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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이라크 전쟁-2

 

이라크 침공 3년..美에 등돌린 국제사회..궁지 몰린 부시

 

이라크전쟁 3주년을 이틀 앞둔 18일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규탄하고 미국의 빠른 이라크 철군을 촉구하는 항의 시위가 전세계 곳곳에서 동시에 열렸다. 19일과 20일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이는 이같은 시위는 이라크전쟁을 보는 국제사회의 시각을 한마디로 대변해준다.

한마디로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WMD)를 갖고 있다는 허위 정보에 근거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어떤 명분도 찾을 수 없으며 무고한 이라크 민간인들의 희생을 막고 이라크가 내전 위기에 빠져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미군이 조속히 이라크로부터 철수해야만 한다는 것이 국제사회가 미국에 던지는 메시지다.

▲ 미국에 등돌린 국제 여론2003년 미국이 이라크전쟁을 시작할 때만 해도 30개 국이 넘는 나라들이 미군을 돕기 위해 이라크에 병력을 파견했다. 여기에는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WMD를 갖고 있다는 미국의 허위정보가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이라크가 WMD를 갖고 있지 않았으며 미국의 정보가 거짓이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이라크전쟁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는 크게 떨어졌다. 처음 이라크에 파병했던 많은 나라들이 이라크로부터 병력을 철수시켰다. 아직까지 이라크에 병력을 파견하고 있는 나라는 20개 국 아래로 떨어졌다. 영국 호주 등만이 미국의 이라크전쟁을 꾸준히 지지하고 있을뿐 이라크에 병력을 파견한 다른 나라들은 오래 전부터 이라크로부터 철수를 모색하고 있다.

이라크에서의 테러가 갈수록 격화되고 있고 이라크 정부 구성이 난항을 겪고 있는 등 진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도 이라크전쟁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을 냉각시키는 중요한 원인이다.

프랑스와 독일 등 처음부터 이라크전쟁에 반대했던 유럽 국가들이 이라크전쟁의 빠른 종식을 여전히 압박하고 있는데다 중동 지역의 반미 감정은 이라크전쟁과 팔레스타인 문제에 있어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 지지로 어느 때보다도 고조됐다. 좌파 물결이 고조되고 있는 남미 등에서도 이라크전쟁은 미국의 발목을 잡는 첫번째 이슈로 거론되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전쟁을 계속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스스로의 고립을 점점 심화시키고 있을뿐이다.

▲ 양분된 미국 사회..궁지에 몰린 부시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8일 이라크전쟁 3주년을 앞두고 가진 주례 라디오연설에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 결정은 힘들었지만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이라크전쟁을 옹호하면서 "앞으로 더많은 싸움과 희생이 요구되겠지만 미국은 이라크를 테러리스트들에게 넘겨주지 않고 임무를 완수한 채 명예롭게 이라크를 떠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같은 부시 대통령의 말과는 달리 미군의 이라크 철수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미국에서 최대의 이슈로 떠올랐다. 많은 미국민들은 지난 3년간 2314명에 달하는 사망자를 낸 미군이 더이상 이라크에 주둔할 필요가 없다며 미군의 빠른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이같은 미국인들의 이라크전에 대한 반대 여론은 부시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를 크게 떨어뜨려 부시 대통령은 취임 후 최저의 지지율에 시달리며 벌써부터 레임덕 현상에 빠졌다는 우려를 부르고 있다.

미 여론조사기관 해리스가 최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문제 처리 방식이 잘못됐다고 응답한 비율이 68%에 달한 반면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문제를 잘 처리하고 있다고 대답한 사람은 30%에 그쳤다. 점점 더 많은 미국인들이 이라크전쟁에 대해 비관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전쟁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답한 사람은 61%로 지난 1월의 55%에서 6%포인트 높아졌다. 반면 성공할 것이라는 대답은 26%에서 20%로 6%포이트 낮아졌다.

그러나 네오콘을 비롯한 골수 공화당 지지자들은 여전히 부시 대통령과 미국의 이라크전쟁을 지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사회는 이라크전쟁을 둘러싸고 어느 쪽도 양보하려 하지 않는 극한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라크전쟁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 사회의 최대 이슈가 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공화당에서조차도 이라크전쟁이 빨리 종식되지 않는 한 공화당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미 정가에서도 이라크전쟁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유세진기자 dbtpwls@newsis.com

뉴시스 2006.03.19

 


 

이라크 침공, 카드빚 돌려막기!

 

2003년3월20일 부시의 대도박 이후 3년 동안 세계는 불안해졌고 내내 불행했네…
피의 행렬 속 군비경쟁 최고조… 이라크 새정부 구성 협상은 아무런 진전 없어

“위대한 이라크인들이여, 서로를 겨냥한 폭력을 멈추고 침략자에 맞서 싸우라.” 지난 3월15일 바그다드의 법정 증인석에 선 그는 여전히 당당했다. “피고인은 정치연설을 중단하라”는 주심 라우프 압델 라흐만 판사의 거듭된 제지에도 그는 “나는 이라크의 국가 수반”이라며 되레 목소리를 높였다.


△ 지난 3월 21일 6대의 차량폭탄이 터지면서 폐허가 된 바그다드 외곽 시아파 집단 거주지역 사드르시티의 시장 앞에서 한 남성이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판사가 재판을 일시 중단시키고 취재진과 카메라를 물린 뒤에도 그의 일장 연설은 이어졌다.

