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류사회 꿈꾸는 명품 좇다 망가진 꿈

 
모 백화점의 명품매장. 최근 명품열병이 일면서 각종 범죄와 10대 학생들의 매매춘 행위가 사회문제화되고 있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가랑이가 찢어진다.”
주머니 사정은 뒤따라가지 못하는데 마음은 늘 상류사회를 떠도는 삶을 비꼬는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이같은 뱁새들이 급속히 늘고 있다. 분수를 잊은 과소비, 그러나 그 결과는 참혹하다. 늘어나는 것은 카드빚이요, 나오는 것은 절망적인 한숨뿐이기 때문이다.

먹고사는 것에 대한 걱정이 줄면서 삶의 품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살기 위해 일을 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일과 함께 삶을 즐기고, 경제적으로 보다 여유로운 생활을 추구하려는 욕구가 사회전반적인 현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삶의 품격에 대한 욕구는 일부 계층에서 과도한 소비 등 그릇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직장인들의 한달 월급을 쏟아 부어야 구입할 수 있는 세계적인 명품에 대한 소비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빚으로 유지되는 자존심

한국은 세계 패션시장에서 이른바 명품으로 불리는 고가품이 가장 잘 팔리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같은 명품의 소비계층이 안정적인 소득원을 갖춘 40~50대보다 특별한 소득이 없는 20대나 대학생, 심지어 10대에서 더욱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10대, 20대 사이에서의 명품열기는 뜨겁다. 이들은 사회적 성공과 경제적 여유를 바탕으로 명품을 즐기는 전통적인 의미의 명품족과는 다르다.

또래 친구들끼리 맘에 드는 명품을 사기 위한 ‘구치계’, ‘프라다계’ 등 각종 명품계를 만드는가 하면 명품을 사기 위해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점심은 대충 해결하고 교통수단은 반드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신세대가 늘고 있다.

또 방학을 이용해 각종 아르바이트도 불사하고 있다.

원하는 걸 갖기 위해 일을 하는 것 자체만으로는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들이 찾아가는 일자리는 결코 평범한 아르바이트가 아니다. 명품을 갖기 위해 그들이 찾는 곳은 바로 유흥가. 최근 단란주점과 룸살롱 등 유흥업소에서는 명품 구입을 위해 호스티스로 나선 젊은 여성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또 최근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카드빚 관련 사건사고 역시 명품구입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더라도 대부분 무절제한 과소비의 결과로 풀이되고 있다.


명품심리 이용한 범죄 기승

지난 12월 중순 재벌 2세를 사칭, 여성들에게 거액을 뜯어낸 20대 남자가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차도 외제차로 구입했고 옷도 좋은 옷으로 구입했다. 그랬더니 여자들이 많이 넘어왔다.”

온몸을 명품으로 치장한 이 남자는 강남 유흥가를 돌아다니며 여성들을 유혹했고, 유학중이라 신용카드가 없다면서 여성들에게 신용카드를 빌려 1억5천만원 정도를 사용했다. 이 돈으로는 주로 명품을 구입한 뒤 다른 여성들을 유혹했고, 승용차와 골프채를 구입하는 데에도 사용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옷이라고 걸치고 있는 것은 다 명품 브랜드였다.”
직업도 없는 무능한 20대 남자의 허풍과 화려한 겉치장에 여성들이 너무 쉽게 넘어 간 것이다.

이 사건 외에도 명품을 사기 위해 원조교제를 한 10대 소녀들의 얘기는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이처럼 범죄까지 저지르며 명품을 고집하는 이유는 너무 단순하다. ‘있어 보이기 위해서’다.


나, 존중받을 가치 있다

서울 모 여고에 재학중인 이연주양은 “중고생의 경우 다른 친구들이 다 가지고 있는데 자신만 가지고 있지 않으면 ‘왕따’를 당하기 쉽다”며 “학교 선배들의 경우를 비춰보면 10대 사이에서 명품의 역할이 크게 작용을 하는데 20대 이상의 사람들은 명품의 존재가 더 크게 느껴질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 축구의 영웅 히딩크 감독은 널리 알려진 명품족이다. 히딩크 감독은 ‘조르지오 아르마니’를 즐겨 입는다. 좋아하는 향수는 아르마니 오데 토일렛, 회견 때 썼던 돋보기 안경조차 아르마니이다. 그의 구두는 페라가모이며 지갑은 루이뷔통, 시계는 태그 호이어. 그야말로 명품족이다.

그는 명품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이 세상에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나는 단 한 명뿐이고 그만큼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한 전문가는 “외모, 간판, 껍데기를 명품으로 채워야 인정받는 사회분위기에서 자신을 치장해줄 것들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며 “유행에 따르지 않고 경제적인 능력에 따른 소비와 과도한 소비를 자제하는 문화가 시급히 정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희영 기자<young@ilyosisa.co.kr>

일요시사 2002.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