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회의 병폐 히키코모리, 한국으로 확산 위험

 

120만 명의 일본 청년들이 외부와 단절된 채 집안에만 틀어박혀 살아가는 히키코모리로 전락하고 있다. 일본의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히키코모리 현상,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현상 ‘귀차니즘’

인터넷을 통로로 사람들과 만나고 사회를 접하며 문화를 만들어가는 시대다. 온라인이라 불리는 가상세계는 이제 현실 세계와 대등한 위치를 차지하며 우리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가고 있다. 직장을 다녀오면 으레 컴퓨터 앞에 앉아 자신 앞으로 온 메일을 확인하고 인터넷 서핑을 하며 다양한 웹사이트들을 탐색한다. 채팅을 하거나 자신이 속한 동호회에 얼굴을 비치는 것도 일과 중 하나다. 최신 게임을 즐기거나 각종 플래시, 뮤직비디오 감상 등으로 시간은 금세 지나간다.

그런데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최근 들어 더욱 실감난다. 가상세계에 지나치게 빠진 나머지 현실세계의 생활에 싫증을 내고 귀찮아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가상세계 속에서는 익명으로 살아가며 모든 것을 누리고 즐길 수 있는데, 현실세계에서 내가 이룰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밖에서는 평범한 학생·직장인이지만 집에만 오면 방에 틀어박혀 좀처럼 나오지 않는 사람들. 밥을 먹거나 화장실에 갈 때만 방문을 열고 모습을 비칠 뿐 모든 것이 귀찮은 듯 방안에서만 생활한다.

여름 휴가철 산과 들로 떠나는 사람들과 대조적으로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방콕족’을 능가하는 이들은, 평소에도 밖에 나가지 않고 집안에서만 생활한다. 심지어 모든 활동을 귀찮아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요즘 말로 ‘귀차니즘’에 빠졌다고 한다. 귀차니즘이란 ‘귀찮다’는 말에 주장이나 사상을 뜻하는 영어의 ‘-ism’을 붙인 것이다. 이렇게 귀차니즘에 빠진 사람들을 ‘귀차니스트’라고 부른다.

귀차니스트들이 세상과 통하는 출구는 TV와 인터넷. 불특정 다수 또는 몇몇 소수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나누는 대화를 더 즐긴다. 학교나 회사를 다니면서 나머지 시간에 귀차니즘에 빠져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이런 증상이 심해지면 은둔형 폐인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지난해 말부터 우리나라에도 알려진 일본의 ‘히키코모리(ひきこもり)’가 바로 이런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미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간과해버릴 이웃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머지 않아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사회 병리 현상이다.
 

 몇 년째 두문불출, 은둔형 폐인 히키코모리

사실 히키코모리는 방콕족과 매우 다르다. 갈 곳이 없어서 방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학교도 회사도 다니지 않는다. 사회생활 자체를 거부한 채 집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이다.

‘히키코모리’는 ‘(특정 장소에) 틀어박히다’라는 뜻의 일본어 ‘히키코모루’를 명사화한 단어다. 주로 어려운 상황을 피하기 위해 산이나 시골에서 숨어 사는 정치인들에게 쓰이는 말이었으나, 최근에는 6개월 이상 외출하지 않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사람을 부르는 말로 변형되어 통용되고 있다.

현재 1억 2천만 명의 일본 인구 중 1%에 달하는 120만 명의 젊은이들이 히키코모리 상태인 것으로 집계됐다. 그뿐 아니라 한창 일할 30대가 차지하는 비율이 30%에 달하는데다가 대부분 남성들이어서, 히키코모리 문제는 이미 심각한 사회 문제로 뿌리내렸다. 무려 10년 이상 집에서만 생활하는 사람들도 적잖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의 무관심으로 확산

히키코모리는 1970년대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입시에 시달리던 학생들이 무단결석하며 낮에는 집안에 있다가 밤이 되어서야 외출하는 행태를 보이자, 학자들은 단순히 ‘등교거부’ 현상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정신과 의사였던 이나무라 히로시는 이 같은 청소년들의 행동을 ‘냉담 증후군’이라는 정신병으로 간주했다. 그는 무단결석하는 십대들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진정제를 투여하며 치료를 시도했으나, 동료 의사들과 언론의 비난이 거세어지자 결국 중단하고 말았다. 당시 잦은 무단결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십대는 무려 5천 명에 달했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이 되면서 학생들은 좀더 과격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낮에 자기 방에만 틀어박혀 있던 학생들이 어두운 밤이 되면 거리로 나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폭행하거나 살인 등 끔찍한 범죄를 저 질렀던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런 은둔 현상을 여전히 일부 불량 청소년들에게만 국한된 문제라고 여겼다.

