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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류 머레이-1

 

 19세기 '남아프리카의 성자'라고 불리는 그는 1928년 남아프리카 그라프 라이넛에서 태어났다. 스코트랜드 애버딘 대학에서 문학석사과정을 포함하여 7년의 교육을 받았으며 그곳에서 19세기의 부흥운동과 긴밀한 접촉을 가졌다. 장로교회 목사들의 설교를 통해 많은 감명을 받은 그는 3년간 신학 공부를 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후 남아프리카 땅으로 돌아와 목회를 시작하였다. 남아프리카 오렌지 자유주에 위치한 블룸폰테인(Bloemfontein)에서 처음 사역을 시작한 그는 이후 우스터에서 목회 요청을 받아 그곳으로 사역을 옮겼다. 이때부터 그는 수많은 경건 서적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우스터에서 4년간 봉사한 후, 케이프타운에서 목회를 하며 그곳에 YMCA 지사를 창설한다. 그는 또한 당시의 신학적 자유주의에 대하여 보수주의적인 태도를 확고히 했다. 1871년 케이프타운에서 45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 웰링턴으로 목회지를 옮긴 그는 목사직을 사임하는 1906년까지 그곳에서 봉사한다. 그의 목회는 그의 저서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영적 생활을 심도있게하고 풍성하게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사회복지와 교육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던 그는 웰링턴에 위그노 신학교를, 웰링턴 선교대학을 세워 남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위한 선교사들을 훈련시키기도 하였다. 후에 세계 선교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1889년 자신이 졸업한 애버딘 대학에서, 1907년 Cape of Good Hope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오늘날 그는 많은 경건 서적 때문에 더욱 유명하다. 그의 작품 속에는 그의 삶과 목회와 사상들이 모두 담겨져 있으며 신앙의 핵심을 짚어내어 일목 요연하게 해설하고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평생 집필한 240여 편의 주옥같은 글들은 대부분 그리스도인의 경건 생활과 기도에 관한 것으로 특히 「그리스도의 기도학교에서(With Christ in the School of Prayer)」는 기도의 고전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또한 그의 저서는 자신의 경건과 기도 생활을 통해 체험하고 깨달은 것을 담고 있기에 더욱 큰 감동과 공감을 일으키며 신앙 생활에 직결되는 지침을 말해주고 있다.

 

앤드류 머레이의 삶

국내에서 앤드류 머레이, 혹은 앤드류 머리라 소개되는 앤드류 머레이는 앤드류 목사와 마리아 머레이 사이에 태어난 네 자녀들 중의 하나였다. 그는 세상의 가장 후미진 곳이라 여겨지는 남아프리카의 그래프 레이넷이라는 곳에서 자랐고 스코틀랜드와 네덜란드에서 교육받았다. 1848년에 앤드류는 선교사로 남아프리카에 돌아와 네덜란드 개신교와 일했다. 그의 첫 번째 임지는 브렘포테인으로서 5만 마일 정도 되는 땅에 12,000명의 사람이 있는 곳이었다. 앤드류와 그의 형 요한은 미국에서 진행중이던 두 번째 대각성 운동의 복음주의적 연장인 스코틀랜드의 부흥 운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그는 남아프리카의 교회에도 같은 종류의 각성이 있기를 기도했고, “나의 기도는 부흥을 위한 것이지만 내 자신이 그 일에 합당하지 않다는 느낌이 점점 커져 움츠러든다. 나는 지금까지도 내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 끔찍한 교만과 자기 만족에 탄식한다. 아, 내가 더욱 영의 사역자가 되기를” 이라고 썼다.(플레시스의 앤드류 머레이의 삶)

1860년에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 부흥이 왔고, 그에 이어 부흥은 주위의 도시와 마을에도 퍼졌다. 심지어 멀리 떨어진 농장과 농원에서도 삶이 변화됨에 따라 그 효과를 느꼈다. 하나님을 위한 인도자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을 단 한 사람도 찾기 어려웠던 교회들에서 머레이의 케이프타운 교구에서만도 50여명이 부흥으로 말미암아 결신하였다. 그 교구에서 한 달 동안 개종한 사람들은 그 이전 역사를 통틀어 합한 것보다 많았다. 새로운 전향자들과 새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영적인 인도를 위하여 앤드류 머레이는 240권이 넘는 책을 썼다. 그의 글들은 지금까지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의 더 깊은 삶에 대한 추구와 그러한 삶을 사모하고 체험하도록 인도한다.


저명한 선교 지도자로 수많은 저술 남겨

19세기 남아프리카의 성자라고 불리는 앤드류 머레이는 240여 편의 주옥같은 글들을 남겼는데, 대부분이 그리스도인의 경건생활과 기도에 관한 것이다.

그의 저서의 특징은 신앙의 핵심을 찾아서 일목요연하게 해설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그 자신의 경건과 기도 생활 가운데 직접 깨닫고 체험한 것을 담고 있기에 더욱 놀라운 깊이가 있으며 동시에 우리의 신앙 생활과 직결되어 있어 그 영향력 또한 매우 강력하게 나타난다. 남아프리카의 가장 사랑받는 설교자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 명성을 지닌 저술가이며 그의 삶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걸어가야할 올바른 길을 발견할 수 있다.
 
최후의 만찬의 순간에 구주께서는 연약하고 미숙한 제자들에게, 그리고 제자들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15) 고 말씀하셨다.
이 중요한 진리가 제자들에게 선포된 이래 주 예수님을 신실하게 따르는 자들은 그 말의 영광스러운 실체를 경험으로 깨달았다. 이러한 삶에 대한 실례가 남아프리카의 앤드류 머레이이다. 주님안에 거하는 삶에만 매달렸던 그의 기도의 명저들은 언제까지나 우리의 가슴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성장 배경과 청년 시절

19세기 남아프리카의 성자라고 불리는 앤드류 머레이는 1928년 남아프리카 그라프 라이넛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앤드류 목사는 남아프리카로 이주해온 스코틀랜드인으로 장로교인이었으며, 어머니 마리아 머레이는 프랑스 위그노교와 독일 루터교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러한 배경은 그의 보편주의 정신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다.

앤드류 머레이는 형제 앤드류 존과 함께 스코틀랜드에 있는 애버딘 대학에서 문학 석사과정을 포함하여 7년 동안 교육을 받았으며, 그곳에서 19세기의 부흥운동과 긴밀한 접촉을 가졌다. 1838년에서 1840년 사이에 일어난 영적부흥은 피니의 지도 아래 미국에서 일어난 영적 부흥과 비슷한 것이었다. 앤드류 머레이는 장로교회 목사들의 설교를 통해 많은 감명을 받았는데, 그에게 특별히 많은 영향을 준 목사들은 칼머스(Chalmers), 켄드리시(Candlish), 맥셰인(McCheyne,) 그리고 윌리엄 번스(William C. Burns) 등이다. 특히 번스 목사의 생애는 젊은 앤드류 머레이의 성결과 부흥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애버딘에서의 공부가 끝난 뒤 앤드류 머레이는 네덜란드로 건너가 유트레히트(Utrecht)에서 3년간 신학 공부를 하게 된다. 네덜란드에 머무는 중에 그는 18세기 합리주의에 대항하는 모임에 가담하기도 하였다. 1848년에 목사안수를 받은 앤드류 머레이는 자신이 소년 시절을 보냈던 남아프리카 땅으로 다시 돌아와서 목회를 시작한다.

