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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컬 운동 (Ecumenical Movement)

 

연합운동, 교회일치운동, 에큐메니즘(Ecumenism)이라고도 불리우는 에큐메니컬 운동은 분열된 기독 교회가
하나로 합치고, 나아가서 신구교(카톨릭과 개신교)가 하나 되자는 운동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이나 그 속에는 세계 종교를 통합해 다가올 적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맞이하려고 하는 검은 음모가 숨어 있습니다.

이를 주도하는 빌리 그레함은 프리메이슨 33도이고, 카톨릭은 마지막 때 하나님께 심판 받을 음녀이고,
에큐메니컬 운동의 주도세력인 세계교회협의회(WCC)는 프리메이슨의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교회 내에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시겠지만, 교회 내에 침투해 오염시키고 배교로
이끄는 것은 여지껏 사탄이 저질러 온 전공과목이니 별로 놀랄 것도 없습니다.

프리메이슨이 어떤 조직이나 정부를 무너뜨릴 때 쓰는 상투 전략은 침투→선동→분열→혼돈→통합 이므로
기독교의 분열부터가 예수회와 프리메이슨이 기획한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신·구교가 합쳐지는 것이 헤겔 변증법의 정·반·합 과정을 수행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변증법 자체가 물질이
형이상학적인 구상 없이 스스로 진화한다는, 열역학제2법칙(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위배되는 비과학적인 사기입니다.

고전 7/31 그리고 이 세상을 이용하는 자들은 다 이용하지 못할 것처럼 하라. 이는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져 감이라.

또한 하나님의 역사는 철저한 '분리'의 역사이지, 불의와 '혼합'된 역사를 보여주신 예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우상을 섬기던 우르 지방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나왔고, 사탄의 왕국 애굽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의 영도로 출애굽 했으며, 이스라엘 혈통이 오염되었을 때 하나님은 노아 가족 8명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물로써 멸하셨습니다.

고전 6/14~16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 의가 불의와 어찌 관계를 맺으며 빛이 어두움과 어찌
사귀겠느냐?
그리스도가 벨리알과 어찌 조화를 이루며 또한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어떤 부분을 같이하겠느냐?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들이 어찌 일치되겠느냐?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임이라.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들 가운데서 살 것이며 그들 가운데서 다닐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우리도 깨끗한 생수에 구정물 한 방울만 떨어뜨려도 못 먹듯이 하나님도 오염된 사람이나 교회를 산 제물로
받으시지 않으십니다.
사울왕은 하나님 명령대로 이방족속을 완전히 멸하지 않고 흡수했다가 악령에 들려 비참하게 죽었고 결국 왕위을
하나님께 순종하는 다윗에게 뺏기게 되었습니다.

카톨릭은 교황을 하나님처럼 섬기며, 교황의 교시를 성경보다 우선하고, 교황을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자처하고,
교황은 절대 무오한 완벽한 존재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교황 숭배는 전혀 성경에 근거가 없고, 초대교회 전통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며, 교황은 보통 사람보다
더 많은 실수와 만행을 저질러 온 구원받아야 할 죄인일 뿐 입니다.

또한 카톨릭은 성경에 근거 없고, 이교도들의 전통인 마리아 여신 숭배를 하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원죄가 없고, 승천했으며, 하늘의 여왕이 됐다는 성경에 전혀 근거 없는 교리를 가르칩니다.
오직 예수님 피로써 죄사함 받을 수 있는데도 죄 많은 신부님(하나님 아버지)이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사해 줍니다.

중세시대에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고, 면죄부를 팔며, 왕까지 갈아치울 권세를 누리던 카톨릭의 모순을 지적한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켰고, 카톨릭의 마수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무려 4000만명이나 참혹하게 고문당하다가
화형 등 잔인한 방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카톨릭은 예나 지금이나 교리적으로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개신교가 스스로 카톨릭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길에 버리운다고 했는데 기독교의 특성을 다 잃어 버리고 교황제도 밑으로
편입되려고 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런 상황에서 아무도 반대하지 않고, 거의 모든 교단이 연합운동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감리교, 루터교, 성공회, 구세군, 기독교 장로회, 예수교 장로회(통합) 등이 참여하고 있고, 교회 연합체인
한기총과 교회협 또한 적극적으로 연합운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현재 연합운동을 반대하는 곳은 예수교 장로회 합동측과 침례교의 일부 교회에 불과합니다.

앞줄 교황을 중심으로 오른쪽 한경직 목사, 강원용 목사, 교황의 왼쪽 강흥수 목사, 성공회 이천환 주교,
뒷면 왼쪽 기장의 조향록 목사 그리고 장로회 오건 연합회장, 러시아 정교회 주교 등이 함께 사진을 찍음.

카톨릭은 인간을 신으로 받들고 우상을 섬기는 커다란 이단교회이며, 카톨릭과 하나 되겠다고 하는 것은
기독교가 끔찍히 싫어하는 통일교와 하나 되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른 예를 들면, 5공 때 전두환의 군사정권에서 벗어날려고 많은 젊은이들이 피를 흘렸는데, 민주화가 이루어진
이 시점에서 다시 전두환을 옹립해 군사 독재정권을 세우자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중세시대 때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은 카톨릭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되 온갖 고문을 당하다 참혹하게 순교하였습니다.
카톨릭 사제들은 개신교도들에게 끓는 기름을 부었고, 관절을 잡아 빼었고, 창자를 끄집어 내었으며, 온 몸을 창으로
찌르거나 채찍질 했고, 이마를 쇠사슬로 꽉 죄어 눈알이 튀어 나오게 하였고, 불 붙은 나무로 남자와 여자의 성기를
지졌고, 가위로 여성의 가슴을 잘라내었고, 갈고리로 살을 긁어내었습니다.

또한 철판에 생사람을 구워 먹었고, 나사로 손가락을 죄어 부수었고, 혀를 잘라 내었고, 입술 코 귀 손가락 발가락을
잘라내었고, 뼈들을 부러뜨렸으며, 산채로 관에 넣어 생매장 했고, 생살을 바늘로 꿰매었으며, 산 채로 독사들이 든
푸대에 넣어 물에 던졌으며, 사나운 개들을 풀어 뜯어 먹게 하였고, 동굴로 피난해 숨은 사람을 연기를 피워 질식사
시켰습니다. <폭스의 순교사>

역사가 로렌트에 의하면 스페인 종교재판(A.D. 1480~1489)에서는 8천명을 산 채로 화형시켰고, 9만명을 처형했습니다.
A.D. 1499~1515년에는 1600명이 화형되었고, A.D. 1507~1515년에는 2563명이 갖가지 방법으로 처형되었습니다.
A.D. 1524년에는 2만명이 처벌되었고, 1000명이 트리아나 세빌이라는 도시에서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그 결과 스페인에서는 카톨릭에 순종치 않는 개신교도의 씨가 말랐고, 완전히 카톨릭 국가가 되었습니다.

장로교와 감리교 등이 현재 카톨릭과 가까워지는 것은 중세에 루터와 칼빈이 종교개혁을 했지만 완전히 카톨릭의
교리와 형식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천주교는 불교와도 아주 사이 좋게 지내고 있으며, 크리스마스와 석가탄신일에 서로 현수막을 걸어 주고,
같이 행사를 주관하고, 서로의 구원을 인정해 주고 있습니다.

한쪽에는 십자가, 그리고 다른 쪽 끝에는
부처 상을 달고 있는 로마교회의 묵주.
부처 상까지 천주교 성당 안에 들여놓고
종교통합을 꿈꾸고 있는 로마 교황청.
- 로마 카톨릭교에서 6개국어로 발간하고
있는 「30일」잡지 표지, (1989년 8/9월호)

로마 교황청의 주도 하에 전
세계는 이미 서너 번의 세계
종교 일치 운동 행사를 치렀다.

혼합 종교의 예배터가 된 영국
게트윅 공항의 채플과,
이곳에서 시무하는 천주교 사제.

그러나 인간이 보기 좋은 것을 하나님께서는 가증스럽게 여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은 신성한 신비를 찾아 내려 한다.  그들은 현재 삶의 고뇌에서 해방을 찾으려 하고 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알라의 아들이십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 받고 예수님과 나 사이에 그 어떤 것도 끼어들 수 없다는 기독교의 근본 믿음이
흔들리면 그동안 쌓아 왔던 모든 의가 물거품이 되고,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기독교의 배교행위이자, 예수님에 대한 배신행위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지금이라도 순진한 성도들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는 행위를 중단해야 합니다!

계시록 18/2~5 그가 큰 음성으로 힘있게 외쳐 말하기를 “큰 바빌론이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마귀들의 거처가 되었고
온갖 더러운 영의 소굴이요, 모든 더럽고 가증한 새의 소굴이로다.

이는 모든 민족들이 그녀의 음행으로 인한 진노의 포도주로 취한 까닭에 땅의 왕들이 그녀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또 땅의
상인들은 그녀의 사치의 풍요함으로 부유하게 되었도다.”라고 하더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다른 음성이 나서 말하기를 “나의 백성들아, 그녀에게서 나오라. 그리하여 그녀의 죄들에
동참자가 되지 말고 그녀의 재앙들도 받지 말라.

이는 그녀의 죄들이 하늘에까지 닿았고 또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불의를 기억하셨기 때문이니라.

마지막 때 우상숭배로 음행한 음녀인 로마 카톨릭은 하나님에게 크게 심판 받을 것입니다.
에큐메니컬운동에 가담하는 것은 천주교가 수백년동안 수천만명의 의로운 성도를 죽이고, 우상숭배하고, 신성모독하며,
부정축재한 죄에 대한 심판과 저주를 함께 받겠다고 결심한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그 여자(카톨릭)의 죄악에서 떠나서 함께 재난을 당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목차

1. 기독교 교파와 교단

2. 한국 기독교 연합 단체

3. 에큐머니즘

4. 에큐메니컬 운동

5. 세계교회협의회

6. 에큐메니컬운동 관련 보도자료

7. 에큐메니컬 운동을 주도하는 기독교인

8. 뉴에이지운동과 W.C.C

9. 천주교와 기독교가 다른 36가지 이유


1. 기독교 교파와 교단

기독교에 많은 교파가 있지만 이단이 아닌 이상 기독교로서의 공통된 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근간이 되는 교리는 삼위일체론, 처녀잉태, 구속, 부활, 재림 등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교파들 간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예배의 형식이나, 성만찬에 대한 견해, 교권체제, 신조,
신학적 바탕 등에서 조금씩 다릅니다.


a) 장로교 (長老敎 Presbyterian)

칼뱅의 신학(神學)과 신앙고백을 중심으로 성립한 그리스도교의 개신교 교파.

장로란 《신약성서》에 나타나는 감독(bishop)·장로(elder) 등과 같은 의미로, 장로교는 이러한 장로들에 의해
치리(治理)되는 교회를 말한다.
창시자는 프랑스의 신학자이자 종교개혁가인 칼뱅(Jean Calvin)으로, 그는 16세기 중엽 성경에서 말하는
장로회제도를 확립하였다.
이후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해 1559년에는 프랑스에서만 2,000여 교회가 장로제도를 채택하였고, 이어
네덜란드·스코틀랜드에서도 많은 장로교회가 생겨났다.

특히 스코틀랜드는 1560년 이후 장로교회를 국교회로 지정해 이후 잉글랜드와 미국으로 전파하는 데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1660년 청교도혁명이 끝나고 왕정 복고가 이루어진 뒤 잉글랜드에서는 세력이 약화되기는 했지만, 세계 장로교의
규범인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과 웨스트민스터요리문답, 헌법·예배지침 등을 청교도혁명 기간에 마련했다는 점에서
장로교 역사상 중요한 시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1706년 필라델피아에서 처음으로 노회가 조직되고, 1789년에는 최초의 장로교 총회가 개최되었다.
그러나 노예문제·신학·전도방법 등의 이견으로 여러 교단이 출현하였는데, 신학·교리 등에는 차이가 없었다.
18세기 이후 미국 장로교회는 아시아·아프리카 등 해외선교에 앞장서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함으로써 장로교의
세계화에 이바지하였다.

한국에서는 19세기 말부터 선교가 이루어지기 시작해, 1882년(고종 19) 《누가복음》《요한복음》이 번역
출간되고, 1907년에 대한예수교장로회 독노회가, 1912년에 총회가 창설되었다.
그러나 하나의 행정조직으로 운영되던 한국 장로교회는 광복 이후 신앙과 신학노선 등 여러 갈등 요인으로 인해
분열되기 시작해 2002년 현재 40개가 넘는 교단이 활동하고 있다.
세계적인 장로교 연합단체로는 세계개혁교회연맹(WARC)이 있고, 세계 장로교 총 교인수는 약 500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한국의 장로교회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측 http://www.yejang.or.kr/, 개혁측 http://www.reformed.or.kr,
통합측
http://www.pck.or.kr/, 고신측 http://kpm.org/, 대신측, 고려http://www.coramdeo.net,
재건
http://www.jaegun.or.kr/  등 270여개의 파)와 한국 기독교 장로회(기장 http://knp.or.kr/)가 있습니다.

1953년 김재준 목사 등의 신학적 입장을 이유로 예수교 장로회와 기독교 장로회로 나뉘었고, 1959년
에큐메니컬 운동에 관한 이념 갈등 때문에 통합과 합동으로 분리되었습니다.

* 교권체
제 : 총회-노회-교회

*
학교: 총신대학교(합동), 총회신학교(개혁), 장로회신학대학(통합), 고려신학대학(고신) 안양대학교(대신)
고려신학교(고려) 한신대학교(기장)



b) 감리회 (監理會 Methodist Church)

1729년 영국에서 존 웨슬리(John Wesley)에 의하여 시작된 그리스도교 교파.

옥스퍼드대학교를 중심으로 존 웨슬리(John Wesley)와 그의 동생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 그리고 G.휘필드
등의 대학생 그룹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그들은 신성클럽(Holy Club)을 조직하고 종교적 의무를 다하는 데 규칙적이면서도 조직적으로 행동하여
메서디스트(Methodist:格式主義者)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들은 성경 및 신학 연구 등에 힘쓰고, 빈민과 병자, 감옥의 죄수들의 전도에 힘썼다.

