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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흑암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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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바머

 

유나바머(Unabomber)는 1978년부터 1995년까지 18년동안 미국에서 16차례에 걸쳐 우편물 폭탄으로 3명을 죽이고 23명을 다치게한 '테어도르 존 카진스키'의 별명입니다. 유나바머는 미국 FBI가 붙힌 별명으로 주로 대학과 항공사로 폭탄을 보낸데 따른 것입니다. 그는 강력하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사람을 죽여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1995년 그는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스에 자신의 선언문을 게재할 경우 폭탄테러를 멈추겠다고 했습니다. 해당 언론사와 법무장관, FBI 국장의 결정 하에 '산업사회와 미래'라는 제목으로 선언문을 게재하였고, 카진스키는 약속대로 폭판테러를 멈추었지만 결국 체포되었습니다.

'테어도르 존 카진스키'(Theodore John Kazynski)는 1942년에 태어난 수학의 천재입니다. 17살에 하버드에 입학해 3년만에 졸업했고, 1967년 미시간 대학에서 수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68년에 버클리 대학 종신 교수 재직권을 얻었지만 1969년에 대학을 나와 1970년 대에 유타주에서 이런저런 일거리로 전전하였습니다. 84년 링컨시로 옮겨와 체포되기 전까지 홀로 은둔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가로 3m, 세로 3.6m의 움막을 짓고 혼자 살았습니다. 1996년 4월 3일 동생의 신고로 폭탄테러 용의자로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중입니다.

아무리 목적이 좋아도 사람의 생명을 해하는 것은 방법이 잘못된 것입니다. 카진스키가 자신의 의견을 알리기 위해 폭탄테러를 선택한 이유는 언론과 출판사가 주도하는 주류의견이 주도하는 사회에서 소수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관심을 끌기 위해 비정상정인 방법을 선택하였습니다. 또한 현대의 과학기술문명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그 발전을 멈출 수 없고 테러나 혁명 같은 과격한 수단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리고 심리적으로는 사회와 과학기술문명에 대한 적개심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진스키가 신문에 게재한 선언문은 단순한 정신병자의 글이라기 보다 나름대로의 체계와 논리를 갖추고 있고, 현대문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그가 천재성을 인정 받은 유망한 수학자였다는 것도 우리의 관심을 끕니다. 주류의견이 진리라고 믿기 쉬운 현실에서 소수의 아웃사이더들이 주장하는 비주류 의견도 참고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카진스키의 선언문 중 일부를 요약 정리하고 그에 대한 제 개인적인 해설과 비판을 첨부하였습니다.

 

* 목차

1. 서문

2. 현대좌파주의의 심리

3. 열등감

4. 지나친 사회화

5. 권력과정

6. 대리만족을 위한 활동들

7. 자율성

8. 사회문제의 근원

9. 현대사회에서 권력과정의 붕괴

10. 과학자의 동기

11. 자유의 본질

12. 산업-테크놀로지 사회의 개혁은 불가능하다.

13. 산업사회에서 자유의 제한은 피할 수 없다.

14. 테크놀로지의 악한 부분과 선한 부분은 분리될 수 없다.

15. 테크놀로지는 자유에의 열망보다 더 강력한 사회적 힘이다.

16. 더 간단한 사회문제조차 우리는 제어할 수 없다.

17. 혁명이 개혁보다 쉽다.

18. 인간행동의 통제

19. 갈림길에 선 인류

20. 인간의 고통

21. 탈출

 

 

1. 서문

1. 인류에게 산업혁명의 결과는 재앙이었다. 산업혁명 덕분에 평균수명이 늘어났지만 사회는 불안정해졌고, 삶은 무의미해졌으며, 인간은 비천한 존재로 전락했고, 심리적 고통은 확산되었으며, 자연은 파괴되었다. 테크놀로지가 발전할수록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지는 등 상황은 악화될 것이다.

2. 테크놀로지 사회체제는 살아남을 수도 붕괴될 수도 있다. 만약 살아남는다면 길고 고통스러운 적응기를 거친 후의 일일 것이며, 인간은 사회라는 기계의 톱니바퀴에 불과한 존재로 격하될 것이다.

3. 체제가 붕괴될 경우에도 그 결과는 고통스러울 것이며, 체제가 거대해질수록 붕괴의 결과도 참혹해진다. 체제가 어차피 붕괴될 것이라면 그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

4. 이런 이유로 나는 산업체제에 항거하는 혁명을 주장한다. 이 혁명엔 폭력을 사용할 수도 있고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혁명은 갑자가 일어날 수도 있고 수십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다. 혁명의 목표는 정부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현 사회의 경제적, 테크놀로지적 토대를 제거하는 것이다.

 

 

2. 현대좌파주의의 심리

6. 우리 세계가 안고 있는 광기 중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드러난 광기가 바로 좌파주의(leftism)다. 좌파주의의 심리를 검토하는 것은 현대사회가 지닌 문제를 해결하는데 길잡이 역할을 해주리라 생각한다.

7. 좌파는 사회주의자, 집단주의자, 정치적으로 옳은 부류, 페미니스트, 게이 운동가, 장애인 운동가, 동물보호 운동가 등을 말한다. 내가 얘기하는 좌파주의는 특정한 운동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수많은 운동이나 이데올로기를 모두 포함한 것이다.

9. 현대 좌파주의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두가지 심리적 경향을 나는 '열등감'과 '지나친 사회화'라고 생각한다. 열등감이 현대 좌파주의 전체에 발견되는 특성인데 비해 지나친 사회화는 현대 좌파주의의 분파에서 발견되는 특성이다.

 

카진스키는 좌파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과학기술문명의 발달에 비판적인 카진스키가 좌파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른 것입니다. 이는 좌파와 우파의 구분이 각 분류별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우파는 경제적으로는 성장위주이고 사회적으로는 개인위주이며 과학기술면으로는 발전위주이고 윤리적으로는 보수적이며 계급적으로는 상류층 위주입니다. 한편 좌파는 경제적으로는 분배위주이고 사회적으로는 집단위주이며 과학기술면으로는 안정위주(환경보호)이고 윤리적으로는 자유주의적이며 계급적으로는 하류층 위주입니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 분류가 획일적이지 않은데 경제적으로는 좌파이지만 윤리적으로는 우파일 수 있습니다.

카진스키의 경우 과학기술적인 면에서는 좌파이지만 사회적으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시하는 우파입니다. 카진스키는 개인주의적(이기적, 자기중심적)인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집단(공공)의 이익을 중시하고 약자를 보살피며 개인적 희생도 감수하는 좌파를 극도로 싫어하는 것입니다. 좌파나 우파는 개인의 선천적 후천적으로 형성된 성격과 본인이 속한 환경에 따라 결정되게 됩니다. 이 중 무엇이 옳은지는 가리기 어려우며 역사적으로 끊임 없는 분쟁과 대립을 지속해 왔습니다. 확실한 것은 뭐든지 극단적인 것은 좋지 않으며 좌우 균형을 맞춘 중용의 도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즘 중도적 성향을 갖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3. 열등감

10. 여기서 말하는 열등감은 자기비하, 무력감, 비관적 성향, 죄의식, 자기혐오 등 열등감과 관계 있는 속성을 포괄적으로 뜻하는 것이다. 현대의 좌파들은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그런 감정들이 현대 좌파주의의 방향을 결정한다.

11.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어떤 말을 할 때 그것을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할 경우 그 사람은 열등감이나 자기비하에 빠져 있다. 이같은 성향은 소수집단 권리운동가들에게서 발견되는데 이들은 소수집단을 가르키는 단어들에 민감히 반등한다. 아프리카인을 검둥이(negro), 아시아인을 동양인(oriental), 장애인을 불구(handicapped), 여자를 계집(chick)으로 부르는 것에는 원래 아무런 모욕적인 의미가 없다. 이들 단어에 부정적인 의미를 불어넣은 것은 운동가들 자신이다. 동물보호가들은 애완동물(pet)이란 단어를 거부하고 '동물 동반자'(animal companion)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좌파 인류학자들은 '원시인'이란 단어를 '비문자인'으로 바꾸고 싶어한다.

13. 많은 좌파는 약함(여성), 패배(아메리칸 인디언), 역겨움(동성연애) 등 부정적인 단어를 자신의 집단의 문제와 동일시한다. 좌파들은 이들 집단을 열등하다고 느끼고 있지만 자신들이 스스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14.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힘과 능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입증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들은 여성이 남성보다 약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15. 좌파들은 강한 것, 좋은 것, 성공한 것의 이미지를 증오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미국과 서구문명과 백인남성과 합리성을 증오한다. 좌파들은 서구문명이 호전적이고 제국주의적이며 성차별적이고 자민족 중심적이기 때문에 증오한다고 하지만 실제 이유는 서구문명이 강하고 성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16. '자신감', '자존심', '선도적', '진취적', '낙관주의' 등의 단어들은 진보주의자와 좌파의 사전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좌파는 반개인주의적 친집단주의자다. 좌파는 사회가 모든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모든 사람의 욕구를 채워 주며, 모든 사람을 보살펴 주기를 원한다. 그는 자신의 문제를 자신이 해결할 수 있으며, 자신의 욕구를 스스로 채울 수 있다는 내면적 자신감을 갖지 못했다. 좌파가 경쟁이란 개념을 거부하는 것은 그가 마음 속 깊히 스스로를 패배자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좌파를 포괄적으로 정의한다면 사회적 약자의 권리주장입니다. 사회적 약자란 노인, 아동(고아), 장애인, 실업자, 노동자, 빈곤층, 채무자, 여성, 외국인, 동물, 환경 등입니다. 이들은 사회의 비주류이자 소수로 권리주장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거나 보살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외되기 쉬운 부류의 사회적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좌파운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권층이라 자부하는 사람도 언제든지 불의의 사고나 질병이나 실패로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지 않으면 점점 사회갈등이 심해지고 범죄, 시위, 폭동 등으로 결국 사회는 붕괴되게 됩니다.

