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생명체를 보호하는 원초적 생존 시스템 지구자기장

 

시시때때로 지구를 순식간에 삼켜버릴 듯한 강렬한 열기를 뿜으며 불어대는 태양풍으로부터 지구를 보호해주고 지상의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지구 생존 시스템이 바로 ‘지구자기장’이다. 지상의 모든 생물체들은 자력을 띠고 있으며 지구자기장의 영향을 받는다.

최근 개봉됐던 영화 ‘코어(The Core)’를 통해 지구자기장에 대한 과학적인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구자기장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를 가정한 이 영화는 단순한 공상과학으로 치부할 수만도 없는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 지구자기장이란 우리 눈으로는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없지만 지상의 모든 생명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원초적 ‘생존 시스템’이다.

풀리지 않는 지구자기장 생성의 비밀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일 것이다. 나침반은 지구자기장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증명해 주는 간단한 도구로 지구자기장의 남극과 북극이 서로 잡아당기는 원리로 작동된다. 그러나 첨단 과학시대인 오늘날에도 지구자기장이 어떻게 생성되는지 그 원인은 아직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규명되지 못하고 있다.

지구와 지구 주위에 나타나는 자석으로서의 성질을 지구자기라 하고, 지구자기가 영향을 미치는 영역을 지구자기장이라 한다. 지구자기장의 생성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난무하고 있다. 대부분의 지질학자들은 지구의 외핵이 지구자기장을 생성시켜 주는 원동력 역할을 한다는 대표적인 가설인 ‘지구발전기(Geo-dynamo) 이론’을 가장 신빙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이론은 용융상태의 외핵 안에 전하를 띤 성분들이 열에 데워져서 끊임없이 순환하는 대류 활동이 지구를 자전하게 하는 에너지로 발산되어 지구자기장을 발생시킨다고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이론이 입증되려면 지구 중심에 전하를 띤 자성체들이 있다는 가설이 먼저 증명되어야 하는데 8000~10000℃에 달하는 외핵의 고온을 견뎌낼 자성체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설령 그러한 물질이 외핵 내에 존재한다 하더라도 이 시대의 지질 탐사 기술과 장비로는 검증할 수 없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가설에 불과하다. 지구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많지만 아직까지 지구자기장이 생성되는 원리를 과학적으로 입증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다.

지구자기장에 따라 살아가는 지구 생명체들

영화 ‘코어’는 지구자기장이 사라진 결과로 건강한 사람이 일순간 심장이 멈춰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도시의 광장을 날아다니던 수천 마리의 비둘기들이 방향감각을 잃고 벽이나 창문과 차창을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해 떼죽음을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러한 영화 속의 장면은 과학적인 근거에서 설정됐다.

오래 전부터 비둘기는 뛰어난 귀소본능 때문에 ‘전서구(傳書鳩)’라 하여 서신을 전달하는 데 이용되어 왔던 새이다. 비둘기가 지닌 탁월한 방향 감각과 귀소본능은 다름 아닌 뇌에 박혀 있는 자석 덩어리에 의한 자기감각의 결과라는 사실이 1979년 미국에서 밝혀졌다. 비둘기의 머리뼈와 뇌 경막 사이에 있는 2㎜×1㎜ 크기의 자석이 지구자기장과 반응하여 방향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비둘기의 몸에 다른 자석을 붙여 지구자기장을 감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실험을 한 결과, 원래 목적지로 되돌아가지 못하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역시 1975년 미국에서 몸길이 2~3미크론의 박테리아 체내에서 생체자기가 발견됐다. 생체자기는 한 개가 0.04미크론 크기로 자석입자 수십 개가 줄줄이 엮여 있는 형태였으며 바다 생물인 이 박테리아는 이것을 이용해 북극과 남극을 오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둘기와 박테리아 외에도 귀소본능을 가진 동물들은 대체로 지구자기장을 탐지하는 생체자석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북미에 서식하는 황제나비, 도롱뇽, 바다가재, 여러 종류의 철새 등이 생체자기를 지닌 동물로 지구자기장이 없다면 생존할 수 없는 동물들이다.

자기감각을 지닌 것으로 검증이 된 동물들 외에도 지구자기장은 사람의 신진대사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의학계에 보고되고 있다. 사람의 혈액 속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의 주 성분은 철분이다. 철분과 자기장은 서로 끌어당기는 상호작용을 한다. 자기장 속에 있을 때 사람의 혈액 흐름이 활발해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인데 자석 요나 인공적인 자기장을 이용한 치료 기구들은 이런 원리로 만들어진 것이다.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건강 예보’라 하여 매달 초에 그 달에 지구자기장의 교란이 예상되는 날짜들을 알려주고 고혈압, 협심증, 심장질환자들이 건강에 유의해야 한다고 예보하고 있으며 유럽과 미국, 일본 등의 방송 매체들도 태양활동에 따른 지구자기장의 변화를 기상 예보 형식으로 자세하게 보도하고 있다.

