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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콘트라 사건

 

1986년 불거진 미국 레이건 행정부의 스캔들로 미 정부가 레바논의 친(親)이란 무장단체에 납치된 미국인을 구하기 위해 '적대국' 이란에 무기를 팔고 그 대금으로 니카라과의 콘트라반군을 지원하다 들통난 사건이다.

85년 당시 미국 정부는 과격 무장단체에 의해 레바논에 억류된 미국인 인질 석방 주선을 대가로 테러집단의 후원자인 이란에 고성능 미사일을 판매했다. 수천t의 무기가 이스라엘을 거쳐 이란에수출됐고 인질들은 하나 둘씩 석방됐다. 그리고 무기 판매 대금으로 미 의회가 인준을 거부하는 니카라과의 공산정권에 대항하는 콘트라 반군을 비밀리에 불법 지원했다.

1986년 10월 니카라과 정부군은 미국 민간항공 화물기 한 대를 격추시켰고 화물기 생존자는 자신이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에 의해 고용됐으며 니카라과 콘트라 반군을 지원할 군수물자를 싣고가던 중 이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한달 뒤 레바논의 한 신문이 미국산 무기의 이란 유출을 폭로했다.

이는 당시 이란은 미국의 무기수출 금지국으로 묶여있었던 것과 인질 석방을 위해 테러범들과 흥정하지 않는다는 당시 미 외교의 대원칙을 깬 동시에 반군에 대한 군수지원을 금지한 법(블랜드 수정헌법)을 어겼다는 점에서 대내외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으며,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사임 일보 직전까지 몰고 갔다.

미 의회는 특별조사위원회와 합동청문회를 통해 진상 파악에 나섰고, 12월 미 역사상 7번째 특별검사로 로런스 월시가 임명됐다. 로런스 윌리 검사는 레이건과 부시 정권으로부터 온갖 압박을 받아가면서도 수사를 강행, 88년 레이건 대통령의 안보보좌관 존 포인덱스터, 롭트 맥팔레인 및 올리버 노스 국가안보회의 보좌관 등 핵심 측근들을 기소했다.

그러나 포인덱스터와 노스의 묵비권 행사,행정부 각료들의 정보 공개 유보,문서 파기 등 조직적인 사건 은폐에 부딪혀 본질을 파헤치는데 실패했다. 1992년 부시 당시 대통령은 관련자 모두를 사면하였는데, 정계일각에선 부시 대통령의 사면조치후 『부시 자신이 이란­콘트라사건에 깊숙이 관여했음을 자인한 꼴』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 목차

1. 니카라과 [Nicaragua]

2.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

3. 콘트라 [Contra]

4. 사건 개요-1

5. 사건 개요-2

6. 사건 개요-3

 

1. 니카라과 [Nicaragua]

중앙 아메리카 중부에 있는 공화국

면적은 13만 373㎢, 인구는 548만 2000명(2003)이다. 인구밀도는 42.1명/㎢(2003)이다. 정식명칭은 니카라과 공화국이다. 수도는 마나구아이고, 공용어로 에스파냐어를 사용한다. 북쪽으로 온두라스, 남쪽으로 코스타리카와 국경을 접한다. 국명은 니카라과호(湖) 호반에 살던 인디언 부족의 추장(酋長) 니카라오(Nicarao)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2.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

1979년 7월 소모사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니카라과의 사회주의자 및 민족주의자들의 정당.

산디니스타는 1927~1933년 반미 ·반정부 게릴라투쟁을 벌였던 산디노(Augusto Csar Sandino)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이 단체는 1962년 아마도(Carlos Fonseca Amador)를 중심으로 소모사의 독재와 미국독점자본의 지배에 반대하는 소규모 무장조직들이 모여 결성되었으나, 1970년대 초반까지도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지 못하고 간헐적으로 반독재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978년을 계기로 반독재진영의 중심으로 급속히 성장하여 이듬해 소모사정권을 타도하고 혁명정부를 수립하였다.