 

다시 당당해진 후세인

“모든 종교인과 종파는 어떤 이라크인도 차별하지 말라. 최근 우리 국민 사이에서 스스로를 해치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는 게 내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다.” 검은색 양복 차림으로 준비된 원고를 읽어내려가던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은 “미국과 시오니스트의 침략에 맞선 그대들의 저항은 위대하며, 태양이 다시 떠오르고 우리가 승리를 거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 1980년대 시아파 주민 148명을 학살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지만, 여전히 당당하기만 한 그의 모습은 오늘 이라크가 마주한 ‘비현실’을 새삼 웅변하는 듯했다.

2003년 3월20일 미국의 이라크 침공, 그 뒤 어느새 3년이 흘렀다. 침공의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WMD)의 흔적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후세인 정권과 9·11 동시테러의 연관성이 허구라는 점은 조지 부시 미 대통령 스스로 인정한 바다. 저항세력을 중심으로 한 ‘저강도 전쟁’이 시아와 수니로 갈려 ‘고강도 내전’으로 변해가는 사이 헐벗고 굶주린 몰골로 짐승처럼 붙들렸던 독재자는 다시 당당해져 이라크인들을 향해 정치연설을 하고 있다. 도대체 지난 3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침공 42일 만에 ‘주요 전투’가 끝났다는 부시 대통령의 ‘선언’이 나왔지만, 이라크 주둔 미군의 ‘고난의 행군’은 끝모르고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월 말까지 2300여 명이 전투 중 목숨을 잃었고, 1만7천여 명이 다쳤다. 지난 3년 동안 줄잡아 1만 명이 치료를 위해 미국과 독일 등지로 후송됐고, 2만5천여 명은 심리·정신적 이유로 귀국했다.


△ 그들은 누구를 지키고 있는 것일까? 바그다드 북쪽 카다미야 지역에서 한 미군 병사가 철조망이 둘러쳐진 시아파 사원 앞에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사진/ EPA)

 

이라크에서 베트남전의 악몽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은 이유다.

미 국방예산은 이미 냉전이 정점으로 치달으며 군비경쟁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1980년대 중반 수준에 근접해 있다. 침공 한 해 전인 2002년 약 3620억달러였던 국방비는 2003년 4550억달러를 넘어섰다. 2005 회계연도엔 1000억달러의 전비 추가예산을 포함해 5200억달러에 이르렀고, 올 9월 마감하는 2006 회계연도엔 전비 추가예산 1150억달러를 포함해 모두 5568억달러 규모다. 냉전의 허황된 망령을 테러와의 ‘장기전’(Long War)이 완벽히 대체했으니, 침공 4년차가 돼서도 변화의 조짐은 없어 보인다.

 

미군 2300여명, 이라크인 최소 3만3638명 사망

‘M-1 에이브럼스 탱크 20대, 브래들리 전차 50대, 최신형 스트라이커 장갑차 20대, M-113 장갑차 20대, 경장갑 험비차량 750대….’ 가공할 화력을 앞세운 미국의 무차별 공세에도 수많은 전과를 올리며 효과적인 ‘저강도 전쟁’을 벌여온 이라크 저항세력의 인명피해도 심각한 수준이다. 저항이 격렬해진 2004년 이후 최근까지 약 2만5천 명에 이르는 저항세력이 전투 중 목숨을 잃거나 사로잡혔다.

저항이 드센 서부 팔루자와 북부 탈아파르, 중부 사마라 등지는 미군의 전면 공세로 문자 그대로 ‘초토화’됐다. 이를테면 30만 인구가 거주하던 팔루자는 시내 대부분의 건물이 미군의 공세로 완파되거나 심각하게 파손돼 재건축이 어려울 정도다. 몇 차례로 나눠 진행된 미군의 공세로 팔루자에서만 적어도 5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평화단체 ‘이라크보디카운트’는 3월16일 현재 언론 보도와 이라크 내무부 등의 자료를 근거로 침공 이후 지금까지 최소한 3만3638명(최대 3만7754명)의 이라크인이 목숨을 잃었다고 집계하고 있다.

침공과 함께 무너져내린 사회 질서는 3년이 지나감에도 회복될 기미가 없다. 미군을 포함한 외국군이 15만 명을 넘어서는데다 부시 행정부가 틈만 나면 ‘유능함’을 강조하는 이라크 치안병력도 22만7천여 명에 이른다. 그럼에도 끝없이 번지는 폭력과 유혈의 참극을 막지 못하고 있다. 팔루자-바그다드-티크리트로 이어지는 ‘수니파 삼각지대’는 저항세력의 공세가 갈수록 불을 뿜으면서 어느새 ‘죽음의 삼각지대’로 이름을 바꿨다. 치안 인력 대부분이 몰려 있는 바그다드에서는 하루 평균 50건의 납치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 "주요 전투는 끝났다." 침공 개시 42일 만인 2003년 5월 1일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과업 완수'를 선언했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라크 상황은 한 치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15일 우여곡절 끝에 주권 정부 구성을 위한 총선이 실시됐지만, 권력 배분을 둘러싼 정파 간 다툼으로 새 정부 구성 협상은 아무런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2월22일 사마라의 시아파 성지 아스카리야 사원 황금돔 폭파 사건은 수니-시아파 사이에서 피의 보복전을 촉발하며 내전의 음습한 그림자가 전면화하고 있다.

