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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흑암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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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정치사상

 

미국은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정부를 구성하고 있고,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국민이 직접 정치를 하는 직접 민주주의는 실현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국민이 선거로 뽑은
대표가 정치를 하는 공화국(
, republic)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순수 자본주의도 빈부격차나 독점 등 폐해가 심하기 때문에 국가가 기업에 대해 여러 규제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미국식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전파하기 위해 외국의 왕국, 공산주의 정권, 독재정권 등을 전쟁과
여러 수단으로 무너뜨려 왔습니다.
그러나 미국식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도 정치혼란, 경제혼란, 빈부격차, 재정적자, 무역적자, 사회범죄, 가정파괴 등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미국의 정치 외교 경제 문화 사상도 일치되지 않고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 우익세력과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개혁 좌익세력으로 나뉘어 있는 실정입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특정문제에 있어서 보수적 입장을 갖는 우익과 자유적 입장을 갖는 좌익의 대립이 일어나는데
미국은 그 대립이 어느나라보다 심하고 선명한 편입니다.

우익은 개인적으로는 이기적이고, 국가적으로는 애국적이며, 도덕적으로는 보수적이고, 사상적으로는 자유를 중시하며,
정치적으로는 수구적이고, 대외적으로는 고립적이며, 경제적으로는 성장위주이고, 반국가 반세금 반복지를 옹호합니다.
좌익은 개인적으로는 이타적이고, 국가적으로는 세계지향적이며, 도덕적으로는 자유적이고, 사상적으로는 평등을 중시하며,
정치적으로는 개혁적이고, 대외적으로는 협력적이며, 경제적으로는 분배위주이고, 친국가 친세금 친복지를 옹호합니다.

이러한 사상의 차이는 선천적 혹은 후천적으로 굳어진 개인의 성격과 성향에 따라 굳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개인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와 연령에 따라서도 영향을 받는데 부유계층과 특권층과 연로층은 우익을 선호하고
서민층과 지식층과 젊은층은 좌익을 선호합니다.
국가적으로 유럽국가들은 대부분 인권을 중시해 좌익을 선호하고, 미국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해 우익을 선호합니다.

미국의 지역적으로는 미국의 서부와 동부 해안지역은 민주당을 선호하고, 남부와 종교우파는 공화당을 선호합니다.
미국의 좌익세력은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과의 냉전대립과 테러와의 전쟁으로 세력이 많이 약화된 상태입니다.
미국은 개인의 자유를 극히 중시하기 때문에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총기소유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정치사상 중 특이한 경우는 극좌에서 극우로 전향한 신보수주의라는 대외 강경세력입니다.

 

 

 

* 목차

A. 공화당 계열

1. 공화당 보수본류

2. 차이나 로비파

3. 자유의지론

4. 종교우파

5. 신보수주의

 

B. 민주당 계열

1. 신자유주의

2. 행동과학

3. 자유파가 시도한 사회과학의 실패

4. 거대노조

5. 좌파 지식인과 자유파

 

 

A. 공화당 계열

1. 공화당 보수본류

18~19세기 영국에 귀족은 아니지만 공장이나 대농장을 경영해 사업에 성공한 신흥계급이 있었는데 그들을 신사족 즉
잰틀맨(Gentleman)이라 불렸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권리를 위해 국가와 귀족들과 대립했고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기를 원해 자유주의자(Liberals)라
불리었습니다.

현대의 자유주의자와는 달리 이들은 노동자계급이나 빈민의 생활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습니다.
에드먼드 버크와 같은 18세기 영국의 '고전적 자유주의자'(Classical Liberal) 사상이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빌 버클리 같은
'전통적 보수'(Traditional Conservative)가 되었습니다.
즉 이 과정에서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는 정 반대가 되어 영국의 좌파가 미국의 우파가 되었습니다.

건국 초부터 왕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미국에서는 영국과 같은 왕당파(Tory(토리), 귀족적 보수당)가 존재하지 않았고,
대신 영국의 자유당(Whig(휘그), 현재 자유민주당)의 전통이 미국으로 건너와 보수파인 공화당(The Republican Party)가
되었습니다.
노예해방을 이룩한 링컨 대통령도 공화당이었고, 공화당은 정계에서 연방주의자(Federalist, 중앙집권주의자)와 대립했습니다.

미국 보수주의의 대표인물인 윌리엄F. 버클리 2세(William Frank Buckly Jr.)가 창간하고 오랫동안 주필을 맡았던 '내셔널 리뷰'
지가 공화당 정치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고 '보수본류'(Traditional Conservative)를 형성했습니다.
그는 정치사상적으로는 버크주의자로 전통적인 질서와 사회윤리를 중시하며, 정부의 적절한 통제 아래 실현되는 정치·
경제질서의 안정을 주장합니다.

윌리엄 버클리는 예일대학 재학 당시인 1951년에 자유파와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예일 대학의 신과 인간'이란 책을 써서
유명해졌으며, 예일대학을 마친 후 CIA에서 1년 동안 일했습니다.
예일대학은 보수파의 대표적인 대학으로 CIA의 인력공급원 역할을 하고 조지 부시와 빌 클린턴도 예일 대학원을 나왔습니다.
이에 반해 급진 자유파의 대표적인 대학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버클리로 국방성의 자금지원을 받아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공화당 보수본류 사람들을 '전통 보수파'(Traditional Conservative)라고 하는데 반해 시카고 대학에서 고대 그리스 철학을
연구하는 레오 스트라우스파 사람들은 '고전 보수파'(Classical Conservative)라고 합니다.
시카고 학파의 창설자인 프리드리히 하예크는 고전 보수파로 분류되지만 자신은 신자유주의(New Liberalism)라고 한
이유는 스스로 19세기 유럽의 고전적 자유주의자의 계보를 이어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시하는 자유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민주당은 공화당의 자유주의자보다 더 급진적이고 과격한 자유주의자들이 20세기 초에 모여 형성되었습니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가장 큰 차이점은 공화당이 부유층의 이익을 대변하는데 비해 민주당은 사회적 약자의 이익을 대변하고,
공화당은 최소한의 윤리적 가치를 지키자는데 비해 민주당은 인간을 위해서는 그런 것은 필요 없다는 주의입니다.

