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더 심해진 '사고 또 사는' 쇼핑 중독증

시간을 아껴볼 요량으로, 아니면 좀 더 싼 물건을 찾기 위해 백화점, 케이블 TV, 인터넷을 통해 시작한 쇼핑.
그런데 어느새 쇼핑을 안하면 온 몸이 떨리고 불안하며, 과도한 쇼핑으로 빚독촉에 시달리는 등 이른바 쇼핑중독에 빠져드는 여성이 늘고 있다.
쇼핑도 무서운 정신의 병. 만약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쇼핑습관이 있다면 하루 빨리 그에 맞는 대책을 세우는 게
좋다.

  • 글·권호순 자유기고가

  
CASE 1 백화점 쇼핑 중독 사례
"백화점에 출근하다시피 하는 못말리는
쇼핑 병 때문에 카드 빚이 산더미 같이 쌓였어요"

이나영<가명· 33 ·서울 상계동>


   “제가 쇼핑에 몰입하게 된 건 지난 봄부터예요. 23살 이른 나이에 결혼한 덕에 올해 초 둘째 애마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낮시간이 한가해진 때죠. 처음엔 시간을 때워볼 요량으로 백화점을 찾았어요. 가보니 일일 한정판매라고 해서 생각 외로 싼 옷이나 식료품들이 많더군요. 그래서 다른 아줌마들에게 뒤질세라 잽싸게 골라 사들고는 만족감에 취해 집으로 돌아오곤 했죠.

이런 일이 하루 이틀 반복되면서 저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쇼핑병’이 생겨났어요. 그러니까 어느샌가 백화점 개장을 기다리는 아줌마들 대열에 제가 안 끼어 있으면 불안했고, 아이들이 집에 돌아올 시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 쇼핑몰의 이 코너 저 코너를 기웃거리고 있었어요. 게다가 맘에 든 옷이나 물건을 보고도 사지 못한 날엔 허전함과 아쉬움에 정신을 못차리다 다음날 일차로 그 매장을 다시 찾곤 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자연히 생활비로는 감당이 안돼 빚이 늘어갔고, 전 연체료를 메우기 위해 매달 새로운 신용카드를 만들어야 했어요. 남편이 아냐고요? 그이는 아직 몰라요. 아마 아는 날엔 충격이 심할 겁니다.

사실 저도 매달 신용카드 청구서를 볼 때면 제 머리를 쥐어박으면서 ‘이러면 안 되지’하고 수도 없이 다짐을 해요. 하지만 작심삼일이라고 며칠만 백화점에 안 가도 불안하고 뭔가 빠진 것 같은 허전함에 견딜 수가 없는 걸 어떡하겠어요.”


  
CASE 2 TV 홈쇼핑 중독 사례
" TV 화면에서 한정 특가 판매 상품을 알리면
저도 모르게 전화기에 손이 갑니다"

김정은<가명· 29 ·충남 온양>


   “여보 세요. 지금 TV에 나오는 속옷세트 주문하려고 하는데, 다 팔린 건 아니죠?”

남편과 아이가 직장과 유치원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간 오전 9시. 주부 김정은씨는 아침상을 치우는 둥 마는 둥 하고 TV앞으로 달려간다. 그리고는 홈쇼핑채널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다가 화면에서 ‘속옷 7세트 5만9천9백원 50명 한정’을 알리는 순간 번개같이 수화기를 들고 이같이 말한다.

그녀는 일주일에 서너번씩은 이런 주문전화를 반복한다. 특히 한정·특가 판매상품은 빠뜨리지 않고 구입하는 물품들.

“한정판매하거나 특별히 싸게 파는 상품이 나올 땐 도저히 안 살 수가 없어요. 왠지 안 사면 손해보는 기분이거든요. 하지만 막상 배달돼 오면 남편한테 혼날까봐 내놓지는 못해요. 사실 꼭 필요해서라기보다 사는 재미가 더 큰 거 아니겠어요?”