 

미국민 52% “철군 시작해야 할 때”

전기와 물, 연료를 비롯한 기본적 생활 서비스 공급 역시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30~65% 사이를 오가는 살인적 실업률 속에 난민 아닌 난민은 갈수록 늘고, 전문 직업인들은 국경을 넘는 탈출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이른바 ‘정부’가 있지만 국민을 보호하는 건 종교 지도자들을 따르는 민병대가 고작이다. 미 뉴욕 스토니브룩대학 마이클 슈어츠 교수(사회학)는 이를 “주권 공백 사태”로 표현했다. 슈어츠 교수는 최근 진보 매체 <머더존스>에 보낸 기고문에서 “이런 상태에서 조만간 주권 정부가 구성되더라도 대체 뭘 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종족 간 긴장이 어느 때보다 높다. 우리에게 닥친 최대 걱정거리다. 이제 이라크 상황은 저항세력 창궐 단계에서 종족 간 폭력 단계로 옮겨가고 있다.” 지난 3월10일 미 상원 세출위원회에 출석한 존 아비자이드 미 중부군사령관은 이렇게 시인했다. 그러나 함께 청문회에 나온 도널드 럼즈펠드 장관은 “이라크가 아직까지는 내전 단계로 접어들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철군 계획을 묻는 의원들의 잇따른 질의를 “예측은 경솔한 일”이라고 무찔러버린 그는 이라크에서 내전이 벌어진다면 “이라크 치안 인력이 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라크 치안 인력이 그 정도로 ‘유능’하다면 왜 현지 주둔 미군의 규모를 줄이지 않는지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았다.

침공 3주년을 앞두고 최근 <워싱턴포스트>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상당수 미국인들은 여전히 침공의 정당성에 동의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침공의 비용과 효과를 비교할 때 침공이 가치 있는 일이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42%가 그렇다고 답한 것이다. 그러나 응답자의 80%는 이라크가 내전으로 치닫고 있다고 답했으며, 52%는 철군을 시작해야 할 때라고 답했다. 부시 대통령에게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이에 상원은 미 합중국 대통령 조지 부시를 견책하며, 미국민을 겨냥한 불법 도청을 승인한 그의 행위를 비난한다.”

위스콘신주 출신 민주당 러셀 파인골드 상원의원은 지난 3월13일 미 상원에 부시 대통령이 법원의 허가 없이 미국민을 불법 도청한 혐의로 부시 대통령에 대한 견책 결의안을 내놨다. 대통령직을 박탈하는 ‘탄핵’과 달리 ‘견책’은 의회 차원의 공식적 비난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만 갖는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상원의 견책 결의안이 나온 것은 1834년 앤드루 잭슨 대통령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로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부시 행정부에는 묵직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파인골드 상원의원 견책안의 의미

침공 결정이 도박이었다면, 그 뒤 3년은 카드빚 돌려막기를 하다 신용불량자로 전락해가는 과정이었을까?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지난 3년 동안 세계는 그렇게 더욱 불안해졌고, 내내 불행했다. 파인골드 의원이 부시 대통령에 대한 견책안을 낸 뒤 조지프 바이든 상원 외교위원장은 한 방송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파인골드 의원이 견책안을 낸 것은 극도의 좌절감 때문이라고 봅니다. 언론인들도 그렇고, 정치인들도 그렇고 우리가 지금 부시 대통령이 뭘 하고 있는지 알고나 있습니까?” 이라크인에게뿐 아니라 미국인들에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던 게다.

정인환 기자/ 한겨레 국제부 inhwan@hani.co.kr

한겨레21 2006년03월23일

 


 

촛불 켜놓고 수술…내일은 더 나빠질 것”

 

이라크 의사가 전하는 바그다드 상황

“전기가 끊겨 촛불을 켜놓고 환자들을 수술할 때면 절망스럽다. 수많은 환자들이 몰려오지만 약품도, 기구도 제대로 없다. 내일은 더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게 이라크의 현실이다.”

27일 <한겨레>와 만난 이라크 의사 하이셈 카심 알리(37)는 “의사로서 매일 너무나 많은 비극들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바그다드 중부에 있는 알시파병원의 의사이자 적신월사(이슬람권의 적십자사)의 자원활동가로도 일하고 있다. 그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 직전 전쟁을 막기 위한 ‘인간방패’로 이라크에 갔던 한국인 평화운동가들과의 인연으로 지난 8일 한국에 왔다.

가난한 사람들과 아이들이 가장 큰 희생자라고 하이셈은 강조했다. “미국 점령 뒤 생필품 값은 전쟁 전의 10배 이상으로 올랐다. 우유도 먹지 못해 영양실조에 걸리거나, 친지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정신적 장애를 겪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 의사로서 나는 미군이 화학무기를 사용하고 있다고 추측한다. 이전에 없던 심각한 피부병 환자들과 암 환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그는 “이라크 내전은 이미 진행중”이라면서도 “내전의 씨를 뿌린 것은 미국”이라고 단언했다. “미국은 점령 초기부터 이라크인들을 종파별로 분열시키고 증오하게 만들었다. 한 미군 장교로부터 이라크인들을 고용해 상대편 종파 사람들을 죽이도록 공작을 벌였다는 말을 분명히 들었다. 이라크가 분열되면 점령과 군사 주둔에 유리하기 때문에 미국이 의도적으로 분할통치를 하고 있다.”

