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영의 경제학] 도박과 복권의 오류

 

“인생은 노름, 노름은 인생”, 한번의 대박을 꿈꾸며 일생을 노름판 에서 보낸 ‘노름꾼’의 푸념이다. 그는 노름을 끊겠다는 맹세를 수 없이 되풀이한다. 그리고는 심지어 맹세를 어길 때마다 손가락을 한 마디씩 잘라나간다. 하나, 둘… 오른 손을 모두 잘라버렸지만, 그래도 노름의 중독에서 벗어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는 알고 있었다.

왼손잡이였던 아버지도 노름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는 사실을. 그에게 손가락을 자르는 것은 하나의 상징에 불과했던 것이다. 성석제의 소설 ‘꽃 피우는 시간-노름하는 인간’에 나오는 ‘노름꾼’의 삶이 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도박사나 그 노름꾼이나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속성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국제신문(2002.4.12)에서 일부 인용)

요즘에도 복권이나 경륜, 카지노 등 새로운 형태의 도박이 대중적이고 공공연한 사회적 관행으로 자리잡고 있다.
기분전환을 위해 오락 으로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생계수단으로 선택하는 전문 도박사도 있고, ‘도박꾼’같은 노이로제성 도박사도 많이 늘고 있다고 한다. 한번 빠져들면 헤어나기 힘든 ‘도박성’이 누구에게나 잠재돼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단지 ‘도박성’의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리라.

복권을 사고 카지노에 빠지는 것도 일종의 경제적 선택임에 틀림없다 . 같은 선택을 놓고도 어떤 이는 충분히 대박의 승산이 있다고 믿고, 자신의 기술을 과신하며 중독에 빠져든다. 되풀이할수록 대박의 승산 이 높아진다고 믿는 것이다. 반대로 아무리 계산해도 합리적인 기준으로는 도저히 “그 곳에 갈 수 없다”고 믿는 사람도 많다. 두 사람 의 차이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지난 회에 연재한 복권 100장을 다시 상기해 보자. 오로지 1명만이 1 00만원을 탈 수 있고, 나머지는 모두 허탕이라 하자. 기대값은 당연 히 1만원에 불과하다. 공정한 복표(福票) 사업자가 관리한다면, 1만 원씩을 주고 판매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업비도 나오지 않는 ‘공 정한 수준’이 된다. 이 복권을 1만원에 판매할 때, 세 사람의 유형 이 등장한다.

대박을 기다리며 당연히 1만원을 더 주고라도 적극 구 매하는 위험선호적(risk-loving)인 성격이 있는가 하면, 1만원 미만 이라도 사지 않겠다는 위험회피적(risk-averse)인 인물도 등장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서 사도 그만, 안 사도 그만인 사람은 위험중립 적(risk-neutral)이라 볼 수 있다. 위험을 대하는 태도가 어떤가에 따라 복표 수요가 결정되는 것이다. 실제로 복권은 확률은 낮지만, 혹시 당첨될지도 모른다는 요행 때문에 기대값은 높아진다. 따라서 모험적인 행태가 복권과 도박을 즐기는 셈이다.

위험을 선호하는 수요자가 많다면 복권값이 비싸도 잘 팔릴 것이다. 반대로 위험을 회피하는 소비자로부터는 사업자가 자금을 모으기 어 려워진다. 그렇다면 위험에 대한 세가지 유형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 개인의 소득과 재산의 정도, 연령에 따라 위험을 대하는 태도가 크 게 달라진다. 대체로 소득수준이 높아질수록 위험회피적인 특성이 많 이 나타나고, 소득수준이 낮아질수록 위험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난 다. 20∼30대에는 위험을 선호하고, 40대 이후에는 대박을 기다리는 사람이 적어진다. 이것은 복권이나 도박의 주고객이 누가 될 것인지 를 잘 설명해준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도박을 하는 주된 이유가 바로 “도박 그 자체가 하고 싶기 때문”이라 했다. “나는 결코 돈에 대한 탐욕 때문에 도 박에 빠진 것은 아니다. 도박, 그 자체에 걸려든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가진 모든 것을 잃을 때까지 도박을 했다. 이렇게 보면 위험을 즐기는 성향을 재산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할 것 같다.

정갑영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동서문제연구원장 jeongky@yonsei.ac .kr

매경ECONOMY 2002년 06월 0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