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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흑암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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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3부

13. 왕 국  (The Kingdom)

  1) 왕국의 출현과 연기

  2) 천국의 신비와 비유

  3) 왕국의 모습

14. 영의 세계

15. 영성술

16. 부 활 들

  1) 민족적인 부활

  2) 영적인 부활

  3) 실제적인 부활

  4) 부활의 방법

17. 심 판 들

  1) 그리스도인들의 죄에 대한 심판

  2) 그리스도인들의 행위에 대한 심판

  3) 유대인들에 대한 심판

  4) 이방 국가들에 대한 심판

  5) 죄인들에 대한 심판

18. 사 탄

  1) 사탄의 기원

  2) 사탄의 현재와 그의 왕국

  3) 사탄의 전략

  4) 사탄의 미래와 운명

19. 적그리스도

  1) 적그리스도의 개요 및 그리스도와 대조

  2) 이사야의 예언

  3) 다니엘의 예언

  4) 바울의 예언

  5) 요한의 예언

  6) 적그리스도의 미래와 운명

20. 사탄의 삼위일체

21. 네가지 복음

 

 

13. 왕 국  (The Kingdom)

  1) 왕국의 출현과 연기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이후 이 땅 위에 "눈에 보이는" 왕국을 세우려고 하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창1:26-28).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이 통치권은 "타락"으로 잃어 버렸으며, 사탄이 "이 세상의 통치자"로서 세워졌다(마4:8-10,요14:30).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심"으로써 이 땅위에 눈에 보이는 "왕국"을 세우시려는 계획을 하셨다. 이후 모세, 여호수아, 재판관들, 다윗, 솔로몬, 이스라엘의 왕과 유다 등 바빌론 포로에 이르기까지 표면상 "유대 국가"라는 형태로써 이들에게 맡기셨으며, 즉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통하여 "신정통치"의 형태로써 다스리셨다.

사무엘이 재판관이던 시절, 백성들은 "하나님의 통치"에 대항하여 왕을 구했다. 그 결과 하나님은 백성들의 뜻대로 사울을 왕으로 주었다(삼상8:6,7).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여 뒤를 이으셨다. 하지만 다윗의 자손들의 잘못과 백성들의 우상숭배로 인해 B.C.606년에 "하나님의 통치"는 중단되고 "이방인들의 때"가 시작되었다.

I. 천국이 가까움

"이방인들의 때"가 600년이 지난 후에,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왕국을 이 땅 위에 세우고자 계힉하셨다.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왕의 탄생을 알려 주었다(눅1:26-33).

30년 후에 왕을 예비하기 위해 침례인 요한이 왕국이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였다(마3:1,2). 그리고 왕이 자신을 드러내셨을 때 동일하게 외치셨다(마4:17-23). 그리고 후에 "12사도들"(마10:7)과, 예수님께서 보내신 "70명의 제자들"(눅10:1-9)도 동일하게 외쳤다.

그러나 왕은 거부되고 십자가에 못박임으로 왕국이 세워지는 것은 연기가 되었으며, "천국"이란 이름 아래 "신비적인 형태"로서 감추어졌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와 "천국(KINGDOM OF HEAVEN)"을 반드시 구분해야만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시간과 영원, 하늘과 땅을 포함한 그의 창조된 모든 피조물 위에 우주적인 "하나님의 통치"이다. 즉 이것은 "볼 수 있게 오지 않으며" 영적이다(눅17:20,21). 이것은 "거듭남"에 의해 들어갈 수 있다.(요3:5) 그리고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희락"이다(롬14:17).

"천국"은 신약에만 32번 언급되며, 오직 마태복음에서만 발견된다. 이것은 제12장 "천국의 비유"에서 설명하였으며(마13:1-50; 18:23-25; 20:1-16; 22:1-14; 1-30), 이러한 비유적인 형태로 우리는 "천국"은 공간과 시간에 제약을 받음을 알 수 있으며 이것의 영역은 "그리스도의 왕국"이라 불리는 세상부분의 영역이다. "천국"에는 선과 악이 있으며, "곡식"과"독보리",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 "현명한 처녀들"과 "어리석은 처녀들"과 같이 혼합되어 있다.

왕국의 연기

"왕국의 연기 이론"을 반대하는 몇몇의 사람들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에서 이 천국은 외면상 눈에 보이는 왕국이 아니라, 단지 영적인 왕국이며, 이것은 끊긴 것이 아니라, 오늘날 "거듭난" 믿는 사람들에 의해 보여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리스도는 사람들의 구원자로서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시고 죽고, 죽음에서 부활하여, 아버지께 올라가시고, 왕국을 받으신 이후에도 지상에 눈에 보이는 왕국을 세우지 않았다는 것을 근거로 주장한다. 따라서 이때는 외적이며 눈에 보이는 왕국을 이 땅위에 "실제로" 건설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침례인 요한과 예수님께서는 표면적으로 눈에 보이는 이 땅위의 문자적인 왕국이 아닌 그 밖의 다른 의미로 말씀하셨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누구 말이 옳은 것인가?

구약 성경의 예언은 "인자"인 메시야가 이땅을 실제로 통치할 것이며, 지상 메시야 왕국에 대해서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단7:13:13-14, 2:34-35, 44-45; 렘23:5;).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메시아의 오심을 기대하고 있었으며, 시므온과 안나는 성전에서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씀을 볼 수 있다(눅2:25-38). 우리는 또한 현자들이 동방에서 예루살렘으로 왔을 때 "유대인의 왕으로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신가?"라고 물었으며 그들은 예수님을 으로서 경배하였다(마2:1-11) 예수님은 으로서 태어나셨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다. 예수님께서 30세가 되시고 요단강에 침례인 요한에게 나타났을 때, "너희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3:2) 그리고 또한 우리는 그의 사역은 "주의 길을 예비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마3:3; 사40:3).

주의 길을 예비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이것은 "십자가"가 아니라 "왕국"이다. 요한의 메시지가 만일 그가 "천국"이 외적이며 보이는 이 땅의 왕국을 의미하지 않는다면 그의 메시지는 "메시아의 왕국"이 세워질 것을 기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요한 자신이 제자들을 보내고 홀로 있었을 때 예수님께 질문한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다. "당신이 오실 그 분이시니이까? 아니면 우리가 또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리이까?"마11:3 이 메시아의 왕국의 "표적들"인 많은 치유의 이적들(사35:1-10)은 그리스도의 메시아의 사역의 증거이며, 요한의 제자들에게 한 대답은 사실로서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그들이 외쳤을 때 요한과 예수님은 지상의 메시아적 왕국의 의미로서 외치셨던 것이다. 천국(kingdom of heaven)이라 불리는 것은 천상의 영적인 왕국이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인간으로부터 기인된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에 의해 하늘로부터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편 침례인 요한이 그의 두 제자에게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요1:29)으로서 가리킨 적이 있는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의 시험"을 받으시고 침례를 받기 위해 요한에게 나타났을 때이다. 이것은 이전의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그의 외침의 성격을 바꾸거나 무효화할 수 없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시자 마자 "즉시" 마귀에게 시험을 받기 위해 광야로 들어가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마4:1-11, 막1:11-13), 또한 요한은 그의 제자들에게 침례 후 40일이 되기까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예수님을 가리키지 않았다.

이 "그 다음날"(요1:29)은 예수님의 침례 이후를 언급한 것이 아니라, 단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요한에게 그리스도인지 엘리야인지를 물었을 때의 다음날이다(요1:19-28). 요한복음1:32-34절에서 요한은 그의 침례 전까지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양"으로는 알지 못했기 때문에 증거하지 못했다. 그는 성령께서 비둘기 같이 내려와 그 위에 머무는 것을 보고 나서야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침례인 요한은 그리스도의 사역이 시작되었을 때 그분의 희생적 사역은 알지 못했으며 그가 천국이 가까이왔다라고 외쳤을 때에 한번도 영적인 왕국을 언급한 적이 없었다.

나다나엘의 대답은 "랍비여, 주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주는 이스라엘의 왕이시나이다!"(요1:49)였다. 예수님은 이 대답을 부인하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 사역에 임하셨을 때 침례인 요한과 마찬가지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하셨다(마4:17). 이 회개는 "민족적인 회개"를 말한다. 구약 성경에서 분명하게 민족적인 회개, 즉 이스라엘이 국가적으로 회개함이 없이는 메시아의 왕국을 세울 수 없음을 가르치고 있다. 마태복음4:23의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며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또 '왕국 복음'을 전파하시며"에서 우리는 이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왕국 복음은 병을 고치는 표적이 수반되었다. 왕국복음은 한 개인의 혼의 구원과는 관계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메시지였다. 이 복음은 교회가 들림을 받은 후에 왕국이 세워지기 전에 "증인들"에 의해 다시 전파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왕국 복음"은 혼의 구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단지 메시아의 왕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12제자들을 보내셨을 때 {이방인들의 길로도 가지 말고, 또 사마리아인의 성읍에도 들어가지 말고 다만 이스라엘 집"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서 전할 때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하고 병든 자를 고쳐주고 문둥병자를 깨끗케 하며 죽은 자들을 살리고 마귀들을 내어 쫓으라}(마10:5-8). 위와 같이 그들의 사역은 "왕국의 표적"을 수행하는 것이지 혼을 구원하는 것은 언급되지 않는다. 그들은 "구원의 복음"을 전하지 않았으며 단지 "왕국 복음"을 전하였을 뿐이다. 그리고 더욱이 "구원의 복음"은 전 세계에 전해지나 "왕국 복음"은 아무에게나 전해지는 것이 금지되고 오직 "이스라엘 집"에만 명령된 것을 볼 때, 오직 이스라엘 전파되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제자들이 눈에 보이는 지상 왕국이 세워질 것을 기대한 것으로써, 요한과 야고보가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예수님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기를 간구한 것으로도 알 수 있다(막10:35-41). 만일 이 땅에 왕국이 세워지지 않는다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들을 깨뜨리셔야만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광의 자리는 예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주신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오히려 메시야 왕국에 대한 믿음을 확신시켜 주었다(마20:23).

"다섯 덩어리의 빵과 두 마리 고기"의 이적 후에 사람들은 주님을 억지로 으로 세우고 싶어했다는 사실을 통해 볼 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지상 메시야 왕국이 곧 도래할 것으로 믿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 홀로 산으로 피하셨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이 땅의 왕국에 왕이 되는 것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왕국은 잘못된 의도를 가진 백성들이나 사람들로 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단7:13-14). 예수님은 그의 외적이며 눈에 보이는 이 지상 왕국의 왕위를 거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스카랴 9:9절의 예언대로 나귀를 타고 백성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사실에서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주님은 "호산나"라는 찬양을 받으셨다. 또한 "유대인의 왕"으로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마27:37). 빌라도가 예수님께 질문인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셨다. 유대인의 왕으로서, 또한 이것을 목적으로 태어나신 것도 인정하셨다. 하지만 현재 그의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고 하심으로써 그분의 왕국은 이 땅에 있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란 사실을 분명히 하셨다(요18:33-37).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렇게 질문할지도 모른다. "만일 유대인이 민족적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왕으로 받아들였다면 지상의 메시아의 왕국은 세워졌을까요?" 대답은 "확실히 그렇다." 하지만 분명히 구약에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예언되어 있고 또한 이것들을 성취시켜야만 하는데, 왜냐하면 왕의 직무를 맡기 전에 민족의 구속이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로마 정부에 의해 예수님이 붙잡혀 강도와 같이 십자가에 못 박혀 부활과 승천하는 다니엘의 69주의 마지막 내용이 성취되고 또한 70주는 멈추지 않고 이 내용들을 성취시키면, 이 땅위에 재림하여 그분의 왕국을 세우셨을 것이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그럼 교회는 어떻게 되는가?" 라고 질문할 것이다. 만일 교회를 형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가운데 있었다면(엡1:4) 다니엘의 69주와 70주는 사이에 아무런 공백이나 간격없이 교회가 형성될 수 있겠는가? 70주가 바로 시작된다면 이스라엘은 이미 지상 왕국을 건설하고 있다는 말이 되는데 뭔가 모순이 있지 않는가? 그러나, 이런 질문은 어디까지나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나온 상상에 불과한 질문일 뿐이다.

하나님의 시대에 따른 계획과 목적은 그분의 "미리 아심"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런 모든 추측과 억측은 근거없는 걱정에 불과한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거부함으로써 왕국이 거부된 것을 미리 보시지 않으셨다면 그분은 이것을 현시대보다는 다른 시대에 교회를 형성하실 것을 계획하셨을 것이다. 교회는 귀중한 그리스도의 피로 값을 치르고 산 것으로서 (행20:28, 벧전1:18-21), 교회는 자기 백성에게 배척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힘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꽺12:10). 스카랴는 예수님을 찌른 자들이 자신을 쳐다 볼 것이다 라고 미리 예언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미리 아심을 잘 알 수 있는 한가지 예는 유다가 배신할 것을 알고 계셨으나, 유다로 하여금 자신을 배신하도록 유도하거나 강요하지 않으셨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유대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거부하도록 하신 것은 아니다. 교회가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왕으로서 거부하여 "하나님의 계획" 안으로 들어오지 못할 것을 "선견"을 통해 미리 아셨을 뿐이다. 또한 교회가 완성되고 세상으로부터 들림받을 때까지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회개는 없을 것이다 .

성경을 해석할 때 어떤 부분도 지금 시대를 과거나 미래의 시대에 넣지 말아야 할 것이다. 즉 "지나간" 시대나 "오는" 시대는 "왕국"과 관계가 있지만 "지금" 시대는 교회와 관계가 있다. "왕국"은 외적이며 눈에 보이는 지상의 "정치적인 조직체"이며, 이 땅 위에 세워진다. 반면에 교회는 볼 수 없는 천상의 "영적인 유기체"이며, 이 땅 위에서 끌려 올라간다(살전4:16,17) 이 "왕국"은 "세상의 기초"가 놓인 이후에 준비되었다(마25:34) "교회"는 세상의 기초를 놓으시기 "이전에" 그 분 안에서 택하셨다. 그러므로 "교회"는 "왕국"이 아니다.

산상 설교

산상설교에 있는 내용들을 상당한 주석들의 혼동으로 인해 미래의 시대에 속한것을 취하여 현재 시대에 적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마태복음5:1-7:29이 그러하다.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위한 것이며 반드시 그렇게 해석되어야 한다. 물론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모든 것이 이루어질때까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5:18); "또는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도 있느니라."(마6:21)과 처럼 어느 시대에나 적용할 수 있는 말씀도 있지만 그렇지 않는 말씀도 많이 있다. "금식"(6:16-18), "공회의 위험"(5:22), "심판", "재판관"이나 "제단"(5:24-25), 그리고 "나는 너희를 전혀 알지 못한다."라고 하신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런 말씀들은 모두 율법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시대가 아닌 다른 시대에 적용해야만 한다. 우리는 무조건 적용함으로 인해 그들의 형제조차 사랑하지 못하면서도, 그들의 "원수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는 많은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수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그들의 형제들에게는 화해하려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그들의 대적하는 자와는 속히 화해하려한다. 지독하게 중독된 사람들에게 한 가지도 판단하지 않는다. 만일 누가 고소하여 웃옷을 뺏앗으려 한다면 외투까지도 주어야 하며, 이 법대로 해야 한다.

"너에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너에게 빌리고자 하는 자로부터 돌아서지 말라"라는 계명을 지켜보라. 가까운 교회에 가서 당신이 갖고 싶은 것들을 달라고 해보라. 만일 한 쪽뺨을 맞고 다른쪽 뺨을 돌려 될 사람이 있겠는가?

산상설교의 한 부분인 "주님의 기도"(마6:9-13)를 적용해보자. "왕국"이 임하옵시며, 이것은 교회의 확장이나 번영이 아니다. 이 안에는 죄로부터의 구원에 관한 기도가 없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이다". 라고만 구한다. 이것을 기도하는 사람들은 환난 기간을 살면서 왕이 오셔서, 왕국이 세워져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며 하늘에게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갈망한다. 이 때는 "짐승"(적그리스도)이 권세를 가지고 있으며,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아무것도 사거나 팔수 없다. 따라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라고 기도해야하며, 그들은 초자연적으로 양식을 제공받지 않는다면 굶어 죽을 것이다. 그리고 이 때는 실제적으로 악으로부터 뿐만 아니라, 악한 자(짐승을 경배하게하고 그들의 믿음을 저버리게 하려는 사탄)에게서 구원이 필요하게 된다.

그리스도가 말한 "산상설교"는 그분이 배척되기 전이므로, 왕국이 세워지기 위한 기초가 되는 것이다. 지금은 왕국은 힘으로 임하지 못하며, 오직 천년왕국에서 적용되어질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시대들을 서로 구분해야 하며 성경의 말씀을 아무 시대에나 끼어 맞추어서는 안된다.

제자들의 질문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후인 그분의 하늘에 오르시기 전에 눈에 보이는 왕국의 기대를 가지고 이렇게 질문한다.

{"주여, 이 때에 이스라엘 왕국을 다시 회복하시겠나이까?" 그분의 대답은 "너희에게는 그 때나 시기를 알게 하신 것이 아니요, 아버지의 자신의 권한에 두셨느니라."}(행1:6-7)

이것은 분명히 제자들은 영적인 것이 아닌, 지상의 눈에 보이는 왕국을 기다리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예수님께서는 간단하게 이 시대에 "영적인 왕국"을 세우려 오셨다면 제자들에게 떠나 아버지에게 다시 돌아가시려 하는 장엄한 순간에 그 당신 일반적이며 솔직한 질문에 대해, "왕국은 영적으로 세워질 것이며 이 땅위가 아니다"라고 상세하게 그들에게 설명해 주어 그들의 잘못된 기대와 생각을 깨우쳐 주어야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세워지는 때나 시기나 알 필요가 없다라고 말씀하신다.

누가복음19:11,12절을 읽어보면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더라. 이는 주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계시므로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떤 귀인이 왕국을 받아서 돌아오려고 먼 나라에 가게 되었더라}.

여기서 예수님은 먼 나라(하늘)에 가서 왕국을 받기 위해 떠난 "어떤 귀인"으로 비유되며, 그분은 왕국을 받으면 다시 오실것이다.

성경 어느 곳에도 현재 예수님이 왕이라는 것을 증명할 구절은 없다. 다윗은 기름을 부음받은 왕이었으며 사울이 죽고 왕이 될 것이 미리 예언되었지만 사울이 죽을 때까지 왕좌를 취하거나 왕이 되지 못했다. 따라서 에수님도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셨지만 그분은 실제적으로 보좌를 차지하시기 전에는 왕이 되지 못하신다. 현제 그분은 그분의 대제사장의 역활로서 일하시고 계신며, 그리고 그분 자신의 보좌가 아닌 아버지의 보좌에 앉아 계신다.

 

  2) 천국의 신비와 비유

왕이 거부되지 않고서는 왕국이 세워지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왕국은 왕국의 신비라고 알려진 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

이 왕국의

"신비적인 형태"

는 "천국의 비유"로서 마태복음에만 기록되어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고 교회가 휴거되기전인 이 시대의 특징을 잘 알고 싶다면 우리는 이 비유들을 공부해야만 한다. 예수님께서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마치신후에 제자들이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라고 질문하자 예수님께서는 이는

"천국의 신비들"

이 너희에게는 알도록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허락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니라."고 하셨다.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35절에 나와있는데 선지자에게 예언된 것이 성취되기 위한 것이었다.

{내가 내 입을 열어 비유들로 말하고 내가 세상의 기초가 놓인 이래로 감추어진 것들을 말하리라.}

따라서 "천국의 비유"는 "메시아" 혹은 "천년왕국"을 묘사한 것이 아닌데, 이것들은 구약에서 "감추어진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적인 왕국"에 관한 비유가 아니다. 왜냐하면 비유에 사용된 모든 말씀들이 이 세상의 자연물을 그대로 사용하셨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현 시대의 특징들을 다루었으며, 왕이 없는 동안 현 시대의 모습을 잘 드러내 보여준다.

주님께서 사용하신 비유는 단순한 가공의 우화가 아니다. 인간들은 진실이 아닌 것들을 우화로 드러내지만, 주님의 모든 비유는 "진실"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주님께서 비유를 사용하신 까닭은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말씀을 성취하는 것이다(사6:9-11.마13:13-17). "이는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차기까지는 이스라엘의 일부가 완고하게 된 것이라."(롬11:25) "천국"의 일곱가지 비유는 마태복음 13장에서 볼수 있다. 모두 12가지이며,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제외하고는 "천국은 . . .와 같으니"로 시작된다.

1.씨 뿌리는 자

"씨뿌리는 자의 비유의 목적"은 천국의 성격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듣는 사람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자라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이 비유에는 말씀을 듣는 4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나온다.

(1) 길 가

여기서 씨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마귀인 새"(19절), "비평주의", "의심", "믿지 않음", "선입견", "무관심" 등등으로 흙에서 자라기 전에 씨를 잡아 채간다.

(2) 돌짝밭

이곳의 씨는 흙이 얕으므로 뿌리가 자리가 전에 죽는다. 감정적인 혼은 몇가지 놀랄만한 지옥의 공포나, 약간의 강한 호소에 움직여 회심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고난이 계속되면 이들은 곧 실족하게 된다.

예수님께서도 돌짝밭의 마음을 가진 사람의 흙밑에는 "환난과 박해"라는 돌이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3) 가시떨기 사이

이곳에서의 씨는 "뿌리"가 있고 "자라났다" 하지만 열매를 맺지 못한다. 가시밭 같은 마음의 땅은 가시떨기와 뿌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것이 씨가 필요로 하는 양분을 흡수하며 그늘지게 한다. 마태복음에서 이 "가시떨기"는 "세상 염려"와 "재물의 미혹"으로 마가복음4:19에는 "다른 일들에 대한 욕심" 그리고 누가복음8:14에는 "쾌락"으로 언급된다.

(4) 좋은 땅

이곳에서는 "뿌리"가 나고 "자라나고" 또한 "열매"를 맺으나 양이 다르다. 어떤 것은 100배로, 어떤 것은 60배로, 어떤것들은 다지 30배로 맺는다. 왜 그런가? 이것은 흙이 잘못되어 그런것이 아니다. 이땅은 길가나, 돌이나, 가시떨기도 아닌 좋은 땅이다. 그렇다면 왜 소출에 차이가 생기는가? 문제는 경작의 방법상의 차이 때문이다. 깊이 땅을 갈고, 물을 주고, 적절한 기온이 유지된다면 100배의 열매를 맺을 것이다.

이 비유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로운 것을 가르쳐준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 알아서 자라는 잡초와 같은 것이 아니라, 밀과 같이 뿌려지고 경작되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이 상징은 왕이 왕국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농부가 씨를 뿌리는 것이다. 땅에서는 열매가 보이지 않으며, 오직 4분의 1정도만이 동일하지 않은 양으로 열매를 맺는다. 이 시대에서는 비교적 복음이 실패한것으로 보인다. 하여간 분명한 것은 이 비유들은 이 시대에 복음이 전파되어 이 세상이 변화된다고 가르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2. 밀과 독보리

"밀과 독보리"의 비유는 (마13:24-30) 그리스도께서 해석해주시며(37-43절), 이것은 어떤 상상이나 비성경적인 해석을 금하고 있다. 그분은 우리에게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은 "인자"이며(37절), 그는 "자기의 밭"에 씨를 뿌리며(24절),"밭"은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다. 이것은 "밭"은 교회이며, "밀"과 "독보리"는 "진리"와 "거짓"을 나타낸다는 신학자들의 주장을 단 일격으로 무너뜨린다.

처음 비유에서 인자인 "씨뿌리는 자"는 "세상"에 씨를 뿌린다. 이 비유에서 "사람"(왕국의 자녀들)에게 씨를 뿌린다. 이것은 후에 박해로 인해 스테판이 순교당할 때 아름답게 설명해주고 있다.행8:1-4 인자는 사탄이 아닌 타시스의 사울을 통하여 교회를 유다와 사마리아의 도처에 흩으셨다. 이것은 비유의 시작이다. 흩어버림으로써 복음을 들은 유대 교회의 교인들은 각 나라들로 계속 퍼져나갔다.

그러나 "밭"은 밀만 뿌려진 것이 아니라, 마귀가 와서 독보리도 뿌렸다. "독보리"는 밀과 거의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이것들이 완전히 자랄 때까지는 진짜를 구분할수 없다. 독보리를 뿌려진 것은 씨뿌리는 자가 졸거나 잠을 잘 때가 아니다. 성경에서 씨뿌리던 자가 잠을 잤다는 말씀이 없다. 씨부리는 자가 들판을 보러 자리를 비운 사이 사람들이 잤던 것이다. 그 때 마귀가 와서 곡식들 사이에 독보리를 뿌렸던 것이다(25을 볼 것) 뿌린 씨는 여전히 자라나고 있다. "독보리"는 "악한 자의 자녀들"이라고 불리는데 그들은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나서"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이러한 유대인들의 특징을 가진 자들이다(요8:44).

여기서 주목할 것은 마귀는 "밀"을 바꿀수 없다는 점이다. 그는 단지 "독보리"를 뿌려 그 독보리를 통해 전 들판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 놓으려는 것이다. 종들이 들판을 보았을 때는 이미 들에는 독보리가 자라나고 있었다. 하지만, 주인은 "추수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두었다가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여 먼저 독보리를 모아서 불사르기 위하여 단으로 묶고 곡식은 내 곡식 창고로 모아 들이게 하리라." 이 비유 또한 교회에 적용되는 비유가 아니다. 이 시대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악을 완전히 뿌리뽑아 버리고 싶은 소원이 있겠지만 그것은 단지 꿈에 불과하다. 이 시대에는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선이 널리 퍼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선"과 "악"이 함께 병존하며 오히려 마지막 시대까지 더욱 악해져 가고 있다. 이 비유에서 언급되는 "밀과 독보리"가 추수때에 함께 거두어 들인다는 사실은 이런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 준다.

"선"과 "악"의 투쟁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추수"때까지이다. 추수때는 언제인가? 그것은 바로 이 세대의 마지막 때이다. 이 세대의 마지막 때에 나타날 추수꾼들은 "천사들"(39절)이다. "교회라는 밀이 익을 때", 즉 충만함에 이르면 바로 주님께서 오셔서 데려 가실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30절을 읽으면서 상당히 당황해 한다.

{추수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두었다가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여 먼저 "독보리"를 모아서 불사르기 위하여 단으로 묶고 "곡식"은 내 곡식 창고로 모아들이게 하리라}.

이 말씀을 읽으면서 "독보리가 탈때까지 교회는 이 땅에 남아 있게 되므로, 교회는 환난을 통과할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독보리는 밀을 수확하기 전에 태우기 위해 단으로 묶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분리해서 밀을 하늘의 창고에 들이고 나서 태울 준비를 하기 위해 단으로 묶는 것이다. 독보리가 불사라지고 나서야 밀을 수확해서 곡식 창고에 들인다는 잘못된 종교적 가르침 때문에 교회가 환난을 통과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곳은 "크리스챤 사이언스", "몰몬교", "영성화 운동", "신사고"(New thought), "신지학"(theothophy)등등이다. 이 시대가 끝날 때까지 독보리와 밀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결국 그리스도께서 천년왕국을 건설하러 이 땅에 다시 오셔야만 이 둘과의 분리가 이루어 질 것이다.
 