혁명정부는 설탕분배의 국유화를 포함한 경제계획과 농업협동조합의 국가관리, 산업국유화에 따른 제한정책, 토지개혁정책 등을 실시하였다. 1985년 구성된 국회에서 산디니스타는 절대 다수를 차지하였고, 초대 대통령으로 오르테가(Daniel Ortega Saavedra)를 선출하였다. 그러나 1990년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은 차모로(Violeta Barrios de Chamorro)에게 패배하였고, 1995년 현재는 당내 온건파들이 탈퇴하여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3. 콘트라 [Contra]

Contrarevolucionario(반혁명분자) 또는 Contrarevolucion(반혁명)의 약어이다. 1979년 니카라과에서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FSLN)의 혁명이 성공하여 소모사정권이 붕괴되고 산디니스타 좌익정부가 수립된 이후, 반혁명 세력들은 온두라스와 코스타리카에서 반군을 조직하고 니카라과에 대한 무력침공을 꾀하였다.

콘트라 반군은 크게 두 세력이 주축이 되었다. 주로 혁명에 의해 타도대상이 되었던 소모사일가 독재체제의 잔당으로 구성된 니카라과민주세력(FDN)이 온두라스에서, 혁명과정에서 배반한 로베로를 지도자로 하는 혁명민주동맹(ARDE)이 코스타리카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아 혁명정부를 전복하기 위한 전쟁준비를 했다. 당시 미국은 쿠바의 공산화 이후 남미 각국에서 친미적인 정부에 대항하는 혁명세력의 활동이 왕성해지면서 남미 전체가 공산화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는 상황이었다. 이 시점에서 산디니스타 정권이 엘살바도르 반군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온두라스와 코스타리카에 대한 군사공격까지 불사하면서 남미의 혁명세력을 지원하는 행위는 미국을 더욱 자극하는 것이었다.

1981년 9월 미국은 콘트라반군에게 자금공급, 산디니스타군의 이동 및 위치에 관한 정보제공, 통신수단을 이용한 지원 등 간접적인 지원을 시작했다. 그후 1986년에 ‘콘트라 원조 1억 달러 법안’이 하원에서 통과되면서 군조직 및 장비지원과 같은 직접적인 지원을 공공연하게 행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1986년 11월 미국이 레바논에 억류된 인질을 석방할 목적으로 비밀리에 이란에게 무기를 밀매하였는데, 그 수익금의 일부가 콘트라에 대한 지원에 전용되었던 ‘이란-콘트라 사건’이 폭로되어 당시 레이건 정권에 최대의 시련을 안겨주기도 했다.

콘트라 반군은 1988년 3월 산디니스타 정부와 휴전협정을 체결한 뒤 온두라스 국경지대로 물러나 별다른 군사작전을 벌이지 않은 채 은둔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1989년 9월 7일 온두라스 텔라에서 중미 5개국(온두라스,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코스타리카, 과테말라)의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열고 중미평화정착을 위해 콘트라 해체방법 및 시한 등에 관해 합의하였다. 결국, 1990년 2월에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친미·보수세력을 대표하는 차모로가 당선되면서 그 존재가치를 잃게 된 콘트라 반군은 곧 해체되었다.

 

 

4. 사건 개요-1

레이건 행정부 시절인 1986년 10월 터진 이 사건은 이란에 잡힌 미국인 인질을 풀어주는 대가로 미국이 대통령 승인하에 이란에 판매금지된 무기를 밀수출하고,수출대금을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한 반군 게릴라(콘트라)에게 지원한 일이었다.

사건의 전모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자 미국 의회는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상하 양원 합동청문회를 열었다. 그러나 비밀공작의 주역이던 국가안보국(NSA) 소속 올리버 노스 해군 중령은 묵비권으로 일관했다. 통치 차원의 외교행위라는 논리였다. 미국 법원은 통치행위라도 적법절차를 지키지 않으면 위헌이라며,노스 중령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레이건 대통령은 노스 중령이 모든 것을 뒤집어쓰는 바람에 탄핵을 면할 수 있었다.

올리버 노스 중령은 레이건 행정부때 정부에서 일하던 군인입니다. 소위 말하는 이란콘트라 사건의 주역입니다.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당시 미국은 이란과 적대관계였습니다. 그리고 중남미의 니카라과에는 반미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당시 미국은 니카라과의 친미 반정부 세력인 콘트라를 지원하기 위해 많은 돈을 썼는데 합법적으로는 반정부세력에게 돈을 줄 수 없었기 때문에 이란에 몰래 무기를 팔고 그 돈을 비밀리에 니카라과의 반정부세력에게 주었습니다.

