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의의 허구와 기만 1

 

아름다운 꽃이름 뒤에 숨겨져 있는 칼빈주의 5대교리의 허구


* 칼빈주의 5대 교리와 제 영역들과의 관계

I. 칼빈주의 5대 교리 및 사상적 배경

1. 아름다운 꽃이름 뒤에 숨겨져 있는 칼빈주의 5대교리의 허구


(1) 칼빈주의 5대 교리와 예정론과의 관계

칼빈주의의 5대교리는 소위 튜립(TULIP) [Total Depravity(전적타락), Unconditional Election(무조건선택), Limited Atonement(제한속죄), Irresistible Grace(저항할 수 없는 은혜), Perseverance and Preservation(성도의 궁극적 구원과 보호)이라고 하여 매우 아름다운 꽃에 비유한다.

장로교 신학의 특징을 말한다는 예정론에서의 구원론의 핵심이다. 칼빈의 장로교가 구원의 종교인 점을 감안한다면 5대 교리는 칼빈의 장로교리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교리이다.

중요한 사실은 이 교리는 그 자체로 독립하여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5대 교리는 칼빈의 예정교리의 결정체인 것이다.

칼빈주의 5대교리의 근본적인 기초는 무엇인가? 이미 창세 전에 칼빈의 장로교 하나님이 절대주권으로 누구누구를 구원시킬 것인가? 그리고 누구를 버릴 것인가를 불변적으로 확정하였고 결정하였다는 것이다.

거기에 따라 무조건적인 선택, 불가항력적인 견인, 제한적인 구속, 이미 선택하였다는 자들에 대한 궁극적인 견인을 말하고 나머지 하나는 ‘전적인 타락’이 그것이다.


(2) 칼빈주의 5대 교리와 성경과의 관계

칼빈주의의 5대 교리와 예정론의 관계는 닭과 달걀의 관계에 비유될 수 있다. 그만큼 이 양자의 관계는 필연적이고 절대적인 관계이다. 닭이 달걀을 낳듯이 칼빈주의 예정론이 지니는 핵심적인 구원론 사상의 결정체가 다름 아닌 5대 교리이다.

따라서 칼빈의 5대 교리는 칼빈의 예정론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칼빈주의 예정론은 칼빈주의 5대 교리가 존재하는 근거이며 이유이다.

칼빈주의 5대 교리는 칼빈주의 예정론을 말하기 위해서 존재하며 양자의 교리는 공생하고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칼빈주의 5대 교리를 안다는 것은 곧 예정론의 특징을 아는 것이며 5대 교리는 칼빈주의 예정론에 의해서만 이해가 되고 반영된다.

그러므로 칼빈주의 5대 교리의 허구를 알기 위해서는 예정론의 허구를 동시에 다룰 수 밖에 없는 필연성이 따른다. 본 서에서는 그 주제가 칼빈주의 예정론 자체가 아니기에 포괄적인 칼빈주의 예정론을 다루지 않고 다만 5대 교리의 허구를 밝히기 위한 목적에서 최소한의 분량으로 이 예정론의 허구를 다룰 것이다.

칼빈주의자들이 자신들의 5대 교리를 소개할 때의 특징은, 자신들의 예정론에 대한 강조점 보다는 유독 성경을 강조한다. 그들에 의하면, 칼빈주의 5대 교리가 성경의 구원론과 그 배경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칼빈주의 예정론이 가장 유력한 기독교 정통교리라고 하니 이 주장이 어느 정도 사실 같이 받아 들여졌다.

하지만, ‘예’는 ‘예’고 ‘아니오’면 ‘아니오’라고 성경은 말하라고 말하였다. 냉정하게 말해서 칼빈의 5대 교리가 성경이나 아니냐 하는 것에 대한 대답은 칼빈주의 섭리 예정론이 스스로 대답해 줄 것이다.

이를 위해 칼빈주의 5대 교리가 성경이다 라고 외치기 전에 왜 5대 교리가 성경이 아니냐라는 것에 대하여 분명하게 그 허구의 본질과 근원을 근본부터 다루어 나갈 필요가 있다. 가면적으로 드러난 외양만 가지고 그것이 성경이다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오류를 지니고 있는 것이 칼빈주의 5대 교리의 특징이다.

우리는 성경이 아닌 것을 가지고 성경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성경인 것을 성경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도 없다. 달결은 달걀이자 그것이 공룡의 알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닭과 달걀과 공룡과 공룡 알은 엄연히 다른 존재들이다. 닭을 공룡이라고 그리고 달걀을 공룡의 알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일이다.


