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 300萬시대 카드 마감일 증후군


가구당 평균 부채 3천만원, 신용불량자 3백만명 시대의 깊은 암영(暗影)이 드리워지고 있다. 카드 마감 증후군이란 신종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

평범한 직장인인 L씨(34)는 카드 마감일이 다가오면 괴롭다. 반 년 전부터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을 느껴오다가 지난달 급기야 거래처로 가는 차 안에서 속이 답답해지면서 심장마비를 일으킬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곧 응급실을 찾았다.

그는 정신과 의사에게 "카드 빚 때문에서 자살하고 범죄를 저질렀다는 기사를 보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25세의 미혼여성 K씨는 이달 초 수면제를 다량 복용하고 자살을 기도했으나 다행히도 친구가 발견해 인근 병원 응급실에 실려왔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에 올라와 혼자 직장 생활하면서 유흥비.옷값 등을 충당하느라 쓰기 시작한 카드 빚이 1년새 1천만원이 넘은 것이 동기였다.

K씨는 "이번엔 카드 빚을 갚을 길이 없어 죽는 것 외엔 해결책이 없다"며 극심한 우울증과 자포자기 상태를 보였다.

분당차병원 정신과 이상혁 교수는 "이 신종 증후군에 대한 통계는 아직 없지만 20, 30대에 많고, 성격이 소심하며 열등감이 있고 어린 시절에 부모의 과잉보호를 받고 자란 사람에게 흔히 나타난다"고 말했다.

고대 안산병원 정신과 한창수 교수는 "카드 마감일이 다가오면 왠지 모를 불안과 조급한 마음에 시달리고 술.담배가 늘며 자신의 카드한도.은행계좌를 자주 체크하는 사람은 일단 카드 마감일 증후군을 의심해야 한다"고 진단한다.

카드 마감일 증후군은 대개 범불안장애.우울증.급성 스트레스장애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범불안장애=카드 마감일이 다가 오거나 카드 빚 문제를 생각하면 지나치게 걱정이 되며 안절부절 하지 못한다. 극도의 긴장으로 호흡이 어려울 정도로 가슴이 답답하며, 심신의 피로를 호소한다.

매사 집중을 하지 못하며, 신경이 예민해지고 근육이 긴장돼 불면증이 찾아온다. 이런 증상들이 여러 달 계속되면 집안 일.사회활동에서 큰 지장을 받게돼 결국 병원 신세를 진다. 병적인 상태는 아니지만 카드 빚이 남아 있는 한 이런 정신적 장애를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다.

우울증=의욕을 잃고 무기력해지며 밥맛이 뚝 떨어지고 잠을 못 잔다. 더 심각한 것은 죽고 싶은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아 자살기도를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강동성심병원 신경정신과 한창환 교수는 "이 때의 자살 기도는 충동적이라기 보다는 극심한 우울증이 부른 것"이며 "자녀의 카드 빚으로 인해 부모가 우울증에 걸리는 사례도 종종 있다"고 전한다.

급성 스트레스 장애=급기야 '배째라'식의 반응을 보이게 된다. 지속적이고 위협적인 카드빚 독촉으로 정신적인 쇼크를 받게 되면 멍한 상태가 되고, 우울.분노.불안.절망.활동 위축의 증상들이 나타난다. 이 경우 카드 빚 해결에 무관심해진다.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병행해야 이런 장애를 치료할 수 있다.

치료법=카드 마감일 증후군은 카드 빚이 해결되지 않는 한 낫기 힘든 난치병이다. 따라서 과소비.쇼핑중독.한탕주의 등 사회병리 현상의 치료가 우선돼야 한다.

정신과적 치료는 증상과 진단에 따라 달라진다. 불안.불면.우울.공황장애 증세를 심하게 보이면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말고 적절한 심리.약물치료를 받아야 한다.

카드 빚 문제가 생겨 돈을 부모 등이 대신 갚아준 경우 다시 카드를 만들게 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돈을 너무 적게 주거나 꼭 필요한 물건까지 못 사게 할 필요는 없다.

카드 빚을 많이 지게 될 가능성이 높은 조울증(인구 1백명당 한명).성격장애 환자는 정신질환 치료를 먼저 받아야 한다.

경희대병원 신경정신과 반건호 교수는 "카드를 과도하게 쓰는 사람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면 원시적인 방어장치인 '투사'를 사용한다"며 "내 탓이 아니고 세상 탓, 나쁜 카드회사 탓,운이 없는 탓을 한다"고 지적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므로 스스로 뼈빠지게 일해서 갚아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이런 투사상태를 '내 탓'임을 깨닫도록 하는 자성 치료가 필요하다고 반교수는 강조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tkpark@joongang.co.kr

중앙일보 2003년 06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