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심층심리] 술 먹이는 사회

非酒類가 살기 힘든 나라, 술 힘으로 행패 부리는 데는 관대한 나라


李 泓 月刊朝鮮 기자 (hlee@chosun.com) 


<주요내용>

술은 인간이 발명한 最上의 물질

친구․직장동료와 술 마신다

술이 계약보다 더 중요?

이슬람교 술꾼의 괴로운 行步

『술이 없으면 범죄가가 없겠다』



술은 인간이 발명한 最上의 물질


술꾼은 퇴근 무렵만 되면 눈이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한다. 전날 먹은 술로 인해 하루 종일 몸이 좋지 않았고 흐리멍텅한 눈빛으로 지냈어도 이상하게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生氣가 되살아난다. 그리고 주변을 열심히 살핀다. 어쩌다가 전날 저녁 술을 같이 마셨던 건너편 동료와 눈길이 마주치면 은근한 미소를 짓는다. 그 동료가 잔잔한 웃음으로 응답하면 그날 저녁 역시 전날 그 장소에서의 「집합」이 확정된다. 말도 필요없다. 以心傳心으로 모두 끝난다.


그러나 그 동료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갸우뚱하면 술꾼은 갑자기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서랍에서 전화번호가 적힌 수첩을 부리나케 꺼내 여기저기 친구들에게 전화하느라 바빠진다. 갑작스런 전화에도 불구하고 친구가 그의 呼出(호출)에 응하면 술꾼의 얼굴에선 비로소 미소와 안도감이 피어오른다.


술꾼들에게 『왜 술을 먹느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대답은 『글쎄…』다.


「술 먹는 사람치고 핑계 없는 사람 없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막상 「술자리」가 벌어진 이유가 뭔지 물으면 대답이 궁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어차피 진정한 술꾼은 목표를 정해 놓고 마시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첫 잔의 술이 목젖을 타고 내려갈 때의 짜릿한 감촉, 취기가 올라 알딸딸해지며 세상에 무서운 것도 없고 부러운 것도 없는 듯한 만족감, 흐릿한 술집 照明(조명) 아래서 어수선하게 이어지는 말의 향연, 어제도 봤고 오늘도 보면서도 지겹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 친구․직장동료와의 만남 등 「술자리가 주는 분위기」 자체가 목표인 경우가 더 많을 수 있다.


사람들은 술을 왜 마시나.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취한다」는 술의 본질이 飮酒(음주)의 가장 큰 이유라는 데 異意가 있을 수 없다.


취하면서 나타나는 술의 갖가지 오묘한 작용은 모두 「에틸 알코올」 성분 때문에 이뤄진다. 「CH₃CH₂OH」라는 화학 구조를 갖고 있는 에틸 알코올은 일종의 幻覺(환각)작용을 하는 물질이다.


술이 人類史를 통해 끊이지 않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술에 포함된 에틸 알코올이 인간이 발견한 것 중 가장 작용시간이 긴 환각물질이란 점 때문이다. 비록 환각의 효과는 마약보다 훨씬 작지만 그 효과는 적어도 5~6시간 지속된다. 이는 필로폰 등 마약의 효과 지속시간이 불과 몇 분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긴 것이다.


술은 음주자가 원하는 감정을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작용의 유연성」을 지녔다.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마약류 중 필로폰은 아주 고조된 감정을 촉발하고 아편은 한없이 나른하게 해 世上 萬事를 잊게 하는 효과를 지녔다. 이에 비해 술은 마시는 사람이 원하는 감정의 방향으로 자유롭게 작용한다. 즐겁기 위해서 마실 때는 즐거운 마음을, 슬픈 연민의 情이 필요할 때는 그런 마음의 상태를 만들어 준다.


술은 다른 환각물질보다 신체에 대한 폐해가 훨씬 적다. 오랜 기간 술을 많이 마시면 분명히 몸에 탈이 난다. 그러나 마약류처럼 효과가 즉시 나타나면서 엄청나게 몸을 상하게 하는 것과 비교하면 술의 폐해는 상대적으로 적다.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이 원하는 기분 상태를 유지해 주면서, 상대적으로 몸에 대한 피해를 적게 주는 不可思議(불가사의)한 물질이 바로 술이다.


일단 술 마시는 버릇을 가진 사람은 점차 술에 대한 의존성이 높아진다. 술을 마신 후 기분이 좋았다든지 또는 스트레스를 풀었다든지 하는 긍정적 효과를 본 사람은 그 좋았던 기억을 술을 통해 다시 되살리고 싶어한다. 술에는 耐性(내성)이 있다.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선 종전보다 더 먹어야 한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술에 접근했지만 점차 술고래가 돼가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일단 술에 빠진 상습적 음주자가 술을 먹지 않으면 禁斷 증세가 생긴다. 결국 마약과 다를 바 없는 중독물질인 것이다. 그러기에 술에 대한 경고가 끊임없이 나온다.


술이 사람의 몸에 들어와 작용하는 메커니즘은 복잡하다. 에틸 알코올은 물에 잘 녹아 음주 후에는 위장관에서 흡수돼 혈관을 통해 뇌와 간 등 신체 각 조직으로 전달된다. 특히 간에 운반된 알코올은 「알코올 脫수소효소(ADH)」에 의해 산화돼 아세트 알데히드로 변모하고 이것은 다시 「알데히드 脫수소효소(ALDH)」에 의해 식초산으로 변한다.


이 식초산은 신체의 각 조직으로 운반돼 代謝(대사:묵은 것이 없어지고 새것이 다시 생김) 과정을 거치면서 아세틸(CoA)로 변모하고 이것이 다시 이산화탄소(CO₂)와 물로 변한다. 간에서 대사하지 않은 알코올은 피 속에 남아 있다가 호흡이나 피부, 오줌을 통해 몸 밖으로 배출된다.


술은 일단 알코올 형태로 몸 속에 들어오지만 온갖 作用을 끝낸 후에는 공기(이산화탄소)와 물로 변해 몸을 빠져나가는 것이다.


술이 갖는 갖가지 효능은 사람들을 기쁘게, 슬프게, 흥분되게, 관대하게, 대담하게,난폭하게 하는 등 오만 가지 변신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효능으로 인해 술이 역사의 흐름을 바꾼 것도 적지 않다.


옐친의 배짱도 사실은 술 기운 때문


1991년 러시아 軍部의 일부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당시 모스크바 시장이었던 옐친은 국회의사당 앞에 포진한 탱크 위에 올라 쿠데타의 不當性을 질타하며 獅子吼(사자후)를 터뜨렸다. 군인들은 그의 대담무쌍한 행동에 주춤해졌고 결국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다.


당시 옐친은 보드카에 만취한 상태였다. 그는 원래 대담한 인물이다. 그러나 생명을 보장할 수 없는 쿠데타의 와중에서 그 같은 용기를 보인 것은 술기운에 기인한 바 크다는 지적이 나중에 나왔다. 술이 갖는 효능 중 「행동화」가 역사를 바꾼 것이다.


