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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이라크 전쟁-1

 

세계에서 이라크만큼 미국의 이익을 위해 철저히 유린된 나라는 없습니다.
미국은 중동지역에서 석유를 안정적으로 얻기 위해 반미정권을 붕괴시키고 친미정권을 지원하는 전략을
취해 왔습니다.
이라크는 중동에서 사우디 다음으로 석유 매장량이 많은 국가입니다.

미국은 원래 후세인을 지원하였고, 그가 독재정치를 하던 자국민을 학살하던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이란의 친미적인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고 반미적인 이슬람 정권이 세워지자 미국은 후세인을 충동질해서
이란과 오랜 전쟁을 하게 했습니다.
전쟁에서 탈진한 이라크가 소련이나 프랑스와 가까워지고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미국은 적대관계로 돌아섭니다.

첨단무기와 물량전으로 이라크를 쿠웨이트에서 쫓아내 승리하고도 오랜 경제제재를 실시해 이라크 경제를
파탄시키고 많은 사람이 굶어죽게 만듭니다.
1998년에는 무기사찰을 거부한다는 구실로 대규모 공습을 실시하고, 911 테러 이후에는 테러단체 지원과
대량살살무기 보유를 구실로 침공합니다.

미국은 전쟁에서 쉽게 승리했지만 전쟁의 명분인 대량살상무기는 발견하지 못하고, 허위정보에 의해
이라크를 침공했음이 밝혀졌습니다.
이라크 저항세력과 내전으로 인해 전후 많은 미군과 이라크 국민이 숨졌고, 천문학적인 전비가 계속 투입되자
미국 내에서 반전여론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미 이라크 전쟁과 관련한 여러 기사자료를 모아봤습니다.

 

 “美 戰後작전도 없이 이라크 쳤다”…전쟁계획 전문가 보도

 

전쟁사 연구가인 현역 미군 소령이 미군의 이라크 전후(Phase IV·4단계) 계획 준비 부족을 정면으로 비판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25일 보도했다.

이라크 자유 작전 전략기획자로 참여했던 이사이야 윌슨 소령은 코넬대에 제출한 ‘준비되지 않은 미군의 전쟁계획’이란 제목의 연구논문에서 “미군이 전후 계획인 ‘4단계 계획’을 마련한 것은 바그다드가 함락되고 7개월이 지난 2003년 11월”이라며 “미 군정당국은 초기 2∼3개월을 허송세월함으로써 모멘텀(재건 기회)과 주도권을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미군의 전쟁계획은 단계별로 △1단계-전투 준비 △2단계-초기 작전 △3단계-실질적 전투 △4단계-전후 치안 및 질서 유지로 나뉜다. 이 가운데 4단계를 준비하지 않은 채 전쟁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이 분석 논문이 이라크전에 관여한 미 정부 고위관계자들에 대한 기소장이나 다름없다고 평가했다.

올해 비슷한 비판이 많았지만 윌슨 소령의 논문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가 군 내부에서 일급비밀을 취급하며 실제 이라크 전쟁계획 작성에 깊숙이 관여한 현역 군인이기 때문이라고 워싱턴포스트는 설명했다.

그는 2003년 4∼6월 ‘이라크 자유 작전’의 스터디그룹에 소속된 연구원이었고, 7월부터는 이라크 북부에 주둔한 미 101공중강습사단의 ‘기획 참모(war planner)’로 활동했다.

그는 “전후 준비계획을 마련하지 못하고 군 사령관들이 이라크의 전략적 환경을 이해하지 못해 실수를 연발했다”면서 “미국은 무조건 이기게 되어 있던 전쟁에서 패배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준비되지 않은 전쟁’ 때문에 이라크 과도정부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저항세력의 끝없는 자폭 테러에 시달리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이라크 전에 투입된 미군의 부상자 수는 1만 명이 넘으며 2년간 사상자 숫자가 베트남전 초반 4년보다 많은 실정이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동아일보 2004.12.27.

 


 

 팔루자 주검널린 유령도시

 

미 공세뒤 두달…폐허속 개떼만 몰려다녀
주민들 수색작업 시아파 보안군에 적개심

지난해 11월8일 미군이 대대적인 탈환작전을 벌였던 이라크 저항세력 거점도시 팔루자가 그로부터 두달여가 지난 지금껏 폐허인 채로 방치돼 있으며, 도처에 주검이 널려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11일 보도했다. 〈가디언〉은 이날 현지에서 자사 영상팀과 함께 활동하고 있는 이라크 의사이자 언론인인 알리 파딜이 보낸 장문의 기고문을 실었다. 지난달 25일 우여곡절 끝에 팔루자 진입에 성공한 파딜의 기고문을 요약 정리한다.

유령의 도시=전기와 수도는 여전히 끊겨 있고, 오염된 하수는 도처에 넘쳐 난다. 앞으로 3주 안에 이곳에서 선거가 치러지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30여만명에 이르는 팔루자 주민들은 미군의 공세가 시작되기 전 대부분 피난을 떠났다가 지난달 23일부터 일부가 미군의 허가를 받아 도시로 돌아오고 있다. 하지만 ‘유령의 도시’로 변해버린 고향땅에서 그들을 맞아준 건 폭격으로 산산히 파괴된 건물더미와 주검을 뜯어먹고 사는 광견병에 걸린 개떼였다.

현대식 도시였던 팔루자는 미군의 공습으로 완전히 파괴돼 제대로 남아있는 게 없다. 폐허로 변해버린 시내 중심가를 돌아다녀 봤지만, 사람이 살만한 건물은 단 한채도 남아 있지 않았다. 미군은 여전히 시내 곳곳을 봉쇄한 채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고, 죽은 개들의 주검이 도처에 널려 있다. 전쟁 전 인파로 발디딜 틈도 없었던 시장 어귀의 상점들 안에선 숨진 주민과 저항세력의 주검이 썩어가고 있다.

