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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속 유대인-2

 

소수 유대인, 16억 이슬람을 대적한다

 

-우수 인재·책략 바탕 국제 금융시장 등에서 강력한 자본력으로 회교권에 힘 과시-

1997년 아시아가 외환 위기에 빠지자 마하티르 모하메드 말레이시아 총리는 공공연하게 유대계 투기자본의 음모론을 제기했다. 동남아의 금융 위기가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회교 국가의 발전을 막으려는 유 대인들의 음모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는 “우리가 20여 년 동안 이룩한 성과를 그들이 불과 2주일 만에 되돌려버렸다”고 분개 했다.

지구상에서 순수 유대인은 1천5백만~1천7백만 명으로 추산된다. 유 대인임을 드러내지 않고 각자 소속한 나라의 시민으로 살고 있는 숫 자까지 감안하더라도 2천3백만여 명 정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 다. 세계 인구의 0.3%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이처럼 숫자상으로는 미미하기 그지없는 유대인이 10억이 넘는 이슬 람권과 상대하고, 나아가 60억 세계 인구를 ‘지배’하고 있다. ‘지 배’라는 표현이 가능한 까닭은 유대인이 세계 유일 패권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 유대 인은 3% 미만이지만 정치, 경제, 금융, 예술, 문화, 언론, 정보통신 등의 주요 부문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순수 유대인, 세계 인구의 0.3%

미국 테러 대참사로 표출된 ‘이슬람 쇼비니즘’의 반대편에는 ‘유 대’라는 강력한 힘이 숨어 있다. 이 ‘숨어 있는 0.3%’가 16억 이 슬람의 최대 적인 셈이다. 소수가 다수를 이긴다는 것은 소수가 우 수한 정예요원으로 이뤄져 있거나 구사하는 책략이 뛰어나다는 얘기 다. 유대인은 이 두 가지를 다 갖췄다는 게 일반적인 평이다.

지구상에서 유대인만큼 인류사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한 종족도 없을 듯하다. 외교관 출신 박재선씨는 <세계사의 주역 유태인>(모아드림, 1998)이라는 저서에서 “종교, 정치, 사상, 경제, 금융, 문학, 과학, 언 론 등 물리적인 체력을 위주로 하는 스포츠를 제외한 거의 전부문에 걸쳐 유대인의 선구자적 역할은 돋보였다”고 언급하고 있다. 역사 적인 발명과 지리상의 발견은 물론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발전시킨 것도 유대인이요,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사회주의를 창안하고 개념화 한 것도 유대인이라는 것이다. 핵무기 개발과 평화주의 운동도 유대 인의 주도하에 이루어져왔고 또 주도되고 있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 의 30%가 유럽계 유대인이다. 이쯤만 해도 유대인의 우월성은 충분 히 설명될 것이다.

그 다음은 책략이다. 이슬람이 미국이라는 거대한 적과 맞서야 하는 이유는 미국의 정책을 움직이는 유대계의 정치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유대 자본이 그 뒤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이번 미국 테러 대참사의 원인도 부시 정권의 지나친 이스라엘 편향 정책에 있다고 할 수 있 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역사적 사건 뒤에는 심심찮게 ‘유대 음모 론’이 등장한다. 1990년대 말 아시아를 강타한 외환 위기가 화교 및 회교 자본을 견제하기 위한 유대 자본의 음모라는 설은 식자층에 서도 상당한 공감대를 얻고 있다.

유대인의 책략을 언급할 때 지금껏 진위 논란에 휩싸여 있는 ‘시온 의정서’를 빼놓을 수 없다. 원제가 ‘시온장로의정서(Protocols of the Learned Elders of Zion)’인 이 책략서는 유대인들이 세계 정복 의 야심을 갖고 비밀회의를 가진 후 채택한 행동지침서라고 할 만하 다. 이 의정서는 1897년 스위스에서 개최된 제1차 시온주의 대회의 결의에서 발췌한 것으로서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05년 즈음이 다.

약간은 신비주의적인 냄새가 나는 시온의정서의 내용은 매우 충격적 이다. 그 요지는 이렇다. ▲자유와 평등사상을 바탕으로 개인주의를 새로운 가치관으로 확산시켜 국가체제나 민족에 대한 귀속의식을 약 화시킨다 ▲비(非) 유대 국가들을 끊임없는 분쟁에 몰아넣어 스스로 국력을 소모하게 한다 ▲유대인이 수완을 발휘하는 금융·투기 분야 에 각국이 몰입하게 만들어 각국 경제를 약화시키며 이러한 상황이 확대될 때 대규모 국제 대공황을 연출한다 ▲시각 교육을 조직적으 로 보급시켜 인간으로 하여금 이를 탐닉하게 하여 사색력을 마비시 킴으로써 건전한 행동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어 다루기 쉬운 동물로 개조한다 ▲이상의 전략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매스컴과 재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시온의정서는 현재로서는 위작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그러나 그 내용은 섬뜩할 정도로 현실과 부합하고 있다. 특히 유대 음모설의 배후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유대 자본을 보면 경악할 만하다.

삼성경제연구소는 1998년 ‘IMF 사태와 미국의 금융 메이저 플레이 어들’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유대 자본의 위력과 우리나라의 IMF 사태와 세계 경제에 미친 영향력을 분석한 적이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상위 6대 은행 중 유대 자본이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 는 은행은 체이스맨해튼, JP모건, 뱅크아메리카 등 3개에 이른다. 체 이스맨해튼과 JP모건은 유대계 창업자의 2세가 경영하고 있고, 뱅크 아메리카는 영국의 유대계 자산가인 로스차일드가와 제휴하여 많은 지원을 받았다. 월 스트리트의 주요 투자은행인 메릴린치, 모건스탠 리, 골드만삭스, 퍼스트보스턴 등도 유대 자본이다.

국제 금융 시장의 큰손인 헤지펀드의 경우에도 유대 자본의 영향력 이 막강하다. 세계 최고의 투기꾼으로 불리는 소로스도 유대인이다. 또 미국 자본가 그룹 상위 5개 기업인 록펠러, 모건, 듀퐁, 멜론, 시 티코프가 유대계 자본이다. 더욱이 세계 대기업 50개 사 중 21개 사, 상위 20개 사 중 13개 사를 미국 기업이 독점하고 있고, 그 13개 사 전부가 미국의 유대계 5대 재벌과 인적 또는 자본적으로 밀착돼 있 다는 것이다.

▲금융은 물론 언론·영화 등도 장악

시온의정서에 언급된 언론 부문에서도 유대 자본과 인맥은 현재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세계적 언론재벌 머독을 비롯해 <워싱턴 포스트> <타임> 등 미국의 영향력 있는 매체들이 유대 인맥에 의해 설립, 인수 또는 운영되고 있다. 미국 언론계에서 유대인 종사자는 6% 정도에 불과하지만 이들 은 주요 매체에서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여론을 만들고 확산 하는 위치에 있는 주필, 정치평론가, TV 뉴스쇼 제작진 등 요직에서 소수정예의 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영화계도 유대인에 의해 장악됐다고 할 정도로 ‘유대 마피아’가 할리우드를 주도하고 있다. 파라마운트, MGM, 워너, 폭스, 유니버설, 콜럼비아, 디즈니 등 할리우드 7대 메이저 중 만화영화로 성장한 디 즈니를 제외한 6개 영화사는 유대인이 설립한 기업으로서, 오늘날까 지 유대계 참여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또 스티븐 스필버그, 스 탠리 큐브릭, 우디 앨런 등의 유대계 명감독들이 할리우드의 흐름을 이끌고 있다.

우리도 조지 소로스의 헤지펀드 등 유대 자본의 음모에 의해 IMF 사태의 수렁에 빠졌고, JP모건 등 유대 자본의 투자에 의해 IMF의 터널에서 벗어났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어쨌든 스필버그 등 유대인이 만든 할리우드 영화에 울고 웃으며, 머독이 소유한 LA다저스의 박찬호 야구경기를 즐겨 보고 있는 것만 은 틀림없다.

〈신동호 기자 hudy@kyunghyang.com

 


 

인구 2%, 영향력은 20% 미국 움직이는 ‘유대인 파워’

지난해 뉴욕특파원으로 부임하면서 절감한 것 중 하나는 미국 사회에서 유대인의 힘이 크다는 점이다. 특히 유대인이 밀집해 있는 뉴욕, 그리고 인근 뉴저지 주에서 유대인 파워는 엄청나다.

언젠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휴일이라고 해서 학교에 가지 않았는데, 휴일 이름이 생소했다. 알고 보니 유대인 명절이었다.