중국에서 秦나라 붕괴 후 패권을 놓고 겨룬 項羽(항우)와 劉邦(유방)은 鴻門(홍문)에서 잔치를 벌인 적이 있다. 項羽는 鴻門 會同 당시 주도권을 잡고 있었고 초대받은 劉邦을 죽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項羽는 책사 范增(범증)의 간언에도 불구하고 劉邦을 살려 보냈다. 술은 그에게 느긋함과 관대함을 자아내며 냉정한 이성을 마비시킨 것이다. 역사는 그 순간의 판단이 項羽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잘 보여 주고 있다.


오늘도 우리 주변에선 술이 넘쳐 흐른다. 샹들리에가 휘황찬란한 룸살롱에서, 고기 굽는 음식점에서, 포장마차에서, 야유회에서, 시골 논두렁길에서 그리고 가정집의 식탁에서도 술병은 뒹굴고 있다. 유흥가부터 주택가 골목까지 술의 사정권에서 벗어난 곳은 별로 없다.


한국의 밤거리처럼 술의 觸手(촉수)가 광범위하게 더듬고 있는 나라는 드물다. 약간의 취기에 기분좋게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밤거리를 휘청거리며 누비고 각종 사고를 일으키다 경찰서 신세를 지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게 우리의 풍토다. 심지어 검찰의 검사장급 인사가 대낮에 폭탄주를 먹고 말을 잘못해 옷을 벗는 사건이 나올 정도다.


한국인은 과연 술을 많이 마시는 걸까. 각종 통계치를 보면 한국인의 술실력이 세계 수준급인 것은 사실이다.


한국인 술소비 세계 상위권


1998년 네덜란드 증류주생산국이 발표한 「나라별 一人當 알코올 음료 소비 통계」에선 룩셈부르크(13.3ℓ)-포르투갈(11.2ℓ)-프랑스(10.8ℓ)-아일랜드(10.8ℓ)-독일(10.6ℓ)順으로 술고래 랭킹이 나와 있다. 이들 뒤를 체코(10.2ℓ)-스페인(10.1ℓ)-덴마크(9.5ℓ)-루마니아(9.5ℓ)-헝가리(9.4ℓ)가 잇고 있다.


이 통계에는 한국이 포함돼 있지 않다. 1998년 당시 한국 주류공업협회가 계산한 한국의 一人當 알코올 소비량은 10.06ℓ였는데 이 통계 자료에 대입하면 한국은 7위 스페인과 8위 덴마크의 사이에 있음을 알 수 있다(술 소비 통계는 순수한 알코올로 환산해 계산한다. 예를 들어 22도짜리 소주를 1000ml 마셨다면 알코올 220ml를 소비한 것이 된다. 이는 술마다 도수가 틀려 소비 기준을 잡기 애매하기 때문에 나온 조치다).


또 다른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순위는 껑충 뛴다. 1996년 세계보건기구가 발표한 「15세 이상 인구 一人當 순수 알코올 소비량 국제비교」에 따르면 한국은 슬로베니아(15.15ℓ)에 이어 14.40ℓ로 당당 2위로 올라선다.


이같이 조사마다 결과가 달리 나타나는 것은 조사 연령층이 다르고 소비량에 대한 검증이 정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를 비롯한 東유럽권 국가는 술을 엄청 먹지만 정밀한 통계가 나와 있지 않아 술고래 랭킹을 확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한국은 어떤 조사에서건 세계 상위권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의 趙聖基(조성기․48경제학) 박사는 『현재 각국의 술소비 통계는 정밀하게 분석할 수 없는 상태』라면서 『실제로 세계서 국민 일인당 술을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는 東유럽의 슬로베니아로 알려져 있으며, 東유럽권 나라의 소비 통계가 정확히 밝혀지면 술고래 랭킹은 크게 변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얼마 전 주류공업협회는 2001년 한 해 동안 한국의 20세 이상 성인(男女 포함3400만명)들이 一人當 맥주 118병, 소주 82병, 위스키 1.7병씩을 소비했다고 발표했다. 이것을 순수한 알코올 소비량으로 환산하면 대충 10.2ℓ정도 된다. 전체 소비량은 소주의 경우 27억9100만 병(2홉들이 기준), 맥주는 40억1387만 병(500ml 기준), 위스키는 5742만 병(500ml 기준)을 기록했다. 이 통계에는 해외여행자들이 갖고 들어온 수입 주류와 軍納用(군납용) 술이 포함되지 않았다.


순수한 술값으로 15조원 썼다


2000년도 국내 술 생산액은 5조8460억원이었고, 2001년에는 약 6조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액수는 공장도 가격이기 때문에 실제로 술꾼들이 쓴 금액은 훨씬 더 많다. 술 중에서 약 30%는 소비자가 직접 슈퍼마켓 등에서 구입하고 나머지 70%는 각종 술집에서 판매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추정이다. 술집에서의 술값은 千差萬別이긴 하지만 전문가들은 출고가의 세 배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이런 추정을 근거로 환산하면 지난해에 대충 15조원 정도가 소비자들의 주머니에서 나갔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국내 총생산(GDP)의 2.7% 정도에 해당한다. 게다가 술 먹을 때 다양한 안주와 식사를 곁들인다는 점을 고려하면 술과 관련돼 우리 술꾼들이 지불하는 액수는 어마어마하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추정하기조차 쉽지 않다.


이 정도 소비량이면 한국이 세계 상위권에 진입하는 것은 必然이다. 문제는 한국이나 東유럽권은 폭발적으로 술 소비가 늘고 있는 반면 미국이나 西유럽 국가는 이미 술 소비의 頂點을 넘어서서 하향세로 접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趙聖基 박사는 이런 현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술 소비량은 국민소득 수준과 술의 음료화라는 두 가지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 현재 술 소비 랭킹 상위권에 있는 나라는 대부분 잘사는 나라다.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맥주와 포도주를 常用하는지 여부도 술 소비량을 좌우한다.


문화인류학적으로 사람은 여유가 생기면 술-섹스-도박 순으로 돈을 쓰게 된다고 한다. 술도 여유가 있어야 마신다는 얘기인데 한국의 술 소비 증가도 결국 경제성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미국, 영국 등 西歐 선진국의 술 소비량이 下向勢로 돌아섰고 술에 대한 경각심이 거세지고 있음에도 국내에서 계속 소비량이 크게 늘고 있는 것은 그동안 술에 관한 한 局外者이던 여성들이 최근 경제력을 확보하며 술 마시는 데 가세한 탓도 있다』


한국인은 왜 술을 많이 마시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 先祖들도 술과 인연이 많았던 모양이다. 중국의 역사책인 「三國志 魏志東夷傳」(위지동이전)에는 우리 先祖들이 飮酒歌舞(음주가무)를 즐기는 민족이란 표현이 있다.