3. 겨자씨 비유

겨자 씨 비유에 이어 바로 누룩의 비유가 나온다. 이 비유들은 똑같이 "천국은...와 같으니라" 하신 말씀으로 시작된다. 그러므로, 이 비유들도 다른 천국에 관한 비유와 틀린 점이 있을 수 없다. 모두 "천국"에 관한 같은 말씀이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들은 "이 두 비유"가 교회의 팽창이나 확산에 적용한다. 복음이 전 우주적으로 전파될 것을 비유한 말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기서 다시한번 강조하거니와, 천국은 결코 교회가 아니다. 차라리 이 말씀을 세상에 있는 기독교계(Christiandom)에 비유하면 조금은 나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 두 비유를 교회에다 적용한다면, 겨자 씨의 비유는 외적으로 팽창하는 교인들의 증가와 교회 수를 말하고, 누룩은 내적으로 성장하는 교인들의 영적 성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본문을 잘 보라.

겨자씨는 아주 작은 씨지만 정원에 심겨지면 7-8m 가량 자란다. 가장 좋은 수확을 거두기 위해서는 마땅히 정원에 심겨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들판"(자기 밭)에 겨자 씨를 뿌렸다고 한다. 비유를 통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은 "들판"은 세상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 겨자씨는 자라서 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무라고 씌여져 있는 점으로 보아 식용이나 부드럽게 자란 것이 아니라 야생에서 억새게 자랐음을 알 수 있다. 이 겨자씨는 그 종류에 따라 알맞은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마귀를 상징하는 공중의 새들의 날아와서 거기에 거처를 삼는다. 이 새들은 누구인가? 이 또한 기록된 말씀의 비유를 통해, 길가에 뿌려진 씨를 먹어버리는 마귀들임을 알 수 있다(마13:4,9). 그렇다면 이 비유에서 새는 "회심한 신자"나 "교회에 새로온 신자"가 아니라 사탄의 종인 마귀들임이 분명하다. 기독교계에 비유해서 겨자씨의 말씀을 적용해 보자.

"겨자씨"는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 침례를 받은 120명의 성도들로 시작되었다. 이 씨는 계속 자라나서 로마를 국교화 시킬만큼 자라났다. 그러나, "공중의 새들"이 날아와서 나무에 둥지를 틀고 더럽혔다. 예를들어, 아나니아, 삽비라, 마술사 시몬, 후메내오와 필레투스 같은 사람을 들 수 있을 것이다. A.D 324년 콘스탄틴은 교회와 국가를 하나로 일치시켜 버렸다.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었고, 정치를 하기 위해서 교회에 들어왔다. 자! 이 비유가 맞다고 생각하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어딘가 비정상적이라고 스스로 느낄 것이다.

천국의 비유에서 겨자씨는 이 세상에 뿌리박고 있으면서, 기독교의 이름을 내걸고 부와 지위와 권력을 획책하는

"거대한 세상 제도"

를 말한다. 그는 이 시대의 어두움의 통치자의 대리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를 아는 지식"을 온땅에 물같이 덮으실 飁까지, 바로 주님이 이 땅에 재림하실 때까지 순수한 기독교가 이 세상에 널리 전파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흔히 잘못해석하고 있는 이 비유의 본 뜻을 더욱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눅18:8)
 

4. 누룩의 비유

누룩의 비유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은 다음과 같다. 여자는 교회를 나타내며, 누룩은 복음이요, 밀 세말은 인류이다. "복음의 누룩"이 교회에 의해서 세상에 소개될 때 세상은 충분히 부풀어 올라서 완전히 변화되어 모든 사람들은 복음으로 변화받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누룩"은 절대로 "복음"을 나타낼 수 없다. 성경에서 누룩은

"악의 상징"이다.

누룩은 음식물을 발효시켜서 부패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룩이 들어가면 어떤 음식물이라도 상하게 된다. 이스라엘은 유월절을 기념하기 위해 칠일간을 누룩없는 빵을 먹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에서 끊어지게 된다(출12:15). 어떤 희생제물에도 누룩을 넣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출34:25. 레2:11,10:12). 그리스도께서는 이 비유외에도 3번이나 누룩에 관한 비유를 사용하셨다. "바리새인의 누룩", "사두개인의 누룩", "헤롯의 누룩"에 대해서 말씀하셨다(마16:6-12, 막8:15).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은 "거짓 교리"이다. 바리새인의 거짓 교리는 주로 "율법주의"였다. 그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이 전혀 없었다. 사두개인의 거짓 교리는 "회의주의"였다. 사두개인들은 몸의 부활을 믿지 않았고 천사나 영이 없다고 주장했다. 헤롯의 거짓 교리는 "물질주의"였다. 그는 세상과 종교를 혼합해서 이용해 먹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악하다는 의미를 제외하고는 "누룩"이란 표현을 쓰신 적이 없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묵은 누룩은 떼어내 버리라. 그래야 너희가 누룩을 넣지 않은 새반죽이 되리라."(고전5:6-8). 바울은 누룩을 "악하고 가증한 누룩"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누룩없는 성실과 진리의 빵"과 멋진 대조를 이루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와 갈라디아 교회에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게" 한다고 엄히 경고하고 있다(고전5:6, 갈5:9).

누룩에 대한 이런 일반적인 원리에도 두가지 예외가 있다. 레위기23:6-14에서 우리는 "첫 얼매들"의 "흔드는 제사" 에는 절대로 "누룩"이 들어가서는 안되다는 것을 볼 수있다. 이는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으로써 부활 때에 첫열매들은 "죄"와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위기23:15-17에 나오는 새로운 "음식 제사"를 드릴 때는 "누룩"을 넣어서 빵을 구워야 한다. 이는 부활한 후 50일 뒤에 드려지는 제사이다. 이것은 부활하신 후 50일이 지난 후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한다. 이 때 제자들은 모두 죄인들이었기 때문이다(행2:1-4). 성령을 받은 제자들도 아직 몸의 구속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구원받은 죄인인 것이다.

또 하나의 예외는 아모스4:4,5에 나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범죄를 꾸짖으며, 누룩과 함께 감사의 희생제물"을 드리라고 조소하고 계신다. 우리는 여기서 누룩을 사용하는 것이 그들의 잘못을 바로 깨닫게 하시기 위해 허용하신 뜻 가운데 행해져야 할 명령임을 볼 수있다. 여기서도 "누룩"은 여전히 악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이와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볼 때, 누룩의 비유에서 누룩은 거짓된, 또는 부패한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만약 누룩이 복음을 가르치는 것이라면, 우리는 참으로 기묘한 모순에 빠지게 된다. 복음은 누룩과 같이 역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룩은 일단 빵안에 들어가면 저절로 빵 전체로 퍼지는 것이다. 하지만 복음은 그런 식으로 퍼지지 않는다. 만약 복음이 누룩과 같이 퍼지는 것이라면, 한 마을에 복음을 전파해 두기만 하면 그마을은 저절로 모두 복음화 되고, 곧 도시와 국가가 모두 복음화 되어 버릴 것이다. 그러나, 어디 한 번 보라. 우리 주위에서 그런 곳이 있는가? 복음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만약 복음이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라면, 복음은 실패한 것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우리는 누룩의 성격에 대해서 무지한 사람들이 아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이 건전한 교리를 견디지 못하고, 그들 자신의 정욕에 따라 가려운 귀를 즐겁게 해줄 선생들을 많이 두리라. 또한 그들이 그들의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로 되리라}(딤전4:3-4).

사도 베드로도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그러나 백성가운데도거짓 선지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너희 가운데도 거짓 교사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저주받을 이단들을 비밀리에 불러들여서 자기들을 사신 주마저 부인하며 급격한 파멸을 스스로 불러들이느니라.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파멸의 길을 따르리니 그들로 인하여 진리의 길이 비방을 받을 것이라}"(벧전2:1-2).

누룩에 대해서 좀더 연구해 보자. "가루 서말에 넣은 누룩"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어디서 우리는 가루를 구하는가? 가루는 절대 독보리에서 얻을 수 없다. 가루 전체를 부풀게 하는 것은 독보리가 아니다. 가루는 밀에서 얻어진다. 그러므로 가루가 가리키는 것은 "거듭나지 못한 인류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가루 서말은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고 자처하는 교회들이다. 이들은 로마 캐톨릭, 희랍정교, 개신교로 크게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 가루 서말에 "십자가 숭배", "죽은 자를 위한 기도", "침례에 의한 중생" 등의 거짓 교리가 들어가서 모든 가루들을 부풀게 하고 있다.

누룩을 숨긴 여인은 계시록에 나오는 두아티라 교회(계2:20)의 음녀 이세벨과 정확히 일치한다. 주님은 로마 캐톨릭을 일컬어 계시록 17:5절에서 "땅의 창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밝혀 놓으셨다. 누룩이 나쁜 것이고, 타락하게 한다는 사실은 그 여인이 그것을 몰래 숨겨 넣는다는 사실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만약 누룩이 복음이라고 한다면, 여인이 그것을 숨겨 넣을 필요가 전혀 없다.

이 네가지 경고는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서 복음을 전파할 때 생기는 결과를 정확하게 경고해 주고 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면서 발생하는 실패들과 교회의 타락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고 예측해야 한다. 우리는 그 문제로 낙담하거나 실망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비유를 통해서 주님이 이 땅에서 떠나 계시는 동안 전 세계적으로 복음이 수용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세상은 복음을 거부하고 마귀와 자신의 육체를 따라 살 것이기 때문이다. 사탄은 이 시대가 끝날 때까지 이 세상의 신이요 공중 권세 잡은 자이다. 교회는 깨어있지 못하고 사탄에게 농락을 당하며, 깊은 잠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사탄은 교회에 다니면서, 단지 입으로만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을 통해 교리를 파괴하고, 선한 행실을 부패시킬 것이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사탄의 이런 활동은 계속될 것이다. 주님께서 불로써 심판하실 때까지 누룩은 점점 더 퍼져서 모든 것을 부패시키고 말 것이다. 누룩의 비유는 바로 이 시대의 모든 종교주의에 물든 기독교의 산물인 것이다.
 

5. 숨겨진 보화

"밭에 숨겨진 보화"와 "진주"에 대한 비유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해석해 왔다. 즉 보화나 진주는 그리스도며, 따라서 우리는 모든 것을 팔아서 그분을 사야 한다. 우리는 자신을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완전히 뒤엎는 해석이다. 특별히 주님의 이 시대를 향한 구원 계획과는 완전히 배치된다.

이 비유에서 "밭"은 "세상"이다. 이미 "독보리"의 비유에서 배운 바 있다. "죄인"은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포기해야 한다. 죄인은 세상에서 팔아야 할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스도는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분이 아니다. 주님은 세상에 감추어진 분도 아니며, 세상에서 찾는다고 해서 찾을 수 있는 분도 아니다. 구원은 살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구원은 은혜로 얻어지는 선물이다(롬6:23). 죄인이 그리스도를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사신다(고전6:20). 구원은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며, 영접하기만 하면 된다(요1:12). 구원을 얻는데는 돈없이, 값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사55:1).

우리는 이미 앞에서 들은 세상이요, 사람은 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배웠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사신다. 주님께서 왜 세상을 값주고 사시는 것일까? 세상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 아닌가? 주님이 들에서 보화를 발견한다면 왜 들을 살 때까지 그것을 다시 숨겨야 하는가? 세상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누군가 밭에 금, 은, 철, 구리와 같은 광물질이 들어 있다면, 그는 그 밭을 낮은 값에 사기 위해 주인을 속일 것이다. 어떤 정직한 사람이 밭에 이런 보화가 있는 것을 알고 그것이 안전할 때까지 주인을 속인다면, 그것은 마귀적이요, 정욕적인 행위가 아닌가? 이런 일은 마귀에게나 적당한 일일 것이다. 사탄은 이 밭을 강탈하려 할 것이다. 숨겨져 있던 보화는 그가 밭을 샀을 때 이미 없어졌을 것이다. 그 보화는 그 자리에 두어서는 안된다. 다른 곳에 두어야 한다. 그것은 마귀가 소유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마귀가 들판에서 보화를 캐내어 가지 못하도록 다시 숨겨 놓으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보화를 발견하시고, 그것을 얻기 위해 그 밭을 사셔야 했다. 주님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지불하셔서 그 밭을 사셨다(고후8:9).

숨겨진 보물은 이스라엘이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이제 만일 너희가 참으로 내 음성에 복종하고 나의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백성보다 나에게 특별한(peculiar) 보물이 되리니 이는 온 땅(세상)이 내 것임이라}(출19:5).

{이는 주께서 야곱을 자신의 것으로 택하셨고 이스라엘을 특별한(peculiar) 보물로 택하셨음이라}(시135:4).

보물은 아직도 세상에 숨겨져 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들을 사셨다. 그러나 주님은 아직 그것을 소유하시지 못하셨다. 주님이 이 땅에 값주고 사신 그 "소유를 구속하실 때"까지 그것을 소유하지 못하실 것이다(엡1:14).

그 때까지 이스라엘은 열방들 가운데 숨겨져 있다. 이것은 "천국의 신비"이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현명하다고 자만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차기까지는 이스라엘의 일부가 완고하게 된 것이라}(롬11:25).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찰 때까지 들에 숨겨져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숨겨 놓은 보물"인 이스라엘을 구속하실 것이다. 이스라엘은 "국가적으로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한 후 자신들의 땅인 이스라엘로 돌아올 것이다.
 

6. 진 주

진주의 비유에서 부유한 상인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진주는 교회이다. 숨겨진 보물의 비유에서 값을 주고 산 것은 보화가 아니라 밭이었다. 이 비유에서 값을 주고 산 것은 진주이다. 그리스도께서 진주를 모두 다 사시면, 그 진주를 다시 시장에 내어 파는 일은 없다. 주님은 진주를 자신의 영원하 소유로 삼으신다. 우리는 이 비유로부터 이 시대의 목적은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지키는데 있음을 알 수 있다.
 

7. 그물 속의 고기

이 비유는 이미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 시대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언급되고 있는 "그물"은 "복음의 그물"을 의미한다. 이 비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직접 하신 말씀가운데 더욱 잘 드러나고 있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복음이 전파되고 있는 이 시대에는 한 사람, 한 사람씩 구원받고 있다. 이 비유는 이 시대에서 복음의 그물을 드리움으로써 사람들을 교회로 이끌어 오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물 안에는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가 공존하고 있다. 어부들은 나쁜 고기를 좋은 고기로부터 분리해야 한다. 먹을 수 있고, 시장에서 팔 수 있는 고기는 그렇지 않는 고기와 같이 섞어 둘 수 없다. 교회가 늘 이 일을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비유의 끝과 독보리의 비유의 끝과는 서로 일치한다. 수확하는 시기는 "시대의 끝"이다. 이 시대의 끝이 되어야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를 나누신다. 이 일은 천사들에 의해 수행될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항은 독보리가 먼저 모아진다는 점이다. 하지만 밀이 하늘의 창고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독보리는 불에 태워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나쁜 고기가 가려져서 버려지기 전에 좋은 고기는 하늘의 창고로 모아진다.

그물이 바다속으로 던져지고, 그물에 고기가 가득차더라도 바다 속에 있는 많은 고기는 여전히 잡지 못한다. 이 비유에 따르면 잡은 고기에 한해서만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를 나눈다. 결국 구원받는 사람은 극히 적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우리가 살고 있는 복음의 경륜에서, 비유가 가르쳐 주는 바와 같이 세상은 완전히 변화되지 않는다. 의인과 불의한 자들을 구분하는 것은 주님께서 재림하셔야 이루어 질 일이다.

이제 남은 다섯 개의 천국의 비유에 관한 내용은 비교적 간략하게 다루고자 한다. "자비심이 없는 종"의 비유(마18:23-25)는 천국에 갈 지체들이 서로간에 해야 할 행위와 관련되어 있다.

"포도원 지기"의 비유(마20:1-6)에서 노동의 삯으로 받은 한 데나리온은 구원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은혜의 선물이지 삯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아침 일찍 고용된 사람, 세시, 여섯시, 아홉시, 열한시에 고용된 사람들은 각기 다른 시대에 주님께 나아온 죄인들을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성경은 다음 시대에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똑같은 삯을 받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비유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문맥을 통해 볼 때, 이 비유는 돈을 받고 일하는 고용인의 정신과 같은 자세에 대한 책망임을 알 수 있다(마19:27-3). 사람들이 복음 사역을 할 때, 어떤 마음가짐과 동기로 하였는지에 대해서 판단받게 될 것이다. 그 사람이 일한 양이 얼마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하였는가가 중요하다. 이 시대에서 일한 사람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서 자신이 일한 것이 무엇인지, 그가 나무나 짚이나 그루터기로 지었는가를 드러 날 것이다(고전3:9-15).

"결혼 잔치"(마22:1-14)의 비유는 누가복음 14:16-24에 기록된 "성대한 저녁 식사"의 비유와 혼돈해서는 안된다. "성대한 저녁 식사의 비유"는 주님께서 돌아가시기 석달 전 어떤 바리새인의 집에서 행한 말씀이다. 주님은 자신이 죽고 나서 부활하실 것에 대한 강력한 암시를 주셨으며, 이후에 펼쳐질 복음의 사역에 대한 암시를 이 비유에서 충분히 드러내 보이셨다. "결혼 잔치의 비유"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하시기 전인 화요일 아침에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많은 무리들에게 한 말씀이다. 주님이 하신 비유중에 "결혼 잔치의 비유"는 가장 광범위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 비유에는 "모세의 율법을 받은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어린 양의 혼인잔치"까지 포함한다. "어떤 왕"은 하나님이시다.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첫 번 내려진 명령은 유대인들에게이다. 모세를 비롯한 선지자들은 "혼인잔치"를 선포한다. 침례인 요한과 열두사도와 칠십명의 제자들도 유대인들에게 천국이 가까웠음을 선포하면서 이 사실을 전파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죽으셨을 때, 결혼 잔치를 할 수 있는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 하지만 유대인들을 이 초청에 응하지 않았고 베드로를 포함한 많은 종들이 마을로 보내졌다. 이것이 두 번째 부름이었다(행3:19-21). 하지만 유대인들은 이것을 아주 경히 여겼다. 스테판이나 야고보를 비롯한 남은 자들에게 마음대로 대하였고, 결국은 살해했다.

왕이신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셔서 자신의 군대를 보내셔서 이 도시를 불로 태우셨다. 이 일은 A.D. 70년 로마의 장군 타이투스(Titus)에 의해 이루어졌다. 바울과 바나바를 비롯한 많은 주의 종들이 결혼 잔치의 초청에 기꺼이 응하고자 하는 이방인들에게 보내졌다. 이 일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 비유를 통해 볼 때, 초청받은 손님들 가운데도 서로 다른 부류가 있음을 볼 수있다. "혼인 예복"을 입지 않고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은 책망을 받고 쫓겨난다.

이 비유의 끝과 "열처녀의 비유"의 끝과 유사함을 알 수있다. 현명한 다섯 처녀와 어리석은 다섯 처녀가 분리되는 것처럼 입으로만 신앙을 고백하는 가짜 그리스도인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쫓겨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열처녀의 비유(마25:1-13)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성도들을 모으실 때, 겉으로만 그리스도인 행세를 했던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 날 것인가에 대한 묘사이다. 우리는 교회내에서 누가 진짜 그리스도인이고, 누가 가짜 그리스도인인지 구별해 내지 못한다. 하지만 주님께서 오셔서 참과 거짓을 모두 성별하신다. 누가 참으로 성령의 소유인지는 그때 다 밝혀지게 된다. 만약 교회의 반이 가짜라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혼인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그들 앞에서 문이 닫히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어떤 비유에서도 우리는 세상이 복음으로 변화된다는 말씀을 찾아 볼 수 없다.

"달란트의 비유"(마25:14-30)와 누가복음 19:11-27에 나오는 "므나의 비유"를 혼돈해서는 안된다. "인자"는 그리스도이시다. "먼나라"는 천국이다. "떠났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승천을 말한다. "돌아온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한다.

므나의 비유에서 한 므나를 가진 사람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그가 가진 것을 빼앗기고 그가 받을 한 고을 다스릴 권세마저 빼앗기지만 쫓겨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달란트의 비유"에서 한 달란트를 가진 사람은 쫓겨난다. 이 비유의 주제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주의 사역을 섬길 것인가이다. 한 므나를 받은 사람은 주인을 엄격한 사람으로 알았고, 일을 하지 않았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손수건에 싸서 감추어 두었던 것 뿐이다. 모든 비유에서 보듯이 주님이 오실 때, 밀과 독보리, 좋은고기와 나쁜 고기, 현명한 처녀와 어리 석은 처녀, 주의 사역에 신실한 종과 그렇지 못한 사람사이에는 분리가 있는 것이다. 주님은 그들이 행한대로 상을 주시고 보응하실 것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천국"이란 장을 보기 바란다.

 

  3)왕국의 모습

사탄이 결박당하고 그리스도께서 이 땅위에서 통치하시는 기간이 1000년이란 사실은 신약에서 너무나 분명히 기술하고다. 1000년이란 말은 계시록20:1-7에서 6번이나 나온다. 일반적으로 이것을 우리는

"천년(Millennium)"

이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라틴어로 "Mille(1000)"과"Annum"(년)의 합성어이다. 천년왕국이란 천이란 단어인 Millennium과 왕국이란 뜻의 kingdom이 결합한 말이지만 일반적으로 Millennium이라고 부른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실 때,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옵시며"라고 하셨다. 우리는 여기서 "천년"이란 말은 빼고 단지 "왕국"이란 주제에 대해서만 다루어 보자. "이방인"이란 장에서 이미 배웠듯이 4개의 대제국이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은 돌왕국이 나타나서 모든 나라들을 부수어 버리고 "영원한 왕국"을 건설한다.

"돌왕국"

앞서 말했듯이 네 왕국이 역사속에 등장했던 문자적인 왕국이었으므로, 앞으로 있게 될 "돌 왕국" 또한 문자적인 왕국일 것이다. 이 왕국은 세상의 모든 왕국들을 멸하고 온 땅을 가득 채울 것이다. 이 왕국을 우리는 흔히 "천년 왕국"이라 부른다. 이 왕국이 세워질 시기는 계시록에 나오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재림하실 때이다. 주님께서 하늘의 군대를 이끌고 적그리스도를 멸하신 후(계19:11-21) 민족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인자가 그의 영광 중에 오고, 또 모든 거룩한 천사들이 그와 함께 오면 그 때에 그가

"그의 영광의 보좌"

에 앉으리니 그 앞에 모든 민족들을 모아 놓고 마치 목자가 양들을 염소들에서 갈라 놓듯이 그들을 따로 갈라놓으리라. 그리하여 양들(양의 민족들)은 그의 오른편에, 염소들(염소의 민족들)은 그의 왼편에 세워 두고 왕이 그의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오라, 내 아버지의 복을 받은 자들아, 세상의 기초가 놓인 이래로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그 왕국을 이어받으라'}(마25:31-34).

이 왕국은 이 지상에 세워질 왕국이요, 눈에 보이며, 물질적이며 정치적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통치할 왕국이다.

1. 정부의 형태

이 왕국은 "신정(神政)통치 체제"이다.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나라를 직접 통치하신다.

{그 천사가 그녀에게 말하기를 "마리아야, 두려워 말라. 이는 네가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음이니라. 보라, 네가 너의 태 안에 임신하여(shalt) 한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shalt). 그는 위대하게 될 것이며(shall),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 불리울 것이요(shall), 또 주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의 조상 다윗의 보좌를 주실 것이며 그는 야곱의 집안영원히 통치할 것이요(shall) 그의 왕국은 무궁하리라(shall)."고 하니라}(눅1:30-33).

여기서 하나님은 "할 것이요"(shall)란 의지의 표현을 일곱 번이나 하셨다. 그중에 4가지는 이미 성취되었다. 마리아가 "한 아들"을 낳았으며, 그의 이름을 "예수"라고 불렀고, 그는 "위대"하게 되었으며,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 불리웠다. 그러나, 아직 나머지 3가지는 성취되어야 할 것들이다.

다니엘은 이렇게 예언했다.

{내가 밤에 환상들을 보았더니, 보라, 인자 같은 분이 하늘의 구름들과 함께 오셔서 "옛날부터 계신 분"(하나님)에게 오시니 그들이 인자 같은 분을 그 분 앞에 안내하였더라. 거기에서 그 분께 다스림영광왕국이 주어졌으니, 이는 모든 백성과 민족들과 언어들이 그 분을 섬기게 하려 함이더라. 그 분의 다스림사라지지 않을 영원한 다스림이며 그 분의 왕국은 멸망하지 않으리라}(단7:13-14).

이 구절만 보아서는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의 보좌에 앉으셔서 친히 다스리실 것인지 다른 사람을 통해서 다스리실 것인지는 분명히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이와 연관된 다른 구절들을 비교해 보면 이 부문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성경의 몇몇 절에서는 다윗 왕이 다시 등극할 것이며, 보좌에 앉게 될 것이란 예언이 나온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그를 구할 것이다. 그러므로 새 왕은 다윗이란 이름으로 불리워질 것이다.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돌아와서 주 그들의 하나님과 그들의 왕 다윗을 찾아서 훗날들에 주와 그의 선하심을 두려워할 것임이라}(호3:5).

{오히려 그들로 주 그들의 하나님과 내가 그들에게 일으킨 그들의 왕 다윗을 섬기게 하리라}(렘30:9).

{내 종 다윗그들 위에 왕이 될 것이며, 그들 모두에게는 한 목자가 있으리라. 그들은 또한 나의 명령대로 행하고 나의 규례들을 준수하며 그것들을 행하리라}(겔37:24).

{내 종 다윗은 영원히 그들의 통치자가 되리라}(겔37:25).

"만군의 주"께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그리고 장로들 앞에서 영광스럽게 통치하실 때(사24:23), 다윗왕이 잠깐 동안 섭정으로 다스릴 가능성이 있다. 할례를 받은 유대인들은 다윗을 왕으로 수용할 것이다. 에스겔 45:22을 보면 통치자가 불완전한 사람임을 알 수있다. "그 날에 통치자는 자신과 그 땅의 모든 백성을 위한 속죄제물로 수송아지 한 마리를 준비할 지니라"(겔45:22).

우리는 므나의 비유를 통해서 정부의 형태를 조금 엿볼 수 있다. 므나의 비유는 주님께서 왕국을 받아 오실 때, 자신들의 종인 유대인들에게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열므나를 가졌던 사람은 열 고을을 다스릴 권세를 받는다. 다섯 므나를 받았던 사람은 다섯 고을을 다스릴 권세를 부여 받는다. 그의 므나를 활용하지 않고 단지 보자기에 싸서 숨겨 두었던 사람은 아무런 권세를 받지 못한다(눅19:11-26).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한 약속을 살펴보자.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를 따르는 너희들은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새세대(regeneration)에,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19:28).

