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이혼 시대’ 한국의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
 

기혼자 가운데 절반 가량이 이혼을 고려한 적이 있고, 성인 남녀 중 60.9%는 ‘언제든 이혼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시사저널>이 가정의 달을 맞아 여론조사를 ..

가족 중에 이혼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콩가루 집안으로 비칠까 염려하는 당신. 애꿎은 친구의 이혼 사연만 늘어놓지 말고, 살짝 이혼한 가족 얘기를 꺼내보라. 잘 사는 줄 알았던 동생이, 혹은 늘그막의 부모님이 이혼을 하겠다고 해서 당황스럽다는 상대의 고백을 쉽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이혼 건수는 총 14만5천여 건. 몇 년 사이 세 배나 폭증한 이혼은 새로운 풍속도를 만들어 내고 있다. 지난 5월5일 서울의 한 대학 운동장. 아이들을 데리고 어린이날 나들이에 나선, 옹기종기 모여앉은 성인 남녀가 눈에 띄었다. 인터넷의 이혼자 카페 회원들이었다. 가슴에는 이름 대신 카페 아이디가 새겨 있다. 이날 행사장에 결혼식을 며칠 앞둔 이 카페의 ‘제3호 재혼 커플’이 나와 분위기는 더욱 활기를 띠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하루 평균 8백40 쌍이 결혼하고, 그 절반인 4백여 쌍이 이혼 도장을 찍었다. 2쌍이 결혼하고 1쌍이 이혼하는 시대. <시사저널>은 가정의 달을 맞아 지난 5월7일 미디어리서치와 함께 전국의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이혼 실태에 관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절반 가량이 ‘2쌍 결혼, 1쌍 이혼’ 실태를 절감하고 있었고, 이에 대한 우려 탓인지 예상보다 보수적인 답변이 많았다. ‘어떤 경우에도 이혼은 안된다’는 비율이 39%였고, ‘배우자가 외도하더라도 가정을 지키려 애쓰겠다’는 응답자도 70%나 되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세대별·성별로 인식 차이가 컸다. 젊은 세대와 여성의 자유로운 사고 방식은 앞으로 가정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예고한다. 20대의 78%는 ‘이혼은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이 불문하고 여성들은 67%가 ‘경우에 따라 이혼할 수 있다’고 답했다. 반면 남성은 54%.

 

이혼 부부 5쌍 가운데 1쌍은 황혼 이혼

젊은 세대의 생각이 그렇다고 해서 최근 급증한 이혼 추세를 그들 탓으로 돌리기도 어렵다. 오히려 이혼을 주도하는 것은 중년 부부이다. 지난해 이혼 가구의 절반은 적어도 10년 이상 살다가 헤어진 부부였다. 15년 이상 살다 헤어진 경우도 30%에 달했다. 결혼한 지 4년 이내에 헤어지는 젊은 부부 비율은 27%로, 10년 전 36%와 비교할 때 비중이 오히려 떨어졌다. 이혼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이상석 변호사는 여성의 의식 변화와 함께 1991년부터 전업 주부에게도 30~40%에 이르는 재산 분할권을 인정한 것이 맞물려 이와 같은 추세가 가속화했다고 분석한다. 몇년 전부터 아예 여성이 먼저 이혼 소송을 거는 비율이 높아져 지난해에는 64%에 달했다.

 

“2008년쯤엔 이혼율 1위 국가 될지도”

여성이 주도하는 이혼 세태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이른바 ‘황혼 이혼’은 말 그대로 폭증세이다. 20년 이상 살다 헤어진 부부를 황혼 이혼으로 볼 때(원래는 50세 이상 부부의 이혼), 10년 전 6%대이던 황혼 이혼율은 지난해 15.7%로 늘었다. 올해는 5쌍 가운데 1쌍이 황혼 이혼을 할 것으로 보인다. 황혼 이혼의 원조 국가인 일본(16.9%, 2000년)마저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추세대로라면 한국이 2008년쯤 미국을 제치고 이혼율 1위에 도달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미국은 1970년대에 이혼이 급증했다가 1980년을 정점으로 하락 추세인 데 반해, 한국은 1990년대 초반부터 가속이 붙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직’ 결혼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번 <시사저널> 조사에서 기혼자 중 절반 가량이 이혼을 고려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남성 45%, 여성54%). 특히 ‘심각하게 고려한 적이 있다’는 응답자는 여성이 3배 이상 많았다(여성 9.2%, 남성 2.9%). 이유는 성격 차이(66%), 배우자 가족과의 불화(14%), 경제적인 이유(11%), 배우자의 부정(3.7%) 순이었다.

특히 배우자 가족과의 불화를 호소한 여성은 설문 조사에 응한 여성 응답자의 18%나 되어 ‘시댁과의 갈등’ 때문에 고민하는 여성이 여전히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처가와의 관계 때문에 이혼을 고려했다는 남성도 8%로 나타나 변한 세태를 엿보게 한다. 워낙 증가세가 가파른 탓인지 황혼 이혼에 대한 인식은 찬반이 팽팽했다. 절반 가량이 ‘이기적인 동기가 많다’고 응답한 것이다(46쪽 상자 기사 참조). 하지만 여기서도 성별에 따라 태도가 갈린다. 남성은 60%가 황혼 이혼이 이기적이라고 답한 반면, 반대로 여성은 59%가 정당하다고 답했다. 또 50대는 70%가 이기적이라고 답했고, 반대로 20대는 70%가 정당하다고 여겼다.