1738년 5월 24일 존 웨슬리는 모라비아 교도들이 모인 올더스케이트 거리의 집회소에 참석하여 오후 8시 45분경
인도자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로마서(書) 서문을 읽을 때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짐을 느꼈다고 한다.
이 회심의 사건은 존 웨슬리의 생애에서 일대 전환점이 되었고, 감리회의 구원·신앙·성결의 교리를 설명해 주는 산
증거가 되었다.
원래 존 웨슬리는 고교회파(高敎會派)로서 영국교회에 속해 있으면서 독자적인 운동을 하였는데, 영국교회에서는
그의 교회 내 설교를 금하였으므로 야외설교의 방법을 택하여 그 운동은 점차 확대되었다.

1744년 존 웨슬리는 메서디스트파 신자들을 런던에 모아놓고 전도사업 방침에 대하여 협의하였는데, 이것이 곧
감리회의 최초의 연회(年會)이다.
이때까지도 존 웨슬리는 영국교회와 분리하려는 뜻은 없었고 교회에 속한 채 전도하려 했지만, 1784년 런던 감독에게
미국으로 파견할 선교사를 안수하여 주도록 청하자 감독이 거절하므로 그 자신이 안수를 베풀어 T.코크 박사를
미국의 총감독으로 삼고 그 밖에도 몇 사람에게 안수를 주어 목사로 세우니 이때부터 감리교회는 실제적인 한 교파를
이루게 되었다.

감리회의 발전은 교구제도와 경건한 신앙을 고수하는 데 있었다.
존 웨슬리의 인격 ·조직력 ·지도력, 그리고 야외설교 ·평신도설교 등 꾸준한 복음활동 및 엄격하고 규율적인 생활에
의하여 발전되었다.
1791년 존 웨슬리가 서거하였을 때의 교세는 영국 전역에 확장, 잉글랜드를 본거지로 하였던 감리회 부흥운동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 이르렀고 미국에서는 휘필드의 주도로 큰 성과를 거두었다.

조직의 기본단위는 구역이며, 그것은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교회로 조직된다.
구역들은 지역적으로 지방회를 조직, 감리사가 피차 협동하여 교회조직과 사업발전에 힘을 기울이고 지방회는
다시 더 큰 집단을 형성하여 연회를 조직하며, 연회는 감독이 관할한다. 그리고 최고기관인 총회가 있다.

감리회 교리는 사도신경 속에 제시된 전통적 그리스도교 신앙에 근거한다.
감리회의 특색은 교리보다도 실제적인 생활과 성경의 진리를 실천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이라 하겠다.
사랑에 의하여 구현되는 신앙과 종교적 경험을 강조하며 이성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고 신학적 이론을 비교적
자유롭게 전개할 수 있는 것도 특색의 하나이다.

감리회에는 모든 신도가 각기 행하지 않으면 안될 규율, 곧 규범이 있고, 25개조의 종교강령이 있으며, 이것은
감리회의 헌법정신이기도 하다.
감리회 전도방법의 특색은 부흥설교를 통한 전도와 평신도를 통한 개인전도 및 심방전도이다.
감리회의 신앙과 교리는 존 웨슬리가 발표한 25개조의 종교강령과 그의 53개의 ‘표준설교’, 그리고 그가 지은
신약성서 주석에 잘 나타나 있다.

감리교도 몇개의 교파가 있는데 기독교 대한 감리회(http://kmcweb.or.kr/), 예수교 대한 감리회,
기독교 대한 자유감리교회 등이 있는데 이들의 신학적입장은 같습니다.


*
 교권체제 : 감독회장-연회감독-감리사-목사

* 학교: 감리교신학대학


c) 침례교 (浸禮敎 Baptists)

자각적인 신앙고백에 기초한 침례를 시행하는 그리스도교 프로테스탄트의 한 교파.

특히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으며, 성서원리(聖書原理) ·침례 ·만인사제(萬人司祭), 각 교회의 독립, 교회와 국가의
분리 등을 강조한다.
영국의 청교도(퓨리턴)의 여러 파 가운데 하나로 생겨났으며, 창시자는 J.스미스(1554?∼1612)로 알려져 있다.
그는 교직자로 1608년 국교회의 압박을 피하여 동지들과 함께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으로 망명했는데, 그 중
T.헬위스와 몇몇 동지들이 영국으로 돌아가 1612년 침례교회를 창설하였다.

아르미니우스파(派)의 입장을 취한 일반침례파와 칼뱅적 입장에 선 특수침례파의 구별이 있다.
영국에 이어 미국에서도 크게 퍼져서, 현재 미국 최대의 교파를 이루고, 대소 27개의 그룹으로 형성되어 있다.
한국에는 1890년 캐나다의 M.위크 선교사가 입국하여 함남 원산(元山)에서 선교사업을 시작한 것을 효시로 하여,
1905년 제1회 총회를 가지면서 보급되어 '대한기독교침례회연맹총회'와 '기독교대한침례회연맹총회'의 두 그룹이
있었다.

두 그룹은 1959년 '한국침례회연맹'으로 통합하였고, 1969년 재단법인 기독교대한침례회연맹 유지재단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1976년 '기독교한국침례회' (
http://www.koreabaptist.org/)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침례교는 미국에서 카톨릭 다음으로 큰 교단입니다.
교회의 직분은 목사, 안수집사, 교사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침례교회는  독립적, 자율적인 면을 중요시 하여 총회나, 연회 등을 두지 않고 '친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 학교: 침례신학대학교


d) 성결교 (聖潔敎 Holiness Church)

1901년(광무 5) 2월, 동양선교회(Oriental Missionary Society:OMS) 소속 선교사인 C.E.카우만과
E.A.킬보른(한국명 吉寶倫)에 의해 세워진 프로테스탄트의 교파.


장로교·감리교와 함께 한국에서는 3대 프로테스탄트 교단의 하나이다.
감리교 목사인 이들 선교사는 일본의 도쿄[東京] 간다구[神田區]에 동양선교회 전도관을 세우고 일본인 목사
나카다[中田]의 후원 아래 동양일원의 선교를 시작하였다.
교육에 힘쓰라는 선교회 본부의 지시도 있었으므로 전도관 1층에 성서학원을 개설, 성경 ·신학 등을 가르쳤다.

한국인 유학생 김상준(金相濬) ·정빈(鄭斌) 등이 이 학원에서 공부를 끝내고 귀국하자 1907년 염곡(鹽谷:현 무교동)에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을 마련한 것이 한국성결교의 효시이다.
1911년 이명직(李明稙)·이명헌(李明憲) 등 5명이 동경성서학원을 마치고 귀국, 안수를 받고 장로사(長老師:순회목사)
가 되어 선교사들의 후원 아래 아현동 고개 위에 새로이 성서학원(현 서울신학대학의 전신)을 열면서 본격적인
목회자 양성과 노방전도(路傍傳道) 등 선교를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21년 9월 중생(重生)·성결(聖潔)·신유(神愈)·재림(再臨)의 사중교리를 내세운 ‘기독교동양선교회-
성결교회’가 탄생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 문제로 수백 명의 성직자 ·신도들이 수난을 겪고, 교단이 강제 해체되기도 하였다.
1950년대 한국 교계를 휩쓴 WCC(세계교회협의회) 가입문제를 둘러싸고 교단이 분열되기 시작, 현재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http://www.kehc.org/) ·예수교대한성결교회 및 중도파 등 몇 개파로 나뉘어져 있다.

* 교권체제:
총회-지역총회-지방회-개 교회

* 학교: 서울신학대학교, 성결대학교


e) 루터교

마르틴 루터에 의해 창립된 가장 오래된 기독 교회

16세기 카톨릭에 반대하여 마틴 루터의 신앙적, 신학적 입장을 따르는 사람들이 루터의 대소교리 문담(1529),
아욱스부르크 신앙고백(1530), 슈말칼트 신앙개조(1580), 콘코드의 신조(1580)를 신조로 삼았습니다.
루터교는 이들 신조들 외에 사도신경, 니케아 신조, 아타나시안 신조를 고백합니다.


교리적 특징은
1) 이신득의 강조
2) 성찬은 은혜의 방도가 된다.
3) 세례에 의한 중생
4)유아세례는 정당하며 합당하다
5) 그리스도의 신성은 인성에 부여된 것
6) 하나님의 은총에서 타락할 수 있지만 구원은 만민에게 보편적

   
한국에서 루터 교회는 문서선교를 통해 확산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수학하고 들어온 지원상 목사를 중심으로 컨콜디아사를 통해 문서선교를 하고 방송(루터란 아워)을
통해 선교했습니다. 
한국에서의 루터교회는 그리 큰 교단은 아니지만 베델성서교육을 통해 한국교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정식 명칭은 기독교 한국 루터회(http://www.lck.or.kr/) 입니다.
오늘날 독일과 북유럽의 거의 모든 국가는 루터교를 국교로 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회중주의이며, 행정과 결의에 있어서는 대의정치를 추구합니다.


* 학교: 루터신학대학교


f) 성공회 (聖公會 The Anglican Domain) 

영국의 국교회.

영국에서 출발한 성공회는
앵글리칸 처치, 성공회, 에피스코팔처치, 등으로도 불리웁니다. 
1536년 로마감독의 교권을 폐지하고 1570년 교황 피오 5세가 영국왕 엘리자벳을 파문함으로써 로마교회와 완전히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신앙적 이유보다는 정치적 이유때문에 발생하였고 교회의 신학은 개혁파에 가깝지만 교회 및 예배의식은
카톨릭에 가깝습니다.

영국에서는 영국 왕이 교회의 정점이고  국회가 교회법을 제정합니다.
그렇지만 켄터베리 대교구, 요크 대교구, 웨일스 대교구 로 나눠져 있으며 한국 성공회는 켄터베리 대교구에
속해 있습니다.

영국교회의 교리의 표준은 39신앙개조와 기도문입니다.
한국에 성공회가 전래 된 것은 1890년 코프감독에 의해서였습니다.

정식 명칭은 대한 성공회(http://anck.peacenet.or.kr/)입니다.

조직은 주교, 신부, 부제라고 일컷는 종신직 신품이 있습니다.

* 학교: 성공회대학


g) 구세군 (救世軍 Salvation Army)

그리스도교 교파로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가 창설한 교파

구세군은 1858년 감리교 목사였던 윌리엄 부스에 의해 창설되었습니다.
구세군(salvation army)이란 명칭은 1878.5에 정식으로 명명되었고 1880년 처음 사관학교를 세웠습니다.
구세군의 특징은 사회봉사에 있습니다.
구세군의 정치는 개인의 자유와 기회균등의 인정하에 군대 조직을 차용합니다.

세계의 모든 구세군은 한 대장 아래 통솔을 받습니다.
구세군에서는 목사는 사관 평신도는 병사라고 지칭합니다.

구세군이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08년 10.8 명동에서 영국인 호가드 정령에 의해 옥외집회를 한데서 출발합니다.
구세군의 사회사업은 선교의 가장 중요한 방법이며 남녀평등을 중요시 여겨 사관학교는 반드시 부부가 함께
입교토록 하고 있습니다.


구세군(
http://salvationarmy.or.kr/)


h) 기독교 하나님의 성회(기하성), 순복음

프로테스탄트 오순절계(五旬節系)의 한 교파.

보통 순복음교회(純福音敎會)라고도 한다.
성경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속죄와 부활, 삼위일체(三位一體)인 하나님을 믿으며, 중생(重生)·성령충만·신유(神癒)·
재림(再臨) 등을 주요교리로 삼고 있다.
1928년 개인 자격으로 M.C.럼시가 오순절적 신앙선교를 목적으로 내한하여 당시 구세군에 근무하던 청년
허홍(許弘)과 함께 정동(貞洞)에 선교본부를 둔 것이 이 교회의 효시가 된다.

1959년 미국의 아시아 선교부장 케참 목사가 내한하여 2만 달러를 투자, 신학교를 신축하고 서대문에 중앙회관을
설립하는 등 전국복음화운동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특히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순복음(Pure Gospel)' 운동의 주동이 되어 교회 명칭에도 순복음이 들어가게 되었고,
1972년에는 분열되었던 교단이 다시 합쳐 선교부와 협력관계를 맺고 조직적인 발전을 이룩하였다.

2001년 현재 교회수 1,417개, 목사수 3,534명, 교인수 110만 6712명이며, 교육기관으로 한세대학교가 있다.
이 밖에 5개의 농아교회, 경기도 파주시의 오산리 기도원과 2곳의 수양관 등을 운영하고 있다.
본부 소재지는 한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동 222번지이다.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http://www.ag.or.kr/)

이 계열의 교회들은 성령운동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이들을 오순절파 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신학적 바탕은 뚜렷하게 어느 것이다 라고 할 수 없지만 대략 웨슬레안에 가깝습니니다.
한국의 오순절 계통의 교회는 오중복음과 삼박자 축복이란 것을 중시합니다. 
학교는 순신대학교(순복음), 한영신학대학 등이 있습니다.




2. 에큐머니즘 (ecumenism)

그리스도교를 하나로 통합하려는 정신 및 그 사상.

이 사상은 역사적으로는 1054년 동 ·서방 교회 분열 이후 싹트기 시작하였다.
20세기에 들어와 특히 현저해져 교회합동운동, 즉 에큐머니컬운동으로 발전하였으며, 가톨릭은 물론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도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이 운동은 보통 가톨릭에서는 ‘교회통합운동’,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세계교회운동’ 또는 ‘교회일치운동’ 등으로
표현한다.

이 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은 세계전도에 교파가 끼치는 폐해, 세속화(世俗化)의 진전과 잇달은 프로테스탄트의
분열, 공산주의 세력의 준동 등으로 인하여 모든 교회, 즉 교파의 통합이 절실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 운동은 가톨릭쪽보다 프로테스탄트쪽에서 훨씬 일찍 시작되었다.
1910년 에든버러 세계선교회의를 시발점으로 ‘세계전도’ ‘신앙과 실천’‘신앙과 직제(職制)’와 관련된 국제적 ·
초교파적 운동이 통합되었고, 1948년에는 암스테르담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World Council of Churches)가
결성되었으며, 뒤이어 에반스턴 뉴델리 총회가 개최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한편 동방정교회(正敎會)는 뉴델리 총회 이래 WCC에 참가하여,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왔으며, 로마가톨릭교회도
처음에는 극히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으나 교황 요한 23세가 소집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 이 후
에큐머니컬운동에 강한 관심을 표명하고, 동방정교회와 프로테스탄트교회에 대한 적극적인 접근을 시도하였다.

