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식동물 외톨이 공포 … 지독한 ‘집단으로 돌진’

‘찍거나 찍히거나’ 너도 나도 개떼 정신 득세 … 뜨거운 열정 세분화 ‘공공 시스템’ 구축 과제

 
 




새벽 4시, ‘아침형 인간’이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새로 산 자명종 시계를 끄고 ‘새집 증후군’에 맞서 공기청정기를 켠다. 다이어트를 위해 30분 동안 ‘반신욕’을 하고 아침은 ‘웰빙’ 선식으로 한다.

치매 예방을 위해 쇠젓가락으로 콩 옮기기를 하면 좋겠지만 ‘아침형 기업’을 선언한 회사의 ‘자기 계발’ 강의가 곧 시작되므로 꾸물댈 시간이 없다.

요즘 뜨는 ‘메트로 섹슈얼족’답게 조인성의 발리풍 스니커즈를 신고 ‘자유로운 인간’임을 보여주기 위해 분홍색 와이셔츠를 입는다. 단, 분홍은 진하면 안 된다. 지하철에선 ‘변화’를 통해 자신의 몸값을 올리라는 ‘양치기 CEO’를 읽는다.

회사 동료들과 하는 대화는 단연 “‘실미도’ 봤지?”로 시작한다. ‘실미도’ 안 보면 간첩이고 ‘태극기 휘날리며’ 안 보면 한국 사람이 아니다.

틈틈이 인터넷 카페 ‘짬짬이형 인간, 10억 만들기’에 접속한다. 7월1일부터 표준 공시지가가 크게 오른다는 소식이 업데이트돼 있다.

‘실미도’ 안보면 간첩이고 ‘태극기~’ 안보면 외국인?

그 사이 가입한 카페만 해도 ‘나는 달린다’ ‘강아지 사랑’ ‘참된 아빠 되기’ ‘○○초등학교 동창회’ ‘내 사랑 효리’ ‘○○상가 투자자 모임’ 등 10여개가 넘는다.

‘대한민국 얼짱 콘테스트’ 사이트에도 들른다. 후보 사진에 심사 ‘리플’을 단다. ‘코를 세우고 입술에 실리콘 넣으셨군요’. ‘얼꽝’ 한 명을 ‘방법’해버린다. 저녁 회식은 ‘닭고기 먹기 운동’에 동참하는 뜻에서 닭갈비로 정한다.

2004년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우리가 사는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는 졸음 때문에 멍한 채 인터넷 서핑으로 오후를 보내고, 표준 공시지가가 오르기 전 상속받을 부동산이 없으며, 변화는커녕 알량한 내 자리 지키기에도 바쁘다. 얼마 전 요시카 피셔처럼 달리고, 몸짱 아줌마를 따라 근력 키우기를 했으며, 고기만 먹는 황제 다이어트를 하고, 심장에 좋다는 와인을 마셔댄 것도 우리들이었다.

반면 1회용 컵 사용을 늘리고, 한국인 비하에 열을 올리는 카페 ‘더러운 조센징’과 남녀평등에 반대하는 ‘안티 페미니즘’에 가입하고, ‘광우병’ 경고 이후 보란 듯 육식 섭취를 늘리는 또 다른 우리도 있다. 선거에는 반드시 불참하며 2002 월드컵 때 ‘붉은 악마’들을 피해 해외여행 다녀온 일을 자랑했다. 또 다른 우리는 ‘아침형 인간’들이 곧 스러질 것을 믿으며, 정치 혐오를 지성의 상징으로, 일체의 정부 정책 및 주류와 네티즌 문화를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개떼 근성’으로 간주하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

거의 상극처럼 보이지만 이 두 가지 양상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우리들의 모습이다. ‘트렌드’를 좇든가, ‘트렌드를 냉소하는 트렌드’를 좇든가이다. 어느 쪽이든 우리들은 홀로 생각하고 무력한 개인으로 떨어져 있기보다 강력한 집단에 속함으로써 안정감을 찾는다. 










각종 트렌드는 관련 상품과 공생하면서 더욱 확산된다. 한 개인이 자유의지로 무엇을 먹고, 무엇을 읽고, 무엇을 보아야 할지 결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영화 ‘실미도’가 1000만 관객을 동원했고, ‘태극기 휘날리며’는 이를 추월할 기세다. 남한 인구 4.8명당 1명이 같은 영화를 본 셈이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정책담당자는 “IMF 때 금 모으기, 원자재 부족에 고철 모으기 운동을 하는 독특한 국민적 정서가 없다면 불가능한 숫자”라고 말한다. 일본 수출 가격도 역대 최고로 “우리도 할리우드만큼 할 수 있다”는 민족적 자긍심까지 휘날렸다.

환경친화적 삶과 여유를 컨셉트로 한 ‘웰빙’은 올해의 ‘키워드’가 되어 불경기에도 강남의 스파와 요가 클래스, 유기농 식품과 호사스런 여행상품 등을 ‘2004년 가장 전망 좋은 사업 아이템’으로 만들어놓았다.