하이셈의 가족은 시아파지만 형수는 수니파다. 오랫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이 지내던 두 종파가 점령 이후 점점 증오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으며, 이라크 친미정부의 정치가들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정치적 이권과 자리를 지키는 데만 관심이 있다고 그는 절망했다.

그는 미군과 서방언론들이 이라크 내전 상황만을 부각시키지만, 실제로는 이라크인들의 미군 점령에 대한 저항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저항세력들은 이라크인이 아닌 미군과 미군기지를 공격한다. 내전과 알카에다 공격만 강조하는 것도 이라크인들의 계속되는 저항과 비참한 삶을 은폐하려는 미군의 정책이다.”

그는 미군의 존재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미군이 지나갈 때는 도로가 2~3시간 동안 통제된다. 그동안 이라크인이 도로에 들어가면 그들은 마구 총을 쏜다. 탱크가 민간인 차를 치는 일도 일어난다. 미국은 이라크 곳곳에 거대한 기지를 건설했으며, 남부 사마와 기지는 중동 최대의 미군기지일 것이다.”

한국 자이툰 부대의 이라크 주둔에 대해 하이셈은 “한국군이 군사활동이 아닌 건설·의료 지원을 하는 것은 그나마 잘하는 일이지만, 이라크인들에겐 미군이나 한국군이나 똑같이 그들의 삶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든 외국군”이라며 “한국정부가 이라크를 돕는 데 관심이 있다면 민간인들을 보내서 도울 일이 많다”고 했다.

“솔직히 지금 이라크에서는 희망을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미군 철수 없는 해결책은 없다. 미군이 철수하면 당분간은 혼란이 벌어지겠지만 결국 이라크인들이 스스로 해법을 찾게 될 것이다.” 그는 미군의 철수 없이는 이라크의 미래를 생각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한겨레 2006-09-27

 


 

 [이라크 침공 4주년의 실상] "차라리 후세인이 그립다"

 

 2003년 7월,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축출된 자리에 폴 브레머 이라크 최고 행정관을 수장으로 하는 미국 주도 과도 행정청이 들어서자 시아파 시인인 압바스 챠이찬은 환영시를 발표했다. 이라크에 부를 상징하는 기름이 넘쳐날 것이며 폴 브레머는 '피와 살을 나눈 제왕(사담 후세인)'보다 나은 통치자가 될 것이란 기대를 담은 노래였다.
  
  적어도 수니파인 후세인 정권 아래서 40년 간 억압받았던 시아파 주민들은 '이라크로 쳐들어온' 미군에 이 같은 기대감을 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후세인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지난 1월, 챠이찬은 깊은 애도를 담은 추모시를 지었다. 이번 시에는 후세인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이 묻어났다. 챠이찬은 "후세인은 아랍세계를 구원할 '기사(Knight)'였다"며 "역사는 후세인을 자랑스레 기록할 것"이라고 노래했다.
  
  챠이찬 시심(詩心)의 변화는 비단 개인적인 변덕의 산물이 아닌 듯 했다. <맥클래치 신문>은 지난 7일 '침공 4주년, 침공 전을 그리워하는 이라크 주민들'이란 제목의 르포 기사를 통해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지 4년 만에 사담 후세인이 바그다드 파도스 사원을 늠름하게 지키고 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 미국 침공 이후 혼란상이 극심해지자 오히려 후세인 독재 치하를 그리워 하는 이라크 주민들이 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월 교수형 당한 후세인의 무덤 앞에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지지자들.ⓒ로이터=뉴시스


  후세인 죽었으니 이라크엔 평화가 왔나?
  
  
후세인 사형 직후 부시 대통령은 <CBS> 방송 프로그램 '60분'에 출연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담 후세인을 제거키로 한 내 결정은 옳은 것이었다. 비록 후세인이 갖고 있으리라 여겼던 무기를 찾지는 못했지만 후세인이 중동세계 불안정의 주요 원인이었던 점에는 변함이 없다."
  
  부시의 발언은 바그다드에도 전해졌다. 그러나 불안정의 주원인이 후세인이었다는 부시 대통령의 주장에 동의하는 이라크 주민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 대신 이라크 주민들은 지난 4년 간 계속된 혼돈상황에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었다. 매일 쏟아지는 테러 소식과 언제나 테러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공포 탓에 심신이 황폐해졌기 때문이다.
  
  무법지대가 된 세상에 시달리다 보니, 고문과 처형이 난무하긴 했지만 그나마 '법과 질서'가 존재하던 후세인의 독재 시절을 그리워하는 주민들이 하나둘 씩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투표소에서 꿈꿨던 '자유의 날'은 언제…
  
  
수니파인 라일라 모하메드는 아이 셋을 둔 엄마이자 동네 약국의 약사다. 모하메드는 교수대에 선 후세인을 보며 "롤러코스터의 꼭대기에서 추락을 앞두고 있는 기분"을 느꼈다.
  
  모하메드 가족은 후세인 정권이 축출된 후 열렸던 세 번의 선거(과도정부 선출, 새 헌법 제정, 자치정부 선출)에 모두 참여했다.
  
  "투표를 하면서 이게 사람다운 삶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내 의견에 정치적 힘이 실리니 말이다. 내 일생에 가장 귀한 순간이었다." 그의 가족들은 지장을 찍기 위해 잉크를 묻힌 손가락을 들고 '민주주의의 도래'를 기념하는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러나 투표장에서 도장을 찍으며 그의 가족들이 희구했던 '자유의 나날'은 아직도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이제 그의 아들들은 이라크를 떠나고 싶어 안달이 났다. 작년 연말을 기해 주민들이 거의 떠나 버린 탓에 약국 운영도 신통치 않다. 집 난방비를 댈 수 없을 정도다.
  
