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피로 물들이는 원자재 전쟁


 
내 손에 든 휴대폰과 무선기기, 고급 원목과 다이아몬드가 피로 물든 원자재 전쟁의 산물임을 알고 있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국제사회의 강력한 조치가 없는 한 인류와 환경을 파괴하는 어리석은 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김재두

휴대 전화와 원자재 전쟁

농경시대에 인류는 식량의 경우 일 년, 목재의 경우 인간 수명과 유사한 순환주기를 가지고 생산과 소비의 조화를 이루어 왔다. 그러나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유한한 석탄의 소모를 기반으로 하는 문명의 발달이 촉발되었다. 특히 1950년대 들어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염가의 석유가 대량 공급되면서 인류 문명은 석유를 빼놓고는 이야기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현대사의 인류 전쟁은 석유 전쟁이라고 할 만큼 석유를 둘러싼 갈등이 많이 빚어졌다. 당장 우리 목전에 다가온 이라크 전쟁도 석유 질서의 재편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유력하게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비단 석유뿐만이 아니다. 오늘날 첨단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한 문명의 이기들은 급속도로 한정된 자원을 고갈시키면서 전 세계적으로 원자재 확보를 위한 전쟁을 야기하고 있다. 편의성의 상징인 휴대 전화나 무선기기에 사용되는 천연물질 콜탄을 비롯해 니켈, 구리 등 광물자원, 사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다이아몬드, 심지어 고가의 원목까지 원자재 전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미 환경보호단체 월드워치는 최근 보고서에서, 현대인의 필수품으로 등극한 휴대 전화가 팔릴 때마다 콜탄 생산국인 아프리카의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에 자금을 대주는 격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콩고민주공화국뿐 아니라 내전에 휘말린 인근 르완다 정부도 콜탄 판매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구 곳곳에서 피를 부르면서 한편으로는 우리 삶의 터전을 환경파괴의 수렁으로 몰아가는 원자재 전쟁. 과거 민족과 종교라는 명분으로 싸우던 인류는이제 원자재 확보라는 이유를 추가하여 끊임없는 분쟁의 소용돌이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한정된 원자재, 언젠가는 고갈된다

현재 지구상에는 약 2조 배럴의 석유가 남아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중 1조 배럴 정도가 확인된 양이며 확인 매장량의 3분의 2가 중동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나머지는 북극권이나 카스피해 연안,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등에 매장되어 있다. 그런데 석유 매장 밀집지역인 중동을 제외하고 10억 배럴 이상의 매장량을 지닌 유전이 1868년 남미에서, 1871년에는 북미에서 발견된 데 이어 비교적 최근인 1956년 북해에서도 발견됨에 따라 카스피해와 서아프리카도 오늘날 새로운 유전의 발굴을 기다리는 형국이다. 이에 각국은 더 많은 석유를 개발하기 위해 앞다투어 경쟁하고 있다.

1956년 미국의 지질학자 허버트는 “1970년대 초에 미국의 석유생산은 정점에 이를 것이며 전 세계를 기준으로 볼 때에는 2001년에서 2010년 사이에 정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그리고 한번 감소세로 돌아선 생산량은 다시 회복되기 힘들 것이라는 사실도 지적하였다. 결과적으로 그의 전망은 옳다고 판명되었으며 다소 이견이 있기는 하나 대략 2004년부터 2008년 사이가 석유 생산의 하향 곡선이 시작되는 시기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앞으로 사용할 수 있는 원자재 수량을 시간으로 환산하면 석유가 40년, 천연가스와 우라늄은 70년 정도로 추산된다.

개도국의 분쟁 촉발하는 원자재

가장 비중이 큰 석유뿐만이 아니라 한정된 원자재인 광물자원과 목재 등도 석유와 같은 악순환의 고리에 처한 상황이다. 특히 중남미, 아프리카, 동남아 지역의 개발도상국에서는 자원을 둘러싼 다양한 형태의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

100만 명이 넘는 희생자를 내고 25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아프리카의 앙골라내전은 원자재로 인한 대표적인 분쟁이다. 전쟁 초기에는 미국이 앙골라 독립국가연합을 지원하고 구소련과 쿠바가 앙골라 대중해방운동을 지원하는 대립전의 양상이었지만, 이제는 오로지 석유와 다이아몬드 지배권을 놓고 벌이는 원자재 전쟁으로 변질됐다. 양측의 지배계층은 원자재의 판매대금으로 무기를 구매하며 세력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당연히 무기 판매상들은 이들의 후원자로서 분쟁이 종식되지 않도록 상태를 악화시키는 갈등을 유발시키게 된다.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분쟁은 이외에도 숱하게 많다. 시에라리온과 라이베리아의 첨예한 대립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여성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면서 온갖 찬사를 받는 다이아몬드에는 유달리 관련 기업들의 보이지 않는 손이 많이 작용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기업이 남아프리카의 드 비어즈(De Beers)이다. 이 기업은 원자재의 통제권을 가진 전투부대로부터 싼 값에 물량을 확보하면서 이익의 창출과 함께 분쟁의 상승작용을 부추기고 있다. 심지어 판매 대금을 무기로 직접 건네주는 경우도 있다. ‘피 묻은 다이아몬드’가 바로 이런 배경에서 나온다.