이 약속은 천년왕국에서 다스릴 권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불로 세상이 소멸한 후 새 하늘과 새 땅의 완전한 시대에 얻을 권세를 가르키고 있음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친히 "새세대"(regeneration)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새세대"라는 말은 현재의 지구가 재 창조되고 완전히 새롭게 된 때를 말하는 것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전 세대를 보았지만 그들이 모든 것을 이해한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천년왕국에 관한 예언이며, 어떤 것은 완전한 시대에 관한 예언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다윗 왕이나 열두 사도가 천년 왕국 때에 이스라엘을 다스린다면 그들은 영광스런 몸을 입은 사람들과 아직도 여전히 육신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섞여 있는 세상을 다스릴 것이다. 부활한 영광스런 몸을 입은 사람들도 육신을 입은 사람들과 똑같이 생활할 수 있다. 부활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11번이나 나타나셨으며,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대화했고, 걸어다니셨다. 부활한 몸을 입은 사람은 그렇지 않는 사람과 자연스럽게 생활할 수 있다. 구약성경에도 천사들은 사람들처럼 먹고 마셨으며, 걸어 다녔다(창18:1-8).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부활한 영광스런 몸을 입은 사람들과 다가올 세상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천사들과 같을 것이라는 사실이다(눅20:35,36). 천사들은 이 땅에서 거주하며,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으며, 인간의 몸과 같은 육체를 입고 있으며, 마실 수도 있고 인간들과 결혼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살펴보기로 하자.

{오직 주를 앙망하는 자는 자기의 힘을 새롭게 하리니, 마치 독수리(천사들)가 날개로 치솟는 것 같을 것이요, 그들이 달려도 피곤치 않으며 걸어도 곤비치 않으리라}(사40:31).

이 말씀은 능력으로 부활한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씀이다(고전15:42,43).
 

2. 정부의 위치

이 정부는 예루살렘에 자리잡을 것이다. 예루살렘은 이방인들의 때가 찰 때까지 이방인들에게 짓밟혔다(눅21:24). 예루살렘은 복원될 것이다. 선지자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회복과 예루살렘의 재건축에 대해 자세하게 예언해 놓았다. 에스겔 48:1-35을 읽어보라.(천년왕국의 땅에 대한 도표를 참고하시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땅은 이집트의 강으로부터 유프라테스 강까지이다(창15:8). 에스겔은 더 자세하게 이스라엘의 경계를 말해 준다. 북쪽으로는 하맛까지이며, 다마스커스에서 약 100마일(약160km)의 길이이다(겔48:1). 남쪽으로는 타말에서부터 카데스에 있는 분쟁의 물에 이르고 대해에 이르는 강까지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100마일 가량을 포함한다(겔48:28). 주님이 다스리게 될 팔레스타인 왕토(Royal Grant)은 전에 12지파가 다스렸던 땅보다 8배이상 크다.

이 "왕토(Royal grant)"는 다시 12지파에게 분배된다. 북쪽에서부터 단, 아셀, 납탈리, 므낫세, 에프라임, 르우벤, 유다지파가 땅을 갖게되고, 중앙에는 성소가 위치한다. "성소"는 너비가 25,000리드, 즉 사면으로 50마일( 정도의 크기이다. 에스겔서 45:5에 따르면, 한 리드란 6큐빗의 길이이다. 일큐빗은 일반적으로 18인치이다. 일 리드는 18인치에 손바닥의 너비인 3인치를 더한 21인치이다. 성소의 남쪽은 베냐민, 시므온, 잇사칼, 스불론 그리고 갓 지파가 자리잡고 있다.

"성소"는 다시 수평으로 3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북쪽 지역은 길이 25,000리드, 동서의 너비가 1000리드이다. 이곳은 레위 지파의 몫이다. 성소의 남쪽 지역을 레위지파는 농경지로 사용할 수있다. 농경지로 이용할 수 있는 남쪽 지역의 면적은 길이 25,000리드, 너비 5000리드이다(겔48:15-19).

정부가 자리잡고 있는 팔레스타인 땅의 중심지는 예루살렘이며, 예루살렘의 한 중앙에 성소가 위치한다. 성소는 옛날에 지어졌던 성전의 자리에 위치하겠지만, 그 크기와 규모면에서 구약의 성전보다 훨씬 크다. 에스겔서에 나오는 성전은 각 사면이 9마일이며 그 성읍의 외곽에 0.8km씩 있다. 이 성전은 새 예루살렘과 마찬가지로 각 면마다 3개씩의 문이있다(겔45:15-18, 30-35). 문의 이름은 야곱의 12아들의 이름을 따라서 붙여진다. 새 예루살렘에서 성전이나 지성소는 지어지지 않는다. 중앙에 주의 성소가 있을 뿐이다(겔48:10,20,21). 이것은 실로에 자리잡을 것이다. 실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 땅을 정복하고 성막을 세웠던 곳이다. 그 성막은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할 때까지 그곳에 있었다. 거룩한 길이라 불리는 대로가 있어서 새 도시의 성소로 향하게 해 줄 것이다(사35:8). 이 길은 양옆으로 가로수가 놓인 12마일의 아름다운 길이다.

새 성전, 즉 성소는 한면이 500리드, 약 1마일(1.6km) 정도의 너비이다(겔42:15-20). 솔로몬의 성전의 크기는 이것보다 작았다.

선지자 스카랴는 그날(천년왕국 때)을 이렇게 예언했다.

{그 날에는 생수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솟아나서 그 절반은 앞 바다(홍해)로 그 절반은 뒷 바다(지중해)로 흐르리니, 여름과 겨울에도 그러하리라}(스가랴 14:8).

"생수"의 "근원"은 예루살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성소안에 있다. 에스겔은 자신이 본 환상을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그는 동편을 향한 전의 문지방 아래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 전의 전면이 동으로 향해 있고 물이 제단의 남쪽에 있는 성전의 오른 편에서 나왔는데 수영을 할 수있을 만큼 충분히 많은 양이었다. 그곳은 음식 제물을 굽던 곳이다.

{그때 그가 내게 말씀하시더라. 이 물은 동쪽 지역으로 흘러 사막(예루살렘의 옆길)으로 내려가서 바다(사해)로 들어가나니, 바다(사해)로 들어갈 때 그 (사해의) 물들이 치유를(물의 소금기가 없어짐) 받으리라.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살아 있고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살 것이라. 또 이 물이 거기로 들어가므로 거기에는 매우 큰 고기떼가 있으리니, 이는 그 물들이 치유될 것이요 강이 흐르는 곳에는 모든 것이 살 것이라. 어부들이 그(사해) 위에 서리니, 엔게디(서쪽 해안)에서부터 엔에글라임(동쪽 해안)까지라. 이곳들은 그물을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들의 고기들은 그들의 종류대로 있을 것이며, 큰 바다(지중해)의 고기처럼 심히 많으리라. 그러나 거기 진흙 구덩이와 늪은 치유되지 못하고 소금이 주어지게 될 것이라. 뚝 위에 강가로 이편과 저편에는 양식이 될 모든 나무가 자라고, 그 잎사귀들은 시들지 아니하며, 그 과실도 다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로운 과실을 내리니, 이는 그 물이 성소에서 나옴이라. 또 과실은 양식이 되고잎사귀는 약이 될 것이라}(겔47:8-12). 계시록 22:1,2과 비교해 보라.

"새 도시" 가운데 있는 새 성소의 자리는 지중해보다 지대가 1200피트나 낮다. 사해는 지중해보다 낮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땅에 지각 변동이 이루어질 것이 분명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루어 질 것인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곳은 그분이 승천하신 올리브산이다(행1:8,9). 선지자 스카랴는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분명하게 예언해 놓았다.

{그(그리스도)의 발이 그 날에(그분이 재림하실 날) 예루살렘 앞 동편에 있는 올리브 산 위에 서시리니, 올리브 산은 그 중간이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생길 것이며, 산의 절반은 북쪽으로, 산의 절반은 남쪽으로 옮겨지리라.}

{온 땅이 게바에서 예루살렘 남쪽 림몬까지 평원처럼 바뀔 것이요, 예루살렘은 높여져서 그 곳에 사람이 거하게 되리니}(스가랴 14:4,10,11).

이 엄청난 지각 변동은 지진이나 화산과 같은 자연적 현상으로 이루어 질 것이다.

{보라, 주께서 그의 처소에서 나오시며 내려오시어 땅의 산당들을 밟으실 것이요, 산들이 그 분 아래서 녹고 골짜기들이 갈라지되 불 앞에 밀초같이, 비탈에 쏟아져 내리는 물같이 되리니,}(미가 1:3,4).

이 엄청난 지각 변동은 팔레스타인 땅의 표면을 평지처럼 만들어 놓을 것이며, 새로운 도시가 들어 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줄 것이다. 사해와 지중해로 물이 흘러 들어 갈 수 있는 높이의 지대가 형성될 것이다. 에스겔 선지자는 그 때의 예루살렘의 이름이 "주께서 거기 계시다(Jehovah Shammah)"가 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겔48:35). 천년왕국의 땅이란 도표를 참조할 것.


 

3. 성전과 예배

우리가 이미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성전이나 성소는 거룩한 구역의 중앙에 자리할 것이다. 성전과 뜰에 대해서는 에스겔서 40:1-44:31까지 완벽하게 묘사되어 있다. 에스겔이 묘사한 그러한 성전은 역사상 건축된 적이 없다. 그러므로 스룹바벨이나 헤롯이 건축한 성전을 에스겔의 성전이라고 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예언의 성취가 아니다. 에스겔의 성전은 천년 왕국때 이 지상에 세워질 성전이다. 이 성전은 새 땅에 속한 것이 아니다. 에스겔의 성전에서는 물이 솟아나서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하지만 새하늘과 새 땅에서는 더 이상 바닷가 없기 때문이다(계21:1). 지금 있는 땅은 천년왕국이 지나고 나서 불로 완전히 새로와진다. 거기에는 요단 강이나 지중해, 사막등이 있을 수 없다.

"아론의 계열에 따른 제사장" 직분이 다시 복원될 것이며, 사독의 아들들이 제물을 드리는 임무를 맡게 될 것이다(겔44:15-31). 새 성전은 옛 성전에 비해서 없는 것이 참으로 많다. 성전에 언약궤가 없다. 만나를 담아 놓은 그릇도 없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도 없고, 자비석도 없으며, 금 촛대도 없다. "빵 차리는 상"도 없다. 돌판도 없으며, 향제단도 없다. 백성의 죄를 대속하거나, 중보하기 위해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도 없다. 스카랴 6:12,13절을 보면 주님께서 친히 통치를 하시면서 대제사장이 되신다. 예레미야 23:5,6절의 "가지"(Branch)를 참조. 주님은 이 두가지를 겸직하신다.

레위지파가 성전의 직무를 감당하게 될 때, 그들은 자신들이 과거에 지은 죄로 인해 제사장적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겔44:10-14). 그들은 단지 아침에만 어린 양과 번제를 위한 음식제물을 드릴 수 으며, 저녁에는 드릴 수 없다(겔46:13-15). 그들이 드릴 제물은 "번제물", "음식제물", "술붓는 제물", "속죄 제물", "화목 제물"(겔45:17),과 "속건 제물"(42:13)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지켜야 할 두 개의 명절이 있다는 것이다. 첫째, 이들이 지켜야 할 명절은 유월절이다. 여기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속죄 사역을 예표하는 "유월절 어린 양"이 등장하지 않는다(겔45:21-24). 둘째, 이들이 지켜야 할 명절은 "장막절"이다. (스가랴 14:16-19). 이 명절들은 모든 민족들이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역병과 가뭄으로 치신다.

"오순절"의 명절은 이미 성취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사도행전 2:1-4에 기록되어 있는 "오순절"은 요엘2:28-32의 부분적인 성취일 뿐이다. 사도행전의 오순절에는 요엘서에 예언된 "하늘들과 땅에 이적들"이 보여지지 않았으며, "피와 불과 연기기둥들"도 없었다. 하지만 이 예언들은 "위대하고 무서운 주의 날"이 오기 전에 모두 성취될 것이다. 유대인의 민족적인 회심은 성령의 강력한 능력의 역사하심으로 일어날 것이며,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주의 성령이 부어 질 것이다. 이 일이 오직 이스라엘에게만 일어날 것인지, 다른 사람들에게도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요엘서의 예언 자체가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 쓴 것이므로 사도행전의 오순절에 일어나지 않았던 성령의 역사는 유대 민족에게만 한정적으로 부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녕,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에 계신 만군의 주를 찾으러 와서 주 앞에 기도하리라.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그 날들에는 열 사람이 민족들의 모든 언어에서 나와 붙잡으리니, 즉 유대인인 사람의 옷자락을 붙잡고 말하기를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리니, 이는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하리라."(스가랴 8:22,23). 그 날에는 이 세계에 단 하나의 종교밖에 없을 것이다(말1:11).

바빌론의 포로기에 성전을 떠났던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때 다시 돌아와(겔10:18-20, 11:22,23) 성전을 가득하게 채울 것이다(겔43:1-5).
 

4. 천년 왕국의 특징

(1) 사탄의 결박(계20:1-3).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더 이상 어떤 변명도 하지 못하도록, 가장 완벽한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실 것이다. 이것이 인류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시험이다. 인간은 여전히 죄가운데 살 것이고, 사탄과 연합하여 하나님께 반역을 저지를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앞에서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은 사탄때문이고, 그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난 완벽한 환경에서 산다면 결코 죄를 짓지 않았을 것입니다." 라고 변명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이런 요구를 들어 주실 것이다. 사탄은 결박되어서 끝없이 깊은 구렁에 가두어서 인간들에게 더 이상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도록 할 것이며, 인간들은 이제 외부의 적이 아닌 자신 안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죄성을 가지고 완벽한 환경에서 1000년간의 삶을 살면서 시험을 받을 것이다.

사람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통치와 성령의 복된 역사 아래에서 자신들을 검증받아야 한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이런 세상을 살아 본 적이 없다. 그들은 사탄의 지배 아래에서만 살아왔을 뿐이다. 하지만 이 기간에는 사탄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는다. 분명히 지금과는 다른 놀라운 세상일 것이다. 마음 속의 감정이나 악한 생각들을 자극하는 존재가 없어지고, 죄를 짓도록 유혹하는 존재도 없다. 인간들은 이제 화약은 있으되 폭발시키는 불이 없는 세상에 사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안에 내재하고 있는 뿌리깊은 죄성은 천년왕국이 끝날 무렵 그대로 나타날 것이다. 천년이 차면 사탄은 잠시 풀려 날 것이고, 그는 너무나 쉽게 민족들을 속여서 주님께 반역하도록 할 것이다.(계20:8).

천년 왕국의 기간동안에 "공중 권세 잡은 자"는 그의 보좌에서 쫓겨나고, "평화의 왕"이신 주님께서 보좌에 오르실 것이다. 큰 붉은 용이라고 불리는 사탄은 하늘에서 쫓겨날 때, 정사와 권세들과 자신에게 속한 어둠의 주관자들(엡6:12), 주님 보시기에 깨끗하지 못한 자들(욥15:15)과 모두 끌고 쫓겨날 것이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이 세상에는 절대로 평화가 있을 수 없다. 주님이 오셔야 민족들은 자신들의 칼을 녹여 보습을 만들 것이며, 자신들의 창들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다(미가 4:3,4). 이제 국가들은 더 이상 군비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며, 군사비에 해당하는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될 것이다. 군용 비행기나, 거대한 잠수함, 핵 전함을 만드는데 돈을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것들에 사용된 모든 철은 녹여져서 농기계를 만드는데 사용될 것이다. 전쟁 무기가 많은 나라일수록 포기해야 할 것도 많다. 이제 사람들은 전쟁 무기에 소비했던 모든 물자를 재활용함으로써 고갈났던 이 땅의 많은 자원을 보충할 수 있게 된다. 이 일에 어떤 정치적인 부정도 있을 수 없다. 조합이나 합병등이 없을 것이며, "환희의 해"의 법이 다시 세워지면 부동산의 양도도 있을 수 없다(레25:8017, 민36:4).
 

(2) 팔레스타인 땅의 회복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했을 때,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며, 모든 과실이 풍성한 땅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서 주신 안식일의 계명만 지키면 이 땅은 그들에게 풍성한 수확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자신들에게 주어진 축복을 스스로 망쳐 버리고 말았다. 하나님은 그 땅에 비를 주지 않으심으로써, 그들은 수확을 얻을 수 없었다(신11:13-17). 오늘날 팔레스타인은 땅의 토질면에서는 여호수아 때와 같이 여전히 비옥하다. 하지만 그 때처럼 비가 많이 내리지 않기 때문에 관개 수로가 잘 되지 않았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충분히 주시지 않으시지만, 천년 왕국 때에는 넘치게 주실 것이다. 이른 비는 10월과 11월에 내리는 비로써 땅을 갈고 씨를 뿌리는 시기에 내린다. 늦은 비는 4월과 5월에 내리는 비로써 풍성한 수확을 가져다 주는 비이다.

천년왕국 때에 팔레스타인 땅은 예전의 윤택했던 땅으로 되돌아 간다. 비만 충분히 내리는 것이 아니라 성전에서 흘러 나오는 수원(水原)으로 많은 강과 하천들이 생길 것이다.

{그날(천년)에 산들이 새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에는 젖이 흐를 것이요, 유다의 모든 강들(앞으로 생길 새로운 강)에는 물이 흐를 것이며, 주의 집에서 샘이 흘러 나와 싯팀 골짜기에 물을 대리라}(요엘3:18).

"산들이 새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란 표현과 "작은 산들에는 젖이 흐를 것"이란 표현은 온 산들에 포도나무가 심기워져서 풍성한 열매를 거둘 것과 엄청나게 넓게 형성된 목초지에서 많은 소들이 풀을 뜯을 것이며 거기에서 젖을 짤 것이란 시적인 표현이다.

이 때에는 엄청나게 많은 양을 수확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이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주가 말하노라. 보라, 그 날들(천년)이 이르리니 밭 가는 자가 추수꾼을 앞서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를 앞서리라. 산들은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요, 모든 작은 산들은 녹으리라}(암9:13).

{광야와 메마른 곳이 그들을 기뻐하고, 사막이 기뻐하며 장미처럼 피리라}(사35:1).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잣나무가 나오며 찔레를 대신하여 도금양나무가 나올 것이라. 그것이 주께 한 이름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할 영원한 표적이 될 것이니라}(사55:13).

{그때 땅이 그 소산을 낼 것이요}(시67:6).

{타작 마당들은 밀로 가득 차고 독들은 포도주와 기름으로 넘쳐 나리라. 내가 너희 가운데 보냈던 나의 큰 군대인 메뚜기와 자벌레와 풀쐐기와 모충이 먹었던 연수를 내가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 너희는 풍족이 먹고 만족할 것이며 너희를 경이롭게 다루셨던 주 너희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리라. 내 백성이(유대인)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요엘2:25-26).
 

(3) 동물들의 세계의 변화

{또한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울 것이요,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하며 어린 아이가 그들을 이끌리라.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들이 함께 누울 것이요,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으리라. 또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으리라. 그들은 나의 모든 거룩한 산(예루살렘)에서 해치거나 파괴시키지 않으리니, 이는 마치 물들이 바다를 덮음같이 세상이 주의 지식으로 충만할 것임이니라}(사11:6-9).

우리는 이 말씀을 읽을 때 영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 동물들은 아담이 타락하기 전, 에덴의 동산에서처럼, 노아의 방주 안에서 처럼 온순해 질 것이다. 땅의 회복과 함께 동물들도 온전히 구속받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동물들의 야성이 완전히 제거된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했다.

{모든 창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받는 것을 우리가 아노니 그들뿐만 아니라 성령의 첫열매들을 가진 우리까지도 속으로 신음하며 양자되는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느니라}(롬8:22-23).

인류가 죄의 결과로부터 빚어진 몸의 상태를 새하늘과 새땅에 살기에 알맞은 몸의 형태로 변화될 때까지 동물들은 기다려야 한다.
 

(4) 인간의 수명이 길어질 것이다.

{거기에는 날 수로 되는 아기도 자기 수명을 다 채우지 못한 노인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니 이는 백 세에 죽는 자가 아이요 백 세가 된 죄인은 저주를 받은 것이 될 것임이라}(사65:20).

백세가 어린 아이로 취급받는다면 어른은 몇살을 산단 말인가? 최소한 몇 백년은 살지 않겠는가?

{이는 내 백성의 수명이 나무(오크 나무)의 수명과 같겠고}(사65:22).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예루살렘의 거리들에는 여전히 늙은 남자들늙은 여자들이 살 것이며, 사람마다 나이 많음으로 인하여 손에 지팡이를 잡을 것이라}(스가랴 8:4).

이 때는 사람들이 최소한 홍수 이전에 족장들이 누렸던 수명으로 늘어나 살 것이다. 기후와 환경적인 변화로 인해 사람들의 수명이 길어질 것이다. 성소에서 흘러 나오는 "새 강"은 병을 치유하고, 장수를 누리도록 해 줄 것이며, 강둑에서 자라는 나무 잎사귀들은 "약"으로 사용될 것이다(겔47:12).
 

(5) 빛이 일곱배나 밝아 질 것이다.

{또 주께서 자기 백성의 터진 자리를 싸매시고 매맞은 상처를 치유하시는 날에, 달빛이 햇빛같이 될 것이요, 햇빛일곱 날들의 빛과 같이 일곱 배가 되리라}(사30:26).

천년 왕국 때의 "대기권"은 지금과 다를 것이다. 달이 지금의 낮처럼 빛나고, 태양은 지금의 밝기보다 일곱배나 될 것이다.

{태양이 더이상 낮에 네 빛이 되지 아니할 것이요, 달도 광명으로 네게 빛을 내지 아니하리니, 오직 주께서 네게 영원한 빛이 되시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시리라. 네 태양은 더이상 지지 아니하며 네 달도 물러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주가 너의 영원한 빛이 될 것이며 또 네 슬픔의 날이 끝나게 될 것임이라} (사60:19-20).

{그 도성은 해나 달이 그 안에서 비칠 필요가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 곳을 비추고 어린 양이 그 곳의 빛이 됨이라. 그리하여 구원받은 자들의 민족들이 그 도성의 빛 가운데서 걷겠으며 땅의 왕들이 그들의 영광과 존귀를 그 곳으로 가져오리라}(계21:23-24).

천년왕국 때의 이스라엘 민족의 임무는 이방민족들의 빛이 되는 것이다. 이 때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들 가운데 으뜸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주께서는 너를 머리가 되게 하시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신28:13).

현재 이스라엘은 머리가 없이 몸만 가진 민족이다. 오늘날 그들은 이 세상에서 최고의 민족이 아니다. 그 때에는 열방의 우두머리가 될 것이다. 만약 이스라엘을 섬기지 않는 민족들은 하나님께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용감히 행하리니, 주는 우리의 원수들을 밟으실 분이심이니이다}(사60:12).

주님은 천년이란 기간동안 철장으로 다스리실 것이다. 시편 2:6-9에는 메시아 왕국의 통치 방법이 잘 드러나 있다. 천년 왕국의 통치기간에도 하나님의 뜻은 하늘에서 이루어지신 것같이 땅에서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천년이란 기간 동안에 각 나라들 사이에 있을 평화는 진정한 평화라기 보다는 어쩔 수 없는, 또는 가식적인 것이다. 사람들은 주님께 순종하는 형식만 취할 뿐이다. 사탄이 풀려나서 사람들을 미혹할 때 그들은 적극적으로 사탄에게 동조해서 주님께 반역을 할 것이다. 사탄이 끝없이 깊은 구렁에서 풀려나서 이 땅에 오면, 이미 자신의 거짓말을 믿을 수많은 사람들이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탄을 맞이할 준비를 해 놓은 듯이 그에게 동조하고 순종할 것이다. 그는 온 땅에서 사람들을 모아서 역사상 가장 큰 군대를 모집하여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사탄은 "성도의 진영"을 감싸고, 곧 이어 "사랑하시는 도성"을 에워 쌀 것이다. 이 때 하나님께서 반역자들을 무찌르기 위해 "하늘의 군대"를 내려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불"을 내려 보내서 다 삼켜 버린다. 그들을 미혹했던 사탄은 산채로 불못에 던져져서 밤낮으로 영원무궁토록 고통을 받게 된다.

이상에서 우리는 "천년왕국의 경륜"에 대해 공부했다. 앞서 공부했던 여섯 경륜와 마찬가지로 천년의 기간이 끝날 때는 배교로 막을 내린다. 하나님께서는 "무죄의 경륜," "양심의 경륜", "인간 정부의 경륜", "한 가족을 불러 내신 경륜"(노아), "율법의 경륜", "은혜의 경륜" 그리고 마직막으로 "주님이 직접 다스리시는 경륜"를 통해서 인간에게 기회를 주셨지만 인간은 아무런 희망이 없으며, 형편없이 변질되었으며, 심판을 제외한 어떠한 처방도 있을 수 없는 존재임을 증명해 주었을 뿐이다.

이 계시는 1000년이란 긴 시간 동안 땅에서 살면서, 그것도 사탄의 영향력도 받지 않는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그에게 동조하여서 하나님께 반역을 꾀하였다면, 이제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하실 수 무슨 일이 더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인간적으로 말한다 해도, 인류를 멸하는 길이외에 선택의 길이 있겠는가? 또 다시 홍수를 일으키셔서 모두 쓸어 버리시지 않으시겠는가? 하지만 주님은 이런 방법을 쓰실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다시 땅을 물로 심판하시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창9:11).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즉 하나님께서는 불로써 이 땅을 정화시켜 버리시는 것이다(벧후3:7).

 

 

14. 영의 세계

성경에는 "초자연적인 일들"이 매우 많다. 오늘날 팽배하고 있는 "물질주의(Materialism)"를 치료하는 길은 성경에서 계시된 "영의 세계"를 발견하는 것이다. "자연" 세계와 "영"의 세계는 한 발자국의 차이밖에는 없다. 이 두 세계를 분리시키는 장막은 우리의 "육신적인" 몸이다. 영적인 존재들의 거처는 "하늘들"이다. 그들은 선하거나 악한 두 부류로 나뉘어져 있다. 성경에 그들은 "스랍들(세라핌:Seraphim)", "그룹들(체루빔:Cherubim)", "천사들"(선하거나, 악한), "정사들(Principalities)", "권세들(Powers)", "이 세상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영적인 악"(엡6:12), "보좌들(Thron)", "주권들(Dominions)"(골1:16), "타락한 천사들"(벧후2:4), "감옥에 있는 영들"(벧전3:18-20), "마귀들", "미혹하는 영들",(딤전4:1)등으로 분류된다.

"스랍들"은 세쌍의 날개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만군의 를 모시고 그의 거룩함과 영광을 우러러 섬기고 있다.(사6:1-8)

에스겔1:4-25; 10:1-22에 묘사된 네 "그룹들" 또는 "생물들"의 날개는 두 쌍 밖에 없지만 "네 개의 얼굴"이다. 그 첫째는 "그룹"의 얼굴, 둘째는 "사람"의 얼굴이고, 셋째는 "사자", 넷째는 "독수리"의 얼굴이었다. 또한 그들은 각각 날개 아래에는 "사람의 손"의 형상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를 지키는 파수꾼의 역할을 한다.