  "속은 거야…."
  
  후세인이 사형 당하던 날 모하메드는 혼잣말로 중얼댔다.
  
  "이 대량학살을 끝낼 수 있었던 사람이 가버렸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얻기 위해 석유쯤은 내 줄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목숨은 내 줄 수 없다. 우리의 목숨은 너무 비싸지 않은가."
  
  "가족 둘을 잃었다…이유는 없다"
  
  
시아파인 아미드 알 야세리는 후세인의 몰락을 바라보며 느꼈던 희열을 기억한다. 그는 당장 위성방송 청취용 접시 안테나를 설치해 아랍어 뉴스와 해외 방송을 시청했다. 휴대 전화도 구입하고 인터넷 서비스도 신청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4년 어느 날, 쇼핑을 다녀온 야세리는 집안에서 총에 맞아 벌집이 된 형의 시체를 발견했다. 형은 후세인 군대 장교 출신이었다. 야세리는 조카들과 함께 좀 더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했다.
  
  석 달 후, 이번엔 그의 삼촌이 죽었다. 휘발유를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다가 총을 맞았다. 야세리는 이번에도 거처를 옮겨야 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가족 둘을 잃었다. 왜일까? 이해할 수 없겠지만, 이유가 없다."
  
  요즘 야세리가 기거하는 곳은 바그다드 중심가인 만수르 주변이다. 부유한 쇼핑가였던 이곳도 최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그가 일하는 쇼르자 시장은 수니파 자살 폭탄 테러리스트들이 군침을 삼키는 표적이다. 지난 몇 주 새 벌써 폭탄을 실은 차 석 대가 시장 통으로 들어왔고 67명이 죽어나갔다.
  
  "이제는 멀쩡한 몸으로 죽는 사람이 부러울 지경이다."
  
  야세리는 더 이상 죽지 않기를 기도하지 않는다. 그는 오늘도 '팔 다리가 찢어진 시체로 공시소에 방치돼 있지 않기'를 간곡히 기도했다.
  
  죽고 죽이는 '종파 분쟁'의 사슬
  
  
역시 시아파인 40대 가장 바랄 알리는 지난 2003년 미군이 후세인을 생포했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벽장에서 AK-47 소총을 꺼냈다. 마음껏 축포를 쏜 알리는 노모와 일곱 살 난 아들에게도 총을 건넸다.
  
  "서른 발짜리 탄창 다섯 개를 갈아가며 온 가족이 축포를 올렸다. 수많은 희생자들을 외면하지 않은 신의 선물이라 여겼다."
  
  그러나 알리의 가족에게 그토록 원했던 평화는 깃들지 않았다.
  
  성난 수니파가 시아파 집단 거주지 인근 시장이나 상점을 공격하는 일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발생했다. 곧 시아파도 민병대를 조직해 반격에 나섰다. 머리에 총을 맞은 수니파 남자들이 공시소에서 발견되기 일쑤였다.
  
  혼란 중에 전기 사용도 어려워졌다. 처음에는 하루에 8시간 정도 전기가 들어오더니 요새는 하루에 전기 들어오는 시간을 모두 합쳐도 3시간이 되지 않는다.
  
  물가상승도 살인적이다. 암시장에선 주방용 가스 한 통 가격이 60달러로 치솟았다. 그보다 싸게 사기 위해선 하루 종일 줄을 서야 한다. 한 달에 100달러 하던 발전기 사용료는 오르고 올라 300달러가 됐다. 급료가 오르긴 하지만 물가 속도를 따라가긴 벅차다.
  
  그래도 알리는 후세인이 죽은 건 잘된 일이라고 여긴다.
  
  "후세인이 잡혔을 땐 앞으로 살림살이가 나아질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비록 기대와 달리 치안은 나빠졌지만 그래도 후세인의 최후를 보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 '싱글 맘'인 모나 알리는 "아이들이 나가서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공포가 일상이 됐다"고 말했다. 죽음의 공포가 이라크 인들의 영혼을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은 작년 12월 사드르 시티에서 발생한 자살폭탄테러로 딸을 잃고 통곡하는 아버지.ⓒ로이터=뉴시스


  일상이 된 죽음의 공포

  
  시아파인 모나 알리는 '싱글 맘'이다. 아침으로 샌드위치를 먹는 세 아이들을 바라보며 저녁에도 이 아이들과 온전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을지를 확신키가 어려워 우울하다. 네 살짜리 아들을 집에 두고 딸 아이 둘을 등교시키는 길에선 간혹 총알이 머리 위를 스쳐가기도 한다.
  
  "아이들이 나가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공포가 일상이 돼 버렸다."
  
  하루는 근처 시장 야채가게로 폭탄을 실은 차 한 대가 돌진했다. 야채를 사러 가던 모나는 한 발 앞에서 죽은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흘린 피 앞에 망연해졌다. 자신의 세 아이가 고아가 되는 악몽은 더 이상 꿈만이 아니다.
  
  "내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도 아이들에게 돌아가지 못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그다드는 무서운 도시가 됐다. 해가 지면 쥐처럼 숨어서 누구도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1년 전 사마라 지역의 시아파 사원이 폭파됐을 때의 비통함은 여느 때와 달랐다.
  
