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기웃거리다 날마다 펑펑 쓰게 되는 쇼핑 중독


 

대기업에 다니는 이모씨(32·여)는 이틀에 한번꼴로 자신과 남편의 옷을 카드 할부로 산다. 최근 경기침체로 월급이 줄어들자 결국 적금까지 깨 쇼핑에 쏟아붓고 말았다. 이씨는 “마음에 드는 물건을 보고 사지 않으면 그것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라며 “문제는 물건을 산뒤 별로 쓸모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직장인 서모양(26)은 하루의 대부분을 인터넷 쇼핑으로 보낸다. 머리핀,화장품,가구 등 필요한 모든 물건을 인터넷으로 구입한다. 백화점에 가 본지 일년도 넘은 것 같지만 매달 카드값은 월급을 훌쩍 넘긴다.

서양은 “처음엔 인터넷 쇼핑이 저렴해서 이용했지만,쇼핑과 결재가 편리하다 보니 충동구매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최근 젊은 여성들과 주부들 사이에 쇼핑 중독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TV홈쇼핑과 인터넷 쇼핑이 일반화되면서 시중보다 싸게 물건을 살수 있다는 점에 현혹돼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습관적으로 사들이는 이른바 ‘중독성 쇼핑족’들이 늘고 있다. 처음엔 단순 취미생활로 시작했지만,나중엔 심각한 가정적,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쇼핑 중독은 유럽,미국 등지에서는 이미 지난 1990년초부터 심각하게 대두된 사회문제. 이 때문에 쇼핑중독 전문 클리닉이나 쇼핑중독 치료 및 연구 모임도 일반화돼 있다. 그러나 국내에는 실태 파악조차 제대로 돼 있지 않은 실정.

몇년전 한 연구소가 20대 이상 성인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쇼핑 중독자는 100명당 6명이나 됐으며,쇼핑중독 위험군도 18.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그동안 과소비 풍조의 확산 등을 감안한다면 이 같은 쇼핑 중독자 비율은 더욱 높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쇼핑중독도 병이다=쇼핑 중독증은 필요하지도 않은 상품을 사들이고,쇼핑이 불가능해지면 심리적,육체적 부작용에 시달리는 상태를 말한다. 한번 구매 충동이 오면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마구 사고,산 물건을 제대로 파악도 못하면서 쇼핑이 불가능해지면 짜증을 내고 마음이 불안해진다.

쇼핑중독증 환자들은 물건을 사기 직전엔 긴장이 되다가도 사고 나면 속이 후련해져 쇼핑을 멈출 수 없다고 호소한다. 정서불안,소화불량,두통 등에 시달리고 심하면 약물의존,식이장애,우울증 등에 빠질 수도 있다.

성균관의대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신영철 교수는 “아무리 물건을 많이 사도 갚을 능력이 있다면 병이 아니지만,이로 인해 법적,가정적,경제적 문제를 일으킨다면 병”이라면서 “최근 의학계에서는 알코올중독과 같은 차원의 정신질환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상적 가정,사회생활 파괴=가정주부 양모씨(42)는 인터넷 쇼핑중독증때문에 요즘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매일 인터넷 쇼핑을 안하면 온몸이 떨리거나 식은땀이 흐르는 등 심각한 금단현상을 겪기 때문.

그녀는 “쇼핑몰에 들어가 고급옷,보석류 등을 아이쇼핑하다 보면 왠지 귀부인이 된 것같은 착각에 빠진다”면서 “하루라도 인터넷에 접속,쇼핑을 하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하고 누군가 쫓아 오는 듯한 불안감에 견딜수가 없다”고 말했다.

두 딸을 모두 결혼시킨 주부 김모씨(51)의 요즘 유일한 취미는 쇼핑이다. 그러나 지출이 자꾸 커지면서 한달 카드값이 남편 월급의 두 배를 훌쩍 넘겼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이 카드를 빼앗자 김씨는 딸의 명의로 카드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결국 수천만원으로 불어난 카드빚에 김씨의 가정은 파탄 직전까지 이르렀다.

헤어날 수 없는 중독증은 끔찍한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해 2월 우울증과 쇼핑 중독증으로 5000여만원을 날린 한 20대 여자가 자신을 꾸중하며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한다는 이유로 친어머니를 청부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신교수는 “쇼핑중독은 최악의 경우,돈이 없거나 누군가에 의해 물건을 사지 못하게 되면 도벽이나 살인 등 범죄에 빠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외감,자신감 결여도 원인=쇼핑중독의 원인을 사회적인 원인이나 개인의 심리적 성향에서 찾기도 한다. 즉 내면보다는 겉치장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주길 좋아하는 왜곡된 사회상이 원인이라는 것.

상지대 김정란 교수(교양학)는 “특히 여성의 경우 지적,정신적 능력을 내보일 기회를 거의 차단 당한채 물건 소비를 통해 존재를 인정받게 되는 사회 현실이 한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가정에서의 소외감이나 고독감,상실감,우울증,자신감 결여,애정결핍에서 기인한다는 연구도 있다. 가족내 친밀한 인간관계의 부재에서 쇼핑 중독이 비롯된다는 것.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 이세용 연구원은 “중년여성의 경우,남편은 사회생활에 몰두하고 아이들은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부모보다는 친구들과의 관계를 중시함에 따라 가족 가운데 누구하나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 외로움과 우울증을 느낄 수 있다”며 “이러한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또는 관심을 끌기 위해 쇼핑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쇼핑중독을 치료하기 위한 뾰족한 방법은 없다. 자신의 쇼핑 습관을 점검해 쇼핑중독이 의심되면 먼저 신용카드를 없애고,쇼핑은 항상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이 좋다.

또 운동이나 명상,요가,스트레칭 등 건전한 취미생활이나 생산적인 일들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증세가 심하다면 주저하지 말고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민태원기자 twmin@kmib.co.kr

국민일보 2003.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