주기적으로 뒤바뀌는 자기장의 극점

자석의 경우 N극과 S극이 서로 정반대 방향에 있지만, 지구자기장의 양극은 일직선상으로 서로 정반대에 있는 것이 아니며 항상 고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현재의 자북(지구자기장의 북극)은 지리적으로 북극에서 약 1800㎞ 떨어진 있는 캐나다 북부 허드슨만 근처에 있는 엘리프 링스 섬에 있지만 자남은 자북으로부터 정반대편이 아닌 오스트레일리아 남동쪽에 있는 섬 태즈메이니아에서 정남쪽으로 3000㎞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점은 오랫동안 자극점의 위치를 관측해 오고 있는 과학자들은 현재의 자북은 1831년에 관측된 자북으로부터 1년에 15㎞ 속도로 약 1000㎞ 떨어진 지점으로 이동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지금도 계속해서 자극점들이 이동하고 있는데 1970년 이후로 자북의 변화를 추적하면 이동 속도가 무려 1년에 40㎞ 정도로 과거에 비해 현저히 빨라졌다는 것이다. 자북의 이동속도가 이 상태로 진행된다면 50년 뒤에는 시베리아로 옮겨가게 된다.

지구자기장의 극점들은 지구의 위도와 극점에 관계없이 주기적으로 역전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이동하고 있다. 지구자기장의 역전은 이동과정에 극성의 세기가 점차 줄어들고 결국 반대 극점으로 뒤바뀌는 현상으로 세계 여러 지역의 지질 조사 결과, 학계에서는 평균 25만 년에 한 번씩, 과거 360만 년 동안 최소 9회 이상 역전이 일어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관측과 연구를 통해 지구자기장의 생성과 함께 자극점의 대전환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어떻게 해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아직도 그 이유를 알아내지 못하고 있다. 다만 태양풍이 지구자기장을 교란한다는 점에서 태양의 활동이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자극점의 역전으로 가장 우려하는 것은 극점이 태양과 일직선 방향으로 놓이는 것으로, 이렇게 되면 지구자기장은 태양풍으로부터 보호막 역할을 할 수 없게 된다.

지구자기장이 사라진다면?

지구자기장이 사라진다면 지구는 태양에서 불어대는 높은 에너지의 우주방사선 입자에 피폭되어 끔찍한 대재앙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태양은 지구에 꼭 필요한 빛과 열을 제공하지만 무수히 많은 양의 양성자와 전기 입자들이 뒤섞인 우주방사선을 뿜어내기도 한다.

태양에서 코로나 물질을 방출하거나 플레어와 같은 폭발 현상이 일어나면 최대 수백억 톤의 방사선 물질이 초속 400~1000㎞의 속도로 불어와 지구자기장에 도달하는데 약 2일이 걸린다. 이것을 ‘태양풍’이라고 하는데 태양풍이 지구자기장과 맞닿으면 상호작용을 일으킨다. 지상으로부터 60000㎞ 상공에서 지구를 두르고 있는 지구 자기권 내부로 유입되는 태양풍과 함께 날아온 전하입자의 일부가 양 자극지방에서 끌려 들어가면 오색의 오로라가 발생한다.

그러나 그 밖의 하전입자들은 대부분 지구 주변으로 스쳐 지나가는데, 이때 지구를 중심으로 도넛 형태의 보호막이 형성된다. 이것을 ‘밴앨런(Van Allen) 복사대’라고 한다. 1958년에 미국의 유명한 물리학자 밴 앨런이 발견한 이 방사능대는 인체에 해를 주는 우주방사능 물질이 태양풍에 실려 올 때 이것이 지구로 유입되는 것을 차단해주는 보호막 역할을 해준다. 만약 우주방사선이 그대로 지상에 도달하면 지구는 순식간에 뜨거운 열과 방사능으로 휩싸여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죽음의 행성이 되고 말 것이다.

태양풍의 파장으로 지구자기장의 교란이 극심할 경우, 인공위성이나 우주공간에 있는 우주인이 피해를 입거나 설비들이 작동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실제로 1989년 3월 캐나다의 퀘벡 지방에서는 변압기가 타버리거나 발전시스템이 마비되어 9시간 동안 정전되고 통신이 두절되는 사태가 발생한 적이 있다. 지구 밖에서는 인공위성이 태양풍에 의한 자기폭풍으로 입는 피해가 많지만 첩보위성과 상업위성의 활동이 기밀로 다루어지고 있어 손실되는 수는 보고되는 수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주방사선을 막아주는 보호막 역할을 하고 지상에서는 모든 생명체를 보호하는 지구자기장은 지구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인 존재이다. 항상 육안으로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어 그 고마움을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하지만 때로는 자극점 지방에서 찬란한 오로라의 아름다운 광채로 존재를 눈으로 볼 수 있게 드러낸다. 이 시대 그 어떤 첨단 과학 기술로 가늠할 수 없는 지구자기장은 태고의 비밀을 간직한 또 다른 차원의 세계이다.

高 東 錫 기자 / dskoh@magazinegv.com

월간지구촌 20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