유대인 인구는 미국 전체 인구에서 2%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영향력은 적어도 20%는 되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대인의 존재감을 미국 사회 도처에서 느낄 수 있다. 미국에 사는 한인 교포들은 재판 등 소송 문제가 걸리면 수임료가 비싸더라도 가능한 한 유대인 변호사를 쓰려고 한다. 그만큼 유리하기 때문이다. 뉴욕에서는 자기 소유 건물을 재개발하려고 해도 유대인 개발업자를 고용하는 사례가 많다. 그들은 시 당국과 협의해 허가조건 등을 유리하게 하는 데 비상한 재주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유대인 파워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먼저 유대인의 높은 교육열을 드는 사람이 많다. 미국 엘리트 계층의 배출 통로로 일컬어지는 아이비리그 입학생의 20%가 유대계라는 통계가 있다. 인구 비중의 10배가 아이비리그에 들어간다는 얘기다.

이들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한다. 월가, 대형 로펌, 영화계, 언론계 등의 핵심 자리는 유대인이 꿰차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중 유대인 비율이 40%가 넘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학계에서의 영향력도 크다.

또 다른 힘은 유대인의 단결력이다. 이는 미국 정부를 상대로 이스라엘을 위해 로비할 때 극명하게 드러난다. 에이팩(AIPAC·American Israel Public Committee)이라는 유대계 로비단체가 대표적이다. 매달 일정액의 회비를 내는 유대인이 100만 명이 넘는다는 이 단체는 미 행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이스라엘을 위해 조직적인 로비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국 외교정책이 유대인 로비에 의해 휘둘린다는 비판도 심심찮게 제기된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미국 언론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자칫 ‘반유대주의’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공종식 특파원의 뉴욕 통신

 


 

"미국이여, 유대인 로비에서 벗어나라"  

메어샤이머 교수, '이스라엘 로비'의 해악 정면비판

유대인 로비가 미국의 대외정책, 특히 대중동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의 주류학자나 제도언론에서는 이같은 지적이나 비판을 접하기가 매우 힘들다. 미국의 정계, 재계, 언론계 등에 포진하고 있는 막강한 유대인 세력의 보복이 두려워 '바른 말'을 하려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주류 정치학자 2명이 유대인 로비가 미국의 대외정책과 국익에 미치는 악영향을 정면으로 비판한 장문의 보고서를 펴내 워싱턴 정가가 시끌시끌하다.
  
  87쪽에 이르는 문제의 보고서 '이스라엘 로비와 미국의 대외정책(The Israel Lobby and U.S. Foreign Policy)'은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시카고대학의 국제정치학자 존 메어샤이머 교수와 하버드대학 케네디행정대학원의 스티븐 월트 교수가 함께 쓴 것으로 지난 13일 케네디 행정대학원을 통해 발표됐다. 또한 이 보고서의 축약본(http://www.lrb.co.uk/v28/n06/mear01_.html)이 23일 〈런던 리뷰 오브 북스〉에 게재됐다.
  
  저자들은 이 보고서에서 "미국 정치사를 보면 모든 상황이 늘 공평하지는 않았다"면서 "왜 미국은 다른 나라(이스라엘)의 필요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자국의 안보와 다른 많은 동맹국들의 안보를 외면하려 하는가"라고 묻고 있다.
  
  친이스라엘 조직뿐 아니라 기독교 근본주의자ㆍ네오콘까지 이스라엘에 '충성'
  
  이 보고서가 지적된 이스라엘 로비 집단들에는 '미국-이스라엘 공익위원회(AIPAC)', '주요 유대인 조직 대표자 회의', '유대인 국가안보협회', '워싱턴 근동정책협회'를 비롯해 최근에는 '기독교 시온주의자 조직'까지 들어가 있다.
  
  소위 '기독교 근본주의자'들도 이스라엘 로비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활약하고 있는 것이다. 팻 로버트슨 목사, 미국기독교연맹 전 지도자인 랄프 리드, 제리 폴웰 목사 그리고 전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였던 딕 아미, 톰 딜레이 의원들이 그 핵심이다. 이들은 모두 이스라엘의 재(再)건국은 성경에 기록된 계시의 이행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뿐 아니다. 비유대인인 네오콘들도 이스라엘을 위해 충성을 바치고 있다. 존 볼튼 유엔 주재 미국 대사, 〈월스트리트저널〉의 전 편집장 로버트 바틀레이, 전 교육부 장관인 윌리엄 바넷, 또 전 유엔 대사인 진 커크패트릭 등이 그들이다. 미국의 영향력 있는 칼럼니스트 조지 윌 또한 이스라엘의 후원자다.
  
  미국, 이스라엘 보호 위해 82년 이후에만 무려 32차례나 거부권 행사
  
  보고서에 따르먄 "미국의 적이 바로 이스라엘의 적이므로 테러와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동맹국"이라는 생각 때문에 미국은 이스라엘에 '각별'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이스라엘을 지원하기 위해 무려 1400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미국은 또 국제사회에서 이스라엘의 '보호자'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1982년 이래, 미국은 유엔 안보리에 상정된,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내용의 결의안을 봉쇄하기 위해 무려 32차례나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 숫자는 다른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거부권을 행사했던 경우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훨씬 많다.
  
  또한 미국은 아랍권 국가들이 이스라엘의 핵무기 보유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다루려는 시도도 철저히 막아줬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이스라엘 돌봐주기가 이 정도였으니 미국 본토에서는 더욱 말할 것도 없다.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은 그 어떤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 얘기는 반유대주의'라는 주장 앞에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은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의 저자들은 이같은 행동이 현재 아랍권의 자유 증진에 핏대를 세우고 있는 미국에게 특히 해를 끼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시선을 원천봉쇄하는 이같은 태도는 "민주주의의 근본인 공개된 토론과 논쟁의 원칙을 훼손했다"고 이들은 비판했다.
  
  "이득보는 것은 이스라엘뿐 미국은 손해가 막심하다"
  
  음지와 양지를 망라해 벌어지는 이스라엘의 로비는 많은 성과를 거뒀다. 미국은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서 벌어지는 유대인 정착촌 확대 등 이스라엘의 확장주의적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지원은 이스라엘이 시리아와 같은 아랍권 국가들이나 팔레스타인과 중동의 평화를 위해 굳이 마주 앉지 않아도 되도록 만들어주고 있다.
  
  이스라엘이 1993년 체결한 오슬로 협정의 이행을 거부하는 '배짱'을 부릴 수 있는 것도 이런 배경 덕분이다.
  
  이스라엘은 손해 볼 것 없는 장사를 하고 있는 셈이지만, 미국이 그 장사를 돕기 위해 치러야 하는 비용은 막대하다고 이 보고서는 밝혔다.
  
  보고서는 "로비의 영향력이 매우 다양한 곳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어 상황은 상당히 심각하다"고 우려했다. 미국이 이스라엘의 보호자 역할을 하다 보니 유럽의 동맹국들을 포함해 모든 국가들과 군사적 위험의 가능성까지 높아지고 있다는 것. 나아가 이스라엘은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의 동맹국이라기보다는 바로 이스라엘의 이같은 태도 때문에 미국에 대한 테러의 위험성이 증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이란과 시리아에 대한 미국의 강경정책도 이스라엘의 로비탓이라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이란과 시리아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스라엘이 로비를 통해 이들 나라에 대한 미국의 공격을 유도했다는 얘기다.
  
  사실 미국은 알카에다나 이라크 저항세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이들 국가와의 협력이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로비로 결과적으로는 상당한 손해를 보고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한 언론과 싱크탱크들, 그리고 학계가 이같은 로비에 의해 거짓된 이스라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밝혔다. 친이스라엘 로비 집단은 주요 언론이 이스라엘에 대한 세간의 동정심을 자극하도록 유도했다.
  
  물론 실제 중동 지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나라를 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을 자극하는 선전은 미국의 친이스라엘 정책을 이해시키기에 매우 유용한 수단이었다.
  
  "反이스라엘 법안은 아예 상정조차 안 되게"…낯뜨거운 '충성서약'도
  
  이같은 보고서의 지적을 증명이라도 하듯 미국 정치인들의 이스라엘을 향한 낯뜨거운 '세레나데'는 지금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이달 초 열린 '미국-이스라엘 공익위원회'의 연례회의에서 공화당의 존 보너 공화당 신임 하원 원내대표는 반(反)이스라엘 법안이 절대 회의장에 나오지도 못하게 하겠다고 충성서약을 했다.
  
  보너 원내대표는 "신임 원내대표 직을 걸고 나는 분명히 장담한다"며 "어떤 식으로든 이스라엘에 피해가 가는 법안은 미 하원에서 논의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적극적인 '구애'였던 셈이다.
  
  친이스라엘계 즉각 반발…필자, "공격 당할 줄 알고 있었다"
  
  한편 이 보고서가 나오자 미국 내의 수많은 친이스라엘계 조직들 및 인사들은 즉각 반발하서 반이스라엘 여론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다.
  