우연히 들렸던 공동묘지 부근의 한 집에도 썩어들어가고 있는 저항세력의 주검이 널려 있어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저항세력이 머무르던 집들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파괴됐지만, 총알 자국이 거의 없는 집에서도 심하게 훼손된 주검들이 쉽게 발견됐다.

시내 들머리에서 만난 팔루자 출신 난민들은 저항세력과 그들을 부추긴 일부 이슬람 성직자들을 비난했지만, 시내에 마련된 저항세력 집단 매장지 어귀에는 미군에 맞서 영웅적으로 싸우다 간 순교자들에게 팔루자 주민들이 바치는 무덤이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저항세력 1200명을 사살했다던 미군의 발표와 달리 이곳에 묻힌 이들은 76명에 불과했다. 의사를 꿈꾸던 18살 소년과 고향땅을 등지지 못해 침대에 누운 채로 20여발의 총알세례를 받은 여성도 그곳에 묻혀 있다.

주민들은 미군에 대한 분노보다 그들의 명령에 따라 수색작업에 동원됐던 이라크 보안군에 대한 적개심을 더 극명하게 드러냈다. 대부분 가난한 남부 시아파 출신인 보안군들은 팔루자에서 ‘이교도’로 불리며, 암살의 표적이 되고 있었다. 미군은 팔루자를 파괴했지만, 저항세력은 이라크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시아파 출신 보안군을 동원해 수니파 주민을 탄압함으로써 오히려 이라크에서 내전 가능성만 높여놨다.

30만 주민 중 8천여명만 돌아와=한편, 〈에이피통신〉은 11일 “미군의 대공세 이후 팔루자 주민 30여만명 가운데 팔루자로 귀환해 시내에 거주하고 있는 이들은 8500여명에 불과하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제니퍼 패거니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대변인의 말을 따 “8만5천여명의 주민이 자신들의 집을 살펴보기 위해 돌아갔지만, 이들 가운데 단 10%만이 계속 머무르기로 결정한 셈”이라고 전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한겨레 2005.01.12

 


 

 BBC, 이라크전 비밀자료 폭로

 

“9·11 무관 부시 취임 직후부터 침공 계획” “석유메이저-네오콘 석유권 장악놓고 정책전쟁”

부시 미 행정부가 9·11 동시테러가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이라크를 침공하고 이라크 석유를 장악하려는 비밀계획을 마련했음을 보여주는 자료(사진)들이 폭로됐다. 또한 ‘어떻게 이라크 원유를 장악할 것인가’를 놓고 미 국방부의 신보수주의자(네오콘)들과 석유 메이저기업(거대기업)들 사이에 ‘정책 전쟁’까지 벌어졌으며, 결국 석유 메이저들의 계획대로 이라크 석유의 운명이 정해져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 〈비비시방송〉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 〈뉴스나잇〉은 17일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원유 관련 계획 작성에 참여했던 에너지 전문가들과 중앙정보국(CIA) 관리들의 증언을 토대로 이라크 전쟁과 석유에 대한 계획들이 2001년 부시 대통령의 취임식 뒤 “몇주 안에” 마련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미국이 9·11과는 상관 없이 애초부터 석유를 목적으로 이라크를 점령하려 했다는 뜻이다.

〈비비시〉가 입수한 미 국무부 기밀자료 등을 보면, 당시 미국 정부 안에서 이라크 석유 처리에 관한 두 가지 계획을 둘러싸고 석유 메이저들과 국무부의 실용주의자들이 연대해 국방부내 네오콘들과 치열하게 경쟁했다.

이라크 태생의 석유사업 컨설턴트로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 미 정부와 사담 후세인의 접촉 채널이었던 팔라 알지부리는 처음에 이라크에 관한 미국의 계획은 이라크에서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부시 행정부의 요청으로 캘리포니아와 워싱턴, 중동지역에서 열린 비밀회의들에 참석해 이라크의 통치자가 될만한 후보들도 직접 만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직전 네오콘들은 이라크의 모든 유전들을 매각해 석유수출국기구(오펙)의 산유량보다 훨씬 많은 원유를 생산하게 해 결국 오펙의 영향력을 무력화시키려는 새 계획을 마련했다. 미 중앙정보국 석유분석가이자 현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원인 로버트 에벨은 당시 미국과 손을 잡았던 아메드 찰라비의 주도로 런던에서 열린 비밀회의에 참석해 이 계획을 논의했다고 증언했다.

결국 미국의 이라크 점령 뒤 과도통치위원회는 네오콘의 이 계획에 따라 유전 매각을 추진했다. 석유산업 자문가 알지부리는 이 유전 문제 때문에 저항세력들이 더 강하게 반격에 나섰고 원유 관련 시설과 송유관을 공격했다고 말했다. “저항세력들은 ‘이것 봐라, 당신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려는 억만장자들이 당신의 나라와 자원을 빼앗아가고 있다’고 외치며 이 점을 이용했다.” 석유 메이저인 셸의 미국지사 전 최고경영자 출신으로 당시 미 정부에 고용돼 이라크 원유생산을 관리했던 필립 캐럴은 자신이 이 민영화 계획을 중지시켰다며, 이후 네오콘이 추진한 민영화 대신 석유기업들이 지지한 이라크 국영석유회사를 통해 원유를 통제하는 방안이 우세해졌다고 말한다. 그는 “네오콘들은 시장과 민주주의 등에 대해 이데올로기적 신념을 가지고 있지만, 석유기업들은 모두 매우 실용적이고 상업적인 조직”이라며 국영석유회사를 통한 원유 장악이 더 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비비시〉가 입수한 미 국무부의 이라크 원유관련 최종 계획(2004년 1월 완성)은 미국 기업들에 우호적인 이라크 국영석유회사를 세울 방안을 담고 있는데, 이 계획 작성에는 현재 석유 메이저 엑손모빌의 법률업무를 맡고 있는 제임스 베이커 전 미국 국무장관이 운영하는 제임스베이커재단이 관여했다.