이나무라 박사와 생각을 같이 한 사이토 박사는 청소년들의 은둔 현상이 입시 전쟁과 성적 부담 등에 따른 정신적 고통에서 비롯된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사회 활동가인 마츠다 다케미 씨도 특정 정신병이라기보다는 획일화된 입시 위주의 교육과 효율성만 강조하는 가치관이 만들어낸 사회적 부작용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을 단순히 불량 청소년들로만 생각하는 대중들의 시각은 결과적으로는 히키코모리가 청소년들을 넘어 성인들에게까지 퍼지도록 방치한 꼴이 되고 말았다.
 

 경제침체로 인한 의욕상실이 원인

히키코모리가 성인들에게까지 확산된 것은 1990년대 초 일본 경제가 침체의 늪으로 빠지면서부터다. 갑작스럽게 일자리를 잃거나 취업전선에서 낙방한 젊은이들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사회생활을 거부한 채 집안으로 잠적해버렸다. 평소 말이 없는 내성적인 성격의 사람들이 히키코모리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상대적으로 공부를 매우 잘했거나 학구열에 불탔던 사람들도 자신의 꿈이 좌절되면 숨어버리기도 한다. 당사자들은 자신의 상황을 타인에게 말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각자의 은둔 원인은 자세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사소한 이유로 마음에 상처를 받았거나 여러 차례 좌절을 경험하면서 우울증에 걸려 외부와의 접촉을 끊어버리는 사례가 많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는 5월 30일자 신문에서 이러한 현상에 대해 “장기적인 경기 침체 이후 지금까지 일본의 경제성장을 지탱해 온 세대와 그렇지 못한 세대간의 적응력 차이가 이러한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고 파악했다. 어려운 시기를 겪어보지 않은 나약한 젊은 세대들이 경기 침체로 인해 사회 진출 의지가 여러 차례 좌절되자 더 이상 나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주저앉아버린 것이다.
 

 대인공포증과 우울증 등 정신질환에 시달려

철저히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가는 히키코모리는 시간이 갈수록 사회와 멀어진다. 적게는 몇 개월에서부터 많게는 몇 년 동안이나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자기만의 공간에서만 지내다 보니 광장공포증이나 편집증, 햇빛혐오증 등을 보이고 불안감에 잠을 설치기도 한다.

이들은 자기비하적 성향을 띠기도 하고 이웃 사람들이 자기를 감시할까봐 창을 커튼등으로 가리기도 한다. 그런데도 현실적으로는 제대로 치료받지도 못한 채 그 수만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일본에서는 사무라이 전통에 따라 우울증이 나약함의 표본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울증은 정신질환으로 취급되지도 않고 병원에서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린다. 그런 식으로 우울증을 방치하다 결국 히키코모리로 전락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병원 관계자들은 병원을 찾는 히키코모리 환자들이 대체로 음울하고 말을 잘 하지 않으며 극단적이고 난폭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고 전한다.