 

공화당 내 근본보수파 중에는 반공우익단체인 '존 버치 협회'(Jhon Birch Society)가 있습니다.
존 버치는 미군 정보장교로 1930년대에 중국으로 건너가 장개석의 국민당과 함께 활동하던 중에 중국 공산당에게 암살당한
인물로 존 버치 협회는 그를 기념하여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초기 지도자는 반공주의자인 '래리 맥도널드'(Larry Mcdonald)였고, 현재 지도자는 '존 맥매너스'(Jhon Mcmanus)입니다.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소련과의 냉전이 시작되면서 존 버치 협회 회원이었던 '조지프 매카시'(Joseph McCarthy)
상원의원에 의해 공산주의자 색출 광풍인
매카시즘(McCathyism)이 휘몰아 쳤습니다.
그는 언론인과 문화인 뿐 아니라 소련과 중국에 대해 공감을 품고 있던 국무성 및 국방성 내의 진보파와 자유파, 뉴딜주의자인
공무원 및 군인들을 상원 국가안전보장위원회(The Senate Internal Security Committee) 내 소위원회 공청회에 출두시켜
신문을 가했습니다.

또한 하원 비(非)미활동조사위원회(The House Committee on UnAmerican Activity, HUAC) 조사를 통해 자유파 공무원들을
'공산주의자 숙청'(red purge)란 명목 아래 공직에서 추방했습니다.
이 과정 중에 '존 서비스'(John Service)와 '앨저 히스'(Alger Hiss) 등 국무성 관료들이 재판에 회부되어 투옥되었습니다.
매카시즘은 중국의 문화혁명처럼 비이성적인 정치선동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후로 대외강경론이 주류를 이루어 소련과의
불필요한 극한대립과 무한 군비경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존 버치 협회의 애국우익들은 유대인들이 세계지배의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음모이론(conspiracy theory)을 신봉합니다.
이들은 원래 공화당 내 강경 보수세력이자 고립주의자였는데 공화당마저 유대인이 장악하고 있다며 공화당을 탈당합니다.
1983년 대한항공 KAL 007 편이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에 의해 격추되었는데  이 배행기에 존 버치 협회 지도자인 래리
맥도널드가 탑승했기 때문에 회원들은 글로벌리스트들이 우리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2. 차이나 로비파

TIME(타임)과 LIFE(라이프) 지의 창설자 헨리 루스는 1930년대에 일본 군대가 만주와 중국을 침략하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 국민당을 열렬히 지원했습니다.
이로써 그는 '차이나 로비파'(반공, 타이완 독립지지파)의 주요 인물이 되는데 매파 상원의원 중 일부가 차이나 로비파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추천으로 하원의원이 된 헨리의 부인 클레어 부스 루스도 차이나 로비파인데 그녀는 보수파의 여결로
미국인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타임워너 CNN도 공화당 내 강경보수세력의 하나인 차이나 로비파인데 이들은 글로벌리스트 언론과 경쟁하고 있습니다.

 

 

 

3. 자유의지론

미국의 자유의지론(Libertarianism)은 극단적인 개인주의(Indivisualist) 사상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사회성을 부정하고, 남을 도와주거나 남으로부터 도움을 받지도 않겠다는 주의입니다.
미국 서부 개척시대에 총을 차고 다니며, 홀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사상입니다.
이들의 구호는 '국가 같은 것은 없어도 상관 없다.', '세금의 강제징수에 반대한다.', '대기업을 반대한다.', '외교적으로
고립주의를 주창한다.',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한다.', '국가나 사회에 의지하지 않는다.' 등입니다.

미국에서 자유의지론은 보수본류 못지 않은 큰 세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와 교류를 끊고 산 속에서 가족과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헐리우드 배우들은 대부분 좌파이지만 영화배우 존 웨인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배우들은 자유의지론적인 사상을
가지고 그에 걸맞는 작품에 출연하고 있습니다.

외교적으로 자유의지론자들은 외국문제에 간여하지 말고 국내 문제에만 신경쓰라는 주의입니다.
소련이나 공산주의는 경계하지만 무한한 군비경쟁을 벌이거나 해외에 군대를 주둔하고 전쟁을 벌이는 것을 반대합니다.
자유의지론자는 정부에서 국민으로부터 막대한 세금을 거두어 사회복지를 실시했지만 공무원 수만 늘리고 엄청난
재정적자를 초래했다고 불평합니다.

 

 

4. 종교우파

미국의 기독교인들 중 일부가 자유주의자에 맞서 '반 동성애운동'(Anti-gay)과 '반 임신중절운동'(Pro-life, 생명존중운동)을
주창하며 정치적으로 결집한 세력이 '종교우파'(Religious Right)입니다.
종교우파 운동은 1980년 복음전도파(Evangelist)의 종교가인 제리 팔웰(Jerry Falwell)의 '도덕적 다수파'(Moral Majority)
운동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팔웰은 임신중절을 여성의 권리라며 임신중절을 옹호하는 자유파 의원의 이름을 공포하며 이들에 대한 비판과 함께
이들을 선거에 낙선시키기 위한 운동에 나섰습니다.
종교우파 운동은 1980년대 선거에서 여성의 임신중절을 인정하는 지방의원들을 줄줄이 낙선시키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임신중절에 대한 논쟁은 현재까지 지속되어 미국의 국론을 둘로 가르고 있습니다.

