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과소비] 몸바쳐 유흥비 마련한다


용돈마련 위해 '닥치는 대로' 생활, 학교는 뒷전

구찌 옷에 나이키 신발, 옆좌석에는 프라다 가방을 맨 여학생을 태우고 술취한 채 차를 몰고 서울 밤거리를 누비는 청소년들. 요즘 강남 일대를 돌아다니다 보면 심심찮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최근 청소년 탈선의 주범이 되고 있는 청소년의 무분별한 과소비 현장이다.

서울 H공고 3학년 김모(18)군은 어머니한테 받는 한달 10만 원정도의 용돈으로는 친구와의 술값도 조달할 수 없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 김군에게 최근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자가용을 사는 것. 그동안은 친구들과 강남 근처 나이트 가서 술마시거나 유명 브랜드를 사기 위해 돈을 벌었던 김군은 요즘 자꾸 또래에게 뒤쳐지는 느낌이다. 차를 사는 친구들이 부쩍 늘고 있기 때문이다.

김군같은 고3들은 법적으로 운전면허를 딸 수 있고 차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에 오토바이보다 차를 선호한다. 김군 주위에 차를 가진 친구들은 4~5명 정도. 왜 오토바이를 사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군은 그건 고 1, 2학년 같은 어린애들이나 하는 일이라며 픽 웃어버린다.


"오토바이는 애들 타는 것"

하지만 문제는 차 값과 유지비. 중고차를 산다해도 차를 한대 운용하는 데는 일년에 대략 300만원 정도 든다. 한달에 50~60만원 받는 분식집이나 중국집 종업원으로는 그런 돈을 벌 수 없다.

그래서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힘도 덜 들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삐끼가 청소년 사이에 인기가 높다. 얼굴만 받쳐주면 술집 웨이터나 삐끼가 되고 싶어한다. 삐끼는 보통 정해진 월급이 없고 자신이 끌고 온 손님이 쓴 돈의 20% 정도를 받는데 한달에 300만원까지 버는 친구도 있다. 웨이터 월급도 다른 아르바이트에 비해 훨씬 높다. 김군도 한두 달만 일하면 차 한대 사는 건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김군처럼 삐끼나 술집에서 일하는 고등학생의 학교생활은 엉망이다. 김군의 예를 보면 밤에 일하기 때문에 아침 내내 자고 오후 4시쯤 일어난다. 학기중에는 학교에 나가봐야 하루종일 책상 앞에서 졸 뿐이다.

오후 5시께 대충 씻고 점심 겸 저녁을 먹은 다음 나이트 클럽에 출근해 오후 7시부터 새벽 4~6시까지는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 취객을 끌어들이기도 하고 술집에서 같이 일하는 친구들과 잡담도 하며 시간을 보낸다. 퇴근 후에는 피곤에 지쳐 곧바로 침대 위에 쓰러진다. 손님들이 북적거리는 주말에는 근무시간이 더욱 길어진다. 이처럼 향락문화에 젖은 그들이 학교공부에 신경쓸 리 만무하다.

김군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입학할 때 50명이던 김군 반의 정원은 2학년 올라갈 무렵에 40명으로 줄었다. 10여명이 학교를 그만 뒀기 때문.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올 때도 그 정도의 학생이 학교를 떠났다. 졸업할 무렵에는 보통 전교에서 두 반 정도가 없어진다고 한다.

대개의 경우 쉽게 돈벌고 쉽게 쓰는 것을 배운 학생들. 학교를 그만 둔 친구 중 몇명은 또래 여자애들과 동거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다닌 것이 아까워서 학교를 그만두지 못하겠다는 김군. 차를 사면 제일 먼저 여자애들을 꼬드겨 바캉스를 가고 싶다며 들떠있다.


룸사롱·단란주점 아르바이트

청소년 과소비는 탈선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서울 동대문운동장 근처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김모(17·서울 P여고 2학년)양은 한달에 40~50만원 정도 벌지만 저축하는 돈은 하나도 없다.

특히 김양 주변에는 용돈 마련을 위해 남몰래 룸살롱이나 단란주점에 다니는 친구도 있고 중학교 때는 그 때문에 징계받아 학교를 그만둔 친구도 있다고 한다.