  "그때 비로소 이 모든 일들이 결코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알게 됐다. 오랫동안 고통이 계속될 것을 알았고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시아파의 보복도 끝이 없었다. 더 이상 수니파와 시아파가 이웃으로 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멀리하려다 보니 결국 하나둘씩 이라크를 떠났다.
  
  후세인이 죽던 날 알리는 눈물을 흘렸다. 독재자의 죽음 때문이 아니라 잃었던 나라를 되찾을 수 있는 희망이 죽었기 때문에 울었다. 그는 앞으로의 상황은 더 나빠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후세인 시절이 그나마 우리에겐 안전했던 때였다."
  
  침공 4주년의 성적표…인구 8%가 난민 신세
  
  미국의 침공 이후 이라크를 떠난 압바스 챠이찬은 다시는 이라크로 돌아오지 않았다. 챠이찬과 같은 '이라크인 디아스포라'는 계속 늘어만 가고 있다.
  
  유엔 고등난민판무관의 최근 집계에 따르면 전쟁 이후 이라크를 떠난 난민은 200만에 달한다. 이라크 내 떠돌이가 된 주민도 170만 명가량이다. 1948년 팔레스타인인들이 추방당한 이래 최대 규모의 난민이다.
  
  전체 인구의 8%가 난민 신세가 됐고 매달 5만 명에 가까운 이라크 주민들이 주거지를 옮기고 있다.
  
  공시소는 시체들로 넘쳐나고 팔다리가 잘려나간 아이 때문에 부모들이 흘린 눈물도 넘쳐난다.
  
  이라크 주민들은 지난 4년 간 좀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살았지만 이제는 잃어버린 시간에 눈물을 흘릴 뿐이다. 이라크엔 자유도, 민주주의도 찾아오지 않았다. 미국의 침공이 이라크에 남긴 것은 죽음과 상처뿐이다.

이지윤/기자

프레시안 2007-03-19

 


 

이탈리아 가짜문서가 이라크전을 뒷받침하다

 

"영국 정부는 사담 후세인이 최근 상당량의 우라늄을 아프리카에서 확보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2003년 1월 29일,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신년 국정연설을 들은 이탈리아의 시사주간지 <파노라마>의 엘리자베타 부르바 기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부시는 저걸 어떻게 알았을까?' 부르바는 궁금했다. 왜냐하면 그로부터 3개월 전 중부 아프리카의 한 나라인 니제르가 이라크에 우라늄을 판매한다는 내용이 담긴 '괴문서'를 로마 주재 미국 대사관에 전달했던 사람은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3일 부르바 기자가 '이탈리아 문서'로 알려진 문제의 서류를 미국대사관에 전달한 일부터, 결국 허위로 판명난 이 문서가 전쟁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변신하기까지의 과정을 재구성했다.
  
  오랜 정보원으로부터 걸려온 전화 한 통
  
  부르바가 오랜 정보원인 로코 마르티노라는 사람으로부터 이 문서를 받은 것은 2002년 10월 7일 로마의 한 레스토랑에서였다.
  
  2000년 7월 27일이라는 날짜와 함께 불어로 작성된 그 문서는 니제르 대통령이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에게 보내는 것이었고 "매년 500톤의 우라늄이 두 차례에 걸쳐 (이라크로) 수송될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부르바 기자는 즉시 밀라노에 있는 <파노라마>의 편집 책임자와 상의한 끝에 한편으로는 니제르로 직접 가서 진위를 알아보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인들에게 진위 여부를 검증받아보기로 결정했다.
  
  그는 이틀 뒤인 10월 9일 로마 주재 미국 대사관으로 가 대사관 대변인인 아인 켈리에게 이 문서를 전달했다. 이어 10월 16일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니제르로 출발했다.
  
  같은 날 미 국무부에서 열린 핵무기 확산 대응 정보담당부서 연석회의에서는 이 문서가 등장했다.
  
  그러나 2001년 9.11테러 직후 이탈리아 군 정보기관인 '시스미'로부터 문서 내용과 유사한 정보를 청취했던 미 중앙정보국(CIA)은 이라크에 우라늄을 처리할만한 알려진 시설이 없다는 잠정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따라서 조지 테닛 CIA 국장은 이 회의에서 '이탈리아 문서'의 내용이 너무 의심스럽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에 앞서 국방정보국(DIA)의 별도 보고서를 받은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은 2002년 2월 조지프 윌슨 전 이라크 주재 미국 대사를 니제르에 파견해 추가적인 조사를 하도록 지시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윌슨은 이라크의 우라늄 구매설에 신빙성이 없다는 보고서를 올렸다.
  
  국무부, CIA, IAEA 모두 '가짜'라고 했지만…
  
  2002년 10월 17일 니제르의 수도에 도착한 부르바 기자도 프랑스인 광산업자와 만나 그만한 분량의 우라늄을 이라크로 실어나르려면 트럭 수백 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다 알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런 과정과 관련해 문서를 가진 정보원이 부르바 기자에게 접촉을 시도한 시점과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를 미국 안보에 대한 위협 요인으로 본격적으로 거명하기 시작한 시기가 일치한다고 지적했다.
  