그렇다 보니 그녀의 집 아파트 창고엔 포장도 풀지 않은 새 상품들이 가득히 쌓여 있는 상태. 침대이불세트, 속옷, 다용도 믹서기, 일제 그릇세트, 전동 칫솔, 보석, 액세서리 등등.

홈쇼핑에 푹 빠져 사는 그녀는 자제 못하는 자신을 한탄한다. 신용카드 청구서가 날아오는 날이 바로 그런 날. 엄청나게 나온 액수를 보면 앞이 캄캄해지는 것. 급기야 지난달엔 카드회사의 빚독촉에 견디다 못해 적금을 몰래 해약했고, 그 사실은 며칠이 안돼 남편에게 들통나고야 말았다.

“살면서 그렇게 무서운 남편 얼굴은 처음 봤어요. 정말 혼쭐났죠. 그 일이 있은 후 우리집 TV는 창고속으로 들어갔어요. 저는 다섯 살짜리 아들의 감시를 받으며 낮시간엔 헬스클럽에 다니고 있습니다.”


  
CASE 3 인터넷 쇼핑 중독 사례
" 하루라도 인터넷에 접속, 쇼핑을 안하면
불안해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어요"

차혜선<가명· 32 ·서울 대치동>


  초 정부에서 시행한 주부 인터넷강좌를 통해 컴퓨터를 알게 된 주부 차혜선씨. 그녀는 요즘 바로 그 인터넷 때문에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그러니까 인터넷쇼핑을 안 하면 온몸이 떨리고 식은땀이 흐르는 쇼핑중독 증상으로 인해 치료를 받고 있는 것.

그녀의 인터넷 쇼핑중독은 이렇게 시작됐다. 처음 컴퓨터를 배워 인터넷에 접속하니 사이버세상은 놀라우리만큼 신기했다. 이 사이트, 저 사이트를 넘나들다 보면 하루가 후딱 가버릴 정도. 특히 쇼핑몰에 들어가 고급옷, 보석류 등을 아이쇼핑하다 보면 왠지 귀부인이 된 것 같은 착각에까지 빠졌다.

“요즘 신문을 보면 ‘인터넷 실생활 활용법’이 다양하게 소개되잖아요. 저도 생필품 구입을 시도하는 것으로 인터넷 쇼핑을 시작했어요. 그땐 그것이 저에게 병과 빚을 안겨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으니까요.”

인터넷을 통해 구입한 생필품이 처음 배달된 날 그녀는 왠지 모를 성취감을 느꼈고, 가족들 또한 컴맹이던 그녀가 생필품을, 그것도 싸게 구입했다는 사실에 무척 대견해 했다.

그후 그녀의 인터넷 쇼핑 품목은 화장품, 가구, 옷, 보석류 등으로 번져나갔고, 마침내 은행원 남편 월급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선까지 이르렀다.

이에 그녀는 굳은 결심을 하고 컴퓨터 쪽으론 눈길조차 주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하루라도 인터넷에 접속, 쇼핑을 하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하고 누군가 쫓아오는 듯한 불안감에 견딜 수가 없었던 것. 급기야 가족들의 권유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게 되었다.


10명 중 4명은 쇼핑습관에 문제 있어

   하루만 쇼핑을 안 해도 뭔가 허전하고 손해본 것 같고 옷이며 보석이 눈앞에서 왔다 갔다~. 그러다 더욱 심하면 온몸이 떨리고, 식은땀이 주르르, 불안·초조감에 시달리는 ‘쇼핑병’ 환자가 늘고 있다. 특히 케이블 TV홈쇼핑과 인터넷이 일반화되면서 더욱 급증하는 추세.