또 20일 남대문 경찰서는 원조교제를 한 뒤 임신했다고 속여 상대방 남자로부터 300여만원을 뜯어낸 최모(17, 서울 Y실업고)양 등 2명을 공갈, 협박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최양 등은 주유소, 식당 등에서 함께 일하다가 힘만 들고 월급이 적다며 원조교제로 쉽게 돈을 벌기로 의기투합했다. 최양은 지난 5월부터 학교에 나가지 않고 가출하여 여관을 전전하는 상태였다.

한마디로 무분별한 과소비가 청소년을 왜곡된 아르바이트로 이끌고 그것이 범죄로까지 진행되는 악순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과소비에 이은 청소년 탈선의 배경에는 신세대의 개방된 성의식과 성인문화 모방이 자리한다.

서울 D고 2년생 이모(17)군은 지난해 선배들로부터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선배들이 자기 서클에 가입하면 한달에 한두 번 이상은 미팅을 시켜주며 1년에 최소한 몇 번은 ‘콩’까게 해주겠다며 경쟁적으로 서클 부원을 모집했던 것. ‘콩깐다’는 여자와의 성행위를 지칭하는 학생 사이의 속어. 신세대의 성의식 개방과 성인문화 모방은 이미 어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왕따 안당하려면 돈 있어야"

왕따에 대한 피해의식 또한 신세대의 과소비와 탈선을 부추긴다. 친구들과 차를 몰고 다니며 여자를 유혹해 본 경험이 있다는 서울 Y공고 3학년 박모(18)군.

“집에서 10~15만원 정도의 용돈을 받지만 친구들과 술 한두 번 마시면 다 날아가는데 어떻게 아르바이트 안하고 살 수 있느냐. 돈이 없으면 친구들과 어울리기 어렵고 왕따되기 십상이다.”

과소비 문화는 청소년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공갈혐의로 구속된 최양의 경우가 그렇고 무분별한 사치와 향락에 빠져들었다가 임신한 여학생도 많다.

안양 K여상의 한 교사는 “낙태 수술비 마련을 위한 낙태계가 있다는 소문이 공공연하다. 수업시간에 조는 애들을 보면 혹시나 하고 걱정이 된다”며 청소년 과소비와 탈선에 대한 어른들의 주의를 촉구했다.


청소년 아르바이트 백태

청소년이 하는 아르바이트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식당, 카페, 편의점 종업원 등이 대부분이고 보수도 매우 열악하다. 청소년이 가장 많이 하는 아르바이트는 패스트푸드점, 편의점, PC방 같은 가게 종업원. 이들은 대개 시간당 2,000원 정도 받으며 PC방은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에 비해 일이 편해 청소년들이 선호한다.

남학생는 중국집이나 피자 가게 배달이나 주유소 아르바이트도 많이 한다. 일은 힘들지만 보수는 시간당 3,000원 정도로 비교적 괜찮은 편.

커피숍이나 식당 아르바이트도 여학생 사이에선 인기. 보통 시간당 2,200~2,500원 정도이지만 주인들이 고3 이하는 꺼린다고 한다. 노래방 아르바이트도 시간당 2,500원 정도로 꽤 짭짤하다.

최근에는 주차된 차나 지하철 역 입구에서 전단을 돌리는 아르바이트도 청소년 사이에서 유행. 시간당 2,000원에서 2,500원 꼴이지만 전단을 다 돌리지 못했을 경우에는 돈이 깎이는 경우도 있다. 또 인터넷이 발달함에 따라 종이로 학이나 꽃 등 선물을 대신 만들어주는 서비스도 아르바이트로 떠오르고 있다. 건당 3만~5만원 정도로 보수가 좋지만 일거리가 꾸준하지 않은 게 흠.

전통적으로 인기를 끌어온 신문배달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아침에 적은 시간 일하는 데 비해 한달에 50만원 정도 수입을 올릴 수 있어 괜찮은 편.

 

송기희 주간한국부 기자 gihui@hk.co.kr

주간 한국 2000/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