각종의 트렌드와 ‘○○족’이란 태풍은 일본과 미국을 거치며 마케팅 전략을 빨아들인 뒤 한반도에 상륙하면서 어떠한 논리적 설명이나 의문도 날려버리는 괴력을 발휘한다. 서민들은 허리띠 졸라매고 집 한 채를 밑천으로 10억을 모으자는 ‘10억 만들기’ 열풍에 동참함으로써 미래의 ‘웰빙족’ ‘명품족’을 꿈꾼다. 그러므로 ‘정크푸드’로 상징되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웰빙 버거’를 파는 역설도 가능하다.


‘사촌이 땅 사면 배아픈 심리’ 트렌드 중독 원인

‘웰빙’과는 다른 방향의 정신개조 혁명인 ‘아침형 인간’ 책이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어 두 달 만에 100만부 판매를 눈앞에 두었다. 47명당 한 사람이 산 셈이니 돌려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남편은 ‘아침형 인간’, 아내는 ‘웰빙족’인 가정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처음 책을 낸 출판사 한스미디어측은 “예상 판매부수는 1만5000부 정도였다”고 밝혔다.

그래서인지, ‘○○형 인간’류의 책은 다 그러려니 생각해서인지, 저자가 “애써 잠을 줄이고, 그것을 극복하려 하는 것은 우리 몸을 갉아먹는 일이다”라고 충고하거나 “직업적으로 밤에 일해야 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이 책의 논의에서 제외하는 것이 좋겠다. 필자는 그런 사람들을 위한 고민을 멈추지 않고 있으며 언젠가 그 결과를 내놓아 도움이 되도록 할 생각”이라며 유보한 사항에 주의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그리고 ‘짱’ 신드롬이 있다. ‘효리’나 ‘비’처럼 TV로 전달되는 연예인의 이미지를 우상화하는 스타 신드롬이 아날로그라고 한다면, ‘짱’은 인터넷에서 발생한 디지털 신드롬이다. 그 과정은 원형경기장에 검투사를 한 사람씩 세워놓고 관객들이 엄지손가락을 세우거나 꺾는 것과 비슷하다. 매우 강력한 군중심리에 의해 첫 번째 ‘리플’로 얼짱이 되기도 하고 성형미인이 되기도 한다.

얼짱에서 시작한 짱 신드롬은 몸짱, 노짱, 게임짱(특장별)으로 나뉘고, 스포츠얼짱, 정치얼짱, 간첩얼짱, 강도얼짱, 대학생얼짱, 초딩얼짱, 아나운서얼짱(직업별), 기수별(1기가 박한별) 및 반대말 ‘얼꽝’까지 만들어내면서 외모 지상주의를 개탄하는 소리마저 높다.

외모 지상주의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바에야 얼짱 뽑기는 돈거래와 ‘빽’으로 얼룩진 미인대회들과 달리 네티즌들의 순수한 게임이란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사람을 외모로 ‘처단’하는 가학적 쾌감이 죄책감을 느끼기 어려운 익명의 군중 속에서 상승작용을 일으킨 데다 인터넷 얼짱이 하루아침에 스포츠신문의 스타가 되면서 얼짱 신드롬은 전 사회적 열병이 돼버렸다.

연세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얼짱’ 콘테스트에 이어 ‘노짱’ 선발대회를 하고 있다. 후보로 추천된 얼짱들의 경우 전문 사진작가에게 의뢰한 프로필 사진을 사이트에 올렸는데 이를 보고 연예기획사들의 문의가 폭주한다고 한다. 실제로 이때 뽑힌 얼짱 한 명은 모 학원 광고모델로 발탁됐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몸짱’이 되어야 한다고 느낀다. 사람들이 지배 헤게모니를 소비하고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커뮤니티 관리자인 최성식씨(연세대 영상대학원 재학)는 “‘사촌이 땅 사면 배아픈 심리가 우리 사회의 트렌드를 만든다. 남보다 더 좋은 것을 만들고 싶어하고 더 큰 즐거움을 느끼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일산 봄날 아줌마를 ‘몸짱’으로 만든 데 이어 ‘제1회 대한민국 몸짱 콘테스트’를 열고 있는 김어준 ‘딴지일보’ 대표는 “봄날 아줌마가 평범한 두 아이의 엄마였기에 성공 사례로 소개했다. 몸이 생각을 지배하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솔직히 이 정도 반응이 올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그 자신 사이버 공간의 스타이기도 한 김대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가입률을 자랑하는 초고속통신망 인터넷 사용이 더 많은 트렌드를, 더 강력하고 빠른 속도로 만들어내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한다.