그러나 한국이 술과 관련돼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20여 년 전부터다. 한국의 一人當 年間 술 소비량은 1950년대에 불과 1ℓ수준(알코올 기준)이다가 최근 10ℓ를 넘어섰는데 이것은 세계적으로 보기드문 急成長 사례이다. 과거에도 술을 많이 마신 것 같지만 사실은 돈이 적어 세계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던 것이다. 세계보건기구 등 건강에 관련된 국제단체들은 한국의 사례를 특이한 것으로 보면서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친구․직장동료와 술 마신다


술자리 문화는 국민의 기질과 그 나라의 사회․경제․문화적 배경을 그대로 반영한다. 술은 곧 인간 本然의 자세를 확실히 보여 주는 매개체인 만큼 그 사회의 모든 것을 투영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가 전국의 18세 이상 男女 45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인의 음주실태」에 따르면 우리의 술 행태가 잘 드러난다.


이 조사에선 한국인 남자 중 88.7%, 여자 71.6%가 현재 술을 마시고 있으며 전체로선 80.15%가 꾸준히 술과 접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음주 빈도에선 1주일에 한 번이 33.8%, 1주일에 2~3회가 16.6%, 1주일에 4회 이상이 12.3%를 차지, 한국인 세 명 중 두 명 꼴로 1주일에 한 번 이상은 꼭 술을 먹는다는 결론이 나왔다.


평소 酒量에 대해선 소주 기준으로 남자는 1~2병이 56%를 차지해 상당히 많은 양을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고, 여자는 1~2잔이 55.9%를 차지했다.


「같이 술 마시는 사람」에 대한 조사에서 응답자 중 44.7%가 「학교동창이나 친구」라고 응답하고 직장동료(18.7%), 가족(18.0%)이 그 뒤를 이었다. 특히 남자는 반 수가 넘는 50.5%가 학교동창․친구라고 밝히고 그 뒤를 직장동료(26.4%)가 차지했다.


月 평균 술값은 남자 13만1900원, 여자 3만1400원으로 전체 평균 8만7000원씩을 쓰고 있고 특히 직업별로는 전문직 22만8900원, 고위공직자․관리자 19만3800원, 기술직 14만1700원의 순으로 나타났다.


술을 마시는 이유는 다양하다. 복수 응답이 가능한 이 조사에서 한국 남자는 사회 모임(51.4%), 집안 모임(39.3%), 직장 회식(33.3%), 개인적인 스트레스(32.7%), 갑자기 아는 사람을 만나고 싶을 때(19.0%), 어려운 일이 해결됐을 때(18.8%), 직장에서의 스트레스(18.8%), 하는 일이 잘 안 풀릴 때(17.0%), 접대를 위해(15.5%), 식사時 반주(15.5%) 등의 이유로 술을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를 종합해 보면 한국 남자의 평균적인 술 마시는 스타일은 「1주일에 한 번 이상, 각종 모임이나 회식을 위해, 친구나 직장동료와 함께, 매번 소주 1병 이상을 마시고, 월 평균 13만여 원의 술값을 지출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집단 음주가 한국인의 특징


이 결론에서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현상은 각종 모임, 직장 회식, 접대,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 등 對酌(대작)이 가능한 자리가 많다는 점이다. 西歐人들은 술집에는 가되 개인의 편의에 따라 혼자 술 마시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는 술을 반드시 다른 사람과 같이 마셔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다. 이 점은 韓-中-日 동양 3國들에게 공통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특히 한국 사람들에게 이런 의식이 강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서울대 심리학과 崔仁哲(최인철․38) 교수는 『한국인은 전형적인 집단 음주 형태를 보인다』면서 『한국인은 과거 農耕(농경)민족으로 분류됐고, 농경민족은 사회 구성원 간의 협동이 절대로 필요하기 때문에 집단 음주가 보편화된 것 같다』고 말한다.


崔교수는 『한국을 비롯 러시아, 아일랜드 등이 세계적으로 술을 많이 마시는 나라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은 모두 情을 기본적 정서로 깔고 있으면서도 사회적 규범이 대단히 엄격한 나라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면서 『술이 이런 엄격한 규범에서 벗어나고 공동체 의식을 고양하는 데 매개체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농경 사회에서 같은 집단 내부 사람들 간에는 血盟 같은 철저한 동료의식이 성립하지만 대신 외부 집단에 대해선 거부감이 크다』고 밝히고 『한국인이 사람들과 對酌하는 술자리를 즐기는 것 같지만 실지로는 극히 소수의 주변 사람들하고만 긴밀하게 술을 마시고, 제3자와의 관계는 대단히 냉랭한 자세를 보이는 「끼리끼리 스타일」이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술이 집단을 묶어 주는 기능에 대해 그는 『미국 대학 사회는 술에 대해 엄격하지만 일부 상류층 자제들이 주로 어울리는 프래터니티 같은 동아리에선 단합을 도모한다는 명목 아래 술을 굉장히 많이 마신다』면서 『술이 인간관계의 긴장감을 풀어 주고 동지적 유대감을 유발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건 公認되고 있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자존심은 세면서 의존심은 큰 기질


「狂氣의 사회사」, 「아들과 아버지」 등의 저서를 갖고 있고 현재 술 문제에 관련된 책을 집필하고 있는 정신과 의사 金泳辰(김영진․49대전 중앙신경정신과 원장) 박사도 한국인의 음주행태가 집단적임을 인정한다. 그는 또 한국인이 술을 많이 마시는 氣質的 요인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의 특이한 心性 중 하나가 사소한 것에 기분이 상하거나 기분이 좋아지는 등 감정의 振幅(진폭)이 큰 것이다. 이는 자존심은 강하면서 상대적으로 의존심도 크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핑계가 없어서 술을 못 마신다」는 말이 있는데 한국인은 기분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언제나 술 마실 이유를 찾는다.


감정의 변화가 많고 의존심이 많은 사람은 억울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의식이 강해 속상한 일이 많아진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나르시즘(자기도취)에 빠지는 경우가 많아 역시 상처받기 쉽다.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는 사람일수록 술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정신의학계에서 인정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一體化에 큰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어떤 캠페인이 시작되면 국민들은 그 방향으로 일사불란하게 좇아가는 경향이 강하다. 술자리에서도 역시 비슷하다. 일단 술을 같이 먹으면 모두 취할 만큼 먹어야 유쾌한 자리라는 게 우리의 常識이다.


만일 어떤 사람 혼자 맨 정신으로 있으면서 주변을 살피면 좋은 술자리였다는 同感을 얻어내기 힘들어지고 그 사람은 다음에 따돌려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술을 잘 먹고 못 먹고 간에 모두 같이 취해야 한다. 우리 술자리가 어려운 것은 一體化라는 지향 목표를 위해 개인의 술실력(酒量)이 무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술을 많이 마시면 실수가 나오게 마련이다. 술 많이 마시는 것 자체는 개인의 건강 문제로만 국한되지만 술로 인해 벌어지는 각종 후유증은 집단의 관계에 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이런 후유증에 대단히 관대하고 관대하다 보니 술을 더 마시는 순환현상이 나타난다.