1986년에 이러한 미국의 이중적 정책이 드러나면서 미국 정가가 발칵 뒤집혀졌습니다. 의회에서는 조사단을 구성해서 레이건 대통령이 여기에 연루되었는가 조사했지만 대통령이 사전에 알고있었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실무를 맡고 있던 올리버 노스 중령 등을 기소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스 중령은 대통령을 대신해서 희생양이 되었다고 믿었지만 대통령이 개입되었다는 증거가 없었고, 노스 중령이 스스로 죄를 뒤집어썼기 때문에 더이상 사건이 확대되지는 않았습니다.

 

 

5. 사건 개요-2

 이란-콘트라 사건은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가 미국 의회가 통과시킨 두 개의 법을 어기고 진행시킨 비밀공작이었다. 먼저 미국은 스스로 테러국가로 지목한 나라에 대해서는 무기를 판매할 수 없도록 하고 있었다. 그러나 레이건의 승인 하에 백악관의 국가안보회의 의장인 안보담당 보좌관의 지휘 하에 이란에 무기를 판매했다. 두 번째로 이란-콘트라 사건은 그 무기 판매 이익금을 중미의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사회주의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반란활동을 하고 있던 콘트라 반군에게 자금을 지원한 것이었다.

1979년 7월 19일 니카라과 혁명은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FSLN)의 지도 아래 최종적인 승리를 획득했다. 1962년 카를로스 폰세카 아마도르, 토마스 보르헤를 중심으로 FSLN이 결성된 지 18년만이었다. 이것으로 하여 45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친 소모사 일족의 독재적 지배는 종지부를 찍었다.

니카라과는 오랫동안 미군의 점령 하에 있었다. 그 시기에 점령군의 지원을 받는 보수당과 미해병대의 철수를 요구하는 자유당의 격렬한 내전이 전개되었다. 즉 점령군과 해방군 사이의 내전이 진행된 것이다. 내전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32년 점령군 철수에 대비한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는데, 그 시기는 니카라과의 민족해방 투쟁이 승리하여 점령군이 철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귀결되고 있어서 미국의 니카라과 정책이 전환을 하는 시기였다. 그러나 선거 실시에 즈음하여 미국은 한가지 조건을 부과했는데, 그것은 점령군의 철수 후 이를 대신할 국가경비대를 설립한다는 것이었다. 선거에서는 예상대로 자유당의 사카사가 당선되었다. 그리고 초대 국가경비대 장관에는 사카사의 조카인 소모사가 임명되었다. 1933년 1월 미해병대의 철수가 완료되고 평화협정이 성립되었다. 이에 따라 해방군은 즉각 무장해제 되었다. 또한 평화협정의 체결에도 불구하고 국가경비대 설립에 강한 불안감을 느껴 항전을 계속 주장했던 산디노가 국가경비대에 납치,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산디노는 해방군을 이끌었던 지도자로서 비록 미군이 철수하였지만 국가경비대라는 개량적인 형태로 니카라과에 대한 지배를 계속 유지하려는 미국의 속셈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산디노의 존재는 미국에게 있어서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으리라. 사카사 정권이 국가경비대 장관은 소모사에 의해 추방당한 것은 산디노가 암살 당하고 2년 후의 일이었다.

소모사는 대통령에 취임하였으며 정치권력을 이용하여 경제력을 수중에 넣고, 친미 독재 체제를 강화하였다. 미국은 바로 코 밑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에 대한 '사활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소모사 친미 독재체제를 지원하였다. 한 예로 1975년 소모다 독재의 친위대인 국가방위대가 600여 명의 농민을 학살한 지역에다 1978년 소모사 정권이 두 개의 군사주둔기지 시설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설하는 데 미국의 아메리카 개발은행은 그 해 5월 3천2백만 달러를 차관으로 제공했다.

니카라과에서는 산디노가 암살당한 후 살아남은 게릴라들이 주로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었으나, 1958년부 국내에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1961년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LN)을 결성하였으며, 마침내 오랜 기간의 투쟁 끝에 소모사 정권을 몰아낸 것이다.

니카라과 혁명이 성공한 것은 카터 행정부의 일이었다. 당시 혁명의 성공 이전에 이미 소모사 정권의 위기를 감지한 미국은 소모사의 퇴진을 종용하되, 기본적으로 소모사가 실권을 잃지 않는 변형된 소모사 체제를 유지하고 이를 근간으로 산디니스타를 제외한 다른 정치세력들과 소모사 세력 간의 연합을 통해 위기를 해결하고자 했다. 미국의 구상에 당연히 반대한 산디니스타는 1979년 6월 대규모 공세를 전개했다. 이때 미국의 선택은 두 갈래였다. 하나는 산디니스타의 승리를 받아들이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미국이 직접 군사개입을 감행하는 것이었다. 브레진스키 안보보좌관은 개입을 주장했고, 국방장관 브라운도 개입을 "고려에서 배제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국무부 관리들도 니카라과에 쿠바군이 개입해 있다는 정보를 유출하는 등 미국이 개입을 결정했을 때 이를 정당화할 구실을 찾고 있었다.