종교우파의 최대조작은 '팻 로버트슨'(Pat Robertson) 목사가 이끌고 있는 '그리스도교 연합'으로 회원이 3백만명이나 됩니다.
팻 로버트슨은 침례교회(Baptist) 복음전도파 목사로 1990년대부터 '그리스도교 방송 네트워크'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이 단체를 무시하고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종교우파의 임신중절 반대운동은 간혹 과격해져서 폭력과 살인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1994년에는 장로파(Presbyterian)
교단으로부터 제명당한 목사가 임신중절 의사와 환자의 보호자를 습격해서 사살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태아의 생명존중파 사람들이 미국 각지의 '어보션 클리닉'(Abortion Clinic, 낙태시술을 전문으로 하는 의료시설)에 수백명씩
몰려가 병원을 포위하고 시위를 벌이거나 폭력을 행사해 경찰이 출동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태아의 생명을 지켜라'는 실력행사 운동은 '오퍼레이션 레스큐'(Operation Rescue, 구조 가동)이나 '레스큐 어메리카'
(Rescue America, 미국 구조)라는 단체에서 시작되었고, 지도자는 '키스 투시'(Keith Tucci) 목사입니다.
그들은 '낙태는 살인이다'라며 어보션 클리닉을 몇 번이나 공격해 재판에 회부되고 벌금형을 받았지만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에는 '텔레비언게리스트'(Televalgelist, TV 전도사)라고 불리며 복음전도파계의 독립일파를 이루는 단체가 있는데
이들은 '패밀리 밸류'(Family Value, 가족가치의 회복) 즉 '반듯한 가정생활을 영위하는 것을 중시하는 입장'을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을 대신자대회라는 큰 모임에서 설교를 하는데 이것을 TV로 중계합니다.
이 방송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서 미국의 '보수적 중산계급'(Middle American)을 매료시키고 있습니다.

TV 전도사로 유명한 사람은 '빌리 그레에엄'(Billy Graham), 오랄 로버츠(Oral Roberts), 지미 베이커(Jimmy Baker)와 같은
인물인데 서민층의 존경을 받았으나 훗날 사생활 스캔들로 신뢰를 잃고 대중 앞에서 거의 사라지게 됩니다.
이들은 대부분 에큐메니컬(Ecumenical, 전그리스도교 교회주의)라는 이름으로 기독교 여러 교단을 통합하는 모음에 소속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 감리파(Methodist)가 가장 큰 세력입니다.

 

 

5. 신보수주의

네오콘(Neocon)이라고도 불리는 미국의 강경 보수 우익을 신보수주의(Neo-Conservative)라고 합니다.
미국 우월주의적이고 군사 패권주의적인 이들은 강경하단 의미에서 매파(Hawks)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레이건 때부터 득세했던 신보수주의자들은 현재 미국 정권의 실세를 이루며 부시 대통령 측근에 포진하고 있습니다.
네오콘은 미국 위주의 세계질서를 추구하며, 미국의 안보와 국익에 저해되는 나라는 UN이나 타국의 동의 없이
군사력을 사용해서라도 붕괴시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신보수주의는 미국기업연구소(AEI)와 국제전력연구소(CSIS)를 중심으로 성장했고, 1997년 정치잡지 '위클리 스탠다드'의
편집장인 윌리엄 크리스톨이 만든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NAC: Project for the New America Century)란
프로젝트에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올포위츠 부장관, 리차드 펄 국방 정책 위원 등이 서명함으로써
공식 출범하였습니다.

PNAC는 창립 선언문 '원칙의 천명'(Statement of Principles)에서 강력한 군사력과 분명한 대외정책으로 세계 유일의
초 강대국인 미국의 패권을 수호하기 위해 결집해야 한다고 천명하였습니다.
그들은 오늘날의 이해관계(UN을 통한 평화 체제)와 맞지 않더라도 강한 군사력과 도덕적 선명성(Moral Clarity)을
추구했던 레이건의 대외정책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음 4가지 방안을 제시하였습니다.

1. 국방비를 대폭 증액하고, 군대를 첨단화해야 한다.
2. 동맹국과의 유대를 강화하고, 미국의 이익과 가치에 반하는 반대세력에 대해 단호히 대처한다.
3. 해외에서 미국의 정치·경제적 자유를 증진시킨다.
4. 미국의 안보와 번영, 원칙에 유리한 국제질서를 유지·확대하기 위한 미국의 역할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인다.

클린턴 대통령 당시 배척 당했던 네오콘들은 부시의 당선을 위해 힘을 결집했으며, 정권을 잡은 후에는 부시 행정부의
정책 수립 전반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911 테러로 크게 힘을 얻었고, PNAC 창립 선언문의 원칙은 국제사회의 동의 없는 이라크에 대한 선제공격과
북한 핵문제에 대한 강경 정책 선회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a) 인물

네오콘은 정계와 학계, 언론계 등에 뿌리 깊고 방대한 인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정계에는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존 볼튼 국무부 차관, 더글러스 페이스 국방부 차관, 엘리어트 애브럼스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
리처드 펄 전 국방자문위원장, CIA 국장 출신인 제임스 울시 국방부 국방정책위원회 위원,
리처드 루이스 리비 부통령 비서실장, 엘리엇 에브럼스 국가 안보 보좌관, 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부시 대통령의 동생)
등이 네오콘의 핵심멤버입니다.

더글러스 페이스
국방부 차관

리차드 펄
전 국방 자문 위원장

폴 월포이츠
국방부 부장관

럼스펠드
국방부 장관

딕 체니
부통령

딕 체니 부통령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등은 원래 전통적인 공화당 보수파였지만 이제 신보수주의자들에게
완전히 포섭된 상태입니다.
외교문제에 어두운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주위에 둘러싼 네오콘들의 의견에 따라 정책을 세우고 연설합니다.
이들에게 밀린 온건파 콜린 파월 미 국무부 장관은 물론 미 국방부의 직업군인들도 거의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계와 언론계에는 신보수주의 이론의 원조로 알려진 레오 스트라우스 전 시카고대 교수를 비롯해, 도널드 케이건 예일대
교수, 프랜시스 야마 존스 홉킨스 대학 학장, 신보수주의의 이론적 기관인 미국기업연구소(AEI)를 만든 어빙 크리스톨,
유엔 대사를 역임한 진 커크 패트릭, 신보수주의의 대표 잡지인 <위클리 스탠다드> 편집장 윌리엄 크리스톨,
<워싱턴 포스트>의 칼럼니스트 로버트 케이건, 엘리엇 코헨 존스홉킨스대 교수 등이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된 특성은 미국의 패권주의에 바탕을 둔 보수 강경 우익이라는 점입니다.
네오콘들은 언론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과격하고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미국의 친구가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논리를
타국에게 강요합니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 정계를 공산주의에 버금가는 과격하고 급진적인 사상을 가진 정치인들이 주름 잡았다는 것은 매우
우려할만한 일입니다.