카진스키는 매우 개인주의적이고 사회생활을 싫어하기 때문에 사회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하는 좌파를 극도로 싫어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벌이나 개미와 같은 사회적 동물로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고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좁은 땅에서 부족한 자원을 가지고 많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회체제 정치제도 경제체제 교육제도 의료체제 예절문화 등이 필요합니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립되면 사회를 극도로 미워하고 결국 다른 사람을 이유 없이 해치는 범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카진스키가 말한대로 좌파의 심리에 열등감이 내재되어 있고, 이 열등감으로 인해 매사에 부정적이며 공격적인 경향을 갖게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열등감은 좌파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문제입니다. 설문조사에 의하면 서울대생 중 상당수가 열등감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열등감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해 자신의 부족한 부분에 대해 자책하고 부끄러워하며 자신 없어 하는 것입니다. 열등감의 요소는 경제력, 학력, 능력, 건강, 외모 등이 있습니다. 열등감의 반대는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 우월감입니다.

열등감에 시달리면 자신을 무능하고 무가치한 존재로 여기고 불안감에 시달리며 자해나 자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열등감에서 벗어나려면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고, 자신을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하며, 자신을 가치 있게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는 일이나 취미생활이나 운동이나 교제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열등감을 부정적으로 감추거나 해소하는 방법은 사치와 자랑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시기하거나 분노를 이기지 못해 해치는 것입니다.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에게는 사랑과 관심을 기울여주고 자신감을 회복시켜줘야 합니다.

 

 

4. 지나친 사회화

24. 사회화란 어린이들로 하여금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훈련하는 과정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속한 사회의 윤리에 따르고 복종하면서 사회에 기능적으로 잘 적응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이 사회화되었다고 한다. 흔히 사람들은 좌파를 반항아라고 인식하지만 사실 좌파는 지나치게 사회화되었다.

25. 우리 사회의 윤리체계는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만 완벽하게 윤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없다. 예를들어 아무도 증오해서는 안되지만 사실 누군가를 증오한다.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사회화한 나머지 자신에게 지운 윤리라는 짐더미에 허덕이면서 윤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발버둥친다. 죄책감을 피하기 위해 그들은 끝없이 자신의 진짜 동기에 대해 숨겨야 하며, 실제로는 비윤리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감정과 행동을 윤리적으로 설명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나치게 사회화'된 이란 말은 그런 사람들을 가르키는 것이다.

26. 지나친 사회화는 자기비하, 무력감, 패배주의, 죄의식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어린이를 사회화할 때 가장 중요한 수단은 어린이가 사회의 기대에 맞지 않는 언어나 행동을 보일 때 창피를 주는 것이다. 지나치게 사회화된 사람은 가볍게 사회화된 사람보다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있어 훨씬 큰 제약을 받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짓말, 도둑질, 교통법규 위반, 직장에서 태만, 타인에 대한 증오, 교묘한 속임수 등을 행하지만 지나치게 사회화된 사람은 그런 행동을 할 수 없다. 지나치게 사회화한 사람은 윤리에 어긋나는 것을 현실에서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에 빠진다. 사회는 인간에게 윤리와도 상관 없는 여러 규칙과 규범을 지키라고 요구한다. 지나치게 사회화된 사람은 사회윤리에 따라 평생을 보낸다. 그들은 그 결과 구속감과 무력감이란 심각한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27. 현대 좌파 중에 중요하고 영향력이 큰 분파가 지나치게 사회화되었다. 지나치게 사회화된 좌파는 주로 지식인이거나 중상계층이다.

29. 지나치게 사회화된 좌파가 사회에 저항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사회에 집착하는 예를 들어보자. 많은 좌파들이 흑인에게 높은 사회적 지위의 직업을 주고, 흑인 학교의 교육의 질을 높히며, 흑인 학교의 지원금을 늘리려고 노력한다. 좌파들은 흑인들의 최하층 삶을 사회적 수치로 간주하고, 흑인 남성들을 중상층 백인 남성과 같이 기업체 중역, 변호사, 과학자로 만들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산업-테크놀로지 체제의 가치관이다. 좌파들은 흑인을 백인 남성의 복사판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흑인 고유의 문화를 보존한다고 한다. 그러나 체제는 사람이 어떤 음악을 듣는지, 어떤 옷을 입는지, 어떤 종교를 믿는지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 사람이 학교를 다니고, 존경할만한 직업을 가지며, 신분상승의 사다리를 오르고, 책임감 있는 부모이며, 비폭력주의자이면 된다. 지나치게 사회화된 좌파는 흑인남성을 사회체제에 통합시키고, 흑인남성들이 사회체제의 가치를 수용하기를 바란다.

 

지나친 사회화는 좌파뿐만 아니라 우파를 비롯한 거의 모든 현대인에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인간은 사회에 의존해 사회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의 개성과 생활을 지나치게 희생하면서까지 사회가 제시한 모델에 자신을 맞추려고 치열한 노력과 경쟁을 기울이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사회가 제시한 이상적 모델은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취직하거나 전문직업을 얻어 돈을 많이 벌고, 좋은 집에서 살며, 좋은 차를 타고 다니고, 최신 전자제품을 갖추며, 자녀를 해외에 조기유학보내는 것입니다. 옛 공산주의에서도 인간의 자유와 개성을 무시하고 정부에서 정한 획일적인 삶과 사상을 강요해 문제가 되었습니다.

카진스키가 언급한 것 중 윤리적인 문제는 사회성이나 좌우파와과는 큰 관계가 없고, 그 사람의 신념과 양심에 따릅니다. 사회에 잘 적응해 사회에서 성공한 지도층 인사들이 비윤리적인 행동을 일삼는 것을 보면 사회성과 윤리는 큰 상관이 없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회성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윤리와 상관 없이 따라야 하는 사회규범과 규칙과 관습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결혼을 하려고 하면 꼭 필요하지도 않는 형식과 절차가 너무 많아 이를 따르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소모하면서 행복을 느끼기도 전에 지치게 됩니다.

인간이 사회화되지 않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만 중시하면 방종과 무질서와 범죄 횡행합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사회화되면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실패했을 때 엄청난 좌절과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예를들어 좋은 대학에 합격하지 못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지 못하고 좋은 집에 살지 못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지 못하고 세상유행에 따라 살지 못할 때 낙담하게 됩니다. 또한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성공한 소수의 사람들도 개인과 가정의 삶과 건강을 희생해가며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즉 인간은 사회에 의존하고 적응해야 하지만 지나치게 개인의 삶과 개성을 희생해가며 사회가 추구하는 표준모델에 자신을 맞추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5. 권력과정

33. 인간은 권력좌정이라고 하는 생물학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 욕구는 권력욕과 관련이 있지만 동일하지는 않다. 권력과정은 네가지 구성요소로 이루어진다. 이 중 세가지는 목표, 노력, 목표달성이다. 네번째 요소는 필수적이지는 않은데 자율성이며, 나중에 거론할 것이다.

34. 원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 사람은 권력을 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점차 심각한 심리적인 문제를 안게 된다. 처음엔 모든 것이 신나겠지만 그것도 잠깐, 급속히 권태에 빠지고 타락해 가며 마침내 우울증에 걸리게 될 것이다. 권력을 위해 투쟁하는 귀족은 해당하지 않지만 안정적인 옛 귀족들은 대체로 퇴폐주의자가 되기 쉽다. 열심히 노력할 필요가 없는 귀족들은 권력을 쥐고 있어도 대개 권태에 빠지고 쾌락을 탐닉하다가 결국 타락해 버린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사람은 권력만으로 충분치 않으며, 권력을 행사하기 위한 목표도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35. 사람은 누구나 목표를 가지고 있다. 목표가 없다해도 음식과 옷과 주거지 등 생활을 위한 필수품을 얻기 위한 목표가 남아 있다. 그런데 유한(有閑) 귀족은 이런 것들을 아무런 노력 없이 획득한다. 거기에서 권태와 타락이 생겨난다.

36. 목표가 생활 필수품이라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실패의 결과는 죽음이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 결과는 좌절이다. 평생 목표 달성에 실패할 때 그 결과는 패배주의, 자기비하, 우울증이다.

37. 따라서 심각한 심리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면 인간은 노력을 기울여야만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필요하며, 그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카진스키가 말하는 권력과정은 인간의 성취욕을 의미합니다. 성취욕은 동물과는 다른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혼적인 욕망입니다. 자신이 관심을 두는 분야에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하며 목표에 달성했을 때 큰 만족과 희열을 느낍니다. 과학, 기술, 학문, 예술, 취미, 기록, 스포츠 등 문명의 발달이 바로 이 성취욕에 기인합니다. 그런데 육체의 욕망과 혼의 욕망의 성취는 메카니즘이 비슷합니다. 목표를 추구하고 달성할 때 도파민, 엔돌핀, 아드레날린 등이 분비되어 삶의 의욕과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해 줍니다.