물론 네오콘들은 이에 대해 비판적이다. 헤리티지재단 연구원으로 네오콘 계열인 애리 코언은 “이라크 유전을 민영화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며 “민영화가 실현됐다면 오펙을 무력화시키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비비시〉는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등 네오콘들이 최근 세계은행 등 외부기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것은 부시 행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석유 메이저들의 동맹이 네오콘들을 물리치고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한겨레 2005-03-18

 


 

 이라크전의 숨겨진 조역 '용병'… 국적없는 '살인병기'

 

허용범 특파원 美전쟁代行회사 '블랙워터' 르포

지난 주말 주요 신문·방송에는 ‘21일 이라크 바그다드 북쪽에서 민간헬기가 무장세력의 미사일 공격으로 격추돼 미국인 6명 등 민간인 11명이 숨졌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당시 외신들은 “민간헬기가 격추된 것은 이라크전 개전 후 처음 있는 일”이라며 “사망자 중 미국인들은 미 외교관 경호를 맡고 있는 ‘블랙워터’사 직원들”이라고 보도했다.

외신들은 이들을 ‘민간인’이라고 했지만 기사에 등장한 ‘블랙워터’사는 ‘민간군사회사’로 불리는 ‘전쟁대행회사’로, 지금 이라크에는 이들 같은 용병 1만5000여명이 활약 중이다.

가려져 있던 이라크전의 또 다른 일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국가가 수행해왔던 전쟁이 민영화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이라크서 헬기피격 6명 사망

‘위험! 실탄 사격 중. 야간작전. 저고도 항공비행’

주말인 지난 23일. 워싱턴DC에서 남쪽으로 자동차로 3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노스캐롤라이나주 모요크시(市). 드문드문 인가가 보이는 넓은 들판 가운데로 난 길을 따라가자 ‘인가자 외 출입금지’란 경고판이 나타났다.

미국 내 최대 ‘민간 군사훈련장’인 ‘블랙워터’사 훈련센터 입구. 멀리서 사격연습용 총소리들이 들리는가 싶더니 어디선가 권총을 찬 검은 복장의 남자가 나타나 가로막았다. 안내요원을 따라 본부건물까지 가면서 바라본 들판에는 부서진 자동차와 시가전(市街戰) 훈련용 조립건물들, 인질구출 작전에나 쓰일 것 같은 옆으로 누운 항공기 동체(胴體)가 눈에 띄었다.

민간 시설이라기보다는 거대한 군사시설 그 자체였다. 훈련센터 넓이는 6000에이커. 730만평의 거대한 숲과 들판을 훈련장으로 쓰고 있다. 본부 건물 옆에는 완전자동화된 소총 사격장이 있었다. 사격장에서는 훈련생들이 팀별로 다른 색깔의 훈련복을 입은 채 전투사격훈련을 받고 있었다.

◆실탄훈련에 낙하산 강하훈련까지

1997년 해군 특수부대 출신이 창업한 이 회사는 경찰과 군인들의 위탁훈련소로 출발했다. 이후 지원자를 모집해 군수품보급과 요인경호 및 시설경비정보수집, 정찰은 물론 일부 전투지원까지 하는 민간 전쟁대행회사로 발전했다.

모든 훈련은 실탄을 사용해 실제 전투상황과 똑같이 한다. 자체 헬기와 항공기로 항공사격과 낙하산 강하훈련도 하고 있다. 본부 직원은 호텔급 숙박시설을 보여주며 “3개월이면 기본교육을 마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훈련 중인 인원은 300명선. 기본훈련과 전문분야 교육을 마치면 이 회사와 고용계약을 맺고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같은 전쟁터로 파견된다.

이들의 임금은 일반군인들 봉급의 2배 이상. 연간 10만달러 이상으로, 단기간 계약이행의 대가로 하루 1000달러를 받는 경우도 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이라크 파병 미군 봉급은 연간 평균 3만5000~4만달러 수준이다.

◆9·11테러 이후 수요 폭증

블랙워터사는 작년 3월 이 회사소속 용병 4명이 이라크서 피살되면서 일반에 알려졌다. 미국인들은 검게 탄 시체가 다리에 내걸린 장면을 TV로 보고 이라크전에 민간인들이 참여 중이란 걸 알게 됐다. 1991년 1차 걸프전 때도 상당수 용병이 참전했으나, 2001년 9·11테러 후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과 함께 수요가 폭발했다.

민간군사회사에 고용된 전쟁대행 요원들은 이라크에만 현재 1만5000명 이상 투입돼 있다. 파견회사도 180개가 넘는다. 이라크 연합군에 참여한 미군 다음으로 많은 두 번째 규모로, 영국군(9900여명)보다 많다.

영국 가디언지는 “민간군사회사의 전쟁참여로 전쟁의 본질적 모습이 바뀌었다”며 “미군은 이들 없이 전쟁을 할 수 없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을지 모른다”고 했다. 브루킹스 연구소 군사문제분석가 피터 싱어는 민간군사회사 연간 매출이 1000억달러(2003년 기준)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민간인 전쟁대행 요원들은 정규군과 비슷한 무기와 복장에다 머리도 군인처럼 깎아 군인들과의 구분이 쉽지 않다. 신분상 군과 용역계약을 한 회사 소속의 민간인일 뿐이어서 군 명령체계상에 놓여 있진 않지만 사실상 군인이나 마찬가지다.

주로 전역 군인들인 이들은 영국과 미국 출신이 많지만 호주나 남아프리카, 피지, 네팔 출신들도 적지 않다. GRS(Global Risks Strategies) 같은 회사는 주로 네팔과 피지 출신 전역군인들로 이뤄진 약 1100명의 요원을 이라크에서 운용 중이다.