(3) 닭과 공룡의 구별같이 분명한 칼빈사상의 허구

닭과 공룡의 두 존재를 비교해서 두 존재를 비교 못할 사람이 있겠는가? 이와 마찬가지이다. 칼빈주의 5대 교리가 성경이 아니라는 비교는 닭과 공룡을 비교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칼빈의 5대 교리는 예정론의 5대 교리이지 성경의 교리가 아니다. 본 서는 칼빈의 5대 교리가 왜 성경이 아닌가에 대하여 그 증거를 제시하고 하는 것이 그 목적이며 닭이 왜 공룡이 아닌가를 누구나 말할 수 있듯이 그 증거를 제하고자 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칼빈주의자, 에드윈 H. 팔마는 칼빈주의 5대 교리를 소개하며 ‘칼빈은 단지 성경을 해석했을 뿐 뿐이었다’라고 (「The five points of Calvinism」 Edwin Palmer. 성광문화사 1985. 2. 10. 3판. P.8) 주장한다. 다시말해 자신들의 칼빈주의 5대 교리와 그 배경이 되는 칼빈주의 예정론이 성경을 해석해 놓았다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주장은 지금까지 닭을 공룡으로 말해 왔던 칼빈주의의 섣부른 단정에 불과하다. 이러한 주장은, 과연 칼빈주의 5대 교리와 예정론이 과연 성경을 해석해 놓았느냐 라는 진정한 재평가를 통하여 그 진상이 가려져야만 한다.

지금까지 칼빈주의 4개 교리가 마치 성경의 정통사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세하고 인정한 것은 맹심과 맹종의 결과에서 나온 오류적인 소산이다. 우리는 냉정한 시각을 가지고 이에 대한 허구를 밝혀볼 필요가 있다.


2. 칼빈주의 5대 교리의 배경인 예정론에 대한 전 이해 10가지 특징

칼빈주의 5대 교리의 배경인 요약된 칼빈주의 예정론의 특징 10가지

칼빈주의 5대 교리의 허구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이 5대 교리의 모체인 칼빈주의 예정론을 먼저 알아야 한다.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칼빈주의 예정론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도 전에 손쉽게 그것이 성경이라고 단정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근거들을 아무 비판이나 판단없이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몰이해적이거나, 몰역사적인 편견을 그대로 수용하여 단정해 버린다. 따라서 우리는 칼빈주의가 무엇을 주장하는 가를 끝까지 주시하고 그들이 주장하는 논리적 주장 사이에 어떤 모순과 허구가 존재하는가를 정확하게 규명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먼저 칼빈주의 예정론을 모르고서는 5대 교리를 알 수 없다. 이 예정론의 특징을 제외시켜 놓고 5대 교리를 정확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의미도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막연히 예정론이 성경이라고 단정하기 이전에 먼저 칼빈의 예정론의 원론적 특징을 먼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누가 보아도 완벽한 구조와 설득력 있어 보이는 가면의 특징과 주장들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먼저 칼빈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예정론의 가장 핵심적인 10가지 기본 사상을 소개하고자 한다.


① 칼빈주의 예정론의 기본 원칙 1 : 창세전에 모든 것을 결정했다는 원칙

칼빈주의 5대 교리의 배경인 예정론의 모든 배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결정적인 두가지 요소가 존재한다. 하나는 ‘창세 전’이라는 것이며, 둘째는 그 창세 전에 ‘세상의 전과정에 대한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라는 것이다.

칼빈주의 예정론에서 이 두 요소는 사실상 칼빈주의 전 사상과 교리의 근거를 제공해 주는 모든 근거이며 전부이다. 이 근거를 떠나서는 결코 칼빈주의 5대 교리를 논할 수가 없다. 그 중에서도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이라는 요소가 가장 핵심적인 요체이다.

누가, 어떠한 주장을 내놓는다고 하더라도 칼빈주의 예정론의 확고불변한 기초 한가지는 ‘창세 전에 이루어진 결정’이다. 창세 전에 결정한 결정만이 칼빈의 예정교리의 대전제이다. 칼빈주의 5대 교리의 근거도 전적으로 창세 전에 결정했다는 결정의 기초 위에 세워져 있다.

칼빈주의자들이 또다른 가면적 교리인 타락 후에 선택하였다는 선택론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만약 타락 후에 결정하였다면 그들의 5대 교리는 그 순간에 붕괴되어 진다. 그들이 주장하는 예정론은 창세 전의 결정론이며, 따라서 5대 교리의 배경도 창세 전의 결정론이라는 사실이다.

베자는 ‘신에 영원 전에 일정한 시간이 되면 일어난 모든 것을 결정하였을 때, 그는 동시에 그것이 일어나기를 원하는 방식과 방법도 결정하였다(「Reformierte Dogmtik」 Heinrich Heppe. 크리스챤다이제스트. ‘개혁파정통교의학’ 이정석 옮김. P.222)’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며 본질적으로 필연적인 것들이다(「Concerning The Eternal Predestination of God」John Calvin 기독교문화협회. Op. cit. 1997. 3. 10. p.240)’라고 고백한다.


