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이 사람들을 처형시킨 이유들

 

자기 의견에 맞지 않으면 화형이었다!


* 어느 출판업자 칼빈을 비난했다고 불타는 쇠꼬쟁이로 혀를 자른 칼빈

칼빈은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에게 참혹한 형벌을 가하였다. ‘술에 취해 칼빈을 욕한 어느 출판업자는 불타는 꼬쟁이로 혀를 찔린 다음 도시(제네바)에서 추방당했다’(Stefan Zweig. op. cit. pp.85,83.)고 전해주고 있다.

물론 이렇게 혀가 잘려 추방당한 사람만이 아니라 이에 상응하는 고문을 당하거나 불구가 되어 자기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한 두 사람이 아니다. 이러한 처벌속에 추방되어 불행한 삶을 산 사람들이 공식적으로만도 78명이다. 모진 핍박을 받고 그 도시를 버리고 빠져나간 사람은 이에 포함되지 않고도 말이다.

계속되는 칼빈의 만행적인 행위이다. 제네바 도시에 교회를 이끄는 목사가 사람들을 불태워 죽이고, 목잘라 죽이는데 이를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가 아닌가?

사람 죽이는 칼빈을 비난했다고 해서 그를 잡아다가 불타는 쇠꼬쟁이로 혀를 자르고 제네바 시에서 추방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며 그리스도의 신앙방식이라는 말인가?

결코 아니다. 우리는 칼빈의 주장이 명백히 성경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가장 성경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고, 칼빈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것이 성경과 교회에서 나온 것이 아님에도 그것이 성경과 교회의 가장 정통적인 것처럼 한 것은 위장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의도가 어디에 있든, 알고 했든 모르고 했든 변명이 될 수는 없다. 이 교활한 위장된 바꿔치기가 엄연한 사기적 행각이라는 것을 간파하지 않으면 안된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만행에 참혹한 피해를 당하고 추방된 사람들이 한 두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칼빈이 도대체 누구이기에, 무슨 권리로 사람 죽이는 칼빈을 비난했다고 해서 사람들의 혀를 자르고, 목을 자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성경을 이용한 악마적 사상가에 지나지 않는다.


* 자기 의견에 맞지 않으면 화형이었다.

역사가들은 칼빈이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죽인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칼빈은 후기 프로테스탄트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뛰어난 조직가였으며 얼마간은 제네바 시를 지배하고 있었다.

칼빈은 매우 배타적인 사람으로서 오직 자기와 의견이 맞지 않는 자유사상가였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사람들을 화형에 처했을 정도였다.’(Jawaharlal Nehru, op. cit. p.71.)라고 증언하였다.

칼빈이 다른 사람을 사형시키는 이유도 결국 자기 자시의 기준에서 어긋나면 사형이었다. ‘오직 자기와 의견이 맞지 않는 자유사상가였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사람들을 화형에 처했을 정도였다.’는 것이 그것을 말해준다.

칼빈과 칼빈주의자들은 분명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속에 그들의 교리라는 것을 이유로 댈 것이다. 그러나 그 교리라는 것이 결국 무엇인가? 우리는 이들이 주장하는 교리라는 것이 과연 무엇이고 그것이 다른 사람의 목숨을 탈취할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가리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그 교리가 자신들은 성경리라고 외치지만 그 실상의 본질을 사실 그대로 드러내 본다면 칼빈의 교리는 절대로 성경이 아닌 허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칼빈과 성경은 결코 동일시 할 수 없고 또한 동일하지도 않다. 그러므로 오직 자기 의견에 맞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들을 죽인 행위는 자기를 절대화 하고 자기를 하나님처럼 위장시킨 칼빈의 자기 착오에서 나온 것으로 그의 살상적 행위들은 그가 살인자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 자신의 신학이론에 반대하는 자를 국사범으로 취급한 칼빈

프랑스 루이 14세는 *「짐은 곧 국가다」라고 하였는데 칼빈을 반대한 사람을 사형에 처하고 칼빈의 가르침에 반하는 자를 국사범으로 취급한 것으로 보아 종교의 위세를 등에 업은 칼빈이야말로 그가 곧 국가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칼빈은 자시의 신학사상을 반대하는 자를 국사범으로 취급하였다.