이들 민간인 전쟁요원은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지만 비판론이 적지 않다. 국가나 체제에 대한 충성심이나 애국심이 아닌, 상업적 동기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전쟁에 참가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냐는 비판이다. 아부 그레이브 감옥 포로학대 사건에는 CACI라는 민간군사회사 직원이 직접 관여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 모요크시=허용범특파원 heo@chosun.com

조선일보 2005.04.26

 


 

럼즈펠드 지난달 이라크서 후세인 비밀 면담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부 장관이 사담 후세인에게 '이라크 저항 세력을 설득해 주면 석방하겠다'고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고 이집트 주간지 알우스부아가 2일 보도했다. 럼즈펠드는 4월 12일 하루 일정으로 이라크를 깜짝 방문하는 동안 바그다드 인근의 국제공항에 있는 미군 교도소 캠프 크로퍼에 수감 중인 후세인을 만났다.

다음은 럼즈펠드와 후세인 간의 대화 요약.

▶후세인(차갑게):"왜 왔나? 뭘 원하나?"

▶럼즈펠드:"과거는 이야기하지 말자. 제안이 있어 왔다."

▶후세인(비꼬듯이):"모든 것을 사과하고 점령을 종식하겠다는 말을 할 줄 알았는데. 무슨 말을 하려고 하나? 대량살상무기는 찾았나?"

▶럼즈펠드:"아직 못 찾았다. 곧 찾을 것이다…. 제안을 말하겠다. 테러에 관해서다. 당신의 사람들이 우리와 이라크인들을 살상하고 있다. 당신이 나서 주어야겠다."

▶후세인:"뭘 원하는지 모르겠다."

▶럼즈펠드:"TV에 나가 테러를 비난하고 당신 사람들에게 저항을 중단하도록 지시해 달라. 그러면 당신은 이곳에서 석방돼 원하는 어느 국가로든 갈 수 있다."

▶후세인:"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나?"

▶럼즈펠드:"그렇다. 대통령.부통령.외무장관.CIA 국장과 합의한 사항이다."

▶후세인(웃으며):"좀 약한데. 추가 제안은 없나?"

▶럼즈펠드:"가족과 결합하게 해주고 자금을 후하게 지원하겠다. 망명지에서 당신과 가족의 신변을 보호해 주겠다."

▶후세인:"내 조건을 듣고 싶나? 우선 미군의 철수 일정을 말해라. 아니다. 당장 철수해라. 둘째, 당신들이 체포한 이라크인들을 모두 풀어주라. 셋째, 1991년 전쟁 이후 목숨을 잃은 이라크인들에 대해 보상금을 지급하라. 넷째, 미국 군인들이 이라크 국고에서 훔쳐간 돈을 돌려달라. 다섯째, 당신들이 훔쳐간 위대한 이라크 문화재들을 제자리에 갖다 놓아라. 마지막으로, 대량살상무기를 발견했다면 그 무기와 미군이 지금까지 죽인 국민의 목숨을 돌려달라."

▶럼즈펠드:"지금 장난하고 비꼬는 것인가?"

▶후세인:"비꼬는 것이 아니고 진실이다."

▶럼즈펠드:"나의 제안은 역사적인 것이다. 잘 생각해 보라. 당신은 지금 흘리는 엄청난 피의 역사적 책임을 질 것이다."

▶후세인:"역사적 책임을 질 당사자는 당신들이다. 현재의 저항과 테러도 누가 야기했나. 저항은 당연하다. 당신들은 우리의 고귀함을 짓밟았다.굴욕보다는 죽음이 낫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amirseo@joongang.co.kr

중앙일보 2005-05-04

 


 

 이라크 '거리의 아이들'…"먹고 남은 찌꺼기라도 주세요"

 

전쟁 이후 2년 넘게 무정부 상태가 계속되었던 이라크의 거리거리에는 지금도 학교와 가정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이라크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다니고 있을 만한 어린 아이들이 종일 도심 거리의 이곳저곳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모습은 어디서건 볼 수가 있으며 심지어 조직적으로 구걸하는 소위 '앵벌이' 아이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이들은 주로 도심빈민가 지역에 사는 아이들로서 얼마 안 되는 푼돈을 벌기위해 나빠진 치안상황과 함께 매일 일어나는 테러와 폭발사고, 복잡해진 거리의 교통체증과 상관없이 도로주변을 누비며 물건을 팔거나 구걸하러 다가와 사람들의 마음을 안쓰럽게 하고 있다.

거리의 아이들은 더 이상 가정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며 학교를 가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걱정이나 후회도 하지 않는다. 단지 얼마의 돈을 벌기 위해 목숨을 잃을 만한 일도 서슴지 않고 매달리고 있다.

날마다 정교해져 가고 있는 이라크 내 저항세력의 공격전술과 차량폭탄테러에 이러한 거리의 아이들이 마구잡이식으로 동원되고 있다는 사실은 외신을 통해서도 이미 여러 차례 보도된 바가 있다.


거리의 아이들, 학교·가정 더이상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아…'앵벌이'로 나서기도

이러한 거리의 아이들의 연령층이 낮고 그 숫자도 점점 더 늘어가고 있으며 또 조직화 돼면서 생겨나게 되는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낳고 있다.

또 이들에 대한 방치와 탈선행위가 늘어날 경우 도심 범죄율은 더욱 치솟고 차세대 교육문제와 함께 향후 이라크 젊은이들의 미래까지 어둡게 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전쟁 전 이라크에서는 오랜 금수조치에 따른 국민들의 생활고로 인해 일부 가정의 아이들이 장사하는 부모를 돕기 위해 장에 따라 나와 일을 거드는 경우는 있었지만 지금처럼 온 종일 거리에서 날품팔이를 한다거나 구걸하는 모습들은 쉽게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사담정부의 강력한 통제와 감시로 인해 시내거리에서 구걸행위 하는 아이들은 곧바로 경찰에 단속되었고 나중에 그들의 부모들까지도 함께 조사를 받아야하는 곤욕이 뒤따랐기 때문이었다.