계시록4:6-8절에 나오는 "네 짐승", 혹은 "네 창조물(Living Creature)"은 각각의 얼굴이 네개씩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있다는 것이 에스겔서에 나오는 "생물"과 다른 점이다.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으며, 셋째 생물은 "사람"과 같은 얼굴을 가졌고, 넷째 생물은 날아다니는 "독수리" 같더라. 네 생물은 각각 "여섯 개의 날개"를 가졌고 그 날개 주위와 안쪽에는 눈들로 가득하였다. 에스겔서1:28이나 요한계시록4:3에는 모두 "무지개"가 언급되어 있는데 이는 그 형상이 하나님의 보좌와 연관되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스랍들", "그룹들", "천사들" 그 밖의 모든 "하늘의 존재"들도 모두다 피조물이다. 즉 그들은 영원 전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다.(골1:16)

천사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히12:22). 그들은 큰 능력(mighty)을 지녔지만 전능(almighty)하진 못하다.(살후1:7) 그들의 힘은 뛰어나다. 천사 한 명이 하룻밤에 18,500명의 앗시리아 군대를 멸망시켰다. 한 천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 입구를 막은 큰 돌을 굴려 버렸고, 또 한 천사가 사탄을 결박하여 "끝없는 구렁"으로 던져 넣을 것이다. 그들은 영광스러운 존재들이며(눅9:26)."많은 지식"을 지녔지만 "전지(全知)"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장가들지도 않으며 시집도 가지 않는다(마22:30). 이것은 성이 없거나 번식의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모든 천사들은 남성으로 기록된다. 엄청나게 많은 수로 창조되었고 죽지 않기 때문에(눅20:36) "번식"은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창세기6:1-4절에서와 같이 분명히 그러한 능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과 동침하여 다른 부류의 "힘센(mighty) 사람"들이 태어났다. 노아 홍수의 원인에 대한 내용 2장을 참고하라. 이것으로 천사들도 죄를 지을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천사들은 구원의 상속자가 될 자들을 위하여 섬기도록 보내심을 받은 "섬기는 영들"이며(히1:13,14) 또한 "하나님의 진노"를 "악한 자들"에게 집행한다. 그들은 땅의 네 끝에서부터 선택받은 이스라엘을 모으며(마24:31),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물질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 주는 것이 맡겨져 있다(마4:11;왕상19:4-8).

마귀들은 천사의 부류에 속하지 않는다. 그들은 "육체가 없는 영들"이며, 이들은 아마도 아담 이전 땅에서 살던 자들로 죄로 인하여 몸에서 분리되었으며 이 땅은 그들로 인하여 혼동 상태로 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 근거로써 그들은 인간의 몸을 다시 소유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사악하며 더럽고 악독하며 마음과 몸을 혼란스럽게 하거나 미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마12:22;15:22; 눅4:35;8:26-36;9:42). 이들은 구약에서의 "일반적이 영들"이며 바울이 경고한 "미혹하는 영들"이다(딤전4:1).

성경에는 삼위일체이신 하나님 외에 특별한 세 인격체가 언급되어 있다.

1. 미카엘

미카엘은 다니엘서에 3번 언급되어있다.(단10:13,21;12:1) 다니엘의 백성(유대인)들에게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불리고 있다. 또 유다서9절에는 천사장으로 불린다. 계시록12:7에서 그는 "하늘의 군대"를 지휘하여 마귀와 싸우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의 백성, 특히 유대인들을 구원해 주고 나중에는 사탄과 그의 천사들을 하늘에서 땅으로 내어쫓는 일을 한다(계7-9). 또한 그는 죽은 자의 부활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는 다니엘12:1-2절에 언급된 "부활"과 관련이 있고, 모세의 몸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었으며(유6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일어날 때 들릴 "천사장의 소리"(살전4:16)도 미카엘의 소리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성경에서 언급된 유일한 천사장이다.

2. 가브리엘

가브리엘이라는 이름은 다니엘서에 두 번, 누가복음에 두 번 언급되어 있다. 그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그는 다니엘에게 나타나(단8:16,9:21-27) 그리스도의 초림 시기을 알려 주었고, 그 때가 왔을 때에는 사가랴에게 그리스도의 앞에 먼저 올 "침례 요한"이 태어날 것을 알려주었으며 마리아에게는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했다(눅1:19,26,27) 그의 직분은 하늘에서 높은데, 그 이유는 사가랴에게 자신에 관해 "나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했기 때문이다.

3. 사탄

우리가 사탄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언급한 이유는 그가 세 존재 중 가장 약해서 아니며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가장 능력이 많지만 그가 지니고 있는 악한 성격 때문이다. 그는 전 우주에 일어나는 모든 반란과 혼란의 근원이다. 그의 역사를 알아 보려면 "사탄"에 관한 내용과 도표를 참고하라.

이제 인간과 영적 세계와의 관련을 숙고해보자. 인간은 두 세계 즉 육신의 세계와, 영의 세계로 이루어져 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보낸 서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화평의 하나님께서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너희의 온 ""과 ""과 ""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책망할 것이 없게 보존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하노라}(살전5:23).

바울은 히브리서에서도 기록하기를. . . .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양 날이 있는 어떤 칼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 그리고 "관절과 골수(몸)"를 찔러 가르고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판별하느니라}(히4:12).

이러한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은 삼위일체로서, ""과 ""과 ""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고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시다. 식물이 동물과 다른 점은 "의식"이 없다는 것이며, 동물과 인간의 생명의 차이점은 동물에게는 "살아있는(의식 있는) 혼" 만이 있을 뿐인데, 사람은 "영"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에 사람이 영이 있다는 면에서 짐승과 다르지만 그의 육신만 본다면 동물에 불과하다. 즉 인간의 몸은 그 기능에 있어서 동물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호흡, 소화, 성장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인간의 "자연적인 몸"에 대해 말할 때에는 '동물적인 육신'을 의미하는 것이다. '영의 몸'에 대해서 말할 때도 "영적인 몸"은 "어떤 공기 같은 물질"로 된 몸(영체;spirit body))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형체를 갖추고 있으면서 다만 자연 법칙이 아닌 영적 법칙으로 규제되고 조정되는 몸을 가리킨다. 둘 다 "물질"로 구성되어 있지만, '자연적인 몸'은 우리가 살고 있는 "물질 세계의 법칙"에 알맞게 되어 있듯이 반면에 우리가 입을 '영적인 몸'은 "영적 세계의 법칙"에 알맞은 몸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영적 세계에 대해서 더욱 분명한 가르침을 줄 것이다. 영적이란 말을 주로 물질 세계를 초월해서 몸의 종교적인 고행에 하지만 이것은 잘못이다.

"사람의 삼중성"은 성막의 설명을 통해서 알 수 있을 것이다(출25장). 성막은 하늘의 실체에 대한 완전한 모형이다. 성막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지는데, 곧 뜰, 성소, 지성소이다. 뜰은 세마포로 둘러싸여 있다(출27:9-15).(성막에 관한 도표를 참조하라) 이것은 외부 세계와 구분되는 곳이다. 동편 문으로 들어가면 먼저 번제단이 놓여 있고 물대야가 있다. 그리고 그 뜰을 절반으로 나누면 서쪽편으로 성막이 있다. 성막은 두 부분으로 구분이 되는데, 그 중 지성소는 성소의 절반의 크기이다. 동쪽 문을 통해서 들어오면 오른쪽에는 차려 놓은 빵이 있고, 왼쪽에는 "일곱 촛대"가 놓여 있으며, 정면으로는 휘장 앞쪽으로 금으로 만든 향단이 놓여 있다.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분리시켜 주는데, 성소에서 지성소로 들어 갈 수 있는 유일한 출입구이기도 하다. 휘장을 열고 지성소로 들어가면 그 안에는 언약궤가 있고, 그 뚜껑 위에는 그룹들의 형상이 있으며, 그 그룹들 사이에는 성소로 들어가는 문이 있고 그곳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시는 지성소로 들어간다.

성막과 그 마당은 "사람의 삼중성"과 같은 형태이다. "마당"은 몸, "성소"는 혼, "지성소"는 영을 의미하며 마당에서 "지성소"로 통하는 길은 오직 "성소"를 통하는 길 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몸과 영도 혼을 통하지 않고는 연결될 길이 없다.

성막이 다 완성된 후에도 "하나님의 영"이 내려와 지성소에 거하시기까지는 "하나님의 임재"하시지 않은 채로 비워져 있었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육과 혼과 영이 완전한 것 같아도 성령이 사람의 영에 들어와 그 영을 다시 살리시고, 안에 거하시기 전까지 사람의 영은 거듭나지 못한 상태에 남아 있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탄생"을 할 때 일어난다.

사람이 죽을 때 사람의 혼과 영은 몸으로부터 분리되어 몸은 무덤으로 간다. 하지만 혼은 몸의 형태가 없는 것이 아니다. 혼은 바울이 말했듯이 "자아" 즉, "혼적인 몸"을 입는다. 이것을 복숭아에 비유하면 복숭아는 세 부분, 즉 "껍질"과 "과육"과 "씨"로 이루어진다. 복숭아의 껍질이 사람의 육에 해당된다면 과육은 "혼", 씨는 "영"에 해당된다. 즉 복숭아의 껍질을 벗겨내도 복숭아의 과육이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죽으면 사람의 "몸"은 "혼"과 분리되지만 "영"은 여전히 "혼"이라는 몸을 입고 있기 때문에 "몸"의 모습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이 "혼"은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느끼고, 기억하기 때문에 분명히 만져 볼 수 있는 어떤 형태를 지니고 있음이 분명하다. "혼"은 유령과 같은 모습이 아니다. 또한 "혼'이 활동하는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는데 왜냐면 부활할 때 완전한 육신을 입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혼적인 몸"이 있다는 것은 "부자와 나사로"의 내용에서 알 수 있다(눅16:19-31). 이 내용은 비유가 아님은 실제 인물인 나사로라는 이름을 등장시킨 것으로 알 수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자연인이 볼 수 없는 다른 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 묘사해 주신 것이다. 여기서 나사로와 부자는 모두 죽어 몸은 장사되었다(Buried). 그들의 몸은 땅에 남아 있었다. 즉 이 "지하세계(Underworld)"에서 일어난 사건은 "육신으로부터 분리된 상태(disembodied state)"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 상태에서도 그들은 의식이 있었고 부자는 나사로를 알아보았으며 만일 나사로가 지상에 남겨둔 "썩는 몸"이 아닌 "혼적인 몸"을 입고 있지 않았다면 그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것은 "혼적인 몸"의 모습은 지상에서 지녔던 육체와 일치한다는 증거가 된다. 그렇지 않다면 그 몸을 다른 세계에서는 알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부자는 보고, 만지고, 목말라하고, 말하고, 기억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그가 감각할 수 있는 동시에 자기 개성을 잃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이것은 이 "지상의 생명"에서 "영적 생명" 옮겨져도 "혼이 잠들거나", "무의식 상태"가 되지 않음이 증명된다. 인생의 한 과정과 마찬가지이다. "유아기"의 생활에서 소년기의 생활로 소년기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듯이 부활할 때는 혼의 생활에서 부활한 몸을 입고 생활할 것이다. 우리의 겉모습은 변해도 나는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옷을 입고 있을 때나 옷을 벗고 있을 때 자신의 몸은 변하지 않는다. 이처럼 죽음으로 인해 자신의 몸을 벗어버려도 자신의 겉모습만 달라질 뿐 자신의 인격이나 몸의 형체는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성경 여러곳에서 믿는 자들에게만 "잠을 잔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것은 혼에 대한 것이 아니라 육신은 부활할 날까지 일으켜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육신에 대하여 잠을 잔다라는 표현을 한다.

"사람의 삼중성"에 대하여는 도표에 잘 나타나 있다 .

 

"사람의 삼중성"

가장 바깥을 둘러싸고 있는 원은 사람의 몸, 가운데는 혼, 가장 안쪽은 영을 가리킨다. 또한 바울은 사람을 "육신적인 사람"과(고전3:1-3); "자연인"(고전2:14); "영적인 사람"(고전3:1)로 나누고 있다.

가장 바깥에 있는 몸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을 보고, 느끼는 감각기관으로써 물질 세계를 접하고 있다. 혼은 육체의 다섯가지 감각기관을 이용하여 물질 세계를 연구하고 사고하여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외부와 교류를 갖는 역할을 한다. 혼으로 들어가는 문은 상상, 의식, 기억, 사고, 감정이다.

상상의 문(Imagination)은 육체의 시각에 해당되는 것으로써 혼에 있어서 보는 눈과 같은 것이다. 의식의 문(Gate of Conscience)은 육체의 후각에 해당되며 혼이 선악의 존재를 구별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기억의 문(Memory)은 청각에 해당되며 전에 들은 것을 혼이 재생하도록 한다. 사고의 문(Reason)은 미각에 해당되며 맛으로 음식을 비교하듯이 혼이 사실을 비교하게 해준다. 애정의 문(Affection)은 촉각에 해당된다.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져서 알 수 있듯이 혼은 정감에 의해 느낄 수 있다.

"영"(spirit)은 "혼"(soul)과 "몸"(body)을 통해서 외부의 물질을 이해한다. 영의 감지능력은 영적인 것으로써 믿음, 소망 경배, 기도 등의 일을 한다.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는 인간의 영은 하늘로부터 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아담이 타락하자 죄는 영의 창문을 닫고 커텐을 쳐버렸으며 "영의 방"은 "죽음의 방"이 되어버렸다. 지금도 거듭나지 못한 영은 죽은 상태로 남아 있다. 성령의 능력으로 ""과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생명이 그 방안에 거해야 빛과 생명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그때서야 비로써 우리는 왜 "자연인"이 "영적인 일"들을 이해할 수 없었는가를 알게 된다. 영적인 본성이 거듭나기까지는 영적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자연인의 영은 어둠속에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의지(Will)"가 문 앞에 있다가 성령이 들어오려는 것을 방해한다. 성령이 그 사람의 "영"에 들어와 취하여 거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칼"인 "하나님의 말씀" 앞에 의지가 굴복해야만 한다.

"선"과 "악"의 전쟁터는 인간의 "혼"이다. 성경이 사람의 "영"에 자리잡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성령은 도표에서 보듯이 "혼"과 "육"에도 접근해야 한다. 그 때까지는 사람이 성화될(Sanctified) 수 없다. 왜냐하면 "거룩함"이라는 것은 영과 혼과 몸이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혼과 영은 건강한 몸을 필요로 한다. 몸이 육신의 정욕이나 또는 몸을 쇠약하게 하는 지나친 금식은 혼과 영이 함께 고통을 받아 전체가 영적으로 병들게 된다.

이제 혼과 영이 몸을 떠나 뒤의 상태를 살펴보자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지하 세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지하 세계"는 둘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 사이는 건널 수 없는 구렁이 있으며 그것을 "끝없는 구렁"이라 한다. 이 곳은 악한 영들(마귀들)이 일시적으로 묶여 있을 곳이다. 그 곳에는 있는 왕은 "아폴루온(Apollyon)"인데 하나님께서 가두어 두셨다가 원하실 때에 천사를 시켜 잠깐 풀어 주실 것이다(계9:1-11;17:8;20:1-3). "영의 세계"와 "부활들과 심판들"의 도표를 참조하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기 전에 죽은 의로운 사람들의 혼과 영은 "지하 낙원"에 있었다. 거기서 그리스도는 십자가 상에서 죽었던 "회개한 강도"를 만나셨다. 그리스도의 혼과 영은 그가 부활하신 날 지상으로 돌아 오셨으나 주님은 혼자 오신 것이 아니었다. 낙원에 있던 모든 자들을 함께 데리고 올라오셨으며 그후 낙원의 문은 잠그셨고 지금은 사망과 지옥의 열쇠를 갖고 계신다.(계1:18) 여기에서 "사망"이란 무덤을 말한다. 그들은 몸을 입고 무덤에서 일어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한 첫 열매들로 주님과 함께 하늘로 올라갔다(마27:52,53). 그들은 "셋째 하늘"로 올라갔는데 그곳은 사도 바울이 갔던 곳(고후12:1-4)이었다. 바울은 그 곳을 낙원이라 불렀다.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이후 죽은 모든 의로운 자들은 그곳으로 가서 "주와 함께" 있을 것이다(빌1:23,고후5:8).

그곳에서 의로운 자의 혼들은 자기들의 몸이 부활할 때까지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신부인 교회를 만나시려고 공중에 오실때 주님은 "셋째 하늘"의 낙원으로부터 이 의로운 혼들을 데려오실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4:14에는 "예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우리가 믿는다면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예수 안에서 잠든 자들"도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땅으로 내려와 자신들의 몸을 되찾아 무덤에서 일어나서 "변화 받은 성도들"과 함께 올라가 공중에서 그리스도를 만날 것이다.

그러나 죽은 "악한 자"의 혼은 계속 "지하 세계"의 "지옥의 한 부분"에 갇혀 있다가 두 번째 부활이 이루어질 때 땅으로 돌아와 자신들의 몸을 다시 입고 "큰백보좌 심판석" 앞에서 심판 받게 된다. 그들은 그 심판에서 "둘째 사망"의 선고를 받게 된다. 그들은 다시 죽어서 육신을 잃게 되며 몸에서 이탈된 혼은 불못에 던져져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게 된다. 혼은 불에 타지 않으므로 악한자의 혼은 "둘째 사망"으로 육체에서 떠난 상태에서 글자 그대로 영원히 불 가운에 있게 된다.

땅이 "불로써 타버리면(Renovated)" 사탄을 비롯한 하늘의 모든 "악한 권세들"은 갇히게 될 것이며 그때 하늘은 악하고 반란을 일으켰던 모든 영들로부터 "깨끗하게" 될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사람은 타락이전의 아담의 상태로 회복되며 자연계와 영의 세계 사이에 있는 "장막"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15. 심령술 (Spiritualism)

 "강신술"(spiritualism), 혹은 "영성술"(spiritism)은 이미 죽어 떠난 "영들"과 교통하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다른 이름으로 불사주의(Immortalism)라고도 하며 최근에는 "심령학(Psychical Research)"이라는 이름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성경적인 이름은 "마귀숭배(Demonism)"이다.

이것은 성경에서 금지하고 있다.

{또 돌이켜서 '신접한 자들(Familiar Spirits)'과 '마법사들'을 따라 그들과 음행하는 혼은 내가 그 혼을 외면하여 그의 백성 가운데서 그를 끊으리라}(레20:6).

{신접'하거나 '마법사'인 남자나 여자는 반드시 죽이되 돌로 그들을 칠지니 그들의 피가 그들 위에 있으리라}(레20:27).

{자기 아들이나 자기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자나 '점치는 자'나 '때를 살피는 자'나 '마법사'나 '무당'이나 '마술사'나 '부리는 영들에게 묻는 자'나 '박수'나 '강신술사'를 너희 가운데서 보이지 않게 할지니라}(신18:10-11).

{그때에 그들이 너에게 말하기를 '신접한 자들'과 엿보고 중얼거리는 '마술사들'에게 구하라." 하리라. 백성이 자기들의 하나님께 구해야 되지 않겠느냐? 산 자들을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 구하겠느냐?}(사8:19).

구약에 나오는 "신접한 자들"의 신은 신약의 "마귀들"이나 "미혹하는 영들"을 가리킨다. 신약성경에서 최근에 유행하는 "심령학"에 관하여 경고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제 성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때(이 시대의 마지막 날들)에 어떤 자들이 믿음에서 떠나(즉, 그리스도의 믿음을 버럼) '미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들'을 따르리라." * * 혼인을 금하고 음식(meet)을 삼가라고 명하리니}(딤전4:1-3).

아마도 "혼인을 금하고"란 구절은 "독신 생활"만을 의미하지 않는 것 같다. 이는 정상적인 "결혼 관계의 폐기"를 의미한다. "자유 연애(free love)"의 실천과 "양성론(Affinities)"은 바로 영성술이 추구하는 바이다. 또한 "음식(meet)을 삼가라"는 구절은 "금식"을 하라는 의미가 아닌데, 이것은 "채식"을 요구하는 것이다. 잘 알고 있듯이 "채식"만 하면 "육식"을 하는 것보다 훨씬 육체가 신접하기가 쉽다.

이러한 말들과 사도의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경고는 "불경스럽고 늙은 여인들에게나 걸맞는 꾸며낸 이야기(Old Wives' Fables)를 버리고"이 마지막 날의 주의들(ISMS)에 관한 확실한 참고 구절이다. 왜냐면 크리스찬 사언스(Christian Science)는 단지 "늙은 여인들"의 꾸며낸 이야기일 뿐이다. 왜냐면 창시자 에디 여사(Mrs. Eddy)는 여러번 결혼을 했었던 "늙은 여인"(Old Wife's)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대부분의 마녀와 신접한 사람들은 이 마지막 날들에도 여자인것은 논쟁할 여지가 없다. 사탄이 인류를 파괴하려고 시도했을때 아담이 아니라 이브였다. 그 이유는 아마도 여자의 예민성과 쉽게 감정에 영향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또한 또한 계시록9:1-12절에서 마지막 때에 끝없이 깊은 "구렁의 천사들"과 메뚜기들이 사람들을 해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아마겟돈 전쟁에서 불결한 세 영, 즉 마귀들의 영들이 온 세상의 왕들을 모은다(계16:13-16). 또 계시록18:2절에서는 다시 재건된 바빌론이 멸망하기 전에 먼저 "마귀들의 거처가 되었고 온갖 더러운 영의 소굴이요, 모든 더럽고 가증한 새의 소굴이로다."라고 한다.

그러므로 "영성술"의 부흥은 하나의 "마지막 때의 표적"으로서,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참된 자녀들에게 주는 경고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아! 슬프도다. 수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러한 "위험한 때"에 경고를 알지 못하여 은밀히 침투하는 영성술에 거의 무방비 상태인데, 왜냐면 그들은 마귀에 대한 교리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귀들에 대한 연구

신약의 흠정역(KJV)은 마귀론에 있어서는 헬라어보다는 덜 분명하다. 왜냐면 "diabolus", "daimonion" 그리고 "daimon"이 모두 "마귀"(devil)라는 한 단어로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diabolous"(Devil)라는 단어는 "기만자" 또는 "속이는 자"란 뜻으로 신약에서는 단수이며 35회나 등장한다. "diamonion"과 "diamon"은 둘 다 신약에서 단수와 복수로 함께 사용되었지만 절대로 "diabolous"와 혼용되는 일은 없었으며, "마귀", "악", "더러운 영"으로 번역될 수 있다. "diamonion"은 56회 등장하며 "daimon"은 5번 등장한다.

마귀(the Devil)는 하나이지만 마귀들(demons)은 수 없이 많으며 "비엘세블"(Beelzebub; Satan)은 마귀들(the demons)의 왕이다(마12:24-30), 사탄은 무소부재의 능력은 없기 때문에 사탄이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많은 일들이 실제로는 마귀들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한 것과 같이 중요한 경우에는 사탄 자신이 직접 행한다. 마귀들은 "어두움의 권세"에 속해 있는데 그들의 수는 적지 않으며, 사탄을 위하는 일에는 강한 "군대"로써 행한다. 그들의 본거지는 "끝없는 구렁"이며, 자기들의 왕이 명령을 내리면 그곳에서 몰려나온다(계9:1-11).

그들은 천사가 아니다. 천사들은 몸을 지니고 있다. 마귀들은 인간이나 동물(복음서에서는 돼지에게 들어간 예가 있음)의 몸안으로 들어가거나 몸을 소유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을 볼때 그들은 몸이 없는 영적 존재(Disembodied spirits)들임을 알 수 있다. 마귀들은 아담이 지음받기 이전에 이 지상에 거주하는 영들이었다고 추측되며, 그들의 죄가 그들을 파멸시켰으며 돌이킬 수 없는 재앙(catastrophe)에서 몸을 잃어버린 것 같다. 그들의 희망과 목표는 인간의 몸에 자신들이 들어와서 새롭게 몸을 입고 그들이 예전에 살았던 이 지상에서처럼 다시 사는 것이다. "마귀들"도 한 인격체라는 것은 예수님과 그들과의 대화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눅8:26-33). 그들은 보통 이상의 지능을 지니고 있으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자신들이 마지막에는 결국 "형벌"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마8:29).

인간의 몸에 미치는 마귀들의 능력

마귀들은 벙어리(마9:32-33), 장님(마12:22), 미친 자와(눅8:26-35), 자살자와(막9:22), 자해자를(막9:18,20) 만들 수 있으며, 초능력을 공급해 줄 수 있고(눅8:29). 사람들을 육신적인 결함불구자(Deformities)로 만들 수도 있다(눅13:10-17). 사람이 일단 마귀의 영이 들어오면 마귀는 자유로이 드나든다(눅11:24-26).

마귀들이 지니고 있는 악함은 그들의 희생자들을 다루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마귀들은 그 포로들을 "불의의 병기"(롬6:13) 이용하여, "마귀들의 가르침"(딤전4:1)을 가르치고, "저주받을 이단들"(벧후2:1)을 불러들인다. 이렇게 희생된 사람들은 비도적일 뿐 만 아니라, 음란(Immoral)하다. 마귀에게 사로잡힌 남녀들의 행위를 보면 마귀들은 육신의 관능적 쾌락을 충족시키기 위해 사람들을 사로잡는 것 같은데, 이것은 아담 이전의 재앙의 원인의 비밀이 "관능적인 죄(Sin of Sensuality)"였음을 추측케 한다. 마귀들에게 희생된 사람들은 벌거벗은 상태로 살려고 하며, 방탕하고 음탕한 생각을 하는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인 것 같다. "미혹하는 영"이 더욱 활개치는 최근 단정하지 못한 옷차림이 유행하고 춤에 열광하는 풍조도 이 때문일 것이다. 마귀들은 가정을 파괴하기 위해 "자유 연애(Free Love)"의 가리침을 전파함으로 남편과 아내 사이를 갈라놓는다. 간단히 말하면, 마귀들은 자기의 만족을 위해 일단 포로로 사로잡으면 몸과 마음을 어지럽히고 희생자의 건강을 망쳐놓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마귀들의 쫓아내는 권세를 지니신 그리스도께 돌아오지 않고서는 희생자들 구속을 받을 없으며, 그렇지 않으며 희생자들은 혼과 몸을 잃어버릴 것이다.

마귀들에 사로잡힌 것과 착각해서는 안될 병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간질병"이다. 이는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입에 거품을 내뿜으며, 이를 가는 질병으로서, 성경에서는 이러한 질병과 마귀에게 사로잡힌 것과는 구분하고 있다.

{그의 명성이 온 시리아로 퍼져 모든 병든 자, 즉 갖가지 질병과 통증으로 고통받는 자들, 마귀들에게 사로잡힌 자들(demon possed), 정신병자들, 중풍병자들을 그에게 데려오니 그들을 고쳐 주시니라}(마4:24).

고린도전서10:20-21절을 읽어보면...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방인들이 제사하는 것마귀들에게 하는 것이지 하나님께 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너희가 마귀들(Demons)과 교제하는 자들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아니하노라. 너희는 '주의 잔'과 '마귀들(Demons)의 잔'을 함께 마실 수 없으며, 너희는 '주의 식탁'과 '마귀들(Demons)의 식탁'에 함께 참여할 수 없느니라}.

이 구절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모든 이교도 종교 이면에는 "마귀들이 영" 또는 "마귀 숭배(Devil worship)"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왜 이교도의 종교의식이 그처럼 격렬하고 방탕하며 거칠고 흥청망청인지 잘 설명이 된다.

"마귀들"이 "점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신약 성경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그 후 우리가 기도하려고 나가서 점치는 영에 사로잡힌 어떤 소녀를 만났는데 그녀는 점을 쳐줌으로써 자기 주인들에게 상당한 수익을 얻어 주더라. 그녀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오면서 외쳐 말하기를 "이 분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들이라.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전하신다."라고 하더라. 그 소녀가 여러 날을 이렇게 하므로 바울이 마음이 아파서 그 ''(Evil spirit, Demon)을 향하여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네게 명하노니 그녀에게서 나오라."고 말하니 그 즉시로 나오더라}(행16:16-18).