  제3세계 전문 통신매체인 〈인터프레스서비스(IPS)〉는 23일자 보도에 따르면 친이스라엘 단체인 '미국 언론의 중동문제 보도의 정확성을 위한 위원회'는 이 보고서에 대해 "오류가 너무 많다며 "만일 대학생이 이같은 리포트를 냈다면 당연히 낙제점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친이스라엘계 세력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언론들도 보고서의 흠집 잡기에 열을 올렸다. 친이스라엘 신문인 〈뉴욕 선〉은 이 보고서의 내용이 극단적인 백인지상주의자들이나 '이슬람형제단'의 구미에 딱 맞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친이스라엘 인사들도 이 보고서에 대한 공격에 가담했다. 유대인으로 뉴욕 공화당 의원인 엘리옷 엔젤은 이 보고서가 "실제로 미국인들을 경멸하고 있다"며 "오래된 반유대인과 반시오니즘의 허튼소리와 같다"고 평가했다.
  
  이같은 비난에 대해 보고서의 저자인 메어샤이머 교수는 〈IPS〉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은 반발이 놀랍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이스라엘의) 로비가 우리에게 보복을 할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우리가 공격당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고 털어놨다.
  
  그는 자신과 공저자인 월트 교수는 지난 수 년간 미국의 대중동정책에 대해 연구해 왔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보고서에서 밝힌 문제점들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 다만 이들은 보복이 두려워 그것을 말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메어샤이머 교수 등의 모처럼만의 지적이 미국의 대외정책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미 대외정책의 근본 목적은 당연히 미국의 국익증진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 특히 1967년의 6일전쟁 이후 미 대중동정책의 핵심은 이스라엘과의 관계가 차지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무조건적인 지원과 중동지역에 대한 민주주의 확산정책이 겹쳐지면서 아랍과 이슬람권의 여론은 지극히 악화됐고 이는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미국의 정치사에서 이러한 상황은 한번도 있어본 적이 없다. 어찌하여 미국은 다른 나라의 국익을 돕기 위해 스스로의 안보를 도외시하고 있는가? 미국과 이스라엘이 전략적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든가, 아니면 동일한 도덕적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보여주듯이 이러한 설명들은 미국이 이스라엘에게 베풀고 있는 엄청난 물질적, 외교적 지원을 결코 정당화할 수 없다."
  
  ('이스라엘 로비와 미국의 대외정책' 중에서) 

프레시안

 


 

미국을 움직이는 2% 유대인들의 ‘파워 네트워크’

미국을 움직이는 2% 유대인들의 ‘파워 네트워크’ 백악관도 안팎으로 유대인에게 둘러싸여 있다. 오바마 대통령을 만든 일등 공신 중에 유대인을 빼놓을 수 없다. ‘유대인의 돈과 인맥’은 이미 미국 각계각층에 뻗어 있다.

세계의 언론들은 가자에서 벌어진 참상을 속속들이 전달했다. 비참한 현실이었다. 무방비 상태의 팔레스타인 아이나 여성이 이스라엘군의 총격이나 공습으로 인해 생명을 잃었다. 국제 사회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결을 두고 우왕좌왕했다. 중심 축인 미국이 움직이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움직이지 않았다기보다는 암묵적인 지지를 보냈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 듯하다.

가자 지구에서 총성이 일어나자 부시 행정부는 그 책임을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에게 돌렸다.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의 자위권 행사로 규정하며 이스라엘을 두둔했다. 정부의 코멘트를 뒷받침하듯 1월8일에는 미국 상원이, 1월9일에는 미국 하원이 하마스를 비난하며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유엔이 힘겹게 마련한 안보리의 즉각적 휴전 결의안을 채택하는 과정에서 15개 이사국 중 미국만이 유일하게 기권표를 던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금융 위기로 초래된 경제 대책에 대해서는 줄곧 발언했지만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해서는 불투명한 반응을 보였다. 이를 두고 외신들은 “유대계에게 빚진 선거자금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대통령 선거는 결국, 자금력·조직력·미디어 대책에서 승패가 판가름난다. 오바마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능숙한 연설 능력이 승리의 원동력인 것처럼 알려졌지만 그 이면에는 ‘유대계 혹은 친이스라엘계의 협력’이라는 스폰서가 자리 잡고 있다. 오바마 캠프에서 젖줄인 선거자금을 모았던 책임자는 시카고에서 유대계 자선 단체를 인솔하던 유대인 앨런 솔로몬이었다.

원래 오바마는 반이스라엘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민주당 경선 기간 중 민주당 계열의 유대인(또는 유태인)들은 오바마에 대해서 비판을 퍼부었다. 오바마가 정말 친중동적인 정서를 가져서라고 믿기보다는 조금의 반이스라엘적인 뉘앙스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경고였다.

이것은 2008년을 기점으로 변화했다. 뉴욕타임스의 저명한 칼럼니스트인 로저 코헨은 2008년 2월10일자 칼럼을 통해 “오바마를 무조건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꽤 강력한 이스라엘의 친구이다”라며 엄호 사격에 나섰다.

로저 코헨의 호의에 오바마가 스스로 이스라엘의 친구임을 인정하며 답례했다. 오바마는 민주당 후보로 확정된 직후인 지난 해 6월 유대인 최대 압력 단체인 ‘미국·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AIPAC)’의 자리에 섰다. 그는 “이란에 대한 공격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겠다”라는 입장을 보이며 사실상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일각에서 ‘투항’이라고까지 표현할 정도로 오바마의 이날 연설은 파격적이었다. 어찌보면 이번 가자 지구의 참상을 두고 오바마가 오랫동안 침묵을 지킨 것은 AIPAC에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미국 내 유대인은 그야말로 소수 인종이다. <예루살렘포스트>의 추정에 따르면 미국 내 유대인의 인구는 대략 6백40여 만명이다. 미국 내 전체 인구의 2% 남짓에 불과하지만 일반인들도 미국에서 유대인이 가지는 파워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을 정도로 그 영향력은 막강하다.

유대인들이 미국 사회의 심장부에 진출하게 된 과정을 알려면 역사적인 맥락을 살펴보아야 한다.

 

 

 

 

▒ 유대인의 미국 입성

미국에 처음으로 이주한 유대인은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추방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1654년, 브라질을 경유해 처음으로 지금의 뉴욕 지방에 도착했다. 유대인들은 인디언을 막기 위한 바리케이트를 건설하는 데 헌금하거나 경비대에 직접 참가하며 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다. 독립전쟁에는 많은 유대인이 워싱턴 등지에서 총을 들고 참가했다. 이들 초기 이주자 가운데는 크리스트교로 개종하고 상류 계급과 혼인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거쳐 WASP(백인 앵글로색슨, 미국 주류 지배 계급)에 포함된 이들도 많았다.

1820년대부터 1870년대까지는 독일에서 유대인들이 몰려왔다. 독일에서 1848년 일어난 3월 혁명의 패배로 탈출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온 유대인들의 멸시를 뒤로하고 새로운 곳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면화, 금광, 철도, 토지 등에 투자했고 당시에는 마치 유곽처럼 취급받던 월스트리트에도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독일계 유대인은 모국 독일과 유럽 각지의 유대계 자본과의 연결 고리, 즉 중개인으로 활약했다. 철도가 조달 수단으로 부각되면서 독일계 유대인들의 위상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미국 내의 주요 기업들에게 국제적인 자금을 조달하면서 독일계 유대인이 소유하거나 지배한 투자 은행은 그 후 오랫동안 미국 내의 투자 은행 업계를 양분하는 하나의 세력이 되었다.

‘골드만삭스’의 창시자인 독일계 유대인 마커스 골드만은 이 시기의 대표적인 성공 표본이었다. 그는 1848년 필라델피아에 도착해 2년간 행상을 한 뒤 의복점을 열어 자금을 모았다. 1869년에 만든 골드만삭스는 현재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로 성장했다. 독일계 유대인은 백화점에도 진출했다. 현재 미국의 유명백화점인 브루밍데일, 니만마커스, 파이린즈 등은 독일계 유대인이 설립한 과거 소매상점에 기원을 두고 있다.

스페인계 유대인 사회에 독일계 유대인이 합류한 결과, 유대인계 인구는 눈에 띄게 증가했다. 유대인의 수는 1848년에는 5만명이었지만 1860년대 중반에는 20만명 가까이 급증했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 인구의 0.5%에 불과한 소수 인종이었다.

독일계 유대인은 민족·종교를 드러내며 배타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싫어했다. 유대인 정치 클럽을 조직하거나 유대인의 정치적 견해를 표명하는 것 등을 혐오했다. 그들이 내세운 방식은 전형적인 ‘동화주의’였다. 유대인이 소유했던 백화점들은 결코 유대계의 색깔을 내보이지 않고 어디까지나 지역 사회의 문화적·종교적 테두리에 녹아들려는 경영 방침을 갖고 있었다.