전쟁 이전까지 이라크의 모든 아이들은 만 6세부터 의무적으로 교육성 산하 거주지 내 초등학교 시설에서 무상교육을 받도록 의무화 되어 있었다.

그러나 전쟁이후 장기화된 치안불안과 교육행정의 붕괴, 혼란상황으로 인해 빈민층에서는 물론이고 일반 가정에서까지 어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경우가 계속 생겨났으며 새로 구성된 정부에서도 아직 여기까지는 행정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최근에 작성된 UN인권위원회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이라크 아동들의 25%가 만성적인 영양결핍상태에 놓여 있으며 5세 이하 어린이들의 영양실조 비율도 4~8%로 전쟁이전에 비해 두 배로 증가했다고 알려져 있다.


UN보고서, 어린이 25% 만성 영양결핍…실제 거리는 보고서보다 더 심각

그러나 현실은 이보다도 훨씬 더 심각해 이라크 어디를 둘러봐도 비만이나 살찐 아이들은 극히 찾아보기가 힘들며 일반 가정의 아이들은 영양결핍으로 인해 대부분 제 나이에 비해 저 체중현상들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다 이번 전쟁에서 도심지 주변에 집중적으로 퍼부어진 열화우라늄 탄의 방사능 오염(최고 기준치의 1900배까지)에 기인한 암, 백혈병 그리고 소아당뇨와 같은 각종 난치병에 시달리고 있는 아이들도 일반가정과 병원은 물론 거리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가 있다.

전쟁 전 이란첩자란 누명으로 체포된 아버지와 함께 3년을 감옥에서 보내다 간질병이 들었다는 13세 된 후세인은 이번 전쟁으로 부모를 다 잃고 지금은 고아가 되어 바그다드 아드미야 지역에 위치한 한 국립병원에서 하루 두 번 무료 제공하는 식사와 약(진정제)으로 연명하고 있다.

“배가 너무 고파요, 제발 먹고 남은 찌꺼기 음식이라도 제가 먹게 해 주세요”

전후 치안이 불안한 바그다드 거리의 한 식당 앞에서 처음 만났을 때에 애처롭게 내뱉었던 어린 후세인의 이 말은 아직도 필자의 가슴속에 큰 슬픔과 충격으로 남아 있다.

이처럼 국가는 물론이고 가정과 학교의 돌봄과 보호에서도 일치감치 내팽개쳐진 거리의 이라크 아이들의 모습은 오늘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이라크의 혼란상황과 함께 미래가 사라진 이라크의 암울한 현실을 대변해 주고 있다.

이집트 카이로=장영재 통신원

글로벌노컷뉴스 2005.5.12

 


 

 체니 CEO 지냈던 핼리버튼사 이라크 재건 엉터리 공사 물의

 

딕 체니 부통령이 최고경영자(CEO)로 재직했던 미국 핼리버튼사가 또 다시 이라크 재건의 장애물로 지목됐다.

로스앤젤레스(LA)타임스는 26일(현지시간) 핼리버튼 계열사가 국방부 재건예산을 물쓰듯 쓰면서도 정작 제대로 복구사업을 진행하지 않은 탓에 이라크 산유시설 복구가 늦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LA타임스가 이라크 복구사업에 참여 중인 재건지원단 내부 인사들과 미 정부 문서들을 입수, 검토한 결과 핼리버튼 계열사와 정부 지원단 간의 불협화음이 복구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것.

가장 큰 문제를 빚고 있는 것은 핼리버튼 계열 켈로그브라운&루트(KBR)사. 세계적인 군사용역회사인 KBR는 2003년 3월 이라크 공격개시 1주일 만에 미 정부와 수의계약을 체결, 남부 유전지대인 카르마트 알리 급수시설 복구공사를 따냈다.

그러나 2억2500만달러가 KBR로 들어갔지만 파이프라인 보수는 제대로 되지 않았다. 핼리버튼은 이라크전 직후 미 국방부와 여러 건의 수주계약을 맺었다가 특혜의혹이 제기돼 미국 언론들의 집중포화를 맞았었다. 지난 4월에도 국방부 예산을 펑펑 끌어다쓴 사실이 들통났었다.

미국은 이라크 산유시설 복구에 13억달러를 투입했지만 현재 산유량은 1일 250만배럴 수준에 그치고 있다. 사담 후세인 정권 시절 최대 생산용량은 하루 800만배럴 수준이었다. 미국은 지금까지 이라크 무장세력의 송유관 파괴 등 테러와 사보타주가 산유시설 복구를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주장해왔다.

구정은기자 koje@munhwa.com

문화일보 2005.09.27  

 


 

 "미군 팔루자 공격때 화학무기 사용했다"<英 일간>

 

이라크 주둔 미군이 작년 11월 이라크 팔루자시(市) 공격때 엄청난 양의 흰색 인(燐)을 사용해 저항세력과 민간인들을 불태워 숨지게 했다는 강력한 새 증거가 제기됐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 인터넷판이 8일 보도했다.

신문은 이탈리아 국영 방송인 RAI가 이날 오전 '팔루자:숨겨진 학살'이란 제목으로 방영한 다큐멘터리 내용을 전하면서 이같이 보도했다.

다큐멘터리는 팔루자 전투에 참가한 전직 미군병사를 인용, "미군이 팔루자에 대해 흰색 인을 사용하려 했기 때문에 주의를 집중하라는 명령을 들었다"고 전했다.

전직 미군 병사는 "인은 뼈만 남을 때까지 살을 태운다. 나는 불탄 여성과 아이들의 시체를 봤다. 인은 폭발해 구름을 형성하며 반경 150m 이내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이러한 피해를 입게 된다"고 말했다.