②칼빈주의 예정론의 기본원칙 2. : 창세전에 결정한 계획과 역사 진행은 완전하게 일치하여 진행된다는 원칙

칼빈주의 예정론의 두번째로 꼽을 수 있는 특징은, 창세 전에 결정한 결정은 막연한 것들이 아니라 역사의 전과정을 계획했다는 것이며 역사는 그 결정한 순서대로 정확하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창세 전에 결정이란 곧 확고불변한 계획이며, 이것이 역사의 근거라는 것이 칼빈주의 예정론의 주장이다. 그래서 예정론은 ‘창세 전에 하나님이 계획하셨다’고 주장한다.

장로교인들의 신앙고백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그 자신의 뜻하신 바 가장 지혜롭고 거룩하신 계획에 의하여, 장차 있을 모든 일을 자유롭고 변치않게 작정하셨다(「The Westminster Confession」 Chapter3:1)’고 한다.

이러한 근거 위에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신앙관의 특징은 ‘하나님의 섭리가 인간의 모든 계획과 행위 위에 있다는 것이며 그는 한 사람의 행동까지 그의 섭리의 도구로 이용하셔서 그가 작정하신 바 심판을 수행케 하신다(「The Theology of Calvin」Herold Knight. 칼빈과 신학사상. 기독교 문화협회 p.88-89)고 하는 것이며, 또한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주 보잘 것 없는 일에도 그 원인이 되는 것이다(John Calvin. 한국칼빈주의연구원.op. cit. p.240)’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계획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5대 교리의 모든 근거가 여기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이 계획과 결정, 모두는 창세 전에 있었던 계획이며 여기서 벗어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사실의 확인이 중요한데 바로 여기서 말하는 창세 전의 세웠다는 불변적인 계획설, 바로 이것이 5대 교리의 사실적인 배경인 것이다.


③ 칼빈주의 예정론의 기본원칙 3 : 역사나 세계는 이미 배정된 순서에 따라 오직 앞으로만 전진해 나간다는 원칙

칼빈주의의 교리관의 특징은 유일하며 오직 하나의 논리이다. 그것은 역사와 세계과정의 전 과정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오직 모든 사건들과 발생되는 일들은 이미 창세 전에 하나님이 일렬로 배정해 놓은 순서에 따라 발생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것이 칼빈주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그가 창조하시기로 결정하셨을 때 그에게는 가능한 계획들이 무수히 많았다. 그런데 그 계획들 중에서 실제로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이런 세계를 창조하시기로 결정하신 것이다(「The Reformed Doctrine Predestination」L. B Bottner. 칼빈주의 예정론. 김남식 홍의표 역, 보문출판사 1990. 3. p.36)’라는 것이다.

이것이 칼빈주의의 교리적 세계관의 전부이며 유일한 주장이다. 그리고 이미 정해져 있는 끝을 향해 역사는 전진(발전)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것을 결정론이라고 말하지만 현대적인 표현으로는 발전론이라고도 말한다.

따라서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역사와 세계란 오직 직선적인 것으로 계속해서 앞으로만 전진해 나가는 역사라는 것이다.

‘역사는 시작에서 끝을 향해 가는 과정으로의 의미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 같은 선(線 직선)적인 역사관은 시간성을 띠게 되고 목적을 향개 가기 때문에 진보적 개념을 배태시킬 수 있었다(「基督敎史觀과 歷史意識」 李石佑 성광문화사. P.130)’고 말한다. 따라서 칼빈주의는 ‘창조시에 역사의 과정이 정해졌기 때문에 역사는 직선적이다(「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 James W. Sire I.V.P. 1986.8.30. p.64,46~47참고)’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역사는 직선적인 것으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시켜 가는 의미있는 사건들의 연속이다’(Ibid. p.47)라는 것이다.


④칼빈주의 예정론의 기본원칙 4 : 결정(예정)한대로만 모든 것이 발생된다는 원칙

예정론의 특징은 예정한대로만, 계획한대로만, 창세 전에 결정한 대로만 모든 사건과 일들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발생하는 것은 모두 결정되어져 있기 때문에, 계획되어져 있기 때문에 발생된다는 것이다.

칼빈은 그의 주저 「기독교 강요」에서 ‘하나님이 아시고 뜻하시고 정해놓은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일어날 수 없도록 배려하신 하나님의 은밀한 계획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John Calvin「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기독교강요 Vol.1:16:3)’고 하였다. 하나님이 미리 창조 전에 세워놓았다는 계획 및 작정! 칼빈주의에서 이것보다 더 중요한 배경은 존재하지 않는다.