유대인 인구는 1900년이 넘어서자 100만명을 돌파했다. 이전 20년간 미국의 총 인구가 1.5배 증가한 데 반해 유대인 인구는 4.4배가 증가했다. 이들은 주로 동유럽에서 넘어왔다. 1910년 무렵 유대인의 미국 내 인구는 2백80만명에 달했다.

미국은 1924년 이민법을 제정하며 동유럽 유대인들의 이민을 막았다. 닫혔던 문이 다시 열린 시기는 독일과 오스트리아로부터 나치의 박해를 피해 25만명의 유대인이 미국으로 건너왔을 때이다. 이때 온 무리에는 알버트 아인슈타인 등의 과학자와 작가 등이 대부분이었다.

많은 독일계 유대인 지식인들이 이주하면서 생긴 미국의 힘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1901년부터 1939년 사이에 물리학, 화학, 의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미국인의 수는 14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1943년부터 1955년까지, 즉 독일계 유대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한 뒤 이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미국인은 29명으로 늘어났다. 독일에서는 반대의 현상이 일어났다. 독일은 같은 기간 35명의 수상자가 5명으로 급감했다.

여전히 소수 인종이지만 유대인 사회는 알토란 같은 분야들을 점유하며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유대인들의 힘은 각자 보유하고 있는 부분이 네트워크를 이루면서 나온다. 소수 인종이지만 금융, 학회, 미디어, 영화 등 각지에서 은연중 힘을 발휘하고 있다. 돈과 인맥으로 역대 정권이 친이스라엘적인 외교를 유지하는 데 버팀목이 되어왔다. 중동에서 섬처럼 고립되어 있는 이스라엘을 대신해 미국 내에서는 유대인들이 미국 행정부를 포위하는 전략을 사용해왔다.

▒ 미국 정치권에 뻗은 강력한 네트워크

네트워크의 힘은 압력 단체의 힘으로 드러난다. 유대인의 힘을 보려면 미국·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AIPAC)를 보면 된다. 매년 6월에 열리는 연례 총회에는 주요 정당의 인사들이 모두 참석해 대성황을 이룬다. 회비가 최저 10만 달러인 엘리트 회원이 되면, 부통령 등 정권의 요직에 있는 사람들이 주최하는 저녁 식사에도 갈 수 있다. AIPAC은 로비 단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책을 제언하는 싱크탱크의 역할도 한다. 이스라엘의 국익을 미국의 정책에 반영시키는 모든 일을 수행한다.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온갖 방법을 다 사용한다. 세라 페일린이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기 4일 전인 지난해 8월30일, 미네아폴리스의 한 호텔에 AIPAC 간부 수십 명이 찾아왔다. 이들은 페일린에게 ‘이스라엘 특강’을 해줄 강사였다.

당시 페일린측의 관계자는 “AIPAC 간부는 45분에 걸쳐 페일린에게서 친이스라엘 성향을 찾으려고 애썼다”라고 말했다. 8년 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부통령 후보였던 유대인 조셉 리버만 상원의원도 옆에 앉아 격전지에서 유대계의 캐스팅보드를 잡는 법에 관해 설명했다. 페일린은 “미국과 이스라엘은 특별한 관계이며 이란의 핵개발에는 반대한다”라는 모범 답안을 반복해 AIPAC 간부들을 안심시켰다고 한다. 유대인들이 중심이 된 친이스라엘계 로비 단체는 미국기업연구소(AEI), 안보정책센터(CSP), 허드슨 연구소 등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가운데)이 지난해 6월 미국 유대인 공공정책위원회(AIPAC)에서 연설하고 있다.

▒ 금융·IT·영화 등 산업 전반에 막강 영향력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습이 한창이던 지난 1월12일 스티븐 월트 교수(하버드 대학)는 AFP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에 꽉 잡혀 있는 미국을 비판했다. AFP와 인터뷰를 한 이유는 아마도 AP나 UPI가 유대인의 소유이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월트 교수는 “이스라엘이 미국의 위성 국가라는 말은 잘못되었다. 미국이 이스라엘의 위성 국가이다”라고 꼬집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미국의 핵심부에는 빠지지 않고 유대인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AIPAC이 단순히 표만을 가지고 워싱턴에 압력을 행사할 수는 없다. AIPAC의 뒤에는 유대인들이 소유한 수많은 산업들이 있다. 대표적인 부문이 금융이다. 유대인들의 힘이 더욱 막강해진 것은 힘의 기준이 ‘토지 소유’에서 ‘자본 소유’로 이동하면서부터이다. 특히 자본의 이동에 국경이 없어지고 금융공학이 발달하면서 자본을 이용해 자본을 증가시키는 방법이 확산되면 일찍부터 금융에 투신한 유대인들의 힘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이들이 세계를 지배한다’라며 음모론의 중심에 매번 등장하는 세계적인 금융 부호 로스차일드가(家) 역시 유대계로 세계 1, 2위를 다투는 투자 은행인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를 운영하고 있다. 이번에 파산하며 금융 위기를 부른 AIG, 메릴린치, 베어스턴스 등의 금융 기관 역시 유대인이 소유했던 곳이다. 국제 금융이야말로 유대인들의 가장 큰 힘인 셈이다.

IT 분야에서도 유대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높다. 지난해 미국 CEO 중 8천4백60만 달러를 수령해 최대 연봉 1위에 오른 ‘오라클’의 창업자 랠리 앨리슨, 세계적인 PC메이커 ‘델’의 마이클 델, ‘컴팩’의 벤저민 로젠도 유대인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인 ‘인텔’을 공동 창업한 앤드류 글로브도 헝가리 출신의 유대인이며, 빌 게이츠가 물러난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의 CEO에 오른 스티븐 발머도, 매킨토시를 발명한 제프 러스킨도 유대인이다. 우리나라에는 CDMA 기술의 보유사로 잘 알려진 퀄컴의 어윈 제이콥스 회장 역시 마찬가지이다.

금융과 IT 등 현대 사회의 총아라고 불리는 산업에 이어 언론도 미국의 유대인들이 장악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에게 낯익은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 저널 등의 지분을 유대인이 갖고 있다는 사실도 새삼스럽지 않다. <뉴스위크> 등의 시사 잡지와 AP, UPI 등의 통신사도 해당된다. <보그> <W> <GQ> 등 유명 잡지로 잘 알려진 유대계 미디어 재벌인 ‘뉴하우스 그룹’은 미국 최대의 케이블 네트워크 중 하나이다. CBS나 방송미디어그룹인 바이아컴, 월트디즈니 등도 유대인이 소유하거나 CEO로 재직 중인 곳이다.

현실을 재구성하는 신문과 방송뿐만이 아니라 영화 역시 유대인이 독점하는 분야이다. 19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영화는 ‘니켈로디온(5센트짜리 볼거리)’이라 불리며 하류문화 취급을 받았다. 유대인은 여기에 뛰어들었다. 100년이 흐른 지금 MGM, 20세기 폭스, 워너브라더스, 파라마운트, 유니버설 등 주요 영화 제작사와 배급사는 유대인의 소유가 되었다. 이미지가 중요한 시대에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주요 산업들이 유대인의 소유가 된 것만으로도 그들의 힘은 더할 나위 없이 막강해진 셈이다. 하물며 이 산업들이 엄청난 이익까지 내고 있으니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 오바마 주변의 유대인 실력자들

유대계는 외곽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넘어 내부에서도 오바마 정부의 정책에 깊숙이 관여할 준비를 마쳤다. 대통령 비서실장에는 일찌감치 시카고 태생의 유대인 하원의원 람 임마뉴엘이 임명되었다. 비서실장은 ‘White House Chief of Staff’로 불리는 대통령의 분신이다. 스케줄 관리부터 정책 입안, 그리고 의회와의 커뮤니케이션까지 도맡는 자리이다. 임마뉴엘은 결혼 전에 아내를 유대교로 개종시켰고, 이스라엘 국적도 가지고 있다. 임마뉴엘의 부친 역시 유대 민족주의자의 무장 그룹에 참여한 전력이 있다.

티모시 가이스너 재무장관 역시 유대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금융 위기로 경제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 때여서 그렇다. 금융 위기가 발생했을 당시 뉴욕연방은행 총재를 지내면서 베어스턴스나 AIG의 구제에 나서는 등 위기 방지 대책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다트머스 대학을 졸업한 뒤 로버트 루빈과 로렌스 서머스 두 유대인 재무장관의 밑에서 차관으로 일하며 1997년 아시아 통화 위기를 관리한 바 있다. 경제 위기가 도래한 1997년에는 재무차관으로, 그리고 2009년에는 재무장관으로 일하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로 오바마 정권의 경제 정책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국가경제위원장으로, 폴 볼커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경제회복자문회의의장으로 돌아오는 등 유대인 경제계 거물들이 워싱턴으로 복귀 중이다. 피터 오스자그 역시 루빈 전 장관의 제자로 백악관 예산국장에 임명되었다. 제임스 스타인버그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아래에서 국무부 정책 담당 부장관을 맡아 미국의 전반적인 외교 정책을 총괄하는 유대인이 되었다. 오바마 캠프의 유대계 네트워크를 담당했던 친이스라엘파 데이비드 엑셀로드는 백악관 선임고문으로 임명되어 오바마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한다. 백악관은 안팎으로 유대인에게 둘러싸여 있다.