니카라과 혁명이 성공한 후 소모사 독재 체제의 잔당들인 군대간부들은 콘트라 반군을 조직하여 반혁명 공세를 시작한다. 이들은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한 후에는 이웃의 다른 독재 정권들이 있는 나라로 옮아가 그곳에서 우익 살인부대에 붙어 청부살인을 하거나 마약밀매 등으로 돈을 벌어 조직을 유지하면서 레이건 정권의 힘을 빌려 니카라과의 새로운 사회주의 정권을 무너뜨리고 구토를 회복하기 위해 와신상담하고 있었다. 레이건 정권은 이들 콘트라 반군들을 '자유의 투사'라 미화하는 대대적인 언론플레이를 전개하면서 산디니스타 정권 타도에 이들 콘트라 반군을 이용하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민주당이 강한 세력으로 남아 있던 의회는 외교적 해결을 기대하며 레이건의 군사적 개입정책을 반대하고 있었다.

그래서 1983년 미국 의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볼랜드 수정안인데, 그것은 CIA, 국방부 또는 정보활동에 관여하는 어떤 다른 기관이나 조직이 갖고 있는 자금을 콘트라에게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 수정안은 산디니스타 정권에 대한 미국 내 적의와 콘트라에 대한 지지여론이 높아지면서 1986년에는 분위기가 바뀌어 오히려 의회는 1억 달러에 달하는 콘트라에 대한 원조자금을 승인함으로써 수정안을 뒤집히게 된다. 그러나 어떻든 1983년에서 1986년에 이르는 기간에 미국정부가 정부자금을 콘트라에 지원하는 것은 범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레이건은 공공연히 콘트라에 대한 지원을 역설하고 있었고, 의회의 감시를 벗어나 콘트라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혈안이 되어 찾고 있었다. 미 행정부가 의회의 법망을 피해 콘트라를 돕는 방법을 고안해낸 것은 먼저 공금이 아닌 다른 재원을 마련하는 작업이었다. 여기에 이란에 무기를 판 돈이 동원된 것이고, 그 외에도 사적인 돈이나 다른 나라로부터 돈을 모금하는 일이었다.

1979년 호메이니가 이끄는 회교혁명 이후 미국은 이란을 국제테러주의를 지원하는 나라로 맹비난해왔다. 그래서 이란은 엄격한 수출통제 대상 국가의 목록에 올랐고, 그 중에서도 무기 수출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1980년대 중반엔 레바논에서 미국인들을 인질로 납치하는 일이 빈번하였다. 1984년 미 CIA 베이루트 지부장인 윌리엄 버클리를 포함한 3명의 미국인이 인질로 잡혔고, 1985년엔 AP통신의 중동지역 지부장 테리 앤더슨을 포함한 4명의 미국인이 추가로 인질로 납치되었다. 레이건 정부는 겉으로는 테러리스트들과는 어떤 흥정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공식정책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CIA 베이루트 지부장 버클리는 CIA 국장 윌리엄 케이스이게는 커다란 문제였다. 중동 지역 CIA 활동과 그 인맥에 관한 핵심정보를 갖고 있는 버클리를 적의 수중에 남겨 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미국은 겉으로는 아랍 민족주의자들의 배후에 있는 이란과 흥정을 하지 않는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무기를 이란에 수출하고 인질을 구해내는, '인질과 무기를 교환하는 흥정'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더 나아가 레이건 정부는 볼랜드 수정안을 어기면서 이란에 무기를 수출해서 번 돈을 니카라과의 반군들에게 지원하게 된다.

이란-콘트라 사건은 미국 행정부 또는 그 안의 비밀스런 조직의 일부 세력들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비밀 공작을 자행할 수 있고 그렇게 해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인 것이다

 

 

6. 사건 개요-3

CIA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반군훈련, 무기밀매, 고문, 마약밀매, 암살, 테러 등 불법적인 활동을 자행해 왔지만 겉으로 들어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란 콘트라 스캔들을 통해 CIA의 비밀활동이 만천하에 들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란 콘트라 스캔들(scandal, 부정한 사건)은 신문기사와 공식조사를 통해 불법무기거래, 돈세탁, 쿠테타 시도 등이 얽힌 복잡한 사건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CIA가 주도했던 계획이 통제불능의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마약밀매, 테러리즘, 살인까지 포함하는 추악한 스캔들로 변질되었습니다.