혼적인 욕망을 추구하지 않으면 무기력해지므로 자연히 육적인 욕망을 과도하게 추구해 쾌락을 얻기 위해 타락합니다. 또한 육적인 욕망이 잘 충족되면 혼적인 욕망을 추구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현대사회에서 주어진 공부만 하는 학생이나 시키는대로 일만 하는 노동자는 성취욕을 느끼기 힘들므로 술과 담배와 게임과 취미생활 등으로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을 분비하며 대리만족을 얻습니다. 일을 하지 않는 실업자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집에 있는다면 도파민과 세르토닌 부족으로 인한 무력증과 우울증에 걸리기 쉽습니다.

사회복지제도가 잘 갖춰진 선진국일수록 오히려 도박, 마약, 음란, 알코올 중독, 인터넷 중독, 가정폭력, 정신질환이 높은 것은 적절한 성취욕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무 근심 걱정 없이 편안한 상태가 인간에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등 따스고 배부르면 딴생각 난다는 옛말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대기업과 대교회의 끊임 없는 확장도 성취욕에 기인한 같은 맥락입니다. 육적인 욕망과 혼적인 욕망은 필요하지만 과도하면 문제(집착, 타락, 범죄)가 생기기 때문에 영적인 조율과 통제가 필요합니다.

 

 

6. 대리만족을 위한 활동들

38. 하지만 모든 귀족이 권태와 타락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일본왕 히로히토는 퇴폐적인 쾌락에 빠지는 대신 해양생물학 연구해 전념해 이 분야에 이름을 남겼다. 신체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 전념할 필요가 없을 때 사람들은 흔히 인위적인 목표를 세운다. 대개의 경우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했던 것과 같은 에너지를 쏟아가며 목표달성을 추구한다. 로마제국의 귀족들은 문학에 열정을 쏟았고, 유럽귀족들은 사냥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신분경쟁을 계속하거나 과학에 힘을 기울인 귀족도 있었다.

39. 대리만족을 위한 활동이란 것은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충족감을 얻기 위해 인위적인 활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40. 현대의 산업사회는 신체적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최소한의 노력만 있으면 된다. 간단한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훈련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충분하며, 제시간에 출근하고 적당히 일하면 된다. 필요조건은 적당한 지능과 단순한 복종심이다. 사회는 그런 조건을 갖춘 사람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보살펴준다. 그러므로 현대사회는 대리만족을 위한 활동들로 가득 차 있다. 여기에는 과학적 연구작업, 스포츠 기록경쟁, 인도주의 활동, 예술 및 문학 창작, 회사 내에서의 직위 상승, 돈과 재화의 획득, 사회운동 등이 포함된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에서 얻어지는 충족감이 돈이나 특권보다 더 중요하다는데 동의할 것이다.

41.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대리만족을 위한 활동은 진짜 목표를 추구하는 것에 비해 충족감이 떨어진다. 대리만족을 위한 활동에 몰두한 사람은 만족할 줄 모르며 멈추지 않는데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래서 돈에 눈이 먼 사람은 끝없이 더 많은 부를 향해 질주하는 것이다. 과학자는 한가지 문제를 해결하자마자 곧바로 다음 문제로 달려간다. 달리기 선수는 보다 빨리 달리기 위해 자신을 몰아친다.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생물학적 욕구를 자율적으로 충족시키지 못하고, 거대한 사회의 기계적 부품으로 기능함으로써 충족시킨다. 반면 사람들은 자신의 대리만족을 위한 활동을 추구하는 데에는 큰 자율권을 누리고 있다.

 

 

7. 자율성

42. 권력과정의 한 부분으로서의 자율성은 모든 사람에게 필수적인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목표를 향해 일하는데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자율성이 필요하다. 사람들의 노력은 스스로 주도권을 갖고 있는데서 이루어져야 하며 스스로 정한 방향과 통제를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개인으로서 주도권과 방향결정권과 통제권을 반드시 행사할 필요는 없다. 대개는 작은 집단의 구성원으로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집단의 구성원이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성공적으로 결합한다면 권력과정에 대한 욕구는 채워질 수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일체의 자율적인 결정권과 주도권이 허용되지 않고 엄격한 상부의 명령에 따라 일한다면 권력과정에 대한 욕구는 채워지지 않는다. 집단적인 결정방식을 채택할 경우에도 그 집단이 너무 커서 개인의 역할이 무의미한 경우에도 권력과정의 욕구는 채워지지 않는다.

43. 개인의 자율성에 대한 욕구가 적은 사람은 권력욕망이 원래 작거나 자신이 속한 조직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권력욕망을 충족시킬 것이다.

44. 권력과정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권태, 타락, 자기비하, 열등감, 패배주의, 절망, 불안, 죄책감, 좌절, 적대감, 배우자나 자녀 학대, 쾌락주의, 변태적 성, 불면증, 과식 또는 거식증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8. 사회문제의 근원

46. 현대사회가 사회적 심리적 문제를 유발하는 이유는 현대사회가 인류가 여지껏 처해 왔던 환경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도록 사람들에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가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비정상적인 환경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권력과정에 참여할 기회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47. 현대 산업사회가 안고 있는 비정상적인 환경으로는 과도한 인구밀도, 자연으로부터의 소외,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사회변동, 대가족이나 마을과 같은 소규모 공동체의 붕괴 등을 들 수 있다.

48. 인구과밀이 스트레스와 공격성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오늘날의 인구과밀과 자연으로부터의 소외는 테크놀로지의 발전의 결과이다. 산업화 이전엔 농경사회였지만 산업혁명 이후엔 도시의 규모와 인구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현대적 영농 테크놀로지 덕분에 도시의 과도한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게 되었다.

49. 원시사회에선 자연이 안정적인 준거틀을 제공해 주었고, 이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엔 사회가 자연을 지배하고 있으며, 테크놀로지의 변화에 따라 현대사회는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따라서 안정적인 준거틀이 존재하지 않는다.

50. 보수주의자들은 바보다. 그들은 옛 전통 가치관에 묶여 있으면서도 경제성장과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열광적으로 지지한다. 테크놀로지와 경제의 발전은 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며 그러한 변화는 필연적으로 전통적 가치들을 붕괴시킨다는 자명한 사실을 보수주의자들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다.

51. 전통적 가치의 붕괴는 전통적인 소규모 사회집단을 묶어주고 있는 유대관계가 붕괴되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의 환경이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로부터 떨어져 나와 새로운 지역으로 옮겨가도록 요구하거나 유혹한다는 점도 소규모 사회집단의 와해를 촉진한다. 테크놀로지 사회가 효율적으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가족간의 유대와 지역 공동체를 약화시켜야만 한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은 체제(정부, 기업, 학교 등)에 최우선으로 충성해야 하며, 소규모 공동체에 대한 충성은 부차적이어야만 한다.

 

옛날에는 생활에 필요한 것을 자연에서 구해와 직접 만들고, 음식물은 농사를 짓거나 사냥을 하거나 채집을 해서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또한 마을 사람들과 가족 친지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생필품은 거대한 공장과 기계화된 농장에서만 만들 수 있습니다. 개인이 삶에 필요한 물자를 구하기 위해선 사회에서 일정한 직업을 얻어 돈을 벌어야 합니다. 또한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선 옛날에 필요 없었던 유행에 걸맞는 각종 의류와 최신 전자제품과 통신장비와 자동차 등을 구비해야 하는데 이를 얻기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급여수준이 높고 안정된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이를 얻기 위해 학생 때부터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합니다. 운이 좋게 좋은 일자리를 얻어도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 과도한 업무와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그나마 언제 그만두게 될지 모릅니다. 전문지식이나 전문기술이 필요 없는 단순한 일자리는 낮은 임금과 열악한 환경과 불안정성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며, 성취감을 느낄 수 없는 단순한 업무로 인해 권태를 느끼게 됩니다.

즉 현대사회에선 자신의 인생을 본인의 의지와 노력으로 개척할 수 없고 전적으로 사회에 의지해야 하지만 이에 반해 사회는 냉정하고 냉혹하기까지 합니다. 급기야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거나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사회의 낙오자로 찍힐 뿐만 아니라 생활필수품도 구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또한 나와 내 가족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질 수 없고, 기업의 고위임원이나 국가의 정책에 의해 좌지우지 되기 때문에 항상 불안한 삶을 살게 됩니다. 결국 현대인들은 생활은 옛날보다 편리해졌지만 개인의 주체성과 삶의 안정성 면에서는 불리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9. 현대사회에서 권력과정의 붕괴

59. 인간의 욕망은 세부류로 나뉜다. ①최소한의 노력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욕망,  ②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충족시킬 수 있는 욕망,  ③아무리 노력해도 제대로 충족시킬 수 없는 욕망. 권력과정은 두번째 부류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과정이다.

61. 원시사회에서 생활필수품을 얻는 것은 두번째 욕망에 속했다. 필수품을 얻기 위해선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선 최소한의 노력으로 누구나 생활필수품을 얻을 수 있고, 신체적 욕구는 첫번째 욕망으로 전환되었다.