RAI의 24시간 뉴스채널인 RaiTG24(www.rainews24)의 웹사이트에 올려진 사진들은 이 전직 미군 병사가 언급한 내용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신문은 밝혔다.

팔루자에 있는 인권연구센터가 제공한 것으로 돼 있는 수십장의 고화질 사진들은 팔루자 주민들의 시체를 보여 주고 있는데, 침대에 있는 일부 시체들의 경우 옷은 대체로 손상되지 않았으나 피부는 분해됐거나 열로 인해 녹아있었다.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인터뷰에 응한 팔루자의 생물학자 모하마드 타레크는 "불세례가 팔루자시를 덮쳤고 다양한 색깔의 물질에 노출된 사람들이 불에 타기 시작했다"며 "우리는 이상한 상처를 입은 채 숨진 사람들을 발견했는데 시체들은 불탔지만 옷은 손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는 또한 미군이 네이팜의 개선된 형태인 '마크 77'로 알려진 발화용 폭탄도 팔루자 공격에 사용, 1980년 발효된 특정재래식무기에 관한 유엔협약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협약에 따르면 발화용 폭탄은 군사적 목표물에만 사용할 수 있다.

신문은 서방 언론매체들이 보도하지 않은 당시 팔루자 공격 이후 미군이 팔루자 공격때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소문이 계속 나돌았다고 전했다.

'이슬람 온라인' 웹사이트는 작년 11월10일 "미군이 팔루자의 저항세력 진지에 대한 대규모 공격때 화학무기와 독가스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는 1988년

사담 후세인의 쿠르드족 질식사라는 소름끼치는 소문을 상기시키는 것"이라는 글을 띄웠다.

웹사이트는 저항세력을 인용, "미 점령군은 저항전사들을 가스로 질식사시키고 있으며 국제적으로 사용이 금지된 화학무기를 사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미국 정부는 같은해 12월 이러한 내용을 담은 보도를 공식 부인하면서 웹사이트를 통해 "미군이 금지된 인 폭탄을 팔루자에서 사용했다고 일부 기사들이 주장하고 있으나 인광성 포탄은 금지된 게 아니다"며 "미군은 (살상용이 아니라) 조광용으로 팔루자에서 이를 매우 드물게 사용했다"고 해명했다.


유창엽 기자  yct9423@yna.co.kr

연합뉴스 2005.11.08

 


 

 민간학살·불법구금·문화테러

 

  지난달 26일, 이라크 전쟁으로 인한 미군의 사망자가 마침내 2000명을 넘어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이들은 물었다. 그럼 민간인 희생자수는?
  
  이에 대한 답을 시도한 국내외 언론이 일부 있었지만, 모두 추정지에 불과했다. 이라크 내에서 그나마 통계를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미군 당국이 이라크 민간인 사망자 통계를 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이기 때문인가.
  
  민간인 최대 10만 명 사망설
  
  그러나 민간인의 피해가 결코 부수적일 수 없다는 당위는 차치하고라도, 수많은 난관 속에서도 이라크 민간인 희생자를 끝까지 추적하고 있는 일부 민간단체와 연구소의 통계를 보면 이라크인들의 희생 규모는 결코 '부수적'이지 않다.
  
  언론 기사만을 근거로 사망·부상자를 집계하고 있는 이라크바디카운트(IBC, www.iraqbodycount.net)의 통계를 보자. IBC는 11월 10일 현재 2003년 3월 전쟁 개시 후 최소 2만6931명에서 최대 3만318명의 이라크인이 사망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군 사망자 수와 비교해 최소 10배 이상이다. 지난 7월 IBC가 낸 보고서를 보면 전체 사망자의 37%가 미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그토록 많아 보이는 저항 세력의 테러로 인한 희생자수는 9%에 불과하다. 전시 최대의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 여성과 어린이들의 비중이 높은 것은 물론이다.
  

 

팔루자 공격 당시 민간인 사망자 매장 장면. 하루동안 6백구의 시신을 이장했다. ⓒ윤정은


  스위스 국제문제연구소의 지난 11일 발표를 보면 이라크 민간인 사망자는 3만9000명으로 IBC보다 많다.
  
  영국의 의학 주간지 <랜싯>은 이미 지난해 10월 민간인 사망자수를 10만 명 이상으로 추정한 바 있다. 이는 미국 존스홉킨스대와 컬럼비아대, 이라크의 알-무스탄시리야대 소속 전문가들에 의해 이뤄진 조사 결과 나온 것이었다.
  
  이것이 미국이 원한 자유의 모습인가. 이라크는 진정 자유로워졌는가.
  
  앰뷸런스까지 공격한 팔루자 대공습
  
  미군에 의해 행해진 민간인에 대한 학살과 비인도적 군사행동, 전쟁 포로 및 테러용의자에 대한 고문과 불법 구금은 제네바 협정을 광범위하게 위반한 것으로 미국이 추구하는 이라크 해방이 과연 무엇인지 재삼재사 묻게 한다.
  
  미군은 지난해 4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반미정서가 높은 수니파 거주지 팔루자에 대한 대공습을 감행했다. 1차 공격에서 미국은 AC-130 중무장 항공기, 아파치 헬기, F-16 전투기 등을 동원해 민가와 이슬람 사원 등을 무차별 폭격해 20여 일간 700여 명의 사망자를 냈다. 이 공격에서 미군은 사원 철탑과 건물 옥상에 두세 명씩의 저격수를 배치해 길 위에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고 이 지역의 민간인 피해를 조사했던 사진작가 윤정은 씨가 전했다. 윤씨는 또 미군들이 앰뷸런스에까지 폭격을 가했다는 현지인들의 증언을 들려주기도 했다.
  

