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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흑암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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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복주의 비판-2
종교다원주의 비판
해방신학 비판
구약 성경 강해 신약 성경 강해 조직 신학

 

교회사-1 (반카톨릭사)

 

1. 교회사의 성경적 정의

2. 이단들이 "이단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3. 교회사에 나타난 신약 교회의 특성

4. 비성경적인 유아세례

5. 오염된 기독교의 시작

6. 제1차 정통주의 세계총회? 니케아 종교회의(A.D.325)

7. 누가 진짜 이단인가?

8. 성경인가, 교회의 전통인가?

9. 수도원, 과연 성스러운 곳인가?

10. 주의 나라가 임하시고

11. 암흑시대의 두 세력

12. 보고마일즈와 왈덴파 그리스도인들

13. 종교 재판소

14. 종교 개혁의 역사적 의의와 그 문제점

15. 종교 개혁과 참 기독교 신앙 Ⅰ

16. 종교 개혁과 참 기독교 신앙 Ⅱ

 

1. 교회사의 성경적 정의

"교회사는 성경적으로 정의할 때 우선적으로 신약에서 시작하는 지역모임들의 역사이며 세상의 모든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종교 자유의 적(敵)으로서 선두에서 서서 세상을 주관하던 <로마 카톨릭>에 대해 경계하게 하고 성경적으로 대비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믿음에 관한 모든 문제의 기준으로 인정한다면 교회사가 일곱 개의 주요 기간들로 구분되는 것을 믿게 된다. 첫번째는, 에베소 기간이다(계 2:1). 이는 사도들의 기간(Apostic Period)으로 부를 수 있는데, 마태복음 10장에서 불러낸 첫번째 지역적인 신약교회로 시작해서 A.D. 90년 경에 마지막 사도의 죽음으로 끝나는 기간이다.
교회사는 성경적으로 정의할 때 우선적으로 신약에서 시작하는 지역모임들의 역사이다. 그러나 이미 기록된 많은 교회사들은 [될린저, 워커, 피셔, 네안더, 모샹, 쉐프, 케른즈, 뉴만 등은] 소위 반교회사(Anti-Church History)의 진영에 포함되어야 한다. 이는 대부분의 교회사가들이 글을 쓸 때에 성경을 원리적인 지침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스머나 기간(계 2:8)으로서 보통 90년에서 325년 까지이고, 세번째는 퍼가모 기간(계 2:8)으로 325년에서 500년까지로 본다. 네번째는 두아티라 기간(계 2:18)으로서 대개 레오 "대제"(Reo "the Great")에서 십자군 원정까지이며(약 500에서 1000년), 다섯째는 사데 기간(계 3:1)으로 1000년에서 1500년까지이고, 여섯번째는 필라델피아 기간(계 3:7)으로서 개혁시대(the Reformation)인 1500년에서 1900년까지이다. 그리고 1900년 경에 일곱번째인 마지막 교회 기간으로 라오디케아 기간(계 3:14)이 시작된다.

이 일곱 교회 기간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곧 에베소, 스머나, 퍼가모, 두아티라, 사데, 필라델피아, 라오디케아이다(계 1:11; 계 2-3).

성경 스스로가 (역사가 기록되는 방법에 관해) 이미 확립된 인간의 역사를 관장하는 규칙들과 법칙들에 따르면 교회사의 각 기간은 배교로 끝나고 만다. 진지한 성경학도라면 역사의 저자(the Author of History: 하나님)가 기록하였듯이 교회사의 각 시대가 "부정적인" 진술로 끝난다는 것을 자기 이름을 아는 것 만큼이나 잘 알것이다. 이 사실은 바로 모든 기독교인 역사가들이 그들의 일생 동안 진화론적인 개념에 입각하여 비성경적 태도와 비성경적 편견을 가지고 교회사에 접근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출발"은 그들이 교회사를 연구하고 해석할 만한 자격을 상실케 하는 것이 된다.

교회사는 그 저자가 성령께서 조명하시는 성경 진리로부터 오는 자신의 성경적 확신을 스스로 이탈하는 한 쓰여질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야 할 것은 사탄이 인간의 삶에 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어서 창세기 3장 이후로 대부분의 인간에게 그의 길을 걷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탄은 살아있고 활기차게 활동하며, 자기 앞에 다가올 엄청난 능력과 권위를 소유하게 될 자신의 전성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계 13장).

이러한 일들에 관한 전반적인 진리를 밝히는데 있어서 대부분의 교회사가들은 눈뜬 소경이다. 이는 그들이 자기들의 조사와 연구를 통해서 사탄과 같은 존재는 교회사의 어떤 분야에서도 활동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존재나 하는 일에 대해서 기술할 만한 것이 전혀 없는 것처럼 교회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고후 4;4).

교회사는 세상의 모든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종교 자유의 적으로서 선두에서 서서 세상을 주관해 왔던 "로마 카톨릭"에 대해 경계하게 하고 성경적으로 대비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약교회에 관한 성경적인 역사는 오늘날 어느 "기독교" 서점에서나 구할 수 있는 수많은 교회사 책들을 고찰하는 모든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매우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 역사책들이 담고 있는 내용이 대부분 "반(Anti)" 교회사이기 때문이다. 즉, 암흑시대에 유럽을 지배했던 교회의 괴물이 로마 카톨릭이었으므로 로마 카톨릭에 대한 역사가 자연스럽게 교회의 역사가 된 것이다.

교회사는 독자에게 33년에서 1992년 까지 참된 사도적 신앙의 맥을 보여주고, 또한 클레멘트(Clement)와 오리겐(Origen)으로 시작해서 새미국표준역본(NASV)과 기타 현대 영어 번역본들, 그리고 한글 개역성경과 기타 한글 성경들에 이르는 배교한 모든 알렉산드리아 계열과 요한(John)과 이그나티우스(Ignatius)에서 칼 햇치(Carl Hatch)와 잭 하일스(Jack Hyles), 그리고 새성경의 독자들에 이르는 성경대로 믿는 증인들의 계열 사이의 차이점을 밝힐 것이다.

모든 배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데서 부터 시작하는데(창 3:1), 배교를 권장하거나 돕거나 격려하는 모든 사람들은 갈등이 내재되어 있는 권위들을 추천함으로써, 즉 성경을 최종 권위로서 인정하지 않으므로 그들 자신이나 혹은 그들의 친구나 고용인들이 최종 권위가 될 수 있게 한다. 갈등이 내재하는 권위들은(변개된 성경, 학위, 교만,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이외의 모든 것) 기독교 학자들에 의하여 교회역사 안에서 확고한 위치를 갖게 되었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찢고 나누어 그 몸을 권위적인 학자들의 학파나 권위적인 종교기관의 지배 아래 두게 하려고 했다.

'알렉산드리아의 원문을 추종하는 학자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를 400년 부터 지금까지 지배해 왔고, 현재는 미국, 영국, 독일 및 유럽의 모든 주요 기독교 대학과 신학교를 그 교수진들을 통해서 통제하고 있으며, 이에 영향을 받은 우리 나라의 "고명한" 학자들과 목사들과 신학교들 역시 어미 오리를 따르는 새끼 오리들 처럼 이들의 뒤를 따르고 있다.

우리가 앞으로 다룰 교회사는 신약교회의 주제를 유일하고 최종적이며 무오한 절대 권위인 변개되지 않은 온전한 성경에 근거한 관점에서 접근할 것인데, 1611년 이후 교회의 "문제"는 어떤 사람도 발견한 적이 없는 "축자적인 영감"이 담긴 완전한 "원본들"과 모두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현대 영어"로 된 일곱 권의 소위 "믿을 만한 역본들"(RV, ASV, New ASV, NIV, RSV, New RSV, Living Bible 등과 "이해하기 쉽고 정확한 현존하는 한글 성경들"(한글 개역, 공동번역, 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표준신약, 현대어성경)이 미국과 한국에서 이루어 놓은 것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성경 내용에 관한 매우 엄청난 무지를 수반함으로써 오는 범죄율의 증가 등이며, 또한 신학교 교리의 혼란과 이색종파의 횡횡과 거짓 교사의 활동과 비성경적인 목회로 인해 순수한 '양무리 교회'는 드물게 되었고 소, 돼지, 이리가 모인 '동물원 교회'가 성경적인 교회로 인정받는 풍토 뿐이다.

우리의 최종 권위는 성경이지 존 록크(John Lcok)의 수필이나 프랑스 혁명 자료, 교단의 교리, 신학교의 학문 편향적 가르침, 학파의 주장이나 개인의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관점이 아니다. 우리의 "권리장전"은 로마서에서 빌레몬서까지이며, 이러한 성경들이 "인권"이란 이름으로 배척당했을 때에 남는 권리라고는 어느 사회에서나 나타나는 시민의 권리들과 사회 평등의 외침 뿐이다.

교회사는 성경이 배척당하거나 무시되거나 의문이 제기되거나 변질될 때마다, 그런 장소마다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인 재앙들이 뒤따랐음을 보여준다(갈 6:7). 성경보다 더 높은 권위로 승인된 어떤 권위도 필연적으로 투옥, 기아, 고문, 마귀숭배와 죽음으로 이끌고 만다. 교회사는 이러한 진리를 정확하고 빠짐없이 증언해 주고 있다. 그런데 성경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성경대로 한다"고 주장하는 교회일지라도 그들이 성경을 진정으로 첫 표지에서 끝 표지까지 믿지 않는 한 그 진리는 그들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라오디케아 교회 기간에 있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에게 초기 시대부터(33년) 현재까지 자기들이 가진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었고, 사람들을 성경에 있는 진리들로, 더 정확하게는 바로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께 인도하기 위하여 매우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그리스도인들의 끊이지 않는 맥이 존재해 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교회사를 통하여 보면 이런 그리스도인들은 매우 다양한 교리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에게는 이십 세기가 흐르도록 그들의 특성을 다른 그룹들과 구별해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공통된 이름도 없었다. 그들은 교황들이 "교회의 통치자들"이 된 이후로(570년) 결코 "그리스도인들"이라 불리지 않았으며, 후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용어는 카톨릭, 프로테스탄트, 그리스 정교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5:9의 "화평케 하는 자들"이 될 것을 공언했던 국제 사회주의자들[카가와, 파이크, 피일, 블레이크 등]과 혁명주의자들[카스트로, 간디, 마틴 루터 킹 쥬니어 그리고 공산주의자들 [아브라함 링컨, 러셀, 듀이, 로이터(Reuther), 루즈벨트 등]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용어는 사도행전 11:26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매우 의미심장한 명칭이었으나, 아인슈타인의 허튼 소리가 대학의 교과 과정에 반영되고 비엔나의 논리적 실증주의자들의 공허한 메아리가 울리면서 "그리스도인"이라는 낱말은 "교회"나 "목사"나 "집사" 같은 말 처럼 무의미해져 버렸다.

지난 이십 세기 동안 교회사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에 관해 사탄의 공작이 깊이 개입된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교회사가들의 태도에 덧붙여서 그들에 대해 명심해야 할 두 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는 "바울강박관념"(The Pauline Obsession)이라고 부르는 것으로서 역사가들이 작은 "올스타 팀"을 만드는 경향을 말한다. 여기에서 투수는 바울이며, 포수는 요한, 유격수는 베드로, 1루수는 크리소스톰, 2루수는 루터, 3루수는 웨슬레, 좌익수는 휫필드, 중견수는 칼빈, 우익수와 지명타자는 '비셰'와 '파스딕'으로 되어 있다. 이 날렵한 "올스타 팀"은 당신이 이런 팀을 구성한 역사가의 교회사에 접근할 때, 바울의 유형들을 부드럽고 더 부드럽게, 매끄럽고 더 매끄럽게 전달해서 마침내는 그 유형이 피터 대제나 징기스칸을 닮지 않은 것처럼 더 이상 바울(이나 루터)를 닮지 않게 한다. 바울 강박관념은 모든 역사가들의 옛 성품에 뿌리박은 두 변절된 기질에서 유래하는 이상 현상이다.

첫째 기질은 바울을 그의 사역과는 별도로 저술가와 신학자로 보는 것이다. 스탬, 베이커, 오헤어, 벌링거, 그레테레, 발링거, 무어 등은 그들의 사역이 코프랜드, 고오만, 버토, 던, 지미 스와거트 또는 오랄 로버츠의 사역 처럼 더이상 바울적이지 않은 "정통주의자들"의 완벽한 보기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바울적이라고 착각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바울이 "썼던" 내용으로부터 두 가지 진리를 추출했기 때문이다(엡 3;1-6과 고후 5:20). 일단 바울의 위치가 교수 자리나 "학식있는 신학자" 자리로 강등되어 버렸으므로 그는 데마나 디오트레패 처럼 영적인 "상대"가 되지 않는 풋나기들과 어쩔 수 없이 친구가 되고 만다.

"바울 강박관념"이라는 용어는 대다수 성경학자, 역사가, 신학자들이 바울의 특성과 사역에 관하여 접근할 때 취하는 그들 특유의 태도를 묘사할 만한 보다 적절한 말이 없기에 사용하는 것이다. 이 경향은 일차적으로 바울을 "최초의 사상가"라고 여기면서 교리의 역사나 신학과 신앙고백의 역사를 세우는 것이다. 즉, 바울을 최초로 교리를 전개한 신학자로 본다.

바울 강박관념은 몇가지로 설명되어진다.

A. 팀을 구성함에 있어 바울을 단지 한 사람으로, 그리고 모든 점에서 그와 비슷하지도 않은 사람들을 함께 섞어 아무렇게나 팀을 구성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루터... 칼빈... 토마스 아퀴나스" 또는 "요한... 바울... 루터... 어거스틴", 다시 "어거스틴... 루터... 칼빈... 바울... 모세... 호즈... 와필드" 등. 어떤 "올스타 팀"은 루터와 칼빈을 로욜라와 같은 계열에 넣기도 하였다. 이 구분들이 아무리 순수한 의도로 구성되었다 하더라도 이는 자신들이 바울 처럼 되거나, 바울(혹은 로욜라)을 자기가 아닌 어던 것으로 만들려는 깊숙히 자리잡은 망상을 드러내는 것이다.

B. 바울 서신서들을 단순히 "바울의" 서신서들로 격하시켜서 그것들이 영감이 담긴 성경이라는 사실을 무시함으로써 그들은 구원과 의롭게 됨과 중생, 영원한 보장과 재림에 간한 "하나님"의 구상이 단순히 "바울의 신학"은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C. 바울의 교리들과 신앙의 결과를(주관적인 관점에 따라) 간과하거나 무시하거나 제쳐두는 것이다. 마헨, 와필드, 웨스트, 로버트슨, 쉐프, 락크만 재단의 신앙들은 도시를 뒤흔드는 부흥이나, 거짓 신들의 배척, 체포나 투옥, 구타나 욕설, 신약 교회들의 확립에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 그들은 고작 유아세례나 주고, 더이상 거리 모퉁이에서 전도하지 못하는 무천년주의자들과 부패한 정통 보수주의자들이나 양산한 뿐이다.

바울 강박관념은 또한 역사가들과 신학자들이 서신서들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나타나는데, 그들은 서신서들이 마치 "요한"과 "베드로" 신학에 반대되거나 유사한 "신학"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다. 몇가지 예로 충분하다.

1. "계시와 이성"에서 브루너는 신약의 가르침을 "복음서들에 담긴 예수님의 모습"으로 한정한다. 그렇다면 바울 서신서들에 나타난 "모습"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복음서가 완전한 "모습"을 담지 않는 것을 최소한 인정해야 하지 않는가?

2. 헨리 스위트는 요한에 대해 "기록자의 그리스도론은 그들... 방향으로 인도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계시록의 "기록자"는 하나님의 제 3위이시다. 스위트의 경미한 불신앙과 같이 람쎄이도 전형적인 부패한 정통 배교자이다. 람쎄이는 계시록의 "상징성"을 두고 요한이 비교적 투박한 문학양식으로 기록한 것으로서, 당시 보편적으로 유행하던 유대인들의 표현 방식에 편승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 페이지를 읽는 사람 가운데 성령께서 "유대인 사이에 유행하던" "문학 양식을 모방해야" 했다는 것을 믿을 만큼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있는가? 람쎄이는 그랬다.

3. 게할더스 보스는 명망있는 "보수주의자"인데 "바울 서신서의 진술들은 한... "철학"의 압박 밑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시 "바울 철학은 부분적인 것이었다"고 한다. 우리는 바울이 과거를 회상하는 관점에서 그의 "철학"을 "완성하였고", "그가 전개했던 철학이 제한된 분야 안에서"는 적어도 수정되어야 함을 믿어야 할 지경이다.

두번째로 우리가 모든 교회사가에 대해 살펴 볼 것은 그들이 "이단들"을 규정함에 있어 곤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만일 모든 카톨릭 교도들 처럼 사도신경을 믿는 어떤 사람이 성령이 사역을 훼방하기 위해서 또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성경적 신앙고백을 왜곡시키기 위해서 하는 모든 행위들도 교회사적 사실로서 받아들여 져야 한다는 허황된 생각을 하고 있다.

우리는 교리 신학 보다 교회사에 걸쳐 실행되었던 신학에 비중을 둘 것이며 "기독교인" 신학자들의 저술 보다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순종하는 삶에 더 비중을 둘 것이다. 우리는 성령 충만한 복음 전도자들과 선교사들을 찾을 것이며 쓰레기로 가득찬 감독과 대주교들은 안중에도 두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정통주의" 살인자들 보다 성경대로 믿는 "이단들"에 더 공정한 입장을 견지할 것이다. 교회사는 반 교회사가 아닌 정직한 역사이기 위해서 사도행전 이후 교회사에 지속적으로 이어진 성령의 사역의 확정이어야 한다.

 

2. 이단들이 "이단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역사가 인정하는 유일한 "사도직"의 계승은 사도들을 통해서 개종한 사람들에게 이어지는데(행 1-28장)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에 부여된 일곱 가지의 위대한 신약의 "신비들"(고전 4:1-2)을 전파하였다(딤후 2:2)[딤전 3:16; 롬 11:25; 골 1:27; 고전 15:49-52; 계 17:5; 엡 5:32; 살후 2:7].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역이 종결되면서 표적들도 사라지는데(고전 1:22), 사도들의 "표적들"(고후 12:12)은 최후까지 A.D.100년을 넘기지 못한다.

그 이유는 사도들을 통해서 개종했던 거의 모든 사람들(막 16:17)이 그때 쯤에 죽었기 때문이며, 사도를 통해서 개종한 사람일지라도 사도행전 28장 앞부분인 61년-62년 이전에 개종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100년이 지난 뒤에 표적들을 행했던 어떤 사람도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며, 바울도 그의 사역의 말기인 68년 경에는 표적들을 행하지 못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딤전 5:23과 딤후 4:20을 주의 깊게 살펴 보라). 특히 사도직분을 계승했던(Apostolic Succession) 속사들은 - 실제로 계승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 그 어느 누구도 사도들의 이적을 행한 사람이 없다. 이것은 신약 사도들의 능력과 권위를 모방하기 위해서 현대의 배교자들이 다음의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해야함을 뜻한다.

1. 로마 카톨릭을 추종하며, 사람들을 개종시키기 위하여 베드로에게 부여되었던 표적들과 능력과 권위들이 마치 '로마의 이태리인 정치가들'로부터 - 아드리안(1159)부터 공산주의자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99)에 이르기 까지 모두 이태리인이었다 - 전문 정치가인 독신 성직자들에게 까지 확장되는 것 처럼 여기게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 "표적들"과 "기적들"이 고안되어야만 했다.

2. 20세기 "은사운동"을 따르고 "두번째 오순절"이 일어나고 있다는 시늉을 낸다. 그러나 성령은 33년에서 1999년까지 1966년 동안 어떤 오순절에도 임하시지 않았다. 또 그들은 마치 하나님께서 이런 표적들을 이제는 더이상 유대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교회 (적 그리스도 밑에 있는 카톨릭 교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베풀기로 결정하신 것 처럼 믿게 한다. 그러나 성경을 공부하고(딤후 2:15) 성경을 믿는(살전 2:13)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라면 이 계략 가운데 어느 것도 종교적인 익살 이외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교회사에는 사도들의 표적들과 기적들, 그리고 이적들과 같은 "사도직의 계승"이 없다. 혹 "계승"될 만한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마 28:19,20; 고후 5:20; 행 27:35; 갈 5; 롬 10-14; 골 1-2, 그리고 롬 3장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방인들을 위하여 설정된 명령들에 순종했던 사람들의 행위를 계승하는 것이어야 한다. 즉, 참된 교회사에 있어서 "정통"에 관한 진정한 평가는 성도들의 믿음이 성경에 근거한 것이었는가와 더불어 각 시대의 현장에서 그들이 성경의 진리를 적용했는가의 여부로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교회사는 성경대로 믿었던 성도들의 삶에 있어서 성경의 진리가 보다 훌륭하게 실행되었던 모습을 맏을 것이다. 그들은 [밥 죤스 1세가 곧 잘 인용했듯이] "성경이 말한 것은 무엇이든지, 비록 그들이 성경의 내용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런 것"으로 믿었다. 그와 같았기에 성경에 더하거나 빼지 않고 성경이 말하는대로의 문맥위에 낱말들을 그렇게 놔둔 사람은, 이미 자신들이 그 단어가 "의미하는" 바를 의도적으로 결정해 놓고 그 낱말이 마치 그것을 가르치는 것 처럼 하기위하여 만든 변개된 다섯 개의 번역본들을 참조하는 사람 보다 항상 진리에 더 가까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노바티안즈(Novatians), 때로는 도나티스트(Donatists), 또 때로는 폴리시안즈(Paulisians)나 다른 이름으로 불리웠다. 그들은 항상 "이단"으로 낙인 찍혔다. 세상에 속해있던 그들의 동시대인들은 항상 비난을 피하였다. "이단"이라는 혐의는 A.D.60년 경부터(행 24;14) 현재까지 종교적 "권력을 가진 기관들"에 "항복하지 않은 성경대로 믿는 모든 사람들"을 향한 일반적인 비난이었다. 어떤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도 그 비난을 피한 적이 없다[보드와(Vaudois), 브레드린(Brethren), 피터린즈(Paterines), 카따리(Cathari), 위그노(Huguenots) 등]. 현대의 배교한 정통주의자들에게 참된 성경대로 믿는 사람은 "이단"인데, 그 이유는 창 3:1과 웨스트코트와 홀트를 통해 배교의 자리에 선 신학대학과 신학교들의 교수진들이 제작한 선전에 그들이 속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로마 교회에 의해서 항상 "이단들"로 취급받았던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축자적인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참된 "어떤" 성경도 갖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성경에 있거나 없는 어떤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성경에 첨삭하는 이단이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성경에 첨삭하는 이단이라는 것을 곧 알 수 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런 자는 "성경을 변개시키는 거짓말장이"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을 표시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대한 그의 믿음이다(창 3:1; 살전 2:13; 행 27:25; 요 8:47) 참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말씀하신 것에 "더하지" 않으며(잠 30:6), 거기서 "빼지도" 않는다(계 22:19).