62. 현대사회에서 섹스, 사랑, 신분 등과 같은 사회적 욕구는 두번째 부류에 속한다. 그러나 사회적 욕망을 충족시키는데 필요한 노력은 권력과정에 대한 욕구를 제대로 충족시키기에 부족하다.

63. 그래서 두번째 부류에 속하는 인위적인 욕구들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그런 인위적인 욕구를 채움으로써 권력과정에 대한 욕구를 대신 채운다. 발달된 광고와 마케팅 기법은 할아버지 세대는 결코 욕망하지 않고 꿈도 꾸지 않았을 것들이 필요하다고 느끼도록 만든다. 인위적 욕구를 충족시키려면 많은 돈이 들고, 이 돈을 벌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하므로 인위적 욕구는 두번째 부류에 속한다. 즉 현대인은 광고와 마케팅 산업에 의해 만들어진 인위적인 욕구를 추구하면서 대리만족을 위한 활동을 통하여 권력과정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64.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권력과정에 대한 인위적인 욕구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20세기 전반부의 사회 비평서에서 반복된 주제는 현대 사회의 대다수 사람들을 괴롭히는 목적 상실감이다. 실존주의는 현대의 삶이 목적 없음에 대한 반발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리만족을 위한 활동은 권력추구의 욕구를 온전히 충족시켜 주지는 못한다. 권력과정에 대한 욕구는 생활필수품, 섹스, 사랑, 신분 등과 같은 외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는 활동을 통해서만 완벽히 충족될 수 있다.

65. 돈을 벌거나 신분상승의 사다리를 오르는 등 목표를 추구할 때 대개의 사람들은 자율적으로 자신의 목표를 추구할 위치에 있지 않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피고용자 신분이며, 시키는 대로 일하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한다. 중소기업 사장들은 정부의 규제가 자신들의 손발을 묶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자영업은 프렌차이즈 제도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많은 프렌차이즈 제공 회사들이 프렌차이즈 희망자들에게 특별한 인성검사를 실시한다는 기사를 실었다. 기사에 따르면 검사의 목적은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사람들을 제외하기 위한 것으로 그런 사람은 프렌차이즈 제도를 군소리 없이 따라할 만큼 고분고분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66.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이 스스로 행하는 것보다 체제가 그들에게 행한 무엇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 기회도 체제에 의해 제공되며,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규칙과 규제에 순응해야 한다. 성공을 위해서는 전문가들이 미리 정해 놓은 기법을 따라야만 한다.

67. 사회의 권력과정은 진정한 목표의 부재와 목표추구의 자율성 부재로 인해 붕괴되고 있다. 이제 우리의 삶은 다른 사람이 내리는 결정에 의해 좌우된다. 우리는 그 결정에 관여할 수 없으며,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잘 모른다. 직업을 얻고 잃는 것도 정부 경제부처나 기업체 중역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달려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같은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지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안전을 지키려는 개인의 노력은 좌절될 수밖에 없고, 그것은 무력감으로 이어진다.

68. 우리를 안전하다고 느끼게 하는 것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다. 원시인은 맹수와 배고픔의 위협에 둘러싸여 있지만 자기방어를 위해 싸울 수 있고, 음식을 찾아 먼 길을 여행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자신이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위협에 직면해 있다. 핵사고, 식품 속의 발암물질, 환경오염, 전쟁, 늘어나는 세금, 거대조직에 의한 사생활 침해,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릴 전국적인 사회현상 또는 경제현상 등이 그런 위협이다.

70. 원시인은 자기 힘으로 자신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반면 현대인의 안전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거나 너무 거대해서 개인적으로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타인의 손에 맡겨져 있다. 현대인의 안전에 대한 욕망은 첫번째와 세번째 부류의 욕망으로 전락해 버린다.

71. 현대인들이 지닌 욕망 중 상당 부분은 좌절되고 세번째 부류의 욕망으로 전락한다. 여기서 분노를 느끼는 사람이 있겠지만 현대사회에서 싸움을 하거나 심한 말을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현대인은 사회와 고용주가 정한 규칙과 규제에 묶여 있으며, 규칙과 규제들은 현대인의 욕망을 좌절시키고 권력과정을 교란한다. 그러나 규제들 대부분은 산업사회의 기능을 수행하는데 필수적이므로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73. 정부와 대형 조직은 대중의 태도나 행동을 조작하기 위해 어떤 형태의 프로퍼갠더를 사용한다. 프로퍼갠더는 상업광고와 홍보에 국한하지 않으며 오락 프로그램의 내용도 강력한 프로퍼갠더의 형식이다.

75. 원시사회에서 삶은 일련의 단계들이 지속되는 것이었다. 어느 한 단계의 욕구와 목적이 충족되면 곧장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젊은 남성은 사냥꾼이 됨으로써 권력과정을 통과했으며, 이때 사냥은 스포츠나 충족감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고기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그 단계를 성공적으로 통과하면 청년은 곧바로 가정을 이루는 책임을 맡았다. 반면 현대인들은 수많은 대리 충족감을 채우나라 바쁜 나머지 자녀 갖기를 끝없이 미루고 있다. 자녀를 제대로 기르고 자녀들에게 생활 필수품을 공급하면서 권력과정을 통과하고 나면 원시인은 자신이 할 일을 다했다고 느끼며 노년기와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한다. 반면 현대인은 육체적 컨디션과 외모, 건강을 지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다 보니 육체적 쇠락과 죽음 앞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현대인은 실용적인 목적으로나 권력과정을 통과하는데 자신의 육체적 힘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현대인의 욕구는 채워지지 못하며 그것이 노화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낳는다. 인생을 통하여 권력과정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던 사람만이 인생의 종말을 두려움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10. 과학자의 동기

87. 과학과 테크놀로지는 대리만족을 위한 활동의 가장 중요한 사례들이다. 어떤 과학자는 자신이 과학연구에 몰두하는 동기가 호기심이나 인류의 복지를 향한 열망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 중 어느 것도 과학자들의 주된 동기가 아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정상적인 호기심이 아닌 고도의 전문화된 문제를 놓고 씨름한다. 과학자가 연구에 몰두하는 이유는 그것이 대리만족을 위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88. 인류의 복지 또한 과학자의 진정한 동기가 될 수 없다. 고고학이나 비교언어학과 같이 과학적 연구는 인류의 행복과 관련이 없다. 핵발전소 건설에 온 마음을 바쳤던 '에드워드 텔러'(Edward Teller) 박사의 경우 자신의 연구동기가 인류의 복지를 위한 것이었다면 왜 수소폭탄의 개발을 도왔을까? 핵발전소도 값싼 전기의 혜택 못지 않게 핵사고와 핵폐기물의 문제를 안고 있다. 텔러 박사가 핵발전소에 전력을 기울인 이유는 인류의 복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연구결과가 실제로 사용되는 것을 보면서 얻어지는 개인적인 충족감 때문이었다.

89. 과학자들의 진짜 연구동기는 권력과정을 통과하고자 하는 욕구이다. 목표를 갖는 것(풀어야 할 과학적 문제), 노력하는 것(연구), 목표를 달성하는 것(문제의 해결)이다. 과학연구가 대리만족인 이유는 과학자들이 연구 그 자체로부터 충족감을 얻기 때문이다.

90. 과학자들에게는 돈과 신분 같은 다른 연구동기도 작용한다. 어떤 과학자는 신분상승에 대한 끝없는 욕망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고, 이런 욕망은 그의 연구에 상당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91. 과학과 테크놀로지는 거대한 권력운동을 구성하며, 많은 과학자들은 이 거대한 운동에 자신을 동일화함으로써 권력욕구를 충족시킨다.

92. 과학은 과학자들과 연구기금을 제공하는 정부관료 및 기업체 중역들이 지닌 심리적 욕구에 따른 맹목적인 행진일 뿐이다. 그들은 인류의 진정한 행복이나 다른 기준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11. 자유의 본질

94. '자유'란 권력과정을 통과할 수 있는 기회를 뜻한다. 여기에는 대리만족을 위한 활동이란 인위적인 목표가 아니라 진정한 목표가 있어야 하며, 어떤 개인이나 조직으로부터도 일체의 간섭이나 조작 또는 감독이 없어야 한다. 자유란 본인의 존재가 걸린 생과 사의 문제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음을 뜻한다. 음식, 옷, 주거지와 환경 내에 있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위협에 대한 방어능력이다. 여기서 권력은 다른 사람을 통제하기 위한 권력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둘러싼 환경을 통제하기 위한 권력이다.

95. 사람들은 우리가 헌법에 보장된 몇가지의 권리를 확보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우리가 자유로운 사회에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법률적인 권리는 눈에 보이는 것처럼 중요하지 않다. 한 사회의 개인적 자유의 정도는 그 사회의 법률이나 정부형태가 아니라 그 사회가 지닌 경제적 테크놀로지적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뉴잉글랜드 지역의 인디언 국가는 왕국이었고, 르네상스 시대의 도시국가들은 대부분 독재자들에 의해 통치되었다. 그러나 이들 사회는 지금 사회보다 더 많은 개인적 자유를 허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사회에는 조직된 경찰력도 없었고, 장거리 통신망이나 감시 카메라도 없었다. 지배자가 국민을 통제하기 위한 효과적인 메카니즘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개인은 통제를 피할 수 있었다.