그 후 교황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總大主敎) 아테나고라스 1세와의 관계회복을 비롯하여 1960년에는 교황청
내에 ‘그리스도교도일치 추진사무국’을 상설하는 등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였다.
가장 획기적인 사건은 교황 바오로 6세 때에 이루어진 1965년의 로마(교황)와 콘스탄티노플(동방교회 총대주교)과의
사이의 파문(破門)철회 선언이었다.

* 사전적 의미
Ecumenic : 전반의, 보편적인, 전 기독교의(카톨릭 용어)
Ecumenical Council : 바티칸 공의회
Ecumenism : (교파를 초월한) 세계 교회주의 운동



3. 에큐메니컬 운동 (Ecumenical Movement 교회일치운동)

교파나 교단의 차이를 초월하여 모든 그리스도교 신도의 일치 결속을 도모하는 세계교회 일치운동.

세계교회운동 ·교회합동운동이라고도 한다.
원어인 에큐메니칼은 ‘집’을 뜻하는 그리스어 oikumene에 유래한 것으로, 온 세계를 하나의 집으로 삼는다는
‘세계교회’의 실현을 지향하는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교회가 하나로 통일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상은 신약성서 이래 그리스도교의 일관된 주장이거니와, 오늘날
에큐메니칼 무브먼트로 알려지고 있는 것은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재일치(再一致)를 첫째
목표로 하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그리스 정교회(正敎會)나 로마가톨릭교회와의 협력도 생각하게 되었다.

이 운동의 구체적인 발단은 1910년 J.R.모트와 J.H.올담의 지도 아래 에든버러에서 열린 세계선교회의이다.
이 에든버러 회의 이후 3개의 세계회의가 생겨나 이 운동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그 하나가 국제선교협의회(IMC)인데, 선교에 있어서 일치협력을 목표로 하여 제1회 회의가 1925년 예루살렘에서,
제2회는 1938년 마드라스에서, 제3회는 1952년 빌링겐에서 열렸다.

또 하나는 ‘생활과 실천(life and work)’에 관한 세계회의이다.
이것은 현대의 현실적 여러 문제에 대하여 교회가 양심적으로 책임을 지기로 할 때 필요하게 되는 협력을 목표로
한 회의이다. 제1회 회의는 1925년 스톡홀름에서 열렸다.
이 회의는 신학문제의 논의를 피해 왔으나 신학문제를 실천문제에서 분리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차차 인정하게
되어 마침내 세계교회회의를 조직할 필요성을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또 한 가지 들 수 있는 것은,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에 관한 세계회의이다.
이것은 위의 두 세계회의가 회피해 온 신학적 문제와 정면으로 대결함으로써 본격적인 교회일치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회의는 1927년 처음 로잔에서, 제2회는 1937년 에든버러에서 열려 교회관(敎會觀) ·교의 ·예배 ·제도 ·
공동성찬(共同聖餐) 등에 관한 문제가 논의되었다.

이상과 같은 여러 단계를 거쳐,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제1회 세계교회회의가 열리게 되면서 세계교회협의회
(世界敎會協議會:WCC)가 발족하였다.
이것은 위의 ‘생활과 실천’ 회의와 ‘신앙과 직제’ 회의가 통합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제1회 및 1954년 에반스턴에서의 제2회 WCC 대회에는 로마가톨릭 교회 ·러시아 정교회 등이 참가하지 않았으나,
1961년 뉴델리에서 열린 제3회 대회에는 소련이나 동유럽 정교회가 참가하였고, 로마가톨릭 교회에서도 옵서버를
보냈으며, 또한 국제선교협의회도 세계교회협의회와 합동하여 교회합동운동의 획기적 진전을 보였다.

한편, 그 해 체코의 프라하에서는 주요 교파들이 모여 그리스도교 평화회의(平和會議)가 열렸다.
이같은 진전은 인류의 평화에 대한 염원에서 핵무기 반대와 군축문제, 평화공존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힘입은 바가
컸다.
로마 가톨릭 교회도 다른 교파에 대하여 융통성을 보임으로써 성공회의 대주교가 분리된 이래 처음으로 교황과
회견하였고, 1962년의 역사적인 바티칸 공의회에는 세계교회협의회를 비롯하여 미국 ·소련의 교회대표도
옵서버로서 초청받았다.
한국에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구성되어 있다.  



4. 세계교회협의회 (世界敎會協議會 World Council of Churches WCC)

세계 모든 교회의 통일을 지향하는 초교파적인 교회의 협의체.

제1차 세계대전 후 그리스도교에서는 세계적으로 에큐메니컬 운동(교회일치운동)이 일어났다.
그 가운데 하나가 세계 모든 교회가 협동하여 사회문제를 공동 해결하는 생활과 사업을 일으키자는 운동이었고,
또 하나는 세계 모든 교회가 다시 연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연구하며 연합을 저해하는 조건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으려는 신앙과 질서 운동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조직은 통합을 시도하게 되었다.

1937년 에든버러에서 열린 신앙 및 직제 협의회와 옥스퍼드에서 개최한 생활과 실천 협의회에서는 두 조직을 합쳐
단일 협의회를 결성하자는 데 동의하였다.
1938년 교회 지도자들 가운데 에큐메니컬 운동가들 중심으로 새 협의회를 만들기 위하여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
모여 협의회 헌장 초안을 작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모든 교회가 구성원이 된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바람에 1948년에 이르러서야 제1차 총회를 열 수 있었다.
이러한 교회통일 시도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전세계 150여 개 교회가 정식으로
대표를 파견하여 결성한 이 협의회가 본격적인 운동으로는 최초였다.
조직으로는 총회, 실행위원회와 기타 실무진들이 있다.
총회는 의사결정기구로 세계 각국의 여러 지역에서 대략 6년마다 한 번씩 개최한다.

여기서 중앙위원들을 임명하고, 이 가운데 26명을 선출하여 실행위원회를 구성한다.
실행위원회는 전문위원들과 공동 의장 6명이 다음 총회가 열릴 때까지 업무를 수행한다.
활동은 교회 관계 분과, 에큐메니컬 연구·촉진 분과, 난민에 대한 교회 상호간 지원과 봉사 분과의 3개 분과로
나누어 실행한다.
각 분과 밑에는 신앙·직제 위원회, 교회 내 평신도의 생활과 실천 및 교회·사회에서 남녀 협동에 관한 위원회 같은
많은 소모임과 위원회가 있다.

교회의 궁극적 목표인 천국건설을 목표로 교회의 혁신을 모색하며, 각 교회·교파 간의 대립·반목과 갈등을
해소하고자 세계교회연합운동을 벌인다.

이 단체는 교회도 아니고, 교회에 명령이나 지시를 내리는 조직도 아니다.
단지 교회의 일치와 갱신을 위해 봉사하고, 교회들이 서로 만나 대화하며 기도하고 관용과 상호 이해의 정신으로
협동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다.

미국 장로교회, 브라질 오순절교회, 러시아정교회, 오스트레일리아 성공회, 케냐 감리교회, 미얀마 침례교회,
파푸아뉴기니 연합교회 등이 가입하고 로마 가톨릭교회와 남침례회 등은 가입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기독교대한감리회·한국기독교장로회의 3개 교단이 가입하였다.
2000년 현재 100개국 330여 개 교회가 참가하고 있다.
본부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다. (
http://www.wcc-coe.org/wcc/english.html)



5. 한국 기독교 연합 단체

a) 한국기독교총연합회 (韓國基督敎總聯合會 The Christian Council of Korea 한기총)

개신교 교단, 연합기관, 교단 지도자들의 협력기관.

1989년 교계 원로 목사 10여 명의 제창으로 각 교단 및 기관단체의 대표들이 회동하여 창설하였다.
                                                   
주요 사업은 ①한국 기독교의 연합, ②한국의 복음화와 세계의 복음화,  ③남북통일과 남북 교회 협력(탈북자 돕기,
북한 교회의 재건 포함), ④사회와 정부 및 국제적 공동 관심사에 대한 협력, ⑤사이비 및 이단 집단에 대한 대책,
⑥이들 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홍보, 출판, 전문인 양성 등이다.

가맹 교단은 52개인데 대부분이 각파의 대한예수교장로회이며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기독교한국루터회,
기독교대한감리회(혁신), 기독교한국하나님의교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순복음) 등도 포함되어 있다.
가맹 기관단체는 한국장로회총연합회, 한국기독실업인회중앙연합회, 한국교회평신도단체협의회,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한국세계선교협의회, 한국선명회, 한국대학생선교회, (주)기독교텔레비전 등 14개이다.
1998년 현재 산하의 교회수는 35,076개, 교역자수는 42,186명, 신도수는 11,469,361명이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http://www.cck.or.kr/)


b)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韓國基督敎敎會協議會  The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Korea 교회협)

한국 프로테스탄트 교단들의 협의체.

한국의 모든 교회들이 연합하여 전도·친교·봉사·연구·협의·훈련 등 공동의 선교적 사명을 수행하고, 교회일치와
연합의 정신을 구현할 목적으로 설립된 교회들의 협의체이다.
1905년부터 시작된 재한복음주의 선교단체통합공의회와 1918년의 조선예수교 장감연합협의회를 거쳐, 1924년 9월
장로교와 감리교가 선교사업의 연합전선을 구축하고자 창설하였다.

창설 당시의 명칭은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이다.
그러나 이 기구는 일제의 간섭으로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고 유명무실해졌다가, 8·15광복 후인 1946년 한국교회의
일치운동을 기치로 재발족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요 사업 내용은 한국 교단들 사이의 일치와 선교 협력, 세계교회협의회(WCC) 등 각종 교단들과의 교류
정보교환, 교회와 사회 재건, 빈민·농민·노동자 등 현장 선교, 인권운동과 민주화 운동, 한국 기독교회의 연합사업과
교회일치운동 전개, 남북 기독교의 영적 일치와 평화통일을 위한 남북 기독교 대표들 간의 평화통일선교협의회 구성,
중국·러시아 등 해외동포를 포함한 한민족 선교와 세계선교 등이다.

그 밖에 에큐머니컬 지역목회자 훈련세미나, 장학생 선발·추천·지원, 신학정책협의회를 통한 신학연구와 발전,
한국희년신학 정립, 교회성장과 발전을 위한 정책협의회 구성, 교회 내 여성의 역할 증진 및 연대의식 강화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왔다.
업무의 총괄자는 총무이고 조직은 실행위원회 및 특별위원회 산하에 15개 분과위원회를 두고 있다.

2002년 현재 가입교단은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기독교대한감리회·한국기독교장로회·구세군대한본영· 대한성공회·
기독교대한복음교회·한국정교회·기독교대한하나님의 성회 등 8개 교단이다.
국제적으로는 세계교회협의회·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등과 연대하고 있다.
협의회 사무실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지동 136-46번지 한국기독교회관 706호에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http://www.kncc.or.kr/)



6. 에큐메니컬 운동 관련 보도자료

1. 신 구교 일치운동 가속화 (2002/4/20)

2. 교회연합 일치운동에 매진 (2002/4/23)

3. 영국 성공회-감리교 통합 가시화 (2002/7/14)

4. 그리스도교 일치운동 수면 위로 (2002/7/26)

5. 신 구교 소통 모색 활발 (2002/7/28)

6. 한국 교회연합 일치방안 모색 (2002/8/9)

7. 한국 교회 교단협 11월 출범한다. (2002/9/22)

8. 천주교 개신교 일치운동 본격화 (2002/11/14)

9. 천주교 개신교 정교회 교단장 첫 모임 (2002/12/19)

10. 순복음 교회 김삼환 목사 WCC가 주최하는 에큐메니컬 세미너 참석 (2003/7/3)

 

7. 에큐메니컬 운동을 주도하는 기독교인 (일부는 프리메이슨)

1.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 신복음주의 목사, 프리메이슨 33도

2. 프랭클린 그래함(Franklin Graham) ; 빌리그래함의 아들, 프리메이슨

3. 노만 빈센트 필 ; 뉴욕 마블 협동 교회 목사, 가이드포스트지 발행인,

                          '적극적인 사고방식'의 저자, 종교다원주의자, 프리메이슨 33도

4. 랜디 필립스(Randy Phillips) ; '약속 이행자(Promise Keeper) 선교회' 회장

5. 빌 브라이트(Bill Bright) ; CCC(대학생 선교회) 창시자 및 회장

6. 루이스 팔라우(Luis Palau) ; 남미의 복음주의 지도자

7. 찰스 콜슨(Charles Colson) ; 감옥선교회 회장

8. 팻 로버트슨(M.G. Pat Robertson) ; 리전트 대학총장, 700클럽 회장,

                                                      CBN(미국 기독교 방송) 사장, 프리메이슨 33도

9. 오럴 로버츠(Oral Roberts) ;  오럴 로버츠대학 설립자, 프리메이슨 33도

10. 제시 잭슨(Jesse Jackson) 목사 ; 민주당 상원의원, 프리메이슨 33도
11. 
제임스 돕슨(James Dobson) ; 미국의 가정 상담 사역의 권위자, PK의 동원책

12. 로버트 슐러(Robert Schuller) ; 미국 수정교회(Crystal Church) 담임목사,

                                              '긍정적 사고방식'의 저자, 종교 다원주의자, 프리메이슨 33도.

13. 베니 힌(Benny Hinn) ; 오순절 은사운동 지도자

14. 케더린 쿨만 ; 여성 오순절 은사운동 지도자. 일명 Mrs. Pentecost

15.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 ; '제자입니까?'의 저자

16. 존 윔버(John Wimber)목사  ; 은사운동의 한 갈래인 빈야드 운동의 지도자.

                                             로마 카톨릭 교황청은 그를 극찬하고 있다.

17. 피터 와그너(Peter Wagner) ; 교회 성장학자, 은사운동주의자, 신복음주의자,

                                             풀러 신학대학교 교수.