한국 사회에서 술 문제를 관대하게 대하는 현상에 대해 崔仁哲 교수는 『규범이 엄한 사회에선 개인의 의사를 밝힌다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 의견을 명료하게 밝히는 것이 일종의 용기로 인식되는 분위기다. 이런 경우 술기운을 빌릴 수밖에 없는데 우리는 그런 태도를 인간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이런 방식이 거듭되다 보면 사회 전반에 술로 인한 후유증을 관용하는 분위기가 정착하게 된다』고 말한다.



술이 계약보다 더 중요?


고려대 사회학과 金文朝(김문조․53) 교수는 『情과 義理를 가장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인식하고 있는 사회에선 인간관계를 술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계약 관계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는 西歐人과는 달리 인간관계서 일 처리의 출발점을 삼는 우리로선 술의 후유증을 어쩔 수 없는 必要惡으로 생각하며 관용적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보다 본질적으로 한국인의 체질이 술에 맞지 않는 데도 술을 과용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나온 현상이란 지적도 있다.


金泳辰 박사는 『한국인 등 東아시아권 인종들은 아세트 알데히드를 代謝하는 효소가 西歐人보다 적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사실상 술을 많이 마실 수 있는 체질이 아닌데도 우리는 사회적 훈련에 의해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술이 맞지 않으면 갖가지 후유증이 나올 수 있는데 결국 이런 경우가 많다 보니 관용의 자세를 가졌는지도 모른다』는 견해를 밝힌다.


우리 술자리 문화가 다른 나라와 차이가 나는 점이 몇 가지 있다. 즉 「잔 돌리기」와 좌석배치다. 술은 원래 자신의 잔으로 계속 먹는 것이 대부분 나라의 通例고 한국처럼 잔을 돌리는 문화는 거의 보기 힘들다. 西洋圈은 물론이고 東洋圈에서도 일본과 중국은 상대 잔이 비었을 때 술을 더 따라 주는 첨잔 형식을 취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침이 마르지 않은 잔을 상대에게 돌리며 「인간적 유대감」을 과시한다. 이런 현상은 분명 가까운 동료의식의 발현으로 술자리의 분위기를 따뜻하게 하는 데 상당히 기여를 한다.


한국인의 술잔 돌리기를 에로스적 표현의 일종이라는 독특한 해석을 하는 사람도 있다. 金泳辰 박사는 『남자와 남자 간의 友情도 그 심층에는 에로스的 정서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있다. 한국 사회는 同性愛에 대단한 거부감을 보이는 분위기인데 술잔 돌리기는 무의식중에 그런 同性愛的 深層심리가 표현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 유행되고 있는 폭탄주도 역시 잔 돌리기 문화의 소산이다. 폭탄주는 우리만의 독특한 주법은 아니다. 맥주에 위스키를 섞어 제조하는 폭탄주는 미국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도 나온다. 독일에서도 맥주와 스납스라는 독주를 섞어 마시는 酒法이 있다.


그러나 한국의 폭탄주는 그 제조법이 다양해 일종의 엔터테인먼트(여흥거리)가 되고 있을 뿐 아니라 잔 돌리기의 변형된 형태로서 술자리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해왔다.


얼마 전 인터컨티넨탈 호텔 沈載赫(심재혁․59) 사장은 한양대 국제관광대학원 최고 엔터테인먼트 과정을 수료하면서 「폭탄주에 관한 소고」라는 보고서로 최우수상을 받았다.


폭탄주의 장점 아홉 가지


沈사장은 보고서에서 폭탄주를 마시는 이유를 아홉 가지나 거론하고 있다.


『술자리를 빨리 끝낼 수 있어 경제적이고, 알코올 도수를 10도로 낮춰 건강용이며, 한 사람에게 몰리는 잔을 모두가 돌려 마심으로써 공평한 주법이고, 폭탄주 제조에 참석자의 신경을 집중시켜 단합에 좋고, 조직 간의 화합을 유도해 주며, 술에 약한 사람을 보호해 주는 약자를 위한 술이며, 氣 싸움을 벌이는 데 유리하고, 만드는 것 자체가 볼거리를 제공해 주며, 사교감과 친밀감을 높여 주는 분위기 메이커가 바로 폭탄주다』


우리의 술자리 좌석배치는 단순히 이뤄지지 않는다. 특히 직장의 會食이나 비즈니스와 관련된 술자리에선 구성원의 位相과 서로간의 관계가 좌석배치에 묻어난다. 모든 사람이 순회하면서 술을 마시는 서양식 칵테일 파티에선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묘한 인간관계를 터득할 수 있는 게 우리의 술자리다.


방석을 깔고 자리에 앉는 것이 대부분인 우리 술자리에선 직장 상관 등 座長格(좌장격) 인물이 중심에 앉게 된다. 그리고 座長의 총애를 받는 사람들이 至近거리에 포진한다. 자연히 座長은 그들과의 대화 기회가 많게 되고 돌리는 술잔도 그들에게 집중된다.


座長과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거나 그에게 찍힌 인물들은 술자리의 외곽에 모이게 된다. 술자리 참석자는 누가 얘기를 하지 않아도 자신의 位相을 스스로 체크하고 알아서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만일 이런 관계를 무시한 좌석배치가 이뤄지면 술자리는 서먹서먹해진다. 심리적 거리감이 있는 부하가 가까이 앉게 되면 上司는 불안해진다. 「이 사람이 술 마시고 나한테 할 얘기가 있나, 오늘 조심해야겠는데…」라는 생각을 속으로 하며 긴장한다. 경계심이 있다 보니 자연히 술도 적게 먹게 되고 흥이 나지 않게 된다.


本意 아니게 거북한 상관 근처에 앉게 된 부하직원은 더 불안하다.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내내 불편해 하고 다음에 그런 자리가 마련되면 처음부터 먼 거리의 자리를 自請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인의 술 마시는 풍토 중 특이한 것으로 꼽히는 게 버려지는 술이 많다는 점이다. 사실 술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날 때 보면 많은 술들이 병에 그냥 남아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어떻게 보면 한국인들의 낭비벽을 보여 주는 것 같기도 하고 일면으로는 아직도 우리의 술값이 지나치게 싼 것이 아니냐는 생각도 갖게 한다.


음주문화연구센터의 趙聖基 박사는 『이런 현상은 외국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것』이라면서 『이렇게 버려지는 술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이 점을 염두에 둔다면 한국인의 술실력이 과연 세계 상위권에 드는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라고 말한다.


이외에도 우리 사회서 나오는 다양한 술문화 풍토에 대해 金泳辰 박사와 一問一答을 통해 알아봤다.