 

 

12. 산업-테크놀로지 사회의 개혁은 불가능하다.

111. 산업체제가 우리의 자유를 점점 더 제한해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산업체제를 개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산업혁명부터 시작해서 테크놀로지는 개인의 자유와 지역의 자율성을 희생해가며 체제를 강화해 왔다. 테크놀로지로부터 자유를 보호하겠다는 어떠한 변화도 사회의 발전추세와는 대치된다. 사회체제의 급진적이고 위험하며 예측불가능한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자유를 위한 변화를 이루어 낼 수 있다. 개혁가가 아니라 혁명가만이 자유를 위한 사회변화를 이룰 수 있다.

112. 자유를 회복하되 주어진 테크놀로지의 혜택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자유와 테크놀로지가 타협하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를 내세울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새로운 형태의 사회를 세울 수 있는지에 대한 실천적 방안은 제시하지 못한다. 가까스로 새로운 형태의 사회를 세운다 해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거나 타협하게 될 것이다.

 

 

13. 산업사회에서 자유의 제한은 피할 수 없다.

114. 현대인은 법률과 규제의 그물에 묶여 있다. 본인의 운명은 본인이 결정할 수 없고, 멀리 떨어져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다. 이것은 우연이나 관료주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테크놀로지 사회에선 불가피한 일이다. 체제가 기능하기 위해선 반드시 인간의 행동을 치밀하게 규제해야 한다. 작업장에서 노동자들은 위에서 시키는대로 일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산이 혼돈에 빠지게 될 것이다. 관료주의는 반드시 엄격한 규칙에 의해 운용되야 한다. 하위 관료에게 개인적인 재량권을 허용할 경우 체제가 와해되고 불공평하다는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 거대조직에 의해 우리의 삶이 규제되는 것은 산업-테크놀로지 사회가 기능을 위해선 필수적인 일이다. 그 결과 현대인들은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사회체제는 개인에 대한 외적 규제뿐만 아니라 프로퍼갠더나 교육 등을 통해 심리적인 통제까지 실시하게 된다.

115. 체제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동패턴과는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강제한다. 체제는 과학자와 수학자와 엔지니어를 필요로 하며, 그들 없이는 체제가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이러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도록 극심하게 다그친다. 사춘기에 접어든 학생이 책상에 앉아 공부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는 것을 자연스러운 행동이라 할 수 없다. 정상적인 청소년이라면 당연히 현실세계와 활발한 접촉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원시인들은 어린이를 훈련시킬 때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과 합당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훈련시킨다. 아메리칸 인디언의 경우 소년들은 활발한 야외 활동을 통해 훈련을 받는다. 야외활동은 바로 소년들이 좋아하는 것이다.

116. 체제가 인간행동을 수정하기 위해 가해지는 끝없는 압박으로 인해 사회의 요구에 적응하는데 실패하거나 포기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

117. 선진 테크놀로지 사회에서 개인의 운명은 그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결정들에 의해 좌우된다. 테크놀로지 사회는 작고 자율적인 공동체로 분리될 수 없다. 테크놀로지 사회는 작고 자율적인 공동체로 분리될 수 없다. 생산이 수많은 사람과 기계를 소유한 기업체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는 고도로 조직적이어야 하며, 의사결정은 대규모의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도록 이루여져야 한다. 의사결정은 정부관료나 기업체 중역, 기술 전문가 등에 의해 이루어진다. 국민투표를 해도 투표자 수가 너무 많아 각 개인의 투표는 거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118. 보수주의자를 비롯한 몇몇 부류는 지역 자율성을 주장한다. 지역 공동체가 한때 자율성을 갖고 있다가도 공공시설과 컴퓨터 통신망, 고속도로 시스템, 매스 미디어, 현대적 의료 시스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점점 힘을 잃어갔다.

119. 체제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거꾸로 인간의 행동을 체제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 테크놀로지 체제는 정치적 사회적 이데올로기와는 상관이 없다. 체제를 이끌어 가는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기술적 필요성이다. 물론 체제가 여러 가지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만 그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체제에 이익이 되는 경우에 한해서다. 체제가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이유는 모두 굶주려 있으면 체제가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체제는 정당하고 확실하며 실질적인 이유를 들어 사람들이 체제에 맞춰 행동하도록 끝없이 압박한다. 정부와 미디어와 교육과 환경주의자들은 재활용에 관한 프로퍼갠더를 대중에게 퍼붓는다. 체제가 더 많은 기술자를 필요로 하면 아이들을 과학공부로 몰아 넣어 지긋지긋한 과목을 공부하느라 좋은 시절을 허비하는 비인간적인 상황을 맞게 된다. 숙련공이 기술진보에 떠밀려 직업을 잃고 재훈련을 받을 때 사람들은 모멸감을 느끼기 보다 당연히 기술적 필요에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만약 인간적 욕구가 기술적 필요를 앞서면 경제문제와 실업, 물자부족과 같은 불상사가 일어난다.

 

 

14. 테크놀로지의 악한 부분과 선한 부분은 분리될 수 없다.

121. 산업사회가 자유를 옹호하며 개혁될 수 없는 다른 이유가 있다. 현대의 테크놀로지는 하나의 통합된 체제이며, 그 안에 있는 부분들은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테크놀로지의 악한 부분을 따로 떼어 제거할 수 없으며, 선한 부분만 유지할 수도 없다. 현대의학의 발전은 화학, 물리학, 생물학, 컴퓨터, 과학 등 다른 분야의 발전에 달려 있다. 첨단 의료시설에는 값비싼 첨단장비가 필요한데 그런 장비는 테크놀로지가 발전하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회에서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테크놀로지 체제를 배제한 채 의학분야에서만 발전을 이루기는 불가능하다.

124. 유전공학이 발전하면 비윤리적인 일들이 벌어질 것이고 윤리규약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다수가 지지하는 윤리규약이 만들어져도 소수는 다른 생각을 가질 것이다. 자유를 보호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유전공학을 금지하는 것이나 테크놀로지 사회에선 결코 채택하지 않을 것이다. 유전공학의 역할을 최소한으로 축소시키는 윤리규약은 만들어진다 해도 오래 지탱될 수 없다. 생물공학의 막강한 권력이 제시하는 유혹은 뿌리칠 수 없을 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사람에게 유전공학의 응용은 좋은 것으로 보일 것이다. 유전공학의 광범위한 이용은 피할 수 없으며, 산업-테크놀로지 체제의 욕구와 일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15. 테크놀로지는 자유에의 열망보다 더 강력한 사회적 힘이다.

125. 테크놀로지와 자유 간에 지속적인 공존을 이루기란 불가능하다. 테크놀로지는 자유보다 강력한 사회적 힘이면서 반복되는 타협을 통해 계속해서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넓이의 땅을 가진 두 사람의 이웃이 있다고 가정하자. 힘이 센 사람이 약한 사람에게 땅을 한조각 달라고 하면 약한 사람은 일단 거부할 것이다. 그러면 강한 사람이 내가 달라는 것의 반만 달라고 타협하면 약한 사람은 항복할 수밖에 없다. 얼마 후 강한 사람이 또 땅을 요구하면 다시 타협이 이루어지고, 사태는 그런 식으로 계속 진행된다. 오랫동안 타협을 강요함으로써 강한 사람은 약한 사람의 땅을 모두 빼앗게 된다. 테크놀로지와 자유 사이에 갈등이 빚어질 때도 사태는 똑같이 진행된다.

127. 자유를 위협할 것 같지 않은 테크놀로지의 진보는 나중에 자유를 심각하게 위협한다. 자동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 어디든 자기 마음대로 빠른 속도로 갈 수 있었기 때문에 인간의 자유를 확대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동차가 등장한 후 얼마 안가 자동차는 인간의 자유를 극심하게 제한하는 방법으로 사회를 바꿔 놓았다. 자동차가 급증하면서 교통법규와 교통시스템이 차량의 이동을 통제한다. 운전자들은 운전면허 시험과 발급, 차량 등록증 갱신, 보험, 세금, 할부금, 차량보수 등 많은 의무조항에 묶이게 되었다. 도시에 사는 사람은 직장, 시장, 학교 등이 멀리 떨어져 걸어갈 수 없으므로 자동차는 더 이상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나 도보로 이동할 때에도 자유는 제한된다. 도시에서 보행자는 자동차를 위해 설계된 교통신호 때문에 가다 멈추기를 반복해야 한다. 시골에서도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를 걸어다니는 것이 위험하고 불쾌하게 되었다.

128.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우리의 자유영역을 계속해서 제한함에도 불구하고 기술적 진보는 바람직한 것으로 간주된다. 전기, 배관, 통신 등 기술적 진보에 대해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러나 인간에 기술에 의존할수록 개인의 운명은 정치가나 기업체 중역이나 기술자에 의해 결정된다.

129. 테크놀로지가 강력한 사회적 힘인 이유는 테크놀로지는 한 방향으로만 진행한다는 것이다. 어떤 기술적 발명품이 등장하면 사람들은 그것에 의존하고 결국 그것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사람들만 테크놀로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체제 역시 테크놀로지에 의존한다. 체제는 더 심화된 테크놀로지화 방향으로만 나아갈 수 있다. 테크놀로지는 자유에게 한걸음 양보하라고 계속 요구한다. 하지만 테크놀로지는 전체 테크놀로지 체제를 무너뜨리지 않는 한 한걸음도 뒤로 물러설 수 없다.