  부시 대통령은 부르바가 괴문서를 입수한 바로 그날 신시내티주의 한 연설회에서 "이라크는 생화학 무기를 보유하고 생산하고 있으며 핵무기를 얻으려 하고 있다"며 후세인이 소프트볼 크기의 무기급 우라늄을 확보했다면 1년 안에 핵무기를 갖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앞서 체니 부통령도 8월 26일 내쉬빌에서 열린 재향군인회 전국총회에서 "후세인이 핵무기를 얻으려는 노력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무부의 정보분석가들은 부르바에 의해 건네진 문서가 가짜라는 결론을 내렸다. 밀라노로 돌아온 부르바도 그 문서가 가짜라는 판단으로 기사를 작성하지 않았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준비중이던 2003년 3월 7일에는 모하마드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도 그같은 사실이 날조된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부시 대통령의 신년 국정연설을 근거로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은 채 엘바라데이 총장의 발표로부터 약 2주 후 이라크 공격을 개시했다.
  
  이 신문은 체니 부통령과 위증 혐의에 대해 유죄 평결을 받은 루이스 리비 전 부통령 비서실장, 미국 국가안보회의(NSC)의 몇몇 구성원들이 반복적으로 CIA에 문서 내용과 관련된 추가 정보를 요구했기 때문에 CIA 분석관들 중 일부가 이 일을 맡아야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누가 이 문서를 만들었는지는 아직까지 규명되지 않고 있으며 정보분야 소식통들은 이탈리아 군 정보기관 시스미 소속의 정보원들 중 좋지 않은 의도를 가진 사람이 돈을 받고 문서를 팔기 위해 만든 게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황준호/기자

프레시안 2007년 04월 04일

 


 

이라크전쟁 5년…수렁에 빠진 미국

 

“中東민주주의 확산” 명분 스러진 채 ‘잊혀져가는 전쟁’

《#1 최근 아이를 출산한 미국인 로라 영블러드 씨. 9개월 전 이라크로 떠난 남편 트래비스 씨는 두 달 전 폭탄테러에 희생됐다. 영블러드 씨는 29세에 불과하지만 재혼은 꿈조차 꾸지 않는다. “세 아이의 엄마라는 게 내 삶의 전부예요”라는 그는 남편이 묻힌 알링턴 미국 국립묘지의 옆자리가 자신의 자리라고 생각하고 있다.(AP통신)

#2 2007년 1월 13일 티바 자위드(30) 씨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이라크 바그다드 서남쪽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던 남편은 시아파와 수니파 종파 간 갈등의 와중에 총에 맞아 숨을 거뒀다. “이젠 모두 다 끝났다”고 울부짖는 자위드 씨를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미국 매클래치신문)》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를 제거하고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테러 지원을 끝장내겠다며 2003년 3월 20일 시작한 이라크전쟁. 그 뒤 5년간 이라크의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그러나 위에 든 사례들처럼 두 나라의 ‘수많은 개인’에게 전쟁은 삶의 전부를 바꿨다.

▽가족 잃은 미국인들도 ‘삶의 전쟁’=영블러드 씨처럼 전장에서 가족을 잃은 이들에겐 삶의 치열한 전쟁이 시작됐다.

이라크전쟁이 시작된 이래 연인원 100만 명 이상의 미군이 투입됐다. 이 가운데 3965명이 사망했고 2만9000명 이상이 부상했다. 건설 현장에 투입된 수천 명의 계약 근로자도 사망과 부상의 위험에 노출됐다.

어맨다 조든(39) 씨의 남편은 해병대원으로 이라크전에 참전했다가 사흘 만에 목숨을 잃었다. 조든 씨는 “사람들이 ‘필요 없는 전쟁’이라고 할 때마다 내 남편이, 내 아이의 아빠가 아무 이유도 없이 죽었다는 것처럼 들린다”며 울분을 토했다. 전쟁 자체가 조금씩 잊혀지고 있는 현실이 이들에겐 더 괴롭다.

워싱턴포스트는 여론조사기관 퓨 리서치센터를 인용해 ‘미국인 대다수가 이라크전과 관련된 뉴스를 보지 않는다’고 13일 전했다.

미국이 이라크에 쏟아 부은 돈도 천문학적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지난달 “5년 가까운 전쟁에 들어간 비용으로 미 국고에서 8450억 달러(약 840조 원)가 지출됐다고 밝혔다.

▽이라크, 최소 사회적 보장장치도 없어=미국이 구원자를 자처했던 이라크인들의 현실도 참담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라크 가족보건조사연구그룹과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2003년 전쟁 이후 5년간 이라크에서 벌어진 폭력으로 이라크인 15만5000명이 죽었다”고 밝혔다.

이라크 인권부의 여성 문제를 담당하는 관리인 소산 알 바라크 씨는 “1991년 걸프전 이후 전쟁과 각종 폭력으로 남편을 잃은 여성이 150만여 명에 이른다”고 주장했다고 매클래치신문이 최근 전했다. 이라크 인권그룹인 알 아말 협회는 “배우자를 잃은 여성들은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매월 40달러의 보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아파 민병대가 수니파인 남편을 죽였다고 확신하는 자위드 씨는 시아파가 이웃까지 세력을 확장하자 생활의 터전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안정을 위해 미군을 증파한 뒤 폭력 사태가 2005년 수준으로 감소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자위드 씨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다. “남편은 돌아오지 않아요. 무슨 희망이 있겠어요.”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14일 “미국과 유럽에선 이라크전쟁이 잘 진행되고 있다거나 상황이 나빠진다며 단지 희생자의 수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라크를 비롯한 중동에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겠다는 구상은 별다른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 신문은 “정작 중요한 문제는 사망자 수를 따지는 게 아니라 이라크인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지,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지”라고 강조했다. 시리아와 요르단으로 나간 망명자 320만 명이 이라크로 돌아올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게 현재 이라크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고 이 신문은 설명했다.