‘칼빈주의 예정론’의 저자 뵈트너는 ‘하나님의 계획은 전 우주의 사물을 포괄할 만큼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가장 세미한 부분에 까지 관계할 만큼 치밀하여 장래 발생할 모든 사건에 있어서 불가피적 확실성을 가지고 그 자체를 실현할 것으로 보았다.

하나님께서 전에 생각치 않으셨던 계획을 새로 내 놓으신다거나 또는 어떤 불의의 일을 하신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일체의 사건에 대한 절대적 작정, 혹은 절대적 목적, 혹은 절대적 계획 안에서 구체적인 통일성을 획득하는 세계관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전 우주의 사물을 포괄 할 만큼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가장 세미한 부분에까지 관계할 만큼 치밀하여 장래 발생할 모든 사건에 있어서 불가피적 확실성을 가지고 그 자체를 실현할 것으로 보았다’(L.B. Bpttner. Op. cit. p.35~38)’고 주장한다.


⑤ 칼빈주의 예정론의 기본원칙 5 : 결정은 절대자의 절대주권으로 하였고 이를 성취해 나가는 과정도 절대주권이다는 원칙

칼빈주의 예정론의 특징은 단연코 섭리예정하는 ‘절대주권’이다. 예정론에서 절대주권을 빼버린다면 이는 마치 이빨과 발톱이 빠진 호랑이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칼빈주의자들은 ‘Calvin에게 있어서 신적장적론이야말로 하나님의 주권성의 가장 깊은데서 나온 이론이다(「조직신학」조석만, 한국기독교교육연구원, 1984.3.20.p.73)’라고 주장한다. 칼반주의가 자신들의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얼마나 강조하는 신앙인들인가 하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바이다.

따라서 그들은 주장하기를 ‘개혁파 신학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고, 따라서 하나님은 장래에 일어날 모든 것을 영원부터 주권적으로 결정하시고 자연적 정신적 모든 피조계에 자신의 주권적 의지를 행사하시되 자기의 선정하신 계획에 의하여 하신다고 믿는다(「Systematic Theology」Robert S. Rapp, ‘바른신학’ 김달생공저. P.133)’고 고백한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결정은 영원불변하며 주권적이다. 하나님이 결정하거나 허락하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발생할 수 없다(L. B. Bottner. op. cit. p.26)’고 말한다. 이것이 칼빈주의 예정론의 절대주권이며 이러한 주권론은 칼빈주의 5대 교리에 반영되어져 있다.


심상용 목사(월드크리스챤성경학연구소 소장)

 


 

칼빈주의 5대 교리가 허구라는 증거 1

 

칼빈주의 5대교리의 허구를 밝히기 위한 접근상의 유의사항

 

 

칼빈주의 예정론과 5대교리는 기독교 특히 개신교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과 정통성을 유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상이다. 따라서 이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은 그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다.

본인은 이를 위해 본 서에서 칼빈주의가 무엇을 어떻게 주장하는가에 대하여 정확한 근거와 주석을 바탕으로 이 문제를 분석하고 평가할 것이다.
이 문제를 접하는 이들 역시 칼빈주의 예정론에 대하여 그 진위를 평가함에 있어 그들이 무엇을 주장하느냐에 대한 냉정한 자료를 근거로 칼빈주의 예정론에 대해 접근해야 할 것이며 다음의 몇 가지 사상에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칼빈주의 5대 교리의 허구를 알기 위해서는, 첫째는 칼빈주의가 무엇을 주장하는가에 대해 그들이 주장하는 진정한 내면적인 주장의 실체들을 소상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대개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바를 피상적으로 듣고 막연히 그것이 성경이겠거니 하고 넘겨 버리는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둘째는 칼빈주의는 철저한 이중구조로 되어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면적인 주장들과 다른 이면에 흔히 드러내 놓고 내면에 숨고 두고 있는 내면적인 주장들이 있는데 이 둘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이 교리들 사이에 어떤 모순과 거짓이 존재하는가를 정확하게 규명해 낼 필요가 있다.

셋째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칼빈주의가 내세우는 주장들에 대하여 막역하게 생각하고 가면적인 것에 현혹되어 이것이 성경이구나 하고 넘겨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가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내용들이 반성경적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칼빈주의가 내세우는 양면적인 주장들을 정확히 파악하고 상충되는 두 개의 구조들 사이에 발생되는 모순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넷째는 칼빈주의 자들이 사용하는 용어나 논리들 가운데 대다수가 마치 성경적인 용어인 것처럼 위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용어들은 대개 반성경적인 주장과 자신들의 모순과 허구를 감추려는 의도에서 나올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것으로 칼빈주의 사상의 허구를 그대로 말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칼빈주의의 용어들이 지니고 있는 배경들이 성경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를 파악해 내는 일이 중요하다.