130. 테크놀로지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진보하며, 동시에 많은 분야에서 자유를 위협한다. 예를 들어 인구과밀, 법률과 규제, 거대조직에 대한 인간의 의존성 심화, 프로퍼갠더, 유전공학, 감시장치 등이다. 자유를 위협하는 것 중 하나라도 물리치기 위해서는 길고 힘든 사회적 투쟁이 필요하다. 자유를 수호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공격과 개발되는 속도에 압도당하고, 결국 무력감에 빠져 더 이상의 저항을 포기한다. 그러한 위협들 하나하나에 개별적으로 대항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테크놀로지 체제 전체와 싸울 때 성공의 가능성이 있다. 필요한 것은 혁명이지 개혁이 아니다.

131. 기술자나 과학자는 대개 자신의 일에 감정적으로 몰두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기술적 작업과 자유 사이에 갈등이 빚어질 때에는 언제나 기술적 작업의 편에 선다. 기업이나 정부도 유용하다고 판단되면 주저하지 않고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무시하며 개인의 정보들을 긁어 모은다.

132. 사람들은 처벌이나 부정적 결과를 피하기 위해 일할 때보다 어떤 보상을 바라며 일할 때 더 잘 끈기 있게 일한다. 과학자나 기술자들은 자신의 일을 통해 얻는 보상을 기대하며 일한다. 그러나 테크놀로지가 자유를 침해하는 것에 대해 저항하는 사람들은 부정적인 결과를 피하기 위해 일한다. 이 힘든 임무를 끈기 있게 제대로 해내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개혁가들은 테크놀로지의 진보로 인해 자유가 침식당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장벽을 쌓았다고 생각하면 대개 긴장이 풀어지고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여전히 실험실에서 분주한 나날을 보내며, 테크놀로지는 어떤 장벽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통제를 개인에게 행사하고 개인들을 더 체제에 의존적으로 만드는 길을 찾아내며 발전해 간다.

133. 사회적 조정, 법률, 제도, 관습, 윤리규약 등 그 어떤 것도 테크놀로지에 대항해 보호막을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없다. 이것들은 모두 한시적이었고 결국 변하거나 무너져 버렸다. 하지만 테크놀로지는 문명이 존속하는 한 지속적으로 진보한다. 예를 들어 유전공학을 인간에게 이용하는 것을 금지하거나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유전공학의 응용을 금지하도록 사회적 조정이 이루어져도 테크놀로지는 계속 발전하며 기회를 엿보다가 결국 사회적 조정을 무너뜨릴 것이다. 그러면 유전공학은 우리의 자유의 영역을 침범할 것이고, 이 침공은 테크놀로지가 붕괴되지 않는 한 되돌릴 수 없다. 이와 같은 현상은 환경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134. 테크놀로지는 자유에의 열망보다 훨씬 강력한 사회적 힘이다. 테크놀로지 체제는 경제문제와 환경문제와 소외, 반항, 적개심 등 인간 행동의 문제 등을 일으킬 것이다. 이러한 것이 스트레스가 되어 체제에 저항하는 혁망이 일어날 수 있다.

 

사람들은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인간의 생활을 행복하고 풍요롭게 만들 것이란 막연한 환상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인한 순기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못지 않은 역기능이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가 생기면서 더 빠르고 편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지만 높은 자동차 유지비, 교통사고, 교통체증, 환경오염, 자원고갈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무엇보다 자동차에 의존이 심해져 자동차 없이는 살기 어렵게 되고 더 비싸고 고급스러운 자동차를 사기 위해 무리를 하게 됩니다. 핸드폰도 원활한 의사소통을 가져왔지만 전자파 피해, 높은 사용요금, 핸드폰 중독, 위치추적과 도청 등의 부작용을 가져왔고, 인터넷 또한 정보검색과 정보교류의 장점 외에 음란물 확산과 게임중독, 도박중독, 바이러스, 가정불화 등의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이와 같이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인한 순기능보다 부작용이 크면 사회는 여러 가지 문제를 겪게 되고 결국 대혼란에 휩싸이거나 붕괴될 수 있습니다.

 

 

16. 더 간단한 사회문제조차 우리는 제어할 수 없다.

136. 누군가 테크놀로지로부터 자유를 보호하면서 체제를 개혁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꿈을 꾸고 있다면 사회체제가 환경파괴, 정치부패, 마약거래, 가정폭력 등 간단한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137. 환경문제를 예로 들면 경제개발과 환경과 자원의 보호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지만 이에 관한 명확하고 일관된 행동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는 와중에 환경문제는 산더미처럼 쌓이고 결국 후손들이 문제를 안고 살게 될 것이다. 환경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여러 파벌간의 투쟁과 타협으로 점철된다. 투쟁의 노선도 여론이 흘러가는 대로 계속 바뀐다. 이것은 합리적인 과정이 아니고 문제를 적시에 해결할 수 없다. 수많은 이익집단이 자신의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경쟁하는 와중에 간신히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 뿐이다. 합리적이고 장기적인 사회적 계획은 성공할 수 없다.

138. 인류가 단순한 사회문제도 풀 수 없을 정도로 무능력한데 자유와 테크놀로지의 공존이라는 훨씬 어렵고 미묘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또한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체제의 이익이 될 수는 있어도 자유와 작은 집단의 자율성을 보존하는 것은 체제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 테크놀로지는 명백한 물질적 장점을 제시하는 반면 자유는 모든 사람에게 다른 의미를 갖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게다가 자유의 상실은 프로퍼갠더와 달콤한 거짓말로 쉽게 감출 수 있다.

139. 체제는 최대한 인간의 행동을 통제하는 것이 이익이다. 체제는 보다 더 치밀하고 은밀하게 인간의 행동을 규제할 것이고 이는 제임스 윌슨 같은 저명한 사회과학자들도 줄곧 강조해 왔다.

 

 

17. 혁명이 개혁보다 쉽다.

140. 자유와 테크놀로지를 화해시키는 방법으로는 체제가 개혁될 수 없다. 산업-테크놀로지 체제를 모조리 잊고 사는 혁명이 필요하다. 반드시 무장혁명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사회의 본질을 뿌리부터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141. 사람들은 흔히 혁명이 개혁보다 훨씬 더 많은 변화를 담고 있으므로 완수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혁명이 개혁보다 쉽다. 혁명은 개혁이 이룰 수 없는 강력한 몰입력을 사람들에게 불어넣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개혁운동은 고작해야 특정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혁명운동은 단순간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건설한다. 테크놀로지의 어떤 분야를 제한하는 것보다 테크놀로지 전체를 폐기하는 것이 쉽다.

142. 변화가 너무 과도하게 진행될 경우에 초래될 고통스러운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개혁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일단 혁명의 열기가 사회를 장악하면 사람들은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어떤 어려움도 감수한다. 이런 사실은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에서 증명되었다. 이들 혁명에 자신의 전부를 바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지만 이 소수는 적극적인 소수였기 때문에 사회의 지배적인 세력이 될 수 있었다.

 

물질문명의 발달이 개인과 사회의 타락과 부패를 촉진시켜 결국 국가의 멸망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이미 로마시대를 비롯한 고대문명으로부터 증명된 일입니다. 과학기술과 경제가 발전할수록 가정파괴와 실업문제와 빈부격차와 사회범죄와 정신질환과 자살문제가 심해진다는 것은 현재 여러 선진국에서 보여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일부 농촌마을과 종교단체에서 현대문명을 거부하고 옛날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도시민보다 좀 불편하게 살지는 몰라도 훨씬 덜한 스트레스와 큰 성취감과 안정감 속에서 나름대로 행복하게 사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개인주의적이고 서로 경쟁하는 사회관계가 아니라 서로 돕고 사는 가족 사회 공동체가 이루어진다는 것이 큰 장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의 추세와 유행에 따라 이러저리 휩쓸리지 않고 개인적 또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자발적 또는 공동체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길 희망합니다.

* 참고 사이트 : http://blog.naver.com/amishstory

 

 

18. 인간행동의 통제

143. 문명이 시작될 때부터 조직사회는 사회 유기체의 기능수행을 위해 인간에게 억압을 가해 왔다. 억압에는 나쁜 음식, 과도한 노동, 환경공해와 같은 육체적인 억압과 소음, 인구과밀, 인간행동 개조와 같은 심리적인 억압이 있다. 과거에 인간의 본성은 대개 일관성을 유지했고, 달라진다 해도 한정된 범위 안에서 달라졌을 뿐이다. 사회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 인간을 몰아치면 반란, 범죄, 부패, 노동회피, 정신질환, 출산율 감소 등 문제가 일어나 사회가 붕괴될 수 있다.

144. 과거에는 인간의 본성으로 인해 사람을 몰아세우는 것에 한도가 있기 때문에 사회발전에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현대에는 테크놀로지가 인간을 개조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에 상황이 바뀌었다.