 

b) 원류

미국은 전통적으로 공화당은 보수 우익적 성향을 가지고 있고, 민주당은 진보 좌익적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좌익이란 공산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나 사회보장, 인권 반전평화 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수 우익인 네오콘의 원류는 학창시절에 좌익 사회운동에 적극적이었던 민주당 계열의 급진 강경파였습니다.

여성으로 UN 대사를 역임한 바 있는 진 커크 패트릭 조지타운 대학 교수는 과거 민주당 급진 매파 출신으로 악의 제국
소련을 붕괴의 대상으로 여기고 미국이 군사적으로 우위에 설 수 있도록 군산복합체에 대한 행정부의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대표적인 네오콘입니다.
그녀는 레이건 전 행정부 당시 이념과 정책에서 공화당의 소장파 인사들과 교감하면서 공화당으로 당적을 바꿨으며,
유엔 대사와 미국기업연구소(AEI) 연구원을 역임하고 지금은 네오콘의 핵심 인사 중 한 사람으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조지타운대학에서 진 커크 패트릭 교수와 더불어 PNAC의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월터 라케어 교수도 같은 부류에
속합니다.
그 역시 레이건 행정부 당시 국무장관을 지냈으며 현재 극우 매파로 부시 행정부의 싱크탱크 중 한 사람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언론과 싱크탱크, 학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네오콘들은 젊었을 때 구소련을 증오하는 반공주의자들이었거나 일찍이 세계
각지의 분쟁에 대해 미국이 군사적으로 적극적인 개입을 바라는 ‘세계 경찰관(World Police)론’을 제기했습니다.

 

c) 사상

네오콘들의 사상적 뿌리는 미 정치 철학계의 거두로 불리는 고(故) 레오 스트라우스 시카고대학 교수입니다.
독일계 유대인인 그는 미국으로 이주하여 뉴스쿨과 시카고대학에서 정치학을 강의했습니다.
미·소 냉전시대의 절정기였던 1960~70년대에 대학 강단에서 그는 주로 “미국을 위시한 서방 유럽 동맹국들이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로부터 민주주의를 안전하게 지켜내기 위해서는 전 세계를 민주화해야 한다”면서 “서방 민주주의
국가들이 냉전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막강한 군사력뿐” 이라고 강의해 보수 성향의 청년들을 자극했습니다.

레오 스트라우스 교수의 바통을 이어받은 수제자는 앨럼 블룸 시카고대 교수로 그는 1980년대 초 저서 ‘미국 정신의 종말'
(The Closing of American Mind)을 통해 좌익 학자들이 대학에서 냉전시대의 안보 개념을 흐려놓아 민주주의 국가들을
무너뜨리려는 적들을 도와주고 있다고 질타했습니다.
1980년대 초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이 소련을 '악의 국가'라고 부르며 전방위로 압박해 결국 붕괴시켰던 것이
네오콘들에게는 '살아있는 교과서'입니다.

이러한 사상은 신흥 정치세력들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원동력이 됐고, 네오콘으로 형성되는 과정에서 정치적 기틀과 가치를
제공했습니다.
앨럼 블룸 교수의 직계 제자이자 PNAC 발기인 중 한 사람인 존스홉킨스대 학장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저서 ‘역사의
종말’에서 “전 세계가 결국에는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수용하게 될 것이며, 이로써 인류의 역사는 평화적으로 종결된다”는
미래지향적인 주장을 펴면서 네오콘들의 사상적 토대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들은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협세력'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미국에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는 세력'도 미리 선제공격해서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이른바 '예방공격' 또는 '예방전쟁'이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또한 각국의 평화와 질서보다 미국위주의 세계질서 확립과 이를 위한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할 것을 설파합니다.

 

d) 국방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라는 사실은 세계 군비의 절반을 차지하는 국방비로 증명됩니다.
6월 17일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서 발간한 연감에서 미국은 2002년 지출된 국방비가 무려 3360억 달러로 세계
전체의 43%를 차지했습니다.

국제평화연구소 앨리슨 베일스 소장은 연감 서문에 “슈퍼파워의 영향력을 확대해가는 미국이 지난 18개월 동안 세계 안보
개념을 지배했다. 이제 적대국은 물론 동맹국들까지 미국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우려하고 있다”며 부시 행정부의
실세인 네오콘들의 행보에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네오콘은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세계 패권의 영구 구축을 추구하며, 미국의 앞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은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당인 공화당 내에서도 급부상한 신흥 정치세력인 네오콘들을 반기는 정치인들은 그리 많지 않으며, 평화를 바라는
미국인들은 네오콘들을 경멸합니다.

워싱턴 정가를 주름잡고 있는 로비스트의 80% 이상이 군산복합체를 위해 일합니다.
군산복합체는 1991년 소련의 붕괴로 미·소 냉전시대가 종식되자 한때 사활의 기로에 서기도 했으나, 네오콘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다시 활기를 찾았습니다.
막강한 군사력의 보유를 바라는 네오콘과 군산복합체는 ‘대테러전과 악의 축 국가들의 체제 붕괴’라는 과제 아래 새로운
공생관계를 구축하게 되었습니다.

“적들이 제거될 때까지 전쟁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지론을 폈던 인물은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입니다.
이를 레이건 대통령이 계승했고, 지금은 부시 행정부를 장악한 네오콘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은 외교적 타협이 아니라 힘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여기고 있으며, 세계 여론이 자신들의 의지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정해진 표적을 향한 군사적 행동을 망설여서도 안 된다는 것이 네오콘들의 주장입니다.