 
 앤드류 머레이의 목회와 저술 활동

그가 처음 사역을 시작한 곳은 남아프리카 오렌지 자유주에 위치한 블룸폰테인(Bloemfontein)이었다. 그 곳에서 그는 1850년에서 1860년까지 11년간 목회를 하게 된다. 1860년 케이프콜로니의 주요 내륙 도시중 하나인 우스터(Worcester)에서 목회 요청을 받은 앤드류 머레이는 그것을 받아들여 우스터로 향한다. 그가 우스터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하던 1860년대에는 미국과 아일랜드에서 중요한 부흥이 있었던 시기였다. 이때부터 그는 수많은 경건서적들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그리스도를 위해 자녀를 기르자」(The Children for Christ), 「주 안에 거하라」(Abide in Christ), 「왜 못 믿는가?」(Why Do You Not Believe)가 바로 이 시기에 쓰여진 책들이다.

우스터에서 4년간 봉사한 후, 앤드류 머레이는 케이프타운에서 목회를 맡는다. 그는 이곳에서 7년 동안 지내면서 영국을 방문하여 케이프타운에 YMCA지사를 창설한다. 그는 또한 당시의 신학적 자유주의에 대하여 보수주의적인 태도를 확고히 하였으며 남아프리카 내의 화란 개혁파 교회가 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도록 이끌기도 하였다.

1871년 앤드류 머레이는 케이프타운에서 45마일 정도 떨어져있는 웰링턴으로부터 목회요청을 받고 그가 목사직을사임하는 1906년까지 그곳에서 봉사하였다. 웰링톤은 그가 목사로서 활동한 마지막 지역이 된다.
「그리스도와 같이」(Like Christ), 「그리스도의 기도 학교에서」(With Christ in the School of Prayer), 「너희도 거룩하라」(Holy in Christ), 「그리스도의 영」(The spirit of Christ)은 그가 웰링톤에서 사역하는 동안 쓰여진 책들이다.
그의 목회는 그의 저서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영적 생활을 심도있게 하고 풍성하게 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런 목회방향은 그의 설교를 통해서 그리고 수차례에 걸친 강연을 통해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선교활동

그는 사회복지와 교육에도 깊은 관심을 보여 1874년에는 웰링턴에 위그노 신학교를 설립하였고, 종교단체인 “성서 기도 연합회”와 “기독 학생회”등을 시작하였다. 1877년 그는 웰링턴 선교대학을 세워 남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위한 선교사들을 훈련시키기도 했는데,  이것은 그의 선교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잘 나타낸 것이다. 그는 남아프리카의 선교 사역을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남아프리카에서 자주 전도여행을 다녔다.

그는 한때 종교 지도자가 전혀 없는 수천명의 이민자들에게 사역하기 위해 트랜스바알로 들어갔다. 이 사역 도중 앤드류 머레이는 심한 열병에 시달렸으며, 몸을 회복하기 위해 영국으로 요양을 떠나기도 하였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영국에 머무는 동안 그는 아내를 얻었다.

또한 그는 남아프리카의 화란 개혁교회를 설득시켜 그들이 트랜스바알(Transvaal)과 말라위에 거주하는 흑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개종시키는 일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세계선교에 대한 그의 공헌으로 앤드류 머레이는 1889년에 자신이 졸업한 애버딘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1907년에는 Cape of Good Hope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작품 세계

오늘날 앤드류 머레이는 자신이 쓴 수많은 경건 서적들 때문에 더욱 유명하다.  앤드류 머레이의 작품 속에는 그의 삶과 목회, 그리고 사상들이 모두 담겨져 있다. 그는 240여 편의 주옥같은 글들을 남겼는데, 대부분이 그리스도인의 경건 생활과 기도에 관한 것이다.

그의 저서 중에 「그리스도의 기도학교」에서(With Christ in the School of Prayer)는 기도의 고전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웰링턴에서 목회하는 기간 동안 집필된 이 책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서 기도의 위치와 권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쓰여졌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시면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에 대해 말하면서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기도의 모범을 따르는 것은 가장 고귀하고 영광스러운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가 쓴 저서의 특징은 신앙의 핵심을 찾아서 일목 요연하게 해설하고 있다는 점이다. 알렉산더 휘트는 앤드류 머레이의 이러한 점에 대하여 “당신은 일의 핵심을 찌르도록 하나님의 택함과 임명을 받은 사람입니다.”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또한 앤드류 머레이의 모든 저서들은 머레이 자신의 경건과 기도 생활 가운데 직접 깨닫고 체험한 것을 담고 있기에 더욱 놀라운 깊이가 있으며 동시에 우리의 신앙 생활과 직결되어 있다. 따라서 그 영향력 또한 매우 강력하게 나타난다.

남아프리카의 가장 사랑받는 설교자일뿐만 아니라 세계적 명성을 지닌 저술가인 앤드류 머레이, 그의 삶과 그가 남긴 저서들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걸어가야 할 올바른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앤드류 머레이의 이력

1828년 남아프리카 그라프 라이넛에서 출생
네덜란드에서 신학 공부. 18세기 합리주의에 대항하는 모임에 가담하기도 함
1848년 목사 안수 받음
1874년 위그노 신학교
1877년 웰링턴 선교 대학을 세워 선교사들을 훈련시키는데 평생을 보냄

 

앤드류 머레이의 저서

「앤드류 머레이의 탁월한 영성」(브니엘), 「앤드류 머리의 영성을 깨우는 기도」(프리셉트), 「절대 헌신」, 「하나님만 바라라」, 「하나님과의 교제」(이상 생명의말씀사), 「앤드류 머레이의 기도」(누가), 「성령」, 「성령충만의 길」, 「지성소」(이상 벧엘서원), 「하나님의 치유」, 「순종」, 「그리스도의 영」(이상 CLC), 「자녀가 축복받는 부모의 기도 50」(나침반), 「성령론」, 「앤드류 머리의 12가지 비밀」, 「경건한 삶을 위한 부르심」,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십자가의 보혈·오순절의 충만한 축복」, 「겸손 하나님을 바라라 」(이상 크리스챤다이제스트) 외 다수

 


 

앤드류 머레이 회심일기

 

로마서 7장에서 바울은 율법아래 살고 있었던 때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는 율법적인 동기, 즉 형벌에 대한 두려움과 보상에 대한 소망을 경험했다. 그는 율법을 알았고 그것이 선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실로 원했던 선을 행하는 데에 실패한 것 뿐만 아니라, 그가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정말로 피하려고 시도하였지만 더욱 악한 일들을 행하는 것으로 끝났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순종을 실천하려고 진정으로 시도하지만 그들은 다만 절망과 실패 그것도 전적인 실패를 발견한다. 매우 어둡고 우울한 시간들의 경험이다. 하나님은 수백만 마일 멀리 계신 것 같고 구출해 달라는 기도는 속박만을 초래할 뿐이다. 어떤 이들은 진실된 순종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며 포기한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은혜가 혹시 다음번 모임에서 또는 새로운 사역가운데 그들에게 임하기를 언제까지고 고대한다. 만일 더 많은 기도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그들은 어떤 결과가 없을지라도 기도를 한다. 그들은 해결의 열쇠가 기독인의 의무의 부족이라고 왕왕 생각한다. 분투하고 고투하지만 더욱 깊은 실망과 낙담을 경험할 뿐이다. 단지 외형적인 행동만 바뀔 뿐, 여전히 그들이 선택한 이기심의 상태에 전적으로 감금되어 있을 뿐이다.  