18. 잭 헤이포드(Jack Hayford) : Church on the Way(교회) 목사. 미국의 10대 교회

19. 빌 하이벨스(Bill Hybels) ; 윌로우 크릭(교회) 목사(장로교회), 10대 교회

20. 빈슨 사이넌(Vinson Synan) ; 리전트 대학 교수

21. 짐 패커(Jim. I. Packer) ; 리전트 대학 석좌 교수

22. 존 스토트(John Stott) ; 복음주의 기독 서적 저술가.

 

 

8. 뉴에이지운동과 W.C.C

W.C.C.는 1948년 암스텔담에서 44개국 147교회의 351명이 모여 제1차 총회를 가졌다. 당시 세계는 제1, 2차 세계대전의 쓰라린 전쟁의 고통이 분열된 교회 때문이라는 책임을 통감하고, 세계교회의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하나됨'에 대한 감격과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그러나 이 총회는 성경만이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은 아니며, 구원의 보편화를 인정하고, 회개는 일종의 인식이며, 구원은 지상에서의 '평화'를 가리키는 것임과 개인의 도덕적 영적 생활과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필수적으로 다루어야 할 것을 결의하여 많은 실망을 주었다.

이것은 1910년 에딘버러에서 열린 최초 세계선교사총회의 목적인 순수한 선교운동의 성격을 외면하는 변질된 에큐메니칼운동이었다.

그후 W.C.C.는 제2차 에반스톤 총회(1954년), 제3차 뉴델리 총회(1961년)를 거쳐 복음전파에 대한 선교추진 보다는 독재정권, 인종차별, 여성운동, 노동문제 등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토의하였다. 특히,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은 집단적이고 국가적이기 때문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새로운 인간성과 오는 세계의 한 시범적인 단체이며, 교회의 사명은 단지, 사회의 봉사라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신학을 주장하였으며, 아울러 교회와 세상사이, 기독교와 이방종교사이의 구별을 없애는 '보편구원설'을 W.C.C.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으로 채택하였다.

이어서 열린 제4차 움살라 총회(1968년)에서는 사회, 경제의 정의와 해방을 강조하며, 공산주의 게릴라 단체들에 대한 지원을 합법화하여 인종차별 투쟁사업에 물질적 지원까지 하는 등 복음적 선교의 의미를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제5차 나이로비 총회(1975년)에서는 구원의 복음과 선교에 대한 성경적 교리를 '해방'이라는 말로 재 정의하였고 예수그리스도를 해방자로 묘사하여 해방신학자들의 환영을 받았다. 이 총회에는 드디어 로마카톨릭,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유대교 등이 참석하여 혼합주의의 색채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제6차 뱅쿠버 총회(1983년)는 소련 및 동구 공산권대표들 까지 참석하여 막스주의적 사회주의 비전을 높이고 타종교와의 대화를 모색하고, 타종교도 역시 하나님께로 가는 또 다른 길임을 인정한 총회였다. 제7차 캔버라 총회(1991년)에서는 카톨릭,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 외에도 점술가, 심령술사, 마술사, 무당 등을 포함한 세계의 15개 종교지도자들을 초청하는 대규모 종교혼합집회를 갖고, 세계종교의 통합과 단일성을 외쳤다.

이와 같이 종교 통합 운동을 추구하고있는 W.C.C.를 과연 기독교 단체로 인정할 수 있을까? W.C.C. 산하에는 각 나라마다 이러한 정책을 지지하는 N.C.C. 가 있는데 한국 기독교 교회 협의회 (K.N.C.C.)에 가입한 현 교단은 예장통합, 기감, 기장, 기하성, 구세군, 성공회, 복음교회, 한국정교회, 순복음이다.

한국교회는 정신차리고 사역자들을 유혹하는 자칭 선지자 이세벨을 몰아내고 회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께서 큰 환난에 던지실 것이다(계2:20-23).

그리고 세계종교통합을 꿈꾸는 뉴에이지운동을 과소평가 하지 말고 그들과 대적하여 마지막 영적전쟁에서 승리하기를 바란다.

http://w1.hompy.com/harvest/index.html

 



9. 천주교와 기독교가 다른 36가지 이유

이 글은 '천주교와 기독교가 다른 37가지 이유'(릭 존스, 말씀과 만남)를 중심으로 하였습니다.
저자는 카톨릭의 독실한 신자였지만 구원의 확신을 얻지 못해 기독교로 개종한 후 카톨릭을 비판하는 책을 썼습니다.
37가지 이유 중에 '자만의 죄'는 크게 잘못된 점이 없으므로 생략하고, 36가지 이유만 들겠습니다.
천주교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성경을 외면하고 인간이 만들어 낸 생각을 교리로 추가한다는 점입니다.

딤후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여금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


성경은 사람이 썼지만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썼으므로 하나님이 쓰신 것과 같습니다.
즉,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을 떠나서는 온전한 구원을 이룰 수 없습니다.
나라에 법이 있는데 자기 마음대로 법을 만들어 지키면 법정에서 인정을 해 줍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의 계명이 있는데 자기 마음대로 계명(교리)를 만들어 지키면 절대로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습니다.

골로새서 2/8 누가 철학과 속임수로 노략할까 조심하라. 이것은 사람들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들을 따르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니

갈라디아서 1/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을
선포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사도 바울은 누군가 철학과 거짓교리로 미혹한다면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원리를 따르는 것이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니 조심하라고 충고했습니다. (예를 들어 니체의 철학이나 다윈의 진화론)
또한 하늘나라에서 온 천사라도 사도들이 선포한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을 선포한다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천주교의 교리는 성경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고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추가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마리아의 원죄 없이 잉태했다는 교리와 승천 했다는 교리는 역사적으로도 성경적으로도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우선인지, 사람의 말인 교리가 우선인지 따져 봐야 합니다.

마태복음 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고 부르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 뜻을 행하는 자라야 되느니라.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아니하였으며, 주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며, 또 주의 이름으로 많은 경이로운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라고 말하리니
그 때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말하되 "나는 너희를 전혀 알지 못하니, 너희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거라!"고
하리라

예수님은 분명히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전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이 지으신 성경에 있으며, 성경을 기반하지 않는 신앙은 예수님이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설령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귀신 쫓고, 놀라운 일을 행했다 할지라도 진리 위의 신앙을 하지 않았다면
예수님께 꾸지람만 듣고 지옥으로 쫓겨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자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면 뭐하러 하나님과 예수님이 그 많은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이 글에서 천주교의 교리는 1994년 출판된 "카톨릭 교회의 교리 문답서"를 기반으로 하였습니다.
이 문답서는 로마 교황청이 공인한 천주교의 공식 교리이고, 천주교에서 교인들에게 실제 가르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그럼 천주교와 기독교가 도저히 합칠 수 없는 36가지 이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1. 교회를 통해서 얻는 구원 (Salvation Through the Church)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보편적 보조 수단인 그리스도의 카톨릭 교회를 통해서만 구원방법의 모든 충족에 도달할 수 있다.
(일치교령 3항)

또한 교리문답서도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모든 구원이 당신의 몸인 교회를 통해 주어진다는 의미이다.
공의회는 성서와 성전에 의거하여 나그네 길에 있는 이 교회가 구원에 필요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카톨릭 교회를 필요한 것으로 세우신 사실을 알면서도 이 교회에
들어오기를 거부하거나 끝까지 그 안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구원될 수 없을 것이다. (교회헌장 14항)

카톨릭은 카톨릭 교회를 통해서만 구원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교회를 통해야 구원 받는다는 구절은 없습니다.

에베소서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입니다.

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게 되었느니라.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된 우리를 대신해 저주를 받으사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켰기 때문입니다.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또한 하나님과 나 사이에는 구원의 유일한 길인 예수 그리스도만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어떤 교회나 신부나 목사도 내 앞에서 하나님을 가릴 수 없으며, 예수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과 나의 1:1 관계이며, 성령님과 예수님이 내 안팍에서 도움을 주십니다.
신약시대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성전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2. 선행을 통해서 얻는 구원 (Salvation through Good Works)

카톨릭은 구원 받기 위해서는 끊임 없이 선행을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아무리 테레사 수녀처럼 선행을 한다 할지라도, 그 어떤 행위도 우리의 구원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딤후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구원은 우리의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한 은혜로 주어집니다.
물론 선행이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가 되기는 하지만, 온전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선행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선한 일을 할 때에는 구원 받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할
도리를 하는 것입니다.

디도서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에 따라 다시
태어남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때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
받고, 성령으로 새롭게 거듭난 것을 보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어 구원해 주십니다.

 

3. 교회가 죄를 용서함 (The Church Forgives Sins)

카톨릭은 교회가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중대한 잘못이라도 거룩한 교회가 사해 줄 수 없는 잘못은 없다. (제 1편 p.372 #9821)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교회는 세례 받은 사람들의 죄를 용서할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제 1편 p.373 #986)

그러나 하나님은 신약시대 이 후 이 땅에 죄 사하는 권세를 예수님에게만 주셨습니다.

마가 2/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사도행전 5/31 이분을 하나님께서 자기 오른쪽에 높이 올리시고, 영도자와 구주로 삼으셔서, 이스라엘이 회개를
하고
사함을 받게 하셨습니다.

예수님 이외에는 그 누구도, 어떤 단체도 인간의 죄를 사할 수 없습니다.
교회가 죄를 용서해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 없는 일입니다.

 

4. 단 하나의 참된 교회 (The One True Church)

카톨릭은 자신들이 예수님이 세운 단 하나의 참된 교회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를 우리는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라고 고백한다.(제 1편 p.314)

실제로 이 단일 유일한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제 1편 p. 317)

그러나 카톨릭은 초대교회가 아니고, 초대교회의 전통을 이어 받은 곳은 더더욱 아닙니다.
카톨릭(로마 교회)은 4세기 당시 수 많은 교회 중 하나였는데, 콘스탄틴 황제의 도움으로 성장했고, 세력이
커지자 정통교회를 핍박하고 힘으로 굴복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교도의 신앙과 우상을 흡수했고, 교황은 막시무스라는 로마 황제의 칭호를 사용했습니다.

마태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카톨릭은 베드로가 교회의 반석이고, 자신들이 베드로의 후예이니 정통성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반석은 예수님을 상징하고, 베드로처럼 신앙이 올바른 사람이 교회를 이어갈 것이라는 뜻입니다.

고전 10/4 다 같은 영적인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영적인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
곧 그리스도시라

사도바울은 반석이 예수 그리스도라 명백히 말하였습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중심한 교회만이 무너지지 않고 어떤 환난에도 끝까지 버틸 것입니다.
오히려 카톨릭은 예수님보다도 마리아를 중심하니 반석 위에 있지 못한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5. 세례를 통해 얻는 구원

카톨릭은 구원을 받기 위해선 세례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주께서 친히 세례가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고 (제 2편 p.467)

세례성사를 통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 신자들은 과연 견진성사로 굳건하게 되며 (제2편 p.455)

그러나 머리에 물 뿌리는 세례나 유아세례는 성경에 근거 없는 로마 카톨릭 의식일 뿐입니다.
침례는 "잠기다" 또는 "가라 안치다" 라는 의미인 희랍어의 밥티스마-또는 밥티조 입니다. 
성경에 따라
초대교회의 모든 사도들과 침례 요한이 행하였던 침례(밥티스마)의 양식은 몸 전체를 물 속에 완전히 잠긴 후
물 속에서 다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요한 3/23 요한도 살림에 가까운 애논에서 침례를 주니 이는 거기에 물들이 많기 때문이더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침례를 받으니

마가 1/9~10 그때에 예수님께서 갈릴리의 나사렛으로부터 오사 요르단 강 속에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 속에서
올라오시는데 하늘들이 열리고 성령께서 비둘기같이 자기 위에 내려오시는 것을 보시더니

사도행전 2/41  그때에 그의 말을 기쁘게 받아들인 사람들이 침례를 받으매 바로 그 날에 삼천 혼(魂) 가량이 그들에게
더해지니라.

사도행전 8/38~39 이에 명령하여 병거를 멈추게 하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 속으로 내려가 빌립이 내시에게 침례를
주니라. 그들이 물 속에서 나와 올라올 때에 주의 영께서 빌립을 채어 가시니 내시가 그를 더 이상 보지 못하더라. 내시는
기뻐하며 길을 가되

사도행전 18/8 회당의 우두머리 치리자 그리스보가 자기의 온 집과 함께 주를 믿으며 많은 고린도 사람들도 듣고 믿어
침례를 받더라.

사도행전 19/5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니

침례인 요한은 물들이 많은 곳에서 침례를 주었고, 예수님은 요한으로부터 침례를 받으시고 물 속에서 올라 오셨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베드로로부터 복음을 전해 들은 삼천명의 유대인들은 모두 물 속에 잠기는 침례를 받았습니다.
빌립이 이디오피아 내시에게 침례를 줄 때에도 물 속으로 들어가 침례를 주고, 물 속에서 나와 올라왔습니다.
이 밖에도 초대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로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로마서 6/4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와 함께 장사되었으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생명의 새로움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골로새서 2/12 너희가 침례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도 그와 함께 살아났느니라.

초대교회 때에는 몸을 물에 완전히 담갔다가 꺼내는 침례였는데, 카톨릭이 유아에게 물을 뿌리는 유아세례나 성인에게
물을 뿌리는 세례로 형식을 바꾸었고, 침례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독교회도 이를 답습하고 있습니다.
몸이 물에 잠기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듯이 내 몸도 예수님과 함께 죽는 것을 의미하며, 물에서 꺼냄을 받는
것은 예수께서 무덤 속에서 부활하셨듯이 나 역시 예수님과 함께 부활해 새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전 1/17 그리스도께서 침례를 주게 하려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게 하려고 보내셨느니라.

사도행전 8/36~37 그들이 계속 길을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메 내시가 이르되, 보라, 여기에 물이 있으니 내가 침례를
받는데 무슨 거리낌이 있으리요! 하매 빌립이 이르되, 만일 그대가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받을 수 있느니라. 하니 내시가
대답하여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노라, 하고

사도 바울의 가장 큰 사명은 구원을 위해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지, 침례를 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직접 침례를 준 적이 거의 없는데 이는 형식적 침례가 구원의 필수요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침례의 영적인 의미를 모르고 단지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만으로는 내 근본적인 심성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이디오피아 내시는 빌립으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 후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마태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며,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시더라. 아멘.