 

 

▲ 유대계는 오바마 정부의 내부에도 자리를 잡아 정책에 깊숙이 관여할 준비를 마쳤다(굵은 글씨가 유대인들).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美외교 망치는 유대인 로비

"공동운명체" 집요한 설득에 휘말려… 중동서 잇단 실책

 유대인의 막강한 로비가 미국 외교 정책을 망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시카고대 존 미어샤이머(정치학) 교수와 하버드대 스테판 왈트(국제관계학) 교수는 최근 함께 펴낸 ‘이스라엘 로비와 미국의 대외 정책’이라는 논문에서 “미국이 안보 불안에 시달리고 중동 평화협상이 꼬이는 것은 근거 없이 이스라엘만 편들었기 때문”이라며 “이스라엘에 대한 퍼주기식 지원이 아랍권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미국이 중동 정책의 초점을 미국의 이익이 아닌 이스라엘의 이익에 맞추고 있다”며 “친 이스라엘 로비 단체들이 정치권과 언론을 상대로 ‘이스라엘의 이익이 미국의 이익’이라는 등식을 주입시키는 데 성공한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미-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AIPAC)를 중심으로 한 유대계 로비 단체의 힘은 막강하다. AIPAC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로비 단체이다. 6만 5,000명 회원 대부분이 중산층 이상인데, 이들로부터 거둬들이는 자금으로 의회와 백악관을 상대로 미국의 대 이스라엘 원조 확대, 미국의 대 아랍 군사무기 판매 제지 등을 유도한다. 미국은 매년 25억 달러 이상을 이스라엘에 지원하고 있다.

조직력도 무섭다. AIPAC는 4년 전 미국 의회가 이스라엘에 대한 방위 지원금 2,000만 달러 지급 여부를 놓고 시끄러웠을 때 불과 1주일 새 유대인 10만 명을 의사당 앞에 집결시키는 힘을 과시했다. 이 법안은 결국 상ㆍ하원 모두에서 압도적으로 통과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 협상을 위해 이스라엘에 대한 방위비 지원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소용 없었다.

이스라엘을 비판적으로 다루거나 아랍권을 우호적으로 다루는 신문은 AIPAC 회원들의 집단 구독 중지 운동에 두 손 들고 사과 기사를 내보낼 정도다.

진보성향의 미국 주간지 네이션은 “워싱턴의 주요 인사들은 너도나도 AIPAC 연례 회의에 참석, 이스라엘과 얼마나 가까운 지를 자랑하느라 바쁘다”고 꼬집었다. 딕 체니 부통령 역시 지난 주 열린 AIPAC 연례회의에서 이란에 대한 무력 대응이 가능하다고 밝히고 박수 갈채를 받았다.

두 교수는 “이스라엘은 아랍권을 무력으로 자극한 뒤 아랍권이 이에 보복하면 아랍권은 무서운 존재라고 주장한다”면서 “이스라엘이 불안감을 부풀리고 미국이 이에 귀 기울이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박상준기자 mailto:"buttonpr@hk.co.kr"

 


 

“네트워크가 힘” 친정부 로비스트 전진 배치

‘불안한 출발’ 오바마시대 美유대인들의 생존법

■ 로비단체 수련회 가보니

'중요한건 관계다(Relationships matter).'

5일 낮 미국 워싱턴 시내 컨벤션센터. 존 F 케네디를 비롯해 역대 미 대통령과 이스라엘 지도자가 포옹하거나 악수하는 사진에 'Relationships matter'라는 슬로건이 쓰인 초대형 포스터가 무수히 걸려 있다.

미국 내 유대인 로비단체인 미국이스라엘공공정책위원회(AIPAC) 연례 정책수련회(Policy Conference)의 마지막 날 오전 일정을 마친 유대인들이 질서정연하게 빠져나와 대기 중인 수십 대의 대형버스에 나눠 탔다. 이들은 총회 마지막 일정중 하나인 '로비 데이(Lobby Day)' 프로그램에 따라 다들 인근 미 의사당으로 몰려가 출신지역별로 상하원 의원실을 방문했다. 각자 손엔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종식시키기'란 제목 하에 '설득할 요점'(Talking Points)이라고 적힌 매뉴얼이 들려 있었다. 의원과 보좌관들을 만나 어떻게 설득하고 어떤 점을 요구해야 하는지 행동요령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미국 내 600만 유대인들에게 버락 오바마 정부의 출범은 조금은 불안한 도전이었다. 비록 지난해 바로 이 총회에 참석한 오바마 후보가 "이스라엘의 안전은 어떤 경우에도 절대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변함없는 이스라엘의 친구가 될 것"을 다짐했지만, 이란 등 불량국가 지도자와의 대화 용의를 비롯해 유대인들을 불안케 하는 요소들은 적잖게 남아 있었다. 미국 내 유대인들은 대선에서 78%의 몰표를 오바마 후보에게 몰아줬다.

3~5일 열린 2009 AIPAC 총회는 그런 불안감을 씻고, 오바마 시대에도 변함없이 '미국을 움직이는 배후 실세'의 자리를 유지하는 걸 목표로 치밀하게 준비된 거대한 행사였다. 총회는 AIPAC의 새 중앙지도부에 친(親) 오바마 인사들을 대거 등용했다. 2년 임기의 새 총재엔 지난해 총회 때 오바마 후보를 연단으로 안내해줬던, 오바마 대통령의 유대계 네트워크의 핵심인 시카고 출신 기업가 리 로젠버그 씨가 선출됐다. 그밖에도 행정부 및 민주당 의회 실세와 가까운 인사들이 대거 지도부 명단에 올라 새로운 정치지형에서도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유대인들의 적응력을 보여줬다.

조 바이든 부통령, 존 케리(민주) 상원외교위원장, 뉴트 깅리치(공화) 전 하원의장 등 민주 공화 양당의 거물을 비롯해 상하원 의원 가운데 거의 반가량이 얼굴을 내밀었다. 람 이매뉴얼 대통령비서실장 등 행정부 실세도 비공개 회의에 참석했다.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은 직접 참석했고, 벤자민 네탄야후 총리는 화상으로 연결됐다. 한덕수 주미대사를 비롯해 60여 개국 외교사절이 축하객으로 참석했다는 주최 측 발표도 나왔다.

5일 연설에 나선 바이든 부통령은 'same nation', 'one of state'등의 표현을 써가며 "미국과 이스라엘은 같은 나라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하면서 "이스라엘의 평화와 안보에 관한 한 어떤 타협도 있을 수 없으며, 그게 오바마와 바이든 외교정책의 기본"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특히 AIPAC 지도부 몇 명을 가리키면서 "36년 전 처음 상원의원이 됐을 때 이들이 나에게 다가와 이스라엘에 대해 교육시키고 나를 이스라엘로 초청해줬다"며 AIPAC과의 오랜 인연을 강조했다. AIPAC의 '자기 사람 만들기'가 얼마나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는지를 우회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물론 바이든 부통령은 "지난 10년간의 현상유지는 미국과 이스라엘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2개 국가 해법'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고, 유대인 정착촌 추가 건설을 중단하며, 이스라엘 역외 기지를 철거하라고 촉구했다. 오바마 정부는 이스라엘 내 강경파에겐 동의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럼에도 6000여 참석자들과 연사들은 대부분 오바마 행정부에게 긍정적이고 낙관적이었다. 비(非) 유대인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정회원 자격을 받아 비공개 워크숍과 토론회 등에 참석한 김동석 뉴욕·뉴저지한인유권자센터 소장에 따르면 '미국과의 관계는 걱정이 없지만 이스라엘의 장래를 위해선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의 지지를 넓히는 게 중요하며 이를 위해 미국 내 유대인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도 주요 주제로 논의됐다.

내부 곳곳에는 고액 기부자의 명단이 붙어 있었는데, 500만 달러 이상이 3명, 200만 달러 이상이 13명, 100만 달러 이상이 65명에 달했으며, 10만 달러 이상은 숫자가 너무 많아 헤기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낮에는 열띤 토론장이었던 행사장은 저녁 7시만 되면 6000명이 동시에 식사하는 초대형 연회장으로 바뀌었는데 라운드 테이블마다 와인과 디저트 셋팅에 이르기까지 한 치의 빈틈없이 진행이 이뤄졌다.