우리는 어떤 "정통적인 것들"은 참되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것은 성령 하나님께서 그것들이 참되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비로소 참된 것이다(벧후 1:21; 시 119:89). 그것들이 참된지 그른지에 관한 여러분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단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면(창 1:3,6,9) 그런 것이며(민 23:19), 하나님이 풍자적으로 말씀하셨으면(마 23:24; 암 4:4) 여러분은 그 말씀대로 여겨야 한다.

이 교회사에서 우리의 눈 앞에 전개될 한 주기를 볼텐데 이는 역사의 한 법칙으로서 다음과 같다.

1. 전도 : 이것은 "복음전도"라 부를 수 있다.

2. 가르침 : "교육"을 나타낸다.

3. 문화 : 과학, 철학, 전통이 가르침(또는 교육)에 유입되는 것을 뜻한다.

4. 배교 : 이방 종교 체제나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의 전반적인 제안(타협)을 뜻한다.

5. 우상숭배 : 사람들이 복음화되기 이전의 상태를 뜻한다.

이 다섯 단계는 교회의 모든 역사를 통해서 재차 발생하는 주기 안에서 발견되어지는데, 다음에 열거되는 또 다른 형태와 상응하는 점이 있다.

1. 사람 : 전도와 복음화를 뜻한다.

2. 운동 : 가르치는 시설과 기관들의 구비를 뜻한다.

3. 기구 : 세상 교육 체제(전문대와 일반대)를 따라 체계화되는 조직과 형태를 뜻한다.

4. 유적 : 이것은 성령께서 기관들을 우상숭배에 내버려둔 채 떠나가고, 훈련과 학구적인 기준들로 성령의 자유와 능력을 대체하는 것을 뜻한다.

5. 유물 : 남아있는 운동의 흔적이 없다.

모든 종교운동은 "사람"으로 시작하는데(요 1:6), "운동"이 따르며 "기구"가 형성되다가 "유적"으로 남는다.

이 단계들을 가리키는 말은 시대마다 다양해서 독자들에게 혼란을 주어 교회사의 교훈들을 배우지 못하게 막는다. 예를 들면, 우상숭배는 때로 "무신론"이나 "공산주의"로 불린다. 때로는 "사탄숭배"나 "카톨릭"으로 불린다. 배교는 때때로 "통합"이나 "종합", "계몽", "고등 비평" 등으로 불린다. 문화는 때때로 "이성주의"나 "고학력 규범", "상류 문화 규범", "세련됨", "알찬 교육과정" 등으로 불린다. 다양하기 그지없다.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려고 사용한 다양한 이름처럼 그렇게 다양한 이름이 "문화"와 "우상숭배" 및 "배교"에도 주어지는데 이는 그것들의 관련성을 덮어버리고 독자가 살고 있는 시대에도 계속되고 있는 그 주기를 가리워 버리기 위함이다. 예컨데, 오늘날 모든 신학교와 교회는 현재 그 다섯 단계 중 하나를 밟고 있다(사람-전도, 운동-가르침, 기구안의 문화, 유적에서의 배교 내지는 원래상태로의 복위인 물질 우상숭배), "원래상태"는 "소망도 없고 세상에서 하나님도 없었던"상태이다(엡 2:12).

독자가 사도행전을 공부해 보면(2:41, 4:33, 5:15, 6:18), 성령의 실제 움직임이 있을 때 마다 즉각적인 사탄의 반대 공작이 있음(4;1, 5:17, 5:40, 7:54)을 발견할 수 있다. 여러분이 산을 오르면 그 다음은 내려가야 한다. 위에 언급한 주기적인 형태는 이 동작을 설명한다. 일단 여러분이 복음전도와 교육을 거치면 자신이 가고 있는 길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 이유는 여러분이 적어도 "교육"을 말할 때에 갑자기 알렉산드리아의 원문을 추종하는 학자들이 언급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현대 기독교 교육 체제를 고안해서 마련했으며 이들의 첫번째 신학 대학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있었다. 이것은 이십세기에 학교를 설립한 사람이 아무리 "구령하고" "복음주의적"이라 할지라도 그가 교과과정을 마련하는 대로 배교의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임을 뜻한다. 이것이 바로 "구령하는" 발기인겸 설립자가 구령하지 않는 배교자들을 교수진이라고 옹호하고 있을 때에 한 편에서 그 배교한 교수들은 "구령"이 "첫번째 일"이라고 말하면서 자신들은 일 년에서 삼십년이 지나도록 한 사람도 그리스도께 인도하지 않도록 하는 전형적인 마귀의 술책을 가르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인물들 각자가 부패하고 서로 감싸주는 동안(그럼으로써 서로의 죄들에 관한 변명들을 꾸민다) 강의실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시속 160km의 속도로 믿음에서 떠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학교가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마침내 성경을 거부하게 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구령하는 "설립자"는 그이 교수진이 저지른 비성경적인 일들을 보호하고, 그 교수진들은 자기들도 역시 영적인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 경솔한 자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그 영적인 수완 뒤에 숨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 대부분은 몸에 영적인 뼈 하나 없는 것이다. 그들이 강의실에서 목회 후보생들에게 저지른 피해는 가히 헤아릴 수 없는데,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만이 "구령하는" 설립자의 엄청난 죄들이 드러날 것이다. 모든 것이 "명백히" 드러날 것이고(엡 5:27), 널리 알려진 경건한 변명들을 향해 이제 참된 조명이 비칠 것이다. 역사와 영성과 성경의 믿음이 하강하는 악순환을 거듭해온데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설립해서 세운 교육 기관들의 배교가 어느 시대에서나 항상 나타나기 때문이다. 진리의 하나님은 역사의 하나님이시고, 역사의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시다.

필립 샤프(Philip Schaff)의 "니케아 종교회의"(A.D.325) 이전 시대의 예배"에 관한 자료들은 하낙(Harnarck), 프로브(Probst), 볼츠(Volz), 바이책커(Weizsacker), 잔(Zahn)과 다른 사람들이 초기 예배에 관해 생각했던 것을 자연스럽게 반복하고 있다. 우리는 물론 그 당시 유대인의 예배 형식이 회당에서 계속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행 15장이나 행 7장 이후로도 볼 수 있는 신약 그리스도인 모임에서의 "예배"형식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행 2-5장에서 구원받은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예배드렸고(행 3:1-4), 그리스도인들이 회당에서 모였다는 말은 전혀 없다. 바울이 전파했던 회당들은(행 13:14) 유대인들이 모였던 곳이다.

만일 이방인이나 다른 민족인(행 10:22) 그리스도인들이 참석했더라면(행 19:8) 그들은 경청하거나 서서 신약의 진리를 전파했을 것이다(행 13:38-42). 어떤 회당에서도 신약 예배의 성찬식을 지켰다는 신약 기록이 없다. 교회사가들이 여러분을 로마 교회의 술책인 비성경적인 미로에서 방황하게 만들때, 그들은 여러분을 성경에서 즉각적으로 돌아서서 "디다케"(The Didache)와 "클레멘트 서신서"(The Epistles of Clement)들로 향하게 한다. 즉 성경의 기록(행 7-28)을 포기하고 "토빗"(Tobit)이나 "벨과 용"(Bel and the Dragon) 처럼 더 이상 성경이 아닌 두 가지 이단자료로 대치하게 한다.

요한이 죽자마자 "성체 기도"가 갑자기 지역교회에 들어왔고, 그와 더불어 교회사가들은 "예배의식"과 "예배식 성구들"(필립 샤프는 교회를 이렇게 부른다)에 관해 말하기 시작한다. 교회사가인 샤프는 매우 자연스럽게 "성스러운 의식들"을 "성사들"로 부르는데, 신약 "어디에서도" 그런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다.

그 '위대한' 학자는 "사실"의 "중립성"을 절대 준수하면서 가장 객관적인 교회사를 썼다고 하지만, 그도 침례 성사가 할례의 "표적"으로써 대체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침례를 신구약 성경 어디에서도 표적이나 "성사"로 행한 곳이 아무데도 없다. 사실과 다르게 가르치는 것은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허구"를 가르치는 것이다.

유아세례가 초대교회에서 행해졌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하여 샤프가 제시한 그 몰상식한 증거는 "그 증거"가 긍정적인 증거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제쳐두고 라도 단지 "강한 개연성"에 근거한 "사실"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이 1901년 미국표준역본(ASV) 밑에서 행해진 기독교 학문이었다. 여러분은 샤프가 웨스트코트와 홀트 처럼 어떤 "사실들"을 말할 때 역사의 어디에서나 발견되는 "사실"은 결코 언급하지 않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들이 "사실"을 말할 때는 그 사실이 "강한 개연성"에서 말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새국제 역본(NIV)과 새미국표준 역본(New ASV)을 만든 "헬라어 신약의 재구성에 있어서 인정된 원리들"에 기초한 "사실들"은 웨스트코트, 홀트와 필립 샤프의 이론들이었다. 그것들은 필립의 유아세례 만큼이나 "사실"이 아니다. (그런데 이 성경을 소위 한국의 근본주의 신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추천한 선생이 있다.)

유세비우스, 소크라테스, 소조맨(Sozoman), 디오도레, 칼리스키, 카씨오도러스, 미네(Migne), 테이너와 파시우스 같은 역사가들이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역사와 동시에 존재하는 교회의 발달에 대해 우리에게 알려주는데 기여하였지만, 그 역사적 사실들의 해석은 그들의 인식과 능력 밖의 일이었던 것이다. 이는 모두가 비성경적인 설명에 대하여 관대히 묵인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추출된 가장 위험한 몇몇 이단들이나 그 이단론에 동조하기 위하여 성경을 변개시키는데서 파생된 이단들을 "더 선호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교회사가가 지역교회의 성격에 관하여 거짓되거나 왜곡된 관점을 가지고 교회사를 시작한다면 즉시로 자신이 물에 깊이 잠겨서 급조된 생명 유지기구 없이는 떠있을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세상 제도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침례받은 성도들의 지역 모임은 어느 교회사에서나 공부하게 되는 필수적인 단위이다. 신약에서 그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유아들에게 침례를 주지 않았으며, 단 한 사람도 죄인의 중생이 침례를 받을 때 성령을 받는 것이라고 잘못 가르치지도 않았다.

 

3. 교회사에 나타난 신약 교회의 특성

교회사는 성경의 관점에서 볼 때 우선 지역 회중들의 역사를 다루고 그 다음 조직된 교파들을 다루어야 한다. "교회"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인데 불러낸 모임(called out assembly)이라는 뜻이다. 교회는 때로 그리스도의 영적인 몸인 살아 있는 유기체(Living organism)를 뜻하지만(골 1:8; 엡 1:22; 딤전 3:15), 모임(행 2), 예배(행 4), 기도(행 4), 구제(행 11), 성경을 가르치는 것과 전파(행 13), 선교 사역(행 16),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목적으로 세상 제도에서 "불러 낸" 성도들의 지역모임으로 더 많이 쓰이며 신약에 80회 이상 나온다.

신약에서 지역교회는 자치적(self-governing)으로 운영되는데(행 6), 감독(장로, 목자)과 집사를 직접 선출하고(딤전 3:1-12), 장로(감독, 목자)는 교회의 가시적인 머리이며(히 13:17; 딤전 5:17), 가난한 성도들을 지원하고(롬 15:25-26; 고전 16:1-3), 개종자들에게 침례를 베풀고(행 16:33), 복음 전도자들과 선교사들을 파송했다(행 13:1-4; 16:1-4).

지역 신약교회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었던(살전 2:13; 요 8:37) 침례받은 성도들로 구성되었다. 그들의 "공산주의"는 자발적이었고(행 4:32) 국가와 전적으로 분리된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자본주의자였고 사유재산의 소유를 믿었기 때문에(행 5:4) 지폐와 세금, 수입 분배, 원조 물자 수송, 도시 주택 정비와 복지계획 등으로 "인류"에게 에덴동산을 회복시키려는 정치인들의 사회주의적인 시도들에 결코 "관련하지" 않았고, 다만 그들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돌보았다(행 11:29; 롬 15:25-26). "가난한 성도들"(고전 16:1-5)은 당시의 인종 혼합을 주장하는 리버티노(행 6:9)나 원로원의 시이저 정치가들이 아니었다.

즉 신약 지역교회는 전미기독교회협의회(NCCC)나 세계기독교협의회(WCC)의 활동과 이념, 행사 및 계획과 전혀 닮지 않았다. 이 "가치없는" 세상은 결코 신약 지역교회와는 "은혜의 친구"(요 18:14)가 아니며, 어떤 지역교회도 그들의 "왕"이 오시지 않은 채(행 3:19) "천국을 오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사도행전의 교회가 지역 모임의 원형으로서 이들은 이 세상의 제도에서 불러냄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행 1:1-8)과 사도들에 의해 기록된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겼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이 "불러낸 모임"의 역사를 연구하려면 성경의 전파, 성경의 가르침, 과학과 철학에 대한 교회의 입장(골 2:8; 딤전 6:20), 또 재림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태도, 로마 카톨릭에 대한 교회의 입장과, '무엇보다도 "최종 권위"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 관계된 가능한한 모든 자료를 활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창조자(엡 1:22,23)가 말씀하신 것(행 20:28)과 교회의 머리(골 1:18)가 함께 하신 것(행 3-28)을 무시하고 교회사를 쓴다는 것은 영적인 광기이다.

제롬, 어거스틴, 샤프, 필린저, 유세비우스, 콘스탄틴과 수없이 많은 자들이 바로 그런 짓을 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교회사"가 사기, 착복, 이단론, 공갈, 고문, 전쟁, 살인의 지루한 사설에 한정되는 것을 놀랍게 생각하지 않는다. 신약에서 이런 일들은 항상 교회 안팎의 원수들과 관계있는데, 그들은 "반(Anti)" 교회사에 타협한다. "너희가 그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게 되리라"는 우리 주님의 말씀을 기준 삼을 때, 로마 카톨릭, 성공회, 개혁교회, 루터교 같은 조직된 종교들은 확실히 그들의 뿌리와 가지를 썩은 기초 위에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신약 지역교회의 특성은 다음과 같았다.

1. 그들은 외경을 한 마디도 담지 않은 구약을 사용하였다.

2. 그들의 신약성경은 대부분은 소아시아에서 기록되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반경 80km 내에서 쓰여진 "원본"은 하나도 없다.

3. 그들의 활동 중심지는 시리아 안티옥이었지 로마가 아니었다. 이 지역에서 루터 성경과 킹 제임스 성경을 만든 비잔틴 표준원문이 형성되었다.((로마에서 쓴 유일한 신약 서신서들은 감옥에서 기록되었다.)

4. 그들은 기도와 말씀사역에 전념했는데(행 6:4) 말씀사역에는 가르치는 것(행 13:1-4)과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는 선교의 노력도 포함되어 있음을 뜻한다(행 16:1-6).

5. 그들은 유아세례를 준 적이 없고,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어떤 형태로든지 구원이나 중생의 수단으로 물침례를 권면하지 않았다(행 15).

그들이 믿었던 구원의 교리는 '믿음으로 인하여 은혜로 받는 것'으로서(행 15:11), 이것 외에 어떤 요소도 첨가하지 않았다. 아무도 유대인의 명절인 오순절(신약이 쓰여지기 전) 설교 이후 거듭남과 구원을 위해 물침례를 받아야 한다는 실수를 범한 적이 없고, 신약의 어떤 그리스도인도 물침례가 성령을 받거나 거듭나는 수단이라고 다시 설교한 적이 없다(행 2:38을 행 10:43, 15:11과 비교해 보라. 벧전 3:21을 참고하라).

6. 참된 교회는 어떤 인종을 돕는(혹은 방해하는) 따위의 정부 주관 행사나 계획에 결코 "연관되지" 않았다. 그들은 복지 입안이나 환경계획에 관계되는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어떤 시위나 정치운동을 벌여서 "땅에 평화를" 가져오게 하는 시도를 한 적이 없다. 그들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던 것이다(요 17:16).

7. 마지막으로 어떤 신약의 그리스도인도 교회 지도자를 "아버지(father)"로 부르지 않았고 단 하나의 신약교회 직분도 "제사장(Priest)"으로 부른 적이 없다. 로마 카톨릭의 그런 직분은 당신이 레이저 광선으로 찾는다 해도 교회에는 나타나지 않는 말이다. 성경대로 믿는 성도라면 "참된 믿음"(갈 1:8-10; 고전 15:1-5; 행 20:1-28; 엡 3:1-6; 딤전 4:1-6)이 어떻게 "다른" 나라에 들어 가게 되는지를 알 것이다.

그것은 물이 성령이라고 생각하고 유아세례를 주었던 자들에 의해서도 아니었으며 마리아를 숭배하며 우상에게 입맞추는 "제사장들"에 의해서도 아니었다. "참된 믿음"이 한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것은 에디오피아(행 8)나 사마리아(행 17)나 로마(행 28)에서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구속이(고후 5:14-21) 어떤 다른 행위와 상관없이(행 15:1-5) 천국에 가는 길임을 전파한 성경대로 믿는 증인의 입을 통해서였다.

이 "구원 계획"은 오리겐과 유세비우스가 태어나기 백년 전에 "교황"이 등장하기 삼백년 전에 "복받은 시몬 베드로"를 포함해서(행 15:7) 사도들과 "장로들"이 확립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라투렛(Latourette)과 샤프(Schaff)같은 교회사가들은 복음전도와 가르침이 "성경적 신앙"의 전파임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이 일차적으로 교회사가들이 결코 복음전도자가 아닌 이유이다.

 

4. 비성경적인 유아세례

"성경을 부인하여 성경을 변개시키는 조류 속에서 아무도 아기들이 침례에 합당한 대상이라고 생각할 만큼 우둔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카톨릭은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해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곧 세례를 베풀므로써 나중에 "재침례를 받지" 못하게 한 것이었다. 이 지독한 거짓말을 확립하기 위해 어거스틴은 유아세례가 성경적이며 "성인침례"는 유아 때 이미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그것은 이단적이라고 가르쳤다."

모든 복음 사역자가 다 "유아세례"를 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물과 세례의식이 구원의 일부라는 생각에 확실히 미혹되어 있다. 이 의식은 간단히 말해서 (카톨릭 신자, "그리스도의 교회" 장로들, 감리교인들, 장로교인들, 성공회 신자들, 개혁 교회들과 루터교회에서 지지하는데) 일정한 공식에 의해(마 28:19-20; 행 2:38) 물세례나 물침례를 주면 죄인에게 마술적인 변화가 일어나서 하나님의 제 3위인 성령으로 거듭남으로 "그리스도 안의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이다.

이 의식의 성경적인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요한복음 3:5이 물"침례"를 말한다는 것으로서 이러한 주장을 따른다면 우리는 카톨릭 교회(세례교리 문답)나 성공회(39개 조항), 장로교(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감리교(편람) 및 켐벨파(그리스도의 교회) "장도들"의 신조들을 믿어야 할 지경에 이른다. 또한 요한복음 3:5이 육신의 출생을 말한다(창 1:20; 잠 5:16-17; 요 3:6)고 하며, 더우기 우리는 로마서 6:1-3과 에베소서 4:5도 "물"이라는 말이 두 서신서의 어느 곳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물침례에 관련된 구절이라고 믿어야만 할 것 같다.

이와 같이 이 구절들을 잘못 취급하게 한 대표적인 성경 구절은 사도행전 2:38로서 이 구절을 가지고 로마서 6장, 요한복음 3장, 갈라디아서 3장, 에베소서 4장, 디도서 3:5에 적용하는 것에서 기인한다. 이 터무니 없는 해석(모든 로마 카톨릭의 해석은 사사로운 해석이다) 성경 구절들을 변개시키는 것은 2세기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계속해서 이어져 왔다. 2세기의 알렉산드리아 성경 변개자들이 신약을 진보적인 계시로 고치면서 그 후예들도 계속해서 그 거짓말을 환란시대에 들어갈 때까지 가르칠 것이다. 사도행전 15:9,11은 분명히 물침례가 구원과 관계없음을 보여 주며, 베드로전서 3:19-21에서 물침례는 구원의 모형일 뿐이라고 했으며, 할례처럼 "표적"이나 "인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롬 4:11). 에베소서 4장이나 그 주변에 물이라는 말은 없으며, 로마서 6장이나 그 주변에도 역시 물이라는 말은 없다.

이방인들은 구원받은 "후" 물침례를 받았으며(행 10), 복음은 물침례를 배제한 교리로(고전 1:14-16) 규정되었고(행 15:1-6), 그 규정된 복음은 "믿음"을 실행하는 "순종"이었기에 (롬 10:9-10, 1:5,16:26) 북아프리카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형성된 이 의식은 17세기 동안 교회사에서 "기독교" 교리화 되어 20세기에 이르렀다.