사도행전 2/38 베드로가 그들에게 답변하기를 "회개하라. 그리고 죄들을 사함 받은 것으로 인하여 너희 각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

그러나 침례는 예수님이 신약시대 성도들에게 주신 명령이므로 되도록 받는 것이 좋습니다.
베드로의 연설에는 구원의 과정인 회개, 죄들의 사함, 침례(죽음과 부활), 성령 받음(거듭남)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꼭 침례교회가 아니더라도 물이 많은 곳에서 인도자에 의해 물 속에 잠기면서 내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장사되었고, 인도자에 의해 물 속에서 꺼내지면서 예수님과 함께 죽음에서 부활하고 하늘로 승천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된
새사람(새생명)이 되었다고 믿으시면 됩니다.

 

6. 그리스도의 대리자 교황 (The Pope: Vicar of Christ)

천주교에서는 교황이 우주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합니다.

사실 로마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전 교회의 목자로서 교회에 대하여 직책상으로 완전한 최상 전권을 가지며,
언제나 자유로이 이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제 1편 p.342)

하지만 그 누구도 감히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교황처럼 정치권력을 휘두르거나, 부를 축적하거나, 화려한 옷을 입고 다니지 않으셨습니다.

고린도전서 8/6 우리에게는 오직 한 분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분으로부터 났고, 우리도 그 분 안에
있으며, 또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니, 만물이 그 분을 통하여 있고, 우리도 그 분을 통하여 있느니라.

하나님 아버지가 한 분이듯이 독생자 그리스도이신 예수님도 한 분이시며 만물이 예수님을 통하여 창조되었고,
인간 또한 예수님으로부터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님과 예수님이 함께 이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셨고, 이 분들은 함께 생각하시고 행동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누구도 예수님을 대신할 수 없고, 그 보좌를 탐내서도 안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사 엄청난 고초를 감수하시면서 우리의 죄에 대한 저주를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 누구도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을 따라갈 수 없고, 예수님에 비하면 인간은 보잘 것 없는 한낱 미물에 불과합니다.

교황은 또한 자신이 교회의 머리라고 주장합니다.

교황은 하나님께서 제정해 주신 대로 직접적이며 보편적인 최고 전권을 가지고 영혼들을 보살피는 것이다.
(제 1편 p.358)

그러나 오직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 되십니다.

골로새서 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는 시작이시며 죽은 자들로부터 첫 번째로 나셨으니 이는 그가
만물 안에서 으뜸이 되려 하심이라.

교회는 몸이고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므로, 모든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수족처럼 움직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가지이니 예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고, 모든 행동이 무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들로부터 첫 번째로 부활하셔서 구원의 표적이 되셨고, 성도들도 주님의 뒤를 따라 부활할 것입니다.

교황은 그리스도의 자리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리까지 넘봅니다.
교황은 하나님에게만 쓸 수 있는 '거룩한 아버지'(Holy Father)라는 칭호를 쓰고 있습니다.

마태 23/9 땅에 있는 자를 너희 아버지라 일컫지 말라. 이는 너희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분이시기
때문이라.

예수님은 이런 일을 미리 아시고 우리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아버지는 오직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한 분이기 때문에 땅에 있는 자를 절대 아버지라
부를 수 없습니다. (종교적 측면에서)
에큐메니칼 운동에 동참하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님 대신에 교황을 믿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7. 오류가 없는 교황 (The Pope: Infallible)

카톨릭 교리에 의하면 교황은 믿음과 도덕, 교리문제에 대해 결코 오류가 없는 무오한 존재입니다.

로마 교황이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의 최고 목자와 스승으로서 형제들의 신앙을 견고케 하기 위하여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정의하여 선포할 때에, 교황은 직무상의 무류성을 향유한다.
이러한 무류성은 하나님 계시 유산의 범위와 동등하게 광범위하게 미친다.(제 1편 p.344)

교리에 따르면 교황이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시를 선포할 때는 절대로 잘못이나 오류가 있을 수 없는 절대적인
권한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이러한 교황의 무오성은 하나님이 계시한 것과 동등하며 전세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인간은 죄인이며 하나님과 같이 온전하지 못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10 기록된 바, 의로운 자는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으며

역사적으로 수 많은 교황이 불륜, 치부, 정치적인 실수, 학살 등에 연관되어 있습니다.
2차대전 당시 교황청은 나찌와 협력했고, 유대인 학살 등을 묵인했습니다.
로마 카톨릭은 산하 단체인 예수회를 통해 세계정복을 위한 정치적인 음모를 꾸며 왔습니다.
교황은 보통 사람보다 실수와 오류와 죄악이 더욱 많은 구원받아야 할 죄인일 뿐입니다.

교황은 절대 무오하며 교황이 내린 결정은 번복할 수 없다는 것은 1870년 바티칸 공회에서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교황은 수 많은 실책과 죄악을 저질렀으며, 교황끼리 서로 정죄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교황 스테파노 6세(A.D. 896~897)는 죽은 전임 교황 포르모수스(A.D. 891~896)의 썩은 시신을 무덤에서 끌어내
교황의 의복과 왕관을 씌우고 고소해 심판이 내려 마차에 시신을 매달아 로마 시내를 끌고 다니다 강에 버렸습니다.

교황 호노리우스 1세는 사 후 A.D. 680년에 개최된 제6차 공회에서 이단자로 규정되었습니다.
교황 비질리우스는 어떤 책들을 정죄하였다가 무효화하였고, 다시 정죄하였다가 철회했다가 다시 정죄하였습니다.
교황 유진 3세(A.D. 1145~1153)는 결투를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였지만, 교황 율리우스 2세(A.D. 1503~1513)는
결투를 금지시켰습니다.

11세기에는 서로 라이벌인 3명의 교황이 존재하였는데 헨리 3세가 소집한 공회에서 이 세 사람은 서로를
정죄하였습니다.
14세기에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교황 우리반 6세를 선출하였고, 프랑스 추기경들은 교황 클레멘스 7세를 선출했으며,
공회에서 두 교황은 서로를 정죄하였고, 매년 서로 저주하였습니다.

교황 하드리안 2세(A.D. 867~872)는 교회가 주관하지 않은 시민결혼이 유효하다고 선포했지만, 교황 비오 7세
(A.D. 1800~1823)는 그 결정을 무효화시키고, 교회 허가 없이 결혼한 자들을 정죄했습니다.
교황 유진 4세(A.D. 1431~1447)는 잔 다르크를 마녀로 정죄해 화형했지만, 교황 베네딕트 4세는 1919년에 그녀를
성인으로 추대했습니다. 

딤전 1/15 신실하도다 이 말이여, 온전히 받아드리기에 합당하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 함이로라. 죄인들 중에 내가 우두머리니라.

사도들 중 가장 우두머리였던 사도 바울조차 자신이 죄인들 중 우두머리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던 자였으나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고 담대히 주를 증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구원 받은 것은 자신의 의가 아니라 오로지 주님의 은혜로 인함이며, 이는 하나님이 자신의
의로써 구원받았다고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8. 성사를 통해서 얻는 구원 (The Sacraments Save)

카톨릭은 성사가 구원 받는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가르칩니다.

교회는 신약의 성사들이 신자들의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한다.(제 2편 p.426)

천주교회에는 7가지 성사가 있습니다.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 고해성사, 병자성사, 신품성사, 혼인성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적인 의식은 구원 받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제사의식이나 여러 형식적인 의식 때문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습니다.
예를 들어 남녀가 결혼해서 사는데 중요한 것이 결혼식입니까?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고 의지하는 것을 원하시지 의미 없는 형식에 얽매이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은 인간이 자신의 영과 혼과 몸을 하나님께 산 제사로 바치기를 원하십니다.
내 고집과 자만과 욕심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영화롭게
하시고, 지혜롭게 하시며, 강건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기뻐하는 대상체로 삼으실 것입니다.
이 우주 만물이 하나님 소유인데 우리가 물질적으로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마가 12/38~40 예수께서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예복을 입고 다니기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잔치에서는 윗자리에 앉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고,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한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더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 없이 형식주의에 치우친 율법학자들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그들은 화려한 예복을 입고, 높힘 받는 것을 좋아하고, 가난한 자들의 재산을 삼키고, 스스로 경건한 채 하지만
오히려 하나님께 보통 사람보다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근거 없이 인간이 만들어 낸 전통과 유전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하며, 오직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합니다.

 

9. 유아세례 (Infant Baptism)

카톨릭에서는 유아세례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구원의 은총이 완전히 무상으로 주어진다는 것은 특히 어린이 세례에서 드러난다.
그러므로 출생 후 가까운 시일에 아이에게 세례를 베풀지 않는다면 교회와 부모는 그 아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무한한 은총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제 2편 p.465)

그러면서 유아세례는 교회의 전통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들에게 세례를 주는 것은 오랜 옛날부터 내려오는 교회의 전통이다.
이것은 2세기부터 분명히 확인된다. (제 2편 p. 466)

교리문답서는 유아세례가 성경에 기초한 것이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조심하라. 이것은 사람들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들을 따르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니.

사도바울은 사람이 세운 전통이나 원리를 따르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니 조심하라고 경고했습니다.
예수님은 성인이 되어서, 광야에서 40일 시험을 마치신 다음에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이디오피아 내시 또한 믿음을 확인 받은 다음에 빌립에게 침례를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18/8 회당의 우두머리 치리자 그리스보가 자기의 온 집과 함께 주를 믿으며 많은 고린도 사람들도
듣고 믿어 침례를 받더라

고린도 사람들도 사도들로부터 복음을 듣고 믿은 다음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어떠한 전통과 의식도 내 심성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합니다.
오직 주를 시인하고 죄사함을 받을 때 성령이 내 마음에 오셔서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십니다.

 

10. 죄의 경중 (Degrees of Sin)

카톨릭은 큰 죄와 작은 죄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죄는 그 경중에 따라 평가해야 한다. (제 3편 p. 657)

작은 죄는 용서 받을 수 있는 가벼운 죄로 소죄라고 합니다.

가벼운 문제에 대해 윤리법이 정한 기준을 지키지 않거나 중대한 문제에 대해 윤리법을 어겼지만 완전히 인식하지
않거나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경우에는 소죄가 된다. (제 3편 p.659)

큰 죄는 구원의 자격을 박탈 당하는 죄로 지옥의 형벌을 맞게 하는 '죽을 죄'입니다.

죽을 죄는 사랑의 상실과 성화 은총의 박탈 곧 은총지위의 박탈을 초래한다.  만일 죽을 죄가 뉘우침과 하나님 자비로
속죄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추방되고 지옥의 영원한 죽음을 당한다. (제 3편 p.659)

그러나 이렇게 죄의 경중을 나누는 것은 전혀 성경에 근거가 없습니다.
일단 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국가에 법이 있는데 개인이 법을 어기면 범법행위로 간주되 처벌을 받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 하나님의 계명이 있는데 이를 어겼다면 죄를 지은 것입니다.

요일 3/4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율법도 범하는 것이니 이는 죄가 율법을 범하는 것이기 때문이라.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계명을 범한 것이고, 누구든 죄를 지으면 그에 대한 처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죄의 경중에 관계 없이 죄를 지으면 그로 인해 흑암의 권세에 갖히게 되고,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어린양에게 내 죄를 안수하여 전해준 다음 속죄제사를 드려 죄를 사함받았습니다.

에베소서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신약시대에는 내 죄를 대신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십자가 보혈로 내 죄가 눈보다 더 희게
씻어진다는 것을 믿음으로써 죄사함을 받습니다.

 

11. 화체설: 실체 변화 (Transubstantiation)

카톨릭에서는 미사 중에 사제가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하여 성찬에 쓰이는 빵과 포도주를 실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바꿀 수 있다고 합니다.
이는 성경에 근거 없이
A.D. 1215 에 트렌트 공의회에서 결정된 내용입니다.

성찬례 거행의 중심인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 청원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환된다.
(제2편 p.490)

그럼 우리가 식인종 같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실제로 먹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성경의 내용을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요한 6/3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명의 빵이니라. 내게 오는 자는 결코 배고프지 아니하며,
또 나를 믿는 자는 어느 때나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께서 본인이 생명의 빵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빵을 먹으면 영원히 배고프지 않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생명의 빵이란 무엇일까요?

마태 4/4 그러나 주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빵(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 하시더라.

요한 1/14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므로,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으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생명의 빵은 영혼의 양식 되는 말씀을 의미합니다.(상징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의 신이신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생명의 빵이니 나를 먹으라."고 한 것의 의미는 "내가 말씀(진리) 그 자체이니, 내 말을 믿고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피는 무엇을 말합니까?

레위기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피를 생명을 상징하며, 속죄제 때 양의 피를 뿌리는 것은 생명으로써 죄에 대한 보응을 하는 것입니다.

마태 26/27~28 또는 잔을 가지고 감사를 드린 후에 그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것을 모두 마시라. 이는 이것이
죄를 사하심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언약의 피이기 때문이다."

포도주는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십자가 보혈로 죄사함 받지, 포도주를 마신다고 죄사함 받지는 않습니다.
성찬은 예수님의 우리를 위한 희생을 기념하는 의식이지, 구원의 요소가 되거나 특별한 의미를 갖지는 않습니다.

레위기 17/12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였나니, 너희 가운데 아무도 피를 먹지 말며, 너희 가운데
기거하는 어떤 타국인도 피를 먹지 말라.

성경은 분명히 피를 먹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화체설을 통해 실제 피를 먹는다면 이는 오히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일이 됩니다.

요한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전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은 영이요, 생명이라.

예수님은 영에 관한 말씀을 전하셔서 우리를 구원하려고 오셨습니다.
따라서 어차피 썩어 없어질 육신에 관한 말씀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 후에 구원 받는 것은 내 영이지, 육이 아닙니다.
따라서 빵과 포도주는 영혼에 관한 말씀과 생명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카톨릭에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직접 먹어야 한다고 주당하는 것은 이교도들의 식인 제사 풍습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바알의 제사장들은 인신제사로 바친 사람의 살을 먹어야만 했습니다.
바알의 제사장이란 뜻의 '칸나-발'(Cahna-Bal)은 식인종을 의미하는 캐너벌(Cannibal)이란 단어의 어원입니다.