문맥으로 보면 이 소녀는 무당(Medium;매개체)으로써 "악한 영" 또는 "마귀"의 도구가 되어 자신들의 일을 행한 셈이다. 이것이 지금의 "무당"의 근원을 밝혀주고 있다. 무당들이 알고 있는 내용들은 그들이 불러냈다 하는 죽은 사람이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사로잡은 "마귀" 또는 "악한 영"이 알려 준 것이다.

만일 이 세상과 육신에서 벗어난 영들과의 교통에 있어서 이러한 방법 외에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무엘상28:6-25절에 나오는 사무엘의 경우이다. 사무엘이 실제로 나타났는지 "악한 영"이 그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 것인지는 확실하지는 않다. 하지만 기록이 너무나 상세하고 엔돌에 신접한 여자 자기가 전에 결코 알 수 없었던 사무엘이 나타나 신접한 자신이 매개체(medium)로서의 도움 없이도 사울과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놀란 사실을 보면, 사무엘이 실제로 나타났었다는 것이 확실하다. 하나님은 사울을 질책하시기 위하여 그를 보내셨다. 이러한 예외는 더욱 무당의 일을 확실히 알려 주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사무엘이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였으므로 나타난 것은 사무엘이 아니라 "악한 영"이라고 주장한다. 즉 사울과 그의 아들들은 사무엘이 있는 곳에 가지 못하리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영의 세계"를 다룬 앞 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사무엘이 올라 온 "낙원"과 "지옥"은 이 때는 다 같이 "지하세계"에 있었으며 단지 "커다란 구렁"으로 나누어져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는 말은 "커다란 구렁으로" 나누어져 있기는 하지만 동일한 지하세계에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사울의 죽음이 그가 신접한 여자에게 조언을 청한 데에 원인이 어느 정도 있었다는 것을 보면(대상10:13,14) 하나님께서 얼마나 무당에게 의뢰하는 자를 싫어하는지를 알 수 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변화산상에서 보았다(마17:1-3). 이것으로 강신술사들은 우리의 육신을 떠난 혼이 다시 지상에 올 수 있다는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첫 번째 부활 때 성도들이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를 미리 보여준 것일 뿐이다. 재림때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공중재림하여 이 땅을 통치할 것이며, 그 날에 성도들은 땅에 있는 것들과 교제를 가질 것이지만 지금 시대는 아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내용(눅16:19-31)은 이미 죽은 영들과의 교제는 필요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그렇게도 될 수도 없음을 보여 준다.

이 이유는 우리에게는 모세와 선지자, 즉 성경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죽은 사람들의 상태에 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죽은 혼들은 지상에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나사로나 부자 자신이 지상에 돌아와 그 부자의 형제들에게 경고해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내용에서 알 수 있는 최종적인 결론은 의인의 혼은 이 땅에 돌아오지 않고(may not), 불의한 혼은 절대로 돌아 올 수 없다(can not)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영성술은 단지 속이는 것에 불과하며, 이 마지막 때에 무관심한 사람들을 곁길로 유혹하는 사탄의 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심령술에 빠진 사람들은 그들의 "총명은 어두워졌으며(understanding darkened)"(엡4:17-19), 마귀들의 세력과 지배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말하기를 "사랑하는 자들아, 모든 영을 다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시험하라. 이는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세상에 나왔음이니라."(요일4:1)고 했으며 시험하는 방법은 요한일서4:2-3절에 나타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아니하는 모든 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요일4:3) 개인적으로 당신에게 들어가기 위해 접근하거나, 혹은 "매개체(무당)을 통하여 당신에게 말하는 영에게 물어보라.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으로 오셨느냐, 즉 처녀의 몸에서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이냐고, 만일 대답이 "예!"라고 대답한다면 그것은 성령이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도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님을 "주(LORD)"라고 시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고전12:3). 하지만 만일 "영"이 화를 내고 주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무시한다면 그 "영"은 분명히 "악한 영"이며, "마귀"이다. 성령은 성경과 반대되는 것은 하나도 가르칠 수 없으므로 "영들을 시험해" 보려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또 하나의 다른 "시대의 표적"으로 소위 "방언"의 다시 부흥하는 것이다..

"방언의 은사"

이 "방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영"으로 사로잡혀 "알 수 없는 말" 또는 "외국어"로 말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소위 그렇게 사로잡힌 사람들의 행위를 보면 땅바닥에 뒹굴고, 옷을 찢으며, 역겨운 모습을 보이는 꼴이 "마귀에게 사로잡힌 상태"에 가깝지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 왜냐면 성령은 그렇게 추한 모습으로 자신을 나타내시지 않는다.

이상 언급한 것으로써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는 "위험한 시대"로써, 우리 주위에는 "미혹하는 영들"이 들끓고 있는데, 그들은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더욱 더 극성을 부리는 그들에 의해 길을 잃지 않도록 크게 주의를 해야 하겠다.

 

 

16. 부 활 들

  1)민족적인 부활

성경에는 세 가지의 부활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I. 민족적으로

이것은 이스라엘을 언급하는 것으로 호세아6:1-2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오라,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자. 이는 그가 찢으셨으나 우리를 낫게 하실 것이요, 그가 치셨으나 우리를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이틀 후에 그가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그가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목전에서 살리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몇가지 점에 주목해야 한다. 먼저 우리가 문맥에서 알 수 있듯이 선지자 호세아의 말씀은 오직 에프라임과 유다로 대표되는 모든 유대인, 즉 "열두 지파"를 말한 것이라는 점이다(호6:4). "오라,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온 집안이며 주께 찢기고 매맞은 한 민족이 회개하는 울부짖음이지 "무덤속에 있는 자들"의 외침이 아니다. "낫게 하실 것"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것과는 상관없는 말씀이며, "싸매어 주실 것"은 현재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 모두가 자기들의 자신의 땅으로 다시 모여 "한 민족을 이루리라"라는 언급이다.

"우리를 살리시며"라는 말씀은 육체적인 죽음에서의 부활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면 "살리시며(revive)"란 말은 "종교의 부흥(revive)"에서 쓰이는 말처럼 육체적인 부활(resurrection)이 아닌 단순한 영적인 부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윗 구절은 회복의 "때"를 알수 있는 주목할 만한 언급이다. 즉 "이틀 후"이다. 이 "이틀"은 문자적인 하루 24시간이 아님이 분명하데, 왜냐면 이틀이 지났지만 이스라엘은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약 B.C 780년, 혹은 2700년 전에 선지자들에 의해 언급되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사용하신 하루의 단위는 천년이다(벧후3:8).

지금 이스라엘은 그들이 거부한지 세번째 천년의 어느 시기에 살아가고 있다. 이 세번째 천년의 어느 때는, 호세아가 말한 "셋째 날"과 일치하며, 이 때에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땅을 되찾고, 소생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부활"의 관한 더 자세한 설명은 "유대인들"에 관한 장을 보라.

 

  2)영적인 부활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으니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니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천상에 함께 앉히셨으니}(엡2:1-6).

{잠자는 자여 깨어라. 그리고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라.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네게 빛을 주시리라}(엡5:14).

또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정녕 죄에게는 죽은 자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는 산 자로 여기라}(롬6:11)고 말했다.

이상에서 언급된 부활은 "영적"인 것으로써 "현재" 일어나는 부활을 의미하며 계속 지속되고 있는 부활을 가리킨다. 한 혼이 "거듭날 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가는 영적인 부활인 것이다.

 

  3)실제적인 부활

이것은 죽은 몸의 부활이다. 사람의 영은 죽지 않는다. 단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갈 뿐이다(전3:21). 제14장의 영의 세계를 참고하라. 무덤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나 또 두덤밖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은 오직 육신 뿐이다. 무덤으로부터의 부활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아주 분명하게 가르치셨다.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 무덤들 속에 있는 모든 자들이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는 "정죄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8,29).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의인들"과 "악인들"의 부활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다. 사도 바울도 역시 같은 것을 가르쳤다.

{의인(의롭게 된자)과 불의한 자에게는 죽은 자의 부활이 있게 되리라는 소망을 저 사람들 스스로 받아들이고 있듯이 나도 하나님을 향하여 가지고 있나이다}(행24:15).

{이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육신적으로)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을 (육신적으로)살게 하려 함이라}(고전15:22).

여기서 말하는 것은 "육체적인" 죽음과 "육체적인" 부활임이 분명하다. 왜냐면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것은 영이 아니라 육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편 구제설(universal salvation)"의 교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증거 구절"을 갖지 못한다.

이 구절에서 가르치고 있는 내용은 "모든 죽은 자"들이 부활할 것이라는 것이며, 우리가 잘못 이해하게 되면 마치 의인과 불의한 자들이 "같은 때"에 부활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계시록을 보면 불의한 자들이 부활하기 "전에" 의인들이 부활할 뿐 아니라, 이 두 부활 사이의 간격은 약 1000년이나 되는 것을알 수 있다(계20:4-5).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그 위에 앉은 자들에게 심판이 주어졌더라}

첫 부활에 참여하는 성도들에 관한 언급은 계시록4:4의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둘러 앉아 있는 스물네 장로들로 나타난다.

{또 예수에 대한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목베임을 당한 사람들의 혼들도 보았는데, 그들은 그 짐승에게나 그 형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표를 그들의 이마 위에나 손에도 받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을 살면서 통치하더라.}

이들은 "환난 성도들"이다. 요한은 먼저 그들이 "순교당한 상태"(혼들로써)를 보았고, 곧 그들이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그들은 다시 살아났다) 첫번째 부활한 성도들과 함께 그리스도와 같이 천년 동안 통치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 나머지(악한자들)는 "천 년"이 끝날 때까지 다시 살지 못하리라}(계20:5)

"이것이 첫 번째 부활이라."는 언급에 참여하지 못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나머지"는 계시록20:4절의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1000년 동안 통치하는 이들이 아닌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는 복되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죄인들의 최후:계20:14.15)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들이 되어 천 년 동안 그와 함께 통치하리라}(계20:6).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서로 다른 부류로 나뉘 "일정한 간격"을 두고 부활하는 것이 고린도전서15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육신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을 (육신이) 살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각자 자기의 서열대로 되리니}(고전15:22-23).

"서열(order) "이라고 번역된 이 단어는 군대에서 쓰이는 표현으로 일대(一隊), 대대등과 같은 표현이다.

바울은 이 순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 "그리스도가 첫 열매들이요,"

2.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 분께 속한 사람들이라."

3. "그 후에는 끝이 오리니,"

지금 우리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 분에게 속한 사람들" 사이에 이미 1900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고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 분에게 속한 사람들"과 "불의한 자"의 부활 사이에는 1000년의 시간이 있을 것임을 알게 된다. 의인과 불의한 자는 동시에 부활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부활에 관한 작은 도표를 참고하라.

하지만 어떤 이들은 "무슨 권위로 이처럼 '시간적 간격'을 설정하고 성경을 나누는가?"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 그분 자신의 권위가 있다. 누가복음4:16-20절을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셔서 이사야서 1:2절을 찾아 읽으셨다.

{주 하나님의 영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온유한 자에게 기쁜 소식들을 전파하게 하셨으며, 그가 나를 보내시어 마음이 상한 사람들을 싸매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감옥이 열림을 선포하며 의 받으실 만한 해를 선포하고,}

그리고 이사야서 61:2절의 인용에서 보는 것처럼 "쉼표(,)"에서 멈추셨으며, "우리 하나님의 '복수의 날'을 선포하며,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고"라는 구절을 읽지 않으셨다.

왜 그리스도께서는 쉼표에서 멈추셨을까? 왜냐면 이 때는 "복수의 날"을 선포하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쉼표"는 거의 19세기나 되고 있으며, "고통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아 주시는 것이라. 주 예수께서 그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불길 가운데서 벌 주시리니"(살후1:7.8)란 구절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의인과 악인의 부활 사이에 "긴 시간"이 있다는 것은 오직 계시록20:4-5절 외에는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처럼 중요한 사실을 계시록 같이 매우 상징적인 성경의 한 구절에 의존하는 것은 온전치 못하다는 의의가 제기되어 왔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계시록이 신비스러운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서 전체 성경 중, 이것을 읽는 사람에게 복이 있임을 약속한 유일한 책이기 때문이다(계1:1-3). 이 책은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다.

계시록20:4-6절이 전체 성경중에서 의인과 악인의 부활 사이의 "시간적 간격"이 있음을 말한 "오직 한 곳"이란 이유로 사실성을 의심할 만한 근거는 되지 못한다. 우리 주님의 생애 중 가장 놀라운 사실인 "처녀에서 태어나신 것" 역시 구약의 오직 한 예언 "한 처녀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사7:14)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죽은자 가운데서의 부활을 증명하기 위해 계시록20:4-6절에만 의존할 필요는 없다.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한 성경 구절은 많다. 일곱 남편을 가진 여인이 죽은 후에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인가라는 사두개인의 질문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저 세상(시대)을 얻기에 합당한 자들과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한 자들은 장가가거나 시집가지 않으며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으니(둘째 사망), 이는 그들이 천사들과 동등하며 또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이라}(눅20:35,36).

이것은 매우 중요한 말씀이다. 그리스어로 "Aion"은 "세상"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시대"를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는 다음 혹은 "천년 시대" "전에" 부활한 "죽었던 자들"은 이처럼 부활한 "더 이상 죽지 않으며" 이들에게는 "둘째 사망"이 없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왜그러한가? 왜냐면 그들은 "천사들과 동등"하며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이며,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난 첫째 부활에 참여한 "부활의 자녀들"이기 때문이다. 오직 "첫째 부활의 자녀들"만이 천년왕국 "이전에" 다시 살 것이다.

누가복음 14:14에서 주님은 "의인들의 부활"을 말씀하셨다. 이것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의 부활로서, 오직 "의인들"에게만 해당되기 때문에 이것은 "첫째" 부활을 가리키는 것임이 분명하다.

바울은 이것에 대해 히브리서에서 "더 좋은" 부활을 말하고 있는데(히11:35), 사도들이 그리스도를 전파하면서 "죽은 자들로부터(from)"의 부활을 말하는 것은 아주 의미 심장한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믿어왔던 "죽은자들의(of) 부활"이 아닌, "죽은 자들 가운데서(among)의 부활"은 "새로운 교리"가 되었다.

바울은 죽은 자들의 부활을 믿었다는 의문의 여지가 없며, 자신도 "언젠가는" 다시 일어날 것임을 확신했으며 하지만 그는 빌립보서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들의 부활'에 이르려는 것이라."(3:11)와 같이 소망을 지니고 있었다. 이것으로 바울은 분명히 어떤 "특별한" 부활을 마음에 두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바울이 의미하는 것은 데살로니가전서 4:15-17에서 잘 나타나있는데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과 주께서 재림하실 때 "살아 있던 성도들의 변화"에 관하여 같이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천년 왕국을 세우시기 위해 재림하시기 전에 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의 부활"은 이루어질 것이다. 왜냐면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1000년이 "끝나기" 전까지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인의 부활과 불의한 자의 부활은 "시간"만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성격"도 다르다. "선"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악인들)는 "정죄의 부활"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요5:28,29). 둘째 부활, 즉 "정죄의 부활"에 일어난 자들은 "큰백보좌" 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으며,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다 "불못"에 던지우는데 그것이 곧 "둘째 사망"인 것이다(계20:12-15).

 

  4)부활의 방법

어떤 사람은 혼과 영이 육체를 이탈하는 것이 곧 부활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을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대로 부활 때에는 죽은 자들이 자기들이 누워 있던 "무덤"에서 일어날 것인데 그렇게 무덤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은 오직 그와 같은 방법으로 무덤 속에 들어간 육체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씨앗 이론(Germ Theory) "이 있는데, 이것은 인간의 몸속에 파괴되지 않는 "생명의 씨"가 있어서 육신이 재로 변해도 그것은 무덤 속에 그대로 남아있다가 부활할 때 새몸이 거기서 다시 생겨난다는 것이다. 육신이 짐승에 잡아 먹히거나, 죽어 원소로 분해되고 지체가 떨아져 나가도 어떻게 여전히 생명의 씨가 남아 있다가 거기에서 부활하는 몸이 생기는 것을 이 이론으로 설명 할 수 있다.

하지만 부활한 몸은 겉모습은 비슷할지라도 그 특성이나 성질은 다른 것이다. 바울은 이것에 대하여 말하기를 "모든 육체가 다 같은 육체는 아니니, 어떤 것은 사람의 육체요 어떤 것은 짐승의 육체며, 어떤 것은 물고기의 육체요 또 어떤 것은 새의 육체라."(고전15:39)고 했다.

즉 하나님의 피조물은 자신들의 "환경" 적응하도록 되어 있다. 짐승의 육체는 하늘을 날아다닐 수 없으며, 새의 육체는 바닷속에 헤엄쳐 다닐 수 없다. 그러므로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태로 조직되어 있는 인간의 육체는 하늘에 속할 수 없다. 하늘에 속한 몸이 되기 위해서는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변화는 부활할 때에 이루어진다. 바울은 이러한 변화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죽은 자들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겨서 썩지 아니하는 것으로 일으켜지며 수치로 심겨서 영광된 것으로 일으켜지며, 약한 것으로 심겨서 능력있는 것으로 일으켜지며 육신의 타고난 몸으로 심겨서 영적인 몸으로 일으켜지느니라. 육신의 타고난 몸이 있고 또 영적인 몸이 있느니라.}(고전15:42-44)

그렇다고 해서 어떤 "물질"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는 형체와 물질이 없으면서도 "몸"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적인 몸(Spirit Body)"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은 장차 변화할 우리 몸의 "표본"이다. 그분의 육신은 썩지 않고 무덤 속에 놓여 있을 때와 "같은 육신"으로 부활했지만 그 육신의 특성은 달랐다.

즉 "못자국"과 "창에 찔린 상처"를 볼수 있었으며, 닫힌 문을 통과할 수 있었으며, 마음대로 보이거나 감출수도 있는 육신이었다. 그 몸에는 "살"과 ""는 있었지만(눅24:39-43), "피"는 없는데, 그 이유는 "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고전15:50). 왜냐하면 ""는 육신을 썩게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육신을 그대로 보존하려면 피를 다 흘려 말리거나, 향유를 써서 화학적으로 피를 보존시킨다. 희생 제물이 피를 흘려야 되듯이 예수님께서도 희생하셔 피를 모두 땅에 쏟으셨다.

우리 부활의 몸이 볼 수 있는 "형태"와 "모양"이 있다면 당연히 살과 뼈로 구성된 형체를 취하겠지만 그 "살"과 "뼈"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 할 수 있는 것일 것이다. 에녹과 엘리야는 자기들의 "육신"을 지닌 그대로 하늘로 올라간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영광스럽게 된" 몸으로 변화되었지만 원래의 "육신에서 분리되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하늘 나라에서 그들의 육신이 필요했다면 우리라고 다를 수 있겠는가? 그 두 사람의 육신만이 하늘 나라에 있으리라는 것이 합당하겠는가? 만일 모세의 육신이 필요가 없었다면 왜 천사장 미카엘이 마귀와 함께 모세의 시체를 놓고 다투었겠는가?(유 9) 모세와 엘리야는 자신의 몸을 지닌 체로 변화산 상에 예수님과 함께 나타났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흰 옷을 입은 두 사람일 것이며, 계시록11:3-6의 "두 증인"이 될 것이다. 그들은 바로 부활하여 변화받은 성도의 "예표"로서 휴거 때의 성도들도 모세와 엘리야와 같은 "육신"을 입게 될 것이다.

 

 

 

17. 심 판 들

복음이 전파됨으로 천년 왕국이 도래하고 천년 왕국이 이루어진 후 "전체적인 부활"이 있으며, 그 후에 "전체적인 심판"이 있고 뒤이어 지구는 불로 멸망당한다. 이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러나 이 견해는 성경적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한번의 심판이 아닌 "공중"에서(살전4:16,17; 고후5:6-10), 다른 하나는 "지상"에서 나라들을 심판하며(마25:31-46), 세번째는 "하늘"에서(계20:11,12) 시간적인 간격을 두고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후에 하늘과 땅은 없어지게 될 것이다(계20:11-15). 따라서 이 세 가지의 다른 심판을 단 한 번의 "전체적인 심판"으로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세가지 다른 형태의 심판석을 살펴보자

1. {그리스도의 심판석} (고후5:10)

장소: "공중에서" 대상: 믿는 사람들만

2. {영광의 보좌} (마25:31,32)

장소: "지상에서" 대상: 모든 민족들

3. {큰 백보좌} (계20:11,12)

장소: "하늘에서" 대상: 악한 자들

 다섯가지 다른 심판석

성경은 다섯 가지의 심판들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제 이것들을 각각 "대상", "때", "장소", "심판의 근거", "결과"의 다섯 가지 면으로 설명하려 한다.

 

 

 

  1) 그리스도인들의 죄에 대한 심판

1. 대상 - 믿는 자들의 "죄(Sin)"에 대하여

2. 때 - A.D.30

3. 장소 - 갈보리

4. 심판의 근거 -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신 사역"

5. 결과 - 가. 그리스도의 죽음

             나. 믿는 자들이 의로워짐

갈보리에서의 심판은 지나갔다(past). 성경은 로마서10:4절에 이 심판의 결과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의 의가 되시고자 율법의 끝이 되셨는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셔서 율법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구속하셨으니, 기록되기를 "나무에 매달린 자는 누구나 저주받은 자라." 하였도다.} (갈3:13).

{그가 친히 나무에 달린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죄들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하여는 살게 하려 하심이니라} (벧전2:24).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행하는 자들이니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시켰기 때문이라} (롬8:1,2).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정죄에 이르지 아니하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요5:24).

"믿는 사람들"의 죄에 대한 심판은 갈보리의 십자가에서 이미 지나갔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세가지 면들에 대한 심판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1. "죄인"으로서,

2. "아들"로서

3. ""으로서

우리는 "죄인"으로서의 심판은 지나갔음을 알았다. 이제 다음 심판인 아들로서의 심판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1. 아들로서의 심판

죄인이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하는 순간 문제는 즉시 해결된다. 우리의 불법이 그분에게 맡겨졌다면 이것들은 이미 우리에게 없어진 것이다(사53:5-6). 하지만 "죄"(Sin)의 문제와 "죄들"(Sins)의 문제는 다른 것이다. 그리스도는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죄, 즉 에덴 동산에서의 아담의 불순종으로 세상에 들어 온 죄의 삯을 지불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것이다. 즉 ""란 범죄할 수 있는 인간의 근본적인 성품을 말한다. 그래서 인간은 거듭남으로 이러한 범죄 성향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성품을 얻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옛사람과 새사람이 혼합된 "이중적인 인간"이 된다. 즉 옛사람과 새사람은 끊임없는 싸움을 하게 되는데, 이 싸움은 옛사람이 완전히 죽어 없어질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7:1-25에서 이 일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죄들"은 밖으로 표출되는 나쁜 행동이다. 우리는 자신의 "죄들"에 대해 매일 하나님께 자백함으로 용서를 구해야 한다.

{나의 어린 자녀들아, 내가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로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 그러나 만일 누가 죄를 지으면 우리에게 아버지와 함께 있는 한 변호인이 있으니 , 곧 의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일2:1)

{만일 우리가 우리 죄들(sins)을 자백(confession)하면 그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 (요일1:9).

아들로서 그리스도인이 받는 심판은 바로 "자백하지 않은 죄"에 대한 것이고 이에 대한 벌은 징계이다. 그리스도인이 받는 징계는 그들이 사생아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주는 것이다(히12:5-11). 바울은 아들로서의 심판과 징계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심판(Judge)한다면 심판받지 않으리라. 그러나 우리가 심판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받지 않게 하려 함이로다}(고전11:31,32).

아들로서 우리의 의무는 매일 매일 자신을 돌아보고 죄를 자백함으로 우리의 하늘 아버지의 징계를 피하는 것이다.

 

  2) 그리스도인들의 행위에 대한 심판

종으로서의 심판

1. 대상 -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행위

2. 때 - 교회가 휴거된 후

3. 장소 - 공중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심판석

4. 심판의 근거 - 거듭난 이후의 행위

5. 결과 - 그에 따른 상

이것은 미래에 우리들에게 일어날 사실이다.

{이는 우리 모두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아가서 선이든지 악이든지 각자가 자기 몸에 행한 대로 그것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고후5:10).

"우리"라는 대명사는 고린도후서 5장에서 무려 26번이나 나오는데, 이 단어는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 이 편지는 고린도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쓰여진 것이므로 여기서 말하는 심판은 그리스도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이 심판은 심판받는 사람이 죄인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구원받은 자들만을 위한 심판이기 때문이다. 이 심판은 육상 경기와도 같은 공정한 판단이 될 것이고 훌륭한 경기자에게는 그에 따른 상이 주어지게 될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24-27에서 이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이것은 "행위"에 대한 심판인 것이다.

{이 닦아 놓은 기초 외에 아무도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나니, 이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라. 이제 누구든지 이 기초 위에 이나 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지으면 각 사람의 일한 것이 나타나게 되리니 그 ''(심판의 날)이 그것을 밝힐 것이라. 이는 그것이 불로써 나타나고, 또 그 불은 각 사람의 일한 것이 어떤 것인지를 시험할 것이기 때문이라. 만일 어떤 사람의 일한 것이 세운 그대로 있으면 그는 상을 받을 것이요 만일 어떤 사람의 일한 것이 불타 버리면 그는 손해를 당하리라. 그러나 그 자신은 구원을 받게 되지만 불을 통과해서 받는 것 같으리라}(고전3:11-15).

이 심판에서 "상"을 받거나 "손해"를 당할 것이다. 나무나 풀, 짚으로 표현된 우리의 "악하고" "죽은 행실"은 없어질 것이고 오직 "선한 행실"만이 남을 것이다.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상과는 관계가 없을 것이고, 상을 받는 자들에게는 면류관이 주어지는 날이 될 것이다. 그러나 면류관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벌을 받거나 붸겨나는 것은 아니다.

신약 성경은 다섯 가지 면류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 "생명"의 면류관

이것은 순교자가 받을 면류관으로 신약에 두 번 언급되어 있다. {시험을 견뎌내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는 그가 시련을 거친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약1:12). {....죽기까지 신실하라. 그러면 내가 네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계2:10).
 

2. "영광"의 면류관

이 면류관은 목자들이 받을 상인데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베드로전서 5:2-4의 말씀대로 "더러운 이익을 위하여" 일하거나 "맡겨 주신 자들을 지배하는" 자들은 받지 못한다.
 

3. "자랑"의 면류관

이 면류관은 구령에 힘을 쓴 사람들이 받는 상으로 우리가 주님께 인도한 영혼들이 주님께서 오시는 날 우리들의 자랑의 면류관이 될 것이다(살전2:19,20; 빌4:1).
 

4. "의"의 면류관

이 면류관은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들이 받을 상으로 주께서 나타나시는 그 날에 주어진다(딤후4:8).
 

5. "썩지 않을" 면류관

이 면류관은 자신들의 몸을 쳐서 복종했던 "승리자들", 즉 "육신적인 욕망"을 극복하고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며 규칙대로 싸웠던 사람들이 받을 상이다(고전9:25- 27).

"주님의 재림시"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려면(요일2:28)우리는 우리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시켜야 할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자신의 상을 지키는 길이다.

 

  3) 유대인들에 대한 심판

1. 대상 - 유대인

2. 때 - "대환난"

3. 장소 - 예루살렘과 그 부근을 중심으로 한 전 세계

4. 심판의 근거 - 삼위 하나님(Godhead) 의 거부

5. 결과 -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그들의 메시아로 받아들임

이 심판은 미래에 있을 것이다.

