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덫' 인터넷 채팅

  

22일 오후 7시30분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의 한 사무실. K씨(41)는 시계를 보곤 얼른 컴퓨터 앞에 앉아 N채팅사이트에 접속한다.

여성접속자를 둘러보다 '서울. 기혼. 165㎝. 프리랜서'에 눈이 머문다. 얼른 쪽지를 보낸다. "저랑 대화하실래요?" 쉽게 답변이 온다. "그러죠." 기자와 K씨(ID의 이니셜)는 이렇게 만났다.

요즘 중년 남녀들의 손가락이 바쁘다. 채팅이 중년층의 은밀한 만남의 다리가 된 것은 오래전의 일. 그러나 이제 '건전한 대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질펀한 야담과 간접 성행위, 원나잇스탠드(하룻밤 만남)의 장으로 전락해 가고 있다.

또 가출과 이혼, 사기와 성폭행 등 채팅으로 빚어지는 일탈과 범죄도 하루가 멀다하고 빈발한다. 알코올중독보다 더 무섭다는 채팅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봤다.

 

#솔직히 '하러' 왔어요

K씨는 다짜고짜 "야한 얘기 좋아해요?"라고 물었다. 그가 접속한 목적은 단 하나, 폰섹스다. 야한 대화로 분위기를 띄운 다음 전화로 섹스를 나누는 것이 순서. "전화로 감이 오느냐?"고 묻자 "오르가슴을 느끼는 여성도 있다"고 장담했다.

그가 털어 놓은 '사무직 주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깊은 밤 사무실에 홀로 남은 30대 주부와 황홀한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앞면이 가려진 책상에 몸을 숨기고 노팬티 차림으로 그와 폰섹스를 나눴다고 한다.

차라리 화상 채팅을 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고 하자 "솔직히 나이가 드니까 화상은 부담스럽고 말로 다할 수 있는 폰섹이 낫다"고 했다. "부인 놔두고 굳이 폰섹을 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집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쾌감이 있다"며 "그런 얘기 꺼내려면 여기 들어오지 말라"고 '경고'했다.

 

#사는 게 잼 없어서

서울 수유리의 또다른 40대 남성 M. 그는 처음부터 집요하게 위치를 물었다. 광화문이라고 하자 "비원 앞 A모텔에서 만나자"고 제의했다. "그냥 술이나 한잔 하자"고 하자 "술 마실 시간이 아깝다"고 말했다. 조건은 신상에 관한 질문은 NO. 그리고 룸에서 만나 룸에서 헤어져야 한다고 했다.

기자가 미적거리자 "안 내키면 빨리 대답하라"고 독촉했다. 퇴근하기 전에 빨리 파트너를 물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밝힌 채팅의 동기는 단순했다. "일상이 잼(재미) 없어서." 하루 종일 퇴근시간만 기다린다는 그는 "이번주는 계속 땡치네"라며 채팅 방을 먼저 나갔다.

 

#남편은 방조자?

S채팅 사이트에 '주부방'을 개설해 놓고 채팅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부탁했다. 대전의 30대 주부는 들어오자마자 "왜 주부들만 갖고 그러느냐"고 따졌다. "남편은 퇴근하고 들어오면 말 한마디 안하고 TV 앞에 배 깔고 누워 있는데 무슨 대화를 하라는 거냐"는 것이다.

요즘 아내의 채팅 중독 때문에 고민하는 남자들이 많다고 하자 "집나갈 여자들은 채팅 아니라도 나간다"며 "하긴 채팅을 하다보면 '∼님'이라고 불리며 내 생각이 존중받는 느낌이 들어 좋다"고 말했다.

울산의 20대 주부는 "번개 약속을 하다보면 이상하게 설렌다"며 "남편이 출근한 낮시간에 아파트 근처에서 남자를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또 "주부들은 순수한 감정으로 이성친구를 찾는 반면에 남성들은 섹스 파트너를 찾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욕망의 하수구

현재 집계된 채팅 서비스 사이트는 무려 1,500여개. 이중 중년들이 주로 찾는 채팅 사이트는 'S' 'N' 'D' 등이며 화상채팅사이트 'O' 등이 있다. 중년들의 채팅 중독이 특히 심각한 이유는 이것이 가정파괴나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채팅에 빠져 살림을 등한시하거나 남자를 찾아 가출하는 '주부 채팅'의 폐해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실제로 '한국남성의전화'(02-2652-0456)나 '인터넷중독예방센터'(www.internetaddiction.or.kr) 등에는 아내의 채팅 중독을 호소하는 남편들의 상담이 줄을 잇고 있다.

또 채팅에서 만난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이를 빌미삼아 돈을 뜯기는 사건과 채팅 중독 아내를 살해하는 강력사건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어느새 중년들의 욕망의 하수구로 변한 채팅의 심각성을 가정과 사회가 동시에 주목할 때다.

 

심정미 기자 simstar@hot.co.kr

굿데이 2003년 05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