대부분의 교회사가들에 따르면 [모샹(Mosheim), 로빈슨, 아미타지, 베더, 뉴만 등등] 200년 까지는 어른 성도들만 침례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터툴리안은 216년에 말하기를 성인들만 침례에 합당한 대상이라고 하였고, 후에는 물침례를 중생의 수단으로 거부하였으며, 또한 중생의 수단으로 베푸는 물침례를 사탄의 가르침이라고 하였다.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는 96년 경에 말하기를 침례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교육을 받고, 그가 침례를 받을만한지 심사하였다고 한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음부의 구약 성도들이 그리스도나 사도들에게 침례를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멍청했지만 유아세례를 베풀지는 않았다.

성경을 부인하여 성경을 변개시키는 조류 속에서 아무도 아기들이 침례에 합당한 대상이라고 생각할 만큼 우둔하지는 않았다.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스우스(Dionysius)는 신앙고백이 있은 후에 침례를 베풀었다. 쁘와띠에의 힐라리(Hilary), 아타나시우스, 달마티아의 제롬, 가이사랴의 바실은 공개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 않는 한 아무에게도 침례를 베풀지 않았다. 크리소스톰, 나지안젠의 그레고리, 밀란의 암브로스도 같은 말을 했다.

역사가들은 90-300년 사이에는 아무도 유아 침례를 베풀지 않았다고 보는데,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와 오리겐은 이에 대한 교리들을 가르친 점이 주목된다. 필립 샤프(Philip Schaff)는 오리겐에게 유아세례를 인정한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오차아드(Orchard)는 유아세례가 "카톨릭" 교리로 처음 나타난 것이 아우렐리우스 어거스틴의 글에서라고 하는데, 그는 오리겐 처럼 외경을 담은 "칠십인역"이 영감이 있다고 생각하였던 사람이었다.

도나티스트(Donatists)라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성인들에게 "재침례를 주어서" 죽임을 당했던 것에 비해, 어거스틴은 누미디아 종교회의(A.D.415)에서 유아세례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저주하였다. 어거스틴의 "유아"에 대한 관심은 잘 정립되었는데 그 이유는 도나티스트(Donatists)들이 성인에게 다시 침례(재침례)를 베풀 때에 그들은 처음의 세례(유아세례)가 의미 없음을 세상에 선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어거스틴에 따르면 참되고 유일한 침례는 카톨릭 교회의 물세례이기 때문에 카톨릭 교회 밖의 어떤 침례도 이단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침례를 받으면 그것은 카톨릭의 물세례가 "중생시키지" 못함을 공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카톨릭은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해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곧 세례를 베풀므로써 나중에 "재침례를 받지" 못하게 한 것이었다. 이 지독한 거짓말을 확립하기 위해 어거스틴은 유아세례가 성경적이며 "성인침례"는 유아 때 이미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그것은 이단적이라고 가르쳤다.

카르타고 종교회의(The Council of Carthago, 401)는 어거스틴을 지지하여 그의 신학적 망상을 "정통" 교리로 인정하였다. [415년 멜라 종교회의(The Council of Mela)에서]. 789년 샤를마뉴(Charlemagne)는 유아세례를 국법에 규정하였다. 그러나 샤를마뉴가 태어나기 오래 전에(A.D.413) "카톨릭" 교회는 데오도시우스와 호노리우스 황제들에게 유아세례를 받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나 재침례를 받는 성인들에게 사형을 선고하도록 하였다. 어거스틴은 유아세례를 믿지 않는 사람 [프랭크 노리스(J. Frank Norris), 빌리 선데이(Billy Sunday), 죠지 트루엣(George Truette), 디한(Dr. DeHann), 찰스 스펄젼(Charles H. Spurgeon), 잭 하일스(Jack Hyles), 모르드개 햄(Mordecai Ham), 쟈니 캐시(Jonny Cash)와 달리 파튼(Dolly Parton)등과 같은 사람]은 누구가 "비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 수중 무덤에서 모비딕보다 더 강력하고 죠스보다 더 잔인한 짐승이 나타난다(욥 41:31-33). 그 짐승은 머리에서 발까지 물을 떨구며 A.D.415년에 지상에 올라온다. 이후의 물뿌리는 의식에서(A.D.500-1980), 물세례는 침례교도를 제외한 모든 주요 인가된 종교조직에 의해, 중생(행 2:38)과 죄를 씻는(행 22:16) 성경교리로 인정된다. 여러분은 그리이스 정교회와 로마 카톨릭 교회, 루터교회, 성공회, 개혁교회, 장로교회, 감리교회의 모든 교리 문답에서 이 교리를 볼 수 있다.

이 비성경적인 이단교리 하나가 소위 "미사" 다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한 어떤 다른 교리 보다(벧후 3:16) 더 많은 유혈사태를 초래했다는 것은 주목해야 할 사실이다. 이것은 16세기 동안 교회국가를 유지하는 수단이었다. 즉, 영국(성공회), 독일(루터교), 프랑스(카톨릭), 스페인과 이태리(카톨릭), 이디오피아(콥트교회), 그리이스(정교), 러시아(1918년까지), 그리고 미국의 청교도 "선조들"이 채 100년을 보내기 전에 나타난 존 칼빈의 청교도 - 개혁 형식을 본뜬 교회국가 (Church State) - 가 세워졌는데 그와 더불어 고대 카톨릭 의식이 부활하여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을 "이단들"로 화형시켰다.

유아세례를 교회가 받아들임으로써 교회국가는 다음 몇 가지 일을 교회에 보장한다.

1. 많은 수의 '신자들'이 아기를 교회에 데려오지 않으면 죽음이나 파문의 위협을 받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기를 데려와야 한다(정치적인 협박이 없을 지라도 단지 부모에게 아기기 지옥이나 적어도 "림보"에 갈 것이라고 말하면 통치할 수 있는 것이었다.).

2. 가족들은 육신의 출생부터 교회에 연결되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지옥을 향해 가면서도 "그리스도인"으로 가장행렬을 하는 죄인들이라고 보장해 주는 것이다. 이처럼 무지한 이들은 물이 영적인 탄생을 가져온다고 생각하도록 기만당하고 있다.

3. 교회는 '신자들'이 물세례 또는 물침례를 받고 "개종한" 날짜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침례는 어떤 사람에게도 분명히 구원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죄인들은 자신들이 사는 날 동안 구원받았는지를 확신하지 못한다. 이것은 나아가서 그 교회 신자들이 구령할 줄 모르는 원인이기도 하며,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한 사역을 수용하는 성인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아세례를 베푸는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구원은 아기가 "신부"에게 무의식적으로 복종함으로 일어난다고 한다.즉 구속이 무엇인지 물을 뿌리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기도 전에 소위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아세례는 (정확히는 "물을 뿌리는 것"인데) 지난 16세기 동안 거듭나지 못한 로마 카톨릭 교회를 실질적으로 단합시키는 힘이 되어 왔다.

 

5. 오염된 기독교의 시작

콘스탄틴은 성직자들에게 세금을 면제해 주었고(A.D.313), 그리스도인들에 반대하는 이교도 의식들을 폐지하였으며(A.D.315), 구원받지 못한 이교도들로 하여금 주일(Sunday)을 지키도록 하였고(A.D.321), 모든 "기독교 개종자"에게 금화 이십개와 흰 옷을 약속하였다(A.D.324). 자연히 그 다음 해에 기록적인 교회 참가자를 기록했는데, 로마의 초기 카톨릭 교회는 한 해에 12,000명이 세례를 받은 기록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콘스탄틴 자신은 침례받지 않았다.

콘스탄틴은 유세비우스에게 로마 왕궁에서 쓰려고 50권의 성경 제작을 부탁하였다. 그는 친구인 팜필루스(Pamphilus)와 함께 북아프리카 가이샤라에 가서 (그는 가이사랴 주교였다), 시리아 안티옥의 표준원문을 5,800군데나 변개시킨 오리겐(Origen)의 "6란 성경"(Hexapla)을 참조하여 성경 50권을 만들었다. 오늘날까지(1999) 오리겐의 "성경"은 로마 카톨릭의 공인 성경으로 남아있다. 또한 미국표준역본(ASV, 1901), 새미국표준역본(NASV, 1960), 새국제역본(NIV, 1978) 등으로 출판되고 있다.

콘스탄틴은 그리스도께서 성취해 놓은 사역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받는 구원을 믿었던가? 천만에! 그는 주교들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단 한번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으며 임종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받은 구원은 그의 말에 따라 "불멸을 보장하는" 물세례였다. 콘스탄틴은 물세례가 "구원을 인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로마의 황제 콘스탄틴은 그때까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적대적인 정책에서 그들을 관용하는 타협적인 분위기로 급선회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과 그들의 모임에는 현저한 변화들이 일어났다. [이에 대한 자료는 락탄티우스(Lactantius), 소크라테스, 소조메누스(Sozomenus), 모샹(Mosheim) 등등의 글에 나와있다]. 로마 원형경기장이 장터로 바뀌고, 신전들은 교회 건물로 바뀌었으며, 비너스, 아폴로, 제우스, 아프로디테 동상들은 베드로, 야고보, 마리아, 요셉, 요한 등의 동상으로, 또 이교도의 희생제물의 연기가 그리스도인 "신부들"이 태우는 "향"으로, "물침례 신비 의식"이 "유아세례"로 바뀌어서 교회에 들어왔다. "이교도의 양초"는 "그리스도인의 양초"가 되었으며, "에베소에서 태워버린 책"을(행 19:19) "오리겐과 유세비우스의 북아프리카 위조 사본들"이 대신하였다.

이렇게 이교도 의식이 교회들에 쇄도한 것은 상상을 초월할 지경이었다. "사회풍조"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었다. 기독교는 "인기있었다"(눅 16:15). 이교도들이 교회와 연합할 때 그들은 크리스마스 트리(렘 10:3-6)와 부활절 토끼(행 12:4)를 들여왔다. 이것들의 역사는 잘 알려져 있다. 베스타(Vesta) 여신을 섬기는 처녀들, 긴 옷을 입는 제사장들, 결혼 반지, 종교 의식, 동상을 꾸미는 것, 죽은 자를 위한 지속적인 기도가 수반되었다. 교인을 만드는 것은 "기독교"를 믿는다는 신앙고백의 표시로 물을 뿌리면 그만이었고, 게다가 금화 이십 개와 새 옷의 유혹이 있었기에 구원받지 못한 이교도들이 교회들에 자연히 흡수되었다.

카톨릭 교회는 급속도로 최상의 교회가 되었는데, 콘스탄틴이 동로마를 건설하려고 이스탄불(비잔티움)로 떠날 때에 로마의 주교는 "근사한 거처" 외에도 "로마 교회"를 전격적으로 장악하게 되었다(A.D.330). 그레고리 나지안젠(Gregory Nazianzen, A.D.330-390)은 로마에 보물이 있었기에 도시들 가운데 "여왕" 같은 위치를 누렸다고 말했다. 로마 주교는 거대한 바실리카(교회 건물 양식)를 지어서, 거기에 자주와 진홍색 옷을 입고(계 17), 머리에는 왕관을 쓰고(계 17), 손에는 왕권을 휘두르며(눅 4:6),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할 "천년통치"를 시작하였다. 간음은 금지되었고, 첩을 두는 것도 폐지되었으며, 여자들에게 약간의 권리가 부여되었고, 근친간의 결혼도 제한되었다. 후에 어거스틴의 하나님의 도성(The City of God)에 힘입어, 교회 회중들은 로마가 새 예루살렘이고, 카톨릭 교회의 주교나 신부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세상을 정복하고(계 6:2; 마 13:33), 보좌에서 다스릴(계 20:2-4) 지상의 통치자들로 믿도록 고무되었다. 시민으로서의 자유권과 인권 및 사회의 모든 영역이 개선되면서 당시의 성경을 거부한 배교자들은 천년왕국이 시작된 것으로 믿게 되었다.

콘스탄틴이 기독교에 관용을 베풀므로 야기된 가장 치명적인 피해는 카톨릭 신자들과 성경 교사들에게 끼친 결과일 것이다. 그 이유는 이때까지는 거의 모든 교부가(오리겐, 클레멘트, 디오니시우스 같은 알렉산드리아의 배교한 학파는 제외하고) "전천년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이 교리를 "칠리아즘(Chiliasm)"으로 불렀다. 칠리아즘은 다음과 같다.

1. 사람은 그의 자연 상태가 성령으로 거듭났다 할지라도, 여전히 악한 본성을 갖고 있다(눅 11:13; 갈 1:4; 창 6:5). 그러므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마 6:10) 이루어지게 할 수 없다.

2.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완전한 평화인 천년통치는(사 11:1-12; 욜 2; 암 9:14; 스카랴 14:1-10; 마 19:28,25:31; 눅 1:30-33; 계 20:1-6) 만왕의 왕으로 오실 때에 비로소 실현되는데, 그 분은 그 왕국을 세우기 위해 눈에 보이는 모습을 하고(행 1:11) 돌아오실 것이다. 그 때 주님은 이 땅의 모든 종교적 정치적 권세를 파괴하시는데(단 2:44),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이루어질 것이다(욜 2:1-17).

이 성경 교리의 지지자들은 바나바(Banabas), 파피아스(Papias), 져스틴 마터(Justin Martyr), 이레네우스(Irenaeus), 터툴리안(Tertullian), 락탄티우스(Lactantius), 코모디안(Commodian), 빅토리우스(Victorinus), 메또디우스(Methdius)였으며, 전천년을 주장한 이들은 A.D.120년에서 311년까지 그 맥이 끊기지 않았다. 그런데 오리겐은 이 중요한 성경 진리를 "유대인의 꿈"으로 격하시켰다[델리취(Delitzsh)는 1886년 정통주의자들에 대해 이것을 "우둔한 직역주의"라고 하였다].

오리겐이 팔레스타인의 가이샤라로 옮긴 후(A.D.235) 그곳의 주교인 유세비우스 역시 칠리아즘을 거부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며, 이후의 어거스틴, 제롬, 칼빈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천년설을 반대하는 주견해는 후천년설이다. 이 주장의 강력한 지지자가(어거스틴) 인간의 전적인 타락을 믿는다고 하였음에도 이것은 인간성의 본질적인 선함을 강조하고 있다. 후천년설은 인간의 적극적이고 진화론적인 관점이다(창 3:1). 따라서 모든 구원받지 못한 무신론자, 공산주의자, 자유주의자, 정치가, 성경을 부인하는 교회사가, 그리고 성경을 변개시킨 기독교 지도자가 채택한 교리이다.

 

6. 제1차 정통주의 세계총회? 니케아 종교회의(A.D.325)

니케아("승리"라는 뜻)는 니코메디아에서 20마일 떨어진 비두니아에 있다. 여기에 감독들이 (각자 장로 두 명과 수행원 셋을 거느리고) 소집된 것이다(A.D.325년). 318명 가량의 감독이 참석했는데 이 중 6분의 1은 로마제국에서 교육받았다. 즉 교회 지도자 중 16% 미만이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의 신앙 기준을 결정한 것이다. 이들은 속으로 자기들이 사도행전 15장의 사도들과 장로들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그것은 니케아 종교회의 신조의 부록에서 자기들 모임을 거룩한 "사도교회"를 대표하는 모임으로 부른 것에서 분명해 진다. 6월 14일 부터 8월 25일까지 이들은 무의미한 논쟁만 벌이면서 시간을 보냈다.

"교회의 머리(콘스탄틴)"가 나타날 때(6월 14일), 그는 "하늘에서 내려 온 하나님의 사자로 금과 보석으로 치장하고, 미와 위엄으로 충만한 영광스러운 모습"이었다(에스겔 28장을 보시오). "제왕의 자주색 옷을 입었고(계 17:4), 머리에 금 띠를 둘렀으며, 그의 붉은 안색과 내리깐 눈은 그의 옷의 보석들에 반사되었고, 그의 허리에는 제왕의 칼과 목자의 지팡이(스카랴 11:17)가 있었다."

첫째 가는 자유주의 정치가인 콘스탄틴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하기를,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은... 그 분이 나에게 이 중요한 모임을 소집하게 하여서... 여러분 모두 이 곳에 화합과 일치 속에 모이게 한 것이요"(그리고 나서 그는 어떤 형제들을 추방하고 종교회의의 다수 규칙을 따르지 않는 자는 누구나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콘스탄틴은 그의 경건한 사기극을 드러내었다. "교회의 불일치는 어떤 다른 전쟁보다 더 끔찍하고 고통스런 것이요.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지체하지 마시오. 하나님의 종들이여, 지체하지 마시오. 모든 갈등의 원인을 제거하여 온갖 불화의 매듭은 "평화"의 법으로 해결하시오." 이 거룩한 위선 뒤에 따른 것은 "살인"이었다. "모든 갈등은 해소하라"는 선포는 곧 "연합하지 않는 자는 누구나 죽이라"는 뜻이었다. 전쟁 준비나 독재 정권의 표준 수단은 항상 "그럴듯한 말과 아첨으로 순진한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하는" 것이었다(롬 16:18).

순진한 사람들은 평화와 통합을 바라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쉽다(창 3:1). 그러므로 이 시대나 다른 어떤 시대의 모든 독재자, 정치가, 교황이나 종교적인 소인배도 미래를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는데, 심지어는 민족 말살정책을 펴면서도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콘스탄틴은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을 죽이기로 선포했고[모라비안(Moravians), 아리안(Arians), 폴리시안(Paulicians), 몬타니스트(Montanists), 도나티스트(Donatists) 등등], 그리하여 기독교계의 최종권위는 더 이상 성경이 되지 못하고 로마의 황제인 전능한 카이사 아우구스투스가 앉았던 금 보좌의 발 앞에 겸손히 앉아 있는 '감독들의 종교회의'가 되고 만다.

"사도신경"은 이 종교회의의 주요 의제였는데 의심스러운 배경을 담고 있다. 초기의 신경은 마셀러스(Marcellus)에게서 나왔는데 헬라어로 되어 있었고 "카톨릭"이라는 말이 빠져 있어서 채택되지 않았다. 니케아 종교회의의 규정은 성직자 계급제도를 구성하는 원리를 형성했는데 이것은 반 그리스도인적이며 성경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았다. 사도신경 외에도 겔라시우스(Gelasius)는 아홉 가지 항목이 부가되었다고 말하는데, 마지막 항목은 전천년주의에 대한 교리적인 언급이다.

이것을 카톨릭 백과전서를 쓴 마이어(Myers)가 거부하였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어떤 카톨릭 교황이나 신부, 수녀나 주교, 대주교도 전천년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대의 정통 카톨릭 교리는 휴거나 이스라엘의 회복, 천년왕국, 그리스도의 심판석은 인정하지 않는다.

니케아 교부들 시대에 온 로마제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세 가지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첫번째는 성인 물침례였는데 도나티스트와 몬타니스트의 교리적 입장이 이 문제에 대해 "카톨릭 정통교리"는 이단론이라는 사실을 증거한 셈이었다. 두번째 문제는 지역교회의 훈육과 순수성이었는데, 노바티안과 몬타니스트의 분리는 "교회의 분리"가 "삼위일체"의 문제를 이유로 해서는 드물었음을 증명하였다. 세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몬타니스트와 초기 교부들(A.D.100-300)의 신학적 입장은 "주의 나라를 확장한다"는 "카톨릭 정통 교리"가 다름질 할 필요가 있는 여러 주름이 있었음을 분명히 입증하였다.

A.D.325년 니케아 종교회의는 퍼가모 교회 기간(계 2:12)이 시작을 알리는데 신약에 나타난 성경적 기독교 신앙의 종말이기도 하였다. 이때부터 성경적인 입장을 취하는 어떤 모임이든지 황제의 교회국가에 대항함으로써 그 회중의 순수함과 단결을 유지하였다. 그 다음 세기에 지중해 지역에서부터 분리되어진 그룹들은 '정통'이라는 카톨릭의 실상을 보여주었고, 하나님이 야만족들을 통하여 그 지역에 있는 이 배교한 교회를 심판하신 것은(A.D.400-600) 우리가 역사에서 보는 최고의 설명으로써, 그리스도인 감독들이 최종권위에 대한 문제는 감히 제시하지도 못할 만큼 겁을 준 한 사람 앞에서 "그리스도인의 분리의 원인"을 논의하는 것조차 꺼려한 그 종교회의의 성격을 성령이 올바로 지적하셨다.

그들 논쟁을 일삼은 신학자들이 (설교하고 가르치는 감독 가운데 6분의 1도 안되는데) "정통교리"를 확립하는 동안 그들의 지역교회는 부활절 계란이나 결혼 반지, 종교적인 행사, 촛불을 켜는 것, 죽은 자들에 대한 기도, 예배 도구로 쓰인 나무 토막이나 천조각, 방에 성수(聖水)를 뿌리는 것, 문자적으로 피를 마시는 행위, 그리고 이교도 의식을 수용했던 것이다. 이 모든 이교도 의식은 성경의 권위를 거부하고 다른 권위들로 대체하는데서 생겨났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여 이런 지독한 엉터리 의식을 받아들이게 한 세 가지 경쟁적인 권위가 성경에 언급되어 있는데, 즉 지식 - 과학 - (딤전 6:20), 전통(골 2:8), 철학(골 2:8)이다.

시프리안(Cyprian), 오리겐(Origen), 유세비우스(Eusebius), 파피아스(Papias), 이레네우스(Irenaeus), 어거스틴(Augustine), 클레멘트(Clement), 콘스탄틴(Constantine), 저스틴 마터(Justin Martyr), 그리고 아리우스(Arius)가 니케아와 후 니케아 조류를 형성하면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원문이 교회국가의 공인 "성경"이 되는 것이나(제롬의 라틴 벌 게이트, A.D.382-420), 교회국가 산하의 공인된 바알 제사장직, 또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버지께 부탁한 것을(요 17:11) 위임 받았다고 하며 성경대로 믿는 지역 모임들을 근절하기 위해 군대를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강압적인 통치를 자행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게 하느니라"(갈 5:9; 마13:33).

