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명품매장·카페촌…‘흥청 특구’

 

스스로가 대한민국 최고 동네 주민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한 곳,외제 명품만 파는 백화점과 선진 외국의 관광가를 연상케하는 고급카페촌,즐비한 호화 화랑….

서울 강남 중심가의 풍경은 일반인들에게 지극히 낯설다.

24일 낮 12시쯤.비교적 한가한 시간이지만 이 일대의 백화점과 레스토랑 등은 호사스런 소비를 즐기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G백화점 명품관.유럽풍 대리석 장식을 한 외관보다 실내는 더 호화롭다.내부에는 20대 여성에서부터 40,50대 주부들까지 이른바 ‘명품족’이 북적이고 있었다.

가방마다 고유번호가 새겨진다는 프랑스제 명품 ‘루이뷔통’ 매장.명함크기만한 자동차 열쇠지갑에 붙어 있는 가격표는 17만원이었다.동전지갑은 28만원,미니 핸드백은 60만원.하지만 이정도는 비싼 축에 끼지도 못한다.매장직원은 “90만원에서 200만원을 호가하는 가방들이 주력상품”이라고 귀띔했다.대학생이라는 윤모씨(22·여)는 “어머니 카드로 계산할 것”이라면서 덤덤한 표정으로 30만원짜리 손지갑을 직원에게 건넸다.

같은 지역의 또 다른 H백화점 명품관.2000만원짜리 대형 벽걸이형 TV와 1000만원짜리 홈씨어터 스피커가 전시돼 있는 가전관.신모씨(62)는 “집안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며 선뜻 2300만원짜리 일제 벽걸이 텔레비전을 샀다.20여만원짜리 버버리 티셔츠,15만원하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넥타이 등은 ‘명품’이 아니라 10대나 20대 초반 학생들도 쉽게 사는 ‘소품’ 취급을 받는다.

저마다 독특하고도 호화스런 인테리어로 치장한 10여개의 고급카페 내부의 모습도 이질적이다.다이어트가 유행이라서일까,이곳 카페에서는 적은 양의 별미를 제공하는 식단이 엄청난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잘나가는 메뉴에 속한다.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김상욱씨(35·회사원)는 ‘지방과 콜레스테롤이 적은 4만5000원짜리 퓨전음식’을 먹고 있었다.평범한 회사원이 어떻게 이런 비싼 음식을 자주 먹을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이곳 젊은 계층중에 잘사는 부모 덕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웃어넘겼다.이 지역 매장의 직원에게 매출액을 묻자 한결같이 “다른 이들이 극심한 위화감을 느낄지도 모르기 때문에 밝힐 수 없다”고 했다.

‘강남 특구’에는 분명 별천지가 존재했다.‘돈’을 ‘물’처럼 쓰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국가경제가 나빠졌다느니 좋아졌다느니,끼니를 거르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많다느니,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했다는 등의 세상소식에 아랑곳없이 돈이 방향을 잃은 채 흥청거리고 있었다.

 

김민호기자 aletheia@kmib.co.kr

국민일보 2002.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