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뒷골목 깡패국가

 




《경제 저격수의 고백》
존 퍼킨스 지음/김현정 옮김/황금가지/371쪽/15,000원


마피아들의 거래 방식이 적나라하게 묘사된 영화 〈대부 (God Father)〉. 말끔하게 이탈리아식 정장을 차려입은 비즈니스맨이 표적 인물에게 접근한다. 정중하게 비즈니스 거래를 제안하지만 상대방은 그 제안을 거부한다. 겉만 비즈니스 거래지, 내용은 자신에게 손해막심이니 당연한 결과다. 그래도 거래를 제안한 비즈니스맨은 정중하다.

“그렇습니까?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참 훌륭한 종마를 가지셨네요.”

다음 날 아침, 거래를 거절한 표적이 잠에서 깬 뒤 끈적끈적하고 비릿한 냄새에 어리둥절한다. 자신의 잠옷과 손에 묻은 검붉은 피, 이불이며 침대시트도 온통 피바다다. 그리고 자신이 덮고 잔 이불 밑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경악한다. 그것은 바로 아끼던 종마의 잘린 머리통이다.

영화에서 누가 왜 잔혹하게 종마의 머리를 잘라 주인의 이불 발치에 놔 뒀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그게 그들만의 방식인 것을. 하지만 영화 〈대부〉에서 보여주는 마피아의 비즈니스 방식이 꼭 그들만의 전유물은 아닌 것 같다.

존 퍼킨스가 저술한 《경제 저격수의 고백 Confessions of An Economic Hit Man》(황금가지)은 소위 세계의 정의로운 경찰을 자칭하고,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겠다는 미국이 세계 경제의 뒷 무대에서 벌여온 은밀하고 추악한 전쟁의 기록을 고발한다. 저자는 그 전쟁의 행동대장을 10년에 걸쳐 수행해 온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 입은 비즈니스맨’, 바로 경제 저격수였다.

경제 저격수란 ‘전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을 속여서 수조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돈을 털어 내고, 그 대가로 고액 연봉을 받는 전문가들’로 겉은 국제 컨설팅 회사의 직원이지만 실제로는 미국 국가안보국(NSA)에서 훈련을 받은 스파이들이다. 신분은 당연히 민간인이다. 일이 터지면 미국 정부와 아무 관련이 없어야 하기에.

이들은 세계은행과 미국 국제 개발처, 또는 다른 해외 ‘원조’ 기관들로부터 돈을 받아 거대 기업의 금고나 전 세계의 자연 자원을 손아귀에 쥔 몇몇 부유한 가문의 주머니 속으로 그 돈이 흘러가도록 조종한다. 존 퍼킨스가 경제 저격수로 활동하는 데 스승 역할을 해준 클로딘이라는 인물의 말은 경제 저격수의 활동 목적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앞으로 당신은 미국이 더 많은 돈을 벌게 도와주는 거대한 조직의 일원이 되도록 전 세계의 지도자들을 설득하고, 이들이 부채라는 덫에 사로잡혀 미국에 대한 충성심을 버리지 못하도록 만드는 일을 할 거예요.

일단 그들이 미국에 충성심을 갖게 되면 우리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또는 군사적 목적으로 필요할 때마다 그들을 잘 활용할 수 있을 거예요. 그들이 미국과 관계를 공고히 하면 그 나라에는 산업 공단이나 발전소, 공항이 만들어지고 결국 그들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튼튼해지는 거죠. 물론 토목 회사나 건설 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미국 사람들도 엄청나게 부유해질 테고요.”

문제는 경제 저격수의 활동 과정에서 목적을 이루기 위해 회계 부정, 선거 조작, 뇌물, 협박을 통한 갈취, 섹스, 살인 등 온갖 추잡한 수단이 동원된다는 점이다. 저자는 실제 자신이 성 상납을 주관한 사실을 고백한다. 1975년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의 한 왕자를 설득하기 위해, 금발 미녀를 보면 정신을 못 차린다는 그의 약점을 이용해, 왕자를 위해 은밀히 금발 미녀들을 조달함으로써 임무를 완수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성 상납도 은밀하고 비도덕적이긴 하나, 어느 사회에서나 흔히 포착되는 일이어서 그다지 충격적이진 않다. 더 큰 문제는 미국에 의한 조직적인 암살 활동이다. 그것도 오사마 빈 라덴처럼 세계가 공인한 테러 조직의 수장이 아닌 한 국가의 수장이 경제 저격수의 임무와 관련되어 암살됐다는 저자의 주장은 충격적이다.

저자는 자신의 고객이자, 존경했고, 자신과 통하는 면이 있다고 느꼈던 두 대통령, 에콰도르의 하이메 롤도스와 파나마의 오마르 토리호스의 죽음이 결코 우연한 폭발 사고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자신을 포함한 경제 저격수들이 두 대통령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고, 그럴 경우 좀 더 강도 높은 방법을 사용하는 미국 중앙 정보국이 개입됐다는 것이다. 그 개입이란 프레데릭 포사이스의 소설 《자칼의 날》에 등장하는 자객, ‘자칼’의 등장이다. 자칼을 동원했음에도 일이 성사되지 않으면, 그때는 미군이 들이닥친다고 한다. 파나마 침공과 이라크 전쟁은 이에 해당된다.

“이라크는 미국에게 너무나 중요한 나라였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석유가 전부는 아니었다. 물과 지정학적 요인도 함께 작용했다. …그러나 1980년대 말 사담 후세인이 경제 저격수가 제시하는 시나리오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부시 행정부로서는 몹시 좌절스럽고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 다국적군은 백여 시간에 걸쳐 열세의 이라크 군을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우리들은 환호했다) 잔인한 폭군이 무너졌다는 사실 이 외에도 이라크에서 미국이 승리하면 이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이익, 승진, 연봉 인상 같은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기쁨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이다.”

저자는 미국이 세계를 무대로 이러한 활동을 펼쳐올 수 있었던 힘을 미국 특유의 정치 체제인 ‘기업 정치’에서 찾는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이 미국의 나쁜 조직들 탓에 발생한 것은 아니라고 밝힌다. 핵심은 경제 개발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다. 조직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조직들이 작동하고 서로 영향을 미치는 방식,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관리자들의 역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하는 것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것을 권한다. 오늘날의 시스템에도 아직 희망이 있고 교육에 접근하는 방식이 바뀌고 시민 단체들이 진실을 제대로 알고 시민들이 의식을 갖추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저자의 주장을 우리가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것처럼 받아들일 입장은 분명 아닐 것이다. 미국 대기업이 진출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이들 경제 저격수가 활동하고 있다는 저자의 주장만 봐도 그렇다. 그리고 IMF 구제금융의 경험도 있지 않은가. 이미 세계 경제권에 편입되어 있고 한 번 정도 쓴맛을 본 우리로서는 저자의 메시지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코노믹리뷰 2005-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