당시 미국 의회의 다수를 차지하던 민주당은 극우 보수주의 성향의 레이건 행정부의 강경 외교정책에 반대하였습니다. 특히 중미와 남미의 사회주의 정권에 대항하는 우익야당과 쿠테타 세력에 자금을 대려는 행정부에 늘 반대를 표시했습니다. 그러나 의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레이건 행정부의 고위관리들은 CIA와 공모해 정치공작을 추진합니다. 미국은 남미가 미국의 안방이라는 명목으로 국제법을 무시하고 정권교체를 강제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마음에 들지 않는 지도자를 암살하는 등 오랫동안 남미의 정치에 관여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 CIA는 1954년 민주적으로 선출된 과테말라의 대통령을 강제로 퇴임시켰는데 그 이유는 과테말라 대통령이 미국의 다국적 기업 '유나이티드 프룻츠'(United Fruits)의 기업활동에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입니다. 살해위협, 선전활동, 심리작전 등이 동원되어 과테말라는 불안정하게 되었고 CIA 요원, 미국용병, 미국이 제공한 자금과 무기로 무장한 우익세력이 쿠테타를 일으켰습니다. 그 결과 과테말라에는 억압적인 우익정권이 들어셨고, 향후 수십년동안 과테말라 국민들은 폭정에 시달렸습니다.

또한 1961년 CIA는 도미니카 공화국의 독재자 라파엘 트루히요가 현지 미국기업들의 활동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암살계획을 꾸몄습니다. 1973년에는 칠레에서 살바도르 아옌더가 이끄는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테러를 자행하고 파시스트 준군사 조직에 군사훈련과 무기를 제공했으며, 광범위한 심리작전을 펼쳤습니다. 결국 독재자 피노체트 장군이 17년동안 칠레를 지배했고, CIA는 피노체트가 과격론자라고 지목한 수천명을 제거하는데 공모했습니다.

1980년대 미국은 엘살바도르에서 발생한 장기적인 내전에 휘말라게 되었습니다. 엘살바도르의 좌익반란 세력이 미국의 지원을 받는 우익정부와 충돌을 빚었습니다. 한편 엘살바도르와 국경을 접한 니카라과에서는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산디니스타 당이 소모사 데바일레 대통령을 몰아내고 권력을 잡았습니다. 미국은 산디나스타 당이 엘살바도르의 좌익반란세력에 자금을 대고 있다고 비난했고, 우익 준군사 조직인 콘트라에 힘을 실어주기 시작했습니다.

CIA는 1982년부터 콘트라가 미국의 대리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기 시작했는데 소모사 독재정권의 잔류세력으로 구성된 콘트라는 국민을 착취하고 살인을 저질러 공포에 떨게하며 온갖 만행을 저지르는 조직이었습니다. 콘트라의 악명에 관한 소식이 연달아 들리면서 민주당이 장악하던 미 의회는 콘트라에 자금이나 무기를 제공하는 것을 불법행위로 명시한 '볼랜드 수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한편 미국은 또다른 문제에 직면했는데 이란의 지원을 등에 입은 레바논의 투사들이 수 많은 미국인을 납치한 것입니다. 납치된 미국인을 구출하는데 이란이 도움을 줄 수 있었지만 당시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좋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이란과 전쟁을 벌이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에게 자금과 무기를 대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란의 미국 대사관 인질사건과 특수부대의 구출실패는 미국에게 있어서 씻을 수 없는 악몽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란 정부 내에 정부의 반미태도를 완화시키고 레바논의 인질범에 압력을 가할 만한 영향력 있는 온건세력이 존재했고, 이들을 달랠 수만 있다면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레이건 행정부는 골치 아픈 중동과 남미의 문제를 해결할 묘안을 강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해결책이 처음 가시화된 것은 1986년 8월의 일로 미국과 이란의 중재자로 나선 이스라엘이 인질로 잡혀 있던 벤자민 웨어 목사의 석방을 보장하는 대가로 미국 토(TOW) 대전차 미사일 508기를 제공한다는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미사일을 공급하는 주체는 이스라엘로, 이란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미국이 이스라엘에 미사일을 공급할 예정이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의 국가안전보좌관 로버트 맥팔레인의 주도 아래 맞교환 거래가 성사되었습니다.