―술 마시는 사람들의 기질상 분류가 가능한가.


『나는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들을 성공한 나르시스트(자기도취자), 불운한 나르시스트, 불완전한 완벽주의자, 病的인 음주자 등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성공한 나르시스트는 기고만장하고 큰 소리를 치면서 술자리서 王노릇을 하려고 한다. 술값도 반드시 자신이 내야 하며 술자리 이후도 자신이 주도하려 한다. 보통 때는 잘 안 마시다가도 일단 발동이 걸리면 暴飮을 한다. 러시아의 옐친처럼 인생살이서 큰 성공을 거뒀으면서도 대단한 술꾼인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유형이다.


불운한 나르시스트는 자존심은 강하고 민감한데 인생서 성공하지 못한 유형이다. 이들은 우울한 채 친구 없이 혼자 마시게 된다. 자존심이 상해서 술을 마시는데 주변 사람이 자신을 위로해 주지 않으면 기분이 더 상하기 때문에 對酌하는 술자리를 기피하게 된다.


불완전한 완벽주의자는 평상시 능력을 대단히 발휘하다가도 어느 순간 지치면 술을 며칠간 마시며 침몰하는 유형이다. 완벽주의를 추구하다 보니 스스로 자신을 혹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이런 유형이 된다.


病的인 음주자는 불안한 인격을 갖고 있어 수시로 발작이 일어나고 사람에 대한 愛憎(애증)이 너무 강해 갈피를 못 잡는 스타일이다. 지향 목표가 흔들리고 사람과의 심리적 거리가 커 매일 폭음하게 된다.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소외당했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며 세상에 대한 원한이 많은 사람들이다』


술 마시는 사람치고 악한 사람 없다


―「술 마시는 사람 치고 악한 사람 없다」는 표현이 있는데.


『일부는 맞다.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은 의존심이 강하고 情的인 사람이 많다. 요즘도 우리 시골에선 술 마시다가 주변에 아는 사람이 지나가면 술 한잔 하자며 끄는 경우가 종종 있다. 情에 굶주리지 않으면 자발적으로 돈을 내면서 초대할 리가 없다. 인간관계의 심리적 거리가 먼 사람은 이런 것이 불가능하다.


술자리에 대한 초청은 「나에게 공감해 달라」는 의사표시이며, 그 자리에 대한 참여는 「너와 공감할 준비가 돼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一體感을 맛보려고 만든 자리에서 술자리가 길어지다 보면 이해관계가 표출되면서 싸움이 일어나는 수가 있다』


―우리 술자리에서 뒤끝이 좋지 않은 경우가 자주 나오는데.


『술의 효능에 「액팅 아웃(행동의 표출화)」이 있다. 우리는 남들 앞에 당당히 나서서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는 氣質이라 술기운을 빌려 자신의 속내를 표출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주변에 「名節 뒤끝이 안 좋다」는 말이 있다. 명절에 식구들이 모처럼 모이지만 며칠간 술자리가 이어지다 보면 그동안 묻어 두었던 「本心」이 터져 나오기 때문에 나온 현상이다.


만일 술이 안 취한 상태서 이같은 本心을 터뜨리는 사람은 정상적이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성격장애자로 인식되기 쉽다. 대신 술 취한 상태서 그런 행동을 했다면 우리 사회는 너그럽게 인정해 준다. 한국인의 음주 동기 중 중요한 것이 바로 「행동화」이다』


―직장에서의 술자리는 어떤 기능을 하나.


『직장 동료, 선후배와의 술자리는 단순히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차원을 떠나 情報 교류의 무대이기도 하다. 능력 있는 상관은 이 자리를 통해 부하들의 신상을 파악하고 장악력도 확보할 수 있다. 합리적인 上司가 있는 직장은 술자리가 불필요한 긴장을 없애고 順機能을 하며 단합에 좋은 역활을 한다. 반면 上司에 문제가 있으면 술자리는 서로에게 피곤한 행사가 되고 편가르기의 무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金日成은 술로 부하를 장악했다


―소위 英雄豪傑(영웅호걸)은 酒色에 강하다는 표현이 있는데.


『상당히 一理가 있는 얘기다. 특히 경직돼 있는 사회에선 리더가 술좌석을 장악할 능력이 있어야 카리스마를 확보하기 쉽다. 북한에서 金日成이 술로 부하들을 잡았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625 전쟁 당시 북한이 팽덕회 등이 지휘하는 中共軍과 견고한 유대관계를 유지한 이유 중의 하나가 金日成이 中共軍 지휘부를 압도할 정도로 술실력이 대단했다는 점이 지적된다.


豪傑에 대한 韓․中 양국의 인식이 비슷하고 金日成은 그것을 잘 이용한 것이다. 원시사회서도 리더는 싸움 잘하고 술 잘 마시고 섹스를 잘해야 인정받았다. 반면 합리적인 사회에선 이런 분위기가 현저히 퇴색된다』


사회생활의 다양한 관계가 대부분 술을 연결고리로 해서 이뤄지는 한국 사회에서 술 안 마시는 사람의 인생살이는 고달프기 그지 없다. 술을 못 마시거나 불가피하게 끊게 된 사람은 여러 면에서 불이익을 당한다. 자신이 술을 마시지 못하면 하다 못해 「술상무」라도 帶同해야 예의인 게 한국 풍토다.


지금은 해외를 전전하는 浪人이 돼 버렸지만 예전에 大宇그룹을 이끌던 金宇中 회장은 술을 입에 대지 않으면서 사업을 하느라고 고생을 많이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金회장은 술을 마시지 않지만 술자리를 꾸준히 지켰고 상대 기분도 잘 맞췄다고 한다.


그러나 술을 안 마시면서 술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큰 고문 중의 하나다. 애초부터 술을 먹지 않아 제3자들로부터 「非酒類(비주류)」로 판정받은 사람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술을 먹다가 끊게 된 사람은 고통이 더 크다.


1999년 年末에 망년회를 마치고 歸家하다가 돌발 사고로 머리를 다쳐 술을 끊게 된 회사원 金모씨(46)의 얘기를 들어본다.


『술 좋아하던 사람이 술을 끊게 됐을 경우 제일 먼저 고민하는 게 모이는 자리에 참석해야 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다. 처음엔 그냥 참석해 봤다. 그러나 공통의 화제에 낄 수 없고 예전에 그냥 무심코 넘어갔던 다른 사람의 횡설수설이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술 마신 사람의 특징은 한 얘기를 수도 없이 반복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서서히 對人기피증 같은 것이 나타난다.


술자리 모임과 거리를 두다 보면 점점 조직에서의 끈이 끊어지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대화의 기회가 줄어드니 동료․선후배들와 거리가 멀어지고 시선이 차츰 따갑게 느껴진다. 직장內는 물론 외부와의 거래도 원만하게 처리되지 않는다.