145. 사람들을 끔찍하게 불행한 조건 아래 몰아넣고 나서 사람들에게 불행을 잊어버릴 수 있는 약물을 건네주는 사회를 상상해 보라. 이것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최근에 권력과정의 붕괴로 말미암아 우울증 발병률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사회변화의 산물이다. 현대사회는 사람들을 절망에 빠뜨리는 조건을 제거하는 대신에 항우울제를 건네주고 있다. 항우울제는 개인의 정신상태를 개조하는 수단이다. 항우울제를 먹어 가며 그 약을 먹지 않고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사회적 조건을 이겨낼 수 있게 된다.

146.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약물은 현대사회가 개발중인 인간행동의 통제수단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다른 수단들을 살펴보자.

147. 우선 감시기술을 들 수 있다. 많은 상점과 공공장소에 숨겨진 비디오 카메라가 사용되고 있다. 또한 컴퓨터는 엄청난 양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처리한다. 그리고 매스 미디어가 효과적인 매개체 역할을 하는 프로퍼갠더를 들 수 있다. 선거에서 승리하고 상품을 팔며 여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효과적인 기법들이 개발되어 왔다. 오락산업은 섹스와 폭력물을 쏟아 부어도 체제의 중요한 심리적 역할을 수행한다. 텔레비전과 비디오에 빠져 있는 동안 현대인은 스트레스와 불안, 좌절, 불만을 잊을 수 있다. 원시인들은 자신이나 세상에 큰 갈등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몇시간이고 앉아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인은 끝없이 무언가에 몰두해야 하고 오락거리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금새 권태에 빠지고 안절부절, 좌불안석, 신경질 등의 증상을 보인다.

148. 다른 기법들은 감시와 프로퍼갠더를 능가한다. 교육은 이제 더 이상 아이가 배운 것을 모르면 엉덩이를 때리고 잘 알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식의 간단한 일이 아니다. 교육은 이제 어린이의 성장을 통제하는 과학적 기법이 되어가고 있다. '실반학습센터'(Sylvan Learning Cneter)는 아이들이 공부에 빠져들게 하는데 큰 성공을 거두었고, 전통적인 학교에서도 점차 심리적인 기법들을 성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부모들은 아이들로 하여금 체제의 기본적인 가치체계를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자녀양육법을 배우고, 체제가 제시하는 방식대로 행동한다. 정신건강 프로그램, 중재 기법들, 심리요법 등은 겉으로 보기엔 개인의 행복을 위해 고안된 것 같지만 사실은 개인들이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주입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149. 예상컨데 각종 연구를 통해 인간행동을 통제하기 위한 심리적 기법들의 효과는 끝없이 커질 것이다. 심리적 기법만 가지고 테크놀로지에 의해 창조되고 있는 사회에 맞춰 인간을 개조하기란 힘들 것 같다. 결국에는 생물학적인 방법이 이용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약물이 이용되고 있음을 언급했다. 신경학은 인간 정신을 개조하는 방법을 제시할 것이다. 인간 유전공학은 유전자 치료법이란 이름 하에 이미 시작되었다.

150. 산업사회에서 인간은 인간행동의 문제와 경제문제와 환경문제로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러한 스트레스는 여러 사회문제를 파생한다. 소외, 자기비하, 공부 안하는 아이들, 청소년 갱단, 불법약물 복용, 강간, 어린이 학대, 기타 범죄, 무분별한 섹스, 10대 임신, 인구증가, 정치부패, 인종간의 증오와 갈등, 극심한 이데올로기 투쟁, 정치적 극단주의, 테러리즘, 사보타지, 반정부 단체들 등이 체제의 생존을 위협한다. 체제는 어쩔 수 없이 인간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야 한다.

151.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사회붕괴 현상은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 체제가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삶의 조건들이 빚어낸 결과이다. 만약 체제가 인간의 행동을 완전히 통제하는데 성공한다면 인간의 역사는 새로운 분수령을 넘게 될 것이다. 예전에는 인간이 가진 인내심의 한계 때문에 사회의 발전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산업-테크놀로지 사회는 심리적 방법이나 생물학적 방법, 또는 그 둘을 다 사용해 인간을 개조함으로써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미래의 사회체제는 인간의 욕구에 맞춰 적응하지 않는다. 반대로 인간이 체제의 욕구에 맞춰 적응하게 될 것이다.

152. 인간행동에 대한 테크놀로지의 통제가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의식적 욕망에서 시작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에 대한 통제가 하나씩 등장할 때마다 그것은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합리적인 방안으로 간주될 것이다. 알코올 중독을 치료한다든지 범죄를 줄인다든지 과학과 공학 연구에 몰두하도록 한다든지 말이다. 많은 경우에 통제는 인도주의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날 것이다. 정신과 의사가 우울증 환자에게 항우울제를 처방해 줄 때 의사는 그 사람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를 실반학습센터에 보내 공부에 열광하는 아이들로 만드는 것은 부모가 아이의 행복을 바라기 때문이다.

153. 인간행동의 통제는 정부당국의 치밀한 계산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진화의 과정을 통해 시작될 것이다. 그 과정에 저항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각각의 진보는 그 자체만 놓고 볼 때는 이익이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진보를 이루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해악이 나중에 이익이 되거나, 진보하지 않을 때 빚어지는 결과보다 진보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해악이 덜 해롭기 때문일 수도 있다.

154. 만약 어린에에게서 범죄자로 성장할 가능성을 높이는 유전적 인자가 발견되고 이를 치료할 유전자 치료법이 개발된다면 부모는 당연히 아이들을 치료할 것이다. 부모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것은 오히려 비인간적인 행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원시사회에선 하이테크 자녀양육법이나 가혹한 처벌 시스템이 없어도 범죄 발생율은 우리 사회에 비해 훨씬 낮았다. 현대사회의 높은 범죄율은 현대적 환경이 사람들에게 가하는 압박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압박에 적응할 수 없기 때문에 잠재적 범죄성향을 제거하기 위해 사람들을 리엔지니어링 할 것이다.

155. 우리 사회는 체제와 맞지 않는 모든 종류의 생각이나 행동을 질병으로 간주한다. 개인이 체제에 적응하지 못할 때 체제에 문제가 될 뿐 아니라 개인도 고통을 겪게 되므로 질병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그러므로 체제에 적응하도록 개인을 조작하는 것은 질병에 대한 치료이고 좋은 일이다.

156. 산업사회가 살아남기 위해서 테크놀로지는 인간행동에 대한 완전한 통제를 행사할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상당부분 생물학적 토대 위에 있다. 뇌의 특정부분을 전기자극하면 배고픔, 기쁨, 분노, 공포 등의 감정을 일으킬 수 있다. 뇌의 어느 부분을 다치면 기억을 잃고, 전기자극에 의해 잊혀진 기억이 다시 떠오를 수 있다. 약물로 환각을 일으키거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158. 모든 사람이 머리 속에 전기장치를 달고 정부당국에 의해 통제된다는 것은 황당무계한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생각과 행동이 생물학적 간섭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다는 사실은 인간행동의 통제라는 문제가 기술적인 문제임을 보여준다. 문제는 뉴런과 호르몬과 고분자다. 현대과학이 기술적 문제의 해결에 보여준 뛰어난 성적을 감안하면 인간행동의 통제에도 엄청난 진보가 이루어질 것이다.

159. 대중적 저항을 통해 테크놀로지의 인간행동통제를 막을 수 있을까? 통제가 한꺼번에 시작되면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테크놀로지의 통제는 장기간에 걸친 소규모 진보를 통해 등장할 것이다. 따라서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대중적 저항은 있을 수 없다.

160. 이런 얘기가 공상과학 소설처럼 들린다는 사람에게는 어제의 공상과학 소설이 오늘의 현실이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산업혁명은 인간의 환경과 생활양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제 테크놀로지가 점점 더 인간의 육체와 정신에 적용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환경과 생활양식이 그래왔던 것처럼 인간 자체도 근본적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사회가 발달하고 경제가 발전할수록 시민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발달하게 됩니다. 요즘 골목마다 감시 카메라라 설치되어 방범, 쓰레기투기 감시, 불법주차단속 등의 용도로 사용됩니다. 목욕탕이나 찜질방의 탈의실에까지 도난을 막기 위해 CCTV가 설치됩니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프라이버시 침해라며 처음엔 반발하지만 감시와 통제가 주는 유익이 더 크면 결국 순응하게 됩니다. 무질서, 범죄, 반란 등을 막기 위해 사회는 점점 인간을 감시하고 통제할 수밖에 없습니다.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이를 뒷받침 해 줍니다. 결국에는 모든 인간을 직접 통제하고 지배하는데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생체칩인 베리칩엔 신분확인과 상품매매와 위칙추적 기능 외에 마인드 콘트롤 기능까지 수행할 수 있습니다. 전파를 이용해 인간의 무의식을 조종하고 집단체면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음료수나 수돗물에 약물을 투입하거나 TV 시청 중 특수한 전파를 전송해 의식을 조종할 수도 있습니다. 테크놀로지 발달을 좇아가기 위해 유전공학을 통해 인간을 개조할 수도 있습니다. 인체 내 칩을 삽입함으로써 전자기기와 직접 통신하게 될 것입니다.