다섯째는 칼빈주의는 어떤 논리를 성경처럼 펼쳐 놓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만 추출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따라서 그 이면이나 반대편에 숨겨져 있는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그러나는 허구나 모순을 유심히 살펴 보면서 그러한 모순이 성경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파악해 내는 일이 중요하다.
여섯째는 칼빈주의는 서로 상충되는 수많은 허구들이 교모한 조화를 이루며 연결된 사상이다.

5대교리는 그러한 결과의 산물이다. 따라서 이 모순들이 다른 교리들과 어떤 모순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파악해 내는 일이 중요하다. 이것을 필자는 ‘모순의 고리’라고 하는데 모순의 고리들은 또다른 모순으로 연결되어져 있어 그 고리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2장 칼빈주의 5대 교리가 허구라는 증거


칼빈주의 5대교리의 허구를 아는 핵심 포인트

아무리 건물이 외양이 화려해도 그 기초가 허구라면 언젠가는 허물어지게 마련이다. 성경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모래 위에 세운 집이 그 사례를 말해준다. 예수께서는 이 비유를 말씀하실 때 건물의 외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다만 기초의 특성을 허구와 무너지는 집을 말씀하셨다.

칼빈주의 5대 교리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칼빈주의 5대 교리의 생명은 5대 교리 그 자체보다도 그 기초가 되는 배경적인 이론의 구조가 과연 허구나 사실이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칼빈주의 5대교리가 허구를 밝히는 최대의 관건은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창세 전에 확정하고 불변적으로 결정했다는 계획설과 예정설의 성패 여부다.
인류 역사의 전 과정에 대하여 배열식으로 이루었다는 ‘창세전에 절대결정을 이루었다’는 기본적 교리(칼빈주의는 창세 후에 결정되었다는 주장도 하고 있으나 실제로 모든 신앙관이나 신학이나 교리적 근간으로 믿고 가르치고 있는 것은 창세 전의 결정론이며 대부분의 신앙고백도 여기에 기초하고 있다.)에 관건이 달려있다.

칼빈주의는 ‘하나님은 단순히 총괄적인 영향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고 그 창조하신 세계를 실제로 통치하신다.’면서 ‘그의 전능하심은 세계의 과정이 그의 계획에 일치한다는 것을 보증해준다’는 것이다(L.B. Bottner. cit. pp. 43.44.)

따라서, 창세전에 결정되어져 있느냐, 아니면 결정되어져 있지 아니 하느냐 하는 것을 이 교리의 허구의 여부를 가늠해 주는 결정적인 열쇠이다.
창세 전에 결정되어져 있다는 것이 증명되면 칼빈의 장로교의 5대교리가 맞을 것이고, 반대로 결정되어져 있지 않다면 근거없는 허구라는 것으로 판명될 것이다. 여기에 칼빈의 교리와 신학 및 5대교리의 성패 여부가 달려 있다.


1.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허구의 증거

1) 창세전에 결정되었다는 주장을 뒤엎는 칼빈주의의 또다른 세계관

칼빈주의 5대 교리의 허구를 알기 위해서는 그지지 기반이며 존재의 근거인 칼빈주의 사상의 근본이 허구라는 것을 먼저 밝혀볼 필요가 있다. 5대 교리란 예정론에 기초하고 있는 바, 이 기반의 허구는 바로 5대 교리의 허구로 직결되어져 있는 것이다.
따라서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근간에 대한 허구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5대 교리의 허구를 밝히는 첩경이다.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창세 전에 모든 것이 결정되어져 있었다’는 것이 칼빈주의의 근거인데 바로 이 주장의 모든 것이 허구라는 것을 자신들이 증명해 주고 있다.


(1)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9장 1항 고백의 허구

칼빈주의자들의 신앙고백서인 웨스트민스터 고백서는 19장 1절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였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행위계약인 율법을 주었다.
이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 뿐만 아니라 모든 후손을 인격적이고 전적이며 엄밀하고 영구적인 순종에 매이게 하셨다. 사람이 그 율법을 지킬 때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것을 범할 때 사망을 준다고 경고하셨다. 그리고 아담에게 그것을 지킬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부여해 주셨다.’(‘The Westminster Confession' chapter 19:1)

이 고백서의 내용을 유심히 살펴 보면,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창세전에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는 것이 통렬한 허구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칼빈은 이 주장과 관련하여 ‘인간이 이것으로 하나님과 영원한 행복에 찾아 올라 갈 수 있었다’(Calvin op. cit. Vol 1:15:8.)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아담은 자기가 원하기만 했더라면 넘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그는 다만 자신의 의지로 넘어졌다’(Ibid)고 주장한다.