집안에서도 문제가 생긴다. 집사람은 「술 끊으면 돈 안 벌어다 줘도 좋다」고 할 정도였으나 막상 술 안 마시고 매일 일찍 집으로 들어가니 트러블이 자주 생겼다. 애들조차 술 안 마신 아버지가 거북한 모양이다. 家長이 집안의 화제 중심권에서 벗어나는 인상이 들었다.


이보다 더 괴로운 것은 남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것이다. 퇴근 후 시간이 모두 나의 몫이 됐지만 텔레비전 보는 것 외에 새로운 할 거리가 없으니 정신적 방황이 야기되는 것 같다. 술 안 마시려면 반드시 시간을 활용할 代案이 있어야 한다』



이슬람교 술꾼의 괴로운 行步


외국의 술문화는 한국과 어떤 차이가 날까. 미국은 세계서 가장 자유를 구가하는 나라로 꼽히지만 술에 관한 한 세계서 가장 엄격한 규제를 하는 나라다. 지난해 초 부시 대통령의 대학생 딸이 음주연령(21세 이상)에 미달했는 데도 술집에 드나들었다고 경찰에 적발된 적이 있다. 미국은 강력한 「알코올 액트(술 관련 법)」를 통해 술 파는 장소, 시간, 대상 등을 엄격하게 규제한다.


유럽권은 미국보다는 비교적 관대한 편이다. 영국은 음주연령이 15세로 낮은 편이며 프랑스, 독일같이 포도주나 맥주를 음료로 常飮하는 나라에선 술에 관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구태여 차이를 구별해 보면 新敎계열 국가가 가톨릭 계열 국가보다 술에 대해선 비교적 엄격한 편이다. 대체로 전통이 있는 나라는 술에 대해 관대한 편이고 미국처럼 新生국가는 술을 엄격히 다루는 편이다. 전통이란 뒷배경이 없는 나라는 체제를 유지시킬 수 있는 힘이 규율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슬람圈에선 술에 상당한 규제를 가하지만 이곳 역시 술꾼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외국의 술문화를 많이 섭렵한 趙聖基 박사의 말이다.


『몇 년 전 이란에서 세미나를 마치고 귀국할 때의 일이다. 이슬람권 출신 회의 참석자 중 일부는 비행기가 이륙하기 무섭게 스튜어디스에게 술을 찾았다. 그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미친 듯이 마셨다. 승무원에게 술 심부름을 너무 시켜 미안했는지 나중에는 나에게 대신 술을 시켜달라고 할 정도였다. 엄한 종교의 규제도 술에 대한 집착은 막지 못하는 모양이다』


西유럽에선 주정 부리는 사람 용서 안 해


그렇다면 외국인의 한국 술문화에 대한 인식은 어떨까.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들은 대부분 술자리에서 가장 큰 문화 차이를 느낀다. 술자리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하면 그 외국인은 거의 한국인이 돼 간다고 보면 된다. 한국에서 20년 이상 머물렀고 한국인으로 歸化한 지 16년째인 독일계 이참(49참스마트 대표)씨에게 이모저모를 물어봤다. 이참씨는 얼마 전까지 「이한우」라는 이름으로 매스컴에 자주 오르내렸던 인물이다.


―술을 잘 마시나.


『나도 술에 관한 한 지고 싶지 않고 별로 져 보지도 않았다. 아마 덩치가 크기 때문에 주량이 센 편인 것 같다. 그러나 40代 후반이 되니 요즘은 한번 세게 술을 마시면 2, 3일 간 고생한다. 요즘은 순전히 맛 위주로 먹는다』


―독일인도 술을 많이 마시는가.


『독일인의 1인당 연간 맥주 소비량은 160ℓ가 넘는 걸로 알고 있다. 독일 사람에게 맥주는 술이라기보다 음료다. 꾸준히 마시지만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것은 아니다』


―韓․獨 兩國 술꾼들의 차이는.


『독일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半 취하는 것은 낭비니까 완전히 취할 때까지 마시자」. 한국의 술꾼들은 이것을 진짜 실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국 술꾼들이 다음날 멀쩡하게 출근해 일하는 게 신기하다. 독일의 진짜 술꾼은 생활 자체가 엉망진창이 된 알코올 중독자인 경우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선 취한 상태서의 행동을 눈 감아 주는 경우가 많지만 독일 등 西유럽에선 술에 취해 매너 없이 행동하는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 술 마시고 자신을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은 문제 인물이라고 판단해 아주 냉정하게 대한다』


―독일 술자리는 어떤 특색이 있나.


『한국에선 술자리가 직장 중심으로 이뤄지지만 독일선 집 주변서 술 마시는 경우가 많다. 대개 자신의 집 근처에 단골 술집이 있고 단골 테이블도 있다. 퇴근 후 술집에 가면 대개 동네 이웃인 같은 멤버들이 모이게 된다. 술 마시고 카드놀이하고 담소하면서 즐기지만 상대방의 가족까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술자리에서의 화제에 차이가 있나.


『독일서의 술자리는 상대에게 기대하는 것 없이 그냥 즐기며 편안하자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나 한국에선 술자리에 이해 관계가 많이 작용하는 것 같다. 비즈니스 관계뿐 아니라 직장 사람 간의 만남도 목적이 있는 경우가 많다는 인상을 받는다』


『룸살롱 문화는 문제가 많다』


―한국 술자리 문화에서 특히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게 뭔가.


『룸살롱 문화다. 룸살롱은 비쌀 뿐 아니라 운영방식도 문제다. 사실 한국을 처음 찾는 사람은 룸살롱에 가서 아가씨들의 대접을 받으며 폭탄주를 먹을 때 다들 재미있어 한다. 분명 외국서는 보지 못한 특이한 술자리 문화다.


평상시에 보수적이고 점잖은 사람도 이런 자리에선 자신을 풀어놓고 신나게 노는 게 재미있다. 그러나 이것도 몇 번 하면 질려 버린다. 자신을 풀어놓았던 그 점잖은 사람들도 다음날에는 다시 예전의 그로 돌아간다. 술 마실 때와 마시고 난 후 완전히 사람이 다른 것이다. 그런 경우 외국인들은 피곤해 한다. 술자리서 나온 말이나 행동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며 술자리에 대한 관심을 잃게 된다.