 

12. 죄로부터 신자를 보호해 주는 성체성사 (Eucharist: Preserves from sin)

카톨릭은 성체성사에 참여하면 과거의 죄를 씻음 받고, 미래의 죄로부터도 보호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체성사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결합시키는 동시에 우리가 전에 지은 죄를 정화하고, 앞으로 죄를 짓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준다 (제 2편, p.513)

성체성사는 우리 안에서 불러 일으키는 그 사랑으로 우리를 미래의 죽을 죄에서 보호한다. (제 2편 p.514)

그러나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죄를 씻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에베소서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예수님은 어린 양으로 오셔서 인류의 모든 죄를 가져가시고, 그 죄에 대한 벌로 대신 저주 받으시고, 피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돌아가셨고, 그 피로써 죄인된 우리를 사셨으니, 우리 모두 예수님께 빚진 자입니다.
이런 역사가 있는데 아무 의미 없는 얇은 과자 한 조각 먹는다고 우리 죄가 사해지겠습니까?

고전 6/11 너희 가운데도 이런 일을 행하였던 자들이 더러 있었으나, 너희가 주 예수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영으로 씻음을 받았고, 거룩하게 되었으며, 의롭게 되었느니라.

죄사함 받으면, 내 모든 죄가 사해져 하나님 앞에 의롭다 칭함을 받을 것입니다.
죄사함은 온전한 하나님의 은혜로 그 어떤 행위로도 우리의 죄를 스스로 사할 수 없습니다.

고전 11/24 감사를 드린 후 떼어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쪼개진 나의 몸이니 받아 먹으라.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고 하셨으니

성찬은 예수님의 희생을 기억하기 위해서 하는 기념 의식일 뿐입니다.
우리가 광복절 때 8·15 기념 행사를 치루지 않아도 마음으로 그 날의 의미를 되 새기면 되는 것입니다.

 

13. 죽은 자들에게도 유익한 성체성사 (Eucharist: Helps the Dead)

카톨릭은 또한 성체성사를 통해 죽은 자를 도와줄 수 있다고 선전합니다.

성찬례의 제사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지만 아직 완전히 정화되지는 못한'(트리엔트 공의회) 죽은 신자들을
위해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빛과 평화를 얻을 수 있도록 바치는 것이기도 하다. (제 2편 p.504)

카톨릭은 정말 성경에 근거 없는 교리를 잘도 만들어 냅니다.
성체성사를 통해 아직 구원 받지 못한 영혼을 천국으로 보내준다는 것인데, 흡사 불교의 천도제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카톨릭이 이러한 의식을 많이 만들어 내는 이유는 죽은 자의 구원을 핑계로 더 많은 기부금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히브리서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뒤에는 심판이 있는 것같이

인간이 죽으면 그 사람의 살아온 믿음과 행위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때 남은 가족이 아무리 성체성사를 하고, 굿을 하고, 천도제를 지내도 하나님의 심판에는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전지전능하시고 공의로운 하나님이 부족하고 결점투성이인 사람의 말을 들으시겠습니까?
우리가 살면서 행한 모든 일은 하늘 생명책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판결은 배심원도 필요 없고, 3심제도 필요 없는 즉결심판입니다.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영혼이 분리되면 불과 2~3초만에 자신이 살아온 모든 과거가
스쳐 지나 가면서 선악이 구분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어떤 판결을 내리시던 그에 순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살았을 때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주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이 중요하지, 죽고 나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14. 마리아: 또 다른 구원자 (Mary Save)

카톨릭에서는 마리아가 구원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성 이레네오의 말씀대로 동정녀 마리아는 순명함으로써 자신과 인류전체를 위한 구원의 원인이 되신 것이다.
(제1편 p.185)

마리아는 순명과 믿음과 희망과 불타는 사랑으로써 영혼들의 초자연적인 생명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구세주의 구세
사업과 비길데 없는 협력을 해 드렸다. 이 때문에 은총의 세계에서 우리의 어머니가 되었다. (제1편 p.367)

카톨릭은 마리아가 구원의 원인이고, 마리아가 예수님과 버금 가는 구원의 업적을 남겼기 때문에 은총의 어머니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의 주체가 된다고 가르칩니다.

요한 14/6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

사도행전 4/12 그러므로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이는 하늘 아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인간에게 주신 적이 없음으라. 하더라.

예수님만이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요, 문입니다.
또한 예수님 자체가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에 누구도 예수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 이외에 다른 이에게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잘라 말하며, 하나님은 예수님 이외에 다른 구원자를
주신적이 없다고 강변하였습니다.

마가 3/31~35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와, 바깥에 서서, 사람을 들여보내어 예수를 불렀다.
무리가 예수의 주위에 둘러앉아 있다가, 그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어머니와 형제들과 누이들이 바깥에서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그리고 주위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말씀하셨다. "보아라,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

예수님 가족은 예수님이 메시야인지 잘 믿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족이 찾아 왔을 때 그들을 외면하고, 하나님 뜻을 행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가족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태어났을 뿐 영적으로 마리아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 이외에 인간 좋은대로 만들고 섬기는 것은 명백한 우상이며, 마리아 숭배는 이교의 여신숭배사상에서
따 왔을 뿐입니다.

 

15. 마리아: 무염시태 (Mary: Saved from Birth)

어릴 때 성당 다닐 때 주보 위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란 어구가 있었는데 그 땐 그 뜻을 잘 몰랐습니다.
카톨릭은 마리아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구원 받았고, 전혀 죄를 짓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1854년
교황 피오 9세가 선언한 마리아의 무염시태 교리입니다.
천주교는 성경에 근거 없이 소설 쓰듯이 교리를 잘도 만들어 냅니다. 

은총이 가득한 마리아는 구속의 가장 빼어난 열매이다. 그녀는 잉태되는 순간부터 원죄에서 완전히 보호되고,
일생동안 죄에 물들지 않았다. (제1편 p.184)

마리아가 원죄 없이 태어났고, 일생동안 죄 짓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고전 15/22 이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게 하려 함이라.

아담의 육적 후손인 인류는 아담의 원죄를 상속 받아 근본적으로 죄 아래 있고,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끊어지고, 대신 마귀 사탄의 지배하에 있습니다.
이로 인해 모든 사람은 사망 아래 있지만 예수님 안에서 죄사함 받음으로써 흑암의 주관권 안에서 벗어나고,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회복됨으로써 영생에 이를 수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명시합니다.

로마서 3/10~11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없도다, 한 사람도 없도다.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도다.

하나님 앞에 죄 없이 의로운 사람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요일 3/15 그 형제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야고보서 4/17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마태 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살아 오면서 아무리 죄 짓지 않으려고 몸부림 친 사람이라 할지라도 형제를 미워한 적이 있거나, 선을 알고도
행치 않았거나,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런 즉, 어느 누가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인간인 마리아 역시 절대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역사 안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마리아가 잉태되는 순간부터 구속된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제 1편 p.184)

천주교도 무염시태 교리는 좀 무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 교리가 새롭게 깨달은 교리라고 합니다.

계시록 22/18 내가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하나님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예수님은 요한에게 성경 이외에 말씀이나 교리를 더하면 그에게 성경에 기록된 모든 재앙을 받게 하실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근거 없이 추가한 교리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일입니다.

누가 11/27~28 주께서 이런 일을 말씀하고 계실 때 한 여인이 무리 속에서 목청을 높혀 주께 말씀드리기를 "당신이
낳은 태와 당신이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라고 하니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정녕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복이 있느니라."고 하시더라.

이런 일을 아셨는지 예수님께서는 미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 한 여인이 "예수님을 낳은 모친이 복이 있다."고 소리 높혀 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예수님의 혈통적 가족이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때문에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6. 마리아: 평생 동정녀 (Mary: Perpetual Virgin)

카톨릭은 마리아가 평생 동정녀로 지냈다고 주장합니다.

마리아는 동정으로 당신의 아드님을 잉태하고, 동정으로 그 분을 낳고, 동정으로 그 분을 길렀으며, 동정으로 당신의
젖을 먹였고, 항상 동정이었다. (제1편 p.191)

교회 전례는 마리아를 '평생 동정녀'로 찬미한다. (제1편 p.188)

마리아가 예수님을 처녀 잉태한 것은 사실이나, 예수님 형제는 자연적으로 잉태했습니다.

마태 13/55 이는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 그의 동생들은 야고보와 요세와 시몬과 유다라 하지
아니하냐? 그의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의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데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에서 났느냐? 하고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의 형제 자매가 있다고 알려줍니다.
그렇다면 카톨릭은 성경에 명백하게 모순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인데, 카톨릭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변명합니다.

종종 성서가 예수님의 형제 자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 이를 반박하는 사람이 있다. 교회는 항상
이 대목들이 동정녀 마리아의 다른 자녀들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고 이해해 왔다. 사실 예수님의 형제들
야고보와 요세는 다른 마리아라고 명시된 예수님의 제자 마리아의 아들들이다. (제1편 p.188)

예수님의 형제가 예수님의 어머니와 이름이 같은 다른 마리아의 자녀라고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의 동생들이 있다고 하는데, 명백한 사실을 왜곡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는 무리를 해서라도 마리아의 신성을 부각시켜, 숭배 받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또한 독신 생활을 하는 사제나 수녀에게 모범을 보여 주고, 이방의 처녀 여신과도 비슷하게 만들려 하기 때문입니다.

 

17. 마리아: 성덕의 근원 (Mary: Source of Holiness)

카톨릭은 동정녀 마리아가 성덕 즉 거룩함의 본보기요, 근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교회에서 성덕(Holiness)의 모범을 배우며,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 마리아 안에서 성덕의 본보기와
근원을 알아보고 (제1편 p.706)

거룩함의 근원이라고 칭함을 받을 수 있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구원 받아야 할 인간을 거룩함의 근원이라고 합니다.

누가 1/47~48 내 영이 하나님 곧 내 구원자를 기뻐하였나니, 이는 그 분께서 자신의 여종의 낮은 처지를
돌아보셨음이라.

마리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잉태하고 기뻐하며, 자신이 여종과 같은 낮은 처지라고 하였습니다.

계시록 4/8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계시록 15/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하나님 주위의 그룹천사(케루빔)는 끊임 없이 영원한 하나님을 거룩하다고 찬양합니다.
하늘나라에서 의로운 성도들도 오직 주 하나님만이 거룩하시다고 합니다.
성경에 '거룩함'이란 단어가 600번 이상 사용되지만 마리아 보고 거룩하다고 한 구절은 한 구절도 없습니다.
카톨릭은 교황에 이어 마리아마저도 하나님의 위치에 올려 놓음으로써 우상숭배 종교란 오명을 피할 수 없습니다.

 

18. 마리아: 또 다른 중재자 (Mary: The Intercessor)

카톨릭 교인들은 마리아가 신자들을 위해 하나님께 대신 기도해 주는 중보자라고 믿으며 마리아에게 열렬히
기도합니다.

그 때문에 교회에서는 복된 동정녀를 변호자, 보조자, 협조자, 중재자라는 명칭으로 부른다. (제1편 p.367)

천주교 신학자도 성경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는지 예수님의 직분을 죄다 마리아에게 갖다 붙혔습니다.
마리아에게 4가지 특별한 칭호가 붙었는데 하나씩 살펴 보겠습니다.

a) 변호자

카톨릭은 마리아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변호하는 변호자라고 하나, 성경에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요일 2/1 나의 어린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범죄하여도 우리에게 아버지와 함께 계신 변호자가 계시니, 곧 의로우신 분 예수 그리스도시라.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계셔서 우리를 변호해 주신다고 합니다.


b) 보조자

카톨릭은 마리아가 하나님 곁에서 그의 일을 보조하는 위치에 있다고 하나, 죄 많은 인간이 하나님 옆에 서면
강한 빛에 타버립니다.

사도행전 7/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스데반이 유대인에게 주 예수를 증거하며 영안으로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심을 보았습니다.
스데반은 담대하게 주를 증거하다 순교하였습니다.


c) 협조자

카톨릭은 우리가 어려울 때 마리아가 도와줄 수 있는 협조자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13/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분이시니, 사람이 내게 무엇을 행하든지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라 하노라

예수님을 내가 어려울 때 도와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니, 예수님을 믿고 나아가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d) 중재자

중재자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관계를 좋게 하고, 다리 역할을 하는 존재를 말합니다.
천주교회에 가면 예수님 십자가상보다 마리아상 앞에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촛불을 키고, 헌화합니다.

딤전 2/5 이는 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중재자(Mediator)가 계시기 때문이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니라.

로마서 8/27 죽으신 분은 그리스도시요, 참으로 다시 일어나신 분도 그리스도시니, 그 분께서는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시며 또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느니라.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재자가 한 명 계시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또한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오른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신다고 합니다.
그 어떤 누구도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자기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19. 마리아: 기도의 응답자 (Mary: Recipient of Prayer)

카톨릭에서는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리아께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청함으로써 우리가 불쌍한 죄인임을 깨달으며, 또한 지극히 거룩하신
분 즉 '자비의 어머니'께 호소한다.
마리아는 우리가 죽을 때도 함께 계실 것이며, 우리가 저 세상으로 건너가는 시간에 우리의 어머니로서 우리를
맞아들여 천국에 계신 당신의 아드님 예수께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를 비는 것이다. (제4편 p.912)

마리아가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우리가 죽을 때 하나님께 인도한다는데 전혀 성경에 근거가 없습니다.
이러한 것은 카톨릭이 만든 전통으로 하나님은 절대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예레미아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능력 있는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

기본적으로 기도는 하나님께 직접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므로 자식이 부모에게 간청하면 들어주듯이 하나님의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마태 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신약시대 이후에는 예수님께 기도해도 동일한 효과를 얻습니다.
예수님은 능력이 많으시므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면 뜻 안에서 시행해 주십니다.

 

20. 마리아: 천지의 여왕 (Mary: Queen Over All Things)

카톨릭은 마리아가 죽을 때 예수님이 그녀를 하늘로 끌어 올려 만물의 여왕이란 칭호를 주었다고 주장합니다.

마침내 티 없이 깨끗하며, 조금도 원죄에 물들지 않았던 동정녀 마리아는 지상생활을 마친 후에 영혼과 육신이
천상 영광에로 부르심을 받아 주님께로부터 천지의 모후(Queen over all things)로 추대받았다. (제1편 p.366)

카톨릭은 드디어 마리아를 하늘의 여왕(Queen of heaven) 자리까지 앉히는데, 천국에는 여왕이란 직책 자체가
없습니다.