나는 15년 이상을 로마서 7장의 경험 속에 살았었다. 그 진정한 이유는 불신이었다. 복음에 대한 사실은 알았지만 그 사실들이 다만 나를 정죄했고 나를 더욱 나쁜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하나님은 내가 정말로 거룩하기를 요구하셨지만, 그렇게 되기 위한 나의 노력들로는 단 한 순간조차도 그것을 경험하지 못했음을 나는 알았다. 무엇이 문제였던가?

하나님께서 분명 두 가지 교훈을 가르쳐 주셨는데, 하나는 죄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거룩함에 관해서였다. 율법의 가르침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나의 죄많음(my sinfulness)과 나 자신을 구출할 힘이 절망적이게도 내게 없음을 진정으로 깨닫게 해 주었다.

죄짓는 상태와 내가 선택한 이기심의 상태로부터의 구출을 위한 강렬한 열망과 소원이 없었다면, 나는 율법과 육신의 권능에 다시 빠져들어 갔을 것이다. 거룩함의 가르침은, 내 안에서 모든 것을 행하시기 위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완전히 헌신하시며 약속하시고 보장하신다는 것이다. 그분은 새 마음을 주시고 그 마음을 보존하시며 또한 그의 영을 우리의 새마음 안에 주셔서 진실로 그의 뜻을 행하고 순종하기 위한 의지와 힘을 내게 줄 모든 책임을 떠맡으신다.

율법은 생명을 주거나 어떤 사람도 결코 거룩하게 할 수 없다. 율법의 목적은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 나로 하여금 죄의 책임을 그리고 무력함을 통감하게 한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혜로 나를 받아 주시고 나로 하여금 그의 거룩과 신성의 참여자가 되게 하심을 내게 계시하셨다.

죄인은 반드시 죄의 힘, 그리고 죄를 추방하거나 자신 안에서 선한 어떤 것을 할 힘이 절대적으로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만 한다. 사람이 이러한 사실을 그 자신의 경험에 의해 배울 떄에만, 하나님께서 진실로 제공하시는 축복 속으로 들어 갈 수 있다. 죄 속에 있는 사람은 그에게 절실히 필요한 참 생명을 스스로 줄 것이 자신 속에 전혀 없다.

모든 죄인은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계속적이고도 영구적인 실패와 실망을 체험할 뿐이다. 그 해결책은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서 직접 수행하신다는 놀라운 확신 속에 있다.

매일 죄짓는 삶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열망 그리고 나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그것을 확보하려는 어떤 희망도 포기한 그것이 하나님의 참되고도 유일한 구원의 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나를 준비시켰다.  

이제는 하나님 보시기에 기쁜 모든 것을 내 안에서 실제로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 자신이시다. 내가 거듭해서 하나님을 실망시킬 때까지는 내 마음이 얼마나 철저하게 사악한지를 실제로 알지 못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내게 없음을 나는 알았지만 그러나 어쩐 일인지 나는 내가 더 큰 열망과 노력으로써 진력하기만 한다면 나는 실제로 그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 안에 있는 어딘가에 하나님께 복종할 능력이 있다고 믿었던 동안은, 나는 불신앙 가운데 있었다. 나는 복음의 사실들을 실제로 믿었었다.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음을 실제로 나는 믿었다. 내가 전적으로 거룩하며 내 마음과 영혼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원하신다는 것을 심지어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내가 선택한 이기적인 상태에서 살고 있었다. 나의 이기적인 삶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사실인즉 그러한 삶을 포기하는 것을 이제껏 원치 않았다. 이 극도의 이기심이 범죄라는 것을 말해주는 하나님의 지식과 내 자신의 지성적 능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선택한 반역과 사악함 속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사실상 범죄자요 하나님의 절대적인 원수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비록 내가 나의 이기심의 노예라 할지라도, 이 상태는 전적으로 자발적인 것이었다! 진실로 나는 이러한 방법으로 사는 것을 지속하지 말아야 했다. 내 자신의 자아 속에 이 내 반역을 억지로 강요할 무엇이 있지 않았다. 나의 반역과 죄를 범함은 내 자신의 자유의지의 직접적인 결과였다. 나의 자유의지의 행위에 의해, 내 자신의 선택한 죄많은 상태를 실제로 내가 창조하였다.  

정말 문제는, 내가 이러한 이기적인 상태를 완강히 물리치고 끊으려고 계속해서 소원하는 것이었다. 이기적인 삶을 살고 있는 동안은 나는 하나님을 최상으로 사랑하는 일을 결코 선택하지 않았고 모든 미래의 행위들은 다만 나의 반역을 조장하였다.

그러한 사실에 관한 지식은 도움이 되지 못하였고, 사실상 절대적인 죄책과 정죄를 더할 뿐이었다. 내 안에는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없었고 하나님을 최상으로 사랑하고 또 다른 사람을 내 자신처럼 사랑하고자 하는 진실된 선택도 직접적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무엇이 문제인가? 돌아보면, 그 문제가 무엇인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나는 하나님께서 바로 이 문제에 대한 참된 해답을 갖고 계신다는 것을 안다. 나는 또한 나의 참 자유로 이끌었던 것이 믿음임을 알았다.

이것이 내가 놓쳤던 부분이다. 필요한 믿음을 산출하는 일이 내게 달렸다고 나는 생각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결과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 말씀과 나의 믿음을 혼합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의 불신은 당신께서 그 일을 이루시리라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진실로 믿지 않는데 있었다. 나는 요구되어지는 믿음을 산출하려고 은혜의 수단을 사용코자 나는 노력했다. 하나님을 믿는 대신 나의 노력으로써 그의 약속을 받고자 노력했다. 나는 실로 여전히 내 인생의 주인이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 안에 두신 그의 소원을 이루시도록 나 자신을 그에게 드린 적이 없다. 이것이 바로 죄다! 나 자신만의 모든 자기노력이 죄였다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성취할 하나님의 약속을 보았을 때,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모든 것을 이루실 하나님을 나는 진실로 쉽사리 믿을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나의 인간적인 노력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필요한 믿음을 내게 주실 하나님을 나는 믿었다.

내게 구원의 진정한 필요성에 대한 분명한 통찰력이 있기 전에 율법아래에서 자신이 죄에 완전히 속박되어 있음을 나는 경험해야 했다. 은혜의 수단을 사용하려고 노력했고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게 살고자 더욱 진지하게 노력해 보았으나 나는 계속 거듭해서 실패했다. 그 실패의 이유는 제거해야할 악의 은밀한 뿌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행하시고 그가 그 일을 행하시도록 거리낌없이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겸손한 신앙(that humble faith)을 방해만 하는 인간적 노력의 영(the spirit of self effort)이 그 뿌리이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롬10:3)그것이 오직 죄와 죽음의 법으로부터 나를 자유케 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법에 의한 것임을 나는 안다. 하나님은 내가 소유할 수 있었던 모든 가능한 필요를 하나님 스스로 공급하신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나는 불신의 사람이었다.

이 사실이 내가 하나님의 공급을 받지 못하는 원인이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며, 믿음으로 행하지 않는 어떤 것도 죄이다. 불신은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몹시도 원하시는 자유를 받지 못하게 방해한다. 나는 언제든지 믿을 수 있었고 믿어야 했었는데 나 스스로를 의지하려고 하는 숨겨진 비밀이 내게 있었다. 믿음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간직할 믿음이 내게 없었다.