그해 11월 이란으로부터 더 대담한 제안이 들어왔는데 이란이 레바논의 모든 인질을 풀어줄테니 그 대가로 미국의 대공 미사일 500기를 넘겨달라는 것입니다. 맞교환이 시작되었으나 문제가 발생하는 바람에 계획은 난관에 부딪쳤습니다. 이 시점에서 레이건 행정부는 이미 몇몇 UN 결의안과 국내의 무기수출통제법을 위반한 상태입니다.

다음해 1월 레이건 행정부는 더욱 심각한 불법행위를 저지릅니다. 미국인 인질을 풀어주는데 도움을 주는 대가로 이란에 미사일 수백기를 직접 판매하고, 그 수익을 콘트라 반군에 제공한 것입니다. 레이건 대통령과 조지 부시 부통령은 이러한 계획을 알고 있었을 확률이 높지만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이와 같은 새로운 계획을 감독한 인물은 신임 국가안보보좌관 존 포인덱스터 제독과 그의 보좌관 올리버 노스 해군중령입니다. 노스 중령은 CIA의 도움을 받아 콘트라에 미사일 판매 수익금이 전달되는 과정을 감독했고, 콘트라는 이 돈으로 무기를 구입했습니다. 이는 명백히 볼랜드 수정법에 위배되는 행위입니다.

범죄집단과 다를 바 없는 무장 사병조직이었던 콘트라는 마약밀매를 했으며, 마약밀매에서 거둔 수익은 콘트라의 반정부 활동의 자금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미국에 콘트라의 마약을 운반하는 비행기는 니카라과에 무기를 밀반입하는데 다시 이용되었습니다. 노스 중령과 CIA는 콘트라의 마약밀매를 눈감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마약 판매업자를 보호하고 마약 수송 비행기의 이착륙을 도왔습니다. 이로써 이란 콘트라 사건은 불법 무기거래 뿐만 아니라 마약밀매, 돈세탁, 조직범죄까지 연루되었습니다.

 

1986년 불법무기를 가득 실은 비행기가 니카라과에 추락한 후 레바논의 신문사가 인질과 무기를 맞교환하는 미국과 이란의 계약에 관한 의혹을 내보내면서 이란 콘트라 작전의 전모가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노스 중령과 직원들은 관련된 증거서류를 없애기 시작했지만 워싱턴 정가에서는 의혹을 해명하라는 요구가 거세졌습니다. 레이건은 타워 상원의원이 이끄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할 수밖에 없었고, 조사를 통해 노스 중령과 포인덱스터 제독은 유죄를 선고받았으며, 윌리엄 케이시 CIA 국장은 사임했습니다.

레이건 행정부는 이란 콘트라 스캔들로 큰 대가를 치루어야 했지만 스캔들에 연류된 주범들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레이건은 비난을 받았지만 남은 임기를 채웠고, 역사적으로 가장 큰 사랑과 존경을 받는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그가 강경 외교노선으로 공산주의 소련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만 기억하고, 그가 행한 불법적인 일들은 기억하지 않습니다. 당시 부통령이었던 부시는 후에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노스 중령과 포인덱스터 제독은 다양한 죄목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전에 면책 협정에 서명한 탓에 판결이 뒤집어졌습니다. 노스 중령은 라디오 토크쇼의 진행자이자 언론인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고, 상원에 출마하기도 했습니다. 포이덱스터 제독은 2002년 정보인식제고국 국장에 임명되었는데 정보인식제고국은 미국인의 의사소통 일체를 감시하는 목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이란 콘트라 스캔들로 인해 레바논의 미국인 인질들은 모두 풀려났지만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지원받은 이란은 역시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지원받은 이라크와 치열한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란-이라크 전쟁은 1988년에 중단되었지만 수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중동 전체가 불안정에 휩싸였으며,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걸프전을 유발하였습니다. 미국의 장기간에 걸친 군사적 지원과 경제적 압박으로 인해 산디니스타 정부는 1990년 전복되었습니다. 미국의 개입으로 중남미는 만성적인 불안정과 빈곤과 폭력문제로 시달리고 있으며, CIA가 수행하는 마약밀매사업과 정치공작은 오늘날까지도 자행되고 있습니다.

 

* 참고서적: 비밀과 음모의 세계사 (Human & Books, 조엘 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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