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신문, 연예인 피랍 사건 보도, 선정성 극에 달해


지난 6월1일 밤 11시, 호텔 주차장에서 자기 차 문을 열던 연예인 A씨는 흉기를 들이민 괴한에게 납치되었다. 자기 차에 갇힌 그녀는 6시간 동안 납치범에게 끌려다녔다. 그녀에게서 신용카드를 빼앗은 납치범은 현금자동지급기를 통해 1백60만원을 인출했다. 다음날 새벽 5시, 범인에게 5천만원을 주기로 약속하고서야 A씨는 겨우 풀려났다.

납치범에게서 풀려난 A씨는 지인을 통해 피랍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다. A씨를 풀어준 이후에도 계속 전화를 걸어 돈을 요구하던 납치범은 발신자 추적 장치를 이용한 경찰에 덜미가 잡혀 6월4일 검거되었다. 그러나 A양은 새로운 고통이 시작되었다. 이 사건이 보도되기 시작한 것이다.

스포츠 신문들은 A씨 납치 사건을 연일 대서 특필했다. 납치 경위에서 차량의 내부 구조까지 상세하게 보도했다. 특히 납치범이 A씨의 나체 사진을 찍었다는 소문이 돌자 스포츠신문들은 관련 보도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나체 사진은 어디에…’(<스포츠 투데이>) ‘나체 사진 찾아라, 007 작전’(<굿데이>) ‘용의자, ‘돈줄’ 알몸 사진 못준다’(<스포츠 서울>). 나체 사진과 관련한 온갖 억측이 여과 없이 보도되었다. <스포츠 조선>의 경우 같은 기사에서 ‘경찰이 누드 사진을 찾아내기 위해 총력을 쏟고 있다’ ‘(경찰은) 언론에 보도된 누드 사진 등에 대해서도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며 상반된 보도를 내보내기도 했다. 나체 사진의 존재 유무에 관심이 모아지면서 사진의 행방을 알 수 있는 인물로 지목된 범인 여자 친구의 일거수일투족이 보도되기도 했다.

선정적인 기사를 내보내던 스포츠 신문들은 A씨가 피해 사실을 부정하고 인터뷰에 응하지 않자 점점 공격적인 보도 태도를 취했다. 범죄 피해자인 A씨를 스포츠 신문들은 마치 스캔들의 당사자라도 되는 것처럼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범죄 피해자인 A씨는 호기심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피해자를 범죄인처럼 묘사하며 ‘작문’

스포츠 신문들은 A씨를 마치 범죄인처럼 묘사했다. ‘납치 소동 A양 태연하게 방송 출연…’ ‘당당한 그녀’(<스포츠 조선>). A씨가 기자들을 피해 다니는 모습도 다분히 부정적으로 묘사했다. ‘A양이 방송 스케줄을 예정대로 모두 소화해 내고 있다. 지난 7일 한 공중파 방송의 녹화를 마쳤다. 녹화는 오후 4시부터였지만 취재진을 피해 낮 12시부터 대기실에 몸을 숨기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굿데이>). 심지어 A씨의 사치를 문제 삼기도 했다. ‘도난 BMW서 고가 목걸이·모자 발견. 피의자 김모씨 추가 압수 수색 과정에서 연예인 A양의 소지품으로 보이는 여자용 목걸이와 고가의 모자가 발견돼 주목을 끌고 있다’(<스포츠 투데이>).

스포츠 신문들은 납치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던 남성 연예인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기사를 쓰기도 했다. ‘남자 친구로 지목된 연극 배우 겸 탤런트 박모씨와 A양의 관계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굿데이>) ‘최초 신고 P와 어떤 사이. 한때 같은 소속사…사건엔 모르쇠 일관’(<스포츠 투데이>).

이처럼 A양에 대해 냉정했던 스포츠 신문들은 충실한 취재원이 되어준 범인에게는 상대적으로 ‘따뜻한 시선’을 유지했다. ‘납치범의 인간 고백, A양은 바보처럼 순진했다’(<굿데이>) ‘측근에 따르면 ‘이러다가는 더 이상 생명을 부지하기도 힘들겠다’는 생각에 김씨가 범행을 결심하게 되었다’(<스포츠 조선>) ‘환각 상태에서 깨어난 김씨는 악성 빈혈과 위출혈 등 지병으로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겪고 있으며 체포 이후 한 끼도 먹지 못했다’(<일간 스포츠>).

사건 발생 이후 스포츠 신문들은 A씨에게 사건의 당사자임을 밝히라고 기사를 통해 요구했다. ‘전말이 명확하지 않을 경우 언론의 속보가 끝없이 이어지는 것도 상식이다’(<스포츠 조선>) ‘만약 A양이 사고 직후 사건을 공개하고 수사에 적극 협조했더라면 이 사건을 둘러싼 의혹과 강도는 오히려 약화됐을 것이다’(<스포츠 조선>). 심지어 A씨를 압박하기 위해 네티즌의 목소리를 끌어오기도 했다. ‘<네티즌 반응> 공인답게 사건전모 밝혀라’(<굿데이>).

A씨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자 독자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조금씩 정보를 흘리기도 했다. 어떤 행사에 참여하고 어떤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고 보도해 그녀가 누구인지 쉽게 유추할 수 있도록 도운 것이다. A씨가 직접 나서지 않은 상황에서 스포츠 신문들은 사건과 관련해 갖가지 의혹을 부풀렸다. ‘새벽에 6시간 동안 강도와 한 차에 있었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이상한 상상을 하게 만들 소지가 많다. 신체적으로 불미스러운 일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적지 않은 사람이 의심할 만한 상황이다’(<스포츠 서울>) ‘더 나아가 그보다 더 심한 폭행과 이를 찍어놓은 사진이나 비디오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점을 남긴다’(<스포츠 서울>).

스포츠 신문의 선정적인 보도 경향에 대해 한 스포츠 신문 중견 기자는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 그런 내용이기 때문이다. 독자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조금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 임병국 중재실장은 “알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전제 조건은 그 정보가 독자의 자아 발전이나 자기 실현에 도움이 되거나 건전한 여론을 형성해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연예인 사생활은 알 권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한 선정적인 보도에 대해서 A씨의 매니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지금 2백60개 언론사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 3백개 언론사가 될 때까지 버텨볼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A씨측은 이번 사건 보도와 관련해서 스포츠 신문에 특별한 법적 조처를 취하지 않을 계획이다.

스포츠 신문의 선정적인 보도 행태에 브레이크를 걸고 나선 이는 바로 네티즌들이다. 스포츠 신문의 선정적인 보도에 반대하는 안티 카페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여성 연예인의 섹스 비디오 기사 등 선정적인 기사를 주로 쓰는 스포츠 신문 기자에 대해서는 안티 카페가 만들어져 회원들이 기사를 집중 분석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이번 사건과 관련한 보도에도 기사마다 의견 글을 올려 스포츠 신문의 선정적인 보도 행태를 질타했다.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시사저널 20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