 

팔루자 공격 당시 미군에 의해 한꺼번에 40명이 사망한 압둘 아지즈 알사마라이 사원. 미군의 폭격은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졌다. ⓒ윤정은


  지난해 11월 재선에 성공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미군 1만2000명을 팔루자에 투입해 공격을 재개했다. 당시 저항세력 지도부는 이미 팔루자를 떠났고, 노약자를 비롯한 6만여 명과 순교를 각오한 저항세력 그리고 집과 가족을 지키려는 주민들만 그곳에 있었다. 공습 책임자인 토머스 메츠 미군 중장조차 "무장세력의 고위 지도부는 팔루자를 빠져 나갔다"고 말하는 데도 불구하고 시작된 공격은 2085명의 사망자를 냈다.
  
  그러나 미군은 민간인 사망으로 인한 여론 악화를 의식해 민간인 사망자 집계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종합병원, 진료소 등 집계 가능 시설을 접수해버렸다. 하지만 팔루자 종합병원의 타미르 살리 박사는 당시 미군의 공격으로 파괴된 가옥에서 이라크인 700구의 시신을 발견했고, 그 중 여성과 어린이의 것이 504구라고 증언해 민간인 피해의 일단을 보여줬다.
  
  2차 공격에서는 특히 부상 포로에 대한 사살과 식수공급 차단 등 비인도적 군사행위가 두드러졌다.
  
  미 <NBC>는 11월 13일 팔루자의 한 사원에서 한 미군 병사가 부상을 입은 채 비무장 상태로 누워 있는 포로를 조준 사살하는 장면을 촬영해 공개했다. 장 지글레르 유엔 식량권 특별보좌관은 "미군이 이 사원 안에 있던 또 다른 저항세력 부상 포로 3명도 사살한 것으로 보인다"고 증언했다.
  
  이 외에도 미군은 시리아 국경지역으로 확대된 공격과 탈 아파르, 라마디 지역에서의 저항세력 소탕 작전에서도 민간인 거주지역과 병원에 대한 폭격을 서슴지 않았고 청소년·이슬람학자들을 무차별 체포·사살하는 등 비인도적인 군사작전을 수없이 자행했다. 또 하나의 점령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은 지난 10월 탈레반 병사 사체 2구를 불태워 제네바 협정을 위반하기도 했다.
  
  아부 그라이브, 우리 시대의 '생지옥'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의 포로 학대는 미군에 의한 고문과 불법 구금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지난해 4월 28일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요커>와 <CBS> 방송은 미군이 장악하고 있는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벌어진 포로 학대에 관한 보고서와 사진을 공개하면서 점령 이후 2004년 사건이 폭로되기까지 그 같은 고문과 상습이 '일상적'이었다고 보도했다.
  
  공개된 사진들에는 천으로 포로를 뒤집어씌운 뒤 상자 위에 올라서 있게 하고는 떨어지면 전기 감전사 시키겠다고 위협하거나 포로들을 발가벗긴 뒤 인간 피라미드를 쌓게 하거나 성 행위 장면을 연출하라고 강요하고, 여성 병사들이 손가락으로 남성 포로의 성기를 가리키는 등의 장면이 담겨 있다. 아브 그라이브에서는 또 수감자의 80%가 성학대를 경험했고, 여성 수감자에 대한 미군들의 강간과 살해 등이 광범위하게 자행됐다는 보도도 이어졌다.
  
  그 후 수많은 증거들이 쏟아져 나오자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부 장관은 지난 5월 7일 상원 군사위 청문회에 출석해 "포로들에 대한 육체적 폭력, 야만적이고 새디스트적이며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더 많은 사진과 비디오가 있다"고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아브 그라이브 감옥 포로 학대로 기소된 린디 잉글랜드 일병이 포로 목에 줄을 걸고 바라보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하지만 미 행정부는 이를 부사관과 사병들의 '잔혹한 악취미'로 축소 은폐하면서 교도소 관련 실무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그러나 기소된 사병 등은 군사재판과정에서 군 정보요원과 중앙정보국(CIA) 등으로부터 지시를 받은 것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학대 시건의 조사책임자인 안토니오 타구바 육군 소장은 감옥 헌병들이 "우호적인 신문을 위한 신체적·정신적 상태"를 조성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리카르도 산체스 이라크 주둔 미군 사령관이 잠 안 재우기, 독방 감금, 군견으로 위협하기 등의 내용이 포함된 포로관리의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그 후 미국의 유수 언론들은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의 가혹행위는 2002년 아프간 점령 이후 관타나모 수용소 등을 운영하면서 미국이 고안했던 일련의 정책구상의 하나이며 부시 대통령, 체니 부통령, 럼스펠드 국방장관, 곤잘레스 백악관 법률자문 등이 깊숙이 개입된 국가정책이라고 보도하기에 이르렀다.
  

 관타나모, 우리 시대의 '수용소 군도'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서는 9.11테러 이후 억류된 테러 용의자들이 4년 동안 변호사 접견도 허용되지 않은 채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고안하고 대통령이 승인함으로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이른바 '강압적 신문기법'에 의한 조사를 받고 있다.
  
  그러나 2002년 1월 11일 관타나모 수용소에서의 불법구금이 시작된 이래 단 4명만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이고 약 200명 가량은 무혐의로 확인되어 석방되거나 본국의 조사 당국에 넘겨졌다.
  
  지난 6월 13일 시사주간지 <타임>은 2001년 12월 아프간에서 체포된 테러 용의자 모하메드 알 카흐타니의 심문조서를 폭로, 미군은 그의 입을 열기 위해 물고문, 성고문, 약물고문 등 갖은 방법을 동원했다고 보도했다. 카흐타니가 조사받던 중인 2002년 12월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포로 심문을 위해 쓸 수 있는 16가지 방법을 승인했는데, 16가지' 심문법에는 ▲장시간 세워놓기 ▲30일간 독방에 가두기 ▲옷 벗기기 ▲강제로 면도시키기 ▲외설 사진 목에 걸기 등이 포함됐다.
  