교회가 공중에서 있을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서 심판을 받을 동안 지상에 있는 유대인들은 적그리스도 치하에서 심판을 받게 된다. 유대인들은 땅에 속한 사람들이다. 그들에 대한 모든 약속이 땅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심판도 땅에 속한 속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유대인이 심판을 받는 이유는 그들이 삼위 하나님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사무엘이 살아 있을 당시 그들은 아버지 하나님을 거부했다(삼상8:7). 또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음으로 아들 하나님을 거부했다(눅23:18). 마지막으로 그들은 스테판을 돌로 쳐 죽임으로 성령 하나님을 거부했다(행7:51,54-60). 따라서 유대인들은 그들의 죄때문에 이방인들의 충만한 수가 다 찰 때까지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게 된 것이다. 이방인의 때가 거의 끝날 무렵 유대인은 회심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의 거룩한 땅인 예루살렘에 모일 것이고(겔20:34-38) 거기서 그들은 하나님의 "용광로" 속으로 내던져질 것이며(겔22:19-22), 예레미야와 다니엘이 말했던 "야곱의 환난의 때"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예수님께서는 "대환난"이라고 하셨고(마24:21-31), 스카랴 선지자는 "의 날"이라고 표현했다.
(스가랴 14:1-11).

께서 사용하실 인간의 앞잡이는 적그리스도인데 그의 포악함은 하나님의 진노의 호리병이 내려지면서 더욱 심해질 것이다(계15:1,5-8, 16:21).

이 무시무시한 심판의 결과로 유대인들은 주를 향해 돌아설 것이고(스가랴 12:10) 그 때 그리스도는 올리브산 위로 오실 것이며(스가랴 14:3),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못박은 그리스도를 직접보게 될 것이다.

 

  4) 이방 국가들에 대한 심판

1. 대상 - 이방 국가들

2. -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3. 장소 - 지상위의 "여호사밧의 골짜기"에 있는 "영광의 보좌"

4. 심판의 근거 - 그리스도의 형제들인 유대인에 관한 대우

5. 결과 - 일부는 "구원을 받고" 나머지는 "멸망을 당함"

이 심판 역시 미래에 있을 것이다.

이 심판에 관한 묘사는 마태복음 25:31-46에 잘 나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심판에 대한 묘사와 요한계시록 20:11-15에 나와 있는 심판에 대한 묘사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을 모든 인간이 받게 된다는 일반적인 심판의 교리로서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장면을 잘 비교해 보면 많은 차이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차이점을 살펴보도록 하자.

 

 


마태복음 25:31-46

1. 부활이 없음

2. 남아 있는 나라들에 대한 심판

3. 지상에서 이루어짐(요엘3:2,12)

4. 언급되어 있는 책이 없음

5. 세 부류의 이름 "양, 염소, 형제"

6. 시기 : 천년왕국전
 


계시록 20:11-15

1. 부활이 있음

2. 죽은 자들의 심판

3. 하늘과 땅이 없어짐

4. 책들이 열려 있음

5. 한 부류의 이름 "죽은 자들"

6. 시기 : 천년 왕국 후
 

이들 심판 중 하나는 지상에서 이루어지고 나머지 하나는 공중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들 심판의 시간적 차이는 1000년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 심판은 나라들에게만 해당되는 심판이기 때문에 유대인에게는 적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유대인은 나라들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민23:9). 교회 역시 그리스도와 연합하였기 때문에 이 심판에서 제외된다. 왜냐하면 고린도전서6:2에는 성도들(교회)이 세상(나라들)을 심판하리라고 예언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듯이 교회와 유대인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나라들에 대한 심판'은 모든 사람들이 받는 일반적인 심판이 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양'과 '염소'로 묘사된 것은 각각 누구인가? 양은 세상이 시작된 때부터 끝날 때까지의 모든 의인들을 가리키는 것이며 염소가 모든 불의한 자라면 형제는 누구인가?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듯 그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들이라고 가정한다면 그들은 양의 무리에 포함되지 않겠는가?

의인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고 불의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함으로 구원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이 심판에서 양의 무리는 왕국을 이어받고 염소의 무리는 형제들을 푸대접한 이유로 떠나라는 명령을 받는다.

모든 혼돈은 바로 이 나라들에 대한 심판을 개인적인 것으로 보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양의 무리도 나라들이고 염소의 무리도 나라들인 반면에 형제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인 유대인을 가리킨다.

먼저 우리는 이 심판이 있는 때와 장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즉 지상에 천년 왕국이 세워지는 때이고, 장소는 예루살렘 부근에 있는 골짜기이다. {보라,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사로잡힌 자를 다시 데려오는 그 날과 그 때에 내가 또한 모든 나라를 모아 여호사밧 골짜기로 데려와서 거기서 그들과 더불어 내 백성과 내 유업 이스라엘을 위하여 주장하리라. 그들이 이스라엘을 나라들 가운데 흩뜨리고 나의 땅을 나누었으며}(요엘3:1,2).

이 예언은 분명히 나라들의 심판에 관한 것으로, 유대인들이 그들의 고토를 회복하는 때에 땅 위에 있는 여호사밧 골짜기에서 행해지는 것이다. 이 심판의 근거는 그리스도의 형제, 즉 유대인에 대한 각 나라들의 대우이다.

7년 대환난 기간 동안 유대인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고 옥에 갇혔을 때 친절하게 돌봐 주었던 국가들은 양의 나라가 될 것이고, 반대로 유대인들을 학대했던 국가들은 염소의 나라가 될 것이다.

나라들에 대한 심판에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양의 나라에게 "내 형제들"에게 친절했으니 {왕이 그의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리니 '오라, 내 아버지의 복을 받은 자들아,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그 나라를 이어받으라'}(마25:34)고 말씀하실 것이다. 이 왕국은 천년 왕국인데 양의 나라는 왕국을 상속받아 천년 동안 소유할 것이다.

염소의 나라에 대한 그리스도의 판결은 {그 때에 왕이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도 말하기를 "이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준비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마25:41)는 것이다. 염소의 나라들은 국가로서 한 번에 영원히 멸망당할 뿐만 아니라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천년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며 영원히 구원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5) 죄인들에 대한 심판

1. 대상 - 불의한 죽은 자들

2. - 지구가 불로 타버린 직후

3. 장소 - 큰백보좌 앞

4. 심판의 근거 - 그들의 "행위"

5. 결과 - "불못"에 던져짐

이 심판 역시 미래에 일어날 것이다.

이 심판에 대한 것은 요한계시록 20:11-15에 잘 설명되어 있다. 이 심판은 이방 나라들에 대한 심판이 있은 후 천년 뒤에 '큰백보좌' 앞에서 진행될 것이다.

큰백보좌는 지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불의한 자에 대한 "큰백보좌 심판"은 하늘들과 땅이 "타버린(Renovation)" 직후에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심판을 베드로는 "경건치 아니한 자들심판과 멸망의 날"(벧후3:7)라고 부르고 있는데, 왜냐하면 이 "큰백보좌" 심판석은 죽은 악한자의 심판석이기 때문이다.

모든 죽은 의로운 사람들은 첫번째 부활에서 일어날 것이다. 만일 어떤 의로운 자가 첫 부활과 악한 자가 부활하는 두번째 부활 사이에 죽었다면, 그들은 이때에 악한 자들과 함께 부활 할 것이다. 이 구절 "누구든지 생명의 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계20:15).을 보면 두번째 부활때 매우 적은 수의 의로운 "어떤 사람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천년 왕국이 끝날 때, 그리고 불에 의한 지구의 소멸 직전에 죽어 있던 불의한 자들이 모두 부활하여 살아 있는 불의한 자들과 더불어 불못에 던져질 것이다.

불의한 자나 경건치 못한자의 심판은 이들이 영생을 받을 권리가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벌에 대한 형벌의 "차이"를 두기 위한 것이다. 이 심판에서 비극적인 장면이 보여질 것인데 그들 중에는 친절하고 사랑이 많았지만 단지 그리스도를 구주로 거부했기 때문에 불못에 던져지는 사람들의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 심판 때에는 책들이 펼쳐져 있을 것이고 각 사람들은 책들에 기록된 대로 자신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다. 아무도 이것을 피할 수 없다. 가장 슬픈 일은 그렇게 악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불신앙" 때문에 영원토록 "불못"에서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사망이 의미하는 형벌은 그들의 부활한 몸을 심판받을 때에 다시 빼앗기고 "불못"에서 영원히 거하게 된다.

"영원한 사슬로 묶혀 흑암 속에" 갇혀 있던 "타락한 천사들"(마귀들의 천사들이 아님)도 이 때 심판을 받게 될 것인데, 이것을 유다서 6절에는 "큰 날의 심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천사들과 마귀들에게 심판이 내려진 후 경건하지 못한(Ungodly) 모든 사람들은 "불못"에 내던져질 것이다, 우주의 모든 악은 깨끗히 사라질 것이며 새 땅 위에서 의가 최상의 통치 수단이 될 것이다.

 

 

 

18. 사 탄

  1) 사탄의 기원

이 문제는 약간 신비에 쌓여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사탄도 역시 "피조물"인데,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존재라는 것이다. 그가 타락하기 전에는

"기름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The Anointed Cherrub That Coverreth)"이었다.

즉, 그는 "하나님의 보좌"를 지키는 파수꾼이었다. 그는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그의 불의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흠이 없는 존재였다. 그에게는 "충만한 지혜"와 "완전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런데 그가 타락하게 된 원인은 그의 "아름다움" 때문이었다. 그는 모든 귀한 보석들, 즉 홍보석, 황옥, 금강석, 녹보석, 얼룩마노, 벽옥, 사파이어, 에메랄드, 홍옥, 황금으로 덮여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동산"인 에덴에서 살았다. 이곳은 아마도 지상에 있던 에덴 동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 천상을 말하는 것 같다. 이에 대해서는 에스겔28:11-19절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에서 선지자 에스겔은 그가 타락하기 전 원래의 영광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탄이 타락하게 된 원인은 이사야14:12-20절에 나타나 있는데, 그는 이렇게 불려지고 있었다.

"오 아침의 아들 루시퍼야"

이것은 그가 창조되었을 때 받은 영광스런 이름이었다. 그 후에 이 세상과 인간이 창조되었다.

{언제 "새벽별들"(자신처럼 창조된 다른 영광스런 존재들인것 같다.)이 함께 노래했으며 "하나님의 아들들"(천사)이 모두 기뻐서 소리쳤느냐?}(욥38:7).

역시 그는 "오 아침의 아들 루시퍼야"라고 불려지는 것에 유의하고, 또한 이사야14:4절에서는 "바빌론 왕"으로 불려진다.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자와 같은 바빌론 왕은 그 당시 존재하지 않았다. 즉 이것은 "미래"에 일어날 "바빌론 왕"을 언급한 것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적그리스도가 그의 도성 바빌론을 재건"하여 바빌론의 왕이 되었을 때 루시퍼, 즉 사탄이 거주할 것임을 "미리 보고" 기록한 것일 것이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세상이 창조된 후, 모든 환경들이 조성되었을 무렵부터 사탄이 이 땅을 지배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선지자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사탄의 마음을 밝혀놓았다.

{이는 네가 네 마음 속에 말하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가서 내 보좌를 하나님의 별들(다른 권세들)보다 높일 것이요, 내가 또한 북편에 있는 회중의 산 위에 앉으리라. 내가 구름들의 높은 곳들 위로 올라가서 "지극히 높으신 분" 같이 되리라." 하였음이라}(사14:13-14).

이러한 교만한 행위로 인해 "아담 이전의 세상"은 혼동된 상태로 빠졌으며 이것을 창세기1:2절에서 "형체가 없고 공허하며"라고 언급한다.

여기서 이 세상이 사탄에게 속해있다는 사탄의 주장에 충분한 근거가 되며,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 "이 세상의 모든 왕국들"을 줄 수 있는 정당성과 권세를 가지고 있었다.(마4:8-9) 그리고 사탄은 그가 소유하고 있는 이 땅을 계속 유지하기 위하여 전능하신 분에게 끈질기게 대항하여 끊임없는 전쟁을 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2) 사탄의 현재와 그의 왕국

일반적으로 사탄과 그의 천사들은 지옥에 갇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베드로후서2:4과 유다서6절에서 보면 자신의 "처음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흑암의 사슬에 내어 주어 가두어 두셨는데, 이는 사탄의 천사들이 아니다. 이들은 특별한 종류의 천사들인데 이들의 죄로 인하여 홍수가 일어났다. 그들은 베드로전서3:18-20절에 언급한 "감옥에 있는 영들"이다.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장을 보라. 사탄과 그의 천사들은 자유롭다. 욥기1,2장을 보면 그 당시에는 하나님의 아들들(천사들)이 때때로 하나님 앞에서 맡은 책무를 보고 드리곤 했는데 그때마다 사탄도 함께 있는 것이 의례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님이 사탄에게 "네가 어디서 왔느냐?" 라고 물었을 때 그는 "땅에서 여기저기, 위아래로 두루 다니다 왔나이다."(욥1:7; 2:2)라고 대답했다. B.C.2000년경 욥의 시대에 사탄은 땅 위에서 자유로웠고 하나님의 가까이에도 갔으며, 하늘에서 쫓겨나지 않았다. 밀턴의 "실낙원(Paradise Lost)"에서 계시록12:7-12절을 근거로 사탄이 아담과 이브 시대에 이미 하늘에서 쫓겨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계시록은 요한이 살던 당시에서 "앞으로 올", "미래"의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사탄은 A.D.96년에도 하늘에서 쫓겨나지 않았으며 여전히 그는 아직 땅에서나 하늘에서나 여전히 자유롭다.

사탄의 왕국

사탄은 왕이며, 또한 왕국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그 자체가 갈라지는 것이니 그러면 어떻게 그의 왕국이 서겠느냐?}(마12:24-30).

{이는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정사들과 권세들과 이 세상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높은 곳들에 있는 영적 악에 대항하는 것이기 때문이니라}(엡6:12).

이 말씀에서 우리는 그 왕국은 "정사들", "권세들", "이 세상 어두움의 주관자들", "높은 곳들에 있는 영적 악"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정사들(Principalities)"이란 이 땅의 일정한 지역을 통치하는 "통치자(prince)"에 의해 지배되는 것을 말한다. 다니엘에게 어떤 사람이 보내졌는데, 그는 사탄이 지배하는 페르시아 지역을 다스리는

"페르시아 왕국의 통치자"

3주 동안이나 가로막았기 때문에 천사장 미카엘이 도와줄 때까지 올 수 없었다(단10:10-14).

다음은 사탄의 왕국의 졸개들이다.

1. 천사들 : 이들은 유다서 6절에 나타난 천사들 즉, 자기들의 처음 위치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처소를 떠나 큰 날의 심판 때까지 흑암속에 갇힌 천사들이 아니라, 지금 사탄과 함께 하늘에서 자유를 누리고 있는 사탄의 천사들을 말한다(계12:9). 장차 그들은 사탄과 함께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불못"에 던져질 것이다. "이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준비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마25:41).

2. 마귀들 : 마귀는 한 명이다. 하지만 신약 성경에서 나타나는 마귀들(devils)라는 단어는 "demons"이라는 단어 대신에 쓰인 것으로, 이 마귀들은 일종의 "몸이 없는 영들"로서 인간의 몸을 자신의 거처로 삼고자 끊임없이 노리고 있다.

이 마귀들은 사악하고, 더럽고, 심술궂어 인간의 몸과 마음을 타락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마12:22,15:22,눅4:35;8;26-39;9:42). 그들은 구약에 나오는 "신접하는 자들(familiar spirits)" "마술사(wizard)"인데, 바울은 디모데전서4:1절에서 그들을 "미혹하는 영들"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3.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 :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사탄에게 속해 있다. 예수님은 "독보리"를 "악한 자의 자녀들"이라고 했고(마13:38), 또한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나서 너희 아비의 정욕을 행하고자 하는도다"(요8:44)라고 했다.

 

  3)사탄의 전략

1. 그는 세상을 속인다.

여기서 "세상"이란 "사탄의 왕국"에 속한 사람들, 즉 사탄의 올가미에 걸려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 온 세상(사탄적 제도)은 악함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이라}(요일5:19).

사탄은 속임수로 세상 사람의 눈을 "어둡게" 한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려졌다면 그것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 가려진 것이라. 그들 가운데 "이 세상의 신"(사탄)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광채가 그들에게 비치지 못하게 하느니라}(고후4:3,4).

세상의 마지막 때가 가까이 오면서 사탄도 "다른 복음"을 전하는 그의 종을 갖게 될 것이다(갈1:6-9). 여기서 다른 복음이란 "마귀들의 교리"이다(딤전4:1).

그는 "모든 배도(The Great Apostasy)"의 선봉장이다.

베드로는 "마지막 때들"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백성 가운데도 거짓 선지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너희 가운데도 거짓 교사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저주받을 이단들"을 비밀리에 불러들여서 자기들을 사신 주마저 부인하며 급격한 파멸을 스스로 불러들이느니라.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파멸의 길을 따르리니 그들로 인하여 '진리의 길'이 비방을 받을 것이라}(벧후2:1-2).

이 "거짓 교사들"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다. 그들은 "동정녀 탄생", "삼위 일체", "몸의 부활"과 "주 예수님의 재림"을 부인한다. 사탄은 매운 교묘한 술수로 하나님의 백성을 속인다. 그는 성경의 핵심 주제를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영리하여 공개적으로 공격하지 않고, 거짓 교리로 그들을 변질시킨다. 영의 세계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의 마음을 이용하여 사탄은 "강신술" 같은 것을 만들었다. 또 거기에 관한 사람들의 흥미가 적어지자 "초심리학"이라는 허울좋은 이름으로 다시 부활시키고 있다. 이와 같은 것들은 아주 오랜 고대부터 존재해 왔으며 근거 없이 성경을 계속하여 비난해 오고 있다.

{자기 아들이나 자기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자나 점치는 자나 때를 살피는 자나 마법사나 무당이나 마술사나 부리는 영들에게 묻는 자나 박수나 강신술사를 너희 가운데서 보이지 않게 할지니라. 이는 이러한 일들을 행하는 모든 자들이 주께 가증함이 되나니 이러한 가증한 것들 때문에 너의 하나님께서 네 앞에서부터 그들을 쫓아내시느니라}(신18:10-12).

이 "강신술"은 "마귀 숭배"와 이름만 다를 뿐 같으며 모든 외면적인 모습은 위조이며 마귀적인 것이다. 크리스찬 사이언스(Christian Science)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괴롭힘으로써 생기는 "사악한 동물적 최면술" 같은 것도 있다고 가르친다. 이것은 "악마주의"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강신술"이나 "영성학(Psychical Research)"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어두워진 이해"를 갖기 쉽고 마귀의 권세 하에 들어가기 쉽다.

폭력이나, 박해로 교회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탄은 전략을 바꾸어 교회를 세상과 타협하게 하여 타락시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땅을 멸망시키기로 정한 그 때를 연기하려고 하고 있다. 그의 현재의 목적은 "거대한 문명"을 건설하자고 하는 것이다. 또한 그는 사회를 개선하여 그리스도 없는 "천년 왕국"을 이룩할 수 있다고 교회를 속이고 있다.

그의 목적은 그리스도인의 관심을 부차적인것으로 돌려 "은혜의 복음" 대신 "사회 구제의 복음"으로 바꾸어, 가장 중요한 일인 혼을 구원하는 일을 무시하게 하여,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방해하여 주님의 재림과 자신이 끝없는 구렁에 갇히는 때를 연기시키려는 것이다.
 

2. 그는 하나님의 백성의 적이다.

창세기 3:15절에서 계시록20:10절까지 이어지는 "선"과 "악"의 싸움은 매우 흥미롭다. 사탄이 이브를 유혹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고 아담도 같이 먹는다. 그들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는데, 이것이 사탄의 최초의 승리이다. 다음 사탄은 카인을 통하여 아벨을 죽인다. 이것이 두번째 승리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탄의 유혹으로 사람의 딸들과 결혼한다. 이로 인해 노아의 홍수가 일어난다. 이것이 사탄의 세 번째 승리이다. 홍수에서 살아남은 노아를 술취하도록 유혹하여 함에게 저주를 퍼붓게 한다. 이것이 사탄의 네 번째 승리이다. 사람들이 늘어나고 사탄은 이들의 마음 속에 교만을 불어넣어 바벨탑을 쌓게 한다. 그 결과로 언어가 혼잡하게 되며 민족이 나뉘어지게 된다. 이것이 사탄의 다섯번째 승리이다.

그 무렵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여 후에 그의 씨에게 두번째 아담을 나게 하셨다. 그분은 사탄의 머리를 부술 것이다. 이제 그 싸움은 더욱 심각하게 진행된다. 우리는 현재 이것에 관해 이야기하기에는 너무나 좁은 공간에 살고 있다. 먼저 사탄은 사라의 태를 닫았다. 그는 또 에서와 야곱 사이를 아벨과 가인과 같은 비극을 일으킬 목적으로 불화를 일으켰다. 그 뒤 사탄은 포티발의 아내로 하여금 요셉을 유혹하여 요셉을 곤경에 빠뜨린다. 이스라엘을 구할 모세가 태어날 당시에 사탄은 파라오로 하여금 모든 히브리 남자 아이들을 죽일 마음을 품게 한다.

이 모든 사실들을 일일이 나열하자면 너무나 길어질 것이다. 다윗 왕의 범죄는 사탄의 장난이었다. 그리고 한때 "왕의 씨"가 어린 아이 하나 뿐인 적도 있었다(대하2:4-17; 22:10-12).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 헤롯 왕으로 하여금 베들레헴에 있는 두 살 이하의 사내 아이들을 죽이도록 한 것도 사탄의 계략이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광야에서 금식하시고 약해지자, 그에게 성전에서 뛰어내려보라고 유혹했던 것도 그리스도를 이기려는 사탄의 전략이었다. 사탄은 또 갈릴리 바다에서 두 번의 폭풍우를 일으켜 그리스도를 죽이고자 했으며,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분을 대적하게 했고 결국 유다에게 들어가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히게 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의 몸을 허약하게 하여 죽이려고 한 것도 사탄이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사탄은 자신이 승리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 이것은 사탄을 당혹하게 하였으며 그의 분노는 불처럼 타올랐을 것이다. 그래서 사탄과 그의 천사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에 관해 의심하도록 하며 논쟁을 벌였다. 사탄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의 "필연적인 전쟁"의 역사가 그리스도인의 "교회사"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며 특히 나 바울은 한두 번 가려 하였으나 사탄우리를 방해하였노라}(살전2:18).

심지어 바울의 "육신의 가시"도 그를 괴롭히기 위한 "사탄의 사자"에 의한 것이었다.

 

  4)사탄의 미래와 운명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사탄은 지금도 하늘에 그의 처소를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다. 그러나 그가 "하늘"에서 쫓겨날 때가 올 것이다. 계시록12:7-11절에 나타나 있다.

{또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카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을 대항하여 싸우고 "용"과 그의 천사들도 싸우나 그들이 이기지 못하여 하늘에서 더이상 있을 곳을 찾지 못하더라. 그리하여 그 "큰 용"이 쫓겨나니 그는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옛 뱀", 곧 온 세상을 미혹하던 자라. 그가 땅으로 쫓겨나고 그의 천사들도 그와 함께 쫓겨나더라. 또 내가 들으니, 한 큰 음성이 하늘에서 말하기를 "이제 구원능력우리 하나님의 나라그리스도의 권세가 임하는도다. 이는 우리 형제들을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고소하던 그 고소자가 내던졌기(Cast down) 때문이니라. 그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거한 말로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사랑하지 아니하였도다}.

모든 시대에서 사탄은 "형제들을 고소해" 왔지만, 위 구절에서 나타난 "우리 형제들"은 "환난 시기"(사탄이 마지막때 "마지막 주",즉 "환난 시기"의 중간에 쫓겨날 것이기 때문이다.)의 전 삼년 중간 동안에 큰 박해를 받고 "순교자"로서 죽은 "남은 유대인들"(그리스도의 형제)에 대한 언급인 듯하며, 그들에 대해서는 계시록9:-11절에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 때문에 죽임 당한 자들의 혼들"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그들은 위 구절에서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거한 말"로 이겼으며, 또한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사랑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순교한 자들이다.

그들은 "어린 양의 피"로써 승리했기 때문에 그들의 승리의 는 그리스도께서 갈보리 산 위에서 보혈을 흘리신 후이어야만 한다. 이 때문에 사탄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박히시기 전에는 하늘에서 쫓겨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사탄이 하늘에서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눅10:18)고 하셨는데, 이것은 사탄이 과거에 이미 떨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떨어질 것을 예언하신 말씀이다. 즉 사탄이 하늘에서 미가엘 천사장에 의해 하늘에서 쫓겨날 "때"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가 사탄이 쫓겨날 "때"임을 더욱 명확히 증명하는 것은 다니엘이 언급한 이 때가 "환난때"에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환난이 선지자 다니엘의 민족인 유대인에게 닥칠 것이며, 그때에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며, 그들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단12:1).

사탄의 추방이 에덴에서의 타락 이전에 일어나지 않았다는 또 다른 증거로서 우리는 그 사건이 "어린 아이"(그리스도)(계12:5)의 출생과 들림받은 이후에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에는 지상에 많은 사람들이 가득 찰 것이며, 사탄은 마귀의 역사가 "얼마 남지 않았음"(3½년)을 알았기 때문에 분노로 가득찰 것이다.

사탄의 육화(Satan's Incarnation)

사탄이 하늘에서 땅으로 쫓겨난 때, 그는 "육신을 입어" 적그리스도가 될 것이다. "적그리스도"장을 보라

그의 운명

"대환난"이 끝날 무렵, 그리스도께서 올리브산에 재림하여 그 "짐승"와 "거짓 선지자"는 산채로 "불못"에 던져질 것이다.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사탄을 붙잡아 이미 준비된 큰 쇠사슬로 묶어 끝없이 깊은 구렁에 던져 가두며 그는 거기서 1000년을 지낸다(계20:1-3). 그 후 천년이 끝날때 잠깐 풀려나와 그의 천사들, 귀신들, 그리고 그의 권세하에 있는 인간들과 함께 오래 전에 예비된 "불못"에 던져서 영원히 거기서 고통받게 될 것이다(계20:7-10,마25:4).

 

 

19. 적그리스도

  1) 적그리스도의 개요 및 그리스도와 대조

예언을 공부하는데 있어 이제까지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역점을 두어 왔지만 그리스도의 재림과 같이 중대한 두 다른 "인물"이 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않된다. 첫 번째는 적그리스도에 관한 것이고, 두 번째는 사탄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신·구약 성경 모두에서 "마지막 때"에 나타나게 될

"신비스럽고 무서운 인물"

에 대하여 듣게 된다. 그는 여러 많은 이름들과 가명(또는 별칭)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에 이 이름들과 그 이름들이 묘사하고 있는 그 인물에 관한 주의 깊은 연구와 비교를 통해서만이 그것이 한 사람, 곧 동일한 인물을 언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구약에서 >

이사야

14: 4 - "바빌론 왕"

14:12 - "루시퍼"

다니엘

7:8, 8:9 - "작은 뿔"

8:23 - "사나운 용모의 왕"

9:26 - "장차 올 왕"

11:36 - "사악한 왕"
 

< 신약에서 >

바 울

살후2:3-8 - "죄의 사람",

- "멸망의 아들",

- "불법자"

요 한

요일2:18 - "적그리스도"

계시록13:1 - "짐승"

 

 

예수님께서도 적그리스도에 대하여 예언적인 언급을 하셨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나 너희가 나를 영접하지 아니하는도다.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영접하리라}(요5:43).