내가 믿음을 산출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나는 항상 실패했다. 나의 믿음을 하나님 안에 두는 일이 실로 나의 능력과 힘에 달렸다고 나는 생각했다. 실로 하나님의 공급을 받기 위한 위치에 나 자신을 두는 일이 내게 달렸다고 나는 생각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나를 계속해서 실패하도록 내버려 두실 수 있을까? 내가 전적으로 무력하고 힘이 없다는 것을 나 스스로 경험해야 했고 내 자신에게 입증해야 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잠깐동안이라도 해낼 수 있는 힘이나 능력이 내게 전혀 없다는 것을 내가 실제로 알 때까지 나는실패를 거듭해야만 했다. 하나님의 공급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나 자신을 놓을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고, 모든 미래의 행동은 나를 스스로 선택한 이기심 속으로 점점 밀어 넣고 있음을 진정 알게 되었다. 내가 항상 이기적인 선택을 하고 이기심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오, 신실하신 하나님!!! 나는 불신과 죄 속에서도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바둥거렸으나, 그분은 내게 그분의 은혜를 퍼부어 주셨다.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전적으로 죄된 나의 마음을 경험하게 하시고 입증케하시는 일 그것보다 사랑의 더 큰 위대한 표현을 나는 알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밖에 무엇을 하실 수 있는가? 나는 스스로의 노력에 대하여는 죽어야 했고(I had to die to self effort), 내가 상상해 낼 수 있는 스스로의 노력을 소진시키고 내 자신의 노력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내 자신에게 입증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비참하고 절망스러운 이기적인 상태에 있을 때에 내가 그 때 처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하나님은 가지고 계심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의 거저주시는 선물이 율법과 복음의 모든 요구를 실제로 성취하셨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할 모든 일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take God at His Word) 그처럼 단순한 것이었다.

내 스스로의 노력에 대해 나는 죽었고, 나의 비밀한 악의 뿌리는 이제 정말로 가버렸다. 내가 하나님의 공급해주심을 알았을 때, 나의 불신으로 인한 과거의 모든 낙심과 실패의 경험으로부터 나는 나의 마음을 돌이켰다.  

이러한 15년 동안의 실패가 나 스스로의 힘으로는 단 한순간도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거나 복종하는 것이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는 것을 나는 충분히 그리고 진심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알게 되자, 행하시겠다고 말씀하신 바를 틀림없이 행하실 신실하시고 사랑많으신 하나님께 고요히 그리고 신뢰하는 가운데 나의 마음을 향할 수 있었다. 당신께서 자애로운 흔쾌함에서 우러나와서 내 안에 뜻을 두시고 행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성령의 역사하심이라는 사실 안에서 이제 나는 안식할 수 있다.  

율법은 요구되는 불가피한 성결을 제공하지 못한다. 만일 율법이 진정한 순종을 확보한다면,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하셔야 할 필요가 있는가? 진정한 복음이 성결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해답을 제공한다. 기독교인의 실제적인 순종을 없애려고 시도하는 설교는 완전히 죄많은 상태가운데 있는 사람을 다만 속이는 거짓 복음이다.

옛 언약이 지닌 문제는 사람이 그것을 어긴 것이다. 사람은 그의 불성실과 그의 실패를 보여 주었다. 하나님께서 은혜의 언약아래 있는 그것을 결코 깨뜨리지 못하도록 맹세하셨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자신이 맡은 부분을 정하셨다. 새 언약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순종을 떠맡으시기 때문에 사람이 깨뜨릴 수 없다.  

나 자신의 불성실과 실패를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로마서 7장의 궁지상태를 필요로한다. 나같이 온통 불성실하고 연약한 나지만, 그 일 모두를 행하시도록 하나님께서 허락받으시고 신뢰받으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행하실 수 있다는 바를 이제 하나님은 당신의 공급하심 하에서 입증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몸소 당신의 부분을 담당하실 뿐만 아니라,

나의 몫까지도 수행하신다. 나를 결코 떠나지 않으시리라고 약속하심으로써 영원한 언약을 하시고 내가 결코 그분을 떠나지 않도록 돌보신다. 내가 죄의 힘 아래서 전적인 무력과 절망의 노예상태를 발견했던 그때에,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은혜가 왔다.

하나님은 나에게 죄와 자아로부터의 자유를 계시하셨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이 전적인 신뢰 안에서만 발견돼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나를 순종케 하시는 하나님을 정말 의지할 수 있었고, 그가 말씀하신 것들을 이루신다는 것을 나는 안다.

신명기 30: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에스겔 11:19-20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에스겔 36:25-27 (물과성령의 거듭남)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에스겔 37:23

내가 그들을 그 범죄한 모든 처소에서 구원하여 정결하게 한즉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위의 성경 구절과 다른 많은 구절들의 요지는 우리에게 요구되어지는 순종들을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해내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분명 사람의 성실함 혹은 심지어 사람의 믿음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공급하심이 그 요구되는 진실된 복종을 확보 못한다면, 그것이 무슨 기쁜 소식인가? 복음의 실제적인 좋은 소식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결코 실패하지 않는 새마음을 주신다는 것이다.

위의 성경구절을 다시 살펴보고 하나님의 공급하심이 복음이 요구하는 모든 것들을 충족시키는 그 마음을 당신에게 주셨는지 스스로 알아보기 바란다.  유일한 질문이 있는데, "당신은 하나님께서 그가 행하시겠다고 맹세한 모든 일들을 행하신다고 믿는가?"  

 


 

 앤드류 머레이의 탁월한 영성

앤드류 머레이의 탁월한 영성

탁월한 영성의 사람, 앤드류 머레이의 최고의 작품!
- 능력으로 충만한 삶을 찾아 떠나는 여행 -

오늘 우리는 머레이를 통해 살아 있는 영성을 만난다!
탁월한 영성을 통해 발견하게 되는 풍성한 삶!
그 삶 속에 깃들인 하나님의 축복!
자, 지금부터 탁월한 영성을 찾아 앤드류 머레이와 함께 여행을 떠나보자!

당신의 영적인 삶이 탁월하기보다는 진부한 것처럼 느껴지십니까?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고 느껴지십니까?
당신은 더 많은 것을 찾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앤드류 머레이와 함께 이 책을 갖고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당신의 만남은 축복을 안겨 줄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게 하는 영적인 능력의 근원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특별한 삶 -- 기대감과 실현으로 가득 찬 -- 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에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영적 탁월함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성도에게 적용되는 가능성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을 탐구함으로써 당신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숙과 경험의 새로운 경지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목차

머리말
들어 가면서

1. 성령의 은사를 배우라
2. 성령으로 영화롭게 되어라
3. 하늘로부터 오는 성령을 받으라
4. 성령으로 즐거워하라
5. 축복을 방해하는 것들
6. 축복을 받기 위한 몇 가지 방법
7. 오순절의 축복을 지켜라
8. 축복을 더하게 하는 것들
9. 충만한 표징을 찾아서
10. 성령의 완전한 증거
11. 축복을 발견하기
12. 비밀의 열쇠

 


 

 앤드류 머레이의 기도 응답의 비밀

 

출판사: 도서출판 두란노

앤드류 머레이

앤드류 머레이는 스코틀랜드에서 북 아프리카로 파송된 화란 개혁교회 출신 선교사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앤드류 경과 어머니 마리아 머레이의 네 아이 중 하나였던 앤드류 머레이는 당시로는 세상의 귀퉁이라고 할 수 있는 남아프리카(케이프 타운 인근)의 흐라프-라이넷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선교사였던 부모님의 영향을 받은 앤드류 머레이는 스코틀랜드에서의 정규 교육과 네덜란드에서 3년 간의 신학교육을 마치고 선교사 겸 목사로 다시 남아프리카로 돌아와 평생 하나님과 사람들을 섬겼습니다. 앤드류 머레이는 240여 권에 이르는 많은 책을 쓸 정도로 탁월한 작가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탁월한 작가이기 전에 영성 깊은 목회자였습니다. 또한 구원 받은 성도로서 신앙와 삶이 분리되지 않고 날마다 성숙해지기 위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자각하고 그것을 위해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는 요한복음 7장 38절의 말씀을 기초로 우리가 어떻게 성령 충만을 받아 그분만을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뜨거운 가슴으로 풀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진리를 오늘 이 책을 통해 우리와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십자가를 알고 성령을 알면
기도는 응답된다!