게다가 여자 종업원에 대한 민망스런 행동들은 西歐人의 거부반응을 일으키기 쉽다. 이런 不感症이 술집에서 끝나면 괜찮지만 점차 사회 전반에 퍼지게 되는 것이 문제다』


술 많이 마시는 것이 「사내다움」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시절도 있었다. 요즘은 그런 인식은 많이 탈색했고 오히려 여성들이 술무대의 주역으로 서서히 등장하고 있는 추세다. 한국 음주 실태조사에서도 여성 중 70% 정도가 술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전체 소비량에서도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급속히 늘고 있다. 이는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여성들의 술무대 진출은 아직도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임신중인 여성이 술을 마실 경우 기형아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든지 체질적으로 술이 여성에게 맞지 않는다는 부정적 표현이 적지 않다. 그러나 여성은 평균적으로 남성보다 체격이 작기 때문에 술을 적게 먹을 뿐이지 여성이 체질적으로 술을 못 마시는 것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근 여성들의 음주가 급속히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 金泳辰 박사는 이렇게 해석한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소외되는 여성이 크게 는다. 남성의 술자리가 끼리끼리 모여 對酌인 경우가 많지만 여성의 술자리는 고독한 自酌인 경우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남편들이 술 마시는 것을 줄이고 자신의 집안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술문화 개선에 앞장선 대학생들


술에 젖어 휘청거리는 모습은 전염되게 마련이다. 술은 성인 사회만 아니라 대학, 고교 등 학생들까지 오염시키고 있다. 특히 대학은 공부하는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성인 사회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술에 절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신입생 환영회부터 각종 동아리의 MT, 축제, 개인적 만남 등에서 술은 대학 사회에 필수가 되고 있다. 게다가 公私가 구분 안 되는 우리 사회 분위기 때문에 캠퍼스 내에서도 술잔이 오가는 모습이 자주 연출되는 등 심각성을 지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최근 들어서는 이런 분위기를 극복하려는 自省의 소리가 힘을 얻어 가고 있다. 대학 교수 중심으로 「한국 대학생 알코올 문제 예방협회(일명 박커스 코리아)」가 1997년 결성돼 활동의 폭을 넓혀가고 있고 대학생들도 스스로 「박커스 캠퍼스 클럽(BCC)」을 만들어 대학 내 自淨에 나서고 있다.


金冠佑(25홍익대 컴퓨터 공학과 3년) BCC 회장을 만나 활동 상황을 들어봤다.


―클럽의 목표가 뭔가.


『우리는 술을 완전히 끊는 것을 목표로 하진 않는다. 술을 적정량 마시고 건전한 술자리를 유지하는 것을 指向한다』


―왜 이런 단체를 만들었나.


『우리 사회 전반에 술로 인한 폐해가 확산되고 있고 대학 역시 비슷한 분위기를 보여 주기 때문에 이를 개선해 보자는 생각을 가진 학생들이 최근 늘고 있다』


―회원은 어느 정도 되나.


『전국적으로 약 380여 명으로 절반 이상이 여학생들이다. 현재 중앙대, 충북대 등 4개 대학에선 동아리를 결성한 상태이고 경북지역에는 지역 본부를 두고 있다. 일 년에 두 번의 연수과정을 통해 리더를 양성하고 이들이 학생들을 상대로 활동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대학 사회의 술문화가 그렇게 심각한 수준인가.


『매년 대학 新入生 환영회 때 몇 명의 사망자가 나온다. 술을 먹지 못하는 사람에게 强勸(강권)하기 때문에 나온 사고다. 친구들끼리 만나도 특별히 할 게 없으니 술집으로 직행하는 경우가 많다. 술로 인해 몸 버리고 시간 버리는 게 너무 안타깝다. 그러나 최근 들어 대학 사회도 차츰 술문화가 변모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선 신입생 환영회 때 나오는 사발식(술을 사발에 따라 마시는 의식)이 점차 줄어들고 있고 술자리를 가급적 피하려는 학생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학생들이 만나면 술집으로 가는 이유는 뭔가.


『代案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운동이나 레크리에이션을 할 만한 장소도 없고 문화도 없다. 그러다 보니 술 마시고 노래방 가는 것 외에는 할 게 없다』


―학생들의 용돈 중 술값 비중은 어느 정도 되나.


『용돈 중 태반이 술값으로 들어간다. 대신 친구들끼리 나눠내는 편이라 여러 번 먹을 수 있다』


―회원이 아닌 주변 친구들의 반응은 어떤가.


『처음에는 엉뚱한 짓을 한다며 거부반응을 보이는 친구가 많았다. 그러나 우리의 의지와 목표가 점차 알려지면서 是非거는 친구들은 거의 없다』


―本人의 酒量은 어느 정도인가.


『소주 반 병 정도다. 신입생 때 MT 갔다가 소주 세 병을 억지로 먹고 거의 死境을 헤맨 적이 있다. 그러나 요즘은 내 주량 대로만 먹고 그 이후는 물이나 콜라를 먹으며 어울린다. 주변에는 선배들이 먹으란다고 아직도 무작정 먹어대는 친구들이 있는데 이제는 그것을 극복할 때다. 대학생 모두가 술에 대해 「세이 노(Say No아니라고 말하는 것)」라고 할 때가 빨리 와야 한다』



『술이 없으면 범죄가가 없겠다』


한밤중에 경찰서 유치장을 가보면 온갖 추태가 연출된다. 술 마시고 치고 받다가 들어온 사람, 술이 안 깬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사람, 無錢取食(무전취식)으로 들어온 사람,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내고 잡혀온 사람 등 술과 관련돼 들어온 경우가 태반이다. 「대한민국에 술이 없으면 범죄자가 없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실지로 국내서 일어나는 범죄 중 30% 이상이 술과 관련이 있고 특히 폭력사건은 60% 이상이 술의 후유증으로 일어난다는 통계가 있다. 술과 범죄의 상관관계는 각국에서 공히 인정되고 있고 그 때문에 술로 인한 범죄를 엄히 다스리려는 것이 외국의 추세다. 그러나 한국에선 여전히 술 마신 후의 탈선적 행동에 관대한 편이고 술로 인한 사고는 늘고 있는 실정이다.


술의 후유증은 이걸로 끝나지 않는다. 술이 가진 毒性은 건강뿐 아니라 정신까지 갉아 먹어 廢人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에서도 알코올 중독자 문제가 점차 중요한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엔 알코올 중독자에 대한 시설도 별로 없을 뿐 아니라 관계당국의 관심도 미미해 알코올 중독자들이 버젓이 우리 주변을 배회하는 게 현실이다. 현재의 우리 현황과 알코올 중독의 문제점에 대해서 국립 서울정신병원 吳東烈(오동렬․48) 정신위생과장에게 들어봤다.


―알코올 중독 환자의 기준은.


『술을 마시고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一次的인 기준이다. 친구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관심을 잃고 술만 탐닉하면서 손떨림 등 禁斷(금단) 증세가 나타나면 환자라고 봐야 한다. 이런 기준에 해당하는 사람은 國內에도 수백만 명에 이른다. 그러나 병원에 입원시킬 때는 좀더 엄격한 진단기준을 적용해 이 중 여러 항목을 충족시키면 환자로 분류한다』


―현재 국내 치료 현황은.