유대인들은 예수를 그들의 메시아로서 거절하였으나, 적그리스도가 올 때에는 그를 자신들의 메시아로 영접할 것이다.

Ⅰ. 그의 인격

초대교회는 적그리스도가 하나의 "인격", 곧 인간의 모독스러움과 사악함의 화신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12세기 말경으로 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간주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런 관점은 주로 개신교 주석가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 관점에 대한 견해들은 독창적이며 그럴듯 하지만, 그런 주장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조화되기는 어렵다. 이러한 관점은 적그리스도를 한 인격으로보다는 "체제"로 여기고, 적그리스도를 "교황 체제" 안에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이를 반증한다.

1.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 외에 누가 거짓말쟁이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가 곧 적그리스도니라}(요일2:22),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아니하는 모든 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요일4:3).

유대주의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해 왔고, 유니테리온주의(Unitarianism)는 그 분이 "육체로 오심"을 부인한다. 그러나 교황제는 결코 그렇지 않다. 로마 교회는 항상 "나는 하늘과 땅의 창조자이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그 분의 유일한 아들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한다.

2. 모든 개신교 주석가들은 "교황체제"가 요한계시록 17:4,5에서 "자주색과 진홍색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장식한 여자의 모형"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분명히 사실이지만 "창녀들의 어미"인 이 "여자"는 일반적으로 적그리스도라고 인정되어지는 "한 짐승" 위에 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만일 그 "짐승"이 적그리스도라면 그 "여자"는 적그리스도가 될 수 없고, 그 둘은 별개이며, 똑같은 것으로 의미되지 않는다.

3. 다시 적그리스도는 "죄의 사람"으로서 다음과 같이 할 것이다.

{모든 신보다 자기를 높이고}(단11:36,37).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하나님처럼 보여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하느니라}(살후2:4).

그렇지만 거짓되고 불경건한 교황체제는 항상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복종을 서약하고, 교황의 주된 주장은 "그리스도의 대사"라고 하는 것이다.

4. {온 세상이 기이히 여겨 그 짐승(적그리스도)을 따르더라. 사람들이 그 짐승에게 권세를 준 용(마귀)에게 경배하고...}(계13:3,4).

"교황체제"는 "동정녀"(마리아)와 "성인"들을 숭배하지만, 마귀를 숭배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5. {누구든지 그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표를 자기 이마나 손에 받는다면 그 역시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되리니. . . 또 그 사람은 거룩한 천사들과 어린 양의 임재 가운데 불과 유황으로 고통을 받으리니 그 고통의 연기가 영원 무궁토록 올라가리라. 그 짐승과 그 형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계14:9-11).

만일 위의 구절에 따라 "교황체제"가 적그리스도라면, 요한계시록14:9-11에 근거할 때 교황체제를 경배하는 모든 사람들은 구원받는 대신에 영원한 고통에 이르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적그리스도를 멸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에 오시지, "교황체제"의 자리가 있는 로마에 오시지 않는다. 적그리스도를 "예시해 주는" 로마교회의 역사와 로마교회의 교황들은 그 행위 속에 이런 많은 것들이 있지만, "교황체제"는 적그리스도가 결코 아니며, 이러한 성경구절들은 오로지 어떤 개인으로서 나타나게 될 인격 속에서만 성취되어지리라는 것은 앞선 성경 구절들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의 경쟁자나 모조된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이다. 우리는 이것을 다음과 같은 대조를 통해 그리스도와 그를 비교함으로써 알 수 있다.
 

< 대 조 >

1. 그리스도는 위로부터 오셨다(요6:38).

적그리스도는 구렁으로부터 올라온다(계11:7).

2.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셨다(요5:43).

적그리스도는 자기의 이름으로 온다(요5:43).

3. 그리스도는 자신을 낮추셨다(빌2:8).

적그리스도는 자신을 높인다(고후2:4).

4. 그리스도는 멸시를 받으셨다(사53:3; 눅23:18).

적그리스도는 칭송 받는다(계13:3,4).

5. 그리스도는 높임을 받으셨다(빌2:9).

적그리스도는 불못에 던져진다(사14:14,15; 계19:20).

6.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해 오셨다(요6:38).

적그리스도는 자기 자신의 뜻을 행하러 온다(단11:36).

7. 그리스도는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눅19:10).

적그리스도는 멸망시키기 위해 온다(단8:24).

8. 그리스도는 선한 목자이시다(요10:4-15).

적그리스도는 어리석은 목자이다(스카랴 11:16,17).

9. 그리스도는 참포도나무이시다(요15:11).

적그리스도는 땅에서 나온 포도나무이다(계14:18).

10. 그리스도는 진리이시다(요14:6).

적그리스도는 거짓이다(살후2:11).

11. 그리스도는 거룩한 분이시다(막1:24).

적그리스도는 불법자다(살후2:8).

12. 그리스도는 슬픔의 사람이시다(사53:3).

적그리스도는 죄의 사람이다(살후2:3).

13.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눅1:35).

적그리스도는 멸망의 아들이다(살후2:3).

14. 그리스도는 "경건의 신비"로서 육체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시다 (딤전3:16).

적그리스도는 "불법의 신비"로서 육체로 나타난 사탄이 될 것이다 (살후2:7).

 

  2) 이사야의 예언

메시아에 관한 이사야서 11장에서 우리는 메시아가 할 다음과 같은 일들을 읽을 수 있다.

{그는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고 자기 입술의 호흡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라}(이사야11:4).

"악인"으로 번역된 단어는 단수이며, 일반적인 악인들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분명히 불법자 한 사람에 대한 언급이다. 이것은 놀랍게도 데살로니가후서 2:8에 나타난 바울의 표현과 같다.

{그리고 나서 그 "불법자"가 나타나리니 주께서 그를 "자기 입에서 나오는 영"으로 소멸하시고 "그의 찬란한 오심"으로 제거하시리라}(살후2:8).

이사야와 바울은 위 구절에서 동일한 인물, 다름 아닌 적그리스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사야 14:4-17에서는 진노로 그 백성들을 치고, 분노로 나라들을 다스리게 될 한 "바빌론 왕"에 대한 묘사가 있는데, 그는 자만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하늘에 올라가서 내 보좌를 "하나님의 별들"(하늘의 권세들)보다 높일 것이요, 내가 또한 북편에 있는 회중의 산 위에 앉으리라. 내가 구름들의 높은 곳들 위로 올라가서 지극히 높으신 분같이 되리라}.

이 왕을 루시퍼라 부른다. "아침의 아들"과 그의 "타락"이 설명 되어 있다. 그는 지옥(스올, 지하세계)에까지 내던져지는데, 그곳은 그가 옴으로 인하여 그에 앞서 있던 지상의 왕들 가운데 큰 동요를 일으킬 것이며, 그들이 그를 볼 때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너도 우리같이 연약하게 되었느냐? 너도 우리같이 되었느냐?... 이 자가 땅을 떨게 하고, 왕국들을 진동시켰으며, 또 세상을 광야같이 만들었고, 그 성읍들을 멸망시켰으며, 그의 갇힌 자들의 집을 열어주지 않았던 그 사람이냐?}.

아직 여기에 묘사된 것과 같은 바빌론 왕은 결코 없었다. 그러므로 바빌론이 예전처럼 새로이 재건될때 바빌론의 어떤 '미래의 통치자'에 대해 언급한 것임에 틀림없다.

12절과 14절은 분명히 사탄에 대한 언급이며, 타락 이전의 그에 관한 묘사이지만, 그가 자신을 적그리스도로 육화할 때 그는 미래의 바빌론 왕이 될 것이며, 이것은 사탄의 멸망처럼 적그리스도의 멸망을 낳게 될 그의 자만과 전제의 근원을 설명해 준다.

 

  3) 다니엘의 예언

다니엘 7:7-8에서 다니엘은 "작은 뿔"이 앞으로 일어날 왕이며 주목할만한 지성과 웅변적인 능력, "큰 일들을 말하는 입"을 가진 "한 인물"이라 하였다. 그는 뻔뻔스럽고 오만하며, 거만하고 사람들을 박해하며, "시간과 법"을 바꿀 것이다. 그리고 "가장 높으신 이의 성도들"(다니엘의 사람들, 즉 유대인)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곧 "3년 반" 동안 그의 손에 주어질 것이다(단7:23-26).

후에 다니엘은 주권 다툼을 하는 수양과 숫염소의 환상을 보았다(단8:1-27). 그 숫염소는 눈 사이에 "현저한 뿔"을 가지고 있었다. 이 "거대한 뿔"은 부러뜨려졌고, 그 자리에 "네 개의 현저한 뿔"이 솟아 올랐으며, 그 중 한 뿔에서 "작은 뿔"이 나왔다.

{그 중 한 뿔에서 작은 뿔 하나가 나와서 남쪽과 동쪽과 "아름다운 땅"(팔레스타인)을 향하여 심히 커지더니 "하늘의 군대"에 이를 만큼 커져서 "군대"와 "별들"(천사들) 중에 얼마를 땅에 던지고 그것들을 짓밟더라. 정녕, 그(작은 뿔)는 자신을 "군대의 대장"(주 하나님,수5:13-15, 삼상17:45)에게까지 높였으며, 그('작은 뿔'- 적그리스도)로 인하여 매일 드리는 희생제도 없어지고 그의 성소의 처소(성전)도 헐어졌도다.}(단8:9-11).

다니엘이 그 환상에 대한 의미를 물었을 때 숫양은 메디아 페르시아 왕국을 나타내고 숫염소는 그리스(헬라) 제국을 나타내며 "거대한 뿔"의 자리에 솟아오른 "네 개의 뿔"은 "네 명의 왕"을 나타내고 "네 개의 뿔"의 하나에서 나온 "작은 뿔"은 그들 왕국의 더 나중 때에 나타날 사나운 용모의 한 왕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았다(이것은 그리스(헬라) 제국이 나뉘어진 네 왕국이 아니라 세계적인 네 왕국인데 그 "때"는 죄인들의 완전한 수가 차는 때일 것이다).

이 왕은 "난해한 문장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들 왕국의 나중 때에 범죄자들이 가득 차게 되면 무서운 용모를 하고 난해한 문장들을 깨닫는 한 왕이 일어나리라. 그의 권세가 막강할 것이나 자기 자신의 권세에 의한 것은 아니니(사탄이 그를 통하여 자신을 육화시킬 것이다), 그가 놀랍도록 파괴시킬 것이며 번성할 것이고 마음대로 행하며, 강한 자들과 거룩한 백성(유대인들)을 멸하리라. 그의 지혜를 통하여 그가 자기 손에 기교를 이루어서("짐승 표"를 지닌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사거나 팔 수 없함. 계13:17) 자기 마음 속에 자신을 높이고(살후2:3,4) 평화로 많은 것을 멸하리라. 그는 또한 "통치자들 중의 통치자"를 대적하여 설 것이나 그가 사람의 손에 의하지 않고 부서지게 되리라.}(단.8:23-25)

이것은 분명한 적그리스도로 숫염소의 머리 위에 있는 "현저한 뿔"의 자리에서 나온 "네 개의 뿔" 중 하나로부터 나온 "작은 뿔", 또는 "사나운 용모의 왕"임을 확실하게 증명해 준다. 왜냐하면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 nes, B.C.175-165)나 어떤 다른 과거의 통치자도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 대항하여 일어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는 "사람의 손으로 아니한 뜨인 돌에 부서진" 적이 없으며, 그는 B.C.165년 테배(Tabae)에서 늙어 죽었다. 그러나 적그리스도는 "사람의 손으로 아니한 뜨인 돌에 부서질" 것이다. 그의 왕국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돌 왕국", 즉 " 손으로 다듬지 않은 산의 뜬 돌"에 의해 멸망되어질 것이다(단2:34,35,44,45). 그리고 그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나타나심"(살후2:8)으로 말미암아 무능력하게 될 것이고, 불못에 "산 채"로 내던져질 것이다(계19:20).

두 명의 "선한" 사람들, 즉 에녹과 엘리야는 "죽음 없이" 하늘로 옮기워졌고, 두 명의 "악한" 자들, 즉 공식적으로 불리워지는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죽지 않고 산 채로" 불못에 내던져질 것이다.

다니엘 7장의 "작은 뿔"과 8장의 "작은 뿔"은 같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다니엘 7장의 "작은 뿔"은 네번째 짐승의 "열 뿔" 가운데 일어나는 것으로 로마제국을 지칭하고, 다니엘 8장의 "작은 뿔"은 숫염소의 머리에 있는 "거대한 뿔"의 자리에 나타난 "네 개의 뿔" 중 하나에서 일어나며 그것은 세번째 짐승, 즉 그리스(헬라) 제국을 나타내므로 같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사도 요한의 다시 재건된 로마 제국에 대한 환상(계13:1-2) : 마지막 무대에서의 로마 제국), 즉 로마 제국의 마지막 무대는 바빌론, 메디아-페르시아, 그리스(헬라) 그리고 옛 로마 네 왕국의 "모든 특성"을 포함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요한이 바다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던 "짐승"의 성격에서 볼 수 있다. 그것은 표범 같고(로마 제국) 곰의 "발"(그리스)과 사자의 "입"(메디아와 페르시아)을 가지고 있었다. 짐승의 "몸"이 표범(그리스)과 같다는 것은 재건된 로마 제국의 주요 특징이 옛 로마 제국과 같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그러한 까닭에 숫염소(그리스)의 "네 개의 뿔" 중 하나에서 일어난 "작은 뿔"은 네번째 짐승(부활한 로마 카톨릭)의 "작은 뿔"로 나타낼 수 있다.

숫염소의 "네 개의 뿔" 중의 하나에서 올라온 "작은 뿔"이 시리아의 왕이었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 의해 성취되어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가 팔레스타인을 황폐시켰고 "우상 제단"을 성전의 제단 위에 세우게 했으며, 돼지고기를 제물로 바쳤고 유대인들에게 가증스러운 일들을 행했던 것은 보지만 그가 숫염소의 "작은 뿔"의 묘사를 성취하지 못한 것은 보지 못한다(단8:9-13).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는 사탄적인 면에서 적그리스도와는 비교가 안된다.

다니엘이 언급한 "멸망의 가증스러운 것"(단9:27)은 "다니엘의 70째 주"의 "후 3년 반"에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 성취되지 못한 그 사건을 언급하셨으므로(마24:15)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다니엘 8:9-13에 있는 "작은 뿔"의 성취가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작은 뿔" 또는 적그리스도가 숫염소의 머리 위에 있는 "거대한 뿔"의 자리에 올라온 "네 개의 뿔" 중 하나에서 나온다는 것을 다니엘이 알았을 때, 그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 더 향상된 계시가 필요했다.

우리는 역사로부터 "거대한 뿔"은 알렉산더 대왕을 상징하고 "거대한 뿔"의 자리에서 올라온 "네 개의 현저한 뿔"은 알렉산더 대왕의 사후 그의 왕국이 나뉘어진 눈에 보이는 네 왕국인 이집트, 마케도니아, 트라키아 그리고 시리아를 상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네 왕국 중 하나에서 적그리스도가 일어날 것을 "숫양과 숫염소"의 환상으로부터 안 후 15년이 지나서 주께서는 그에게 두 왕들의 환상, 즉 "북왕"과 "남왕"의 환상을 보여 주셨다(단11:1-45).

"북왕"은 시리아의 왕이었고, 그의 특성과 행위는 "네 개의 뿔" 중 하나에서 나온 "작은 뿔"과 유사하기 때문에(단.11:36-38), 적그리스도는 시리아로부터 나올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다니엘11:21-31에서 언급되어지는 "북왕"이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 때"에 시리아로부터 나올 "작은 뿔"이지만 적그리스도는 아니었다는 사실은 미래에 적그리스도의 행위를 묘사한 35절 이후 나머지 절에서 알 수 있다.

32-35절까지를 포함한 그 중간 구절들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때와 적그리스도의 출현 사이의 기간을 설명한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적그리스도의 한 "형태"로서 간주되어질 수 있다는 어떠한 암시도 없다. 그들은 각각 그들 자신의 장소에서 다루어진 독특한 역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고 그들이 서로 어떤 면에서 비슷할지라도 혼동되어져서는 안되는 것이다.

"북"과 "남"의 관계는 팔레스타인(기쁨의 영화로운 땅, 단8:9, 11:16,41)과의 지리학적인 연관 때문에 시리아와 이집트에 적용되어진다. 주님께서 보시기에 예루살렘은 지상의 지리학적, 도덕적 중심지였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앗시리아를 포함한 시리아의 왕을 "북왕"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것은 적그리스도가 나올 곳의 소재를 분명히 해 주고 있으며 이사야 10:12에서 우리는 이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주가 그의 모든 일을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행할 때에(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때), 내가 시리아 왕(적그리스도)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그의 높은 눈의 영광을 벌하리라.}

그리고 이사야 14:25에서도 알 수 있다.

{내가 내 땅(팔레스타인)에서 앗시리아인(적그리스도)을 파하며 내 산들 위에서 그를 "발 밑에다 밟으리니", 그때 그의 멍에가 그들(이스라엘)에게서 벗겨지고 그의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겨질 것이라." 하였도다.}

위의 구절들은 이 예언이 그들의 땅, 이스라엘의 회복과 적그리스도의 멸망의 시기가 연관되는 것을 보여준다.

요약하면, 다니엘의 세 가지 환상들로부터 다음의 내용을 알 수 있다.

(1) 네번째 맹렬한 짐승의 "작은 뿔"로부터 하나의 신비롭고 사나운 사람이 "나중 때"에 일어날 것이다.

(2) 숫염소의 "거대한 뿔"의 자리에서 생긴 "네 개의 현저한 뿔" 중 하나에서 올라온 "작은 뿔"을 통해 그 "사나운 사람"이 알렉산더 대왕의 사후 그리스(헬라) 제국이 나뉘어진 왕국들 중 하나에서 나올 것이다.

(3) "북 왕"의 환상에서 볼 때 "사나운 사람"이 알렉산더 왕국에서 나뉘어진 시리아에서 나올 것이다.

 

  4) 바울의 예언

바울은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말하기를....

{아무도 어떤 모양으로든지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이는 먼저 "배교"하는 일이 이르지 않고서는 "그날"(주의 날)이 오지 아니함이라. 그리고 나서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리라. 그는 대적하는 자이며 또 하나님이라고 불리우는 모든 것과 숭배받는 대상 위에 자신을 높여 하나님의 성전(예루살렘에 다시 재건된 성전)에 앉아 하나님처럼 보여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하느니라... "불법의 신비"가 이미 활동하고 있나니 현재(바울이 살던 당시)는 막는 자가 있어 막을 것이나 그(성령)가 그 길에서 옮겨질 때까지만 그리하리라. 그리고 나서 그 "불법자"가 나타나리니 주께서 그를 자기 입에서 나오는 영(beath)으로 소멸하시고 그의 찬란한 오심으로 제거하시리라. 그 불법자가 오는 것은 "사탄의 역사"에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이적"과 멸망하는 자들 안에 있는 모든 "불의의 속임수"로 오는 것이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라}(살후2:3-10).

적그리스도를 "불법의 신비" 혹은 "불법자"라고 부른다. 즉 그는 "불법"의 원원인이 아니라, 그것의 열매이며 결과이다. 이는 그가 이미 세상에 선포되어졌으며 나타나고 있는 끓어오르는 "불법"의 가마솥으로부터 올라올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적그리스도를 "멸망의 아들"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 이름은 성경에서 단지 두 번 사용되었다. 첫 번째는 요한복음17:12에서 그리스도께서 유다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으며, 두 번째는 본문의 적그리스도에게 사용되었다. 사도 바울은 또한 적그리스도를 본문에서 "불법의 신비"라고 부른다.

이 뜻은 무엇인가? 디모데전서3:16에서 그리스도는 "경건의 신비"라고 하였는데, 즉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셨는가? 성령에 의해 처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던 것이다(눅1:35). 경건의 반대는 불법이다. 따라서 "불법의 신비""경건의 신비"를 대적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스도가 "경건의 신비"라면 적그리스도는 "불법의 신비"이며,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것처럼 적그리스도는 사탄의 "멸망의 아들" ,이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성령에 의해 처녀에게서 태어나셨기 때문에 적그리스도는 사탄에 의해 잉태한 여자(반드시 처녀일 필요는 없음)로부터 태어날 것이다.

이것은 사도 요한 이후 수 많은 영적인 하나님의 자녀들에 의해 알려졌으므로 새로운 견해는 아니다. 성경은 이것에 대해 몇가지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창세기3:15에서 하나님께서는 뱀(사탄)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그녀의 씨" 사이에 적의를 두리니, 그녀의 씨는 너의 머리를 부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부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여자의 그리스도이며, 뱀의 적그리스도인 것이다.

또한 요한복음8:44에서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나서 너희 아비의 정욕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그가 거짓말을 할 때는 자신에게서 우러나와 한 것이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또 거짓말의 아비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헬라어에서 "거짓말하다"라는 단어 앞에는 정관사가 붙어 어떤 한 사람을 지시한다. 그래서 마귀를 거짓말라고 일컬어질 때는 그 자신의 아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거짓말"이고 그의 아버지는 "거짓말쟁이"이기 때문이다. 즉 "거짓말"은 멸망의 아들적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왜 유다를 "멸망의 아들"이라고 불렀을까? 그는 어떤 여인에 의해 태어난 사탄의 자식이었는가? 아니면 사탄이 육신화된 것이었는가? 여기서 우리는 성경이 스스로 말씀하시는 것에 유의해야만 한다. 요한복음6:70,71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시기를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하나는 마귀니라."고 하시니라. 주께서는 시몬의 아들 유다 이스카리옷에 대해 말씀하셨으니, 이는 그가 열둘 중의 하나로 주를 배반할 자였음이라.}라고 말씀하신 구절을 볼 수 있다. 성경 어떤 구절에서도 "마귀(the devil;R.V.)"라는 말이 사탄을 제외한 어떤 사람에게 적용한 적이 없었다. 여기서 마귀는 디아볼루스(diabolus)라는 단어인데 정관사가 사용된다. 따라서 "그러나 너희 중에 하나는 그 마귀니라"고 읽어야 한다. 이것은 유다를 통한 사탄의 육화, 즉 "불법의 신비"를 이르는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요한복음17:12에서 왜 예수님께서 그를 "멸망의 아들"이라고 부르셨는가를 설명해 준다.

이것은 성경에서 "마귀(diabolus)"라는 단어를 사람에게 사용한 오직 한 구절이며, 이것은 "육화(incarnation)"를 의미한다.

"멸망"은 한 장소이며(계17:8,11), 또한 인간들이 떨어지게 될 하나의 "상태"이다(딤전6:9,히10:39). 그리고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범했던 인간들은 "멸망의 아들들"인데, 이들은 변명할 수 없는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유다와 적그리스도는 멸망의 창시자인 마귀의 자식들이며 "멸망의 아들들"이다. 이것은 단순히 그들이 마귀에 의해 "사로잡혔거나" 조종당하는 상태가 아니라, 그들은 마귀가 육화된 마귀 자신인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유다와 적그리스도가 둘 다 '멸망의 아들'이라고 불리웠다면 그들은 동일한 인물인가?, 아니면 다른 두명의 '멸망의 아들들'인가?"라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이 문제를 같이 살펴보자. 요한계시록11:7에서 보면 "두 증인"을 죽인 "끝없이 깊은 구렁"에서 올라온 "짐승"적그리스도라는 사실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구렁"에 가게 되었는가? 만약 유다와 적그리스도가 하나의 동일한 인물이고 유일한 한 명의 "멸망의 아들"이라면 그는 사도행전1:25에서 처럼 유다는 "자기 거처"로 갔다고 했을 때, 그 거처는 "구렁"을 말한 것일 것이다. 유다가 자기가 가야할 곳으로 갔다라는 구절처럼 어떤 다른 사람에게 쓰여진 적이 없다. 다시 계시록17:8에서 {네가 본 그 "짐승"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고, 앞으로 "끝없이 깊은 구렁"으로부터 나와서 멸망으로 들어갈 자라}고 말씀하신다. 이 "짐승""두 증인"을 죽인 인물로서 그는 적그리스도이다. 지금 여기에서 그에 관한 네가지 언급이 있다. 첫째 그는 전에는 "있었고", 둘째 그는 지금은 "없으며", 셋째 앞으로 그는 "끝없이 깊은 구렁으로부터 나올" 것이며, 넷째로 "멸망으로 들어갈"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요한이 살았던 당시에는 "짐승"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전에는 지상에 있었으며 앞으로 "끝없이 깊은 구렁"에서 다시 올라온 뒤에 다시 내려갈 것이다. 이것은 적그리스도전에는 지상에 있었으며, 미래에 다시 "구렁"에서 올라올 것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된다.

그렇다면 "적그리스도가 과거의 어느 시기에 있었느냐?"는 질문이 생길 것이다. 만일 유다와 적그리스도 동일 인물이라면 이 질문은 쉽게 해결된다. 유다가 땅에 있었을 때 그는 있었으며, 유다가 "그 자신의 거처(his own place)"(행1:25)로 갔을 때 지상에 그도 없었다. 유다, 즉 적그리스도가 다시 앞으로 "깊은 구렁"으로부터 나타날 것이다.

필자는 유다와 적그리스도에 관한 이 견해를 반드시 옳다고 고집하지는 않지만 열린 마음으로써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왜냐면 유다와 적그리스도 둘 다 "멸망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견해이기 때문이다.

 

  5) 요한의 예언

팟모섬에서 요한은 적그리스도에 대한 환상을 보았다.

{내가 바닷가 모래 위에 서서 보니, 한 짐승이 바다(지중해)에서 올라오는데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졌더라. 그 뿔들에는 열 개의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이 있더라. 또 내가 본 그 짐승은 표범과 같고, "발"은 곰의 발 같고,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자기의 능력과 자리와 큰 권세를 그 짐승에게 주더라. 또 내가 보니, 그의 머리들 가운데 하나가 상처를 입어 "죽게 된 것" 같았으나, 그의 치명적인 "상처가 나으니" 온 세상이 기이히 여겨 그 짐승을 따르더라. 사람들이 그 짐승에게 권세를 준 에게 경배하고 또 그 짐승에게도 경배하며 말하기를 "누가 그 짐승과 같으며 누가 감히 그와 더불어 싸울 수 있으리요?"라고 하더라. 그 짐승이 큰 일들과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입을 받았으며 또 마흔 두 달 동안 활동할 권세를 받았더라. 그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모독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성막과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모독하더라. 그가 성도들(교회의 성도들이 아닌데, 그들은 영광 가운데 올라갔다.)과 싸워 그들을 이기는 권세를 받았으며 모든 족속과 언어와 민족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더라. 세상의 기초가 놓인 이래로 죽임당한 어린 양의 생명의 책에 그들의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땅에 사는 모든 자는 그에게 경배할 것이라.}(계13:1-8).