허구한 날 열심히 기도하는데 왜 내 기도는 응답되지 않을까? 평생 기도가 응답된 앤드류 머레이가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응답받는 기도의 진수를 알려준다. 기도는 단순히 방법의 문제가 아니다! 이 책은 십자가를 경험하는 기도, 성령의 능력이 임하는 기도 등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을 밝힌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불후의 고전! 읽을수록 힘이 되는 앤드류 머레이의 복음 메시지!

[책 소개]
십자가를 경험하는 기도, 성령의 능력이 임하는 기도,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을 찾다!

성령 충만한 기도와 삶으로 평생 하나님께 응답받았던 19세기 남아프리카의 성자 앤드류 머레이! 그가 세대와 문화를 뛰어넘는 깊이 있고 강력한 언어로 ‘응답받는 기도’를 말한다.
내가 뿌린 기도의 씨앗이 왜 자라지 않는지 고민인가? 응답받는 기도는 단순히 방법이나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십자가와 성령과 중보기도의 능력을 체험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십자가의 공로와 성령의 능력으로 자신이 죄와 세상에 대해 죽고, 오직 하나님에 대해 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모든 기도는 응답된다!

당신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 출석하고 성경을 읽으며 기도하는데도 왜 주님의 사랑과 기쁨이 넘치는 삶, 언제나 승리하는 영적 삶을 살지 못하는가? 오늘도 애타게 기도 응답을 기다리고 있는 영혼들에게 주님은 천국 열쇠를 이미 주셨다고 말씀하신다. 매일매일 이 땅에서 매고 푸는 역사를 이루려면, 매일매일 그날의 성령을 구해야 한다. 성령님은 무엇보다 우리를 십자가의 삶으로 이끌며, 십자가의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도록 돕는다.
「야베스의 기도」의 저자 브루스 윌킨스는 ‘소개의 글’에서 이 책이 ‘죄를 사하는 십자가’의 능력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승리하게 하는 십자가’의 능력에 대해 잘 다루고 있다고 밝힌다. 앤드류 머레이는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에 대해 죽고 세상에 대해 죽는다는 게 무엇인지, 그분과 함께 성령 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한다는 게 무엇인지를 풀어낸다. 기도 응답과 십자가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묻고 싶은가? 우리의 죄악 된 본성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비로소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수 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 반드시 듣고 응답하실 수밖에 없는 기도를 가르쳐주신다. 앤드류 머레이는 성령님이 기도를 가르쳐주시지 않으면 우리의 기도는 아무런 능력도 기쁨도 주지 못한다고 단언하고 있다. 예수님의 첫 제자들도 성령이 충만하게 임했을 때 기도를 배웠다. 성령을 힘입어 기도하는 사람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완전히 맡기는 삶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 맛보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복주시며 반드시 응답하시는 기도의 비결은 바로 중보기도다.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을 통해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는 사람일수록 강한 중보기도자로 쓰임받는 특권을 누린다. 기도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소원이 내 소원이 되는 것이다. 성도들이 합심하여 중보에 힘쓰는 교회의 열매는 정말 엄청나다!
   하나님의 응답하심과 기도의 무한한 힘을 체험한다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지금처럼 밋밋하게 기도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처럼 기도 생활을 소홀히 여기지 않을 것이다.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앤드류 머레이의 기도 응답의 비밀」을 읽고 마지막 책장을 덮는 모든 사람들이 “주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가장 깊고, 가장 은밀하고, 가장 높은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하나님은 그런 이들에게 반드시 응답하실 것이다! 할렐루야!

 


 

나를 허물고 주님을 세우는 삶

(The Believer's Secret of the Master's Indwelling) 

앤드류 머레이 지음,  아가페출판사

지은이 소개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1828-1917)

19세기 남아프리카의 성자라고 불리며 1828년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나 10세에 영국유학을 떠났다. 스코틀랜드와 네덜란드에서 교육을 마치고 목사이자 복음전도자가 되어 남아프리카에 돌아와 영적 부흥 운동을 이끌었다. 240여 편의 저서를 남겼다.

 내용 요약

 1.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

고전 3:1에 그리스도인의 두 유형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신령한 자들과 육신에 속한 자 입니다.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신령한 양식을 공급한다면, 이는 그들을 이롭게 하기보다 오히려 해를 끼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두 부류의 그리스도인이 존재합니다. 육신의 상태가 무엇인가? 첫째, 유아기가 너무 오래 지속된 상태입니다. 나약한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 속에는 하나님의 영의 거룩함과 능력의 아름다움이 없습니다. 자립할 수 없습니다. 항상 도움 받기만을 원합니다. 바로 이것이 영적인 유아의 표시입니다.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없습니다. 둘째, 죄와 실패가 끊이지 않는다. 자기의 기질을 잘 다스리지 못합니다. 기질의 뿌리와 싸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육신에 속해 있고 하나님의 영에 올바로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신에게 죄의 뿌리가 완전히 근절될 것이라든지, 혹은 타고난 죄의 본성이 모두 제거될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능력으로 우리에게 임하실 때, 그분의 신령한 은혜로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런 후에 우리는 비로소 죄를 이기고 육신의 정욕에서 벗어날 능력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어떤 은사를 주셨을 지라도 실제 우리 삶은 성령님의 능력 가운데 전적으로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은혜는 사람을 자아에서 해방시키지만, 성령님의 은사는 사람을 일하기에 적합하게 만듭니다. 나는 복음을 전하는 목사일 수도 있습니다. 실상은육신에 속한 삶을 사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넷째, 신령한 진리들을 받아들이는데 무능력합니다.

신령한 자의 특징이 죄에 빠진 자들을 돕고 바로잡을 수 있는 온유함, 능력 그리고 사랑입니다. 어떻게 신령한 삶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첫째, 땅에서 구현해야 할 신령한 삶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포도주를 마시면 취하지 않을 수 없듯이, 성령님으로 충만하지 않고는 결코 신령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신령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으라." 둘째, 살지 못했다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죄스럽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두번째 자각이 필요합니다. 육신의 정욕이 자기의 온 몸과 마음을 완전히 장악하여 비참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자기의 불신 때문에 하나님의 영이 주시는 온전한 선물을 받지 못했습니다. 욥은 심각한 자기의의 죄를 보게 되었습니다. 셋째는 단지 한 걸음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회심도 오직 한 걸음 뿐이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에 자기 육체를 드릴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을 간절히 구하게 될 때, 필요한것은오직 한 걸음 뿐입니다. 신령한 삶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가 강한 어른으로 자라나는 것처럼 성장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육신에 속한 고린도 교인들을 도울 수 있었습니까? 의사의 수술칼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능력을 받아들이는 이 단순한 믿음의 행동이 우리를 구원해 줄 것입니다. 자기 앞에 계신 전능하신 구주를 바라보고 그 품속에 자신을 모두 던졌습니다. 살아계신 그리스도가 거룩하고 신령한 삶을 위해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양식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넷째, 반드시 한 걸음을 떼야 합니다. 그분의 영에 당신 자신을 완전히 바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과 통치에 마음을 다 바쳐 온전히 순종하지 않으면서도 그분이 자기들의 못된 기질이나 여러가지 다른 죄들을 제거하는데 힘을 기울여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영을 충만히 채워주시기 위해 당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겸손한 순종과 어린아이 같은 믿음 안에 거한다면, 축복도 틀림없이 임할 것입니다.

