말은 원어상으로 '새가 날개를 펴서 그 안으로 새끼를 감싸 안는다'는 '보호'와도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 구약 신명기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홀로 애굽에서 구원하여 광야에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보호하시고 가나안까지 이끌어내신 모습'을 이처럼 표현하고 있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엎는 것 같이”(신32:11-12). 신약에서는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모음 같이'(마23:37)라고 표현하고 있다.

 

 

b) 새의 설화를 가진 민족

 

이렇듯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 그리고 보호를 나타내는 새는 고대로부터 생명, 신성, 귀인과 관련하여 그 의미가 남아있다. 그 예로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에 나타난 '독수리'는 영어 알파벳 'A'에 해당하는 소리값을 가진 단어다. 이것은 프랑스의 이집트 학자인 크리스티앙 자크(Christian Jacq)에 의하면 '죽음을 생명의 양식으로 바꾸어 새끼들에게 실어 나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고대 이집트 미이라의 그림에는 '바'라는 '영혼의 새'가 그려져 있다. 이 새가 언젠가는 죽은 육체에 생명을 가져다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에서 발굴되는 시신에도 그 머리가 대부분 새의 깃털로 장식했다고 한다. 또 잘 알고 있듯이 아메리카 인디언들도 새의 깃털로 머리를 장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한민족의 설화에서도 새를 거룩히 여기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귀인들이 알에서 태어난다'는 '난생설화'(卵生說話)다. 박혁거세, 김수로왕, 김알지, 고주몽 등이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신라의 금관 역시 새의 날개 모양을 하고 있다. 또한 시베리아를 건너와 만주에 정착했던 동방족 역시 처음에는 봉황새로 국가의 상징을 삼았다고 한다.

 

 

c) 성천자와 평화를 상징하는 새

 

봉황(鳳凰)새는 고대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새로 수컷은 , 암컷은 이라 불렀다. 매우 드물게 출현하여 커다란 사건의 징후가 되거나 군주의 위대함을 증명했다고 전해진다. 곧 성인(聖人)과 함께 세상에 나타나는 새로 알려져 있는 것이다. 이 새는 5색의 깃털을 지닌 매우 아름다운 새로, 5음(音)의 묘음(妙音)을 내어 의미 있는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뭇 새의 왕으로서 귀하게 여기는 환상적인 영조(靈鳥)이다. 그래서 천자(天子)의 궁문(宮門)에 봉황을 장식해 봉궐(鳳闕),봉문(鳳門)이라 했다. 천자의 수레에 장식해 봉차(鳳車), 봉련(鳳輦), 봉여(鳳輿)라고도 했고, 찬자의 도읍인 장안(長安)을 봉성(鳳城)이라고도 칭했다. 이렇게 봉황은 성천자(聖天子)를 상징하는 상서로운 새로 인식되고 있다.

 

더불어 경사스러운 일에 봉자(鳳字)를 붙이기도 했다. 또한 '평화로운 세상'을 상징하여 '봉황내의'(鳳凰來儀)라는 말을 사용키도 했다. 주서(周書)에 의하면 '동방 군자의 나라에서 나오는 봉황이 세상에 나타나면 천하가 크게 안녕하다'고 말하고 있다. 한유(韓愈)의 송하견서(送何堅序)에서도 '내가 듣기로 새 중에 봉이라는 것이 있는데 항상 도(道)가 있는 나라에 출현한다'는 기록이 있다. 한국에서는 조선의 개국과 함께 성군의 덕치를 상징하는 의미로 가무에 이용되었다.

 

 

d) 무궁화를 감싸고 있는 두 봉황

 

지금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봉황새 상징의 대표적인 예는 대통령의 문장이다. 이 문장에는 두 마리의 봉황새가 그려져 있고, 그 가운데는 '무궁화'가 있다. 무궁화는 영어명이 '샤론의 장미'(Rose of Sharon)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앞에서 말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의 문양과 비슷한 것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로 그룹이다. 성경은 이 그룹(케루빔 : Cherubim)에 대하여 천상적인 존재로 묘사되고 있으며, 창세기 3장에 처음으로 언급하고 있다. 또한 에덴동산의 생명나무로 상징되는 예수, 곧 생명의 말씀을 지키는 임무도 맡고 있다(창3:24). 그리고 대부분은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수호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4.5m의 날개를 소유한 두 그룹 사이에 계시는 여호와'로 묘사된다. (삼상4:4, 삼하6:2, 대상13:6, 시99:1, 사37:16, 겔9:3, 겔10:4, 18)

 

결국 시베리아를 걸쳐 만주와 한반도까지 이동해 온 셈의 후손인 동방족은 이 그룹의 기억을 통해 새와의 친밀감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봉황이라는 새로 상징화되어 우리에게 지금까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의 흔적으로 남은 것이다. 

 

Written by 김성일 장로

1965년 서울대 기계공학과 졸업

현재 한세대 겸임교수, 창조사학회 부회, 이태원 감리교회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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