TV ‘웰빙’ 프로그램의 원조 ‘잘먹고 잘사는 법’, ‘환경의 역습-집이 사람을 공격한다’를 연출한 SBS 박정훈 프로듀서도 “예전에 비해 시청자들의 피드백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인터넷 덕분이다. 요즘은 프로그램이 나갈 때마다 ‘소동’을 겪는다. 다큐멘터리로 세상을 바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방어적 집단주의’ ‘대중독재’ 그리고 개인 욕망

또한 ‘집’전화와 달리 개인에게 달라붙어 있는 이동전화를 빼놓을 수 없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벨소리에 답해야 한다. 답하지 않으면 직장 회식, 동창회, 조카의 생일에서 배제되고 사회생활에 ‘문제 있는 사람’으로 찍힌다.

인터넷과 이동전화야말로 오늘날 우리 사회의 집단적 열병, 우리 마음속에 있는 개떼 정신의 ‘티핑 포인트’이다. 그리고 그 전선을 역으로 추적해가면 우리 사회의 독특한 ‘방어적 집단주의’ 또는 ‘대중독재’, 그리고 ‘왕따 현상’을 만나게 된다.

‘방어적 집단주의’는 “구성원들이 이탈자로 찍힐까 두려워하며 아무 동기 없이 많은 사람들 편에 남으려는 무의식적 반응”(남재일 고려대 강사)을 의미하며, ‘대중독재’ 패러다임은 “강제와 폭력이라는 피상적 이미지의 물밑에서 작동하는 대중의 자발적 동원 메커니즘”(임지현 한양대 교수)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임교수는 특히 “국가나 회사에서 살을 빼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생겨나는 다이어트 열풍은 일종의 ‘내재적 강제’이자 ‘밑에서부터의 파시즘’”으로 “일상의 규범이나 전통, 문화적 관행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지배 헤게모니와 그것이 창출하는 대중의 동의에 대한 분석이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방어적 집단주의’나 ‘대중독재’ 심리는 일찍이 에리히 프롬이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통해 근대성의 특징으로 설명한 바 있지만, 학자들은 ‘돌진적 근대화’(김진호 ‘당대비평’)를 추구해온 우리나라에선, 특히 근ㆍ현대사에서 한 번도 국가 또는 공공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된 적이 없었다는 점이 1987년 민주화 이후 ‘새로운 것’과 ‘개인적 욕구’를 무조건 지지하는 성향을 낳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는 듯하다. ‘나라에서 하라는 대로 따라한 바보만 손해 본다’는 것이다.

게다가 2000년 이후 ‘세계화’한 자본주의는 소위 ‘마케팅 혁명’을 통해 TV와 라디오,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우리에게 ‘보아야 할 것’ ‘읽어야 할 것’ ‘관람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근대화 시기 충효사상은 한국영화를 봐줘야 하고, 브로드웨이 뮤지컬도 봐줘야 하고, ‘웰빙’ 상품 하나쯤 사야 하는 욕망의 트렌드로 바뀌었다.

“우리는 초식동물과 비슷해요. 항상 많이 모여 있어야 안전하죠. 그러다 육식동물이 나타나면 뒤에 처지는 놈은 죽어야 해요. 약자를 지켜주는 공동 시스템이 없거든요. ‘유행’이나 ‘○○족’에 속하려는 심리가 그런 거죠. 2002 월드컵에 모여든 인파를 어떻게 설명할까요? 사람들이 진심으로 신뢰할 만한 집단을 처음 발견했다는 것이죠. 그 감격에 취한 거죠.”(김어준)  


그는 ‘열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개떼 정신’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내달려 냉소주의적 개인들을 만들어내고 있지 않은지 우려한다. ‘조센징’ 카페에서 볼 수 있듯 최근 눈에 띄게 늘어난 ‘안티족’들은 사회에 무관심하면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비하하는 데서 즐거움을 얻는다.

박정훈 PD 역시 “방송 이후 ‘친환경소비재인증제도’등이 도입되는 등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 보람을 느끼지만 ‘환경문제를 과장했다’며 일시적 소동으로 폄훼하는 시각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어떤 유행과 트렌드가 대중적 헤게모니가 되려면, 그것이 ‘집단적 방어주의’로 증폭되고 마케팅 전략에 의해 확산된다 해도 그 안에는 신뢰할 만한 공동체에 대한 추구와 억압됐던 사적인 욕망을 충족하려는 심리가 내재해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각종 유행과 신드롬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아니며, ‘트렌드족’이 될 것이냐, ‘안티 트렌드족’이 될 것이냐 양자택일하는 것도 아니다. 임지현 교수는 ‘대중독재’ 패러다임의 목적이 “과거를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사회적 기억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대중적 헤게모니에 담긴 개인들의 욕망을 분석해 ‘비판적 인식의 틀’을 갖춘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를 자기 만족이나 개인적 오락 차원에서 공적인 문화로 끌어내는 것, ‘웰빙’을 친환경적인 삶의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 반성적인 공공의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열정, ‘개떼 정신’이 이뤄내야 할 일이다. 


주간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