 

2. 자아의 삶

왜 그토록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의 나타남과 특권과 영광으로 살지 않고 두렵게도 세상과 손을 잡고 살아가는 것으로써 인생을 낭비하는 것일까? 자아가 모든 문제의 뿌리입니다. 새로운 삶, 그리스도의 삶이 당신의 삶을 대신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만 당신은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영께서 이 진리를 베드로에게 계시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에 속한 자가 베드로 안에 얼마나 강하게 남아 있었는지 보십시오. 내가 십자가에 못박혀야 할 뿐 아니라 너희도 또한 그러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아는 창조받은 존재의 핵심입니다. 자아를 빈그릇의 상태로 그분께 가지고 나가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 의지하는 자아는 창조주가 우리 안에 자신을 계시하시도록 허락하는 영광이 됩니다. 사단은 선악을 분별하고 자존하는 자아를 지니신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고 하와를 유혹했습니다. 저주받을 자아를 완전히 깨닫고, 미워하고 포기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자기본위. 자기를 기쁘게 하는 것은 인간의 큰 죄악입니다. 자기들 마음대로 행하면 안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뜻만을 추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자기 자신을 기쁘게 했기 때문입니다. 저주받을 자아와 예수님 사이의 선택이었습니다. 스스로 기쁘게 하는 매순간, 당신은 예수님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자기과신. 자기신뢰, 자기노력, 자기의존에도 빠지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실패하는 것은 스스로를 과신하기 때문입니다. 자만. 사람들의 찬사를 얼마나 열망하고 살고 있는지요! 서로 영광을 취한다면 믿음의 삶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너는 나를 너의 존재 규범, 행동 법칙으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네 전심을 내게 바쳐야 한다. 나를 따르라. 그러면 내가 너의 모든 것을 권고해 줄 것이다." "제가 제 삶을 부인합니다. 저는 당신의 삶을 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신자들이 그리스도 중심의 삶이 자신들에게 나타나기를 계속 간구하면서도 아무런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자아의 삶을 부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만이 자아의 삶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신령한 은혜로써 자아의 권세가 세력을 떨치거나 우세하게 되지 못하도록 막으실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한 때는 성령님께서 능력으로 임하시기 전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아직 육신에 속한 자, 즉 열의는 있지만 이길 힘이 없는 상태에 있었고 나약한 육체에 불과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참예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매시간, 매순간 끊임없이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죄없는 자아였지만, 그래도 분명히 자아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바로 이것을 죽음에 내어주셨습니다. 먼저 할 일은 자아가 모든 죄, 모든 부족, 모든 실패,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혀왔던 모든 것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먼저 자기를 부인하고 미워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이 자아가 우리를 후퇴시켜 온 장애물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도록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옵소서."


3.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당신은 가장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이 주변의 어떤 일보다 당신에게 더 가까우며 그 존재가 확실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살아갈 수 있게 되어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들의 하나님을 모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다리지 않고 인간의 본성을 발현하는 기타의 노력들에 더 마음을 쏟고 있습니다. 성경도 하나님을 가리키는 지시봉일 뿐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기 위해 돌아가셨다는 성경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와 배려와 긍휼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에 만족하고 여기에만 머무를 위험이 있습니다. 먼저 필요한 일은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존재와 근원과 힘이 되시기 위해 존재하십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기회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감히 그분의 영에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과 제게 요구하시는 수준입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기도드릴 때 하나님 앞에서 입을 다물고 잠잠히 기다리는 데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기도는 진실로 하나님을 잠잠히 바라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하나님을 바라지 않는 기도도 많이 있습니다. 듣고 배우는 데 온통 마음이 사로잡혀 하나님의 임재를 잊어버리는 잘못을 범하지 않기를 진실로 바라게 될 것입니다. 모세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인도했습니다. 우리는 예배에서 하나님을 바라야 합니다. 골방에서 잠잠히 하나님을 기다리면서 기도를 올립시다. 신앙이란 실로 당신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4. 안식에 들어감

첫번째 단계로 나는 진심으로 믿음의 삶 속에 안식이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고 말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회심하는 순간 그들을 구출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축복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막무가내로 거부합니다. 가나안에서 온전한 안식을 누렸습니다. 가나안에서의 삶은 풍요의 삶이었습니다. 승리에 승리를 거듭했습니다.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두번째 단계로 나는 아직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구원으로 더 깊이 나아가는 단계마다 당신에게는 반드시 굳은 믿음과 자백이 있어야 합니다. 세번째 단계로 이러한 삶을 준비해 두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하기를 바랍니다. 자아로부터 고개를 돌려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은 나를 인도하시기 위해 구출하셨습니다. 네번째 단계로는 내 노력으로는 결코 이것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 그들이 믿을 수 없는지 자아가 그 원인입니다. 당신이 포기해야 할 분량은 아주 많습니다. 당신은 과거의 모든 신앙생활과 경험과 성공을 단념해야 합니다. 복음 사역자들이 자신의 모든 지혜를 포기하고 이를 예수님의 발 아래 내려 놓은채 빈 마음으로 "주님, 저는 마땅히 알아야 할바 대로 제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복음을 전해 왔지만 실은 저 복된 땅과 저 복된 삶의 영광을 깨닫는 데 얼마나 미약했는지요!"라고 자백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요! 왜 성령께서 우리를 더 효과적으로 가르치실 수 없습니까? 사람의 지혜가 이것을 막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값비싼 진주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나의 모든 시간, 관심, 일. 나는 하나님의 안식을 인생의 첫째 자리에 놓고 다른 모든 일은 부차적으로 생각한다. 나는 하나님과 온전한 교제를 나누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바친다." 값비싼 진주는 최고의 가치입니다. 제 마음 속에 악이 여전히 버티고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섯째 단계는 하나님께 나 자신을 바칩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안식을 바라지만, 나는 너희를 바란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우리에게 당신을 주시기를 열망하십니다. 지금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왔습니다. 오늘 새롭게 출발하지 않겠습니까? 그 예수님이 당신에게는 여호수아입니다.


5. 먼저 그의 나라를!

그리스도인의 삶과 일 사이에는 통일성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신자들의 삶과 일반 세상에서 행하는 일을 서로 조화롭게 맺어주는 통일의 끈은 어디에 있습니까? 왜 하나님의 나라를 첫번째 자리에 놓아야 합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전심으로 하나님이 행복의 근원이시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그들은 자기들과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는 모든 일들을 아주 손쉽게 포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애석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짐, 부담스러운 어떤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구하는 것은 가장 고귀한 특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완전한 의와 거룩하심을 닮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의 나라를 우리에게 물려주셨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바로 깨닫기만 한다면, 이것처럼 우리 마음을 열광케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나의 모든 삶과 존재의 첫자리에 놓여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그 해답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얻고 싶다면 모든 것을 포기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매일 매순간 첫자리에 놓여야 합니다. 매일 아침 그의 나라를 첫자리에 놓으십시오. 오직 성령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은혜는 언제나 능력의 은사보다 더 중요합니다.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첫자리에 두고 싶다면, 당신은 마음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품어야 합니다. 뿌리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그의 나라와 그의 영광에 완전히 바치셨다는 사실입니다.