카스텔리오의 증언에 의하면 ‘루터는 에라스무스가 자시의 예정설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곧바로 그를 이단으로 몰아 세속의 법정에 고소하겠다는 생각은 털끝만큼도 해 본적이 없었다.

그러나 칼빈 자신은 잘못을 범하지 않는다는 망상에 사로 잡혀서 모든 반대자들을 이단으로 여겼다. 자신의 신학이론에 대한 비난은 국사범과 마찬가지로 생각하였다.’(Stefan Zweig. op. cit. p.147.)고 하였다.

도대체, 칼빈은 누구이고 그가 주장하는 예정설이 무엇이기에 그것을 벗어나면 국사범 취급을 당해야만 하고, 그가 믿는다는 예정설의 하나님은 누구이기에 칼빈과 그의 사상에 그러한 절대권위와 권력을 주었다는 말인가?

지금도 그 예정설에 배치되면 소위 이단이 되고 그것을 반대하면 이단이 되는 형편이니 우리는 예정설에 대한 대토론회를 개최하고 그 본질이 무엇인지 그 허상의 내막을 가려내야만 한다.

불행하게도 여기에 대한 단호한 역사적 평가에 대하여 냉정하게 평가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칼빈의 예정설이 성경과 무관한 허구라는 것은 당연히 드러나야만 한다. 그 본질이 가려지면 칼빈이 자신의 예정설에 반대한다고 사람들을 죽인 것이 그리고 국사범으로 몰아 사람들을 고문하고 죽인 행위들은 하나같이 무고한 살인이며 터무니없는 반그리스도적 살상적 행위였다는 사실은 반드시 규명되어야만 한다.


* 두명의 뱃사람이 싸움질을 하였다고 두사람 모두 사형시킨 칼빈

제네바에서 두 사람이 싸움을 하였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상대방을 죽인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모두 사형에 처해졌다. 그 내막인 즉 ‘제네바의 토박이와 이민 온 사람 사이에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고 돌아 맞아 두 사람은 다쳤다.

마침 칼빈은 그런 핑계거리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참이었다. 그 자그마한 난동은 금세 끔찍한 반역행위로 부풀려졌다. 가장 끔찍한 고문으로 쥐어짜낸 폭동 계획에 대한 거짓자백을 근거로, 그리고 꾸며낸 국가 반역을 근로로 형리는 자기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때맞춰 제네바에서 도망치지 못한, 칼빈에게 조금이라도 반대했던 사람들은 모두 처형당했다’(Ibid. p.225.. - 대량살상으로 이어졌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고 증언하였다.

이를 빌미로 대량살상이 이어졌다. 사악한 독재자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이와 같은 행위들의 배경을 보면 무조건 칼빈주의를 비난하고자 함이 아니라 과연 이러한 행위가 과연 성경적 행위인가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판단하고자 하는 것은 소위 성경이라는 근거로 통치를 할 경우 과연 이와 같은 이유들을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준하여 사형에 처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러한 통치행위가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을 받은 사람들의 행위였느냐 하는 것은 심각하게 판단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아닌 이유를 가지고 이러한 행위를 하였다면 그리스도와 성경이 치명적인 권위상실을 가져 올 수밖에 없지 않는가?


* 칼빈이 기타 처형시킨 사람들의 이유들

칼빈은 사람들을 죽인 것을 역사가들은 그 유형을 공통적으로 동일하게 고발하고 있다. 칼빈이 ‘예정설 문제, 성서 권위의 문제, 삼위일체설, 유아세례, 성만찬 등의 해석에서 칼빈과 의견을 달리했기 때문이었다.’(조찬선 op. cit. p.91.) 이와 같은 문제들로 인해 칼빈은 사람들을 죽였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단지 칼빈의 생각이었을 뿐임에도 그것을 벗어나면 칼빈은 칼을 들어 가차없이 사람들의 목을 베고 화형에 처하였던 것이다.

칼빈에게는 종교적인 무제, 정치적인 문제, 도덕적 윤리적인 문제, 사소한 문제까지도 사형의 이유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문제는 아무것도 없다. 그 사례를 모두 수록하여 소개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관례로 말미암아 칼빈의 후예들은 이유 없는 문제들을 빌미삼아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죽인 것을 알 수 있다.


심상용 목사(월드크리스챤성경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