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가정도 삼켜버린 ‘쪽박의 바다’

 

[동아일보]
《경기 안양시에서 자동차 영업사원으로 일하며 두 딸을 키우던 평범한 가장 조모(36) 씨. 3년 전 우연히 스크린경마장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그와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꿨다. 3년 만에 5000만 원을 잃은 그는 돈을 구할 수 없게 되자 차를 판 돈을 회사에 입금하지 않고 성인오락실로 달려갔다. 직장을 잃은 조 씨는 5월부터 ‘바다이야기’라는 더욱 ‘흥미진진한’ 게임으로 종목을 바꿨다. 조 씨는 “200배짜리 한 방만 터지면 빚을 갚고 도박을 끊을 생각이었지만 바다이야기에만 2000만 원을 잃었다”며 “도박에서 만회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후회했다. 부인은 이혼을 요구했고, 조 씨는 현재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의 한 쪽방에서 지내며 일용직 노동자로 노숙인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도박 중독자들의 자발적 치료모임인 ‘한국 단(斷)도박협회’ 사무국장 이모(51) 씨는 “성인오락실은 도시 농촌 가릴 것 없이 주택가 곳곳에 침투해 본인은 물론 가정까지 파괴한다”며 “성인오락실을 드나드는 사람이 주로 서민층임을 감안하면 사회적 폐해가 카지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지적했다.

사행성 성인게임인 바다이야기의 폭발적인 인기와 더불어 골목마다 들어선 성인오락실이 전국을 도박공화국으로 만들고 있다.

▽성인오락실의 최대 피해자는 서민들=13일 오전 부산 동래구 온천동 금정산 기슭에서 김모(38) 씨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김 씨는 유서에서 “나를 이렇게까지 파멸하게 만든 모든 성인오락실은 없어져야만 합니다”며 때늦은 원망을 했다.

김 씨는 일용직 건설노동자로 10년 전 우연히 성인오락실에 들러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1억 원이라는 거액의 빚을 졌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쳤다.

만연된 도박은 한 개인의 파멸뿐만 아니라 가족과 이웃의 삶까지 위협한다.

오랜 실직 끝에 지난해 11월 인천 부평구 십정동의 한 성인오락실 종업원으로 취직한 권모(34) 씨. 이 오락실에서 3개월 동안 일하며 대박의 꿈을 키운 그는 1월 16일 인근 D오락실에서 4일 만에 150만 원을 잃었다.

가진 돈을 모두 날리자 그는 오락실 주인 강모(32) 씨에게 “생활비로 써야 하니 잃은 돈 중 조금만 돌려 달라”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강 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해 남은 인생을 교도소에서 보내게 됐다.

중소 식품회사 부장이던 정모(54) 씨는 노숙인으로 전락했다가 올해 초 도박중독자 모임을 찾았다. 정 씨는 2년 전 저녁 산책길에 우연히 성인오락실에 들렀다가 도박에 중독돼 결국 아파트까지 날렸다. 이후 회사 돈에 손을 댔고 회사에서 쫓겨났다. 도박 자금이 모자라자 딸이 다니는 직장에 찾아가 손을 벌렸다. 딸의 신용카드로 돈을 찾아 다시 성인오락실을 찾았다. 정 씨의 딸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신용불량자로 내몰렸고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농촌 구석구석까지 침투한 성인오락실=성인오락실은 전국적으로 1만4000여 곳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강원도에만 596곳으로 바다이야기의 인기에 힘입어 지난해에 비해 100개 이상 늘었다. 강원 평창군의 한 이장은 “순진한 농민들이 심심풀이로 성인오락실에 들렀다가 재산을 탕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한 달 만에 1000만 원을 날린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요즘은 주부와 대학생들도 도박 열풍에 빠져들고 있다.

서울의 개인택시 운전사 방모(51) 씨는 최근 새벽에 ‘특이한 손님’이 늘었다고 말한다.

서울 종로와 강남 일대의 바다이야기 같은 성인오락실에서 나온 손님들이 돈을 갹출해서 택시를 함께 타고는 각각 다른 목적지에서 내린다는 것. 하루에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을 잃어 택시비도 없는 사람들이다.

방 씨는 “과거에는 중년층이 성인오락실을 주로 드나들었는데 요즘은 새벽 시간에 오락실을 나서는 20대 손님도 적지 않다”며 “남편 몰래 사행성 게임에 빠져 새벽에 귀가하는 주부들도 가끔 태운다”고 탄식했다.

전북 전주시 덕진동의 대학생 최모(27) 씨는 올해 초 우연히 성인오락실을 찾았다. 처음에는 “용돈이라도 벌어야지”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게임을 시작했다가 2시간 만에 10만 원을 벌자 이내 게임에 중독됐다. 결국 최 씨는 등록금까지 손을 댔고 자취방으로 사용하던 원룸의 전세금까지 빼 성인오락실에 털어 넣었다. 최 씨는 “호기심의 대가가 너무 컸다”면서 “부모님 몰래 휴학을 한 상태”라고 털어놓았다.

동아일보 2006-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