니케아 종교회의부터 피에 취한 창녀는(계 17:1-8) 그 흔적을 명백히 노출시키는데, 비록 그레고리 대제(Gregory the Great)까지는 공식 "교황"이 없었지만 모든 성장요인과 부수적인 내용은 콘스탄틴이 주재한 그 종교회의 때에 이미 존재하였다. 그는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어떻게 구원받는지 언급하지 않았고, 지역교회의 성격이나 의무에 대해, 또 세상 제도의 미래와 무엇보다도 "무엇이" 또는 "누가" 그런 문제들을 혹은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나 결정하는지 전혀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최종 권위에 대한 문제는 미해결로 논의되지 못한 채 그 종교회의는 끝나 버렸다.

이때부터(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 - A.D.381, 안티옥 종교회의 - A.D.341) 최종권위는 종교회의가 되었고(행 4:15, 5:27, 6:12, 22:30, 23:20을 보라) 오늘날까지 로마 카톨릭 교회는 이들 종교회의의 신조들을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과 동등하게 인식한다. 더 나아가서 그러한 신조 뿐만 아니라 영감있고 권위있는 진술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를 통해서 계속 나온다고 주장하는데 그들은 계시가 신약 성경말고도 진보적으로 향상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주장의 동기는 명백한데, 두 개의 상충되는 권위를 가지고 카톨릭 교회는 스스로 최종 권위로서 하나님의 자리에 서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사탄적인 기독교의 시작과 끝이다(창 3:1). 1960년 이전 기독교 교육에 있어서 두 가지 권위는 킹 제임스 성경(KJV)과 미국표준역본(ASV, 1901)이었고, 1960년 이후 세 가지 권위는 킹 제임스 성경(KJV), 미국표준역본(ASV), 새미국표준역본(NASV), 그리고 새국제역본(NIV)이다.

카톨릭은 성경과 동등한 진보적인 계시를 믿기 때문에 현대의 모든 배교한 정통주의자는 계시가 1611(KJV)년 이후 킹 제임스 성경 밖에서 진보되어 왔고,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신 원문을 36,000군데 변개시킨 성경들이 그 원문과 같이 권위있다고 믿었으며, 그들은 모든 카톨릭이 주장하는 전통들을 주장하면서 그 전통들을 거룩한 성경과 동등한 위치에 두었던 것이다.

웨스트코트(Westcott)와 홀트(Hort)의 전통은 해리 아이언사이드(Harry Ironside)와 라일리(W.B. Riley)에게서 그대로 되풀이 되고 있으며, 그레고리(Gregory)와 네슬(Nestle)의 전통은 와필드(Warfield)와 메이첸(Machen)이, 케넌(Kenyon)과 티쉔돌프(Tischendorf)의 주장은 로버트 섬너(Robert Sumner)와 로날드 워커(Ronald Walker)의 글에서 여전히 드러난다. 깃털이 같은 새들이 함께 모인다고...

 

7. 누가 진짜 이단인가?

어거스틴(A.D.354-430)이 죽을 때 쯤에 카톨릭 교회의 입장에서 보면 많은 소위 "이단들"이 나왔는데, 이 이단들을 열거하면 카포크라테스(Capocrates), 네스토리안즈(Nestori -ans), 아폴리나리안즈(Apollinarians), 아펠레스(Appeles), 그노스틱스(Gnostics), 유티키안즈(Eutychians), 모나키안즈(Monarchians), 모노테리테스(Monothelites), 사벨리안즈(Sabellians), 마니케안즈(Manichaeans), 폴리시안즈(Paulicians), 도나티스트(Dona -tists), 모노피시테스(Monophysites) 등이다. 카톨릭 교회는 니케아 종교회의 이후 이들 이단을 통칭하여 "아리안(Arian)"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그래서 카톨릭 교회를 반대하는 자는 누구나 (구원받았든 안받았든 간에) "아리안"이라 불렀다.

현대에는 (워싱톤과 바티칸이 구축된 동안인 1945-1960)에 공산주의자들이 교회 재산을 몰수하고 민첸티(Mindszenty) 추기경 같은 혁명주의자를 투옥하자(1949. 2. 3) 누구든지(예를 들면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 반 카톨릭을 주장하면 "공산주의자"로 몰렸다. 니케아 종교회의(A.D.325)부터 2차 바티칸 종교회의(1765)까지 모든 신실한 카톨릭 신자들의 기본 신조는 반 카톨릭을 주장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 대항하며, 하나님을 증오하고 하나님을 거부하는 "이단"이라는 것이었다.

로마 카톨릭은 "아리안주의"에 대한 극단적인 적개심을 표방하는 한편 영어 개역본(RV), 미국표준역본(ASV), 새미국표준역본(NASV)의 원류인 1582년 제수이트 레임즈(The Jesuit Rheims) 성서의 모체인 첫 번역 성경을 냈는데, 이것이야말로 진짜 아리안 주의에 입각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 아리안 번역 성경(제롬의 라틴 벌게이트)은 그 신학적 기조가 누가복음 2:33, 디모데전서 3:16 그리고 사도행전 4:26에 잘 드러나 있다. 아리우스(Arius, A.D.256-336)는 니케아 종교회의 때 "이단"으로 낙인찍힌 인물로서(여호와의 증인들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보다 낮은 신성을 가진 것으로 믿었다.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이룩한 "정통에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콘스탄틴이 죽은 후 카톨릭 교회는 실제적으로는 아리우스의 견해를 채택한 것이었다. 여호와의 증인 다음으로 아리안주의를 따르는 이들은 바로 로마 카톨릭으로서 그들은 영광의 주님을 빵 한 조각과 밀주 한 잔으로 바꿔버린 자들이다.

웨스트코트와 홀트, 그리고 이들의 지지자들에 의하면 참된 성경 원문이 제롬의 벌게이트에 의해 1,080년 간 확립되어 왔다는 것인데, 이 원문은 암흑시대를 동반했던 것이다. 웨스트코트와 홀트는 밥 존스 대학을 비롯하여 하바드, 콜게이트, 데네시 템플, 예일, 웨스트민스터, 샌프란시스코 신학원, 휘튼, 콜럼비아, 바이올라, 프린스턴, 버클리 등의 교수진들로 하여금 두 헬라어 사본(시내 사본, 바티칸 사본)이 기록되자마자(A.D.330-350) "당시에 빛을 보지 못한 채" 제롬의 벌게이트(신약)에 보존되었다가 교회사의 라오디케아 시대(1880-휴거)에 마침내 빛을 보는 것으로 믿게끔 하였으나, 사실 이 두 사본은 복음서에서만 3천 군데나 서로 틀린다.

그리고 그 사본들이 마침내 (웨스트코트와 홀트, 티쉔돌프와 네슬의 윤색을 거쳐) 해 아래 빛을 보게 되었을 때,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일어났으며, 영국과 미국은 파산했고, 바티칸은 공산주의로 전향했으며, 미국의 프로테스탄트의 영적 부흥은 끝나버렸던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두 가지 성품이 있는데, 구원받기 전의 옛 성품과 구원 받고나서의 새 성품이 그것이다. 학식 있는 그리스도인 안에 있는 옛 성품은 성경이 그에게 어떤 행실을 명할 때 성경의 권위를 빼앗으려는 끊임 없는 유혹을 받으며 또 그런 명령을 가르치시는 성령의 권위를 무시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따라서 거듭난 사람들도 분명히 거짓 교리를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A.D. 600-1500년 동안 가증한 음녀 로마 카톨릭은 교부들의 글을 제멋대로 분해하여 거짓 교리로 변조해 버리고, 글 속의 비유적인 부분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며 또 수 많은 경우에는 교부들을 잘못 인용하는 실수를 범해 왔다.

모든 교부들을 거짓 교사로 봄으로써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로 부당하게 취급해서는 안되겠지만, 한 가지 유의할 점은 교부들의 글 중에는 정통 로마 카톨릭의 신조를 형성시킨 비성경적인 내용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교회사에서 최초의 "이단"이 니케아 종교회의가 있기 전부터 로마 카톨릭이 된 카톨릭이었음을 의미한다. 비록 북아프리카 출신의 어거스틴이 일반적으로는 최초의 진정한 "로마 카톨릭"이고 로마 카톨릭 교리를 구성한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지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로마 교회가 북아프리카 교회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자가 후자로부터 성직자 제도나 마리아 숭배, 유아세례, 연옥의 교리, 마술적인 행위, 알렉산드리아에서 형성된 "정통성" 등을 수용한 사실로 알 수 있다.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정통성을 인정받은 자 역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였던 것이다(아타나시우스). 이 때를 계기로 알렉산드리아 이단(Alexandrian Cult)은 카톨릭 교회의 주도권을 장악한다. 그러나 어떤 교황이나 어떤 카톨릭 신자도 신약의 기독교와는 아무 관련이 없었으며, 성경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카톨릭은 이단에 대해 분개하는 한편 다음과 같은 이단성을 보였다.

1. 어거스틴은 도나티스트인 티코니우스(Tychonius)가 쓴 "성경에 대한 열쇠"(Key to the Scriptures)를 수용했으면서도 도나티스트들이 "이단"이라고 하여 그들을 죽이도록 하였다.

2. 어스스틴은 A.D.1000년에 그리스도의 후천년 재림이 있을 것으로 계산했는데 그의 카톨릭 동료 중 아무도 그의 계산에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3. 첫째 부활은 단지 영적인 부활일 뿐이다.

4. 로마 교회는 이사야서 35장의 성취이다.

5. 어떤 죄들은 죽음에 이르는 죄들이고 용서받을 수 있는 죄들도 있다.

6. 물 뿌려서 구원시키는 유아세례는 신약교리이다.

7. 수산나(Susanna)는 실제 인물이었기 때문에 다니엘서에 포함시켜야 한다.

8. 주교가 없는 자리에서 세례받는 것은 불법이다.

9. 처녀성은 구원의 조건이다[이집트 레온토폴리스의 히에르카(Hiercas)].

10. 마태복음 외에 다른 복음서는 인정하지 않는다(Cerinthus).

11. 오리겐의 헥사플라(에서 자신이 쓴) 5란(fifth column)은 B.C. "칠십인 역"으로 인정한다.

12. 결혼은 금지한다 [엔그라티테스(Encratites)와 사투르니누스(Saturninus)]. 주목할 것은 이 둘도 말시온(Marcion)과 함께 카톨릭과 개혁주의 교회사가들에 의해 이단의 명단에 올랐다는 것이다. 이들이 죽음에 합당한 비성경적인 이단이라면 신부들과 주교들이 성직자의 독신 생활을 성경적인 것으로 믿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13. 교회 안에 우상들을 들여 오고 주의 만찬을 아프리카식 제사로 변질시켰다.

14. 종교회의의 결정 사항들을 반대하는 자는 저주받는다.

15. 유아는 성사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이 되어 "그리스도와 연합"한다.

"이단"이란 단어는 성경 용어이며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과 관련되어 처음 나타난다(행 24:14). 그러나 "이단"이라는 낙인 뒤에 숨겨져 있는 사실은 누군가 성경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성경적이지 않은 것을 증명하거나 가르치기 위해 성경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고전 11:19).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정통을 내세운 로마 카톨릭은 수많은 성경대로 믿는 무리를 "이단"으로 규정하여 핍박하였다. 누가 진짜 이단인가?

 

8. 성경인가, 교회의 전통인가?

퍼가모 교회 기간(A.D.325-500)에 소집된 종교회의들은 아폴리네리안(Apollinarian)문제[381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제기된 문제], 네스토리안(Nestorian)문제[431년 에베소에서 제기된 문제], 유티키안(Eutychian)논쟁[451년 칼세돈에서 제기된 문제], 모노피사이트(Monophysite)논쟁[533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개최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종교회의들이 열리는 본질은 종교회의에 더 많은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교회의 종교회의가 "카톨릭"의 신앙과 행위의 모든 문제에 있어서 최종권위가 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4세기 말 경에 로마 카톨릭의 각 주교들은 다섯 개의 지역권으로 분리가 되었는데 그 지역들을 대표하는 교회 지도자들은 "대주교(patriarchs)"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 지역들은 로마, 콘스탄티노플, 예루살렘, 안티옥과 알렉산드리아인데, 자연히 알렉산드리아, 안티옥과 예루살렘은 모두 콘스탄티노플에 기대어 로마보다 더 신뢰하는 기둥으로 여겼으며, 로마 지역의 주교들은 독자적으로 설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분리가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로 가장 뚜렷한 이유는 콘스탄틴이 모든 실제적인 목적에서 그들에게 보좌를 주었는데 로마 주교가 이태리, 프랑스, 스페인, 스위스, 카떼이즈, 사르디니아, 시실리, 그리고 지금의 서부 오스트리아와 남부 독일, 심지어는 영국 일부까지를 관장하는 종교 지도자였으며, 두번째는 오리겐과 클레멘트가 동방 지역에 결코 치유될 수 없는 극렬한 분리를 일으킨 것으로, 오리겐과 유세비우스로 시작해서 후에 어거스틴과 제롬으로 이어지는 알렉산드리아 이단과 철학, 과학과 전통을 성경과 동등한 권위로 수용하지 않았던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과의 믿음과 행위의 문제들에 있어서의 차이였던 것이다.

그리고 로마의 주교가 자연스럽게 하늘과 땅과 지옥의 전권 통치자 위치에 서게 된 주요인은 당시의 야만족들의 침입이나 투르크족의 침공이 아니라 알렉산드리아 이단이 양 진영의 교회들을 오염시킬 수 있었던 사실이었다. 교황들은 보좌에 앉은 첫 사람부터[어떤 사람은 레오 1세(440-461)로 보는데, 그레고리(590-604)로 보는 사람도 있다.] 소련 공산 정권에 항복한(1970-1978) 마지막 사람까지 모두 알렉산드리아 이단에 동의하였으며, 이들 중 아무도 성경을 철학, 과학과 전통보다 절대권위로 인정하지 않았다.

알렉산드리아 이단은 이중 권위로 특징지워지는데 여기서 세 번째 권위는 "신"의 역할을 한다. 알렉산드리아 이단의 영향 아래 있는 로마 카톨릭에 있어서 이중 권위는 종교회의, 교황들의 지시와 "교부들"로 구성된 "교회 전통"인데 이것을 세번째 권위인 "신"이 해석하는 것이다. 이때 "신"은 교회의 교황을 의미한다. 1980년대에 알렉산드리아 이단의 후예들인 보수주의나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이중 권위는 AV와 NASV나 ASV와 NIV, 또 AV와 NIV와 RV와 NASV이며 "신"이 해석하는데, 이때는 "공인된 기독교 학자들"이다.

이 기간에 큰 신학 논쟁을 일으킨 것 중 하나는 펠라지안 이단(Pelagian heresy)이었다. 다른 "이단들"처럼 이것에 대해서도 많은 논쟁과 글, 변론과 회유책 등이 있었는데 이 모든 행위는 한결같이 절대 권위에 대한 문제는 회피하고 있다. 교회가 세속적으로 타락해 가면서 종교적인 권위에 대한 문제는 더욱 더 중요해졌고 그 와중에서 종교적인 무질서 상태나 정치적인 "혹민 정치"가 판을 쳤다. 502년에 파비아(Pavia)의 에노디우스(Ennodius) 주교는 말하기를 교황은 하나님께만 판단받는다고 하였는데 그는 "모범적인 카톨릭 신자들"이 최종 권위로 무엇을 믿어야 할지 잘 말해 놓았다.

펠라지우스(약 400년 경)는 영국 수도승으로 시리아 기독교를 이어받은 구 켈틱 신앙을 수용하였고, AV 표준원문으로서 왈덴파와 알비겐파가 사용한 구 라틴 역본(제롬의 라틴 벌게이트가 아님)을 보았다. 그는 알렉산드리아보다는 안티옥 계열의 신앙을 택한 것이었는데 자연히 그의 동시대인들에게서 "미움을 받게 되었다."

스페인의 카톨릭 수도승인 폴 오로시우스(Paul Orosius)가 펠라지우스의 글(그는 유아침례와 침례의 중생을 비성경적이라고 하였으며,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주장하였다.)이 이단이라고 처음으로 공격하였다. 오로시우스는 카떼이즈(Carthage) 종교회의에서 펠라지우스의 글을 저주하였고 어거스틴도 그 주장을 지지하였다. 펠라지우스는 심한 비난을 받았으며, 제명될 위기에 놓였다. 그런데 그는 팔레스타인에서 열린 한 종교회의에서 캐사리아 주교인 율로지우스(Eulogius)에 의해 사면되었다. 그 즉시로 북아프리카의 두 종교회의(카떼이즈와 엘라)에서 펠라지우스의 사본을 공박하면서 로마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교황 이노센트(402-417)는 알렉산드리아 주교들이 자신을 믿음과 행위의 모든 문제에 있어서 최종적인 절대 권위로 호소한 그들의 지혜를 무엇보다 칭찬하였다.

결과적으로 알렉산드리아 이단의 북아프리카 종교회의는 유아침례가 "원죄"를 제어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저주하였던 것이다. 더 나아가서 아기들은 물침례를 받지 않고서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하는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저주를 받았다.

카톨릭 교회들이 종교회의들을 통해 철학적, 신학적인 공론들을 하는 동안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의 증인들은 길거리나 감옥에서 복음을 전하였다. 교회사를 통해서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회의 석상이나 황제의 "궁전"보다도 원형 경기장이나 감옥에서 더 눈에 띄어왔다(행 14장, 16장; 딤후 4장). 참으로 구령에 관심이 있는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데 너무나 분주하였기에 과학이나 철학에 사로잡혀서 신학적 공론이나 늘어놓을 틈이 없었다. 그들의 분야는 "실천" 신학이었지 체계적이나 교리적인 신학이 아니었다.

70년에서 440년 경(교황 레오 1세)까지 많은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신약 기록자들에 의해 "성도들에게 단번에 전해진 믿음을 지켰던" 것이다. 복음은 이렇게 생생하게 전파하는 개인 구령자들을 통해서 확장되어갔다. 이들의 특징은 네 가지로 들 수 있는데 열정과 순결한 도덕성, 견고한 지역교회 조직 그리고 그리스도이 재림에 대한 열망이다.

드프레쌍(DePressence)은 말하기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특별한 소명을 없었지만 기회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도시들과... 군대들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열정적인 태도"로 그들에게 열변을 토하였다."고 한다. 자, 이 묘사는 카톨릭 종교 지도자들의 달변에 능하고 화려한 사교성과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 대조인가?

 

9. 수도원, 과연 성스러운 곳인가?

수도원은 퍼가모 교회 기간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작된 비성경적인 제도이다. 콘스탄틴 이후 카톨릭화 되어버린 교회에 반대함으로써 이단으로 몰려 죽임을 당하거나 핍박을 당하기에는 너무나 나약했던 그리스도인들이 두 주인, 즉 로마주교와 예수 그리스도를 모두 섬기려는 타협적인 방편으로 수도원 생활을 하였던 것이다.

1. 부분적인 성별

A.D.313-518년 사이, 즉 로마 카톨릭 교회가 형성되는 퍼가모 교회 기간에 지역교회들의 소심하고 나약한 그리스도인들은, 콘스탄틴이 314년부터 지역교회들의 문을 개방시키면서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것은 그가 문서나 신앙고백 내지는 세례를 통해서 이교도들을 교회들에 참여토록 한데서 비롯되었다.

이 거듭나지 못한 죄인들은 그들의 록큰롤 음반들(당시의 다이아나 여신에게 바치는 노래), TV(우상들을 모신 철재나 목조 신전들), 그리고 그들의 도덕관("신전을 지키는 여인"과의 음행)을 지닌 채 지역교회들에 쇄도하였는데, 그 결과 그리스도를 온전히 섬기고 싶었지만 성경이 말하는 성별과 교리들(고후 6:16-17; 막 4:17)을 옹호할 만한 용기가 없었던 자들은 지역교회들에 큰 타격과 문제들을 초래하였다. 이 나약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섬기며 주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요일 2:15) 원하였으나, 콘스탄틴 '형제'의 명령으로 받은 벌거벗은 이교도들을 교회 안으로 불러들였을 때 참으로 곤경에 빠지게 된 것이다.

카톨릭화 되어버린 교회 안에서 엄격한 교회 훈육을 주장한다면 "노바티안"(Novatians)이라는 이단으로 낙인찍힐 것이며, 거듭난 성도만 교회 회원으로 인정하려 했다면 카톨릭 신부들과 주교들은 그들을 "도나티스트"(Donatist)라 이단시했을 것이고, 또 주교들에게 교회들이 타락해 가는데 주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면 후천년의 진리를 거부하는 부정적인 사고 방식을 가졌다고 비난받으면서 "몬타니스트"(Montanists)라는 이단으로 몰리게 될 것이었다.

따라서 이 기간의 나약한 그리스도인들은 "이단"으로 몰리지 않고서는 절대 권위(하나님의 말씀)를 온전히 붙들 수가 없었다. 또 로마 주교는 교회의 머리가 아니라거나 교회는 콘스탄틴과 정치적인 연합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면 "파테린"(Paterines)나 "메살린"(Mesalines)로 불리게 되는 것이다. 네스토리안부터 유티키안(500년경)까지 이런 명칭을 가진 모든 이들은 성모(Holy Mother)교회에 의해 이단으로 몰려서 죽임을 당하거나 핍박을 당하였기에, 하나님을 섬기기 원하지만 "성모 교회"에 맞설 용기가 없었던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정도의 "성별"(seperation)을 시도했는데, 그것은 곧 부분적인 성별이었다. 교회사가들은 이들이 취한 방편을 "수도원 생활"이라고 언급한다.