칼빈의 이러한 주장은 아담과 인류는 그들이 어떠한 삶의 길로 나갈 것인가가 결정되어져 있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주장을 유심히 보라.
'아담은 자기가 원하기만 했더라면 영원한 행복에 찾아 올라 갈 수 있었다'고 하고 있지 않는가? 이 주장이 던져주는 강력한 의미는 어느 것도, 어떤 인간의 운명도 결정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2)칼빈주의 예정론의 주장

칼빈신학자 로뢰인 뵈트너는 '하나님은 아담과 더불어 행위 언약을 맺으셨다.
즉 완전한 복종(행위)를 조건으로 한 영원한 생명의 계약을 아담 및 그가 대표하는 모든 인류와 맺으셨다. 하나님이 요구하신 복종은 점정적 기간의 특별시험이었고 그것은 반드시 복종의 결과로서 보상을 받든지 아니면 불손종의 결과로서 사망에 이르는 것이었다.

그 약속된 보상은 영원한(인류전체에게 주는) 생명이었다. 그것은 아담이 창조시에 받았던 것보다 더 큰 것을 포함하는 은혜였고 그것이 허용되었더라면 아담을 대표하는 전 인류는 영원히 파괴되지 않는 거룩함과 행복의 상태로 올라갔을 것이다.
하나님을 순종치 않을 경우 벌로서 경고된 것이 사망(인류 전체의)이었다고 하였다.(L.B Bottner. op. cit. p.92.)

인용된 위의 칼빈주의 예정론의 내용을 분석해 보면, 인류의 대표자 아담에게 율법을 주면서 ‘율법을 지키면 전 인류에게 영생을 주고, 율법을 범하면 멸망의 사망을 주겠다’고 주장한다. 아담과 인류는 영생으로 갈 수도 있고, 사망으로 갈 수도 있다고 하고 있다. 그러므로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스스로 폭로한다.

이 주장이 내포하고 있는 배경과 칼빈주의 예정론의 허구에 대하여 주목해야만 한다. 칼빈주의 5대 교리의 교리적, 신학적, 신앙적근거가 왜 허구인가를 밝혀줄 수 있는 결정적인 근거들이 모두 이안에 내포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3) 칼빈신학자 핫지(A.A Hodge)는 아담의 시험에 대한 주장

칼빈신학자 핫지는 ‘하나님은 그들(아담과 인류)를 거룩한 존재로 창조하시지만, 타락할 수도 있게 지으셨다.
이런 상태에 있는 그들을 얼마동안 도덕적으로 시험하신다. 이 시험에 합격하면, 그들은 확고하고 타락하지 않는 도덕적 성격을 상으로서 받으며, 빼앗을 수 없는 행복을 받는다. (그러나) 시험에 떨어지면 그들은 법적으로 하나님의 총애와 교제에서 영원히 제거되며, 따라서 도덕적으로 영원히 죽게된다.
새로 창조된 천사들과 사람들에 대하여 이것이 확실히 하나님이 쓰신 방법이다. --시험방법으로서 심히 훌륭한 것이었다.
즉 그들이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충성하는가, 하나님을 절대로 믿고 순종하는가 하는 것을 시험할 수 있는 것이었다.’(A.A Hodge. op. dit. p. 141.)고 주장한다.

심상용 목사(월드크리스챤성경학연구소 소장)

 


 

칼빈주의 5대 교리가 허구라는 증거 2

 

칼빈주의 5대교리의 허구를 밝히기 위한 접근상의 유의사항

 

 

* 칼빈주의가 외치는 창세전의 불변적으로 확정했다는 예정설이 허구인 까닭은


(1)창세전에 어떤 것도 결정되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칼빈주의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이와같은 주장들이 지니는 깊은 뜻은 창세전에 어떤 세계도 결정되어져 있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창세전에 오직 하나의 세계만이 결정되었다고 말하지만, 방금 소개한 그들의 또다른 세계관은 창세 전에 아무 것도 결정되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실토하고 있는 것이다.

칼빈주의 세계관에 의하면, 창세 전에 전 인류의 운명이 영생으로 갈 것인지 멸망의 사망으로 갈 것인가가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모든 후손을 인격적이고 전적이며 엄밀하고 영구적인 순종에 매이게 하셨다. 사람이 그 율법을 지킬 때 생명(모든 인류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거을 범할 때 사망(모든 인류에게)을 준다고 경고하였다.’고(A.A Hodge. op. cit. p. 324; 「The Westminster confession」19:1) 주장하고 있다.

