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대재앙, 10년 안에 닥친다”

 

기후 변동의 충격파가 지구 환경은 물론 인간의 생존까지 위협하고 있다. 기후 대재앙이 현실화하며 기후 변동이 아니라 기후 적응 문제가 발등의 불이 되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 및 개도국은 기후 적응 방법론에서 큰 견해 차를 보이고 있다.  

남극 빙산이 녹아 없어지는 광경을 연도 별로 나타낸 위성 사진

남극 빙산이 녹는 것 따위는 이제 문제가 아니다. 설마 설마 하던 기후 대재앙이 기정 사실화하고 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은 기후 변동이 아니라 기후 적응이다. 천재 지변이 일상화하는 상황에서 앞으로 인간이 어떻게 살아 남을 것이냐 하는, 이른바 ‘기후 적응’의 차원으로 넘어가고 있다.

먼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환경 관련 민간 기구 펠랑기연구소의 아구스 싸리 사무국장의 외침이다. “기후 변동은 지금 여기의 문제다. 만약 (영향을) 줄이지 못한다면, 가난하고 취약한 개도국들을 더욱 더 궁지로 몰아가며 거대한 물리적·사회 경제적 충격을 던져줄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기후 변동 문제의 축소판이다.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금세기 중반 이전에 인도네시아는 전체 소득의 10% 이상이 기후 변동으로 날아갈 것이다.”

싸리 박사는 지난 3월 25~26일 제주도에서 열린 아시아·유럽 환경 포럼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그가 ‘기후 적응 기금’을 만들자고 국제 사회에 제안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제 국제 사회는 지구 온난화 등 기후 변동의 원인 물질을 줄이는 방안을 둘러싼 입씨름으로 귀중한 시간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기후 변동과 함께 어울려 살 각오를 하고, 이에 적응하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 변동과 어울려 살 각오 해야”

지난해 발생한 독일의 대홍수. 기상 이변은 더 이상 ‘이변’이 아니다.  

지난 2월 말 영국 <업저버>의 보도를 통해 일부가 공개된 미국 국방부의 한 보고서(상자 기사 참조)는 훨씬 더 극단적이다. 이 보고서는, 지난해 10월 미국의 민간 두뇌 집단인 글로벌 비즈니스 네트워크가 작성한 또 다른 보고서를 토대로 하고 있다.

<업저버>에 소개된 보고서의 핵심은 최악의 경우 앞으로 10년 안에 기후 변동에 의한 재앙이 지구를 덮는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지구의 종말이 가까워졌으니, 미국이여 대비하라’고 충고한다. 기후 적응 문제는 테러 근절이나 석유 확보 못지 않은 미국 국가 안보의 최우선 과제라는 선언이다. 이 보고서를 과학이나 환경을 담당하는 부처가 아니고 국방부가 작성했다는 사실이 사태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기후 변동에 관한 지금까지의 통념은 지구가 서서히 더워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효과도 앞으로 50~100년 뒤에나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었다. 경부고속도로를 사흘간 마비시키며 막대한 재산 피해까지 냈던 지난 3월 초의 폭설처럼 지구촌 곳곳에서 간간이 발생하는 기상 이변은 이같은 상황에서 말 그대로 ‘예외적인 이변’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에 발표된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나 보고서는 이같은 통념을 깨뜨리고 있다. 과학자들은 기후 변동의 현재 상황을 ‘한창 온도가 오르고 있는 물’이 아니라 이미 ‘온도가 오를 대로 올라 끓기 직전의 상황’으로 간주하고 있다. 또한 시간이 많으므로 지금부터 노력하면 기후 변동의 영향을 통제할 수 있다는 통념에 대해 글로벌 비즈니스 네트워크 보고서는 ‘위험한 자기 기만 행위’라고 규정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과학자들은 최근 기후 변동의 내력을 간직하고 있는 얼음덩어리에서 유력한 증거를 찾아냈다. 과학자들은 그린란드의 얼음층을 분석한 결과, 약 8천2백년 전 지구의 기후가 그 이전까지 상대적으로 장기간 더워졌다가 갑작스럽게 추워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해류의 변화 때문이었다. 기후가 따뜻해지면 해수는 팽창한다. 오랜 기간 계속된 해수의 팽창은 어느 순간 해류의 방향을 바꾸어놓는다. 8천2백년 전 온난한 기후가 갑자기 추워진 것은 이처럼 갑자기 해류의 흐름이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약 현재의 상황이 8천2백년 전 상황의 재판이라면, 1차 재앙은 2010년부터 시작되어 당장 북유럽과 북아메리카 동부 지역이 엄청난 피해를 볼 것이라고 미국 국방부 보고서는 내다본다. 온난한 기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멕시코 만 해류의 유속이 느려지면서, 이들 지역에 추위가 몰아닥치고 강설량이 줄어 가뭄이 나타나는 한편, 바람이 거세지고 바닷물이 불어나 헤이그를 비롯한 해양 도시들이 모두 잠긴다는 것이다. 시점은 바로 2010년부터 2020년 사이. 종말이 눈앞에 다가온 셈이다.