이 제도는 거룩하게 살기 위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만큼 카톨릭 주교들도 두려워하여 그들에게 순종하는, 모든 타협하기를 좋아하는 나약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두 주인, 즉 로마주교와 예수 그리스도(벧전 2:25)를 섬기는 것이 가능하게 하였다. 이것은 현명한 방편이었는데, 이단시되는 것을 피하면서 종교회의들의 결정사항들을 고분고분하게 수용하는 동시에 "너희는 그들에게서 나와 따로 있으라"(고후 6;17)는 하나님의 말씀에도 충족하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당시의 신정통주의나 신복음주의와의 교제도 거부하였을 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파했던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과의 교류도 거부하였다.

2. 수도원은 성경에 어긋난다.

당시의 종교적인 상황에 따라서 수도원 생활은 어거스틴과 제롬 시대에 기독 교회의 온갖 타협과 부패의 온상인 북아프리카의 오리겐 학파 주변에서 시작된다. 이교도들의 수도원 생활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되었는데 베다가 BC. 1200년에, 불교는 BC 600년, 그리고 다른 종교들도 오랜 기원을 갖고 있다. 고행은 "명상"과 더불어 힌두교와 불교의 대표적인 가르침이다. 명상이나 고행 내지는 육신을 절단하는 것은 연옥이나 혼의 윤회, 또 육신의 부활을 부정하는 오리겐의 가르침과 같이 그의 교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수도원에 입문하는 자들은 몇 날, 몇 달, 심지어는 수 년 동안 외부와 일체의 연략을 끊고 명상과 예배, 기도를 드리며 다양한 고행과 참회를 행한다. 수도원 생활의 대표적인 지지자로는 네 명의 "교부"가 있는데 아타나시우스(알렉산드리아), 제롬(로마), 크리소스톰(콘스탄티노플), 그리고 히포의 어거스틴(아프리카, 카테이즈)이다.

이 제도를 발전시키는 주 무대는 알렉산드리아였는데 동양적 명상과 영지주의, 성경 변개, 헬라 철학과 자칭 기독교를 주장하는 모든 요소가 한 누룩으로 혼합되었다. 이것은 배교자 오리겐이 가르쳤는데 고행에 정진할수록 성이 더 깊어진다고 하였으며, 그는 자신의 교리적 신념을 증명하기 위해서 마태복음 5:29-30에 근거하여 스스로 거세하였다.

수도원 생활에 대해서 신약에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교부들은 신약을 32,000번 이상 인용하였고 신약 정경이 27권으로 공인되었음에도 카톨릭 교회는 비성경적인 기관을 세우는 것이 좋다는 결정을 취한 것이다. 창세기 3장의 나무가 "좋았던" 것처럼 수도원 생활은 분명히 좋은 점들이 있었기에 성경에의 순종보다 우선시 되었던 것이다.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할 수 있는데 굳이 하나님께 순종할 이유가 있었겠는가?(삼상 15:21). 그러나 성경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선포하기에(시 51:16-17; 삼상 15:22) 카톨릭 교회의 "교부들"은 신.구약의 요점과 목적을 빗나간 것이다.

3. 수도원 생활의 본질

수도원에서 어떤 수도승들은 무거운 철로 된 옷깃을 착용했고 어떤 이들은 무거운 쇠사슬을 고환에 차고 다녔으며, 또 다른 이들은 주먹을 꽉 쥐어서 손톱이 손바닥을 찌를 때까지 쥐고 있었다. 어떤 수도승들은 일주일 내내 한 발로 서 있는가 하면, 목의 근육이 마비되어서 고개를 돌리지 못할 정도로 자신의 어깨를 응시하는 자도 있었고, 대못들 위에 눕는 자들도 있었으며 뜨거운 불 위의 고리에 매달리거나 나무 줄기 사이에 묶인 채 5년에서 30년까지 지내는 자들도 있었다.

이렇게 수도승들은 어거스킨의 <하나님의 도성>에 나타난 조잡한 내용보다 더 형편없는,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기독교의 본을 세상에 드러내었다. 이들은 모두 처음부터 거룩한 성경을 거부하고 오리겐의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변개된 성경을 취해 온 까닭에 예정된 종착지인 바알 숭배에 이르고 말았다. 바알 숭배자들은 "신부들"(fathers(재판관기 18:19)과 더불어 일요일 정오에 하늘의 여왕(렘 44:17)을 숭배할 때 자신들의 몸을 절단하였다(왕상 18:28).

이방인 교회들에 쓰여진 신약 서신서들을 정면으로 거부한 채(골 2:20-23), 파코미우스(Pachomius)는 "천사"(갈 1:8)에게서 받은 계시로 "수녀들을 위한 수녀원"을 세웠다. 그는 15년 동안 돌 위에 꼿꼿이 앉아서 잠을 잤다. 파코미우스의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모범'을 따라 오십 개의 수도원이 양산되었고 그것들은 모두 아프리카에 세워졌다. 에프라엠(Ephraem)은 메소포타미아에 수도원을 세웠고, 유스타시우스(Eustathius)는 아르메니아에, 바실(Basil)은 폰투스와 카파도기아에 수도원을 세웠다.

타협하는 데 익숙한 나약한 그리스도이들은 그들의 곤경을 빠져나갈 방편을 마련한 것이었으며, 그들은 신약 성경을 부인하면서도 '경건한' 그리스도인들로 지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님의 권위가 담긴 성경을(골 2:20-23) 변개시켜서 사용하였다. 때때로 "학문"은 마귀처럼 살면서 알리바이를 꾸며대는 죄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그들의 "경건"은 자기 부인과 자기 고행이 수반된 이차적인 성별에 근거하였으며 일단 이렇게 해서 명성이 확립되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첨삭하면서도 성경대로 믿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여전히 "경건하게" 지낼 수 있다고 설득하였다. 이차적인 성별과 "고등학문의 기준들"은 성경을 부인하고, 성경에 순종하는 것을 거부하는 그들의 삶을 보장하였던 것이다.

 

10. 주의 나라가 임하시고

1. 암흑시대의 시작 - 두아티라 교회시대

니케아 종교회의(A.D.325)로 시작된 퍼가모 교회기간은 교회가 국가와 타협함으로써 로마 카톨릭 교회를 형성하고, 여러 종교회의들을 통하여 로마교회는 성경과 교회 전통 사이에서 최종권위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 기간에 서로마 제국이 붕괴되고 이민족의 침입으로 민족의 대이동이 일어나면서 서고트족, 반달족, 고트족 등이 로마 카톨릭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자 로마 카톨릭은 국왕들(클로비스, 마르텔, 피핀, 샤를마뉴)과의 정치적 결탁으로 군사적 보호를 받는 한편,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어 카톨릭화함으로써 국왕들을 자신의 시녀로 삼고 로마교황은 하나님으로 신격화되어 전 유럽을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지배하게 된다. 이에 따라 암흑시대의 전반부인 두아티라 기간(A.D.500-1000)이 전개되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그의 졸작 <하나님의 도성>에서 주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때 임하여서 천년을 지속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주의 나라는 로마 카톨릭에게 임하였고 이것을 확장하기 위해 그들 교회에 더 많은 권세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들에게 주의 나라를 확장하는 수단은 유아세례를 통하여 수 많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을 카톨릭 교회의 양으로 삼는 것이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종교의 탈을 쓴 정치 집단이기 때문에 영국과 유럽을 카톨릭화하는데 있어서 종교적 호소와 더불어 정치적 공작이 수반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영국과 독일이 로마 카톨릭 국가가 되는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고, 두아티라 기간의 콘스탄틴이라 할만한 샤를마뉴를 통해서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1000년 간의 암흑시대를 연출한 로마 카톨릭의 비성경적이고 사탄적인 모습을 보기로 한다.

2. 군대의 힘으로

영국에는 A.D. 200년 이전에 성경적인 기독교 신앙이 전파되었다. 퍼가모 기간 동안 성 페트릭이나 콜럼바의 선교사역으로 6세기 말에 어거스틴이 영국에 첫 발을 내딛기 전에 이미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뿌리를 내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 후 602년에 어거스틴은 교황 그레고리 1세의 지원과 영국 왕, 프랑스 군대의 힘을 배경으로 성경적인 교리를 주장하는 영국교회의 감독들과 우호적인 "친선" 관계를 맺었다.

서섹스 종교회의에서 그는 대주교가 최종권위이고 유아세례가 성인 그리스도인에게 베푸는 침례를 대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어거스틴보다 성경교리를 더 잘 아는 영국 교히 감독들은 이러한 그의 주장을 거부하였따[들은 어거스틴 이전에 피라누스(Piranus, 325-430), 세르바누스(Servanus, 450-543), 드로스탄(Drostan, 470-540), 핀바르(Finbar, 490-578)에게서 훈련받았다].

이러한 거부로 인해 2차 회의에서 곤란에 직면하자 어거스틴은 "경건하고 영적인" 카톨릭 대주교로서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사용했다. 그것은 영국인들이 성경적인 기독교를 버리고 카톨릭의 죽 한 그릇을 사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색슨족을 보내서 복수하신다는 협박을 하는 것이었다.

영국의 경우처럼 독일도 교황의 "대사"인 바니페이스가 등장하기 오래 전에 성 패트릭과 콜럼바의 선교사역으로 성경대로 믿는 기독교 신앙이 전파되었다[더 오래 전에 이레내우스(120-192)의 시대에 이미 구 라틴 성경이 전달되었다]. 바니페이스는 교황 그레고리 2세의 명령을 받아 독일을 카톨릭화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는 자연히 투린지아(Thuringia)와 바바리아(Bavaira)에서 냉대를 받았는데 이 지역들은 콜럼바의 반 카톨릭 선교사들에 의해 이미 복음화되었기 때문이었다.

바니페이스는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그의 뒤에 군대의 힘이 필요한 것을 깨닫고 722년에 투린지아에서 물러나 카알 마르텔의 군대를 요청한다. 그는 선교사역이 군대의 힘을 배경으로 할 때에 훨씬 더 효과적이고 영적으로 강해지는 것을 배운 것이다.

3. 로마 카톨릭 독재자들의 원형 - 샤를마뉴

샤를마뉴(768-814)는 모든 로마 카톨릭 독재자들[탤리랜드(Talleyrand), 프랑코, 히틀러, 카스트로, 바티스타, 알랜드, 교황 레오, 레닌, 무솔리니, 교황 바니페이스, 메테르니히, 나폴레옹 등등]의 위대한 원형이다. 샤를마뉴는 나폴레옹, 교황 어번, 교황 그레고리, 헨리 8세 처럼 반(反)교회사의 영역에 속한다. 그는 아무런 성경적 기독교 신앙의 표시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샤를마뉴 생애 최고의 야망은 주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었다. 그의 최대 목표는 성경예언(계 11-13장, 19장)을 전복하고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 없이 그리스도인의 신정정치를 세우는 것이었따(칼빈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는 생애를 통해 50회 이상의 군사 출동을 하여 (이중 단 한번도 출애굽기에서 민수기에 이르는 이스라엘의 싸움처럼 하나님이 인도하신 적이 없었다) 롬바르드, 아키타니안즈, 투린지안스, 바바리안즈, 데인즈, 슬라브스, 사라센, 그릭, 색슨 등과 싸웠다. 이것은 국제연합처럼 유럽의 튜튼족과 라틴족을 모두 한데 모아 그와 로마 카톨릭 교황 밑에 두려는 의도에서 행해진 싸움들이었다.

예를 들면 774년 하드리안 교황이 북이태리 롬바르드인들 가운데 살고 있는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때문에 위협받고 있을 때, 샤를마뉴는 알프스를 넘어와서 그를 도왔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그가 781년에 다시 로마를 방문했을 때 교황은 그를 "이태리 왕"으로 임명하였다. 796년에 세번째로 방문했을 때에는 하드리안 교황이 그의 생일 선물로 성 베드로의 무덤 열쇠를 선사했다. 그러나 사실상 베드로의 무덤은 예루살렘에서 발견되었던 것이다.

이런 배경으로 교황은 그에게 금면류관을 수여했는데(800) 이 때에 카톨릭 교회는 "하나님이 샤를마뉴 카이사에게 왕관을 수여했다"고 찬미했다. 그 후 그는 프랑스로 돌아가는 길에 그의 지배 아래 있는 모든 지도자에게 자기를 "카이사"로 숭배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샤를마뉴에게 왕관을 수여한 교황도 결국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로마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수여하신 것처럼 떠받들어졌다. 카톨릭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이 때부터 국가(천국)와 교회(하나님의 나라)는 함께 "주의 나라를 확장해 가지만", 교회가 승리자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

그 이유는 로마교회의 머리인 교황은 하나님으로 인정되는 반면, 국가의 통치자는 단지 카이사에 그치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 아래 있는 카이사는 정치적 왕국(천국)의 머리이지만 분명히 하나님 나라에 예속된 것이다.

콘스탄틴 아래서는 교황이 반 카톨릭파들을 죽이도록 군대를 요청하는 형편이었고 기껏 로마의 대주교 정도의 직분이었으나, 샤를마뉴 아래서는 교황이 유럽의 군대를 요구할 수 있었고 게다가 대주교에서 하나님의 자리까지 올라가는 특권을 누렸다.

4. 교황이 왕들의 통치자가 되다.

이런 관계가 형성되고 나니 이후의 교황들은 각 나라의 왕들을 마음대로 선임하는데다가, 협력하지 않는 왕이 있으면 서슴없이 그 자리를 박탈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하였다. 따라서 800년 이후 로마 카톨릭 교황은 유럽 국가들을 지배하는 최고의 정치지도자로 기반을 확고히 한 셈이다. 이것은 성경의 기준에서 볼 때(계 13:1-19) 이 세상을 미혹할 적그리스도의 유형을 보여 주는 것이다(살후 2:1-9).

교황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의 직분을 취함으로써(요 17:11) 그는 카톨릭 교회에서 하나님 아버지로 숭배되고(단 11:37) 국왕들의 통치자로 군림한다. 이 때부터 로마 교황에 복종하고 로마 카톨릭 노선에 따르도록 자기 백성을 인도하는 국왕들은 훌륭한 통치자로 인식되고 반면에 로마교회의 교리나 가르침, 규율, 성사들, 신부들, 종교회의들에 반대하도록 허락하는 국왕들은 악한 통치자로 여겨지게 된다.

선과 악의 기준이 더 이상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 것이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800년부터 선과 악에 대한 성경의 기준을 그들 교회의 기준으로 대체시켰다. 참으로 이렇게 암흑시대의 "주의 나라"는 확장되어 갔던 것이다.

 

11. 암흑시대의 두 세력

제수이트(the Jesuit) 신학에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원리는 로마 카톨릭 교회를 수호하는데 유용하게 적용되었다. 즉 그들은 마태복음 16:16-18을 잘못 해석하여 교회를 유지하고 주의 나라를 확장하는데 있어서 무력수단을 동원하거나 상황에 따라서 교회의 입장을 바꾸어 타협하였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믿음이나 기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다. 또한 그들은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 심지어 영적 문제들을 대하는 데 있어서 "연합"과 "권력"을 최대의 관심사로 두었다.

두아티라 기간(500-1000)에 국왕들과 결탁하여 전 유럽을 암흑시대로 몰아넣은 로마 카톨릭의 독단적인 권위에 맞서는 두 세력이 있었다. 두 세력 모두 모든 시대에 걸쳐 어떤 나라나 어떤 계층의 사람들에게나 가장 큰 관심사인 "무엇이 절대권위인가"라는 문제에 연과되어 있다.

1. 모슬렘

한 세력은 코란을 들고 나온 모슬렘과 사라센인들로, 그들은 자기들의 경전을 믿음과 행위의 모든 일에 대해서 절대권위로 인정하였다. 코란은 마호멧(A.D.570-632)이 만든 것으로 동방 세계의 성경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코란은 영감이 담긴 책으로 볼 수 없는 네 가지의 취약점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코란은 구약성경에 계시되지 않은 내용에 대해서는 어떤 예언도 회피하고 있다. 즉 마호멧은 자신을 "선지자"로 칭했으며 '자신 외에 다른 선지나는 없다"고 하였으나, 그의 시대를 넘어서 다니엘이나 이사야 및 구약 선지자들이 언급하지 않은 역사적 사실들에 관하여 단 한 마디의 예언도 담지 못했다.

2. 코란이 한 사람의 저자에 의해서 약 30년에 걸쳐 완성된 반면, 성경은 스물 네 명의 기자가 2천 년에 걸쳐서 기록하여 완성되었다.

3. 코란에 따르면 구원의 조건은 전쟁에서 유대인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는 것이다.

4. 코란에 따르면 사람은 죄사함 받기 위해 그리스도의 희생이 필요하지 않은데 이는 그리스도가 흘린 피는 대속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코란의 교리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심지어 십자가에서 죽지도 않았으며 로마 카톨릭이 숭배하는 마리아와 함께 휴거된 것으로 되어 있다.

모슬렘 교도들의 구원은 (모든 카톨릭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금식, 기도, 포시(布施) 등의 행위에 근거한다. 반면 일부다처제와 노예제도는 모슬렘 종교에서 묵인되었다. 그럼에도 20세기의 모든 로마 카톨릭 교황들은 모슬렘교도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요 1:12)이라고 하였는데, 참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아버지되심과 인간의 형제됨"(Fatherhood of God & Brotherhood of Man)을 믿는 사회주의자들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1980년대의 바티칸의 속임수는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이런 "형제들"과 교제하도록 방안을 모색한 것이다. 이러한 계략은 암흑시대의 교황들도 즐겨 사용하던 것으로, 그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거듭나지 않은 신자들과 이민족들, 바이킹들과의 "타협"을 모색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연합은 성경의 진리나 건전한 교리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이념이었기 때문이다.

마호멧이 죽은 뒤(632) 그의 종교는 유혈을 빚으며 확립된다. 모슬렘 교도들은 그와 그의 계승자인 아부 바크르(Abu Bakr)의 영도 아래 15년 동안 시리아, 팔레스타인, 크레타, 싸이프러스, 로데, 아르메니아와 이집트를 정복한다. 697년에 카르타고를 점령하고 북아프리카에서 스페인으로 진격하여 서고트족을 무찌른다. 모슬렘교도들은 스페인 전역을 정복해 가다가 732년 투르즈 전투(Battle of Tours)에서 교황 지지자인 카알 마르텔에게 격퇴당한다. 모슬렘 교도들은 시실리와 이태리를 정복하고 로마로 진격한다(846). 이들이 이태리에서 완전히 물러나게 되는 것은 915년으로, 안티옥이나 예루살렘, 두로, 시돈 등지의 로마 교황의 영향 아래 있는 "거룩한" 도시들, 유물들, 건물들은 모슬렘의 수중에 들어갔다.

그리고 교황 어번 2세는 이 지역을 회복하기 위하여 유럽의 고귀한 500,000명의 젊은 목숨들을 앗아간 전쟁, 즉 "십자군 전쟁"을 일으켰던 것이다.

2. 콘스탄티노플 - 동방교회

로마교회의 권위에 맞선 두번째 세력은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였다. 콘스탄티노플과 로마의 대주교들은 오랫동안의 세력 다툼으로 앙숙지간이었다. 800년 경에 이 두 교회는 완전히 세속회되어 싸움은 정치적인 경향으로 흐르는데, 어느 쪽이 더 성경적이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누가 더 많은 권력을 가졌는가가 이슈였던 것이다. 이렇게 두 교회는 성경적인 노선을 떠났으며 오히려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이교도 의식을 수용하며 세상과 타협하였다.

물론 콘스탄티노플의 동방교회가 로마교회보다는 비교적 성경적인 면이 강하였는데, 그 이유는 콘스탄티노플이 위치상으로 시리아 안티옥과 가깝고 로마보다 더 잘 보존된 성경 사본들이 많았으며, 크리소스톰과 같은 성경적인 설교자들도 많았고 로마 주교의 정치권력에 비할 때 콘스탄티노플의 주교는 그렇게 강력한 정치 권력을 행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로마와 콘스탄티노플 두 교회는 아래 항목들에 동의하였다.

1. 우상숭배를 허용한다(787). 양쪽 교회의 위선자들은 우상숭배를 "예배를 위한 도구"나 "존경받는 사람들의 기념물"이라는 이름으로 가장하였다.

2. 성경과 교회 전통을 동등한 두 개의 절대 권위로 인정한다.

3. 죽은 성도들이나 그들의 초상을 숭배한다.

4. 구원은 믿음과 행위로 이루어진다.

5. 침례로써 거듭난다는 교리를 공식화하며, 성직자는 신성한 권위를 가지고 죄를 사해 준다.

결국 88년 경에 로마 카톨릭 교회와 동방 정교회는 신약성경에 계시된 모든 기준에서 봤을 때 첫째가는 이교도 우상 숭배자들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두 교회가 일치하지 않은 사항들도 있었다.

1. "성(聖) 변화의 교리"(밀주와 빵을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속이는)가 동방교회에서는 로마처럼 그렇게 명백하지 않았다(800). 연옥에 대한 교리도 마찬가지이다.

2. 동방교회의 어떤 주교도 로마 주교의 무과실성이나 하나님의 권위를 주장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동방교회는 로마나 콘스탄티노플, 안티옥, 알렉산드리아, 그리고 예루살렘의 대주교들이 모두 동등하다도 여겼던 것이다.

3. 동방교회는 마리아가 죄없이 태어났다고 믿지 않았다. 즉 로마교회가 주장하는 마리아의 "무염시태"(無染始胎, Immaculate Conception)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동방교회와 로마교회는 계속해서 불편한 관계로 역사 속에서 각축을 벌여 왔다. 로마교회는 2차 세계대전에서 카톨릭 합스부르크 왕가를 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복귀시키려는 계획이 실패하자 동방 정교회 세력 하에 발칸지역의 동부유럽을 단념했다. 대신 공산국가에 접근하여[두 공산주의자 교황인 지우세삐 론칼리(Giuseppe Loncalli)와 지오반니 몬티니(Giuvanni Montini)의 공작으로] 소련의 지원을 받아 UN으로의 진출을 시도했다.

