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십대의 무너진 성] 원조교제 온상 '음란전화방'
 

여고생들이 입은 속옷을 파는 '블루세라숍'의 소동이 잠잠해진 94년 말부터 '테레크라'는 제2의 전성기를 맞는다.

테레크라'는 텔레폰과 클럽을 붙여 만든 말이다. 쉽게 말하면 음란 전화방이다. 당시 여고생들의 휴대전화 보급률은 30% 미만이었다. 테레크라는 85년 신풍속점영업법에 의해 처음으로 탄생했다. 91년을 기점으로 쇠퇴의 길을 걷다가 블루세라 붐을 계기로 자신의 상품성에 눈을 뜬 여고생들에 의해 다시 부각되기 시작했다.

한동안 도쿄의 대표적 유흥가인 가부키초에만 60개가 넘는 점포들이 성행할 정도였다. 전화 한통화로 얼굴도 모르는 아저씨를 만나 데이트를 즐기는…. 마침내 원조교제(미성년자 성매매)의 불씨가 지펴진 셈이다.

94년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매춘행위로 보호를 받고 있던 18세 미만의 소녀 92명 가운데 55%가 테레크라를 통해 유혹에 빠진 것으로 드러났다. 또 96년 청소년들의 성의식 조사에서는 고1 여고생의 40%가 테레크라를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90년대 초반 블루세라숍의 유행으로 자신의 잠재적인 파워와 상품가치에 눈을 뜬 여고생들이 이제는 자신들이 아저씨들의 성욕을 자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돼 아르바이트 개념의 원조교제가 테레크라를 매개체로 무섭게 번진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엘바로사 옷을 입고 프라다 백을 들고…. 가까이 있는 친구들의 하룻밤 변화가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들의 군중심리까지 자극했다. 결국 원조교제는 일부의 얘기가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됐다. 

일부 청소년들은 돈은 부차적인 문제이고 사회적인 터부를 깬다는 쾌감에서 어른들의 유혹을 쉽게 받아들였다. 이들에게는 자신을 시험하는 일종의 모험이었던 셈이다. 심지어 체육시간에 테레크라를 통해 얻은 정보를 서로 교환하며 조직적인 공조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테레크라는 97년 도쿄에서 음행조례가 제정돼 남성측의 리스크가 높아지면서 조금씩 수그러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섹스에 사랑이 중요하지 않다'며 거리로 뛰쳐나간 여고생들과 쇠고랑을 찬 '아버지'의 수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원조교제가 절정에 이르렀던 96년과 97년에는 무분별한 성문화로 인한 사회적인 병리현상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여고생들이 자신의 애인과 짜고 아저씨들을 조직적으로 유인하는가 하면, 깊은 수렁에 빠져 야쿠자들의 위협을 견디지 못해 학교를 그만두거나 이사를 가는 학생들도 생겼다. 퇴폐적인 10대 소녀들을 지칭하는 '고갸루'의 등장이 당시의 험악한 분위기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

도쿄(일본)〓양정석 특파원 jsyang@hot.co.kr

  굿데이 2003년 05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