이것이 말해주는 바가 무엇인가? 모든 인류의 운명이 멸망으로 갈 것이냐 행복의 세계로 갈것이냐가 결절되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지 않는가?
여기서 아담이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누구도 인간의 운명이 결정되어져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담이 율법을 받는 순간, 그리고 아담이 결정을 내리기 그 전까지 어느 누구라도 멸망 아니면 갈것인지 결정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누구라도 예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이 주장에서 창세전에 모든 것이 결정되어져 있었다는 주장이 허구라는 것을 중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아담이 칼빈주의 하나님르로부터 율법을 받아 양자택일 하라고 하는 테스트를 받고 있었다는 주장은 단지 칼빈주의가 어느 한사람의 주장이 아니다. 칼빈을 위시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나 그들의 대부분의 신앙고백이나 조직신학은 한결같이 아담이 테스트 받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칼빈주의자들은 누가 뭐라고 해도 어떻든 창세 전에 절대주권으로 하나님이 작정, 결정되었다는 식으로 밀고 나간다. 그렇다면 더욱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렇게 맹신적으로 믿어대는 그 창세 전에 절대 계획으로 작정되었는 설은 이교도 희랍의 이교도 사상을 모방한다. 채색하여 만든 교리라는 사실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칼빈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이 근거들은 테스트로 보나 결정론쪽으로 보나 허구라는 사실을 피할 길이 없다.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 전에 우리를 예정하사 한 것은 출발부터 칼빈주의식의 창세 전의 예정이나 작정을 말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반드시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창세 전의 작정론내지 예정론은 논리적으로나, 교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스스로 허구라는 사실을 노출시킬 수 밖에 없는 거짓논리이다. 창세 전에 결정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가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2) 아담의 시험 창세 후에 이루어진 것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칼빈주의의 이같은 아담 테스트론이 던져주는 또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아담이 이 율법을 받을 때가 창세 후라는 것이다.
칼빈의 하나님이 아담에게 이 중대한 시험을 실시한 때가 창세 후이다. 창세가 시작되고 아담에게 하나님이 율법을 준 후까지도 아직 역사는 어디로 갈 것이냐가 결정되지 않았다.

아담이 시험받을 당시가 창세 후인데 그때까지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창세 전에 아무런 결정이 없었으니까 아담에게 양자택일하라는 율법을 주었으며, 그 기회를 준 때가 창세 후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것은 결정적으로 창세 전에 모든 것이 결정되었고 계획되었다는 칼빈주의 5대교리의 근거가 모두 허구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모든 인류가 영생으로 갈 것인지, 멸망의 사망으로 갈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담이 율법에 대하여 최종적인 결정을 내릴 때까지 결정된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어떻게 창세 전에 모두 결정되어져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전 인류가 가야 할 역사의 특징을 결정한 것은 어디까지나 창세후에 결정된 일이다. 이것은 칼빈주의의 창세 전의 결정론이 전혀 근거없는 허구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3) 아담이 내린 역사 결정이 시사하는 칼빈주의의 허구

여기서 파생되는 또 하나의 허구는 적어도 모든 개개인들이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
다시말하면 인간이 영생의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멸망의 삶을 살 것인가를 결정한 장본인은 칼빈주의 자들이 주장하는 하나님이 결정한 것이 아니라 아담이 결정했다는 사실이다.
칼빈주의는 창세 전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결정했다고 하지만 칼빈주의의 주장을 보면 아담은 자신에게 주어진 양자택일의 기회에서 아담은 자신이 판단한 것을 결정하였다.

칼빈주의자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하인리히 헤퍼는 그의 저서 개혁정통파 교의학(이정석옮김) 367쪽에서 ‘아담의 자유의지가 원래 가변적인 것이었다는 동일한 의미에서, 그의 육체적인 생명도 역시 가변적이었다. 전자가 죄의 종속에 들어갈 수 있었으마, 만일 그 유혹을 잘 견디어 냈더라면 보다 상위의 견인 상태로 격상되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점은 모든 선택권을 받은 아담의 가변적인 자유의지이다. 그가 어떠한 결정을 내릴 것인지 인류의 미래는 정해진 바 없이 그의 가변적인 선택에 달려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아담이 결정을 내렸을 때가 최소한 인류가 어느 방향으로 나갈 것인가를 결정한 것이다. 이 결정은 칼빈주의 하나님의 결정과 무관하다.
왜냐하면 칼빈주의 하나님은 아담에게 전적인 기회를 주었고 아담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에서 자신이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칼빈주의 자들이 ‘이와같이 안하면(안먹으면) 순종이 되어 그 댓가로 영생을 누리게 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이 얼마나 고마운 분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되며 그토록 고마우신 하나님을 배반한 우리 조상이 한스럽다.’(김장수. op. cit. pp. 87.88)고 한 이유도 아담에게 전적인 기회가 있었다.