이들은 이라크전쟁을 반대하며 세계 도처에서 벌어졌던 반전 시위를 어린아이들의 몽상으로, 유엔과 유럽연합의 반발을
거추장스러운 잔소리로 치부합니다.
이렇게 대외정책 노선에서 확연하게 ‘독자주의’ 또는 ‘일방주의’로 치닫다보니 같은 공화당 내에서도 네오콘들과 터줏대감격인
보수주의자들 간의 충돌 양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습니다.
 

 

d) 외교정책

지난 3월 17일 TV시청률이 가장 높은 북미 동부 표준시각(GMT) 저녁 8시. 미국의 TV방송들은 일제히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를 향해 사실상의 선전포고를 천명하는 최후통첩을 발표했습니다.
미 정치평론가들은 이를 두고 “미국의 역사를 가르는 분수령”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른바 ‘부시 독트린’이라 불리고 있는 부시 대통령의 이날 연설은 그동안 미국이 고수해온 대외정책의 틀을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상대방의 침공 없이도 선제공격을 하겠다고 공식화했고, 유엔 안보리의 동의 없이 미국이 독자적으로 전쟁을 수행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50년간 미국은 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 베트남전, 걸프전 등을 거치면서 ‘적대국의 선(先) 도발 없이는 선제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명분을 지켜 왔습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미국과 세계의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면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고 천명한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세계질서 구축과 국제평화’를 내세워 유엔 창설을 주도했던 미국이 오늘에 와서는 “유엔이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으므로 이제 우리가 나선다”며 강력한 힘으로 세계에 군림할 것을 공식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의 안보와 이익을 위해서라면 적대국의 침략이 없더라도 상대 정권을 붕괴하기 위해 압도적인 군사력을 동원하여
무너뜨려야 한다는 네오콘들의 주장과 일맥상통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전쟁에서 첫 희생양이 된 이라크는 무기력하게 정권의 붕괴뿐 아니라 유일한 자산인 석유마저 송두리째
미국에게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전쟁의 명분이었던 대량살상 무기를 발견하지 못함으로써 실수로 주권국가를 침략한 셈이 되었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첫 사냥에서 만족스러운 사냥감을 포획한 네오콘들은 지금 다음 표적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라크 전쟁 후 곧바로 다음 사냥감을 설정하기에 급급하던 네오콘들은 사담 후세인의 도피처로 거론된 시리아를 지목했다가
다시금 핵무기의 확산과 위협을 부각시키며 이란과 북한의 정권 및 체제 붕괴로 표적을 옮겨가고 있습니다.

한 예로 네오콘의 핵심 인물 중 한사람인 리처드 펄 미국방정책 위원장은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한 회의석상에서 “우리가
국제적 공조로 북한 핵문제를 해결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전제한 뒤 “1981년 6월 이스라엘이 이라크의 원자로를 폭격했던
것처럼 북한 영변 핵시설을 겨냥한 정밀폭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펄 위원장은 종종 PNAC의 홈페이지와 시사 주간지 『위클리 스탠더드』를 통해 “김정일 북한 정권 붕괴” 또는 “북한 해방”
이라는 발언을 공공연히 해 왔습니다.

최근 방한하여 한국의 국방비를 증액시킬 것을 국방부에 요구했던 울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도 “북한의 정권교체가 북핵
사태의 최종 해결책”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미국의 헤게모니를 굳건히 지키고자 하는 네오콘들이 북한을 바라보는 한결같은 정서입니다.

신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의 안전과 국가이익을 위해 △ 무력을 통한 국제 문제 해결 △ 국방비 증액 △ 미국의 안보와
번영을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국제질서 △ 유엔 등 국제기구의 무력화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네오콘들은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의 고립주의(미국의 국익에 직결되지 않는 한 개입하지 않음)도 배격합니다.
이는 그동안 UN을 중심으로 유지되온 국제질서를 무너뜨리고, 미국을 중심으로한 제국을 건설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e) 언론 지원

신보수주의자들은 <월 스트리트 저널>이나 <워싱턴 타임스> 같은 보수 매체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특히 네오콘의 ‘바이블’로 통하는 시사 주간지
<위클리 스탠더드>는 발행 부수는 5만5천에 불과하지만, 이 잡지가 배포되는
매주 월요일이면 체니 부통령이 30부를 구입해 부하 직원들에게 읽힐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합니다.
헤리티지 재단의 존 헐스먼 연구원은 이 잡지를 부시 행정부의 기관지라고 꼬집었습니다.
 

미국의 정치 외교 잡지 위클리 스텐더드의 표지

위클리 스탠더드의 편집장 월리엄 크리스톨

텔레비전 방송의 시사 대담 프로도 신보수주의자들의 주요 활동 마당입니다.
대담 프로의 단골 손님으로는 <위클리 스탠더드> 편집인 빌 크리스톨을 비롯해 <워싱턴 타임스> 칼럼니스트 프랭크 개프니,
<워싱턴 포스트> 칼럼니스트 찰스 크라우새머, 보수 칼럼니스트 칼 토머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 로버트 케이건
등이 있습니다.

 

f) 친 이스라엘 정책

1974년 설립된 친 이스라엘 로비 조직인 '유태인 국가 안보 연구소'(JINSA)도 네오콘과 깊은 관계를 갖습니다.
JINSA는 체니 부통령, 페이스 국방 차관, 볼턴 국무 차관을 이사진으로 두었을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이 조직은 매년 상당한 예산을 들여 미군 퇴역 장성을 이스라엘로 보내 '친 이스라엘 맨'으로 교육시킵니다.
미국의 이라크 군정 책임자인 제이 가너 예비역 중장도 이 프로그램의 수혜자입니다.

현재 중동지역에서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공개적으로 확인된 나라는 400개의 핵탄두와 화학무기 등을
가진 이스라엘뿐입니다.
신보수주의자들은 이스라엘의 '확인된' 대량살상무기에는 눈을 감은 채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은 아랍국의 대량살상무기를
찾아 새로운 전쟁을 일으키는 데는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B. 민주당 계열

1. 신자유주의

원래 민주당을 중심으로한 자유주의는 대내적으로는 복지정책을, 대외적으로는 자유무역을 옹호합니다.
그러나 복지정책은 과도한 세금과 재정적자를 가져왔고, 자유무역은 엄청난 무역적자를 일으켰습니다.

