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 (, psychoanalysis)

 

 S.프로이트에 의한 신경증의 치료법과 그 심리학적 이론체계.

오스트리아의 의사 J.브로이어는, 심한 히스테리에 걸린 한 소녀에게 최면술을 걸어 병을 일으키게 된 시기의 사건에 대해 얘기를 시켰는데, 그것으로 소녀의 병이 완쾌되었다. 즉, 마음속 깊이 억눌려 환자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는 마음의 상처가 병이 되는 원인임을 알아낸 것이다.

프로이트는 브로이어와 함께 이에 관한 연구를 하였고, 히스테리의 증상은 의식의 영향을 받지 않고서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 있던 마음의 갈등이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 없이 육체적인 증세로 변형되어 일어나는 정신적 에너지로 생기는 병임을 알아내었다. 따라서 히스테리를 고치려면 무의식 속에 눌려 있던 감정을 정상적 통로를 통해서 의식계(意識界)로 방출(catharsis)하면 된다는 이론을 세웠다.

그 후 프로이트는 이런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최면술을 쓰는 일은 결함이 있다고 보고 그 대신 자유연상법(自由聯想法)으로 환자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숨기지 않고 얘기하게 하는 방법으로 바꾸었다.

1896년 그는 이런 방식을 ‘정신분석’이라고 명명했다. 그는 노이로제의 치료에서 얻은 지견을 꿈, 남 앞에서 빗나간 말을 하는 것, 농담이라는 형식으로 방출시키는 속마음 등을 연구하여 1900년 이후 자기 나름의 심리학 체계를 세우고 이를 정신분석이라고 불렀다. 자기의 학설이 처음부터 가설에서 출발한 것이고 과학적인 입증(立證)이 불가능한 것이어서 감히 정신분석학이라는 학(學)자를 넣지 못했던 것이다.

프로이트는 히스테리증상의 원인으로 성적(性的)인 것이 퍽 많음을 알아내고 억압된 관념에는 성적인 것이 많을 뿐더러 성적인 것은 아이 때부터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여 1905년 《성(性)의 이론에 관한 3개의 논문》이라는 저술을 발표하였다.

더 나아가 성에 대한 관념을 확대하여 노이로제의 원인으로서 그전같이 감정적인 상처를 입은 일을 생각하는 대신에 성적인 소질의 역할을 더욱 중시하게 되었다. 그의 학설이 범성론적(汎性論的)이라는 비난을 많이 받았고, 그로 말미암아 자기의 유력한 협조자였던 A.아들러와 K.융 같은 우수한 학자들이 그의 옆을 떠나고 말았다. 아들러는 권력의지(權力意志)를 인간행동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여 자아(自我)의 문제에 주목하였고, 융은 따로 분석적 심리학을 수립하였다.

정신분석은 무의식을 연구하는 심리학, 즉 프로이트의 말을 빌리면 심층심리학으로서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⑴ 역동적(力動的)인 점:정신분석은 모든 정신현상을 협력하다가도 반발하는 갈등과 결합했다가 타협했다가 하는 힘의 상호작용이라고 보았다. 이 힘의 나타남을 자기 보존본능, 즉 자아본능(自我本能)과 성본능 두 가지로 나누었고, 성본능의 에너지를 리비도(libido)라 불렀으나 26년경부터는 삶의 본능, 즉 에로스(eros)와 죽음의 본능 타나토스(thanatos)의 둘로 나누었다.

삶의 본능은 영원한 결합을 찾는 본능으로서 자기보존 본능과 성본능을 포함시켰고, 죽음의 본능은 삶을 파괴하려는 본능을 말한다.

이렇게 한 쌍의 본능을 생각한 그는 특히 성본능의 에너지인 리비도에 관한 연구를 발전시켜, 생후 18개월까지의 구순(口脣)시기, 8개월에서 4세까지의 항문(肛門)시기, 3∼7세의 남근기(男根期)로 발달되어 간다고 하고, 남근기의 끝 시기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억압을 받게 되면 리비도의 쾌감추구는 일시 중단된 채 잠복기로 접어든다는 것이다. 잠복된 리비도는 사춘기가 되면 다시 소생하여 성인형인 이성에 대한 성욕으로 발달된다는 것인데, 이것이 이른바 어린이 성욕설이라 하여 초창기에는 많은 종교인과 도덕가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받았다.

⑵ 경제적인 면:정신은 에너지의 울체(鬱滯)를 막고 정신이 받은 흥분의 총량을 가급적 낮게 하려고 한다. 즉, 정신에는 쾌감을 추구하고 불쾌를 피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쾌감원칙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성장함에 따라서 쾌감만을 추구할 수 없음을 깨달아 현실원칙과 타협하여 쾌감추구를 지연시키기도 하고 일시적인 불쾌감을 참는 것을 깨닫게 된다.

⑶ 국소론적(局所論的)인 면:정신분석에서는 정신을 이드(id) 또는 에스(Es), 자아(ego), 초자아(super ego)라는 3부분으로 나눈다.

이드는 무의식계에 속하는 본능적인 충동의 저장고라 말할 수 있다.

자아는 이드가 바깥 세계로 방출하려는 에너지의 통로를 지배한다. 그렇다고 자아는 의식 자체가 아니므로 자아의 대부분은 의식 밖에 있으며, 필요할 때만 의식계로 불러들이는데, 프로이트는 이를 전의식(前意識)이라 하였다. 그렇지만 자아에는 무의식적인 부분도 있다.