신체적으로도 건강상태가 매우 악화된다. 인터넷을 즐기면서 장시간 꼼짝도 않고 앉아 있으면 다리 정맥에 피가 돌지 않아 굳어버리는 혈전증에 걸릴 수 있다. 그러다 갑자기 움직이면 혈전이 폐로 흘러들어가 갑작스런 호흡곤란과 폐색전증을 일으킬 수도 있어 매우 위험하다. 또한 스스로 음식을 만들어 먹기보다는 인스턴트 식품과 패스트푸드 등 손쉬운 음식들만 먹게 되는데, 이는 심각한 영양 불균형을 초래하여 각종 성인병의 원인이 된다. 극도로 불규칙한 식사시간은 과민성대장증후군, 악성 변비 등 만성 소화기질환으로까지 이어진다. 밤늦도록 앉아 인터넷을 하다 보면 날 새는 줄 모르게 되고, 수면 부족으로 신진 대사 기능이 급격히 떨어지면 각종 병에 대한 저항력이 약화된다. 컴퓨터 앞에 장시간 곧은 자세로 앉아 있으면 두통과 현기증, 불면증 및 불안감이 동반되어 심한 경우 성격 장애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히키코모리 증세는 대체로 사회적 인격과 가치관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10대와 20대에서 주로 발생하므로 이들에게 일어나는 악영향은 사회 전체의 건강을 해치는 심각한 사태로까지 번진다. 당사자들 역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꾸려가기 위해서는 장기간의 치료가 필요하다.
 

 전문의와 상의하고 대화 많이 나눠라

한때 지나갈 청소년들의 과오라고 간과했던 사람들은 성인 히키코모리의 숫자가 늘어나자 그제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인터넷에는 이들을 위한 대화방이 등장했고, 히키코모리 자녀를 둔 부모들은 앞장서서 사이트를 개설하여 고민을 상담하는 동호회 모임을 갖기도 한다. 히키코모리 문제 해결을 위해 설립된 조직과 연계하여 자체적인 대책 마련에도 고심하고 있다. 몇 년씩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사회에 재적응한 뒤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으며 폐쇄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하고, 히키코모리 퇴치 캠페인을 벌이기도 한다.

마쓰다 씨는 치료를 위해서 자주 대화를 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황이 주어지면 그들도 마음을 열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정기적으로 서로 만나면서 그 동안 사회생활을 못해 부족해진 의사소통 능력을 키우며 가족 상담과 심리 치료도 받는다.

뒤늦게나마 정부에서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국회의원들이 나서서 “히키코모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당파적 위원회 혹은 연맹을 결성하겠다.”고 선언했고, NHK 방송사는 특집방송을 내보내며 히키코모리 퇴치운동을 벌이고 있다.
 

 히키코모리, 우리나라에도 급증 우려

이처럼 일본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부각된 히키코모리는 가까운 대만과 우리나라에도 확산됐다.

지난해 8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히키코모리 증세와 유사한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와 강북삼성병원, 서울동남정신과의원이 2000년 1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친구가 한 명도 없고 가족간의 대화도 없으며 혼자서 식사하는 은둔형 외톨이가 전체 조사 대상자 2409명 중 31명에 달했다. 연구팀은 1990년대 초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이 같은 환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 역시 일본과 마찬가지로 학력지상주의, 핵가족화에 따른 개인주의, IMF 경제 불황으로 인한 청년 실업자 증가 등 히키코모리가 양산될 만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힘든 일을 겪어보지 않은 젊은층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스스로 왕따를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전체 78만 명의 실업자 중 20대 청년 실업자 수가 33만 명으로 절반에 가까운데다가 지난 6월에 비해 벌써 6천 명이나 늘었다. 경기 침체로 인해 대기업들이 신규 투자를 하지 않는 것도 이유이지만, 청년들의 무분별한 카드 사용이 노동의 신성함보다는 소비의식만 고취시켜 저임금 일자리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도 핵심 원인이다. 결국 근로의욕을 상실한 채 구직을 포기하고 집안에 틀어박히는 청년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은둔 행태가 일본 사회의  병폐로 자리잡은 히키코모리의 확산으로 이어지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다. 현재 우리나라는 일본에 비해 덜 심각해서인지 대책 마련에 그다지 고심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히키코모리 유사 증세를 보이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가까운 일본의 사례를 참고하여 젊은이들에게 사회 진출의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고, 어려운 일도 이겨낼 수 있는 강인함을 길러줌과 동시에 대화를 통해 희망을 주는 것이 히키코모리로 전락하는 것을 막는 가장 빠르고 필수적인 방법이다.

 

趙 庭 嬉 기자 / jhcho@magazinegv.com

 월드 리포트 20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