  * 보고서 작성의 실무를 담당한 '이라크모니터팀'은 파병반대 운동에 참여해 온 평화활동가들로 이라크 점령 상황 및 자이툰 부대 모니터를 위해 2005년 1월 이라크 모니터 팀을 구성, 2월 2일부터 주례 이라크 모니터 보고서 발간해 왔다. 대항지구화행동 이지은, 사회진보연대 정영섭, 이라크평화네트워크 지영, 참여연대 강이현ㆍ이태호, 통일연대 윤지혜, 평화네트워크 최민ㆍ이주영 씨 등이 그들이다.

 프레시안 2005-11-14

 


 

 "부시-블레어, 이라크전 사전에 조작 모의"

 

영국 작가 필립 샌즈, 저서 <무법천지> 개정판서 주장

 "2003년 1월 마지막 날, 그날은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소유하고 있으며 세계평화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발언하기 바로 5일 전이었다.

부시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수상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설득시킬 충분한 증거가 존재한다는 확신을 갖지 못한 채 보좌관들과 함께 백악관에서 만났다. 안보리의 결의안 없이는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기 위한 이라크 침공계획은 국제법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부시는 회담에서 미군 정찰기를 유엔기로 색깔을 변조해서 후세인의 군대가 공격하는지 어떤지를 시험해 보자는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제2차 유엔 결의안 채택 여부와 관계없이 미국은 전쟁일자를 3월 10일로 못 박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블레어는 부시의 의견에 "확고하게" 찬동을 표했다."


위 글은 양국작가 필립 샌즈의 책 <무법천지>(Lawless World) 개정판에 실린 내용이다. 샌즈는 이 정보를 제공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영국언론들은 회담에 참석했던 인물 중 하나인 당시 블레어 수상 안보보좌관이자 현 주미영국대사인 데이비드 매닝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샌즈는 그가 책에 인용한 비밀 문건의 진위에 대해 <엘에이(LA) 타임스>에 "문서들은 부인되지도 않았고, 부인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영국의 <채널4뉴스>(Channel 4 News)와의 인터뷰에서 그 문서는 영국 밖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이 텔레비전은 지난주 방송에서 그 문서의 발췌본을 제시했다.

블레어 수상의 대변인은 샌즈의 주장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회피한 채 이라크 전 개시 이틀 전인 2003년 3월 18일 영국의회가 영국군 파병을 승인하기 전에는 이에 대한 어떤 결정도 내려지지 않았다는 종래의 주장만 되풀이했다. 매닝 대사의 대변인 또한 매닝 대사는 이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샌즈(45)는 국제법 교수이며 블레어 수상의 부인이 일하고 있는 런던의 매트릭스 법률사무소의 설립 멤버중 하나이다. 작년에 출간된 그의 책은 원래 이라크 전 결정과정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영국에 의해 성립되었던 '법률에 기초한' 국제체제를 영국과 공모한 부시행정부가 어떻게 허물고 있는지를 다루기 위한 것이었다.


"부시-블레어, 전쟁 개시 6주 전에 이라크 침공 결정"

샌즈는 그의 새 책에서 부시 대통령과 블레어 수상이 유엔의 승인이 없더라도 후세인을 제거하기 위해 이라크에 침공할 것을 전쟁개시 6주일 전에 이미 결정했다고 주장한다. 그가 인용한 회담 비밀문건에 따르면 부시는 블레어에게 "미국은 U2정찰기를 유엔기로 변조시켜 이라크 상공으로 보낼 것을 검토 중이다, 후세인이 이 비행기를 공격한다면 이는 유엔결의안을 위반하는 것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영국의 <채널4뉴스>도 지난 2일 방송에서 이 내용을 그대로 내보냈다.

또한 부시는 한 이라크 망명자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해 공개할 예정이며 사담 후세인이 암살될 가능성은 거의 없고, 이라크를 침공한다 하더라도 이라크가 격전장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블레어는 아랍 국가를 포함해서 전 세계적인 반대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로 제2차 유엔안보리결의안을 채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하면서도 부시의 정책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샌즈는 책에서 "자료들은 부시나 블레어 모두 그들이 가진 증거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주었으며,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확실하다면 왜 사건을 조작하는 데 이처럼 많은 시간을 쏟아야 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샌즈는 미국과 영국의 행위는 유엔헌장, 세계인권선언, 제네바협약 등 국제관계의 중요한 요소들을 허무는 행위이며 결국 이라크에서의 국제적 협력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샌즈는 이와 같은 행위가 국제관계에서 무력사용은 자기방어를 위한 경우이거나, 아니면 안보리가 승인하는 경우로 되어있는 국제법의 전통적 원칙을 허물어뜨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결코 자기방어를 주장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양국 정부 당국자들, '이라크 공격 미리 결정' 부인

한편, 양국 정부 당국자들은 조작 모의설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을 회피한 채 부시와 블레어가 이라크 전 개시 6주전에 이미 이라크를 침공하기로 합의했다는 주장에 대해서 정면 부인했다.

미 국무성 숀 맥코믹 대변인은 <엘에이타임스> 11일자에 "이 같은 주장은 계속 되풀이 되어온 것"이라면서 "대통령을 비롯한 관계자들은 그 시점(2003년 1월 31일)에 외교적 해결방안이냐 아니면 군사적 조치냐에 대해 결단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영국정부 대변인 이안 글리슨도 영국은 2003년 3월 18일까지는 무력사용을 승인하지 않았으며 후세인을 무장해제 시키기 위해 다른 여러 방법들을 동원했다고 주장하면서 모든 의문점들은 이미 철저하게 조사를 마쳤기 때문에 더 이상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샌즈는 "블레어는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 보유 여부와 미국의 이라크 전 지원 약속 여부에 대해 의회를 오도했다"면서 블레어 수상에 대한 조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새로운 자료들이 블레어 수상을 탄핵하는 기초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명곤(kim5459) 기자   

 오마이뉴스 2006-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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