부시 대통령이 최근 읽었다는 ‘가장 추운 겨울(The Coldiest Winter)’에서 저자인 데이비드 핼버스탬 씨는 “부시 대통령은 중동 정세를 잘못 판단하고 외교안보 전문가의 권고를 무시했으며 정보를 왜곡함으로써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가져왔다”고 그의 이라크전쟁을 비판했다.

김영식 기자

동아일보 2008-03-15

 


 

美, 이라크 침략 5년 …피로 얼룩진 ‘석유전쟁’ 평화는 없었다

 

ㆍ유가 3.5배나 폭등…서방 메이저만 돈벼락

ㆍ생계형 폭탄테러·궁핍·저항 등 비극 계속

오는 20일로 미·영 연합군의 이라크 침략 5주년을 맞는다. 그 사이 조지 부시 미 행정부가 밝힌 침략의 명분은 사담 후세인 정권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의혹 및 알 카에다와의 연계 의혹에서 독재정권 교체로 바뀌었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이라크 침략의 본질이 ‘석유 전쟁’이었다는 점이다. 석유는 침략 당시만 해도 이라크 전쟁의 복구비용을 자급할 수 있는 화수분으로 여겨졌다. 사우디아라비아에 버금가는 이라크가 하루 600만배럴의 원유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에 근거한 것이었다.

폴 울포위츠 당시 국방부 부장관은 침략 2~3년 안에 500억~1000억달러의 석유 수입이 창출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실제는 전쟁 이전 수준인 하루 250만배럴에 그치고 있다. 되레 배럴당 100달러가 넘는 고유가로 인해 석유업계의 배를 불리고 있을 뿐이다. 워싱턴포스트는 16일 이라크전 발발 이후 유가가 3.5배 뛴 덕분에 서방의 5대 석유메이저들의 이익은 400억달러에서 1210억달러로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이라크 침략이 석유전쟁이었다는 ‘음모론’은 두 가지로 정리된다. 우선 ‘평화를 위한 소비자단체’의 주장처럼 석유업계 출신인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이 미 업계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벌였다는 단순 음모론이다. 베이루트 아메리칸 대학의 야히야 새도스키 교수는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그랜드 플랜’론을 주장한다. “세계 석유시장을 이라크산 원유로 적셔 유가를 배럴당 15달러로 떨어뜨리는 동시에 석유수출국기구(OPEC) 체제를 붕괴시키려는 네오콘의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OPEC가 해체되면 석유에 의존하고 있는 이란과 베네수엘라 등 이른바 ‘깡패국가’들의 정권교체를 달성, 미국의 헤게모니 아래 세계를 재편하려 했다는 설명이다.

동기가 어떠했든 이라크가 석유 이권의 각축장이 된 것은 분명하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이라크 석유 이권의 4분의 1을 챙긴 프랑스의 입지는 좁아지고 미국 업체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러시아와 터키, 유럽 및 한국 업체들까지 쿠르드 지역 유전에 ‘빨대’를 꽂으려 하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복구 계획이 석유업계 전문가들에 의해 설계되고 있다는 점도 음모론을 뒷받침한다. ‘부시의 아젠다’를 쓴 앤토니아 유해스는 미국의 이라크 복원팀이 석유업계 경영진 출신들로 꾸며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버지니아 소재 컨설팅회사 베이링포인트는 이라크 석유장관을 지명하고 외국 석유기업의 활동에 유리하도록 ‘석유법’을 제정토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라크의 석유는 되레 저항세력의 돈줄이 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16일 이라크 최대 규모의 바이지 정유공장 르포기사를 통해 생산량의 3분의 1 이상이 암시장으로 빼돌려지고 있다면서 이같이 지적했다. 올들어 2005년 수준으로 줄었다고 해도 여전히 매주 100명의 인명을 앗아가는 저항세력이 훔친 석유를 군자금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항세력이 정유공장에 심어놓은 요원과 석유 운송 트럭 운전사, 이라크 경찰 및 공무원, 부족 지도자, 지역별 협의회 위원 등이 얽혀 견고한 먹이사슬을 형성하고 있다. 이라크 저항세력이 훔친 석유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한 해 2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바이지 정유공장에서만 하루 5만~10만달러가 저항세력의 주머니로 들어가고 있다고 현지 미군 장교들은 지적했다.

석유전쟁은 기현상을 낳기도 했다. 미군이 구성한 수니파 민병대의 한 지도자는 “극단적인 지하드(성전) 독트린에 충실한 저항세력은 10%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그들은 오사마 빈 라덴의 지시보다는 단돈 100달러에 기꺼이 폭탄을 매설한다”고 말했다. 미군 점령에 대한 불만과 시아파 및 쿠르드의 득세에 대한 두려움이 무장투쟁의 동기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은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폭탄 심부름을 택하는 ‘생계형 테러’라는 것이다.

피로 얼룩진 석유전쟁이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기는커녕 고유가와 테러, 궁핍을 불러온 셈이다.

워싱턴 | 김진호특파원

경향신문 2008-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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