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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설교가 챨스 스펄전
 

찰스 해돈 스펄전((C. H. Spurgeon, 1834-1892)은 영국 에섹스 켈비던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평온하고 독실한 목회자 가정에서 신앙 생활을 하던 스펄전은 사춘기를 구원을 향한 회의의 시기로
보내게 되었다.

그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배어온 일상이었으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삶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그 날 설교를 하기로 되어 있던 목사님이 눈보라 때문에 나타나지 않아서, 회중에 있던 한 성도가 설교를 하게 되었다.

그 성도의 설교는 간단했다. 구원을 위해서는 다만 그리스도만 바라보라는 것이었다.
그는 죄의식으로 지치고 낙담한 스펄전을 가리키며 "단지 주만 바라보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했다.

그 순간 스펄전은극적인 회심을 하게 됐다.
구원이 오로지 주님만 주실 수 있는 은혜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스펄전의 삶은 주의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의 삶이었다.
1851년 그는 17세의 나이로 정식 목사 직분을 얻었다.

그후 일생 동안 그가 설교하는 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의 힘차고, 신학적이며, 감미로운 설교는 그로 하여금 "설교의 황제"라고 불리게 만들었다.

1861년 3월 31일 스펄전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나클에서 최초의 주일 예배가 드려졌다.

스펄전의 설교를 들으려 오는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지어진 이 교회 건물은 6천석을 가지고 있었지만 몰려오는
사람들을 다 수용할 수 없었다.

그의 설교는 매번 서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까지 1만명을 넘었다.
그러고도 수백명의 사람들이 항상 되돌아가야만 했다.

그는 매 번의 설교를 위해 수 시간을 기도했다.
그는 결코 제목 설교를 한 적이 없었으며 항상 성경 본문으로 강해 설교를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용이 다른 설교 3,500여 편을 중복해서 설교한 적이 없었다.

영혼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은 그가 그토록 많은 설교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간을 개인 전도하는데 보낸 것을
보고 알 수가 있다.

그는 바쁜 일정 중에도 매주 화요일은 구원의 확신을 위한 개별적인 면담을 위해, 토요일은 복음을 위한 개별 방문을
정기적으로 행하기 의해 남겨두었다.

그는 "내가 소유한 것 중에서 받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자기가 꼭 명심하도록 해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이런 겸손은 처음에는 비우호적이었던 사람들까지도 "그의 고조되어 가는 명성에 따라 자만심이 커져가기는커녕,그가
우리의 눈을 깜짝 놀라게 했던 처음보다도 오히려 더욱 겸손하고, 더욱 자기를 부정하게 된 것 같다." 고 말하게 만들었다.

1891년 그의 생애가 끝날 때까지 그는 불타는 진실성과 굽힐 줄 모르는 신학적 신념과 열정을 가진'복음의 전파자'였다

 

스펄전은 이렇게 구원을 받았다.

제가 젊었을 때, 약 5년간이나 심히 괴로운 마음의 암흑기를 격은 일이 있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있어서, 하나님의 율법의 두려움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하면 저는 그와 동감인 동시에, 그를 깊히
동정하고 싶습니다.

그당시 내 마음의 하늘에서는 태양이 지워지고, 내가 지은 죄는 일체 소망이 없는 자리에 나를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내 기도를 아십니다.
그러나 나는 마음 속에 이렇다 할 응답의 흔적조차 찾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성경 말씀을 두루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약속들은 더 심히 내 마음을 부담스럽게 할 뿐이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선민의 특권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이론을 꾸며 설명을 해 보아도, 그 특권이 내 것이 될 듯 하지 않았습니다.

요컨대 제 낙망의 원인은 이것이었습니다.
나는 복음을 깨닫지 못했다!

나는 기독교국에서 태어났었고, 나의 양친도 기독교 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때까지 기독교 복음의 자유성과
단순성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나는 내가 살고 있던 거리의 예배당을 두루 헤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어느 곳에서도 복음이 온전히 설교되는 것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그 교역자들을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그들 중 어떤 한 분은 하나님의 절대의 통치권에 대하여 잘 말씀하셨는데, 나는 그의 설교를 유쾌하게 듣기는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에 가서 어찌하면 구원을 얻을까 하는 문제에 얽매어 있던 불쌍한 죄인인 나에게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말이었습니다.

또 한 분은 항상 율법에 대하여 설교하였는데, 땅을 갈기만 하고 씨가 떨어지지 않으니 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은 수없이 읽고 들었으나 나는 여전히
"주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몰랐던 것입니다.