이제까지 살펴보았던 여러 선지자들의 "관점"을 비교해 보면 우리는 다니엘의 "작은 뿔"과 바울의 "죄의 사람" 그리고 요한의 "짐승"의 유사점들을 정리할 수 있다. 다니엘의 "작은 뿔"과 요한의 "짐승"은 같은 기간(42개월 또는 3년 반) 동안 계속 존재한다. 그리고 다니엘의 "작은 뿔", 바울의 "죄의 사람", 요한의 "짐승"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같은 방법으로 멸망당한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사탄의 활동" 이후에 일어날 "악의 권세"를 미리 내다보았고, 요한은 이것을 가리켜 요한일서 2:18에서 적그리스도라고 불렀다. 그들은 동일한 기간 동안 존재하고 동일한 인격을 가지며, 동일한 일을 하고 동일한 영역을 점유하며, 동일한 운명을 지닌 "세 명의 상징적인 인물"임을 우리는 예언을 통해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같은 사람을 상징한 것이어야 한다.

요한의 "짐승"과 다니엘의 "무시무시한 넷째 짐승"을 비교해 보면 우리는 그 두 짐승이 바다(민족들)에서 올라오고 우리가 이제까지 들어왔던 어떤 짐승과도 닮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두 "짐승들"을 비교해 보면 우리는 다니엘의 짐승은 무섭고 포악하며, 매우 강하고 거대한 철로 된 이빨과 동으로 된 손톱을 가진 반면에, 요한의 짐승은 표범과 같고 곰의 발과 사자의 입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다니엘의 "짐승"은 로마 카톨릭, 즉 지상에 세워진 "네번째 왕국"을 상징하기 때문에 그 짐승은 로마 카톨릭의 특징을 묘사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요한의 짐승의 특징 역시 로마 카톨릭을 상징한다. 우리는 고대 로마제국이 매우 강하고 "거대한 철 이빨"과 "동으로 된 손톱"을 가진 짐승과도 같은 큰 힘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요한의 "짐승"의 묘사로부터 몸은 표범같고 곰의 발과 사자의 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짐승은 세계적인 네 제국의 특성을 모두 포함하는 다시 세워질 로마제국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열 뿔을 가지고 있는 두 짐승은 신상의 열 발가락으로 상징되는 시대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서로 유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천년왕국(돌 왕국) 이전에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다니엘의 "짐승"이 가진 "열 뿔"과 요한의 "짐승"이 가진 "열 뿔"이 동일한 것을 상징함을 알고 있다(계17:12). 로마 카톨릭이 결국은 "열 개의 열방 국가로 흩어질 것"을 다니엘과 요한은 미리 내다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열 뿔을 가진 두 "짐승"은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다니엘의 짐승은 머리가 하나인 반면에 요한의 짐승은 "일곱 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다니엘의 짐승은 "열 뿔" 사이에서 하나의 "작은 뿔"이 솟아오르지만, 요한의 짐승은 "열 뿔" 사이에서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짐승들의 특징은 이들이 마지막 활동무대에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다니엘과 요한의 "짐승"을 주의깊게 비교해 보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다니엘의 짐승은 "작은 뿔"이 "열 뿔" 중 세 개를 뽑아 멸망시켜서 그들의 왕국을 제거하는데, 요한은 이것을 생략했기 때문이다. 다니엘의 짐승이 가진 사탄적인 성격은 그 짐승의 "작은 뿔"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작은 뿔"의 행동은 요한의 "짐승"과 부분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일치한다. 즉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42개월"인 것이다.

여기서 요한의 "짐승"의 마지막 활동 무대의 윤곽을 잡아보고자 한다. 요한의 짐승에 대한 묘사에서 "짐승"이란 말이 "이중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짐승"은 로마 카톨릭과 그 머리인 적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이 "짐승"은 요한이 살던 시대의 로마제국에 대한 언급일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짐승"은 과거에는 있었으나 현재는 없고 로마제국은 요한의 시대에 권력의 정점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짐승"은 단지 끝없이 깊은 구렁에서 올라와 영원한 멸망으로 떨어질 한 사람에 대한 언급일 수 만은 없다. 다시 우리는 "짐승"의 몸과 머리와 뿔을 비교해 보아야만 한다. 곰의 발과 사자의 입을 가진 표범과 같은 몸은 다니엘의 "세 마리 맹렬한 짐승", 즉 사자와 곰과 표범의 특징을 포함하는 마지막 때에 재건될 로마 제국을 보여준다. 몸은 표범에 의해 표현되어지는데 이것은 그리스풍으로 재건될 로마의 일반적인 특성인 것이다.

"짐승"은 바다에서 올라오는데(계13장) 일곱 머리열 뿔을 가지고 있고 "열 뿔"에는 왕관이 씌워져 있다. 이 "짐승"은 나뉘어진 열 왕국의 "머리"인 열 왕들이 왕관을 받았을 때 받게 될 권세를 의미한다. 또 일곱 머리열 뿔을 가진 짐승이 끝없이 깊은 구렁에서 올라오는데 그 뿔에는 왕관이 씌워져 있지 않다. 왜냐하면 열 왕열 뿔에 의해 상징되어지는데 그들은 아직 그들의 나라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계17:12). 요한계시록 17장의 "짐승"은 "한 주"의 시작에 적그리스도가 일어날 것을 상징하고 있다.

이 관점의 증거인 "여자"는 이때 "짐승" 위에 앉아 있다. "진홍색 옷을 입은 여자"는 요한계시록 17장에서야 나타나는데, 여기서 그녀는 "한 주"의 시작에서부터 "짐승"을 타고 있고, 창녀는 참된 교회를 박해해 왔던 "교황 교회"를 상징한다. 적그리스도가 일어나기 전의 전쟁 중에 로마 카톨릭을 중심으로 하는 그 주변의 국가들은 공동의 방어를 위한 "동맹"의 형태를 이룰 것이다. 짐승의 "열 뿔"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동맹에 참여하는 나라는 모두 열 개국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교황 교회"는 이러한 과정들 속에서 큰 일익을 담당할 것이다. 그녀는 정치적인 권력을 부강시킴으로써 그에 따른 보상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 창녀는 "교회와 국가의 연합"을 주도할 것이며, 여자가 짐승을 타고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이것을 조종하게 될 것이다. "열 왕"들은 나라를 받을 때 왕관을 쓰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 창녀를 증오하며, 그녀를 패망시키고 벌거벗기며, 그녀의 살을 먹고 그녀를 불로 태울 것"이다(계17:16).

우리는 요한계시록 17:9에서 "짐승"의 "일곱 머리들"은 "일곱 산"(로마 제국으로 확인된다)과 그 다음 절(10절)의 "일곱 왕들"을 상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곱 왕" 가운데 "다섯은 패망하였으나 하나는 남아 있고, 또 하나는 아직 오지 아니하였으나 오면 잠시 동안만 머무르게 되리라." 즉 요한이 살아 있던 당시에 그들 중의 다섯 왕은 이미 패망하였고, 하나는 그 당시 지배하고 있는 황제였으며, "일곱번째" 왕은 아직 오지 않았었다. 패망한 "다섯 왕"들이 누구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요한이 살아 있던 때에 보좌에 앉아 통치하던 왕은 요한을 팟모섬으로 유배시킨 도미티안(Domitian)이었다.

그러므로 아직 오지 않은 마지막 "일곱째 왕"은 의심할 여지없는 적그리스도인 것이다. 요한계시록 13:3에서 "일곱 머리" 또는 "왕들" 중의 하나가 상처를 입고 죽는다. 그러나 이 왕이 누구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머리들 중의 하나가 상처를 입고 죽기 전의 짐승은 "머리들"을 모두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상처를 입고 죽은 것은 마지막 머리임을 추측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 17:11에서 그는 전에는 있었으나 지금은 없고 "여덟 번째"지만 "일곱" 중에 속해 있으며 멸망으로 들어갈 자라고 불리워지고 있다. 이 구절에서 알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은 "일곱번째 머리", 즉 적그리스도는 아마도 암살자의 손에 의해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어 그의 몸을 땅에 묻으려 할 것이며, 그는 죽음에서 일어날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 이. 이 때 그는 나 그가 죽음으로부터 일어났기 때문이다(계13:3). 그래서 그는 "여덟 번째"지만 "일곱" 중에 속한 자가 되는 것이다.

이 적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사탄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흉내내고 온 세상이 "기이히 여겨 그 짐승을 따르도록" 만드는 것이다(계13:3). 이것은 그의 명성과 힘을 증가시킬 것이다. 만약에 이 일이 "한 주의 중간에" 일어난다면 동시에 용은 하늘에서 쫏겨 내려올 것이고 그로 인해 적그리스도가 땅을 지배하게 되는 커다란 이변이 일어날 것이다. 왜냐하면 "상처를 입고 죽기" 전 그는 부드럽고 호감이 가는 인물이었지만 부활한 후 용이 육화된 결과로 극악무도한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에그는 유대인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그 자신의 "우상"인 "멸망의 가증한 것"을 성소에 세우고 더럽히며 황폐하게 할 것이다. 다니엘의 "무시한 넷째 짐승"의 "작은 뿔"로 그는 "열명"의 왕에서 셋을 멸망시켜 자신의 권세의 자리를 확고히 할 것이다. 따라서 "작은 뿔"인 그는 "열 뿔", 즉 "열 왕국"들이 연합되기 전에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이것은 적그리스도는 연합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여기서 출현할 뿐이다.

 

  6) 적그리스도의 미래와 운명

그는 느부갓네살과 아닥사스다와 알렉산더 대왕과 시이저의 힘과 역량을 모두 소유한 "복합적인" 인물일 것이다. 그는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불가사이한 재능과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인품과 다재다능함과 특출한 지혜와 위대한 통치력과 일을 실행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이 모든 재능으로 인하여 슈퍼맨(Superman)으로 만들어진 그는 사탄의 도구가 될 것이다.

그는 위대한 박애주의자요, 인류의 친구요, 선지자들의 예언처럼 유대인들을 "황금시대"로 인도하는 자처럼 믿게 하여 유대인들의 특별한 친구로 행세할 것이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은 그를 그들의 메시아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사람들을 미혹시킬 것이며, 살해되었다가 다시 살아날 때 그는 그의 위력 중 어느것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잔인함과 가증스러움이 더해질 것이다.

{그가 지극히 높으신 분을 대항하여 큰 말을 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분의 성도들을 지치게 할 것이고, 또 때와 법을 변경시키려 생각할 것이라. 그들은 그의 손에 주어져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단7;25).

{그의 지혜를 통하여 그가 자기 손에 계략을 늘려서 자기 마음 속에 자신을 높이고 평화로 많은 것을 멸하리라. 그는 또한 통치자들 중의 통치자를 대적하여 설 것이나 그가 사람의 손에 의하지 않고 부서지게 되리라}(단8:25).

IV. 적그리스도의 통치

적그리스도는 다니엘의 "칠십째 주", 즉 7년 동안 통치하게 될 것이다. {그가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주(다니엘의 70째 주) 동안 언약을 확정하고 그 주의 중간에 그가 희생제와 예물을 금지시킬 것이요, 그는 가증함을 확산시킴으로 황폐케 하리니 진멸할 때까지 할 것이며, 정해진 것이 황폐케 한 자에게 쏟아지리라"}(단9:27).

교회가 휴거된 후 유대인들은 그들의 고토로 되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옛 로마제국의 영토를 차지하고 있던 열 왕국들이 이때 쯤 연합하게 되며 이 열 왕국의 왕들 중에서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는 곧 자신이 위대한 통치자임을 증명하고 대통령이 될 것이다. 이 정부는 민주적인 군주 정부가 될 것이다.

그 통치자(적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이 그들의 땅으로 되돌아 올 무렵 유대인들과 "언약"을 맺을 것이다. 그 언약의 성격이 무엇이든간에 이사야 선지자는 그것을 "사망과 지옥의 언약"이라고 말했다(사28:15).

왜냐면 그는 3½년동안 그 약속을 지키지만 그 이후 그것을 파기할 것이다. 그리고 남은 3½년의 기간 동안 그는 "대환난"이라고 불리우는 끔찍한 박해를 유대인들에게 가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박해는 유대인들에게만 한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13:7-8에서 그에게 다음과 같은 권세가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가 성도들과 싸워 그들을 이기는 권세를 받았으며 모든 족속과 언어와 민족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더라. 세상의 기초가 놓인 이래로 죽임당한 어린 양의 생명의 책에 그들의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땅에 사는 모든 자는 그에게 경배할 것이라.}

이 기간의 자세한 내용은 "대환난"장을 참조하라.

V. 적그리스도의 운명

7년 기간의 후반부에 열 개의 동맹국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기 위해 예루살렘 북쪽에 위치한 므깃도 계곡으로 모일 것이다(스가랴 14:2). 그리고 주께서는 "다윗의 집", 즉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백성들 위에 "은혜와 간구의 영"을 부으실 것이다(스가랴 12;10). 주께서는 "하늘에 있는 군대들의 대장"으로서 유대인들을 치유하시러 오실 것이고(계19:11-16),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올리브산 위에 서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스가랴 14:4). 그리고 짐승(적그리스도)과 이 땅의 임금들과 군대들은 그리스도를 대항하여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함께 모일 것이다. 결국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산 채로 "불못"에 던져질 것이며 나머지는 흰 말을 탄 예수 그리스도의 칼에 죽임을 당할 것이다. 하늘의 새들은 "위대하신 하나님의 잔치"에 모여 왕들과 장군들과 군인들의 살을 먹게 될 것이다(계19:17-21).

 

 

20. 사탄의 삼위일체 (THE STANIC TRINITY)

사탄은 "이 세상(시대)의 신"이다(고후4:4).

이 세상(시대)의 신인 사탄의 목적은 하나님을 "흉내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예수)을 이 세상에 보내셨던 것처럼, 사탄도 적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낼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처럼 사탄도 적그리스도의 몸을 입고 나타날 것이다.

"경건의 신비"는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신 것이다(딤전3:16). 또 "불법의 신비"는 사탄이 "육신"으로 나타나는 것이다(살후2:7). 우리는 적그리스도를 통하여 사탄이 행하는 일들을 보게 될 것이다.

I. 그리스도께 "교회"가 있듯이 적그리스도에게도 "사탄의 회당"이 있다(계2:9, 3:9).

II. 그리스도께 신부인 "교회"를 가 있듯이(엡5:25-27), 적그리스도도 그의 신부인 "음녀 교회"가 있다(계17:1-16).

III. 그리스도께 "교제의 잔"(주의 잔)이 있듯이(고전10:16, 11:25, 10:21), 적그리스도도 "마귀들의 잔"을 갖고 있다(고전10:21).

IV. 그리스도는 3년 반 동안 세상에서 복음을 전했듯이, 사탄도 적그리스도를 통해 같은 기간 동안 세상을 통치할 것이다.

V. 그리스도는 33세의 나이에 죽으셨듯이, 적그리스도도 동일한 나이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죽임을 당할 것이다.

VI. 삼위일체는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시다. 사탄의 목적은 이 세상에서 그 자신을 삼위일체로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을 하나님의 삼위일체와 구분해서 "사탄의 삼위일체"라고 부른다.

사탄의 삼위일체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 - 하나님을 대항(Anti-God)

2. "짐승" - 그리스도를 대항(Anti-Christ)

3. "거짓 선지자" - 성령을 대항(Anti-Spirit)

사탄과 적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이미 앞서 살펴보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거짓 선지자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거짓 선지자

사도 요한은 환상 중에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을 보고 그것을 묘사한 후 다시 땅에서 올라오는 다른 "짐승"을 보았다. 요한이 그 "두번째 짐승"을 양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 짐승은 "양같이 생긴 두 뿔"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양처럼 생긴 짐승이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은 그 "두번째 짐승"을 적그리스도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를 흉내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은 요한계시록에서 22번 언급된다. 요한계시록 5:6에서 묘사되고 있는 양은 "일곱 뿔"을 가진 양이지 "두 뿔"을 가진 양이 아니다. 이런 차이는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양처럼 생겼어도 용처럼 말을 하기" 때문에 빚어진다.

"두번째 짐승"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사도 요한은 이를 가리켜 세 번이나 "거짓 선지자"라고 불렀다.(계16:13, 19:20, 20:10.) 두번이나 그는 "첫번째 짐승(적그리스도)"을 연상시키므로 그가 사람인 것처럼 그도 사람임이 틀림없다. 그가 "거짓 선지자"로 불리는 것으로 보아 "적그리스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태복음 24: 24에서 거짓 선지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큰 표적과 이적을 보여 주어 할 수만 있다면 택함받은 자들도 미혹하리라}(마24:24). 여기서 예수님은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분명히 구분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는 동일 인물일 수가 없는 것이다.

"두번째 짐승"은 땅에서 올라오는데 아마도 부활한 사람의 형상일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유다의 부활한 형상이라는 암시로 보아 "거짓 선지자" 역시 부활한 사람의 형상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두 증인", 즉 모세와 엘리야가 하늘로부터 내려오게 되면 이에 대항하여 사탄도 "지하 세계"로부터 두 사람을 올려 보내지 않겠는가? "첫번째 짐승"(적그리스도)과 "두번째 짐승"(거짓 선지자)이 둘다 산 채로 "불못"에 던져진다는 사실은 그들이 보통 사람 이상의 사람들이며 "첫번째 짐승"은 다시 세워질 로마제국을 통치할 마지막 사람이라는 것의 충분한 증거가 된다. 그는 사탄의 조종을 받는 초인간, 즉 적그리스도인 것이다.

"용"과 "짐승", 그리고 "거짓 선지자"는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흉내낸 "사탄의 삼위일체"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용"은 아버지, 사탄(Anti-God),이고, "짐승"은 "멸망의 아들"인 적그리스도(Anti-Christ)를 가리키며, 그는 용에게서 태어나 이 세상에서 죽고 부활하여 그의 아버지인 용으로부터 보좌를 받게 될 것이다. "거짓 선지자"는 사탄과 적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된 용처럼 말하는 "악령"(Anti-Spirit)이다. "용"은 "사탄(Anti-God)"이고, "짐승"은 "적그리스도(Anti-Christ)"이며, "거짓 선지자"는 "악령(Anti-Spirit)"으로서 이 셋이 모두 "불못"에 산 채로 던져진다는 사실(계20:10)은 이들이 "사탄의 삼위일체"가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으로서 왕국을 통치한다. 그는 사탄이 그리스도에게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이 세상의 왕국"을 받아들일 것이다(마4:8-10). 그는 또한 스스로를 높이고 하나님과 동등함을 주장할 것이다(살후2:4). 그러나 "거짓 선지자"는 왕이 아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첫번째 짐승인 적그리스도를 높인다. 그와 "첫번째 짐승"과의 관계는 성령과 그리스도와의 관계와 동일하다. 그는 땅에서 "첫번째 짐승"을 숭배할 것이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강요할 것이다. 또한 그는 생기를 불어넣는 힘을 가지고 있고 이것으로 성령을 흉내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구속의 날"까지 성령 안에서 인치심을 받은 것처럼(엡4:30)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도 "멸망의 날"까지 거짓 선지자에 의해 인침을 받게 될 것이다(계13: 16-17).

거짓 선지자는 "이적"을 행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적을 행하실 때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일들을 행하셨다(행10:38). 거짓 선지자가 행하는 이적 가운데는 하늘에서 불을 내려오게 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계시록 11:1-14에서 "두 증인"에 관해 보았듯이 거짓 선지자와 엘리야 사이에 누가 갈멜산의 하나님인가를 증명하는 "불 시험"이 재현될 것이다. 그 때에 거짓 선지자에게 생기를 불어 넣게 될 사탄이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욥기1:16절을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욥의 모든 재산을 건드릴 수 있는 허락을 받은 사탄이 "하늘에서 불을 내려오게 하여" 욥의 양과 종들을 모두 불살라 버리게 한 일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이 때에 거짓 선지자는

"짐승의 형상"

을 만들도록 사람들에게 강요할 것이다. 이것은 "첫번째 짐승"이 적그리스도라는 더 명확한 증거이다. 눈에 보이는 하나님을 경배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최대의 약점 가운데 하나이다. 한 예로 모세의 인도 하에서 이집트를 탈출해 나온 이스라엘 사람들도 모세가 시내산으로 들어가 40일 간 아무런 소식이 없었을 때 그들의 믿음을 버렸었다. 그들은 아론에게 자신들을 인도할 신을 만들라고 요구했고 아론은 그들을 위해 "금송아지"를 만들었다(출32:1-6). 마찬가지로 거짓 선지자도 사람들에게 경배의 목적으로 "짐승의 형상"을 만들도록 할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거짓 선지자는 그 짐승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그 짐승으로 하여금 말을 하게 만들 것이고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죽이도록 할 것이다. 다른 말로해서 "형상"은 살아서 말하는 "인조 인간" 되는 것이다.

이 "형상"은 느부갓네살 왕이 만들도록 명령하여 바빌론의 투라 평원에 세워진 "금형상"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단3:1-30). 사람들은 음악에 맞춰 신상에 절을 했으며 이에 복종하지 않을 시에는 "불타는 용광로"에 던져지는 형벌을 받았다. 의심할 여지없이 "적그리스도의 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짐승의 형상"에 경배하고 절하는 것을 거부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히브리의 세 소년들", 즉 다니엘의 세 친구들처럼 타오르는 불 속으로 던져질 것이고 하나님은 기적적인 방법으로 그들 중 얼마를 구원하실 것이다. 거짓 선지자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모든 자, 즉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이나 간에 그들의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그 "표"나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의 이름의 숫자를 지닌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사거나 팔 수 없게 할 것이다(계13:16-17). 이 ""는 바로

"지옥의 도장"인 것이다.

지금 이 세상은 이 때를 향하여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 멀지 않아 "신용거래"와 "위탁판매" 등이 "신용거래"에 흡수되어 통합될 것이고, 이로써 "경제 통합"이 될 것이다. 마침내 적그리스도가 이 "신용거래 경제연합"의 우두머리가 되어, 생산자와 소비자는 이 문어발의 촉수들에 의해 힘을 잃게 되며, "오른손"이나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사람은 물건을 사거나 팔 수 없게 될 것이다. 이 "표"는 낙인이거나 불에 덴 것일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짐승의 수"이거나 "666"이 될 것이다. 숫자 "666"은 "인간의 수"인데, 완전한 수의 7에 모자라는 것이다. 인간은 여섯째날에 창조되었다.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했던 골리앗은 사탄의 모형인데, 그의 키는 6큐빗이었으며, 그는 6조각으로 이루어진 갑옷을 입었으며, 그의 창날은 600세겔이었다(삼상17:4-7). 느브갓네살의 신상은 "짐승의 형상"의 모형인데, 크기가 60큐빗이었으며, 너비는 6큐빗이며, 6가지의 악기가 연주될 때 경배자들이 엎드렸다(단3:1-7).

그날에 사람들은 분명히 오른손이나 이마에 ""를 받기 원할 것이다. 오늘날 수표나 영수증에 싸인을 하는 일과 신용카드가 나날이 증가하는 것에서도 그 정도를 찾아볼 수 있다. 의심할 여지없이 ""를 받지 않은 사람은 물건을 사고 팔 수 없을 것이며, 이것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적용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지키지 않을 시에는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다.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서운 재앙을 입을 것이고 ""가 없어서 물건을 사고 팔지 못하는 사람들은 굶어 죽을 것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단두대에서 사형을 당할 것이다(계20:4). 그리고 단두대에서 죽임을 당할 사람들의 명단을 그 전날 신문에 실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 법을 지키도록 강요할 것이다. 환난 끝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동시에 일어날 이 "사탄의 삼위일체"의 최후는 이러하다. "사탄(Anti-God)"인 "용"은 "끝없이 깊은 구렁"으로 떨어지고(계20:1-3), "짐승", 즉 "적그리스도(Anti-Christ)"와 "거짓 선지자"인 "악령(Anti-Spirit)"은 산 채로 "불못"에 던져짐으로 끝이 날 것이다(계19:20).

 

 

21. 네가지 복음

복음(Gospel)이라는 말은 복된 소식(Good News)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말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에 모두 다 같은 것으로 적용하고 있다. 그래서

왕국의 복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영광스러운 복음,

영원한 복음을,

이야기 할 때 그것들이 모두 하나이며 똑같은 것으로 생각되어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복음들은 같은 것이 아니다.

1. 왕국 복음

(The Gospel of "The Kigdeom")

마태복음24:14

이 "복음"은 누가복음 1:32,33에 예언된 것으로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실 지상 왕국을 건설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복된 소식이다. 이 복음은 침례인 요한의 사역과 함께 전파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도 전파되어졌지만 유대인들이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함으로 일단 중단되었고 교회가 휴거된 이후에 다시 선포되어질 것이다. 이것이 마태복음 24:14에 있는 예언의 성취이다. {이 "왕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런 후에야 끝이 오리라.}(마24:14). 이 성경 구절에는 현재 각 민족들에게 전파되고 있는 복음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왕국 복음"은 "구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증거되기 위한 "구원의 복음"인데, 즉 왕국 복음은 왕국건설할 때가 임박했다는 통보인 것이다. 이것 복음은 환난 때에 엘리야를 통해 전해질 것이고(말4:5,6) 모든 민족에게 다윗의 보좌에 앉으실 왕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전하도록 위임받게 될 다른 사람들에 의해 전해질 것이며,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다시 모이게 할 목적으로 전파될 것이다.
 

2.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The Gospel of "The Grace of God")

사도행전20:24

이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삼 일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복된 소식이다(고전15:3,4). 이 복음은 다양한 방법으로 묘사 되어진다. 로마서 1:1에서는 이것을 가리켜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요3:16). 이 복음의 성격은 은혜이고(행20:24),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이며(롬1:16; 고후10:14),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또 이 복음은 "화평의 복음"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죄인과 하나님 사이를 화목하게 하고 우리의 혼에 화평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엡6:15).
 

3. 영광스러운 복음

(The "Glorious" Gospel)

고후4:4; 딤전1:11

"영광스러운 복음"은 "하나님의 영광" 중에 계시고 영화롭게 되셨으며, 많은 아들들에게 영광을 가져다 주실 그 분에 대해 언급하는 복음이며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과 관계가 있다(히2:10). 이 복음은 그 분의 재림에 대한 특별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으며, 특별히 그 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있다. "이 세상의 신"인 사탄이 주님의 전천년재림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것도 바로 이 영광스러운 복음 때문이다(고후4:3,4).
 

4. 영원한 복음

(The Everlasting Gospel)

계시록14:6

이 복음은 "호리병 심판"이 있기 바로 전 한 천사에 의해 선포되어질 것이다. 이것은 한 천사에 의해 주어지는 유일한 복음이다. 이것은 "왕국"이나 "은혜"의 복음도 아니다. 이것의 임무는 구원이 아니라 심판이다.

{또 내가 보니, 다른 천사가 하늘 한 가운데로 날아가는데 그가 땅에 사는 자들과 모든 민족과 족속과 언어와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이 복음은 이스라엘과 심판의 불을 통과하고 있는 자들에게 "기쁜 소식"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복음의 선포와 더불어 그들의 고통은 심판과 적그리스도와 그의 추종자들의 멸망으로 끝이 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복음은 사람들에게 "구원자"로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말한다. 이 "영원한 복음"은 족장들과 선지자들에 의해 에덴 이래로 계속 선포되어져 왔다. 이 복음은 사람들을 모두 영원한 삶을 위해 구원한다는 뜻에서의 영원한 복음이 아니다. 이 복음의 요점은 회개나 이것을 해라 또는 저것을 해라 하는 명령이 아니다. 단지 이 복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 분께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 분의 심판의 때가 이르렀음이라.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의 원천들을 지으신 그 분께 경배드리라.}(계14:7)이다.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여러가지 복음의 메세지에 관한 것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적용되는 시기를 분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았다. 이것들을 분별하지 못한다면 혼란과 잘못된 가르침이 나올 것이다(도표를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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