지난해 삼성생명 공익재단의 사회정신건강연구소(소장 이시형 박사)가 서울과 경기지방 20대 이상의 성인남녀 7백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쇼핑중독자’는 1백명 당 6명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쇼핑습관에 문제가 있는 위험군은 무려 37.4%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쇼핑중독 위험군은 20~30대, 여성, 고학력, 월소득 2백만원 이상에서 높게 나타났으며, 쇼핑 중독자 5명 중 1명이 신용카드를 3개 이상 소유하고 있었고, 2명 중 1명이 월 평균 5회 이상 신용카드를 사용했으며, 4명 중 1명은 세번 이상 신용카드 연체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쇼핑중독은 사실 유럽이나 미국에선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심각하게 대두된 사회문제. 따라서 쇼핑중독 전문 클리닉이 생겨났는가 하면 쇼핑중독증 치료 연구 및 쇼핑중독 문제를 해결하는 모임 등도 활발한 상태다.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이시형 소장은 “쇼핑중독은 상당수가 가정에서 소외감을 느낀다든지 고독감, 상실감, 우울증, 자신감 결여, 애정결핍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며 “쇼핑중독에 빠지면 상품을 마구 사들인 뒤 자기가 무엇을 샀는지 정확히 기억을 못하고, 돈문제를 유발하고, 그러다 쇼핑을 못하면 불안 두통 우울 소화불량 등 심리적·육체적 부작용을 겪게 된다”고 말했다.

   ▲특이한 제품이나 싼 물건을 보면 사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다 ▲쓰지도 않으면서 물건을 마구 산다 ▲쇼핑에 쓴 돈의 액수나 사들인 물건에 대해 가족이나 친구에게 거짓말을 한다 ▲물건을 산 후 후회하면서도 ‘쇼핑은 내 취미일 뿐’이라고 자신을 합리화한다 ▲돈이 없어도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카드를 사용해 물건을 산다 등의 증상을 보이면 일단 쇼핑중독을 의심해볼 상황.

특히 자신의 쇼핑습관에 문제를 느껴 이를 자제하려 했으나 그에 따른 우울, 초조감, 불안감, 오한 등을 겪는다면 전문의와의 상담이 절실하다. 실제로 요즘 정신과에는 쇼핑중독 환자가 늘고 있다.

이시형 소장은 “자신의 쇼핑 습관을 점검해 본 뒤, 쇼핑중독이 의심되면 먼저 신용카드를 없애고, 쇼핑은 항상 가족과 함께하며, 운동 등 건전한 취미생활을 갖도록 하고, 주변 사람에게 돈을 꿔주지 말도록 당부하는 등 쇼핑을 막는 조치를 취하도록 하라”며 “정도가 심한 경우엔 정신과에서 충동조절 약물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혹시 나도 쇼핑 중독?"
1. ( ) 내 쇼핑습관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한다.

2. ( ) 쇼핑할 때 죄책감이 든다.

3. ( ) 쇼핑을 하는데 드는 시간과 돈이 점차 늘어나지만 별다른 느낌이 없다.

4. ( ) 가족들이 보지 못하도록 쇼핑한 물건을 숨기곤 한다.

5. ( ) 쇼핑은 긴장이나 불안감을 풀어주는 나의 취미생활이다.

6. ( ) 물건이 필요해서라기보다 사는 행위 그 자체를 더 즐긴다.

7. ( ) 쇼핑을 한 뒤 사용하지 않은 물건이 가득하다.

8. ( ) 돈문제를 일으킬 정도로 쇼핑을 많이 한다.

9. ( ) 내가 얼마나 쇼핑을 많이 하는지 다른 사람이 알면 기절할 것이다.

10.( ) 물건을 사면 기분이 좋아진다.


건전형 : 10개 문항 모두 해당되지 않는 경우.

기분파 : 5, 6, 10번에 해당되는 경우. 평소 충동구매를 주의해야 한다.

경증 쇼핑중독 : 2, 3, 4, 7, 9번에 해당되는 경우. 경증 쇼핑중독에 걸린 상태이므로 평소 돈관리를 철저히 하고 쇼핑시 다른 사람과 동행하는 등 대책을 세운다.

중증 쇼핑중독 : 1, 8번에 해당되는 경우. 쇼핑중독 증세가 심각하므로 정신과 치료나 상담을 받아본다.


여성동아 200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