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 '중독자'들 잇단 호소 -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마약보다 무섭습니다. 경마장은 아예 발을 들여 놓아선 안될 곳이예요.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마사회 홈페이지에 ‘단경마’(斷競馬)의 피끓는 의지를 올린 어떤 경마중독자의 사연이 보도된 그 날(본보 8월26일자 31면 참조), 신문사로 한통의 전화가 왔다.

자신 또한 경마중독자라고 밝힌 이 남자는 “본전 생각에 폐인이 됐던 기사 속 주인공 얘기가 바로 내 얘기 같다”며 “뒤늦게 결단을 내렸다니 다행이지만 과연 그 사람이 정말 경마를 끊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누가 나 좀 살려달라”는 절박한 목소리로 사연을 털어 놨다.

그는 10여년 전 어느날 친구들 따라 경마장에 놀러 간 것이 나락으로 빠진 시작이었다.     베팅 요령 조차 잘 몰랐던 생초보는 1만원 베팅이 88배의고배당에 적중하는 황홀한 경험을 했다. 그러나 짜릿한 그 ‘맛’이 한번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할 수렁이 될 줄이야.

경마란 십중팔구 딸 수 없는 게임. 매주 경마장에 ‘출근’하게 된 그에게 뻔한 수순이 기다리고 있었다. 잃는 날이 잦아지고, ‘한방 터지겠지’하며 베팅액은 날로 커지고…그 만큼 더 잃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간혹 따는 날에도 술 한잔 질펀하게 먹으면 남는 돈이 없었다.

크게 잃고 경마장을 나서며 ‘이젠 정말 그만해야지’ 다짐한 것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경마끊는 것은 마약끊기 보다 어렵다던가. 독한 다짐은 매번 주말만 되면 자취를 감추고 발길은 경마장을 향했다. 그렇게 10여년 ‘베팅인생’을 살았다.

그 사이 정신은 피폐해지고 집안 살림은 황폐해졌다. 아파트 한 채와 가게를 날렸고, 그럭저럭 장사로 버는 돈까지 쏟아 부었다. 10억원 가까운액수다. 무엇보다 괴로운 건 경마중독을 가족들에 숨긴 죄책감이다. ‘장사가 안된다’ ‘믿는 사람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부인과 두 아들을 속여온 것이다.

전세를 사는 그는 최근 7, 8월 두 달 동안 야간경마에 경륜, 경정까지 ‘주5일 베팅’에 1,500만원을 날렸다. 생계수단인 화물차를 담보로 사채를빌리고, 아내의 카드(본인은 신용불량자)로 ‘카드깡’을 했으며, 친목계에서 융통을 했다. 그럭저럭 장사가 되지만 이자 갚을 일이 걱정이라고 했다. 더 이상 경마를 해서도 안되고, 할 수도 없는 형편이지만 주머니에 돈몇 푼 생기면 당장 이번 주말 어떻게 될지 확신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경마장엔 나 같은 사람이 숱해요. 정말 피를 서서히 말려 죽이는 지옥입니다. 경마 끊는 모임 같은 게 있으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참여하고 싶어요”

경마라는 합법적인 ‘마약’을 공급하는 주체는 바로 국가다. 건전 경마 의미명에 가려진 이런 중독자들을 위한 배려가 절실하다. 비록 ‘병주고 약주고’가 되겠지만.

김후영 기자 hykim@dailysports.co.kr

일간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