비단 유대계 뿐 아니라 미국 내 소수민족에게 오바마 정부의 출범은 새로운 환경의 개막이다. 이날 행사는 미국 내 소수민족인 한인커뮤니티에게도 시사하는 점이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한인커뮤니티의 일부 지도부 인사들은 모든 촉각이 고국 정치로 쏠린다. 본국의 재외동포 참정권 허용 결정은 여기에 불을 붙였다. 최근 치러진 뉴욕 한인회장 선거를 두고 뉴욕타임스가 주말판 특집을 통해 "의전 자리에 불과한 선거에 3명의 후보가 1인당 20만 달러 이상의 자금을 쓰며 과열 양상을 빚고 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할 정도였다.

미국 내 한인의 정치력 신장을 위한 방법론 연구차원에서 지난 8년간 총 6차례 AIPAC 총회에 참석해온 김동석 소장은 "미국 내 유대인 커뮤니티는 '납세자가 요구 못할게 없다'는 구호 아래 미국사회에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려 한다"며 "오바마 시대는 미국 내 소수계가 주류 정치권에 진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유독 한인 사회는 참정권 허용으로 고국의 정치에 관심이 쏠리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홉스봄 등 영국 저명인사 130명 성명

“이스라엘 정부 반대·팔레스타인도 인권도 보장”

 

 

» 왼쪽부터 에릭 홉스봄 역사학자, 해럴드 핀터 극작가·2005년 노벨문학상 수상, 마이크 리 영화감독, 니콜 파리 디자이너, 브라이언 클루그 철학자·옥스퍼드대 교수

 

 

영국의 유대계 저명인사 130명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강점을 옹호하는 시오니즘 및 유대인 공동체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1917년 이른바 ‘밸푸어선언’으로 이스라엘 건국의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던 영국에서 유대계 지식인들의 ‘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밸푸어선언이란 당시 영국 외상 아서 밸푸어가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 민족국가를 세우는 것을 지원하겠다고 공표한 것을 말한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해럴드 핀터, 영화감독 마이크 리, 디자이너 니콜 파리 등은 5일 일간 <가디언>의 여론사이트 ‘코멘트 이즈 프리’를 통해 ‘목소리를 내야 할 때’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독립적 유대인들의 목소리’라는 모임을 꾸린 이들은 신문광고도 내면서 동참을 호소했다.

이들은 “우리는 이스라엘인들과 팔레스타인인들뿐만 아니라 중동 전체의 미래를 위협하는 엄중한 상황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내기로 결심했다”며 “이스라엘과 점령당한 팔레스타인 땅을 비롯한 어디에라도 보편적 인권 개념이 적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성명서는 특히 “서안과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끔찍한 생활조건 속에 희망 없이 살아간다”며 “이스라엘 정부의 어떠한 팔레스타인 문제 해법에도 반대한다”고 했다. 차별과 집단학살을 경험한 유대인들의 타민족 억압은 더욱 잘못됐다는 게 핵심 메시지다.

성명서에 서명한 이들은 영국유대인대표자회의의 정통성도 부인했다. 브라이언 클루그 옥스퍼드대 교수는 “어느 일방이 유대인들 목소리를 대변할 수는 없다”며 “유대인대표자회의는 유대인 전체의 명예에 먹칠을 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유대교와 민간 인사들이 대표단체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는 종전의 전통과 결별하기 위한 행동에 나선 이유로, 지난해 7월 유대인대표자회의가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지지시위를 이끈 일을 꼽았다. 클루그 교수는 “모세도 하나님과 논쟁을 벌였다”며 다른 목소리를 내기 힘든 분위기를 꼬집었다.

다른 곳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걱정하는 캐나다 유대인들의 동맹’, ‘남아프리카 유대인들’은 지난해 이스라엘군의 레바논 공습 중단 등을 요구했다. 미국 유대계 인사들인 토니 주트 뉴욕대 교수, 극작가 토니 커시너, 시인 아드리안느 리치 등도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적 입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주트 교수는 지난달 31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가 “이스라엘의 정책에 대한 정치적 방어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종주의적 혐오를 담은 반유대주의와 이스라엘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반시오니즘은 명확히 구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미국유대인위원회 등은 “새로운 반유대주의”, “자학적 유대인들”이라는 식의 비난을 가하고 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월스트리트의 ‘천사와 악마’

유대인 출신 조지 소로스와 버나드 메이도프

각각 투자의 귀재·최악의 사기범으로 엇갈려

 올해 칸영화제(5월13일 개최)에서는 <월스트리트의 사탄>이라는 제목으로 메이도프의 폰지 사기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가 상영될 예정이다. 미국의 드루일헷 감독이 만들었다. 나스닥 증권거래소 이사장을 지낸 버나드 메이도프는 돈 세탁과 위증, 사기 등 11개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함으로써 최대 1백50년 징역형에 처해 화제가 된 인물이다. 그는 6월15일 법정에서 1백50년 징역과 손해배상금으로 1천7백억 달러를 구형받을 예정이다.

월스트리트의 유대인 성공 신화는 조지 소로스에서 시작해서 메이도프에서 끝난 것인가?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금융 위기로 경색되었던 2008년에도 소로스는 11억 달러를 벌어들임으로써 환투기와 투자의 귀재임을 입증했다. 반면, 메이도프는 6백50억 달러에 이르는 사상 최대 액수의 사기범으로서 많은 헤지펀드와 함께 몰락했다. 소로스는 재귀성 이론(금융시장의 참여 주체가 서로 상대방의 행동을 예측하면서 선제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시장의 끊임없는 변화와 상호 작용, 역동성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이론)을 접목시킨 고위험·고수익 투자로 승승장구했다. 1969년에 짐 로저스와 함께 세운 퀀텀펀드는 4백만 달러로 시작해 1989년까지 20년간 연평균 수익률 34%를 기록하며 헤지펀드의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소로스, 정의의 편에 서려고 노력한 인물로 평가

소로스와 메이도프는 월스트리트에서 유대 자본가의 성공과 몰락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두 인물이다. 메이도프는 유대인 네트워크를 자신의 폰지 스킴(일반적으로 고수익을 제시해 투자자들을 끌어들인 후 새 투자자의 원금으로 앞 사람의 이익을 챙겨주다 끝내는 사기 수법을 말한다)을 운영하는 수단으로 삼았던 반면, 소로스는 나름으로 정의의 편에 서려고 노력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 월가의 유대인 중 성공 신화로 기록될 조지 소로스(왼쪽)와 몰락한 버나드 메이도프(오른쪽).

ⓒEPA(왼쪽). 로이터(오른쪽)

소로스는 1998년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에서 세계 자본주의 위기의 본질에 대해 거론했다. 1992년 자본주의를 잘 이용해 영국 은행을 뒤흔든 사나이로서 역사에 기록될 그가 자본주의의 위험을 논했다는 사실이 쉽사리 믿기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소로스는 놀랍게도 “자본주의의 위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금융 위기를 겪고 있는 지금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소로스는  ‘민주주의’라는 정치적·윤리적 가치가 자본주의의 맹목성을 통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시장 근본주의에 대한 경계, 도덕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 이것을 뒷받침하는 세계적인 정치적 의사결정기구 창설 등이 소로스가 제안하는 대안들이다.

이 책에서 소로스는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야말로 위기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말한다. 세계 자본주의의 주변과 중심을 오가며 이윤 극대화를 꾀하는 금융자본, 그것이 주변부를 급격히 이탈함으로써 주변의 위기가 전세계로 파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 메커니즘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적절하게 이용해 거액을 거머쥔 소로스이기에 위기를 경고하는 그가 이중적으로 보인다. 소로스는 10년 뒤인 2008년, 그의 저서 <금융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신용 경색을 10년 전처럼 재귀성의 시각으로 조명하고 있다. 1998년 ‘세계 자본주의 종말’을 예언했던 조지 소로스는 10년 만에 다시 금융시장에 대해 경고하고 나섰다.

그런데 지난 11월 미국 하원 청문회에 불려나간 4명의 기라성 같은 헤지펀드 거물들 중에는 소로스도 있었다. 헤지펀드의 대부 4명이 지난 11월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금융 위기와 헤지펀드와의 관련성을 확인하러 출석했다. 출석한 사람들은 소로스 펀드 메니지먼트의 조지 소로스 회장, 폴슨 앤 코의 존 폴슨 회장, 하빙거 캐피탈 파트너스의 필립 펠콘 회장 그리고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의 제임스 사이몬스 회장이었다.