이혼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도 천차만별이었다. ‘얼마나 힘들까 연민을 느끼게 된다’는 반응이 43%로 남녀 모두 가장 흔한 감정이었다. 성별 차이가 두드러진 대목도 있었다. 남성의 30%가 이혼자에 대해 ‘결혼 생활의 실패자라는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된다’고 응답했다. 같은 대답을 한 여성은 그 절반이었다. 이는 이혼 위기를 겪으면서 남성이 훨씬 더 스트레스를 받고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는 정신과 전문의들의 경험을 뒷받침한다. 남성들이 더 이혼자를 야박하게 평가하고, 그 잣대로 스스로를 재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배가되는 것이다.

반대로 이혼에 대한 적극 지지 표시로 볼 수 있는 ‘용기 있다’는 답변에 표를 던진 여성은 22%. 기혼 여성인 가정 주부조차도 5명 가운데 1명은 이혼에 대해 ‘용기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느끼는 남성은 여성의 3분의1에 불과했다.

 

이혼 부부 70%가 자녀 두고 헤어져

현재 이혼 가구의 70%가 미성년 자녀를 두고 있다. 한국인들은 자녀가 있는 부부의 이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자녀를 위해 참고 살아야 한다’는 응답이 59.7%로 대체로 자녀를 중요 변수로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여성들은 자녀가 있는 상태에서도 이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44%로 더 수용적이다. 모성애에 호소해 이혼을 막아보겠다는 생각은 점점 부질없는 것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조사 결과는 많은 이혼 남성이 당혹스러워하는 이유를 짐작케 한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이혼 남성은 대부분 ‘남자로서가 아니라 아빠로서 아내를 용납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스스로 양육을 자청한 경우에도 ‘아이를 달라고 떼쓰지 않는 아내가 이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성들은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고, 또 잘 알아채고 있다. 노인복지관에서 만난 할머니 박 아무개씨의 얘기다. 며느리가 외도한 사실을 알아챈 그녀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앞장서서 아들에게 이혼을 종용했다. 양육 부담은 고스란히 박 할머니의 몫이었다. 얼마 후 박씨의 친구가 같은 일을 호소했다. 박씨는 생각을 바꾸었다. “살다 보면 여자도 바람을 피울 수 있지. 아들 잘 타일러서 며느리 마음 돌리라고 해.”

이번 설문 조사를 통해서 이혼자들의 속내를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응답자 1천명 가운데 이혼자는 고작 12명. 미디어리서치 김지연 부장은 “통계로 볼 때 7% 정도는 이혼자여야 하지만 응답을 회피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 가운데 이혼을 후회한 응답자는 단 한 명이었고, 자녀를 아빠와 엄마가 키우는 경우가 각각 절반이었다. 이들은 양육 문제를 가장 어려워했다.

지난 한 해 동안 가정 해체로 버려진 아이들이 1만2천명에 이르렀다. 이혼의 가장 큰 후유증이기도 하다. 이혼한 부모 손에 자라는 경우에도 어려움이 크다. 죽기 살기로 싸우면서 헤어지는 ‘파괴적인 이혼’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8년 전 아내의 외도로 파경에 이른 회사원 이 아무개씨. 당시 여섯 살, 세 살 자녀가 있었지만 그는 아이를 맡은 전처에게 양육비를 한푼도 주지 않았다. 그는 “자랄 때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재혼한 전처만 생각하면 마음같이 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죄인이다”라고 토로했다.

이혼 후 자녀 양육에 무책임해지는 것에 대해 색다른 해석도 있다. 자녀를 소유물로 여기는 문화가 강한 탓이라는 것이다. 한 남성 이혼자는 “전 배우자로부터 돈을 받으면 아이에 대한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 이 때문에 여성도 먹고 살 수만 있으면 상대의 무관심을 문제 삼지 않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혼 가정의 자녀 문제야말로 부모와 사회가 함께 팔을 걷어붙여야 할 문제라고 지적한다. 보육 시설에 아이를 맡기는 부모를 매도하기보다는 가정에서 키울 수 있도록 지원을 늘리는 일이 더욱 시급하다는 것이다. 부산대 김삼용 교수는 “외국처럼 양육비를 제대로 집행하도록 정부가 나서고, 여의치 않을 경우 보조 혜택도 늘려야 한다”라고 말했다(49쪽 상자 기사 참조).

이혼한 부모들은 자녀들이 비뚤어지지 않을까 가슴을 졸인다. 하지만 정신과 전문의 정성민씨는 “부모가 이혼에 대해 정돈된 태도를 갖고 있으면 얼마든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이혼 가정의 자녀 가운데서도 자녀의 불행이 과장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44쪽 상자 기사 참조). 이혼에 대한 위기감이 널리 퍼지면서 파경 위기에 처한 부부를 돕는 프로그램이 성업 중이다. 하지만 정작 이혼자를 위한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은 그저 ‘이혼하면 안된다’는 목소리에 쫓겨 음지로 숨을 뿐이다.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시사저널 20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