예레미아 7/17~18 너는 그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하는 일을 보지 못하느냐?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비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 황후를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나의 노를 격동하느니라

구약시대 유대인들은 아스다롯 같은 이방여신을 숭배하며 그녀에게 과자를 만들어 바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 심판 받은 적이 많습니다.
카톨릭은 이교도의 우상숭배를 여신의 이름만 바꾸어 그대로 시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21. 미사 (The Mass)

천주교의 미사는 예배가 아니라 제사의식으로 십자가의 대속을 재현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제단 위에서 한 번 당신 자신을 피 흘려 바치신 바로 그 그리스도께서 미사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이 희생
제사에 피흘림 없이 계시고, 제헌되신다. (제2편 p.502)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이 단 한번의 희생제사로 영원토록 효력 있는 속제제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히브리서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피로 한 번 성소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느니라.

히브리서 10/10 그 뜻에 따라 한 번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하게 된 것이라.

구약시대에는 염소나 송아지의 피로 속제제사를 드렸지만,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 단 한 번 자신의 피로 속죄제사를
드려 죄인된 우리를 사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단 한 번 우리를 위해 희생하심으로써 죄인된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또 다시 희생제사를 드리는 것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일과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희생제사와 성찬례 즉 미사라는 희생제사는 유일하고 동일한 제사이다. (제2편 p.502)

천주교는 감히 미사 때 아무 의미 없는 과자 한 조각 먹는 것이 예수님의 거룩한 희생 제사와 같다고 합니다.
이는 신성모독적인 의식이며, 예수님의 행적을 평가절하 하는 일입니다.
카톨릭은 부와 명예를 거뭐 쥐기 위해 예수님의 영광과 권한을 뺏어 자신들이 차지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28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들을 담당하시려고 한 번 드려지셨고, 두 번째는 자기를 바라는 자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고 죄 없이 나타나시리라.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한 몸에 받아 멸시와 천대를 받고,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심으로써 우리 죄에 대한 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처음에는 누추한 인간의 모습으로 어린 속죄 양이 되기 위해 오셨지만, 다시 오실 때는 찬란한 본연의
위엄 있는 모습으로 예수님만 믿고 의지하는 자들을 환난에서 구원하시려고 오실 것입니다.

 

22. 연옥 (Purgatory)

카톨릭은 사람이 사 후에 영혼이 연옥이라는 곳에 가서 천국 가기 전에 정화된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었으나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한 구원이 보장되기는 하지만
하늘나라의 기쁨으로 들어가기에 필요한 거룩함을 얻기 위해 죽은 후에 정화를 거쳐야 한다. (제1편 p.389)

성경에 전혀 근거 없는 이러한 교리를 내 세우기 위해 카톨릭은 다음과 같이 변명합니다.

교회는 연옥에 관한 신앙 교리를 특히 피렌체 공의회와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확정하였다. (제1편 p.389)

인간이 모여서 회의로 결정한다고 없는 영계가 갑자기 생깁니까?
카톨릭이 이렇게 성경에 근거 없는 교리를 마구 추가하는 이유는 특정한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카톨릭 신자가 죽었을 때 신자 가족에게 접근해 연옥에서 정화되어 천국에 이르게 하려면 성당에
많은 기부금을 내 대신 기도하게 해야한다고 설득해 재산을 갈취하기 위해서입니다.

로마서 5/9 그러므로 이제 그의 피로 의롭게 되었으니 더욱 더 우리가 그를 통하여 진노로부터 구원 받게 되리라.

인간은 오직 예수의 보혈로 죄사함 받아 의롭게 됩니다.
아무리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히브리서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뒤에는 심판이 있는 것같이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죽음 뒤에는 그 사람의 믿음과 행위에 대해 하나님의 즉각적인 심판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23. 성인들에게 드리는 기도 (Praying to Saints)

천주교는 천주교가 인정한 성인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칩니다.

우리보다 앞서 하늘나라에 간 증인들 특별히 교회가 '성인'으로 인정하는 이들은 그들의 모범적인 삶과 전해 오는
그들의 글 그리고 그들의 기도를 통해서 오늘도 살아 있는 기도의 전통에 참여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지상에 남아 있는 이들을 끊임 없이 돌보아 준다.
그들은 주님의 기쁨에 동참함으로써 많은 일을 맡게 되었다.
그들의 중보기도는 하나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한 그들의 봉사 중 가장 고귀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와 온 세상을 위해 간구해 주도록 그들에게 기도할 수 있으며, 또 해야 한다. (제4편 p.914)

 
카톨릭은 살아 있을 때 선한 일을 한 사람에 대해 심사를 거쳐 성인(Saint)으로 봉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사람을 성도(Saint)라고 합니다.

로마서 1/7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성도(Saints)로 부르심을 받은 로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에베소서 4/11~12 그(그리스도)가 어떤 사람들은 사도로, 어떤 사람들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들은 복음 전도자로,
어떤 사람들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Saint)들을 온전케하며, 섬기는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여

하나님 앞에는 구원 받은 성도와 구원 받지 못한 이방인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 인간은 모두 미물이기 때문에, 인간이 정한 직분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모두 귀한 자입니다.
구원 받은 성도는 자기 기질과 사명에 따라 다른 직분을 맡는데, 이를 통해 스스로 온전해지며, 서로 섬겨주고,
그리스도의 몸 되신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중보자는 오직 예수님인데 카톨릭은 마리아에 이어 성인도 중보자가 된다고 합니다.
또한 마리아에게 하듯이 성인에게도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침니다.
카톨릭은 여신숭배에 이어 다신숭배까지 함으로써 바빌론 종교의 전통을 이어 받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지 절대로 사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24.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 (Praying For The Dead)

카톨릭은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면 더 좋은 곳으로 인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죽은 이들과의 일치,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체 전체의 이 같은 교류를 명백히 인식한 지상 여정의 교회는
그리스도교의 초기부터 대단한 신심으로 죽은 이들을 기억하였다.
죽은 이들이 죄의 사함을 받도록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은 장하고도 경건한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위한 우리의 기도는 그들을 도울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한 그들의 중보기도를 효과 있게 할 수도 있다.
(제1편 p.364)

여기서 말하는 세가지 사항은 성경과 모순되는데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 죽은 자가 죄사함을 받도록 간구하는 것은 경건한 생각이다.

성경에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한 예는 한 번도 없습니다.
죽고 나면 바로 심판이 이루어 지고, 지옥에 간 영혼은 영원히 그 곳에서 나올 수 없는데, 지상에서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 없는 일입니다.
기도는 살아 있는 형제의 평안과 구원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2.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면 그들이 죄에서 해방되도록 도울 수 있다.

죄에서 해방되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 받는 길 뿐입니다.
법정에서 판결이 내려진 후에는 아무리 애원해도 소용 없듯이, 심판 후에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 없습니다.

3. 그들을 위한 기도는 우리를 위한 그들의 중보기도를 효과 있게 할 수 있다.

마리아, 성인에 이어 이제는 죽은 영혼까지 중보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해도 해도 정말 너무 하는 것 아닙니까?
여신숭배, 다신숭배에 이어 무당들이나 하는 귀신숭배까지 합니까?
지옥에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는 영혼이 나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마태 28/18 그 후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오셔서 일러 말씀하시기를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나에게 주셨도다."

하나님은 구원에 관한 모든 권세를 예수님에게 위임하셨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유일한 중보자이며, 예수님을 증거하고 예수님에게 충성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위하는 일입니다.
어느 누구도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역할을 대신 할 수는 없습니다.

 

25. 성상들 (Statues)

카톨릭은 신자들이 마리아나 성인들의 성상(조각)이나 성화(그림)를 공경하도록 명하고 있습니다.

성당과 집에 있는 성화상은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 우리의 신앙을 일깨우고 기리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와 그 분의 구원사업에 관한 성화상을 우리가 소중히 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흠숭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어머니와 천사와 성인들의 성화상을 소중히 하면서 그 분들을 공경한다. (제2편 p.448)

성당이나 집에 있는 성상이나 성화를 소중히 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공경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라니!
그럼 창조주 하나님이 성모 마리아의 아들이란 말입니까?
여기서 카톨릭이 성모 마리아를 하나님이나 예수님보다 더 높히고 숭배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20/4~5 너는 어떤 새긴 형상도 네게 만들지 말고 또한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에 있는 것의 어떤 모습이든지 만들지 말며, 너는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지니라.
이는 나 주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니, 나를 미워하는 자들의 삼사대까지, 그 조상들의 죄악을 그
자손들에게 미치게 하고

하나님은 어떤 형상도 만들어 섬기지 말라고 명하셨고, 어떤 동식물이나 사람의 형상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다 마귀나 귀신을 섬기는 일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아니니, 사랑의 하나님은 이러한 배은망덕한 행위에
대해 질투하시고, 그 죄에 대한 형벌을 당대는 물론 후손에까지 미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요한 4/24 "하나님은 한 영이시니 그 분께 경배드리는 자들은 영(in spirit)과 진리(in truth)로 경배드려야 하리라."
고 하시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육적으로 형상을 만들어 절하거나, 떡과 고기를 차려 놓는다고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는 영적인 행위(기도, 찬양)와 진리(성경 말씀)로써만 경배드리고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5/5 너희가 이것을 알지니 음행하는 자나 욕심 많은 자 , 곧 우상 숭배자는 누구든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상속 받을 것이 없노라

사도 바울은 우상을 숭배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단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보다 인간이 만든 교리를 중시하고, 우상(마리아, 교황)을 섬기는 카톨릭에서는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우상은 단지 형상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골로새서 3/5 그러므로 땅 위에 있는 너희의 지체를 죽이라. 곧 음행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색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요한 17/10 나의 모든 것은 아버지의 것이오며 또 아버지의 것은 나의 것이옵니다. 그리하여 내가 그들 안에서 영화롭게
되었나이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믿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면 돈이 우상이요, 하나님보다 애인을 더 사랑하면 애인이 우상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것이 아버지의 것일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모든 것은 자신의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면 하나님 안에 모든 것이 있으므로 오히려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26. 견진성사 (Confirmation)

천주교는 견진성사가 구원에 필요한 요소이고, 여러 유익을 준다고 합니다.

견진성사는 세례성사의 은총을 완성한다. 견진성사는 하나님의 양자로서 더 깊히 뿌리내리게 하고, 그리스도와 더
굳게 결합하며, 교회와 유대를 더욱 튼튼하게 하고, 교회의 사명에 더욱 깊히 참여케 하며, 말과 실천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증거하도록 돕는 성사이다. (제2편 p.485)

천주교에서는 세례 받은 후 7년이 지나면 견진성사를 받을 수 있는데, 세례를 통해 맺어진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가
견진성사를 통해 확고해진다고 믿습니다.
견진성사는 주교가 집전해 신자에게 안수하고, 성유를 바르며,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고 믿게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근거 없이 머리에 기름 바른다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확고해지지 않습니다.

로마서 8/38 이는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장래 있을 것들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능히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지 못할 것이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는 오직 주 예수를 믿고 하나됨으로써 주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확고해 집니다.
그 어떤 사탄, 마귀, 권세라 할지라도 온전한 사랑으로 다져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북한의 기독교인들이 온갖 핍박을 받으면서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져 버리지 않는 것은 예수님의 뜨거운
사랑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세례성사와 마찬가지로 견진성사도 그리스도인의 영혼에 영적인 표지 즉 지워지지 않는 인호를 새겨 준다.
(제2편 p.486)

견진성사로 신자들(세례 받는 자들)은 더욱 완전히 교회에 결합되며 (제2편 p.475)

카톨릭은 견진성사를 받으면 영혼에 구원을 보증하는 표식이 새겨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행위나 의식도 인간을 의롭게 하지 못하고, 오로지 믿음과 죄사함으로 인한 하나님의 은혜로
의로와 집니다.
결국 카톨릭은 견진성사를 통해 신자를 성당 안에 영원히 가둘려는 속셈을 가졌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27. 고해성사 (Confessing Sins to Priest)

카톨릭은 사제에게 죄를 고백해 죄사함 받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과 교회와 화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진지하게 양심을 성찰해서 기억해 낸, 아직 고백하지 않은 모든 대죄를
사제에게 고백해야 한다. (제2편 p.544)

교회의 권위자에게 사죄권을 받은 신부들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할 수 있다. (제2편 p.544)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 직접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라고 가르칩니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 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하나님은 우리의 친아버지와 같습니다.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고, 보살펴 주시고, 언제든지 주님을 믿고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하나님 아버지에게 직접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받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고해성사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가진 죄사함의 권한을 침해하는 월권행위입니다.

히브리서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로 인하여 담대하게 지성소에 들어가나니

우리가 사 후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내가 죄를 짓지 않음이 아니라, 예수의 보혈로 내 죄가
눈보다 더 희게 씻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즉, 죄사함의 주체는 하나님과 예수님이고, 죄사함의 수단은 예수의 보혈입니다.
카톨릭의 고해성사는 신자들을 조종하고 재산을 헌납 받기 위해 죄사함의 권한을 하나님으로부터 가로채 자신들이
소유한 것처럼 꾸민 일입니다.

 

28. 대사: 면죄부 (Indulgence)

카톨릭은 신자와 지옥에 있는 자들이 대사(大赦) 즉 면죄부에 의해서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신자들은 대사(大赦)로써 자신들과 연옥 영혼들을 위하여 죄의 결과인 잠벌 즉 일시적인 벌을 면제 받을 수 있다.
(제2편 p.545)

대사란 이미 용서되어 소멸된 죄 때문에 받아야 할 일시적인 벌(잠벌)을 하나님 앞에서 면제해 주는 것인데
선한 지향을 가진 신자가 일정한 조건을 충족시켰을 때 교회의 행위를 통해 얻는 것이다.
교회는 구원의 분배자로서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보속의 보물을 자신의 권한으로 나누어 주고 적용한다.
(제2편 p.539)

카톨릭은 죄에 대한 벌을 자신들이 면제해 줄 수 있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 일정한 조건을 충족시키라고 하는 것으로 봐서 막대한 기부금 등을 내었을 때 시행할 것입니다.
마치 재판에서 실형을 받았으나 보석금을 내고 석방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과 정죄를 성당에 돈 몇 푼 낸다고 막을 수는 없습니다.