따라서 공화당 내 온건파 혁신정책사상인 '잭 캠프'(Jack Kemp) 등의 공급자중시파는 '감세와 규제완화에 의한 자유경제
활성화'를 외치면서 공급자 중시 경제학을 주장했습니다.
1980년대 불황에 허덕이던 미국경제를 회복시키는 방법으로 공화당은 '재정적자 해결을 위해 선심성 복지정책에 반대하고
평등주의에 반대한다고.'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민주당에서 제시한 것이 신자유주의(Neo-Liberal)입니다.

신자유주의를 주장하는 학자로 MIT 교수인 '레스터 서로'(Lester Thurrow)는 정부의 기업에 대한 무분별한 보조금 지급을
비판했고, 이론가인 로버트 라이슈는 미국의 정도를 넘어선 복지정책을 비판했습니다.
신자유주의를 주창하는 정치인으로는 '리처드 게파트'(Richard Gephardt) 상원의원, '빌 브래들리'(Bill Bradly) 상원의원,
'게리 하트'(Gary Hart) 전 민주당 대통령 후보,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한(Daniel Patrick Moynihan) 상원의원 등입니다.

신자유주의 그룹의 다수는 과거 클린턴 정권의 핵심부에 포진해 있었습니다.
클린턴 정권은 공화당으로부터 많은 정책을 참고했는데 '건강보험제도', '경비삭감과 적자감소', '감세정책', '규제강화로 인한
범죄 줄이기' 등이며, 중도노선(초당파 정치)을 걷게 되었습니다.

클린턴 정권에 참여한 신자유주의 그룹의 관료 가운데 통상문제를 담당한 '미키 캔더'(Mickey Kentor)는 일본이 오랫동안
미국에 무임승차를 했다며 일본의 안전을 보장해준 대가를 청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클린턴 정권은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무역적자를 외교교섭을 통한 정치적인 압력으로 줄여보겠다는 산업정책론을
실행했습니다.

이를 제도화한 것이 ESC(Economic Security Council, 경제안전보장회의)이고, 이를 추진해 나가는 과정에서 NEC(National
Economic Council, 국가경제회의)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훗날 클린턴은 NEC의 규모를 확대하여 최고국방회의와 같은 NSC(National Security Council, 국가안전보장회의) 수준으로
격상시켜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무역은 경제행위이기 때문에 국제경제학의 대상이지 국제정치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세계경제의 흐름을 국제정치적으로 바꾸기 어렵기 때문에 NEC의 전략에 대해 공화당은 처음부터 무리한 발상이라고 공격했고,
NEC 역시 거대한 무역적자를 해결할 묘안을 갖지 못했습니다.

미키 캔더는 NEC의 구성원이자 대일교섭 책임자로 '미국통상부대표'(USTR: U.S. Trade Representative)를 역임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일본과의 통상협상은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일본은 회담에 불성실하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워런 크리스토퍼 전 국무장관도 일본과의 교섭실패와 몇가지 일이 계기가 되어 결국 사임하게 됩니다.

USTR이 별 진전을 이루지 못하자 미국 재무성이 전면에 나서 일본과 동아시아의 금융부문에 직접공격을 가하는
'금융봉쇄전략'을 취했고, 일본과 동아시아는 금융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로버트 루빈'(Robert Rubin) 전 재무장관은 뉴욕의 유대계 금융회사인 골드만 삭스의 CEO(최고경영책임자)를 거쳐
클린턴 정권에 참여한 인물입니다.

일본과의 교섭을 배후에서 담당했던 신자유주의 경제학자이자 IIE(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 국제경제연구소)
소장인 '프레드 버그스텐'(Fred Bergsten)은 93년 2월에 "1달러가 곧 100엔을 밑돌게 될 것이다."라고 언급했는데
이는 곧 실현되었습니다.

라이슈, 서로, 버그스텐 등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국제정치를 이용해 국제경제 문제를 해결하자는
'산업정책론'(Industrial Policy)입니다.
수입품이나 외국기업에 중과세를 실시해 보호무역에 가까운 산업정책론은 일자리를 지키기를 원하는 미국 내 대기업 노조
간부로부터 큰 지지를 받게 됩니다.

고립주의자인 뷰캐넌은 "미국은 세계를 재패하겠다는 의식을 버리고, 보호무역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그룹의 '애드워드 루트워크'(Edward Luttwak)는 "미국이 이대로 가면 제3세계 도시와 같은 황폐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했고, EPI(Economic Policy Institute, 경제정책연구소) 연구원인 '로버트 커트너'는 "미국은 자유무역을 논할 여유가
없어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물리는 관리무역체제로 돌아가야 한다. 유럽이나 일본은 원래 자유무역국가가 아니라 중상주의
국가인데 미국이 시장을 개방하면 한 없이 밀고 들어와 마음대로 장사하는 등 미국의 부를 뺏어갈 것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리처드 A. 케파트'(Richard A. Gephardt) 민주당 하원의원은 1988년 무역문제에 대한 '게파트 수정법안'(Gephardt
Amendment)을 제출했는데 이 법안은 미국 국내산업 보호를 위한 보호무역적인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
법안의 내용은 "미국과의 무역에서 수출이 수입을 55% 이상 초과하는 나라에 대해서는 수출시 25%의 과징금을 부과한다."인데
이후의 '포괄적무역법안 수퍼301조(super301)'는 이 법안이 구체화된 것입니다.

 

 

2. 행동과학

사회과학은 인간사회에 대해 이성적으로 분석해 일관된 법칙을 발견하고 인간사회의 구조를 밝히는 학문입니다.
미국에서 심리학자, 이론경제학자, 정치학자를 사회과학자(Social Scientist)라고 부릅니다.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유럽에서 가장 학문이 발달했던 독일의 과학자와 사회과학자들이 미국으로 이주합니다.
하예크, 슘페터, 아인슈타인 등이 그들이며 2세인 프리드먼, 키신저, 브레진스키 등 같은 인물들도 있습니다.

