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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코 - 타락해 가는 교회에 ‘정화의 햇불’
 

‘주여,나를 평화의 도구로 삼아 주소서’라는 기도문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시시의 성자 프란체스코는 2000년 기독교 역사상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많이
닮은 사람으로 일컬어진다.

그의 거룩한 성품과 복음을 철저히 따른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대로 본받으려
했던 참 제자의 길이었다.

그의 영성은 십자가의 신비의 영성이라고 부를 수 있다.
고난과 가난을 자청했던 그는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입은 상처가
자신의 몸에 그대로 나타나는 ‘성흔’을 받기까지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뤘다.

프란체스코가 태어난 해가 1181년인지 1182년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탈리아의 아시시에서 한 포목상의 아들로 태어난 프란체스코(본명은 지오반니
디 베르난도네)는 젊은 시절에는 기사가 되길 꿈꾸며 인생을 즐겁게 보냈다.

하지만 전쟁에서 포로가 되고 병중에 신음하면서 그는 참되신 유일한 왕 그리스도의
기사가 되어 ‘가난양(孃)’을 섬기기로 서원한다.
가난을 기사의 연모와 충성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복음의 말씀에 점점 몰두된 이 청년은 어느날 기도하던 중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보고 그 환상에 따라
복음의 말씀 그대로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는 제자의 삶을 살겠다고 헌신하게 된다.

그는 평생 가난한 자, 병든 자와 하나가 되는 삶을 살았다.
그는 어느 날 한센병 환자를 만나 그를 주님의 자비와 은혜로 끌어안고 입맞추는 가운데 사랑의 감미로움을 체험하고
세속을 떠나 사제의 삶을 살 것을 결심한다.

당시 교회는 중세의 호화로운 세속적 지배와 물질적 탐욕 속에서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주님은 프란체스코에게 “내 집(교회)을 보수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처음 이 말씀을 글자 그대로 순종해 한 교회를 보수했지만 그 뒤 그 명령의 품은 뜻을 따라 타락한 교회 전체를
정화,개혁하는 사명을 감당했다.

프란체스코는 몇 명의 제자와 함께 수도회를 시작했다.
그 수도회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명하신 말씀을 그대로 엄격히 지켰다.

자신들이 소유한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채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동냥하고
또 손수 일을 하면서 평화의 복음을 전했다.
전 유럽에서 수많은 형제들이 그를 찾아와 오늘날 ‘작은 형제 수도회’로 이어지고 있다.

프란체스코 생애의 절정을 이룬 십자가의 신비체험은 1224년 9월 라 베르나 산에서 40일간 금식하며 기도와 명상에
몰두하던 중 일어났다.
9월14일 그는 하늘이 열리며 십자가의 형태로 된, 여섯 날개를 가진 스랍천사의 환상을 보게 되었다.

그 찬란한 환상을 보는 중에 그의 손발과 옆구리에 십자가의 못자국과 창자국이 생겼는데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예수의 상처 흔적이 그에게 각인된 것이었다.

말년에 이르러 그의 제자들이 수도회의 이상을 오해하고 현실과 타협하게 된 것은 그가 겪은 가장 큰 고통이었다.
하지만 프란체스코는 그러한 고난을 승화시키면서 거룩한 죽음을 맞이했다.

프란체스코는 우리에게 위대한 영성의 유산을 남겨놓았다.
완전한 사랑의 거룩한 길로 우리를 부르신 예수는 가난한 마음과 온유, 화평, 순결과 헌신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찾도록 하셨다.

교회는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와 순례자로 복음 때문에 핍박과 환난을 겪으면서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
세상에 대한 집착과 탐욕과 분노, 교만, 부정 같은 정욕의 노예로 남아있는 한 교회는 청빈과 고난속에 숨겨진 순결과
거룩함의 소명을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거룩한 교회의 회복이야말로 참된 개혁의 이상이다.
프란체스코는 그것이 몽상이 아니라 현실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프란체스코는 철저히 가난속에 자신을 비우고 우리 가운데 오신 겸비하고 온유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이루는 복음적 삶을 살았다.
세상과 타협해 성공하고 지배하는 대신 박해를 받을지라도 가난과 고난속에서 사랑과 자비와 신뢰의 누룩이 됨으로써
세상의 가치를 뒤집고 성화된 삶의 빛을 발하는 것이 십자가의 영성이다.

그렇다고 해서 프란체스코가 물질세계를 멸시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과 온 우주를 형제애와 우정 속에 품었다.

해와 달을 형제 자매로 부르며 하나님의 축복 속에 찬양으로 화답한 아름다운 시인이기도 했다.
이는 초대교회 사막의 교부들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는 낙원 회복의 영성과 같은 극치의 영성이다.

우리가 프란체스코를 평화의 사도로 부르는 것도 그에게서 죄와 타락으로 인한 파괴, 갈등, 분열을 사랑과 평화로
치유해 일치와 조화 속에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경륜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란체스코가 보여준 맑은 영성의 샘을 되찾아 우리의 혼탁한 심령과 세속화된 교회가 새롭게 변화되기를 기도하는
것이 오늘 그의 형제된 우리의 임무일 것이다.

이후정 <감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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