기후 변동에 따른 재앙은 한반도를 포함한 아시아 북부 지역도 강타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고서는 북대서양 지역과 더불어 북아시아 지역에 엄청난 추위가 몰아닥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겨울 한파가 심해져 산악 지대에는 사시 사철 얼음이 녹지 않는 만년설이 생기고, 이같은 변화가 여름철 기후까지 바꾸어 놓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이같은 기후 변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자명하다. 우선 홍수·해일 등 자연 재앙으로 대규모 환경 난민이 발생해 급격한 인구 이동을 초래한다. 계속되는 가뭄은 식량 생산에 영향을 미쳐 기아와 이에 따른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 겨울철에 항구가 얼어붙으면 에너지 공급마저 끊길 수 있다. 하나하나가 모두 핵폭탄 투하에 맞먹는 위력을 가지는 환경 재앙이다.

미국의 ‘걱정하는 과학자들의 연합(Union of concerned scientists ·과학자연합)’도 위와 비슷한 예측을 내놓고 있다. 과학자연합은 20세기 후반 50년간 북반부의 온도 상승률이 과거 1천년 동안 보였던 기온 상승률보다 높았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기후 측정 수단인 나이테·산호·얼음, 그리고 호수의 사구층에 대한 정밀 분석을 통해 이같은 사실이 입증되었다는 것이다.

1860년부터 1980년대까지 기온은 0.5℃ 상승하는데 그쳤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앞으로 100년 사이 세계의 온도는 4℃ 이상 높아질 것이며(위 그림 참조), 그 결과 해수면은 최악의 경우 1m 가까이 올라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과학자연합은 이같은 사실에 기초해 강수량의 극단적인 증가, 혹심한 가뭄, 해수면 상승이 세계 곳곳에 엄청난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며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이처럼 기후 변동이 가져올 무서운 결과와 이에 대한 대비책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하지만 기후에 적응하는 방법론에 대해서는 이해 당사자간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화석 연료, 특히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를 둘러싼 논란이 두드러지고 있다.

세계 최대의 에너지 소비 국가인 미국은 현재 이산화탄소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라는 사실 자체도 ‘과학적으로 검증되기 어렵다’며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반면 각국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규제하는 교토 의정서 발효를 앞장서서 추진해온 유럽연합과 대다수 과학자 집단은 이산화탄소야말로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므로 이를 반드시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3월 한반도 중부 지역을 강타한 폭설(왼쪽)과 가뭄으로 바짝 말라붙은 땅(오른쪽 작은 사진).  

