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십대의 무너진 성] 고갸류의 등장
 

원조교제가 극성을 부린 96년과 97년, '고갸류'의 등장은 일본 사회 전체에 큰 충격파를 던졌다.

고갸류는 어린이를 의미하는 '고도모'와 영어의 '걸'을 멋대로 범벅한 말. 나이로 볼 때는 아직 어린애지만 행동은 그렇지 않다는 다소 냉소적인 시선이 반영된 신조어였다. 

길게 늘어뜨린 짙은 금발 머리에 흑인처럼 시커먼 얼굴, 선이 굵은 하늘색 아이섀도로 부엉이처럼 동그랗게 칠을 한 눈, 빨강 파랑 형형색색의 인조 손톱, 20㎝는 족히 돼 보이는 높은 굽의 신발, 찢어진 청바지에 몸에 착 달라붙는 티셔츠. 고갸류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분장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한 차림새의 여학생들이 하나씩 등에 메고 다니는 큼직한 가방은 책 대신 교복과 사복을 번갈아 집어넣는 옷보따리였다. 

고갸류의 또 다른 트레이드마크는 교복과 사복을 입을 때 가리지 않고 신고 다니는 흰색의 긴 양말이었다. 종아리까지 헐렁하게 둘둘 말아 올리는 스타킹으로, 일명 '루즌 속스'라고 한다. 

원조교제의 중심에 있던 고갸류들은 모든 것을 거부하는 듯한 퇴폐적인 복장으로 자신들만의 자유를 만끽했다. 처음에는 일부 불량기 있는 학생들의 돌출행동쯤으로 여겨졌지만 고갸류풍은 무섭게 확산돼 일종의 사회현상까지 낳았다. 어느새 TV에 출연하는 유명 연예인들의 단골 복장이 되고, 딸의 심리를 알기 위해 똑같이 고갸류풍으로 무장하고 다니는 용감한 '젊은 엄마'도 등장했다. 

짙은 파운데이션으로 '떡칠'한 얼굴은 학교 선생님들마저 도무지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이들은 고갸류로 둔갑한 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데 큰 희열을 느꼈다. 

10대 엄마들을 지칭하는 '영그 마마'가 이들의 등장으로 '고갸류 마마'로 자연스럽게 대체되고, 고갸류 용품 전문점이 생겨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사회의 한 계층을 형성한 고갸류는 시장의 흐름을 바꿔놓을 만한 '거대 세력'이 됐다. 

96년과 97년 각 언론사가 선정하는 유행어 대상 '톱10' 자리를 되짚어 보면 그 당시 일본의 사회적인 분위기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10개 중 절반 이상이 고갸류 용어들로 메워졌다. 아주 나쁘다는 뜻의 '초베리바(한자 超와 영어 Very, Bad를 섞은 말)', 유명 가수 아무로 나미에만 흉내내고 다니는 '아무라' 등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를 은어들이 난무했다. 물론 두말 할 필요없이 으뜸 유행어는 '원조교제'였다. 반항적이고 문란한 10대들의 일탈 분위기를 온몸으로 보여준 고갸류 속에 일본 10대들의 현주소가 그대로 드러났던 90년대 중·후반기였다.

도쿄(일본)〓양정석 특파원 jsyang@hot.co.kr

  굿데이 2003년 05월 29일 (목) 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