캄보디아의 잘 자란 티크목 한 그루가 2만 5000달러에 판매되는 현실에서 목재도 예외는 아니다. 인도네시아와 중남미의 많은 국가들이 목재 전쟁의 온상이 되고 있는데, 최근 들어 인도네시아에서는 목재 마피아까지 등장해 전쟁에 불을 붙이고 있다. 목재의 경우는 남벌에 의해 지구 온난화의 주 원인이 되기도 한다.

원자재 전쟁의 희생양, 개도국 주민들

우리가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구리도 원자재 전쟁의 대상이 된다. 대표적인 지역은 제2차 세계대전의 격전지였던 부겐빌 섬이다. 과달카날 섬이 있는 남태평양 솔로몬 제도에 위치한 부겐빌 섬은 1898년 영국의 통제 하에 있다가 2차대전 후 호주가 통치하던 파푸아 뉴기니에 속했으나 1988년 독립전쟁을 시작한 작은 섬이다.

문제는 부겐빌 섬에 초대형 구리광산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파푸아 뉴기니 정부는 채광권을 영국계 회사인 RTZ사에 넘겨버렸다. 이에 따라 한해 5억 달러에 달하는 수익의 80%가 RTZ사에, 나머지 20%는 파푸아 뉴기니 정부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부겐빌 섬 주민들에게는 어떠한 경제적 혜택도 돌아가지 않았다. 더구나 광산에서 흘러나오는 구리 폐기물은 섬의 식수를 오염시키고 해안의 생태계를 파괴하였다.

마침내 섬 주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이들은 혁명군을 조직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려 했으나 평화적 협상은 결렬되었다. 파푸아 뉴기니는 영국과 남아프리카의 용병업체를 고용하여 부겐빌 섬을 공격하였으며, 지루한 분쟁은 외국 정부나 군사용역업체들의 부추김으로 쉽게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이 지역 원주민들은 원자재 판매에 따른 이익은 고사하고 분쟁과 환경파괴의 고통만 감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참고로 전 세계 구리의 추정 가치액은 7320억 달러에 이른다. 알루미늄 원광석인 보크사이트의 경우 5370억 달러로 추정된다. 이처럼 국가적 이익을 창출할 만큼 커다란 가치를 지닌 자원이기에 개도국으로서는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지키고자 한다. 그러나 다국적 기업 및 특정 이해 관련 국가의 입장에서도 양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정부군과 반정부군, 혹은 다국적 기업의 지원을 받는 용병업체의 존재 등이 뒤엉켜 인종과 종교의 가면을 쓴 분쟁이 발생하면, 그 악순환의 싸이클은 국제기구나 다른 국가들이 중재하기 곤란한 상황으로 악화되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개도국의 국민이나 혹은 독립하지 못한 지역의 원주민은 전쟁과 환경파괴의 양면적 피해에 속수무책으로 신음하기 십상이다.

원자재 전쟁으로 인한 환경파괴도 심각

원자재 전쟁에 의한 환경파괴의 대표적 사례는 1991년 걸프전이다. 당시 이라크는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저장시설에 불을 지르고 엄청난 양의 석유를 페르시아 만에 방류했다. 이 사태로 쿠웨이트에서는 총 625개의 유정이 한 달이 넘도록 불길에 휩싸였다. 이로 인해 끔찍한 환경 파괴가 발생했으나, 드라마틱한 전쟁 상황의 전개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았다. 실제로 유정 폭발로 인해 이 지역의 이산화황 농도는 기준치의 40배로 치솟았으며 화재로 인한 유황비와 식수원 오염 등으로 호흡기 사망자와 환자가 급증했다. 게다가 페르시아 만에 다량의 원유가 유출됨에 따라 온갖 조류와 어패류의 몰살은 말할 것도 없고 연안 어업의 황폐화로 이어질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미국의 공격으로 또 다시 체제 붕괴가 발생할 것에 대비하여 이라크의 후세인 대통령은 자국의 주요 유전에 다량의 폭약을 매설했다. 이와 함께 유전만큼은 절대 넘겨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하면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메도우즈(D.H.Meadows)가 중심이 되어 로마클럽에서 발간한 「성장의 한계」 제하의 보고서는 과학기술이 신자원의 개발과 공해의 방지에 전념하지 않는 한 2030년경에 이르러 이 지구는 인류가 살기 힘든 환경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를 반증하듯 한쪽에서는 제한된 원자재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으로 피를 흘리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치명적 환경 파괴를 낳는 비극을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명확한 해결점이 보이지 않는 원자재 전쟁

이익이 있는 곳에 수요와 공급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원자재와 전쟁의 상관관계는 단절하기 힘든 연결고리임에 분명하다. 전 세계적으로 대체에너지를 개발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데에도 자원의 한계성을 극복하는 동시에 분쟁을 피하려는 취지가 강하게 배어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앞에 두고 미국과 유럽이 최악의 관계를 보이는 것을 보더라도 원자재 전쟁을 피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짐작할 수 있다. 석유는 고사하고 광물자원과 목재의 경우도 유엔이나 국제사회의 공조가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당분간 원자재 전쟁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다. 다만 조직화된 반전시위가 전쟁을 잠시라도 연기하였듯, 국제기구의 강력한 작동이나 NGO 등 시민세력의 결집이 이러한 연결고리를 차단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월간 지구촌 20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