야고보서 1/15 그러므로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느니라.

로마서 6/23 이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은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법정은 변호사도 필요 없고, 3심제도 없으며, 죄에 따른 형량도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죄가 있으면 사망이고, 죄가 없으면 생명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크던 작던 몸에 죄가 남아 있으면 영원한 고통인 지옥행이고, 예수의 보혈로 죄사함 받아 몸에
죄가 남아 있지 않으면 영원한 영화와 축복인 천국행을 보장받습니다.

에베소서 2/8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선물이고, 그 어떤 행위도 구원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또한 인간은 살면서 죄 짓지 않고 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스스로 의로울 수 없습니다.
그럼 죄사함만 받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구원 받습니까?

야고보서 4/17 그러므로 선을 알면서도 행치 아니하는 자에게는 그것이 그 사람에게 죄가 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시키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이 세상에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 사탄과 싸워 이기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증거하고 찬양하며, 전도하고 가르쳐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선한 일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공무원의 직무유기 같은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 받은 자의 의로운 행실은 구원을 보장하는 일이 아니라, 의당 해야 할 도리입니다.

 

29. 성경 해석 (Interpreting God's Word)

카톨릭은 오직 교황과 주교만이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고 강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권위 있게 해석하는 책무는 오직 교회의 교도권 즉 교황과 그의 일치하는 주교들에게만
주어졌다. (제1편 p.46)

천주교는 오직 교회 지도자만이 성경을 해석할 수 있으므로, 신자들은 성경을 해석해서는 안되며, 주어진 교리만
신봉해야 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1229년  발렌시아 공회 때 성경이 평신도들에게 금지되고, 금서 목록에 포함되기도 하였습니다.
교황청이 신자들이 성경을 읽는 것을 싫어 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거짓말이 들통나, 통솔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7/11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고상하여서 전심으로 말씀을 받아드리고, 그 말들이
그런가 하여 매일 성경을 상고하므로

베뢰아 사람들은 사도들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고, 매일 성경을 보며 말씀의 진위를 확인하였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매일 보고 익혀서 하나님의 심정과 뜻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 어떤 권위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는데 걸림돌이 될 수 없습니다.

요한 16/13 그러나 진리의 영이신 그 분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리라. 그 분은 스스로를
말씀하지 아니하시며, 무엇이나 들은 것을 말씀하실 것이요, 또 너희에게 다가올 일들을 알려 주시리라.

성경을 읽다 보면 크게 깨우치고 가슴에 와 닿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성령이 내게 감동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성령님은 나의 스승이요, 내게 성경을 해석해 주시는 분입니다.
구원은 영원한 고통과 저주냐, 영원한 영화와 측복이냐를 가르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구원은 다시 물를 수도 없는 너무도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누구나 성경을 통해 진리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30. 카톨릭의 기도 (Catholic Prayer)

카톨릭은 자발적으로 기도하는 것을 금하고 카톨릭의 전통과 형식에 따라 기도하라고 가르칩니다.

기도는 내적인 충동이 자연발생적으로 분출되어 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곧 기도하려면 먼저 기도하려는 원의가
있어야 한다. 성서가 기도에 대해서 알려 주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니 기도하는 방식도 배워야 한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살아 있는 전승인 성전(聖傳)을 통해서 믿고 기도하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신다. (제4편 p903)

천주교는 기도가 자연발생적으로 분출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시편 3/4 내가 나의 목소리로 주께 부르짖으매 그 분께서 자신의 거룩한 산에서 내 말을 들으셨도다. 셀라

다윗은 자신의 의지와 목소리고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응답 받았습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묵주를 가지고 이미 주어진 기도문을 끊임 없이 반복하라고 가르칩니다.

마태 6/7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교도들이 하는 것처럼 헛된 반복을 하지 말라. 이는 그들이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로 생각함이라.

예수님이 기도에 대해 가르치면서 이교도들처럼 주문하듯이 헛된 말을 되풀이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말을 많이 한다고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것이 아니니, 필요한 말만 하라고 하셨고, 주 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만약 애인이 옆에서 매일 똑같은 말만 되풀이 하면 좋겠습니까?
하나님도 우리의 솔직한 심정을 듣고 싶어 하지, 녹음기 틀 듯 똑같은 말을 되풀이 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카톨릭은 또한 성서가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지 못하니 카톨릭의 전통적인 기도하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고 합니다.

마태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너희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빌립보서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의 구하는 것들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알려지게 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므로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구할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부모에게 장난감 사 달라고 자꾸 조르면 사 주듯이, 하나님도 우리의 간곡한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며 하나님께 우리의 사정을 알리고 부탁하면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식을 돌보듯이 우리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31. 보속 (Penance)

카톨릭은 죄를 완전히 씻고 벌을 받지 않기 위해 돈을 내고 보속을 받으라고 권장합니다.

용서는 죄를 없애 주지만 죄의 결과로 생긴 모든 폐해를 고쳐주지는 못한다.  죄에서 다시 일어선 사람은 완전한 영적
건강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 죄를 갚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더 실행해야 한다.  적절한 방법으로 죄를
보상하거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갚음을 보속이라고 부른다. (제2편 p.534)

카톨릭 교인들은 자신의 죄값을 치루고, 완전한 영적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 보속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성경에 근거 없고, 면죄부와 같이 카톨릭의 또 다른 돈 벌이 수단일 뿐입니다.
또한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 희생을 통해 우리 죄를 대신한 대속
(代贖, expiation)과, 죄인된 우리를 십자가 보혈로
사신
구속(球贖, redemption)을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히브리서 10/17~18 또 그들의 죄들과 불법들을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음이라.
이제 이것들을 용서하신 곳에는 더 이상 속죄제가 없느니라.

성령께서는 십자가 보혈로 우리 죄를 사한 후에는 우리의 크고 작은 죄를 다시는 기억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완전히 용서받았으므로 더 이상 속죄제나 다른 형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카톨릭은 보속을 받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까지 묘사합니다.

보속은 기도일 수도 있고, 헌금 자선행위, 자발적인 절제, 희생이 될 수도 있으며, 특히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를
인내로 받아들이는 일일 수도 있다.

보속을 헌금을 통해 받을 수 있다고 하면 너무 속 보이니까 기도, 선행, 절제, 희생, 고난 등도 함께 제시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선한 행위로도 우리의 죄를 사할 수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되는 줄 알고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의로워지고자 함이라.  이는 율법의 행위로는 아무 육체도 될 수 없음이라.

사도 바울은 사람이 율법이나 의식적인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로워진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과 구속을 믿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떠한 행위로도 하나님 기준에 의롭다 칭함을 받을 수 없으나, 오직 예수님을 믿는 것 하나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칭함을 받으니 이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32. 그리스도를 자칭하는 천주교인 (Catholics represent themselves christ)

카톨릭은 신자가 스스로 구세주 그리스도임을 밝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단순히 그리스도인이 된 것 뿐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 자신이 된 것을 기뻐하고 감사드립니다.
(제1편 p.309)

그리스도인이 신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은 맞으나 그리스도인이 스스로 그리스도 자체가 되지는 않습니다.
이는 인간이 스스로 신이 될 수 있다는 뉴에이지적 사고방식입니다.

마태 24/5 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라고 말하며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고린도전서 8/6 우리에게는 오직 한 분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 분께로부터 났고, 우리도 그 분 안에
있으며, 또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니, 만물이 그 분을 통하여 있고, 우리도 그 분을 통하여 있느니라.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전권을 위임 받은) 그리스도는 오직 한 분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우주를 창조하시고, 구원의 문이 되시며, 지옥과 무저갱의 열쇠를 가지고 계십니다.
자신도 구원 못하고 늙어 죽게 되어 있는 인간은 감히 그리스도의 자리를 넘볼 수 없습니다.
스스로 그리스도라 함은 예수님을 대적하는 일이요,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33. 세례 - 천국의 보증수표

카톨릭은 성당에서 세례를 받으면 천국행이 보장된다고 합니다.

교회는 영원한 행복에 들기 위한 확실한 보증으로 세례 이외의 다른 방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단지 세례라는 형식을 통해 천국행이 보장된다고 유혹하지만 전혀 성경에 근거가 없습니다.

마가 7/9 또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 자신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쉬
버리는도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명보다 자신들이 만든 유전과 전통을 더 따르는 유대 지도자를 비판했습니다.
세례는 구원 받은 다음 행하는 기념식이지, 구원의 보증이 될 수 없습니다.

요한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시니라.

고린도후서 13/5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스스로 입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못하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들이라.

요한 1/12 그러나 누구든지 그를 영접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즉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니라

마태 12/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그 사람이 나의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하시니라.

구원을 보증하는 것은 '거듭남'입니다.
온전히 거듭나 내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으면 언제 죽어도 천국행이 보장됩니다.
거듭나서 주님 뜻대로 사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고, 예수님의 형제요 자매입니다.
거듭나 주님 뜻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요, 주님의 형제가 되었으니 하늘나라에 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34. 화해 (Reconciliation)

하나님과 화해하게 된 카톨릭 신자는 동시에 카톨릭 교회와도 화해하게 된다고 교리문답서는 주장합니다.

죄를 용서받음으로써 하나님과 화해할 뿐 아니라 교회와도 화해한다. (제2편 p.535)

이러한 주장은 역으로 교회와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좋지 않게 됨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과의 화해만 강조하지 교회와의 화해는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며, 그 분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스스로 우리와 화해하셨고,
화해의 직분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골로새서 1/20 그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하여 화평을 이루고, 땅에 있는 것이나 하늘에 있는 것이나, 그에 의하여
모든 것이 자신과 화해하는 것이라.

화해란 안 좋았던 관계를 좋게하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시대에는 화목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좋게 하였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아지고 가까워 질 수 있습니다.
또한 십자가 보혈로 죄를 깨끗이 사함 받음으로써 죄로써 끊어졌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이어져 화해하게 됩니다.

에베소서 4/15~16 오직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우리가 모든 일에 성장하여 그에게 이르리니 그는 머리시며 곧
그리스도시라. 그로부터 온 몸이 각 부분의 분량 안에서의 효과적인 역사를 따라 각 마디를 통하여 공급을 받아
알맞게 결합되고 체격이 형성되어 몸을 성장시키며 사랑 안에서 몸 자체를 세워 가느니라.

에베소서 2/19~22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졌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귀중한 모퉁이돌이
되셨고 그분 안에서 건물 전체가 함께 알맞게 맞추어져 주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 가며 또한 그분 안에서
너희도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져 가고 있는 것이니라.

성경에서 구원과 관련해서 교회의 역할을 강조한 구절은 없습니다.
교회는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 거듭난 성도의 연합이자,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입니다.
신앙은 궁극적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이고, 예수님이 나의 유일한 중보자이며, 성령님은 나의 조력자이십니다.
구원은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리와 믿음과 죄사함과 거듭남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35. 독신생활 (Celibacy)

카톨릭은 사제와 수녀의 독신생활을 강요하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카톨릭의 전통일까요?

종신부제들을 제외하고 라틴 교회의 서품 받은 모든 봉사 직무자는 원칙적으로 독신으로 살고, 또 하늘 나라 때문에
독신생활을 계속할 의지를 가진 남성 신자들 가운데서 선발한다.
독신생활은 교회의 봉사 직무자가 봉사하도록 축성된 새로운 삶의 표징이다.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인 독신생활은 하나님 나라를 찬란하게 선포하는 것이다. (제3편 p.573)

카톨릭은 사제의 독신생활을 의무요, 축복이니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지도자 중 독신이 의무화된 직분은 없었습니다.

딤전 3/2 그러므로 감독은 반드시 책망 받을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여, 깨어 있으며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행실이 바르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는 재능이 있으며

사도 바울은 초대교회의 직분 중 하나인 감독(Bishops)이 한 아내의 남편이라고 한 점으로 보아 당시 결혼을
금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딤전 3/12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을 잘 다스릴지니라.

집사(Deacons) 또한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가정에 충실하라고 권고합니다.

히브리서 13/4 결혼은 모든 것 가운데 존귀한 것이요.

사도 바울은 결혼이 천하지 않고 존귀한 하나님의 축복이라 합니다.
물론 성직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만 섬기고 사랑하기 위해 결혼을 안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자율적으로 결정할 문제이지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사제의 독신 생활을 강요함으로써 미국에서는 사제의 어린이 성추문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스페인과 멕시코의 수녀원에서는 사제들과의 관계로 태어난 아기가 버려져 유기된 지하무덤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순리를 억지로 거스리기 때문에 일어나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마가 1/30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었으므로 사람들이 곧 그녀에 관하여 그 분께 아뢰매

천주교가 초대교황이라고 주장하는 사도 베드로는 결혼한 사람으로 성경에 장모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사람의 전통을 따르면 결국은 폐해를 드러내게 되 있습니다.

 

36 마지막 의례: 노자성사 (Last Rites)

마지막으로 살펴 볼 천주교의 교리는 죽기 전 천주교인이 행하는 노자성사입니다.

그리스도의 파스카 성사로서 성체는 언제나 지상 순례 길의 마지막 성사,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가기 위한
노자(路資)성사가 되어야 한다. (제2편  p.552)

마지막 의식은 죽어 가는 사람의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것입니다.
카톨릭은 노자성사가 생명의 씨앗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고 사람의 전통을 따르는 것입니다.
사도들 중 한사람도 노자성사를 받지 않았습니다.

마태 15/9 사람들의 명령들을 교리로 가르치니 내게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유대인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이 만든 교리를 중시하는 것을 한탄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만든 전통대로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은 헛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내 버리고, 사람이 만든 교리와 의식과 전통을 아무리 열심히 지켜도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이상으로 천주교와 기독교가 다른 36가지 이유를 말씀드렸습니다.
이 글을 통해 기독교의 교리를 더 확실히 이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하며, 에큐메니컬 운동의 미혹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한 천주교에 계신 분은 교리나 전통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시하여 온전한 구원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관련 사이트 :

http://www.oldfaith.net/

http://blog.daum.net/alphacourse

* 관련 자료:

세계교회협의회 제10차 총회, WCC 운동은 무엇인가?  

바벨탑 사건과 에큐메니칼 운동 (The Origin of Ecumenicalism)  

바티칸과 W.C.C.의 세계종교통합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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