 

 

19. 갈림길에 선 인류

161. 현대사회에서 두가지 문제가 발생하는데 하나는 실험실에서 인간 행동을 조작하기 위한 심리적 생물학적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기술을 사회체제의 기능에 통합시키는 것이다. 두번째 문제가 더 어렵다. 교육심리학의 기술은 그것이 개발된 실험학교에서는 잘 돌아가겠지만 전체 교육시스템에 효과적으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학교 교사는 아이들에게서 칼과 권총을 빼앗기 바뻐서 이들을 컴퓨터 귀재로 만들어 낼 새로운 기술로 몰아갈 시간이 없다. 인간행동과 관련된 기술적인 진보에도 불구하고 체제는 인간을 통제하는데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사회체제의 통제에 고분고분하게 따르는 사람도 있지만 체제에 저항하는 반항아들도 점차 늘고 있다. 청소년 갱단, 악마 숭배자, 나치, 급진주의자, 민병대 등이다.

162. 체제는 지금 그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들과 절망적인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인간행동의 문제이다. 체제가 빠른 시간 안에 인간행동을 통제할 효과적인 수단을 찾아낸다면 체제는 살아남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붕괴될 것이고 앞으로 수십년 안에 이같은 상황이 일어날 것이다.

163. 체제가 앞으로 수십년 간의 위기에서 살아남는다면 사회는 중요한 문제를 해결했거나 통제했다는 것이다. 체제가 해결한 문제 가운데 중요한 것은 인간을 사회화하는 것으로 인간행동이 사회에 문제가 되지 않도록 순화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없을 것이다. 테크놀로지는 인간과 중요생물을 포함한 지구 전체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논리적 귀결점을 향해 진보해 나갈 것이다. 체제는 하나의 단일한 독재조직이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정부와 기업체와 대형조직들이 협동과 경쟁관계를 맺고 몇개의 조직으로 나뉠 수도 있다. 그러면 인간의 자유는 거의 다 사라져 버릴 것이다. 개인과 작은 집단들이 하이 테크놀로지와 온갖 감시장치로 무장하고 물리적 강제력과 인간을 조작하기 위한 심리적 생물학적 수단을 갖춘 거대 조직과 맞서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소수의 특권층만이 진짜 권력을 갖게 될 것이나 이들조차 제한된 자유만 누릴 것이다.

165. 반대로 체제가 다가올 몇십년 간의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붕괴될 경우 환난의 시대가 올 것이다. 환난의 시기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지만  인간에겐 새로운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가장 위험한 사태는 산업사회가 다시 건설되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장이 다시 돌아가길 애타게 기다릴 것이다.

166. 산업체제에 의한 인류의 노예화를 증오하는 사람에게 두가지 임무가 주어진다. 첫째는 체제 안의 사회적 스트레스를 증가시켜 체제가 붕괴될 가능성을 높이거나 체제에 저항하는 혁명이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 체제를 약화시켜야 한다. 둘째는 테크놀로지와 산업사회를 공격하는 이데올로기를 개발하고 널리 확산시켜야 한다. 그런 이데올로기는 산업사회가 붕괴되었을 때 남겨진 잔재를 아예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날려 버릴 것이고, 그러면 체제의 재구성도 불가능할 것이다. 공장은 무너뜨려야 하며, 기술서적은 불태워야 한다.

 

 

20. 인간의 고통

167. 순전히 혁명적 행동만으로 산업체제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 산업체제는 심각한 장애에 도달하지 않는한 혁명적 행동에 끄떡도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체제가 붕괴된다면 갑자기 우발적으로 붕괴되거나 혁명가의 힘이 보태지는 과정을 통해 붕괴될 것이다. 만약 붕괴가 갑작스럽게 이루어진다면 많은 사람이 죽게 될 것이다. 세계의 인구는 첨단 테크놀로지 없이는 다 먹여 살릴 수 없을 만큼 과도하게 늘어나 있기 때문이다. 테크놀로지를 무리 없이 질서 정연하게 제거하기는 힘들다. 무엇보다 기술 숭배자들이 매 단계마다 격렬히 저항할 것이기 때문이다. 혁명가들이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체제가 심각한 문제에 빠져 결국 무너지게 될 상황에서 가능한 일이다. 체제가 더 거대해질수록 붕괴로 인한 결과가 더 참혹해지므로 혁명가들이 붕괴의 출발을 앞당기는 것은 오히려 재앙을 줄이는 길이 될 수 있다.

168. 우리는 투쟁과 죽음, 자유와 존엄성 상실이라는 두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장수하는 것이나 육체적 고통을 피하는 것보다 자유와 존엄성이 더 중요하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는다. 공허하고 목적도 없는 삶을 오래 사느니 생존을 위해서건 운동을 위해서건 싸우다 죽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169. 체제는 지금까지 인류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 주었다. 산업사회는 경제문제, 환경문제, 사회문제, 심리문제, 인구문제 등을 일으켰다. 핵폭탄 같은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제3세계 국가에 들어간다면 상당히 위험할 것이다.

170. 기술 숭배자들은 과학이 기아문제와 심리적 고통 등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거라고 말하겠지만 그들은 200년 전에도 똑같은 말을 했다. 예정대로라면 산업혁명은 가난을 몰아내고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줘야 하지만 결과는 딴판이다. 기술 숭배자들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절망적일 정도로 순진하다. 그들은 겉보기에 바람직한 변화가 사회에 일어나더라도 일단 변화가 시작되면 예측 불가능한 수많은 변화들이 연이어 일어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 결과는 사회의 붕괴다. 기술 숭배자들이 가난과 질병을 몰아내고 유전공학을 통해 온순하고 행복한 성격의 사람들을 만들려고 시도할 때 그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끔찍하고 혼란스러운 사회체제를 만들어 낼 것이다. 과학자들은 유전공학이 식량생산 공장을 만들어 기아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러면 인구는 무한정 늘어날 것이다. 인구과밀이 스트레스와 공격성을 증가시킨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기술진보는 예측 불가능한 새로운 문제를 파생했다. 산업혁명 이후 테크놀로지는 낡은 문제를 해결하는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새로운 문제들을 만들어 냈다. 발생한 결함을 제거하는 데는 길고 힘든 시행착오의 시간이 걸리고 그 와중에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 산업사회가 생존할 때의 고통이 붕괴될 때의 고통보다 덜하리란 보장은 전혀 없다. 테크놀로지는 지금껏 인류를 쉽게 탈출할 수 없는 곤경으로 몰아 왔다.

 

 

21. 탈출

171. 만약 산업사회가 앞으로 수십년을 살아남고 결함을 체제에서 걸러내 제대로 기능을 수행한다고 가정하자, 그 체제는 어떤 것일지 몇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보자.

172. 컴퓨터 과학자들이 인간보다 일을 잘 처리하는 인공지능 기계를 개발하는데 성공하면 거대하고 고도로 조직된 기계 시스템이 모든 노동을 담당할 것이고, 인간의 노력이 필요 없게 될 것이다. 그럴 경우엔 인간의 감독 없이 기계가 스스로 모든 결정을 내릴 수도 있고, 여전히 인간이 기계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할 수도 있다.

173. 만약 기계가 모든 결정을 내리게 된다면 기계가 어떤 식으로 행동하고 어떤 결과가 빚어질 지 예측할 수 없다. 그러면 인류의 운명이 기계의 결정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물론 인류가 자발적으로 기계에게 결정권을 넘겨 주거나 기계가 자신의 의지로 권력을 장악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테크놀로지가 발전할수록 인류는 기계에 종속적인 지위로 떨어질 것이며, 결국 기계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것이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기계가 지능화되어감에 따라 사람들은 더 많은 결정권을 기계에게 넘겨줄 것이다. 왜냐하면 기계의 결정이 인간의 결정보다 더 낳은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마침내 체제를 계속 돌아가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결정이 너무 복잡해져서 인간의 지능으로는 아무런 결정을 내릴 수 없는 단계가 도달할 것이다. 그 단계에서는 기계가 통제권을 장악하며, 인간은 기계를 꺼 버릴 수도 없다. 기계에 철저히 종속된 인간이 기계를 끈다는 것은 자살행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174. 반대로 인간이 기계에 대한 통제권을 계속 유지할 수도 있다. 그런 경우 보통 사람은 자동차나 PC 등 개인 소유의 기계는 통제할 수 있겠지만 대형 기계 시스템의 통제권은 소수 엘리트의 손에 쥐어지게 될 것이다. 진보된 기술 덕분에 엘리트는 대중에 대해 더 강한 통제권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인간의 노동이 불필요해진 탓에 대중은 불필요한 존재 즉 체제에 떠넘겨진 쓸모 없는 짐더미가 되어 버린다. 무자비한 엘리트라면 간단히 엄청난 인구를 죽여 없앨지도 모른다. 인간적인 엘리트라면 프로퍼갠더나 심리적 생물학적 기술을 활용해 출산율을 줄이는 방식으로 인구를 줄인 후 남은 세상을 독차지할 것이다. 삶은 너무 무의지해졌으므로 사람들의 권력과정에 대한 욕구를 제거하거나 안전한 취미로 권력욕망을 승화시킬 수 있도록 생물학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 공학적 조처를 받아야 한다. 공학적 조처를 받은 사람은 해당 사회 안에서는 행복하겠지만 자유롭지는 않으며 가축의 신분으로 전락한다. 

 

* 참고서적 : 유나바머 (테어도르 존 카진스키, 박영률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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