 

미국과 유럽 및 개도국, 한판 힘겨루기 

이같은 견해차는 기후 적응 대책에서 현저한 시각차를 드러내고 있다. 미국은 미국 국방부 보고서가 상징하고 있듯이 한마디로 ‘각자 살 길을 찾자’는 것이다. 반면 유럽이나 개발도상국 등 교토 의정서 추진 진영은 기후적응기금을 마련하는 등 국제적인 협조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식량 폭동·지역 분쟁·핵전쟁 발발 위험성 등 기후 변동의 ‘임박한 위협’을 미국은 물론 중국·방글라데시·동 아프리카·오스트레일리아 등 국가와 지역 별로 나누어 면밀히 고찰하고 있는 미국 국방부 보고서에는 ‘국제 협력’이라는 표현이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보고서가 이런저런 시나리오 끝에 내놓은 기후 적응 방안은 식량이나 물을 확보하기 위해 ‘결코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대책’을 세우고, 국방 태세를 굳건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 변동판 일방주의인 셈이다. 그러나 미국의 학계 일각에서는 온난화 물질 배출 규제 방법론에 대해 세계 각국이 비용을 갹출해 주요 해당국을 지원하는 ‘마셜 플랜 식’ 해법을 제안한 바 있다.

이와 반대로 교토 의정서 추진 그룹은 무엇보다 국제 협력이 문제 해결에 긴요하다고 보고, 교토 협약을 조속히 이행하는 것이야말로 첫걸음이 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이들은 임박한 각종 재난에 대응할 수 있도록 기후변동특별기금·최빈국기금 등 세계적 차원의 ‘적응 기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번 제주도 환경 포럼에서 기후 적응 프로그램을 즉각 가동해야 한다면서 참가자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인도네시아 과학자 아구스 싸리 박사다.

어느 쪽이 옳든 기후 적응 방법론을 둘러싼 논쟁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일방주의와, 유럽 및 개도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협력파가 한판 힘겨루기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입씨름’은 어쩌면 인류의 운명을 둘러싼 최후의 일전이 될 수 있다. 미국 국방부 보고서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논쟁을 오래 지속하기에는 시간이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후 대책도 네오콘 식으로

미국 국방부 비공개 보고서, 강경파 ‘스승’ 앤드루 마셜이 입안  

앤드루 마셜(위)는 ‘요다’로 불린다.

지난 2월 영국 <업저버>가 입수해 그 내용의 일부를 드러낸 미국 국방부의 기후 변동 대책 관련 비공개 보고서는 ‘기후 적응판 미국의 신안보 전략’이라고 할 만하다. 엄청난 재앙에 직면해 큰 나라 작은 나라 할 것 없이 생존 투쟁에 돌입할 것이므로, 미국은 이에 대해 ‘결코 후회하지 않을’ 만반의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문했기 때문이다.이 보고서 작성을 진두 지휘한 인물은 지난 수십 년간 미국 국방 정책 입안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으로 알려진 앤드루 마셜이라는 전략가이다.

올해 83세의 고령인 마셜은 미국 국방부 안에서는 ‘요다’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요다는 영화 <스타워스>에서 제다이 전사를 가르친 최고의 스승이다. 국방부에서 그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간명하게 표현하는 별명이다.

실제 기후변화대책에 관한 비공개 보고서를 성안하기 전에도, 마셜은 닉슨 정부 이래 미국 국방부의 노른자위 정책 부서인 총괄평가국(The Office of Net Assessment) 국장을 연임하면서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현재 국방부가 ‘2차 세계대전 이래 최대의 군 개혁 작업’이라고 자찬하는 ‘군 이행(military transformation)’ 작업의 기본 발상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각종 과학·기술 데이터와 예측력을 군사·안보 문제와 결합하는 데 탁월한 재주를 가진 마셜은 비밀 작업을 선호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1977년 미국 정부가 소련에 데탕트 정책을 펼칠 때 이를 저지하기 위해 옛 소련의 군사력을 부풀리는 작업을 했던 미국 중앙정보국 내 비선 조직, 이른바 ‘팀 B’ 운영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공식 승인된 문서는 아니지만 미국 국방부 보고서의 토대가 된 글로벌 비즈니스 네트워크의 보고서 작성자 중 한 사람도 마셜과 친한 중앙정보국 요원 출신이다.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시사저널 2004.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