질의를 한 하원의원들은 마치 5공 청문회 때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에게 질의하던 한국의 국회의원들 같았다. 날카로운 질문과 공격적인 방어가 아니라 정부 규제의 필요성에 동의하면서 헤지펀드의 미래를 염려해주기까지 했다. 금융 위기에서 헤지펀드의 폐해에 따른 규제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자리치고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소로스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볼커와 런던 정경대학(LSE) 동창이다. 볼커는 2003년에 출간된 소로스의 책 <금융의 연금술>에 추천사를 써줄 정도로 소로스와 친분을 유지해온 사이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사실을 다른 관점에서 보면, 헤지펀드의 대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전 의장의 이러한 관계는 ‘미국판 정경 유착’으로서 소로스 스스로가 지적하는 자유 시장경제 원리의 또 다른 약점이다. 참고로 볼커는 1979년 카터 행정부 시절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직을 수행했고, 1983년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서 연임된 바 있다.

메이도프가 1960년에 창업한 메이도프 투자증권은 2008년 월스트리트 해당 업종에서 6번째로 큰 회사였다. 당초 메이도프는 사기 규모가 5백억 달러 규모라고 주장했는데, 검찰의 수사 결과 1백50억 달러가 더 늘어나 6백50억 달러에 이른다. 피해자는 기관과 개인 투자자를 합쳐 총 4천8백명에 이른다. 소로스가 “신용은 자본주의의 근원이다”라고 말한 것을 볼 때, 메이도프의 초대형 폰지 사기는 같은 유대인인 소로스의 발등만 찍은 것이 아니라 자유 시장경제 체제에 비수를 꽂으며 더 강력한 정부 규제를 불러들였다.

메이도프, 자선사업가 이미지 앞세워 투자자들 농락

기관 투자가와 개인 투자자들이 메이도프라는 월스트리트의 큰손에게 친분만 믿고 거금을 맡겼던 이유 중에 하나는 그가 자선 사업가라는 점이다. 소로스와는 재단을 통해서 사회 사업을 해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메이도프는 미국 유대인 총회의 재무부장를 맡은 적도 있다. 1백90만 달러 규모의 기금을 갖고 있는 메이도프 패밀리 재단을 통해서 병원과 문화 행사에 기부 활동을 해왔었다. 메이도프 체포 이후 이 재단의 자산은 연방법원에 의해서 몰수되었다.

메이도프는 워싱턴의 정치인들·실력가들과 밀착되어 있었다. 영향력 있는 인사들 덕분에 메이도프의 사기 행각이 오랜 기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미국 증권거래감독원은 1999년에 이미 사기 혐의의 증거들을 알았지만, 수사에 제대로 착수하지 않았다.

월가가 유례 없는 금융 위기로 흔들리면서 금융계를 주도해온 많은 유대인이 타격을 받은 데다 설상가상으로 메이도프의 폰지 사기 사건으로 유대계 자선단체와 많은 유대인이 난감한 처지에 놓여 있다. 메이도프가 벌인 사기 규모는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부도났을 때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를 요청하며 신청한 5백70억 달러보다도 많은 금액이다.

미국의 유대인들은, 메이도프의 사기 사건이 유대인들의 대중적 이미지에 미칠 악영향도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이번 사건으로 반유대 정서가 확산될 것에 대해 노심초사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1000년전 사라진 비운의 제국 '하자르 왕국' 유적 찾아냈다

 투르크 유목민 국가 南러시아 일대 지배…

기독교·이슬람 틈새서 유대교를 택한 '중립국'


약 1000년 전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의 러시아 중남부 지역에선 한 왕국이 사라졌다. 한때는 동유럽과 중국 서부까지 세력을 펼쳤던 하자르(Khazar) 왕국.

전설로 남아 있던 이 왕국의 유적지와 유물이 최근 발견됐다. 러시아 아스트라한 국립대 고고학과의 드미트리 바실리예프(Basilyev) 교수는 20일 "7~10세기 하자르 왕국의 수도 이틸(Itil)로 추정되는 카스피해 연안의 아스트라한 인근 지역에서 9년간의 작업 끝에 주거지, 요새를 만드는 데 사용됐던 벽돌과 토기 등의 유물을 발굴했다"고 AP통신에 밝혔다. '하자르의 유대인들'이란 책의 저자인 미 역사학자 케빈 브룩(Brook)도 "바실리예프 교수가 하자르 왕국 수도의 흔적을 발굴하는 데 성공했음을 확신한다"고 했다. 약 6만 명이 살았던 항구 도시였던 이틸은 당시 기독교 비잔틴 제국과 이슬람을 믿는 사라센제국의 상인들이 모여 모피와 꿀 등을 거래했던 것으로 알려져, 유적 발굴이 기대됐었다.

7세기 초반 카스피해 인근에 정착한 하자르 왕국 사람들은 투르크계 유목민족으로, 기마전에 능해 카프카스(영어명 코카서스) 일대를 중심으로 볼가강, 돈강 주변 민족들을 복속시키면서 100여 만 명의 인구를 가진 왕국으로 성장했다. 이들은 애초 하칸(Khakan)이라는 지도자 아래서 샤머니즘을 믿었지만, 8세기 중반 특이하게도 유대교를 국교(國敎)로 정했다.

지정학적 환경 때문이었다. 740년부터 비잔틴 제국과 사라센 제국이 각각 기독교와 이슬람을 받아들이라고 압력을 가하자, 묘수를 찾던 하자르 왕국의 불란(Bulan)왕은 두 종교의 공통 분모라 할 수 있는 유대교를 국교로 선택해, 말 그대로 '종교적 중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러시아 학자들은 이런 선택이 결국 하자르의 멸망을 부추겼다고 분석한다. 10세기쯤 하자르 왕국의 북부에서 현재 러시아의 시원(始原)이 된 키예프 공국이 성장하면서, 비잔틴제국과 기독교를 매개로 동맹을 맺었다. 이후 하자르의 세력 확대를 꺼린 비잔틴과 키예프 공국은 ▲하자르가 '버림받은 자들의 종교'인 유대교로 개종했고 ▲또 이슬람 신봉자(무슬림)가 증가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1016년 하자르를 공격해 멸망시켰다.

그동안 러시아에서는 유대교를 믿는 제국이 러시아 역사에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구(舊)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Stalin)의 영향 탓에, 하자르의 역사가 제대로 발굴되지 못했다고 한다.

[모스크바=권경복 특파원 kkb@chosun.com]
2008-9-23

 


 

알려지지 않은 `중국의 유대인` 이야기

1163년, 개봉에 최초로 유대 사원 건립

 유대인들은 지난 2000년 동안의 유랑생활 중 모든 박해를 감수하면서도 단 한번의 좌절을 하지 않았다. 한 때 찬란한 문명을 이룩했던 여러 민족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모두 쇠퇴했다. 그러나 유대인만은 여전히 全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자신들의 문화와 종교를 고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는 아시아에 정착한 유대인들도 마찬가지다. 이에 本紙는 고대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에 정착한 ‘중국의 유대인들’에 대해 알아본다. <편집자주>

유대인들은 지난 2000년 동안 전 세계에 흩어져 살며 많은 민족과 혼혈되어 국가에 따라 얼굴 모습이나 피부색이 달라졌다. 이 때문에 순수 셈족의 유대인을 골라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 현재 전 세계 유대인의 숫자는 약 1,500만~1,80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 숫자는 가변성이 많아 최소 2,300만 명은 되리라 보는 견해도 있다.

전문가들은 오늘날의 유대인들을 크게 세 부류로 나눈다. 바로 ‘아쉬케나지’(Ashkenazim)와 ‘세파라딤’(Sepharadim), 그리고 ‘단’(Dan) 지파(支派)의 후손으로 알려진 이디오피아계 ‘팔라샤’(Falasha: BC. 722년경 이디오피아에 정착한 유대인들로 솔로몬 왕과 시바 여왕 사이에 태어난 자손들로 알려져 있다.)이다.

현재 아쉬케나지는 미국, 이스라엘, 유럽, 대양주 남아공에 약 1,200만 명(세계 유대 인구의70%차지), 세파라딤은 이스라엘,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지역에 약 450만 명, 팔라샤는 이스라엘, 이디오피아, 예멘 지역을 합쳐 약 2만 명 정도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유대인들은 최근에도 계속 그들이 속한 땅에서 자기들의 고향인 이스라엘로 돌아가고 있다. 실제로 과거 구소련 내에 거주하는 수많은 유대인들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고향 땅으로 돌아갔고 지금도 돌아가는 중이다. 돌아가는 유대인 가운데는 동양계 유대인도 상당하다. 실제로 2차대전 이후 아랍과 인도, 인도차이나에 사는 수많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갔고 이 가운데에는 중국의 유대인도 끼여 있었다.