1950년대에 들어서 미국도 독자적인 학문을 구축하는데 이른바 행동과학(Behavioral Science)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행동과학은 여러 학문의 토대가 되는 '방법의 체계'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행동과학의 출발점은 '버러스 F. 스키너'(Burrhus Frederic Skinner, 1904~1990)라는 심리학자입니다.

미국의 사이콜로지(Psychology, 심리학)은 단순히 인간의 심리나 정신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로서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엄밀하게 정리하고 거기에서 객관적인 법칙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스키너는 생쥐의 활동을 철저히 관찰하고 기록 및 분석한 결과에서 여러 법칙을 발견하고 정리하였습니다.

그것은 연구대상을 ①측정하고 ②실험 및 조사분석해서 ③데이터 처리하는 방법으로 완성되었고, 이 방법학(Methodology)이
확대되어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에도 적용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미국의 행동과학이라는 학문(과학) 혁명의 시작입니다.
1960년대 미국은 이 행동과학으로 전세계의 학자들을 매료시켰고, 그 업적이 높이 평가 받게 되었습니다.

행동과학이라는 방법학이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된 분야는 미국의 이론경제학입니다.
케인스(Keynes)의 거시경제학을 힉스(Hicks)와 새뮤얼슨(Samuelson)이 잘 다듬은 결과 객관적인 체계를 갖춘 과학이
될 수 있었습니다.
반면 행동과학의 원조인 사이콜로지는 연구에 매진하는 학자가 없어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정체됩니다.

이론경제학의 성과들은 사회학에도 영향을 끼쳤는데 미국 사회학을 대성시킨 인물은 '톨콧 파슨스'(Tolcott Parsons)입니다.
미국에서 그는 독일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의 저서를 영어로 번역한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파슨스는 행동과학에 기초해서 사회학 역시 경제학처럼 인간사회의 구조를 완전히 설명하기 위한 학문으로서 참된 과학의
형태로 만들어 보겠다는 의욕을 가지게 됩니다.

그는 1950년대에 많은 논문을 발표하여 주목을 받았고, 미국 사회학의 정통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파슨스가 쓴 '구조기능분석'이란 연구내용은 그후 30년동안 별로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이 이론으로 인간사회를 해부해서 그 중증을 치료할 수 없었고, 이것은 미국 사회과학계 전체가 안고 있는 비극이 되었습니다.

행동과학이 경제학 이외에 효과적으로 응용되어 큰 성과를 거둔 분양는 컴퓨터 분야로 놀랄 만한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컴퓨터, 현금자동지급기, 게임기, 인터넷 등이 컴퓨터과학(인공지능공학, 인지과학)의 성과입니다.

초기의 컴퓨터과학 학자는 '요한 루트비히 폰 노이만'(Johann Ludwig von Neumann)으로 컴퓨터의 연구개발은 그가 쓴
'게임의 이론'(Theory of Games and Economic Behavior)(1948)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IBM, NEC, 후지쓰 등에서 만들어내는 컴퓨터는 초대형에서 초소형까지 모두 '노이만형 컴퓨터'에 속합니다.

1960년대에 미국의 행동과학자들은 미국정치에 참여하여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에 옮겨 미국사회를 개혁해 보려고 시도합니다.
이러한 배경하에 민주당의 신자유주의 그룹이라는 현실정치에 관여하는 진보파 지식인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 후 존슨 대통령 시절에 등장했고, 이 시기를 기점으로 미국의 정치사상은 크게 달라집니다.
그러나 이들은 결국 실패하고 맙니다.

 

 

3. 자유파가 시도한 사회과학의 실패

민주당 계열의 자유파는 인권과 복지를 우선하고, 사회적 약자의 구제를 최대의 가치로 삼고 있습니다.
이들은 또한 학문(과학)의 힘으로 현실사회의 병리현상을 치료할 수 있다는 사회과학의 신봉자입니다.
그러나 최근 30년 동안 자유파의 이상은 처절한 실패를 거듭해 현실을 무시한 이상주의자라는 혹평을 들어야 했습니다.
복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늘어나지만 세금은 늘지 않아 국가가 엄청난 재정적자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자유파 학자와 정치인들은 1985년 commontary(코맨터리, 논평)지에서 "미국의 행동과학에 기초한 사회과학의
여러 이론을 정책으로서 현실사회에 적용해 보았지만 결국 생각했던 것처럼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고백을 실었습니다.
이때부터 미국의 자유파 지식인 세계에 자기 환멸과 쇠퇴가 시작되었고, 자유파 정치세력도 쇠퇴하였습니다.
60~70년대에 득세하던 자유파가 쇠퇴하자 80~90년대부터 가족간의 유대를 중시하는 보수파 세력이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자유주의는 행동과학이라는 과학주의 외에도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 '존 듀이'(Jhon Dewey,
1859~1952)의 실용주의 철학에 그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Pragmatism(프래그머티즘, 미국의 실용주의 사상)은 유럽의 아리스토텔리스의 형이상학에 반대하여 눈 앞의 현실부터
출발하자는 입장입니다.

그것은 '자유방임교육'이나 '어린이의 자유의사 존중' 등 실험주의적 사고훈련 사상입니다.
존 듀이의 교육론에는 자유파의 이상주의가 강하게 내재되어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과 한국의 교육이 황폐하게 된 책임 중 일부는 존 듀이를 비롯한 실용주의 학자들의 자유주의 교육학에 있습니다.
인간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자유와 평등이 주어진다고 행복해지거나 사회병리가 해결되지 않는 미묘한 존재입니다.

민주당의 자유파가 실패했다고 공화당의 보수파가 완전히 승리한 것은 아닙니다.
보수파 정치가도 사회복지를 반대하는 발언을 하면 즉각 엄청난 비난을 받고 실각하게 됩니다.
정부가 국민에게 어떤 권리를 주는 것은 쉽지만 주어진 권리를 다시 빼앗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현재 공화당도 세금을 더 거두어야 할 부자들의 세금을 감면해주고, 엄청난 군비를 지출하는 등 실정을 하고 있습니다.