나는 지금도 가끔 생각합니다만, 만약 하나님이 은혜롭게도 어느 일요일 아침 대단히 심한 눈보라로 나의 예배당 가는
길을 막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까지도 암흑 속에 있지나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날 아침 나는 눈에 길이 막혀서, 우리 집에서 얼마 멀지 않은 보잘 것 없는 조그만 한 교회에 불가불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회중은 모두 열 두 서넛밖에 없었으며 목회자도 안 나왔습니다.
아마 눈에 길이 막혔던 모양이었습니다.

이윽고 한 초라한 사람 ― 양복직공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구두 깁는 사람같아 보이는 이가 강단 위로 올라갔습니다.

이 사람의 설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본문을 외어대는 것이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딴 소리는 할 재능이 없어
보였던 것입니다.

본문은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는 이사야 45장 22절이었는데 이 사람은
본문을 온전히 읽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성경 봉독을 들었을 때 제 생각에 그 말씀에는 제게 대한 어떤 소망이 감취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시작하였습니다.

"친애하는 여러분, 이 본문은 매우 간단한 말입니다.
여기에는 '앙망하라' 하였습니다.
바라보는 것은 뭐 힘이 드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볼려고 다리를 들거나 손가락을 움직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보면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보는 법을 배우러 대학에 가지는 않습니다.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어린 아기도 봅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은 바로 이와같이 그저 바라보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나를 바라보라'하였습니다.
아, 여러분, 여러분은 모두 자기를 바라봅니다.
그건 봐야 소용없습니다.
여러분을 바라봤댓자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을 바라봤댓자 시원한 일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합니다.
안됩니다. 예수를 자주 바라보십시오.
예수는 '나를 바라보라'하셨습니다.
또 어떤 이는 '나는 성령이 역사할 때까지 기다리지'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나를 바라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선량한 직공은 다음과 같이 소리쳤습니다.

"나를 바라보라. 나는 큰 핏방울을 떨어뜨리고 있다.
나를 바라보라 나는 십자가에 매달렸다.
보라, 나는 죽어 장사되었다!
나를 바라보라, 나는 다시 살아났다!
나를 바라보라, 나는 승천했다!
나는 아버지 오른 편에 앉았다!
오오, 나를 바라보라! 나를 바라보라!"

여기까지에 겨우 한 십 분 동안을 소비하고 나서 이 설교자는 밑천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강단 바로 밑에 앉았던 나에게 시선을 던졌습니다.
아마 사람들이 그렇게 조금 모였기 때문에 그는 내가 처음 나온 사람인 줄을 알아 차렸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우리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

"예수를 바라보고 우리의 연약함을 보지 말자
우리의 연약함을 한탄함으로써 우리가 강해질 수 있을까?
오직 예수를 바라볼 때 그의 능력이 우리 속에 역사하여 그의 찬송이 우리의 입술에서 터져 나오게 된다.
예수를 바라보고 우리의 죄를 보지 말자
죄의 생각은 사망을 가져올 뿐이요, 예수를 사모함만이 생명에 이르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을 낫게한 것은 그의 상처를 들여다 보는 일이 아니었고 다만 구리뱀을 쳐다 보는 일이었다.
예수를 바라보고 우리의 공로를 보지 말자
눈앞의 세상 일에 너무 정신을 기울임으로써 주님의 의를 망각하지 말자.
손은 항상 바쁘면서도 마음은 언제나 비어두자. 때를 따라 주님의 은혜를 넘치게 받도록."

그는 나를 향해 입을 열어 "청년, 당신은 왜 그리 가련한 모양을 하고 있소?"하고 물었습니다.

물론, 나는 가련했지만 그러나 나는 그때까지 강단 위로부터 내 개인의 모습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듣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그 한 마디는 내 마음을 쳐 올렸습니다.
그는 말을 계속했습니다.

"청년이 이 성경 본문을 순종하지 않으면 언제나 가련할 것이고 죽어서도 가련할 것이요.
그러나 이제, 이 시간에 이 성경을 순종하면 당신은 구원을 받소"

그는 한층 소리를 높였습니다.

"청년이여, 예수를 바라보라! 지금 바라보라!"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리에서 놀라 일어났으나, 그러나 그 때 나는 예수를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 순간 구름은 걷히고, 나는 햇빛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감격에 넘쳐 구주의 귀하신 보혈과 단순 명확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찬송하고 싶었습니다.

아아, 그 누가 이 진리를 좀 더 일찍이 나에게 깨우쳐 주었더면...
"나를 앙망하라, 그러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한 이 위대한 진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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