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은 왜 세상법정을 두드리는가?

성역 속에 버틴 목회자 교회법으로 제재 힘들어

 

▲교회법의 성역 속에 안주하는 목회자들과 투쟁을 벌이는 교인들은 결국 세속 법정을 엿보게 된다 ⓒ뉴스앤조이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검은색 정장 차림의 보디가드, 그런 보디가드가 요즘은 하나님의 성스러운 종(?)이라는 목사의 주변을 그림자처럼 호위하는 광경을 심심치않게 목격할 수 있다.

목회자가 보디가드를 대동하는 이유는 대개 어제까지 자신의 양떼였던 교인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교회 내에서 분규가 발생할 경우 목회자와 교인들 간에는 필연적으로 파벌이 형성되고, 양측은 대화나 타협 보다 물리적 충돌을 벌이기 마련이다.

목회자가 반대편 교인들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에 놓인 경우 이를 만회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 바로 보디가드, 즉 사설경호원이다. 양측이 세력이 비등하거나 목회자 측이 유리한 경우, 사설경호원 도움 없이 힘으로 반대측을 누르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상황.

분규가 발생한 교회에서 기독교인이라면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었던 사설경호원 동원 및 각종 폭력사태와 고소 고발이 난무하는 현상이 최근 두드러지고 있다. 교회 내의 분규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당사자들 간에 협의과정을 통해 해결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수개월 혹은 수년 동안 교회 행정과 예배 자체가 마비되거나 양측이 극단적인 감정 대립 끝에 교회 공동체마저 산산조각 나는 경우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한국교회 현실이다.

목회자의 잘못된 교회 재정 운용 혹은 도덕성 문제, 즉 돈과 성의 문제가 많은 교회 분규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 또 담임목사의 초법적 권한에 제동을 건 교인들을 향한 무차별적인 징계가 불씨가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교회 내에서 담임목사는 제왕적 권위를 가진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통한다. 이런 초법적 존재인 목사를 적으로 삼아 투쟁을 벌이는 교인들은 소수이건 다수이건 간에 신앙적 갈등을 겪기 마련이다.

더구나 목회자에게 유리한 교회법으로 인해 신앙적 갈등을 이겨내며 각 교단 재판국을 찾는 교인들은 고배를 마시기 일쑤다. 특히 판결을 좌우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인물들이 대개 목회자들이기 때문에 이른바 '가제는 게편'이라는 속담이 실제로 위력을 발휘한다. 감리교 재판국이 사회법에서 유죄를 받은 김홍도 목사(금란교회)에게 '6개월 이상의 정직'을 명하도록 규정된 교회법을 어기면서까지 '선고유예'를 내린 것은 그 대표적인 실례다.

또 대개 교단은 담임목사를 통하지 않고서는 교인들이 아예 노회나 교단에 고소나 고발을 하지 못하는 법규가 있어, 사실상 담임목사는 거의 완벽한 성역 속에서 안주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결국 높은 교회법의 장벽 앞에서 좌절을 경험한 교인들은 당초의 의지를 접거나 교회 문제를 세속으로 들춰낸다는 비난을 받으면서 사회법정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기 마련이다.     

여러 교회분규 소송을 다룬바 있는 박종운 변호사(법무법인 소명)는 "교회법으로 해결되지 않는 교회 분규는 전체의 90% 이상이다"고 말한다. 교회법 자체의 문제점과 목회자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거나 교회분규를 무조건 나쁜 것으로 몰아 부치며 서둘러 봉합하려는 분위기가 사회법으로 교인들을 내몰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현직 목사인 주명수 변호사는 "교회분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교회법의 정비가 필요한 것은 물론 개 교회 내에 재산권 문제를 포함한 매우 구체적인 '민주적 정관'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박 변호사는 교회분규가 발생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교인에 비해 목회자가 유리해지는 만큼 사회법에 호소하는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조언한다. 또 총신대 심상법 교수는 교인들이 교회문제로 사회법정의 판단을 구하는 것을 "성경정신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결국 교회법의 성역 속에서 안주하고 있는 왕권신수설적 사고를 지닌 목회자와 투쟁을 벌이는 교인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세상법정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회법의 판단을 구하지 않기 위해서는 민주적이고 합리적으로 교회법을 제정하고 교회 자체적으로도 정관을 갖는 것이 가장 좋은 대안이다.

뉴스앤조이 2004년 01월 08일 제 7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