『국내 30여 개 정신병원에서 정신병 환자와 알코올-마약 중독 환자를 같이 치료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립 서울정신병원의 경우 950개 병상 중 80개를 중독환자용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 중 70개는 알코올 중독, 10개는 마약 및 도박 중독 환자에게 배정하고 있다』


인구 중 1%는 알코올 중독 환자


―입원중인 환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국내 알코올 중독 환자들은 자신이 간이나 위가 나쁘다고 생각할 뿐 정신과적 치료를 받을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알코올 중독자들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면 대부분 「내가 왜 정신병자냐」면서 강하게 반발한다.


실제로 치료 기관을 찾는 사람은 중독자 중 3% 정도에 불과하다. 중독 환자 중 30%는 내과 치료에만 매달리고 있고, 30~40%는 교도소 등 다른 보호시설에 수용돼 있다는 통계가 있다』


―알코올 중독과 정신병의 차이는 뭔가.


『정신병은 대개 사람의 뇌 등 내부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반면 중독현상은 중독을 일으키는 물질이 외부에서 투입돼 가만있으면 멀쩡했을 사람이 망가지는 경우다. 때문에 정신병은 초기부터 정신과적 치료에 들어가지만 중독환자에 대해선 간기능 정상화 등 내과적 치료가 先行된다』


―스스로 찾아오는 경우도 있나.


『알코올 중독 현상이 심해지면 幻視(환시)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특히 술기운이 떨어질 때 이런 현상이 잘 나타나는데 그 중 중요한 것이 「진전성 섬망」이란 현상이다. 이는 몸 속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허연 도깨비가 자신에게 몰려오는 듯한 착각도 일으킨다. 밖에서 누가 부르는 것 같은 幻聽(환청) 현상이나 밤에 정신없이 길거리를 헤매는 현상도 자주 일어난다. 이런 현상이 나오면 환자도 심각성을 인식하고 자발적으로 병원에 찾아오게 된다』


―국내 관련 기관의 관심은 어느 수준인가.


『문제의 심각성을 잘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정밀 치료를 반드시 받아야 할 알코올 중독자 수는 인구의 1% 정도로 어느 나라고 비슷하다. 이는 국내에 적어도 40만 명 이상이 치료 대상이란 계산인데 실제로 정신병원 등에 수용되는 사람은 3000여 명에 불과하다』


―중독자가 사회에 방치됐을 때 나올 문제점은 뭔가.


『알코올 중독자는 혼자 술 마시고 기운이 빠진 상태에서 조용히 있는 경우가 많아 제3자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경우는 드물다. 대신 외부에 노출되지 않은 채 자신의 몸에 타격을 줘 죽음을 재촉하는 一面이 있다』


알코올 중독은 마음 약한 사람이 걸려


―환자 치료는 어떻게 하나.


『치료는 解毒(해독)과 정신과적 치료 단계를 거친다. 알코올 중독 환자에게서 술을 떼면 금단 증상이 일어난다. 이런 때 「리브리움」이란 약을 투입하면 불안감을 덜어 주면서 쉽게 술을 끊게 된다.


다음에는 認知 행동에 따른 정신 치료를 한다. 사람마다 술 마시는 패러다임(행동양식)이 다르다. 기쁠 때 마시는 사람도 있고 슬플 때 마시는 사람도 있다. 이런 유형마다 처방을 달리하고 술과의 거리를 멀리하는 교육을 집중적으로 시킨다』


―알코올 중독은 완치가 가능한가.


『그렇다. 교과서적으로 보면 환자가 1년 간 술을 먹지 않으면 완치된 걸로 본다. 그러나 이게 쉽지 않고 지속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에도 환자였던 사람들이 「금주동맹」 같은 단체를 만들어 서로 격려하며 지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처럼 상호 이해 겸 감시 형태로 생활화하는 게 상당히 유용하다』


―환자들은 어떤 유형의 사람들인가.


『유전적 素因(소인)도 있다. 부모가 환자일 경우 자식이 환자가 될 확률은 일반인보다 네 배나 높다는 통계가 있다. 환자들 중엔 의존심이 강하고 마음이 약한 사람이 많다. 남 앞에서 말을 못 하는 등 對人관계가 취약한 사람이거나 어린 시절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은 사람이 많다. 결국 마음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술에 의존하고 결국 헤어나지 못한 경우인 것이다』


―왜 술 취한 도중에 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현상(일명 필름 끊기기)이 나타나나.


『소위 「필름이 끊겼다」고 하는 현상은 알코올에 의해 뇌세포가 타격을 받아 치매 비슷한 망각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의 뇌에는 「해마」라는 기억을 관장하는 반달 모양의 기관이 있다. 이 해마에 알코올이 심한 자극을 주게 되면 기억장치가 손상을 받게 된다.


해마는 타격을 받은 초창기에는 일시적으로 기능을 멈추지만 잦은 폭음으로 계속 타격을 받아 기능이 완전히 손상되면 술만 들어오면 무조건 기능을 멈춰버리게 된다. 즉 필름이 끊기는 것이 아니라 아예 필름이 없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술 없는 곳이 天國은 아니다


만일 술이 없다면? 술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갖가지 악영향을 생각한다면 「아예 술을 없애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말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세계서 유일하게 禁酒法(금주법)을 실행에 옮겨본 나라다. 19세기 말부터 기독교계의 禁酒 주장을 일부 州가 수용한 후 점차 분위기가 확산돼더니 급기야 1920년에는 전국적인 禁酒法을 제정해 10년 넘게 운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禁酒法은 미국 사회에 더 큰 후유증만 남긴 채 실패로 끝났다. 술만한 위안거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密酒에 매달리게 됐고 결국 「禁酒法 위반자」라는 수많은 犯法者만 양산한 것이다. 마피아같은 범죄집단은 이 기회를 이용해 급속히 세력을 신장해 나갔다. 은밀하게 술이 제조되고 검증 없이 유통되다 보니 형편없는 質의 술이 판을 쳤고 그 여파로 많은 사람들이 몸을 상해 사망률도 높아졌다.


술이 없으면 天國이 구현될 것이라는 당초의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술이 있을 때보다 더 못한 「암흑의 나라」가 돼버린 것이다. 1932년 禁酒法을 정부가 공식적으로 폐기 선언하는 날 많은 미국인들이 植民 상태에서 독립을 얻은 것처럼 거리로 뛰쳐나와 만세를 불렀다는 사실은 「술이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보여 주기에 충분하다.


풍선을 누르면 압력을 받지 않은 부분에서 다시 튀어 나온다. 인간의 욕망도 누르면 다른 식으로 분출될 수밖에 없다. 술취한 사회보다 술 없는 사회가 도덕적 우위에 선다는 것을 인정할 수는 있어도 인간은 도덕만 먹고 살 수는 없는 존재다. 어떤 때는 제 정신을 차리고 매진하다가도 어떤 때는 술에 취해 늘어져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인간 본연의 자세인지도 모른다. 도덕적 규범이 가장 요구되는 가톨릭 司祭들에게 결혼을 금지하는 대신 술과 담배를 허용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술이 연출하는 드라마는 아마도 인류가 운명을 다할 때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월간조선 2002.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