초자아는 우리가 말하는 양심 ·도덕이라고 부르는 자아의 이상(理想)으로서, 자아는 초자아가 기준하는 바에 따라 자기를 생각하고 완전한 행동을 하려고 노력한다. 초자아와 자아의 간격이 너무 벌어지면 죄악감 ·열등의식이 생긴다. 초자아는 특히 아버지에게서 받는 바가 크다.

프로이트의 이론체계는 위에 말한 세 가지가 복잡하게 얽혀서 형성되는데, 이드의 충동을 제멋대로 방출시키면 자아는 초자아의 꾸중을 듣게 되며, 세상[外界]에서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염려하여 항상 자아는 이드의 충동적 욕구와 초자아의 꾸중과 세상에서 받을 비판을 조절해야만 한다. 즉, 세 사람의 폭군을 모신 충신노릇을 해야만 하는데, 이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 일에 실패하면 자아는 불안에 빠진다. 불안에 빠질 우려가 있는 경우에 자아는 이드에 대해서 방어를 하게 된다. 방어는 이드가 명하는 긴박한 충동의 발동을 간섭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억압하여 충동을 위험성이 없는 방향으로 돌리게 한다. 이 방어의 수단을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라 한다. 자아가 자기 임무에 실패하면 사람은 노이로제에 걸린다.

프로이트는 노이로제를 두 가지로 크게 나누었는데, 하나는 현실신경증이고 또 하나는 정신신경증이다.

현실신경증은 외계, 즉 바깥세상이 이드의 충동성 방출에 대해 반항하는 데서 생긴 것으로, 신경쇠약 ·질병염려 ·불안신경증 등이고, 정신신경증은 초자아가 너무 엄격하기 때문에 이드가 일으킨 충동이 제대로 방출되지 않은 데서 히스테리 ·공포증 ·강박신경증 등이 생기는 것이라 했다. 지금은 초창기의 그의 학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학자는 거의 없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서 출발은 했지만 사회의 변화에 따라서 인간관계 ·생활문화를 비롯한 사회관계를 더 중시하여 해석하려는 신(新)프로이트학파(Neo-Freudian), 즉 문화파 분석학자들도 많아졌다. 프로이트에 대한 비판의 소리도 날카롭게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즉, ① 프로이트는 핍박과 천대를 오래 받은 유대인이기 때문에 그의 학설은 유대인에게 특히 강한 것을 침소봉대하였다는 점,

②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과 행동에 대해 성을 너무 강조했다는 점, 특히 초기에 제자였던 아들러, 융 등은 인간을 움직이는 법은 성 에너지가 아니라 ‘권력을 향한 의지’ 또는 성이 아닌 힘을 상정(想定)하여 자기 나름대로의 정신분석을 수립하였다.

③ 정신분석은 요해(了解)에 바탕을 두었는데, 요해는 자연과학의 방법인 설명과는 다른 것이므로 정신분석은 비과학적이라 하였고, K.야스퍼스는 특히 이런 견지에서 정신분석을 반박했다.

④ 프로이트가 관찰한 것은 옳기는 하나 그 해석방법이 너무 생물학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이런 견해를 가진 사람 중에는 E.프롬이나 K.호르나이 등 신프로이트학파 등이 있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끼친 영향은 크다. 예를 들면, L.빈스방거 등이 세운 현존재분석(現存在分析)도 그의 영향을 받아 생긴 것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러시아를 비롯한 공산권에서는 완전히 묵살당했고, 독일어를 사용하는 나라들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미국에서는 굉장한 반응을 일으켰다.

정신과의사 화이트 등의 지지를 받았고 심리학자들은 크게 호응했다. 그 까닭은 미국의 토착 심리학인 기능주의는 어느 점에서 정신분석적인 것과 공통점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인류학을 연구하는 학자나 또는 경영학에서 시장조사에 쓰이는 동기조사에까지 정신분석은 응용된다.

특히 정신분석이 예술 ·문예 ·미술분야에 큰 영향을 끼친 것만은 사실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서 정신분석을 연구하는 유대인 학자들이 대거 미국으로 건너갔고, 미국의 언론을 장악하는 유대인들의 절대지지를 받아 정신분석은 미국에서 폭발적으로 유행했지만, 비판의 소리도 높아져서 소위 신프로이트학파들의 학설이 많이 나오기 시작하자 그런 학설들이 프로이트학설을 대체하려는 기세마저 보이기 시작했다.

신프로이트학파에는 히틀러에 쫓기어 독일로부터 미국으로 건너간 호르나이, 프롬과 H.S.설리번, A.카디너 등이 대표적이고, 여기에 R.린턴, J.달라드, M.미드 등을 꼽기도 한다. 이들은 프로이트가 말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거세(去勢) 콤플렉스는 시대나 사회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사회의 가족에만 볼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성격형성에 인간관계를 더 중요시하였다. 프로이트가 말한 성의 발달단계도 아이와 가족 사이에 생기는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고찰하고, 치료면에도 인간관계를 중시하여 진행시켰다.

그러나 행동의 동기가 무의식적이며 정동적(情動的)이라는 생각은 프로이트와 마찬가지이다. 이 신프로이트학파의 업적은 사회심리학 ·인류문화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어떻든 프로이드의 영향은 크며, 특히 무의식계를 깊이 파헤쳐 모든 행동의 동기를 무의식계에서 찾으려는 노력, 꿈에 대한 새로운 해석, 심적 방어(心的防禦)메카니즘, 문화와 예술에 끼친 영향 등을 빼놓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