또한 로마교회는 그들의 통합과 권력을 유지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세력과도 서슴없이 타협했다. 그래서 교황 바오로 6세는 1977년 1월에 로마의 시스틴 예배당에서 동방 정교회 대주교의 발 밑에 엎드렸는데 그로 하여금 자기를 성인으로 인정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들 둘 다 공산당의 세력하에 있었던 것이다.

 

12. 보고마일즈와 왈덴파 그리스도인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살인을 자행한 무리들에게 순교당한 그리스도인들

A.D.1000년 경에 이르러 교회사의 두아티라 기간(500-1000)이 끝난다. 이어서 사데 기간(1000-1500)이 전개되는데 이 기간은 암흑시대 후반부로 로마 카톨릭이 정치적(국가적)으로 종교적(교회적)으로 전 유럽을 지배하는 전성기이다. 로마 교회는 샤를마뉴 대제에게 왕관을 수여한 이후로(800) 국왕들을 시녀로 삼아 정치적인 권력을 누리면서, 종교적으로는 그들의 교회 전통에 일치하지 않는 모든 반 카톨릭 분자들을 "이단"이나 마법을 행하는 "마녀"로 몰아서 종교재판소를 통하여 고문, 투옥, 화형 등의 박해를 자행하였다.

이렇게 로마 교회의 독재 아래서 억압받던 유럽은 1000-1200년에 걸쳐 십자군 전쟁을 벌인다. 1095년에 교황 어번은 예루살렘 성지 순례자들을 모슬렘의 간섭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클레몬트 종교회의를 소집하여 이 전쟁을 제창했다. 하지만 십자군 전쟁의 결과는 오히려 교황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각 국왕들로 하여금 그 독재의 권위에서 벗어나도록 작용하였다.

성지 수호의 명분 아래 부와 명예를 기대하고 십자군 전쟁에 참가한 많은 제후들과 기사들은 1099년 처음 파병된 십자군 외에는 전부 실패하였던 것이다. 동방 문물과의 접촉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자신들(신본주의)보다도 이교도의 신이 주관하는 동방세계(인본주의)의 문화 수준이 더 높다는 사실에 눈뜨게 함으로써 교황의 독재적인 신적 권위에 대한 거부감을 낳게 하였다. 그리하여 국왕들은 정치, 경제적으로 교황의 간섭에서 벗어나 독립하려 하였고, 종교적으로는 성경적인 기독교 신앙의 맥을 계승한 반 카톨릭 그리스도인들의 끊임없는 반발 속에서 로마 교회는 극도로 부패하고 타락해 가다가 결국 사데 기간의 끝에 이르러서는 종교개혁에 직면하고 만다.

사데 기간에도 여전히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는데, 먼저 보고마일즈(Bogomil -es)를 살펴보자. 보고마일즈는 소아시아에서 나왔으며 불가리아로 이동하였는데 이들의 선진은 6,7세기 경에 같은 지역에서 나왔던 폴리시안즈(Paulicians)이다. 보고마일즈는 카톨릭의 "미사"가 사탄에게 경배하는 의식이고, 성경을 거부하는 "신부들"(Fathers)은 거짓 교사들이며, 카톨릭 체제는 사탄적이라고 주장했고, 무엇보다도 유아세례를 거부하였다.

이들은 북이태리에서는 카타리(Cathari)로, 남프랑스에서는 알비겐시즈(Albigenses)로, 그리고 발칸지역에서는 불가리안즈(Bulgarians)로 불렸다.

마리아 숭배를 거부하고, 유아세례나 십자가,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 등의 비성경적인 의식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로마 교회는 이들을 산 채로 불태워 죽이며 탄압하였다. 1022년 열 다섯 명의 보고마일즈 그리스도인들이 심문을 받고 그 중 열세 명이 말뚝에 묶여 불에 태워졌다. 1145년에는 여덟 명의 형제와 세 명의 자매가 꼴로뉴에서 화형당하였다.

십자군 전쟁 기간에 유럽에는 4백만 가량의 카타리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일찌기 노바티안즈, 도나티스트, 그리고 파테리네즈 그리스도인들이 활동했던 남프랑스 지역에서는 카톨릭 신부들이 이들의 조소의 대상이었다. 카타리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가 성경적인 참된 교회가 아니라고 가르쳤는데, 이것은 프란시스회, 도미니크회, 어거스틴회, 그리고 예수회의 선교사들이 중국, 일본, 인디아 등지에서 하는 사역들은 "참된 믿음"과 아무 관계가 없음을 뜻하기도 했다.

이 암흑시대에 카타리의 가르침은 두 가지의 기본적인 진리에 근거하였다. 첫째, 교황은 적그리스도이고(마 24장; 요일 4장; 요 5:43), 둘째, 로마 카톨릭 교회는 계시록 17장의 창녀라는 것이었다. 카타리(보고마일즈)는 신부들의 제의나 제단, 십자가를 부인하였으며 십자가는 짐승의 표라고 불렀고, 교황의 면죄(免罪)나 연옥의 교리 등을 일체 신뢰하지 않았다.

그 다음에 또 유명한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왈덴파(Waldenses)였다. 이들은 카톨릭 교회로부 온전히 성별되어 살았는데 암흑시대의 가장 엄격한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었다. 이들 역시 소아시아에서 발생하여 남프랑스로 이동하였고 더 나아가 삐에드몽, 오스트리아, 독일로 퍼져나갔다. 이들은 교황 알렉산더 3세에게 노방에서 설교하게 해 달라고 청원하였고, 자신들이 구 라틴 역본에서 번역한 성경 사본 한 권을 그에게 보냈다. 그러나 그들의 청원은 거부되었고, 그들의 성경도 불태워 없애라는 지시가 내려졌으며, 80명의 설교자들이 스트라스부르그에서 말뚝에 묶여 화형당하였다(1212).

왈덴파 그리스도인들은 신앙과 행위의 모든 일에 대해서 성경을 최종권위로 인식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성경을 보급하였다. 교황, 추기경, 주교, 신부들은 그들의 가르침을 따라 살기를 거부하였고 그들을 무시하였다. 왈덴파 그리스도인들에 따르면 평신도도 성경을 설교할 수 있고, 모든 평신도는 거듭난 성인 그리스도인에게 침례를 베풀 수 있다(유아세례는 배격).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완성하신 구속사역으로 인한 그리스도인의 구원의 영원한 보장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가르쳤다. 즉 이들은 루터나 칼빈이 태어나기 3백년 전에 유럽 전역에서 활동했던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었던 것이다.

왈덴파 그리스도인들은 서른여섯 번의 박해를 받았는데 몽포르의 시몬이 이끈 십자군 원정 때 받은 박해가 가장 심했다. 이들은 한겨울에 집에서 쫓겨나 산꼭대기나 황량한 벌판으로 내몰려 굶어 죽거나 얼어 죽는가 하면, 높은 절벽에서 떠밀려 몸이 부서지고, 어떤 이들은 동굴 속에 갇힌 채 굴 입구에서 피운 장작 연기에 질식당하기도 하였다. 노인들과 갓난 아기들과 어린 아이들을 무자비하게 목매달거나 몸을 쪼개서 내장이 나오게 하고, 쇠고랑으로 찌르며, 물에 빠뜨려 죽이고, 칼로 찌르며, 개들에게 갈갈이 찢겨서 죽게 하고, 십자가에 거꾸로 못밧아 죽였다.

알비겐시즈(Albigenses)는 노바티안즈나 아리안, 도나티스트 및 로마 북부에서 롬바르디를 거쳐 남프랑스에까지 이르러 "이단"시된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자손이었다. 1119년에 뚤루즈에서부터 시작된 일단의 종교회의들에서 이 이단들에 대한 논의가 제기되었고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의 힘이 요청되었다. 이노센트 3세는 성경대로 믿는다는 이 분리주의자들을 이교도들(사라센, 모슬렘, 투르트족)보다 더 나쁜 존재로 인식하였는데, 그 이유는 자기 세력권(유럽)에서 카톨릭 교회의 단합을 위협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십자군" 원정 네 팀을 지원하여 알비겐시즈 그리스도인들을 탄합하도록 하였다. 이노센트 3세는 루이 7세와 레이몽 6세에게 자신을 돕도록 요청하였다. 시스터시안(the Cistercian) 수도회도 교황의 지시에 부응하여 프랑스, 플랑드르, 독일 전역을 다니면서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죽이기 위해 필요한 군대의 출동을 주장하였다. 이 살인 조직에 동참하는 모든 지원자들에게는 모슬렘을 격퇴하기 위해 십자군에 참가한 자들과 동일한 보상이 약속되었다(이를테면 죄사함과 영생 등).

1209년 7월 카톨릭 군대가 베지에스(Beziers)를 공격하여 60,000명의 그리스도인들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학살하였다. 프랑스의 까르까손느(Carcassonne)에서는 모든 주민이 입고 있던 옷 외에는 아무것도 갖지 못한 채 마을에서 쫓겨났다. 미네르보(Minervo)에서는 만 사천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귀와 코, 입술이 잘려진 채 불 속에서 죽어갔다. 교황 그레고리 4세는 브레멘과 올덴버그 근처의 알비겐시즈보다 더 많은 수십만 명의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려고 독일 군대를 출동시켰다.

 

13. 종교 재판소

고문이나 화형, 목베는 것 등은 사데기간에 로마 카톨릭 교회의 일반화된 정죄 방법이 되어 버렸다. 로마 교회는 왕가나 귀족이나 할 것없이 그들의 부를 빼앗고 싶을 때는 마법을 행한다고 고발하여 투옥시켜 고문하여 죽여버렸다.

"마녀"는 로마 카톨릭 신앙에서 각 나라의 정치 경제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그들의 성직자제도에 불만을 가진 모든 사람이다. 따라서 이단으로 정죄되는 것은 종교적인 문제에 관련된 어떤 교리상의 마찰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 교회에 돈을 기부하지 않았다든지 내각에 간섭할 스파이를 묵인하지 않았을 때에도 빈번히 행해졌다.

요한 22세, 어거스틴, 레오 13세, 버나드 가이(Bernard Guy)의 "심문 조서"(The Interroga -tory, 1320), 볼로나와 아비뇽의 교수였던 올라두스(Olradus, 1325), 알렉산더 4세(1258-1260)와 파리 대학(1378)은 모두 신부들과 주교들을 도와서 수많은 반 카톨릭파들을 단기간에 죽게 하였다.

이렇게 사데 기간에 고문과 화형의 핍박을 자행한 종교 재판소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성" 도미니크가 이 사탄적이고 반 교회적인 기관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로마 교회는 500,000명의 군대를 동원하였어도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유럽에서 완전히 소탕되지 않은 것을 알고 도미니크를 임명하여 이 일을 마무리짓도록 하였다. 교황 알렉산더 4세(1254)는 이태리에 한 종교 재판소를 설치하고 그의 백성들을 독려하였다. 교황 어번 4세(1262)는 조서를 내려서 종교 재판소 관리들은 이단들을 근절하여 "주의 포도나무"가 "순수한 카톨릭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그는 자기 "포도나무"를 알지 못했다(신 32:31,32).

대량 학살(Genocide)은 히틀러와 나찌당의 아이디어가 아니었으며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황이 내린 공식 교리이다. 클레멘트 4세(1311)는 말하기를 주교에게는 항상 이단을 색출하기 위해서 고문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하였다.

종교 재판소는 독창적인 카톨릭 기관으로 로마 카톨릭의 신앙과 행위에 역행하는 유럽의 모든 사람을 말살할 목적으로 세워졌다. 이것은 프랑스, 밀라노, 제네바, 아라곤, 그리고 사르디니아에서 폴란드까지(14세기), 그리고 다시 니헤미아에서 로마까지(1543) 퍼져나간다. 스페인에서는 1820년까지 존속했었다. 사데 기간 만큼 로마 교회가 그 신념들을 주장하는 데 아무런 제약없이 무제한의 권력을 행사한 때가 없었다. 종교 재판소는 오리겐, 파피아스, 시프리안, 클레멘트, 유세비우스, 어거스틴과 교황들이 가르친 반 교회사의 진화적이고 논리적인 발전의 결과이기도 한데, 500-1400년 사이의 "기독교의 성장과 발전"은 "그 열매를 보아 알 수 있듯이" 타락과 악의 팽창뿐이었다.

종교 재판소는 1229년, 1233년, 1234년에 절정을 이룬다. 이 카톨릭 도살장은 13세기를 거쳐 14세기 말에도 그 살인과 약탈, 고문을 멈추지 않으며 15세기에서 16세기까지 지속된다. 이를테면 17세기에(1641) 아일랜드의 카톨릭은 10월 23일(이그나티우스 로욜라 기념일)을 그리스도인들 학살의 날로 정하여 하루에 150,000명을 죽였다.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땅에 목만 내놓고 매장된 채로 굶어 죽었다. 어떤 사람은 몸이 찢어져서 유혈이 낭자한 몰골로 미사에 끌려갔다. 한 사람은 톱으로 켜져서 몸이 둘로 쪼개지고 그의 부인은 목청이 잘려 나갔고, 그의 어린 아들은 골이 깨어져 버렸는데 그 시체가 돼지 우리에 던져졌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허리에 줄을 묶어 말이 시궁창을 달리는 동안 질질 끌려 다니다가 죽기도 하였다. 수천 명이 팔과 손, 다리를 잘렸으며 그 상태로 피를 흘리며 죽어갔고, 티로네(Tyrone) 지방에서는 하루에 삼백 명이나 물에 빠뜨려 죽게했고, 오륙십 명이 한 집에 감금된 채 불에 타 죽어야 했다.

1655년 1월 25일 교황 클레멘트 8세의 재임 기간에 무장한 폭도들은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사는 삐에드몽으로 갔다. 지오반니 앙드레 미샬렝(Giovanni Andrea Michialine)은 그의 앞에서 세 아들이 칼에 베임당하는 것을 보아야 했는데, 한 폭도가 그의 넷째 아들 다리를 잡고 벽에 내동댕이쳐 머리가 깨졌다. 카톨릭 폭도들은 열살먹은 소녀를 나무 곳간에 몰아놓고 불을 피워 그녀를 불에 달군 후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죽였다. 지오반니 로스타그날(Giovanni Rostagnal)은 80세의 노인인데 코와 귀를 잘랐고 숨이 끊어질 때까지 그의 몸에서 살점을 베어내었다.

야콥 비로네(Jacob Birone)는 학교 선생님이었는데 벌거벗겨서 뜨겁게 달군 족집게로 그의 손톱과 발톱을 뽑고는 허리에 줄을 묶어 양쪽에서 두 폭도가 거리에 끌고다니는 바람에 몸에는 깊은 상처가 나고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다. 그 둘은 매 순간 그에게 "자 이래도 미사를 드리지 않겠는가?"하고 물었는데, 그는 모든 폴리시안즈나 보고마일즈가 믿었듯이 "미사"는 마귀에게 속한 것임을 믿고 있었다. 그들은 그의 목을 베었고 시신은 강에 던져버렸다. 야콥 로제노(Jacob Roseno)는 성인들에게 기도해보라는 강요를 받았으나 어떤 마니케안도 불가리안도 또 소위 다른 "이단들"도 그런 가증스런 일을(딤전 2;5) 하지 않았기에 카톨릭 폭도들은 그를 심하게 매질하고 여러발의 총알을 쏘아댔다. 그의 숨이 끊어지는 순간에 그들은 또 "성인들에게 기도해라!"하고 악을 썼으나 그의 대답은 "No"였다. 그들은 그의 목을 칼로 끊어버렸다.

카톨릭 폭도들은 야균도 미살리노(Jacopo Michalino)라는 종의 생식기를 떼어냈는데 그 떼어낸 부분의 출혈을 막는다고 불을 켠 양초를 갖다댔다. 그 다음에는 족집게로 손톱, 발톱을 뽑고 끈으로 그의 머리를 묶어 조였는데 어찌나 조여 맺는지 눈알과 골이 빠져나왔다.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카톨릭 마피아단(수도승들, 신부들, 주교들, 교황들)이 종교 재판을 통하여 자행한 온갖 고문과 살인은 끔찍하기 짝이 없다. 이를테면 희생자들에게 끓는 기름과 타르를 붓는 것, 뼈의 관절들을 잡아늘이는 것, 발바닥을 막대기로 휘갈기는 것, 창자를 빼서 그걸로 사람을 끌고다니는 것, 창으로 여자를 가랑이에서 목까지 쑤시는 것, 이마를 쇠사슬로 조여서 눈이 빠져나오게 하는 것, 인두로 여자의 앞 가슴이나 남자의 생식기를 지지는 것, 가위로 여자의 앞가슴을 도려내는 것, 강판으로 살을 긁어 내는 것, 몸을 벌거벗겨 철판에 굽는 것, 엄지 손가락을 죄는 기구 사용, 혀를 끊는 것, 입술과 코, 귀, 손가락, 발가락들을 자르는 것, 뼈를 하나씩 하나씩 부러뜨리는 것, 입 안에 화약을 넣고 불을 붙이는 것, 가죽끈으로 묶어서 산채로 관에 넣어 매장하는 것, 바늘과 철사로 살을 쑤시는 것 등등.

이 지옥의 창녀 교회는 러시아(공산주의 1920-1970)나 독일(나찌즘, 1933-1945)에서도 그 가증스런 범죄를 중단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 교회의 자녀들이(계 17:1-6)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나 "비국교도"인 자들 모두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가르쳤다. 역사가 로렌트(Lorent)는 말하기를 스페인에서는 1480-1498년에 8천명의 그리스도인이 화형당하였고 9만명의 그리스도인이 다른 형벌에 처해졌으며 1499-1506년 사이에는 1600명 이상이 또 1507-1515년에는 2536명이 화형당하였다고 한다. 1524년에는 2만명 이상의 소위 "이단들"이 처벌을 받았고 이들 중 천명 가량이 트리아나 세빌르(Trians Seville)라는 한 도시에서 화형당하였다.

이 엄청난 사탄의 피의 박해 기록에도 불구하고 필립 샤프(Philip Schaff)는 점잖게 말하기를, 우리는 스페인이 사람들을 이렇게 박해하고 나서 힘을 잃은데 대해 또 프로테스탄트가 세계의 주도권을 잡은것에 대해 기뻐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스페인에 대해 "연민을 가져야"한다. 우리는 그들을 "탄핵하기" 보다는 스페인이 다시 주도권을 잡으리라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하였다.

보수적인 견해에 의하면 15세기 동안 로마 카톨릭의 손에 죽임을 당한 반 카톨릭파는 대략 2,500,000으로 보는데, 다울링(Dowling)은 스코트(Scott)의 교회사를 인용하여 프랑스에서 1,000,000명의 왈덴 그리스도인들이 네덜란드에서 36,000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또 스페인 종교 재판소에서 150,000, 그리고 제수이트가 죽인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 900,000명을 언급한다. 이 두 견해를 더하면 A.D. 325년에서 1870년까지 순교자들은 5,000,000명에 이른다

 

14. 종교 개혁의 역사적 의의와 그 문제점

종교개혁 478 주년을 맞이하여(1995년 당시) 지난 10월의 마지막 주간에는 개신교 여러 교단에서 기념행사 및 강연회 그리고 학술 대회를 잇달아 개최하였다. 아직도 스스로를 종교개혁의 후손이라고 내세우며, 부패한 카톨릭을 개혁한 당사자요,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장본인들의 자랑스런 후예라는 사실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또 일부에서는 개혁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미비점을 보완하여 "한국교회"를 개혁해 보고자 하는 결의도 다진 모양이다.

그러나 늘 그러하듯이 교회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을 평가하는데 있어 가장 기준이 되어야 할 최종권위인 성경을 배제한 채 외적인 성과들을 나열하거나 외적인 문제점들을 지적한다는 것은 믿음과 실행의 절대적이고 최종적인 권위로서 성경을 받아들인,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본 글에서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평가하는 종교개혁의 긍정적인 면과 아울러 부정적인 면들을 살펴봄으로써 종교개혁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시도하고자 한다.

1. 개신교와 카톨릭의 입장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의 시발이었던 종교개혁 운동은 오늘날의 개신 교회들에게 있어서는 실로 역사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A.D. 800년 샤를 마뉴가 로마 교황으로부터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 임명된 이래 교권을 확장해 온 로마 카톨릭 교회는 십자군 운동을 통해 절대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대로 종교재판, 면죄부 판매, 교황들의 부도덕한 사생활, 성직자들의 부패 등으로 얼룩진 중세 말기의 로마 카톨릭 교회의 세력에 홀로 대항한 마틴 루터로부터 시발된 종교개혁은 유럽 곳곳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루터교와 개혁교회로 대표되는 종교개혁은 로마 카톨릭 당국의 권위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으며, 그 열매로 종교의 자유를 가져왔고, 성경의 권위를 회복시켰으며, 자본주의 제도를 시도하여 중산층이 생겨남으로써 카톨릭 전체주의의 몰락을 가져왔다. 종교개혁 이후 전세계의 역사는 개신교를 채택한 국가들에 의해 주도되어 왔으며 이들의 선교 열정으로 전세계에 복음이 확산되었다.

종교 개혁에 대한 로마 카톨릭의 평가는 매우 다양하다. 어떤 이들은 종교개혁은 인류 문명에 일어난 가장 무시무시한 재앙이었다고 평가한다. 교황의 추종자들에 따르면 이 세상의 모든 악의 근원은 분열이요, 이 문제는 전세계가 "교황" 아래서 뭉쳐질 때까지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고 한다. 반면 어떤 이들은 "당신들이 우리에게 괴로움을 주었지만 그것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이제는 우리도 계몽되었으니 이해하고 지내자."라고 하면서 "길 잃은 형제들"을 한 우리 안으로 모으려고 한다(에큐메니칼 운동).

루터, 칼빈, 베자, 낙스, 쯔빙글리 등과 같은 개혁자들이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기 시작하자 로마 카톨릭은 이 반역자들을 "참되고 유일한 거룩한 사도 교회"를 전복시키려는 "지옥의 권세들"이라고 간주했고 이 불빛을 꺼버리기 위해 "반동 종교개혁"이라고 부르는 반격을 시도했다.