 

 

4. 거대노조

민주당도 거대노조의 지원을 받는 민주 우파와 자유파 지식인과 학생 등의 지원을 받는 민주 좌파로 나뉩니다.
미국에는 전미자동차노조(UAW, United Auto Workers), 철강노동자합, 전미트럭노조 등 대단위 노조가 존재하는데
이들은 민주당을 지지합니다.
미국 농산물의 중심지인 시카고의 유통관계 대단위 노동조합도 민주당을 지지합니다.

미국은 기업별로 작은 노동조합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동일 직종의 노동자들이 기업횡적으로 연결하여 직종별 조합을 만듭니다.
이는 장인조합(Trade union)의 전통에서 출발한 것인데 우리나라의 금속노조연맹 같은 것입니다.
미국의 노동조합은 '동일 직종의 동일 임금 규칙'을 지키려고 하며 철도노동조합이나 트럭노동조합은 옛날부터 거칠었습니다.
최근 미국 최대의 자동차 업체인 GM은 회사측의 직원가족에 대한 의료비 지출부담으로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5. 좌파 지식인과 자유파

1919년 모스크바에서 있었던 제3인터내셔널이라는 공산주의 운동이 전세계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미국에서도 공산당이
들어서게 됩니다.
미국의 공산당이 그들의 의도와 활동을 알라고자 만든 당 기관지가 1934년에 창간된 '파티션 리뷰'(Partition Review)지이며,
좌파 지식인들은 파티션 리뷰지를 중심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그러나 소련의 국내 정치탄압과 수용소를 이용한 공포정치의 실태가 서방에 알려지면서 미국의 좌파 지식인 내부에서는
격렬한 동의와 회의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파티션 리뷰'지는 1950년대부터 반소련(반스탈린주의) 독립좌파의 입장으로 편집방향을 바꾸었고,
현재까지 많은 미국 지식인의 사랑을 받으며 고급 언론지로서 자리잡고 있습니다.

뉴욕의 좌파 지식인들이 모여 있는 곳은 뉴욕 서쪽 110번지에 있는 컬럼비아 대학 주변으로 '파티션 리뷰'지의 편집부도
과거에 이곳에 있었으며, 현재는 매사추세츠주의 보스턴 대학 내로 옮겼습니다.
뉴욕에 있는 급진 좌파 지식인들은 반소련·반자본주의 성향으로 뉴욕의 문예와 정치평론계를 주도하였고, 이 뉴욕의
좌파 성향을 지닌 엘리트들의 모임은 '가족'이라고 불리웠습니다.

'파티션 리뷰'지로부터 분리되어 나간 사람들이 1960년대에 만든 그룹이 극좌에서 극우로 전향한 신보수주의입니다.
노먼 포도레츠는 '파디션 리뷰'지의 편집원칙을 놓고 논쟁을 벌인 후 뛰쳐 나가 '코멘터리'지를 창간했습니다.
크리스톨은 '퍼블릭 인터레스트'지와 '네셔널 인터레스트'지라는 신보수주의를 대표하는 언론지를 창간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소련 공산주의를 증오하고 무너뜨려야한다는 열정을 가지고 강경한 주장을 하게 됩니다.

 

좌파 지식인 중 대표적인 인물은 미국 외교정책에 대한 비판서적으로 유명한 '노암 촘스키'(Noam Chomsky)입니다.
그는 원래 언어학자로 하버드 대학에 있다 현재는 MIT로 옮긴 상태입니다.
그는 '생성변형 문법학'(Generative Transformational Grammar)이라는 현대 영어 문법학에 있어서 중요한 계통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는 모든 언어에는 그 언어를 성립시키는 심층구조가 있고, 그것은 어떤 언어이든 간에 공통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그것을 발견하면 언어의 수수께기가 폴리는 동시에 인류의 보편언어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아직
보편언어는 발견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는 10권의 난해한 문법서를 써냈고, 미국 영어 문법학계를 석권하고 있으며, 많은 학생들이 그의 문법서를 읽고 있습니다.

촘스키는 1960년대부터 베트남에 대한 반전학생운동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미국의 반전운동 단체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유대계로 미국 내의 출판사가 받아주지 않자 런던에서 출판된 그의 정치 저작물은 전세계 자유파 청년들 사이에
널리 읽혀지고 있습니다.

 

자유파 운동 중 하나인 여성해방운동은 1970년대까지는 위민즈 립(Women's Lib)으로 불렸으나 곧 패미니스트(Feminist)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현재는 NOW(National Organization For Women, 전미여성동맹)가 패미니스트 운동의 최대 그룹입니다.
이 NOW는 1966년 배티 프리던이 만들었는데 그녀의 대표작은 '여성의 신비', '그것으로 나의 인생은 바뀌었다' 등입니다.

NOW는 '글로리아 스테이넘'(Gloria Stenem)이라는 여성 편집장을 만남으로써 미즈(Ms.)라는 잡지를 통해 여성운동에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NOW의 현재 회장은 패트리새 아일랜드와 클라디우스 웨더로 그들은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당당히 밝히고 있습니다.
여성해방운동가들은 사회와 가정에서 여성의 권리에 대해 주장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에 미국의 학생운동가들은 소비자운동이나 환경보호운동에 주력하게 됩니다.
대학 내에서 자치활동이나 소비생활 협동조합운동에 종사하던 학생들이 '공공의 시민'(Public Citizen)과 '대중의 주장'
(Common Cause)라는 큰 소비자 운동단체를 결성하게 됩니다.
이들은 민주당 내 급진자유파의 주력세력이자 활동적인 정치로비 단체입니다.

그린피스(GreenPease)는 세계 환경보호 운동에 상당히 적극적인 성향을 띠는 단체로 직접행동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린피스도 원래 대학 내 소비생활운동을 하던 활동가들이 결성한 집단입니다.
그들은 포경금지운동, 원자력발전소 반대운동, 플루토늄저장 반대운동 등을 벌이고 있습니다.

 

* 참고서적 : 누가 미국을 움직이는가 (소에지마 다카히코, 들녘)

* 관련기사 : 美정당 ‘이념분파’ 알아야 대미 외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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