6.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

"어떻게 해야 하나님 안에서 온전한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그러한 삶을 사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깨닫기를 바랍니다. 절대적인 의존, 절대적인 신뢰, 그리고 절대적인 순종의 삶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탄생, 지상에서의 삶,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 그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 의존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하나님께 바치셨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죽음에서 일어나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영광의 삶을 살고 계십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그분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는 신령한 생명을 우리 안에 주셨습니다. 나의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오직 그분만 이것을 유지시켜 주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로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믿음의 능력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셔야 합니다. 모든 자만을 꺾고 그리스도처럼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그리고 끊임없이 의뢰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 안에 계시면서 자신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그러한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는 뜻입니다. 세 번째는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행하신 저 복된 대속과 피흘림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분 안에서 그리고 그분과 함께 내가 죽어야 하는 바로 나의 대표자십니다. 죽음으로써, 자신이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쓰실 수 있는 그러한 삶을 소유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입증하셨습니다. 온전한 그리스도란 “나는 오직 하나님만 영광을 받으실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죽음에 바쳤다. 나는 어떤 의향도 어떤 바람도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말씀하셨던 분입니다. 그분이 당신을 어디까지 인도하실 수 있는지 그리고 그분이 당신 안에서 무엇을 행하실 수 있는지 가르쳐 주시도록 마음의 문을 여십시오. 당신을 전부 맡기고 당신 자신은 포기하십시오. 하나님의 생명은 오직 죽음 속에서만 나오며,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소생시키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매일 십자가를 바라보며 사셨습니다. 우리는 매일 예수님의 죽음에 뿌리를 내리며 살아야 합니다. 네 번째로 하나님께서 당신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홍해를 건너게 하신 것과 똑같이, 당신은 또한 하나님께서 요단 강을 건너게 하시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는 바로 그 지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다섯 번째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임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실 것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안에 거하시는 것과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교에 참예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겸손과 참회와 수치의 무덤으로 내려갈 때까지, 그리스도의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진토에 엎드리고 그분이 자기를 일으키실 때 새롭고 놀라우며 초자연적인 일을 이루어 주시기를 바랄 때까지 그리스도와 함께 죽기 전까지, 우리는 이것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7. 우리의 구원이신 그리스도의 겸손

우리들의 인간 관계에서 서로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할 단순하고도 명백한 소명에 관한 내용입니다. 겸손은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신 구원입니다. 그분의 삶 전체는 겸손으로 특징 지울 수 있습니다. 종의 형체를 취하여 오셨습니다. 죄인의 신분을 취하셨습니다. 신령한 겸손,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어린 양은 (1) 희생, (2) 하나님의 온유하심을 뜻합니다. 겸손으로부터 흘러나온 구원일 뿐만 아니라 겸손으로 인도하는 구원입니다. 모든 인간이 비참에 떨어진 이유는 자만 때문이었습니다. 자만과 우리의 자기 의지로부터 구원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구원받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인간은 자기를 높이고, 자기의 견해나 판단을 마음대로 내세울 권리를 주장합니다. 오직 겸손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가득 채우려면 자아를 완전히 비워야 합니다.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맡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만의 모든 구렁텅이에서 건져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마음 속에 들어와서 당신의 마음을 소유하시도록 오늘 용기를 내십시오. 그분의 겸손은 나의 생명이며 나의 구원입니다.


8. 온전한 순종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주로 받아들이면서도 매사에 철저하고 완전하게 순종하는 데는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첫째 순종의 동기입니다. 예수님의 집이 되어야 할 당신의 마음이 번번이 죄와 어두움과 비탄과 고민으로 가득 차지는 않았습니까? 그분을 모든 일의 주관자로 받아들일 것을 탄원합니다. 당신은 그분의 집입니다. 두 번째로 순종의 정도입니다. 모든 소유라는 말이 언급되었습니다. 당신은 마음을 주님께 바쳤습니다. 머리, 생각을 하는 두뇌도 바쳐야 합니다. 세 번째 순종의 축복입니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께 나와서 모든 것을 의뢰한다면, 하나님의 축복이 당신의 모든 소유에 미칠 것입니다. 나의 생애가 그분의 손 안에 있으므로 나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만족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외에 그 무엇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무한정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예수님 외에는 그 무엇도 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지속적인 순종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잠시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기 자신을 완전히 포기한 사람입니다. 모든 유혹이 당신을 축복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자기들의 의무라는 사실을 깨달은 적이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마음 전체를 얼마나 완벽하게 소유하실 수 있는지 보여주심으로써 당신 속에서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9.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
어떻게 해야 자아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가르칩니다. 죄에 대하여 죽으셨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처럼 죄를 위하여 죽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처럼 죄에 대하여 죽을 수 있고 또 죽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기를 배워야 한다”고 말하기 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인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적합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와 생생한 연합을 이룬 덕분에, 당신의 새로운 본성은 실제적이고도 철저하게 죄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우리는 진실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이루어 주신 죽음과 생명을 갖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바로 인식하고 깨닫는 일이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첫걸음입니다. 두 번째로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죄의 경향이 뿌리째 뽑힌다는 뜻이 아닙니다. 죽음의 능력이 죄로부터 사람을 떼어 놓는다는 의미입니다. 성장이 필요하냐고 묻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모든 영역에는 상당한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능력을 깨달은 후에 자기 자신을 완전히 맡기고 기도해야 합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의 특징은 첫째 절대적인 겸손입니다. 또 다른 특징은 무력함입니다. 셋째 안식입니다. 무덤처럼 쉬기 좋은 장소도 없을 것입니다. 어디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극명하게 볼 수 있습니까? 바로 무덤에서 입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은 자기 속의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의 저주가 임한다는 사실을 믿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교회가 다른 무엇보다도 지성, 명철, 문화, 그리고 지적 교양에 의존함으로써 더 많은 고통을 겪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영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고, 그리하여 사람들은 자기들의 지혜와 지식으로 복음을 거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복음에서 그 십자가형의 자국을 지우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바울에게 가서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하되 그것을 사람의 지혜로 하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아이의 사랑도 죽음에 내려가야 합니다. 당신의 삶을 죽음에 내려 보내십시오. 소생시키고 거룩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날 온 인류 가운데 그리스도께 기도를 드렸던 사람은 오직 그 하나뿐이었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의 친교, 안식, 즉각적인 축복의 약속입니다. 당신이 모든 것을 다 알 필요는 없습니다. 그의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그리스도를 신뢰했습니다. 저는 주님의 죽음에 완전히 들어가기를 소원합니다. 저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싶습니다.