2.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입장

서구 사회에 암흑시대가 도래한 사건에 대해 대부분의 교회사가들은 (될린져, 뉴만, 샤프, 라가르드, 라토레, 모쉐임) 그 원인을 "게르만족의 침입", "제국의 분열", 그리고 "봉건제도" 등에서 찾으려 한다. 그러나 게르만족의 침입이 멈추었을 때에도 암흑시대는 지속되었고, 십자군 전쟁으로 온 유럽이 단합되었어도 암흑시대는 지속되었다. 따라서 성경적 진리가 사라져 버리고 A.D. 500-1000년 사이를 뒤덮은 영적인 암흑의 책임을 "시대상황"이나 "제도"에다 돌릴 수 없다.

문제의 핵심은 누군가가 성경을(요 17:17) 사람들의 손에서 빼앗아 버린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기록하시고(딤후 3:16) 섭리로 보존하셔서(시 12:6,7) 그리스도인들에게 전수하여 주신 그 성경이 오리겐, 유세비우스, 콘스탄틴 등에 의해 변개되었고 이 변개된 본문은 암흑시대 교황들에 의해 카톨릭의 공식성경이 되고 말았다. 바로 이 변개된 성서가 암흑시대를 초래한 장본인이었다.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 마태복음 19:7의 "이혼증서"란 단어의 헬라어는 "비브리온 아포스타이온"로 "배교한 성서"란 뜻이다. 즉 박해의 늪에서 벗어나 세상과 결혼해 버린 음녀인 로마 카톨릭 교회에게 하나님게서는 이혼증서인 배교한 라틴 벌게이트 성서를 주었고 이에 곧바로 암흑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그런데도 카톨릭 교회와 친카톨릭 개신교 학자들은 콘스탄틴에 의한 기독교 공인을 배교가 아닌 기독교의 승리로 해석한다.)

빛(시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이 사라지고 흑암이 전 유럽을 뒤덮었고 영적인 소경들이 소경을 인도하여 구덩이에 둘 다 빠져버리는 상황이 1000년간 지속되었다. 그러나 오순절 이후부터 오직 성경만을 최종권위로 삼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고 살던 소수의 무리들은 콘스탄틴의 기독교 공인을 배교로 규정하고 카톨릭 교회로부터 성경적 성별을 하였고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그 성경(표준원문, 구라틴 역본 등)을 고수하면서 주님을 증거했다.

또 카톨릭에 의한 박해와 살상으로 전 유럽에 흩어져서 지하운동으로 복음을 전파하고 성경을 보급하던 이들 무리들(몬타니스트, 노바티안, 도나티스트, 네스토리안, 유가이트, 메살린, 폴리시안, 불가리안, 보고밀, 카타리, 왈덴스 등)은 십자군 운동, 흑사병 및 르네상스 등으로 하나님께서 섭리적으로 조성하신 여건들 속에서 1300년부터 1500년까지 대대적인 거리 설교 사역과 팜플렛 사역을 전개하였다. 이들의 노력과 카톨릭 내부에서 발생한 동요로 인해 교황권이 도전받았던 그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전직 신부였던 마틴 루터를 일으켜 세우신 것이다.

우리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암흑시대의 도래가 마귀의 성서(이혼증서)로 비롯된 것처럼 종교개혁 역시 하나님의 성경인 헬라어 표준원문과 이에서 번역된 루터의 독일어 성경, 영어의 <킹제임스 성경>을 비롯한 유럽 각국 언어로 번역된 성경들로부터 시발되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그 원문을 성령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셨고, 그 성경을 사용하셔서 전세계에 영적 부흥을 가져오신 것이다.

3. 종교개혁의 긍정적인 면

앞서 언급했듯이 종교개혁의 첫 번째 성과는 성경대로 믿는 무리들이 보존해 온 헬라어 표준원문이 각 민족의 언어들로 번역되면서 확산된 것이다. 이 헬라어 표준원문은 1600여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영어 번역본인 <킹제임스성경>은 9억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 이 성경으로 교회의 필라델피아 시대가 도래하였고(1500-1900) 이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다(계 3:8).

둘째, 종교개혁의 업적은 종교개혁자들이 공적이든 사적이든 성경을 계속 사용하고 인용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성경공부로 이끌었다는 것이다(딤후 2:15, 마 28:18-20). 종교개혁의 결과 일어난 영적 부흥들은 낙스, 베자, 멜랑히톤, 루터 등의 전통 교리 덕분이기보다는 오히려 성경 읽기와 성경 읽기에 대한 신뢰에 있어 그들이 보여준 태도 덕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종교개혁의 결과 전세계적인 조직을 갖고 있는 외국의 독재자(바티칸 교황)가 더이상 각 나라들의 그리스도인들을 통제하지 못하게끔 되었다는 사실이다. 카톨릭 교회는 반동 종교개혁과 30년 전쟁 및 왕위 계승 전쟁을 통해 실지회복을 노렸으나 변개된 성서들이 (1881년 이후) 나오기까지는 그 권세가 위축되었다.

넷째, 성경의 권위(시 138:2)와 성도들의 제사장직(벧전 1:9)에 대한 강조로 인해 로마의 권위들(교황, 사제, 전통 등)이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었다.

다섯째, 자본주의제도의 도입으로(마 26:15, 행 5:4) 제 3의 계급인 중산층이 생겨나서 카톨릭과 공산주의 및 파시스트와 같은 전체주의 체제를 세우고자 하는 선동가들에 대해 완충역할을 담당했다. 개신교가 우세한 나라들은 이제껏 공산주의나 파시스트 같은 전체주의에 미혹당하지 않았다(히틀러의 독일의 경우는 1850년 쯤에는 루터교가 거의 카톨릭화했기 때문이다).

여섯째, 개혁자들은 설교를 부흥시켰고 이 설교를 통해 곳곳에서 도덕적인 개혁이 이루어졌다.

성경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여섯 가지 사실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신약 지역 교회들의 행적을 묘사한 것임을 단번에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행 2:41-47을 참조할 것). 이외에도 종교개혁의 열매로 메노파, 둥크파, 모라비안 및 아미파 등이 등장하여 복음주의 운동이 확산되기도 하였다.

4. 종교개혁의 부정적인 면

이와 같은 긍정적인 열매들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자들은 로마 카톨릭의 유산을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었다.

첫째, 유아세례를 인정함으로써 침례에 의한 중생 교리를 지지하고 말았다. 마음을 다하여 침례를 받을 수 있다는 것(행 8:37, 이 구절은 <킹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성서들에는 삭제되어 있음)이 성경적 교리인데도 불구하고 선악간의 구별도 하지 못하여 믿음을 행사할 수 없는 유아에게 세례를 주는 것을 택함받은 자의 표적으로 이해하고 있던 개혁자들은 침례가 곧 중생이라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거짓 교리를 완전히 떨쳐 버리지 못했다. 심지어 개혁주의자들은 그들이 내세우는 언약신학에서 구약의 할례가 신약의 유아세례로 대체되었다고 함으로써 예정론을 옹호하기도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대속에 의해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외쳤던 마틴 루터마저도 이 유아세례의 누룩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 오늘날도 대부분의 개신 교단의 헌법에는 세례가 죄씻음과 연관되어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이외에 죄인들의 죄를 씻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계 1:5). 베드로전서 3:21에도 침례는 육체의 더러움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응답일 뿐이라고 정의내려져 있다.

그런데도 물뿌림이 죄씻음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로마 카톨릭이 집어넣은 맹독성 누룩에서 개혁자들이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둘째, 개혁자들이 로마 카톨릭의 치명적인 누룩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은 이들 역시 국가교회를 세웠다는 것을 보아서 알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돌아오셔서 천년왕국을 통치하시기까지는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카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분명히 구분하셨다. 그런데도 콘스탄틴이 국가교회를 세운 이래 로마 카톨릭에 의해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국가교회가 개혁자들에 의해서도 버젓이 세워지고 말았다(독일 스웨덴 등지의 루터 교회, 스코틀랜드 화란 등지의 개혁교회, 혹은 장로교회, 칼빈에 의한 스위스 제네바의 신정통치, 영국의 성공회 등).

교회사를 통해 볼 때 루터, 칼빈, 쯔빙글리 등은 정치적, 종교적 대적들을 다루는데 있어 믿음으로 살려고 하지 않았다(롬 1:17). 그들 모두 정부의 주도 하에 군대의 보호를 받음으로써 "징세"를 면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분명한 믿음의 고백이 없이 태어나면 자동적으로 국가 교회의 회원이 되는 제도하에서는 믿지 않는 자들과의 성별이 있을 수 없게 되며(고전 6장) 이로써 교회의 순수성은 사라지고 말았다. 미국은 국가와 종교와의 엄격한 분리라는 침례교 원칙에 입각하여 세워진 역사상 유일한 나라로서, 종교의 자유는 물론 교회의 순수성을 지킬 수 있었던 모범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유아세례와 국가교회라는 두 가지 사악한 교리는 시프리안과 어거스틴이 심어놓은 것으로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 로마 카톨릭의 교리를 완전히 내버리지 못한 성도들의 삶에 늘쌍 썩은 열매를 맺어오고 있다. 반면 노바티안, 도나티스트, 폴리시안, 보고밀, 알비겐스, 왈덴시안들을 선조로 두고 있었던 침례교도들은 로마 카톨릭과의 단절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이들은 처음부터 믿음을 고백하는 성인들에 대한 침수에 의한 침례와 교회와 국가의 엄격한 분리라고 하는 독립침례교회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침례교도들과 재침례교도들에 가해진 가혹행위(칼빈은 세르베투스가 자신의 교리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그를 화형에 처하도록 했다. 쯔빙글리 역시 칼빈에 동조했다.), 농민혁명 및 과격한 폭동 등과 같이 성경적으로 합당하지 못한 부작용들이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5. 맺는 말

루터와 칼빈으로 대변되는 종교개혁은 많은 사람이 지적한 대로 아무것도 개혁하지 못한 채 혁명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하나님이나 성경에 의해서도 개혁되지 못했으며 끊임없는 개혁의 요구에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 종교개혁자들의 "업적"은 신약교회를 초대 교회의 원래 모습으로 회복시켰다던가 이 교회로 영적 기능을 다하도록 만들었다기 보다는 올바른 성경의 선택과(루터, 칼빈, 쯔빙글리, 베자 등을 비롯한 모든 개혁자들은 카톨릭 성서를 버리고 표준원문을 택하는 분별력을 갖고 있었다.) 이 성경을 읽고 사용하는 모범을 보임으로써 성경공부를 활성화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종교개혁이 이루어낸 가장 중요한 업적은 로마 교회를 분열시켜 국가교회를 만든 것도 아니고 성도들의 제사장 직분을 강조한 것도 아니고 공공교육과 자본주의를 고무시킨 것도 아니다. (앞서 지적했듯이 이 모두가 종교개혁의 성과임은 물론이다.).

종교개혁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신약 지역교회들이 전세계적으로 표준원문을 사용하도록 만든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종교개혁과 더불어 사탄의 신부가 쓰던 성서는 전세계적으로 내팽개쳐졌다. 이 부패한 성서가 버려지자 암흑시대는 끝났고 참된 그리스도의 신부(솔 6:9)는 강렬하게 빛나기 시작했다(창 1:18).

안타까운 일은 하나님께서 되찾아 주신 그 성경이 오늘날 개혁자들의 후손들에 의해 다시 내팽겨쳐지고 그 대신 개혁자들이 내던졌던 그 부패한 "이혼증서"가 다시 그들의 손에 들려져 있다는 것이다(한글개역성경, 표준새번역, 현대인의 성서, 공동번역, NIV, NASV, Living Bible을 비롯한 모든 성서들).

종교개혁의 후손들이여! 하나님께서 주신 그 성경으로 다시 돌아가서 그 말씀을 공부하여(딤후 2:15) 부끄럽지 않은 일꾼이 되도록 하자.

 

15. 종교 개혁과 참 기독교 신앙

금년은(1995년) 마틴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그(Wittenberg) 카톨릭 성당 대문에 95개 조항의 비리와 부패 사항을 못박은지 만 478년이 되는 해이다. 당시 세상은 완전히 카톨릭 교회의 지배하에 있어 정치와 사회 체계가 교회 국가(Church-State) 형태 속에 있었다.

자연히 교황과 그의 체제는 막강한 권세를 누리며 아무도 그를 대적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이었다. 그런 시대적 상황에서 그들의 부정과 부패는 한계를 넘은 지 오래 되었고 어떤 수술로도 치유가 불가능할 때였는데 마틴 루터가 그들의 부정을 공개적으로 지적하고 대적하였던 것이다. 한 마디로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성령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은 담대함이 그 특징이다. 이런 행동은 중국 공산주의 정권에 대항했던 천안문의 중국 청년들의 용기보다 더 강렬한 용기였다. 이승만 독재에 항거했던 이 나라의 청년들, 박정희 유신정권에 항거했던 젊은이들,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에 저항했던 이 땅의 젊은이들보다 훨씬 용기 있는 일이었다. 루터는 자신이 한 알의 썩은 밀알이 되겠다는 신념과 주님만을 의뢰하는 믿음으로 거대한 붉은 용에게 대항했던 것이다.

그때 이후로 478년 동안 성경의 진리는 얼마만큼 확산되어 뿌리가 내렸으며 개신 교회들은 그 진리를 얼마만큼 실행하고 있는가? 오늘날 이 나라 개신 교회들은 성경대로 실행하는 지역교회라고 자부할 수 있는가? 만일 없다면 그 무엇이 문제인가? 생각을 지닌 교역자들은 개혁을 자주 외치고 있는데 그 개혁은 어떻게 이룩할 수 있는가?

왜 주님은 교회를 원하셨으며 성경대로 실행하지 않는 교회들의 존재는 그리스도 앞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어떤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로마 카톨릭 교회에 의해서 그처럼 많은 피를 흘리고 죽어야 했는가? 그런 순교자들이 목숨과 바꾼 것은 무엇이었는가? 당신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인가? 그렇다면 그 분의 계명들을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당신은 그 분의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인가?

1. 개혁 주도자의 한계

마틴 루터의 로마 카톨릭에 대한 도전이 없었더라면 세계는 로마 카톨릭의 썩은 교리에서 숨도 돌리지 못하고 질식하고 말았을 것이다. 존 칼빈의 개혁의 기치가 없었다면 세계는 거대한 로마 카톨릭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틴 루터가 로마 카톨릭에 도전한 첫 번째 인물이고 그의 행동이 첫 번째 저항이었는가? 아니다. 초대 교회 이래로 성경대로 믿는 저항 세력은 계속 상존해 왔었다.

지금 교회와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교회사는 로마 카톨릭 교회와 친카톨릭 교회들이 신약 교회로 등장하여 마치 하나님의 교회인 것처럼 소개되고 있다. 무지한 사람들은 그런 교회사에 등장한 교회들을 참 하나님의 교회로 알고 있다. 그 당시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그런 교회들의 부정과 비성경적 교리의 실천에 대해 비판했을 때 이들 제도교회는 그들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갖가지 고문과 악행을 저지르며 공민권을 박탈하고, 화형으로 죽이고, 다른 방법으로 처형했던 것이다.

그 당시의 성경대로 믿는 모임들의 간증과 믿음의 실상이 세상에 알려질 길이 없었던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그래도 폭스(Foxe)의 순교사와 하나님이 지켜 주신 사람들의 손길에 의하여 세기를 거쳐오면서 관심있는 성도들의 귀에까지 전해져 알게 된 것이다.

신학이라는 학문은 신비로운 학문이다. 문외한들이 볼 때는 신학을 학문으로 공부한 사람이면 성경을 많이 알고 깊이 있게 알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신학은 하나님에 관해 공부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이 신학을 공부하는 자세는 일반 학문을 공부하는 자세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몇 가지 요건이 있는 것이다. 이 요건이 결여된 사람이 신학을 공부하게 되면 하나님의 깊은 것들(고전 2:10)을 깨닫지 못한다.

이 요건의 첫 번째는 바른 하나님의 말씀이다. 올바른 신학은 바른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출발한다. 신학의 교과서인 성경이 삭제되고 변개되었는데 그 성경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바르게 깨달을 수 있겠는가?

루터는 그 당시 이 점을 가장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1517년 루터가 카톨릭 교회의 비성경적 실행들을 만천하에 고한 후 제일 먼저 착수했던 일은 바른 원문에서 성경을 번역하는 일이었다. 루터의 종교개혁 성경은 희랍어 표준원문 계열에서 번역되어 1536년 독일어로 출간되었다. 바른 성경이 없이 바른 교리가 정립되고 바른 신앙이 자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썩은 물에서 물고기가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과 같다.

둘째, 신학은 복음으로 거듭난 사람이 공부해야 한다.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못한 사람이 마치 영이 살아난 사람처럼 행세하게 되면 본인은 물론 그가 속한 교회, 교제권, 가정 모두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성령으로부터 어떤 교시도 받을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가 얼마만큼 열성을 부리고 선을 행하고, 인내하고 절제한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종교 행위에 불과하다. 육신적인 생각은 하나님과 적대 관계에 있을 뿐이다.

그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한다고 착각할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런 것을 복종이라고 수용하시지 않기 때문이다(롬 8:7,8).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것은 물론이요, 하나님이 그 사람 안에 역사하지 않으시므로 그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행할지는 몰라도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신학에 있어 문제되는 또 하나는 성경대로 믿지 않고 패를 짜서 안주하려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성경으로 교리를 정립하고 준수하는 대신 어떤 공회나 선언이나 신조나 "믿음의 원칙"들 만을 내세워 모임을 만들고, 그 모임의 강점들을 내세워 우위를 주장하려 한다. 그들이 내세우는 것은 교단과 교파와 신학교들인데, 예를 들면 "장자 교단", 칼빈주의, 인가난 신학교, 웨슬리파, 오순절 교회,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 근본주의, 복음주의, 교회협의회 등이다.

이들은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는 배제하고 패를 짜서 자기들의 세력을 과시하며, 자기들이 약점과 비성경적 교리의 실천이 정당한 것처럼 내세우기도 한다. 이러한 양상은 곧바로 교파로 이어지며, 성경이 기준이 되지 못하고 총회의 결의나 신조만 지키면 통용이 되고 인정을 받는다. 이로 인해 어떤 교단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 교인은 자기들 교단 교회가 실행하고 있는 것이 가장 성경적일 것이라고 간주하게 됨은 물론이요, 영적 분별 능력을 잃어버려 그들 교단 교회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모두 이상한 교리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2. 개혁의 문제점

개혁자들은 콘스탄틴 시대를 교회의 승리로 보는 로마 카톨릭의 해석을 비판 없이 수용하였다. 콘스탄틴은 정치적 통제를 위하여 누구나, 심지어 이교도들까지도 흡수하여 통합적인 기독교회를 시도했다. 이로써 성경적 기독교는 이미 사라졌고 형식적인 기독교가 되었던 것이며, 이교도들까지 참여함으로 인해 형식적으로만 기독교화된 "기형적인 기독교 형태"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개혁이란 단순히 교황권에 대한 도전이었을 뿐, 로마 카톨릭 교회의 제도와 실행을 타파하기 위한 신학적 교리적 개혁은 아니었던 것이다. 따라서 개혁은 형식상의 개혁이었지 내면을 바로 잡는 개혁은 되지 못했다. 그들은 여러 가지 부패와 오류로부터 정화시켜야 할 필요성은 공감하면서도 교회라는 일체감에서 제외되기는 원치 않았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와 제도적으로는 완전히 분리된 이후에도 개혁 이전의 로마 교회와의 연속성을 의식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당시 개혁자들은 개혁 이전의 교회 형태를 여전히 교회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재침례교회 회원들을 위시한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즉 카톨릭에 항거하고 박해받던 이들은 로마 교회를 성경적 교회로 보지 않았고, 따라서 로마 교회를 교회로 인정한 개혁자들을 완전한 개혁자로 보지 않았다.

3. 개혁자들이 범한 오류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 잘 몰라서 실수한 사람들을 꼬집어 거짓 교사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아폴로가 침례인 요한의 침례만을 가르쳤다고 해서 그를 거짓 교사라 하지 않는다(행 19:1). 종교개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카톨릭 세력에 항거한 루터의 자세는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본받아야 할 것이다. 창세기 3장에서 시작된 영적 전쟁은 하루도 쉬지 않고 지속되고 있으며 이 전쟁에서 희생자가 되지 않으려면 전신갑옷을 입고 믿음의 방패와 성령의 칼을 차고 성령충만하여 싸움에 임해야 한다.

그러나 루터가 개혁의 횃불을 밝히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당시 개혁 교회들에 참여한 교인들은 교회를 운영함에 있어서 카톨릭식 전통을 처리하는데 실패했다. 그들은 교회의 의식과 운영에 있어서 다분히 카톨릭적인 것을 그대로 실행하면서 개혁 교회를 운영한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유아세례였다. 그들은 로마 카톨릭의 전통에 따라서 성인뿐만 아니라 유아들에게도 세례를 주었던 것이다. 여기에 대한 용어 역시 "침례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세례를 받는 것"이 되었다. 개신 교회들은 어느 교단할 것 없이 모두가 세례를 주고 받았으며, 그런 관습은 계속 이어져 교단적 전통으로 깊숙히 자리잡게 되어, 심지어 많은 교단 신학교에서는 세례가 침례보다 성경적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실정이다. 루터의 유아세례는 칼빈이 범한 "국가와 교회의 연합"의 오류와 맞먹는 중대사이다.

카톨릭의 전통은 교회의 의식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양상으로 표출되었다.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 예배의식, 새벽예배(미사), 금요 금식 등은 개신교회에서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으며, 그 외 교회의 운영면에 있어서도 이들은 카톨릭의 구습을 여전히 따르고 있는 것이다.