유대인, 기원전부터 중국으로 유입

최근 들어 중국은 이스라엘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중국 내 유대인들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시키고 있다. 그 결과 오랫동안 묻혀왔던 초기 중국 유대인에 대한 기록들이 비교적 많이 발굴되고 있다. 현재 학자들은 유대인들이 중국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유대민족이 바빌론에서 포로 생활(바빌론 유수*BC 586~536)을 할 때일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유대백과사전’(Jewish Encyclopedia)에는 유대인들의 중국 유입 경로를 다양한 경로와 시기로 나누고 있다. 유대 구전(口傳)에 따르면 기원전 206년~221년 중국의 한(漢)나라 시대 처음으로 유대인들이 중국에 정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중국에서는 당나라 시대 유대인 무역상이 히브리어로 쓴 편지가 발견되기도 했으며 그 밖의 중국 측 사료에서는 유대인들이 인도와 페르시아를 거쳐 1127년 처음으로 중국에 정착한 것으로 씌어있다.  

성경의 이사야서에는 유대 민족이 열국에서 피하여 고토로 돌아올 것을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다.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이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라. 내가 나의 모든 산을 길로 삼고 나의 대로를 돋우리니 어떤 사람은 먼 곳에서, 어떤 사람은 북쪽과 서쪽에서, 어떤 사람은 ‘시님’(Sinim) 땅에서 오리라."고 되어 있다. (이사야서 49장 10~12절) 현재 성경 연구가들은 이사야서의 ‘시님’을 중국을 지칭하는 것이라는데 일치하고 있다.  

1163년, 개봉에 최초로 유대 사원 건립

1163년 송(宋)나라의 효종(孝宗)황제는 수도를 현재의 개봉(開封*Kaifeng)으로 옮기고 그곳에 정착해 사는 유대인들의 도움을 얻고자 유대사원(Kaifeng Synagogue)의 건립을 허가하기도 했다. 그 해에 공사를 시작하여 약 2년간 사원건립을 계속했으나 완성을 보지는 못했다. 개봉지역의 유대인들은 계속 번창하여 1279년에는 보다 훌륭한 사원재건 하였다. 초기의 사원이 왜 완성을 보지 못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너무 큰 사원을 지우려던 계획이 제대로 되지 못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한편 유대인의 중국 유입이 가장 많았던 시기는 AD 1230년경으로 수많은 유태인들이 육로를 통해 중국 북경까지 진출했다. 이 시기는 몽고족이 동서양에 걸쳐 대제국을 건설한 시기로 역사상 동서양이 처음 만나는 시기였다. 당시 원나라는 유대인들의 뛰어난 장사 능력과 행정, 수리, 재정능력으로 오랫동안 제국의 제정관리 등의 요직을 유대인에게 맡겼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슬람의 법관이자 학자로서 30년간 세계 방방곡곡을 누빈 ‘이븐바투타’(Ibn Batutah, 1304~1368)는 1346년에 숫자가 확실치는 않으나 상당히 많은 유대인들이 항주(杭州)에 들어와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특히 외몽고 왕조의 실록(實錄)에는 당시 제국내 유대인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자료를 적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한편 몽고사에는 조정의 주요관리 명단에 중국이나 몽고사람이 아닌 수많은 외국인(한문표기)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그러나 이처럼 유대인들이 몽고인 들에 붙어 큰 세력을 형성하자 중국인들의 원망과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실제로 1354년에는 수도에서 큰 폭동이 일어나자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회교도와 함께 유대인들이 북경에 소집된 기록이 있는데 소집된 장졸만 4만에 가까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원나라 멸망 후, 대륙 곳곳에서 유대인 박해

이 반란은 진압되어 많은 중국인 주모자들과 백성들이 피살되었고 변방으로의 추방과 함께 약 20만 이상의 손실을 입었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원나라가 멸망한 이후 중국 대륙 곳곳에서는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자행되었다. 이로 인해 유대인의 숫자는 격감하였고 일부는 외몽고와 만주로 쫓겨 가기도 했다. 한편 명나라 태조인 주원장(朱元璋*1328~1398)은 몽고족을 비롯한 유대인등 외국인을 내쫓아야 한다는 구호로 중국민족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몽고족의 원나라를 패망시키고 명나라를 건국했다.

이 때부터 유대인들은 중국인들과 혼인하기 시작했으며 살아남기 위해 중국에 동화되었다. 그러나 외국인에 대한 탄압을 계속해 왔던 명나라도 당시 상당한 세력을 형성했던 유대인 세력을 완전히 꺾지는 못했다. 이에 명나라 조정은 이들을 회유하고 집중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송나라 이후 유대인들이 많이 살던 개봉으로 유대인들을 모으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유대인들이 개봉으로 모여들었다.

1421년 “먼 곳의 이방인들에게 덕을 베풀라”는 명을 내린 영락제(永樂帝 1360∼1424)는 유대인들에게 개봉의 유대인 사원을 송대에 만들어진 것 보다 크게 건축하도록 했다. 유대인들은 그의 명령대로 큰 사원을 건축했으며 황제는 사원에 피울 향료까지 기증했다. 그러나 1461년 중국대륙을 덮친 역사상 최대의 폭우로 인해 건물과 함께 사원에 보관했던 모든 성서들이 없어지는 재앙을 입게 됐다.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와도 접촉

그 후 1600년대 개봉에는 조그마한 유대 사원이 재 건립됐으며 광동의 유대인들로부터 성서를 사들여 다시 이곳에 안장하게 되었다. 한편 예수회 선교사로 중국에 파견되어 수년간 중국에 머물렀던 마테오 리치(Matteo Ricci*1552-1610)는 1605년 6월 어느 날 일신교 신자로서 예수교를 믿는다고 말하는 남자를 만났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당시 방문자는 마테오 리치를 유대인으로 생각하고 찾아왔던 것이다.

당시 대화에 대해 마테오 리치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그 남자가 말하기를 호남성의 수도 개봉에는 10~12가구의 유대인이 살고 있는데 유대 사원이 매우 아름답다는 것이다. 사원의 중앙에는 모세의 율법을 중요하게 소장하고 있으며 그의 성전(聖典)은 양피지에 쓴 5개의 두루마리로 되어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서양은 1713년 칙령에 의해 예수회 선교사들이 추방되었기 때문에 상당기간 중국 내 유대인들의 소식을 알 수 없게 됐다. 이후 중국 내 유대인들은 급속히 중국인들과 동화됐으며 그 수도 해가 가면 갈수록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들은 유대교의 계율인 할례나 돼지고기 금식 등은 반드시 지켰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박재선 著*‘세계사의 주역 유태인’)

한편 19세기 들어서 러시아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수많은 유대인들이 중국의 상해와 홍콩으로 이주해왔다. 특히 중동으로부터도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이주해왔으며 세파라딤 계열의 ‘사순’(Sassoons)가문의 경우 상해근방에서만 1,900여 채의 빌딩을 소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1930년대 중국의 상해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온 유대인들의 천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상해는 세계적인 국제도시로 여권과 그 밖의 구비 서류가 필요 없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다. 이 때문에 1945년에는 무려 1만5000여명의 피난 유태인이 상해에 거주하기도 했다. 상해의 유대인들은 1851년 황하의 범람으로 인해 파괴된 채로 방치된 개봉의 마지막 유대인 사원에 대한 복구를 시도했다. 그러나 당시 산적해있던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개봉사원의 재건축은 성사되지 못했다. 그 결과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개봉의 유대 사원은 그 명맥이 끊기게 됐다.

 

1992년 ‘이스라엘-중국 우호 협회’(ICFS) 설립

그렇다면 중국 내 유대인들은 중국 대륙에서 완전히 멸망했을까? 모세의 규례와 모양새는 잃어버렸을 지라도 그들은 유대인으로서 오늘날까지 중국계 유대인으로 지내고 있다. 그리고 왜 일찍부터 상해와 홍콩이 중국의 경제적 중심지로서 번영을 누리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영국이 당시 아무 쓸모없는 버려진 땅이라고 여겨졌던 구룡반도와 홍콩을 그들의 조차(租借)지로서 요구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중국의 유대역사를 모르고서는 잘 풀리지 않는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중국에서 유대인이 가장 많았던 지역은 광동지방이었다. 당나라 때는 외국인들이 많아 특별한 관리까지 두었던 곳이 광동지방이다. 두 번째로 유대인이 많았던 곳은 양자강 입구의 절강성의 수도인 항주였다. 세 번째는 송나라의 수도였던 개봉이었다. 개봉 등 중국내륙에 정착했던 유대인들은 대부분이 중국에 동화되어 멸절됐지만 해안지방에 정착했던 항주와 광동지방의 유대인들은 해상무역을 바탕으로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중국의 2대 관문인 상해가 광주(Guangzhou)에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다던가 홍콩이 광동지방의 관문이라는 점은 우연한 것으로 넘기기는 어렵다. 지난 1992년 5월 중국과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중국 우호 협회’(Israel-China Friendship Society*ICFS)를 설립했다. 이 단체는  양국의 유대인들 사이의 상호교류를 그 설립목적으로 하고 있다. ICFS는 현재 파괴된 중국 내 유대인 유적지 복원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난 2002년 5월에는 단체 설립 10주년 기념행사를 갖기도 했다.

김필재 기자 spooner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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