 

10. 성령 안에서 누리는 기쁨

의는 성부의 사역입니다. 성자의 사역은 우리의 평강입니다.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이러한 기쁨이 우리가 주장해야 할 축복입니다. 신령한 일들을 보고 있지만 그것들에 다가갈 수 없습니다. 자아의 삶이라는 보이지 않는 판유리가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기쁨입니다. 아무도 빼앗지 못할 기쁨이란 오순절의 기쁨이었습니다. 자기들의 삶 전체를 맡아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죄에서 해방되는 기쁨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은 우리를 일하기에도 적합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나는 죄를 버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령님 안에서 그 일을 할 수 있는 전능하신 그리스도를 소유할 수는 있습니다. 부디 오늘 이 시간 당신의 삶의 모든 영역을 붙들어 주님의 발 아래 놓으십시오. 그럴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소유하는 것은 모든 곤경에 대한 해답이 될 것입니다. 수만 가지의 사소한 내적 문제들도 있습니다. 성도들을 사랑하는 기쁨을 말합니다. 당신이 성령님의 기쁨 안에서 살기를 원한다면, 형제를 사랑하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하십시오.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하며.”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기쁨입니다. 그리스도는 당신이 생각하거나 이해하는 것, 구하거나 바라는 것 이상의 존재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 안에서 일하신다는 사실을 깨닫는 안식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11. 믿음의 승리

영적인 삶에서 믿음의 여러 단계를 설명합니다. (1) 찾는 믿음, (2) 발견하는 믿음, (3) 기뻐하는 믿음입니다. 더 적합한 말로 (1) 애쓰는 믿음, (2) 안식하는 믿음, (3) 승리하는 믿음입니다. 어느 정도 그리스도께 기대를 거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에 대한 그의 믿음은 그리스도께서 바라시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믿었습니다. 갈등하고 애쓰고 찾는 것, 이것은 당신의 믿음의 시작입니다. 애쓰고 추구하는 믿음이 안식하는 믿음으로 변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실재적이고 내주하시며 항상 함께 하시는 구주로 만드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이루어 주시는 데에 온 마음을 쏟으시는 것과 똑같이 또한 약속을 해 주시는 데에도 온 마음을 쏟으십니다. 약속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삶을 혹여 힘겨운 삶이라고 생각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는 자가 되기 위해 자기의 온 생애를 바쳤습니다. 온 집안 식구들과 함께 믿었습니다. 승리의 믿음이었습니다.


12. 기도의 능력의 뿌리

우리는 종종 진실한 기도를 드리지 않으면서도 계속 기도를 드립니다. 저는 여기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나는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기도를 하라고, 즉 하나님의 풍성함으로 더 높이 올라가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유창하고 매끄럽게 그리고 손쉽게 기도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나면, 성령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특징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무지를 깨닫기만 한다면,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백배로 간구해 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크신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기만 해도, 거기에는 경배의 측면이 있습니다. 기도의 또다른 측면은 친교입니다. 또다른 중요한 측면은 중보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온 마음과 온 몸을 원하시니다. 내가 스스로 포기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원하시고, 그리스도도 우리를 원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족한 심정으로 자기의 자녀의 태도를 보시려고 오십니다. 제 이웃에게 복을 끼칠 수 있는 제사장으로 만들어 주옵소서! 당신이 그리스도의 구원의 기쁨 속에서 영혼들의 짐을 질 수 있도록 강해지라는 목적에서 였습니다. 회개하지 않는다면, 승리하거나 축복 받을 생각을 말아야 할 것입니다.


13.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도록!

장차 그 나라를 바치실 날이 올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바로 이를 위해 일해 오셨고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이것이 기독교의 본질이요 영광입니다(고전 15: 24-28). 너무나 중요한 일에 한 몫하는 일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한가지 생각, 이 한가지 믿음, 이 한가지 목적, 이 한가지 기쁨이 우리 삶을 지배할 수 있도록 마음 속으로 본향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먼저 당신의 마음과 삶에서 하나님을 제 자리에 놓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되시게 하라." 하나님이 모든 것이고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기도의 능력은 거의 대부분 기도를 받으시는 분이 누구인가에 대한 우리의 이해의 정도에 달려 있습니다.하나님께서 그분을 바라는 영혼들에게 자기를 친히 계시해 주시고 자신의 임재를 실재로 만들어 주시는 일도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두번째로 모든 일에 그분의 뜻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이 잘못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지만 그가 고통스러운 환경 가운데 놓이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내 마음을 찌르거나 다치게 할 고통이나 상처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법을 배웠습니까? 세번째로 그분의 능력을 신뢰해야 합니다. 네번째로 당신은 모든 것을 그분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당신 안에 거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당신의 시간을 제물로 드리십시오. 당신의 관심사들을 제물로 드리십시오. 당신이 그렇게 그분을 열렬히 바란다면, 그분도 당신을 봉사의 새로운 능력으로, 그분과 함께 하는 사귐의 새로운 기쁨으로 끌어올려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 각 사람이 그분과 그리스도께 순종하고 이것을 우리의 매일의 삶으로 삼을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1.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

고전 3:1에 그리스도인의 두 유형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신령한 자들과 육신에 속한 자 입니다.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신령한 양식을 공급한다면, 이는 그들을 이롭게 하기보다 오히려 해를 끼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두 부류의 그리스도인이 존재합니다. 육신의 상태가 무엇인가? 첫째, 유아기가 너무 오래 지속된 상태입니다. 나약한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 속에는 하나님의 영의 거룩함과 능력의 아름다움이 없습니다. 자립할 수 없습니다. 항상 도움 받기만을 원합니다. 바로 이것이 영적인 유아의 표시입니다.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없습니다. 둘째, 죄와 실패가 끊이지 않는다. 자기의 기질을 잘 다스리지 못합니다. 기질의 뿌리와 싸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육신에 속해 있고 하나님의 영에 올바로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신에게 죄의 뿌리가 완전히 근절될 것이라든지, 혹은 타고난 죄의 본성이 모두 제거될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능력으로 우리에게 임하실 때, 그분의 신령한 은혜로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런 후에 우리는 비로소 죄를 이기고 육신의 정욕에서 벗어날 능력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어떤 은사를 주셨을 지라도 실제 우리 삶은 성령님의 능력 가운데 전적으로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은혜는 사람을 자아에서 해방시키지만, 성령님의 은사는 사람을 일하기에 적합하게 만듭니다. 나는 복음을 전하는 목사일 수도 있습니다. 실상은육신에 속한 삶을 사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넷째, 신령한 진리들을 받아들이는데 무능력합니다.

신령한 자의 특징이 죄에 빠진 자들을 돕고 바로잡을 수 있는 온유함, 능력 그리고 사랑입니다. 어떻게 신령한 삶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첫째, 땅에서 구현해야 할 신령한 삶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포도주를 마시면 취하지 않을 수 없듯이, 성령님으로 충만하지 않고는 결코 신령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신령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으라." 둘째, 살지 못했다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죄스럽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두번째 자각이 필요합니다. 육신의 정욕이 자기의 온 몸과 마음을 완전히 장악하여 비참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자기의 불신 때문에 하나님의 영이 주시는 온전한 선물을 받지 못했습니다. 욥은 심각한 자기의의 죄를 보게 되었습니다. 셋째는 단지 한 걸음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회심도 오직 한 걸음 뿐이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에 자기 육체를 드릴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을 간절히 구하게 될 때, 필요한것은오직 한 걸음 뿐입니다. 신령한 삶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가 강한 어른으로 자라나는 것처럼 성장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육신에 속한 고린도 교인들을 도울 수 있었습니까? 의사의 수술칼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능력을 받아들이는 이 단순한 믿음의 행동이 우리를 구원해 줄 것입니다. 자기 앞에 계신 전능하신 구주를 바라보고 그 품속에 자신을 모두 던졌습니다. 살아계신 그리스도가 거룩하고 신령한 삶을 위해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양식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넷째, 반드시 한 것음을 떼야 합니다. 그분의 영에 당신 자신을 완전히 바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과 통치에 마음을 다 바쳐 온전히 순종하지 않으면서도 그분이 자기들의 못된 기질이나 여러가지 다른 죄들을 제거하는데 힘을 기울여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영을 충만히 채워주시기 위해 당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겸손한 순종과 어린아이 같은 믿음 안에 거한다면, 축복도 틀림없이 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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