존 칼빈은 스위스의 개혁주의자이면서도 "교회 국가"의 창시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교회는 사탄이 주관하는 세상과 분리해야 성경적 성별이 이루어지며(고후 6:14-16) 거듭난 사람만이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가 유기체를 이루고 그 유기체가 지역 교회의 형태로 될 때 조직체가 되어 구령하고 양육하며 교제하고 선교하며 침례식과 주의만찬의 의식을 행하고 그 외 필요한 사역을 수행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칼빈은 국가와 교회와의 연합을 이룩함으로써, 거듭남과는 관계없이 단지 교회에 속함으로 교회 회원이 된 자들, 즉 그리스도인이 아닌 교인들로 만연된 사회를 만들게 되었다.

물론 모든 개신 교회가 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 중에는 신실한 주의 종들이 있을 것이고 성경대로 믿으며 성경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일지라도 카톨릭 전통을 실행하는 교회에서 그가 홀로 무엇을 어떻게 해낼 수 있겠는가? 교회에 등록한 것으로써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착각하는 것 중에는 극단적 칼빈주의에 의한 영향도 상당히 크다. 즉 교회에 등록한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은 하나님의 예정 속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언제 구원받았느냐고 물으면 그 대답은 모태 신앙이라든지, 어려서부터 주일학교에 다녔다든지, 몇 살 때부터 교회에 다녔다든지, 언제 안수 집사가 되었다든지, 장로된 지 몇 년 째라든지 하는 것이다.

이들 개혁주의자들이 범한 또 한 가지 오류는 예수 그리스도 없이 이 땅에 천국을 오게 하자는 데 있다. 후천년주의자들은 이 세상에 천 년 간의 평화가 온 다음에 예수님이 오신다고 거짓말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이 도둑 같이 오신다고 하셨지 일 천 년 동안 평화가 유지된 후에 오신다고 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말하는 일 천 년 간의 기간이란 그것을 미끼로 로마 교회가 정치적, 종교적 권세를 누리기 위해 세계평화를 외치는 것일 뿐, 그들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저 한 번 해 보는 소리에 불과한 것이다.

마치 삼위일체의 의미는 몰라도 그것을 믿는다고 하면 잘 믿는 사람으로 취급받는 것과 같은 실상이라 하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을 통치하신다는 것에 대해 확신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그분의 재림의 성경적으로 믿지 않는 것이다. 무천년주의자나 후천년주의자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확신을 갖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마찬가지이다.

개혁주의자들에게는 지역교회의 개념이 없다. 무지한 사람들에게 늘 추종할 지도자가 필요한 것은 그들 스스로 추진해 나갈 능력도 지혜도 없기 때문인데, 이들도 마찬가지로 늘 지시와 방향이 필요하며, 그 지시와 방향에 따르기만 하면 일단은 합격이다. 독자적으로 성경을 해석할 줄 모르는 사람은 늘 주석가를 붙들고 있어 그 주석가가 틀리면 그도 함께 틀리게 된다. 이것은 자기의 무지에 대한 변상을 그런 방법으로라도 감수하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루터를 따랐던 사람들은 유아세례든지 카톨릭식 전통이든지 루터가 했던 대로 무조건 따랐을 뿐이다.

교회 직제든지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이든지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의 암송이든지 축도든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며, 부활절이든지 추수감사절이든지 크리스마스든지 성경을 제쳐 두고 추종하는 우두머리가 하는 대로 따라서 한다.

칼빈주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극단적 칼빈주의 교리든지, 교회 국가든지, 성경을 제쳐놓고 칼빈이 하는 대로 따라서 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일제시대 신사참배를 거부함으로써 많은 박해를 받았던 장로교 고신파가 있다. 그들은 그들의 선배가 일본 제국주의의 기세 앞에서도 우상을 거부했다는데 대단한 긍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신사참배를 하지 않은 그 분들의 정신은 계승되지 않았다. 순교자의 후예가 순교자의 믿음을 전수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근본주의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적 근본주의를 실천했던 사람들은 다른 개신 교회들의 미지근함에 환멸을 느끼고 성경대로 실행하자고 나선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후예라고 자처하고 나선 20세기 후반의 밥 존스 대학교 출신들이나 성서침례교회 친교회 목사들은 그들의 믿음을 전수받지 않은 상태에서 스스로 근본주의만 외치고 있다.

주님은 집단을 상대하지 않으시고 개인을 상대하신다. 예수님의 영으로 거듭난 사람을 성전으로 삼아 주시고 그 안에 내주하시어 그 사람을 진리로 인도하신다. 그리하여 그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를 따라 살게 함으로써 죄의 종이 되지 않게 하시고 아들이 되게 하신다. 그 사람은 진리를 깨달아 아들이 됨으로 죄의 종에서 벗어나고 진리가 자유케 해 준다는 사실을 실토하게 되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교파로, 교회로, 칼빈주의로, 알미니안주의로, 근본주의로, 복음주의로, 선교단체로 인하여 같아지는 것이 아니고 진리에 순종하는 각 개인에 따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개인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도화된 과정을 통하여 주의 일꾼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설픈 일인가는 본인 자신이 잘 알게 되어 있다.

개혁주의자들은 성경적 지역교회를 세우는데 실패하였다. 루터와 칼빈은 훌륭한 개혁주의자이지 훌륭한 신학자는 아니었다. 그들은 성경적 지역교회의 의미를 몰랐다. 그들은 카톨릭 교회를 반대하면서도 카톨릭 교회를 철저히 부인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거대한 용의 실체를 어느 정도 인정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비성경적 교리를 실천하는 부류들과는 뒤섞이지 않고 성경적 성별을 부르짖었던 사람들은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기 전 무려 1400년 전부터 존재해 왔다.

이들은 영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로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성경을 보존하였고 복음을 확산시켰으며 믿음을 올바로 지킨, 성경대로 믿는 무리들이었다. 그러나 개신 교회들은 이들 초대 교회 이후 믿음을 지켜 온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을 잘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들의 믿음과 실행이 자기들의 믿음의 요지와 다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개신 교회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친카톨릭적 성향을 보이는 반면 이들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반카톨릭 성향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침례 교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스스로 개신교임을 자부하는 침례교회, 특히 미국의 남침례교회와 우리 나라의 기독교 한국 침례회는 침례를 주는 것 외에는 다른 개신교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성경 침례교회(Bible Baptist Church)는 카톨릭 교리를 정면으로 거부하며 어떤 형태의 카톨릭 교리에도 동조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성경침례교회는 성서침례교회 (Baptist Bible Fellowship)가 아님].

루터보다 1400년 앞서 있었던 그리스도인들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1세기에는 유프라테스 강과 아르메니아와 소아시아 지역에 산재해 있었던 폴리시안(Paulicians)이 있었다. 이들은 바울의 가르침에 치중하였다고 해서 폴리시안이라고 불렸다. 150년 경에는 소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지방에 산재해 있던 몬타니스트(Montanists)가 있었고, 노바티안(Novatians), 도나티스트(Donatists), 발렌티안(Valentians), 4세기 때의 메살린(Masslians), 비질란티안(Vigilantians 4-5세기), 이코노다스트(Iconodasts, 7-9세기), 보고밀(Bogomils, 10-15세기), 파테린(Patarines, 11세기), 베렌가리우스(Berengarius, 1215), 아놀디스트(Arnoldists, 12세기), 헤리시안(Hericians, 12세기), 페트로브루시안(Petrobrussians, 12세기), 베가드(Beghards, 12세기), 왈덴시안(Waldensians, 12-13세기), 카타리(Catharists, 12-13세기), 알비겐스(Albigenses, 12-13세기), 롤라드(Lollard, 14세기), 후스파(Hussites, 15세기), 타볼파(Taborites), 재침례파(Anabaptists) 등 순수한 신앙을 지킨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항상 있어 왔다.

이들을 모두 열거할 수는 없지만 이들은 모두 루터의 종교개혁 전후로 일어난 주님의 신실한 제자들이다. 유리하며 걸식하고, 재산을 몰수당하기도 하고, 집단으로 고문당하고, 때로는 공개로 처형당하기도 하고, 화형을 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목숨을 걸고 믿음을 지킨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형식상의 교인들은 기회주의자로 행세하며 몸을 도사렸던 것이다.

 

16. 종교 개혁과 참 기독교 신앙 Ⅱ

4. 참 기독교 신앙이란?

오늘날의 교회상은 루터가 종교개혁을 했던 1517년 당시처럼 철저히 배교한 상태이다. 배교의 참의미란 믿는다는 사람들이 말씀에서 멀어지고 믿음에서 떠나 버린 상태를 말한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믿음으로 받은 것인데 그 믿음은 성경에 기록된 사실을 믿는 믿음에 의해서였다.

우리가 구원받기 이전의 상태는 허물과 죄들로 죽어 있었던 상태였다(엡 2:1). 이 말은 우리의 영이 죽어 있었던 것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었던 사실을 내가 믿었다는 것은 나의 육신적 생명은 잘못된 출생에서 비롯된 타락한 생명이었으므로 나도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고 같이 장사되었다가 주님의 부활에 동참함으로써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갈 2:20). 이것을 어떻게 얻게 되었는가? 나에게 전해진 복음(고전 15:1-4)을 믿고서가 아닌가!

내가 나의 죄를 위해 죽으셨던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고 영접했더니, 그 분이 내 안에 들어오시자 나의 죽은 영이 살아났고 나의 혼은 이제 구원받게 된 것이다(고후 5:17).

이제 나는 외적으로는 전과 동일한 사람이지만 내적으로는 다른 한 생명이 살아 있게 된 것이다. 이 생명은 빵으로 사는 생명이 아니라 말씀으로 사는 생명이다. 이 생명은 속사람이라고 불린다(고후 4:16). 이 속사람이 갖는 생명은 영적인 생명이기에 겉사람인 육신의 생명과는 적대관계에 있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겉사람이 행하는 선과 오래 참음과 열성으로는 하나님과 아무런 관련을 맺을 수 없다. 이 겉사람이 자선을 베풀고, 고아들에게 선물을 주고, 양로원을 지어 주고, 심지어 교회를 지어 주고 자기의 신장을 때어 남에게 준다고 해도 그것은 육신적인 선행, 즉 종교적인 선행일 뿐 하나님께는 열납되지 않는 행위인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줄 모르는 사람은 자기의 다듬어진 육신으로 하나님께 접근하고 교제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법(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의 모든 것, 심지어는 기도마저도 가증하게 여기신다 하셨다. 우리는 일찍이 카인의 제사가 하나님 앞에 열납되지 않았을 때 이미 이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는 영이 성숙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영이 성숙하는 것은 도외시하고 육신을 가다듬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거듭나지도 않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부르시지도 않았는데 신학교를 졸업했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대사가 되어, 생계 유지를 위해 성경과는 거리가 먼 행위로 목회를 하며, 갖가지 외적 요건들을 내세워 성경적 교회인 양 나서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이 영적 생명에게 필요한 것은 영적 양식인데, 이 영적 양식은 변개되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나라에 복음이 들어온 이래 삭제되고 변개된 성경을 쓰면서도 바른 성경의 필요성을 실감한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것은 참다운 영적 양식을 먹지 않아도 무방한 사람들만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 영적 양식이 필요했다면 바른 성경을 번역했어야 했을 텐데, 이들은 신선한 젖이 아닌 변질된 젖을 먹고 자란 까닭에 병들고 나약한 체질이 되어 버린 것이다.

5. 영적전쟁에서 싸울 용사가 필요하다.

왜 영적인 사람들이 이 땅에 필요한가? 그것은 영적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이다. 마귀의 세력들이 갖가지 형태로 성도들을 바른 믿음에 서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영과 진리로 경배드리기 위해서는 영양가 있는 영적 양식을 먹어야만 된다. 하나님의 바른 말씀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사람은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영이 없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면 그는 마귀의 자녀인데 마귀의 자식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나님의 교회에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교회가 왜 성경을 가르치고 설교하는가? 왜 성경을 읽는가? 바로 이 영적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 영적 양식을 먹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설교들(기독교신문들, 기독교 방송들 및 개인 설교집 등)을 보면 그것은 영적 양식이 될 수 없는 쓰레기에 불과한 것을 볼 때,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보통 교회는 일 주일에 세 번 모이는데, 이는 한 번 모여서는 영적 실체가 세상과 접해 있는 육신적 실체를 관장할 힘을 배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 주일 내내 하루 평균 두 시간 이상씩 TV만 보고 성경을 읽지 않은 사람은 왜 자기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 회의에 잠길 수 있다. 세상 친구들이 술먹는 자리에 끼어, 비록 술은 마시지 않았어도 그들과 세상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일 주일에 이 삼 일을 보낸 사람이면 왜 자기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 의심하게 된다.

거듭난 후 네 주 동안 교회에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면 그 사람에게서 영적 흔적을 찾아보기란 매우 힘들게 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바른 성경이 필요없다고 하는 사람을 우리는 주시해야 한다. 또 틀린 성경으로 복음을 전해도 무방하다고 하는 사람도 경계해야 한다.

헌신의 의미를 잘 모르는 채 하나님을 섬기려 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살아가며 일하고 있는 것이다. 거듭난 사람은 즉시 헌신해야 하며, 또 헌신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인 영생을 지닌 것이다. 사람들은 영생과 지옥을 실감하지 못하면서 그저 종교 생활을 하고 있다. 임종을 맞은 사람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줄 테니 1년만 더 살게 해 달라고 애걸한다. 그런데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을 부여받은 사람인데도 전혀 기뻐하지 않는다. 왠 일일까?

이 사람은 자기의 영생을 형식상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사람이 죽게 되면 부활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성경 말씀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 이같이 명령하고 있다. "또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의 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라. 너희는 값을 치르고 산 것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하나님의 생명을 부여받았으면서도 하나님을 위해서 뭔가 해야 되는 것이 아까운가? 그래서 다시 자신을 위해서 살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영으로 잘못 태어난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의 몸을 요구하고 계신다. "너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롬 12:1). 그리고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주님께 드리는 합당한 예배이다. 몸을 드린 적이 없는 사람이 주일 날 교회로 예배드리러 간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이겠는가? 하나님께 헌신하지 않은 사람의 기도는 응답되지 않는다.

어떤 성도가 자신의 지상 삶을 풍요롭게 하려고 기도로 구하여 받게 되었다면 그것을 누구를 위해 쓰겠는가? 우리는 이 세상에 임시로 장막 집에 살고 있다. 우리는 하늘에 시민권을 갖고 있고 그곳에 가는 소망을 갖고 있다. 지상 삶에 연연하고 더 견고히 살 것으로 여긴다면 그에게 하늘 낙원은 한갖 허황된 이야기에 불과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첫째 계명은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이다(막 12:30).

자기 아내보다, 자식보다, 직장보다, TV보다, 낚시보다, 골프보다, 취미보다, 신문보다, 돈보다, 명예보다, 주 예수님을 더 사랑하라 하셨다. 주님을 최우선에 두지 못한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을 부인하는 삶이다. 자신을 부인하지 않고 자신을 내세우려는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마 16:24, 막 8:34, 눅 9:23). 그리고 그 다음 절에는 자기를 부인할 뿐만 아니라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다. 다시 말해서 죽으라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 생명을 얻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자기 생명을 잃으면 얻으리라"(마 16:25). 자기를 부인하지 못한 사람들이 자기를 내세우려 하면 육신이 나서게 되고 육신이 기세를 잡으면 영은 질식할 수 밖에 없다.

영적 체계는 예수님이 성령을 통하여 우리 몸을 관장하시는 것이다. 주님께 내 몸을 내어드려 주관하시게 하면 주님은 성령으로 우리를 주관하신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서도 육신이 살아 부상하게 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자기 멋대로 행하게 되어 죄를 짓고 화를 내고, 육신의 일을 행하게 된다. 성령님은 자아가 부인되지 않는 사람을 억지로 관장하지 않으신다. 이것은 헌신과는 별도로 우리가 매일 매순간 주님께 내어드려 주님의 관장하에 내 몸을 맡겨드리는 것이다.

그 다음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자신의 뜻을 실현하는 삶이 아니라 내 생애를 통해서 주님의 뜻을 실현하시게 하는 삶이다. 주님은 그리스도인 각인에게 계획을 갖고 계신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아도 택함을 받은 사람은 적다. 하나님이 목자로 세우시지도 않았는데 목자로 나선 사람, 교사로 세우지도 않았는데 교사로 나선 사람, 선교사로 보내지도 않았는데 선교사로 나선 사람들 때문에 복음이 변질되고, 교회가 부패하고, 그리스도의 뜻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본분이다. 진리를 올바로 깨달아 바른 신앙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공부를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공부한 사람이라 해서 그것을 먹고 사는 것과 연계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능력은 은사에 의해서이다. 하나님께서 특정인에게 특정한 사역을 맡기실 때는 그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은사를 주신다.

하나님께서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에게 순교자의 일을 맡기시겠는가? 설교할 수 없는 사람에게 강단을 맡기시겠는가? 성경을 가르칠 수 없는 사람에게 교사를 시키시겠는가? 그 나라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선교사로 보내시겠는가? 자기가 먹고 살 대책을 사역과 연관시킨 사람들은 얼마나 가증한가? 주님도 십자가의 일을 경험하실 때 자기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우선으로 두셨다. 그리스도인은 심지어 시련을 겪을 지라도,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게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영적 생명을 가진 사람으로, 이 세상에 잠시 사는 것이다. 그는 이 세상에서 살지만 이 세상을 사랑하거나 이 세상 사람들의 삶의 풍조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 규범에 따른 삶을 영위하며 성령을 통해서 주님의 주관하에서 살아야 한다. 성도가 일주일에 세 번 모이는데 소홀히 하면 이 삶에서 뒤쳐지게 된다. 성도가 성경으로 음식을 섭취하지 않고 기도로 주님과 교통이 없으면 실족하게 된다. 겉사람은 여전히 세상 사람으로 살지만, 속사람은 성령의 능력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고 육신을 따라 살면 죽는다(롬 8:5-14).

몸이 즉시 죽지 않으나 성령을 따르지 못하면 죄의 몸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죽은 몸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거듭나기 전의 우리의 몸이 타락한 몸이었기에 살아있지만 죽은 몬이나 다름 없었던 것과 같은 경우이다.

7. 결론

성경적 기독교 신앙은 현실적이고 명확하며 불변하다. 그 근거는 오직 성경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비현실적이고 모호하며 가변적인 교리들은 어디서 생겨난 것인가?

첫째, 잘못된 성경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이단적 교리들(카톨릭, 여호와의 증인, 제칠일 안식교, 오순절 교리, 그리스도의 교회)은 모두가 불분명한 성경 구절로 정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성경을 믿고 성경으로 배우는 사람들이 성경 외에 칼빈주의, 알미니안주의, 자유주의, 보수주의, 복음주의 등에 신앙을 정립시키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바른 성경 없이는 바른 교리가 있을 수 없다. 바른 성경 없이 개혁을 외치고 또 거기에 기대하는 것은 물없는 강에서 낚시를 드리우고 있는 어리석은 자와 같다. 이 나라는 바른 성경 없이 교회들이 운영됨으로써 교회만 있고 신앙이 말라버린 기현상을 낳고 있는 것이다.

둘째, 이 나라의 "개혁자"들은 전도와 선교와 부흥을 외치고 있지만 사실 마귀의 자녀인 세상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나라로 이겨 오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목회자 자신도 거듭나지 못했기에 어떻게 구령할지 모르는 사람들도 허다하다.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교회가 해야 할 첫 번째 과제요, 그것이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복종하는 것인데도, 복음을 올바로 전하기만 하면 무조건 "구원파"로 매도하여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도록 만들고 있다. 그들이 누구의 자녀인가는 그들 스스로가 증명하고 있다. 이 나라에 이러한 일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은 이 나라 기독교의 불명예 중에 불명예이다.

소위 "구원파"들이 비평을 받는 것은 성도의 양육을 도외시한 채 구원의 복음에만 모든 것을 집약시키려는 데 있을 것이다. 복음으로 죄인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일은 너무나 잘한 일이다. 그러나 구령하였으면 즉시 말씀으로 양육시켜야 한다. 이것이 지역교회가 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일이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군사이며 군사는 훈련받고 완전무장을 해야 전쟁에 투입되어 승리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현재 마귀의 세력들과 치열한 영적 전투를 벌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거듭난 것으로만 만족하면 그 기저귀 찬 어린 아이가 그리스도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교회가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을 육성하지 못하면 그리스도를 위한 일꾼을 얻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또한 바른 말씀이 없이는 양육이 불가능하다.

셋째,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지 않은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이루지 않고 자기 뜻을 이루려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불가능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최우선 순위, 즉 자기 교회보다, 교단보다, 신학교보다, 집보다, 아내보다, 자식보다, 재산보다, 인정받는 것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될 수 없다(갈 1:10, 막 12:30).

넷째, 교회는 세상과 반대 위치에 있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성경대로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교회가 세상에 할 일은 구원의 복음으로 한 사람이라도 더 구령하여 지옥에 보내지 않는 일 뿐이다. 예수님은 세상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으셨다(요 17:9). 예수님은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셨다(요일 2:15,16). 교회가 세상 일에 참여하는 것은 예수님 없이 왕국을 실현시키려는 후천년주의자, 즉 적그리스도의 계획에 동참하는 것이며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지 않는데 에수님을 믿어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말로만 믿는 그리스도인과 거듭나지 않은 세상 사람과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러나 그들과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과는 하늘과 지옥의 차이이다.

개혁은 교단적 신조나 전통에서 벗어나 성경으로 돌아가서 성경대로 실천하는 일이다. 이 땅의 교회들이 양적 팽창을 교회 성장으로 알고 있는 한(풀러신학교 피터 와그너와 그 일당들의 영향) 하나님의 피로 사신 신약교회는 찾아보기 힘들게 되어 있다.

성경보다 교단 교리를 중시하는 한 개혁은 이룩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교단을 형성하여 패를 짜고 있는 한 개인의 믿음이 주님과 손잡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개혁 그것은 한 번의 결심으로만 이룩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실행해야 할 신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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