칼빈주의 하나님의 어던 개입이나 요구나 명령이 없었던 상태에서 전적인 아담의 선택의 결과에서 나왔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의 개개인의 운명을 칼빈주의 하나님이 창세전에 결정했다는 주장은 후구이다. 아담이 양자택일에서 인류 전체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이 결정에 칼빈주의 하나님이 결정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직 아담이 전적으로 위임된 기회를 가지고 결정했다는 것을 칼빈주의는 자신들의 입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3. 왜 칼빈주의 하나님은 아담에게 양자택일의 기회와 창세 전의 결정론의 허구


(1) 양자택일의 테스트란 그 순간까지 어떤 것도 결정된 바가 없다는 것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이와같은 아담테스트 내지 양자택일 설은 아담에게 율법을 주면서 이 율법을 지키면 모든 인류에게 영생을 주겠다고 하였고, 이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모든 인류에게 멸망을 주겠노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윌리암슨(G. I Williamson)에 의하면 ‘하나님은 우리 시조 앞에 양자택일의 방도를 놓으셨다. 그 한편에서는 완전한 순복의 길이 있었는데, 이 길은 오직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었다.--그러나 다른 한편에는 불순종의 길이었는데, 이 길은 오직 죽음으로 인도하는 길이었다.’(G. I Williamson. op. cit. p. 80)고 다시금 확인해주고 있다.

칼빈주의 하나님이 아담에게 기회를 주어 양자택일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회를 주었다는 것은 아직 인류의 대계적인 운명이 멸망으로 갈 것이냐조차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줌과 동시에 이는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창세전의 전 인류의 운명이 결정되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증거인 것이다.

만약 불변적인 계획이나 완전하게 확정된 것이 있었다면 이러한 선택의 기회를 아담이나 전 인류에게 주지 않았을 것이다.
율법을 아담에게 줄 때까지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었기에 아담에게 이러한 기회를 준 것이다. 따라서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아담 테스트론은 단순한 차원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아담이 이러한 율법을 받았다는 것은 창세 전에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2) 양자택일의 테스트란 앞의 일들이 결정된 바 없다는 증거다.

모든 인류가 멸망을 당하는 것과 반대로 모든 인류가 영생의 삶을 산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상극적인 삶들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일이다.
바로 칼빈의 하나님은 아담에게 모든 인류가 멸망의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행복의 영생의 삶을 살 것인지 양자택일하라고 하는 기회를 주었다는 것은 인류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것이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인류가 멸망이냐 영생의 행복이냐 하는 것의 차이는 어마어마한 차이이다. 칼빈주의 하나님은 아담에게 이 어마어마한 차이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를 결정하라고 하였다. 적어도 이 순간에는 인류의 미래에 대하여 어떤 결정이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칼빈주의가 창세전에 인류의 미래가 모두 결정되어져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역시 허구하는 것이 증명된다.

적어도 아담이 이 둘 중에 인류의 미래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기 까지는 인류의 미래가 결정되어져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결정되어 있었다면 테스트가 위선이고, 테스트가 사실이라면 결정되어져 있었다는 것이 허구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테스트를 말하고 있으니 결정이 허구인 것이다.


(3) 칼빈주의 하나님이 아담에게 양자택일의, 테스트를 시도한 의미

칼빈주의 하나님이 아담에게 전 인류의 운명의 방향을 결정하게 될 양자택일의 기회를 준 의미는 ‘내가 결정한 것이 없으니 네가 결정하라고 전적인 기회와 권리를 제공’한 것이다. 칼빈주의 하나님이 결정한 바가 없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것이다.
칼빈주의 하나님이 어느 하나라도 결정한 것이 있었다면 아담에게 이런 양자택일 하라고 기회를 주었을 리가 없는 것이다.

만약 칼빈주의 하나님이 불변적이고 확정적인 결정을 내렸다면 아담에게 다시 결정을 하라고 하는 기회를 양도할 리도 없는 것이다.
칼빈주의 하나님이 결정을 내리는 것과 아담이 결정을 내리는 것은 동일한 것이 아니다. 신이 내리는 결정과 아담이 내리는 결정은 신과 인간의 차이만큼이나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칼빈주의 하나님이 아담에게 양자택일의 기회를 주었다는 것은 신이 내린 결정위에 인간도 같은 결정을 내리라는 어떤 요식행위가 아니다.

따라서, 칼빈주의 하나님이 아담에게 양자택일 하라고 하는 기회를 주었다는 것은 칼빈주의 하나님이 자신도 어떤 결정을 내린 바가 없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해 주는 것이다. 이는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5대 교리의 근거, 다시말해 창세 전에 택자와 유기될 자들을 모두 결정해 두었다는 주장이 근거없는 허구라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4. 선택자와 유기자 결정이 허구라는 증거

(1) 선택자와 유기자들은 창세전에 결정된 바 없다는 증거

칼빈주의는 창세 전에 선택자와 유기될 자들을 모두 칼빈주의 하나님이 확정했다고 주장한다. 칼빈은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에 따라 아담의 타락 전에 온 인류와 모든 개인의 운명을 정해 놓어셨다.’라고(Calvin.기독문화협회. op. cit. p. 281) 주장하였다. 그렇다면 칼빈주의자들의 주장은 오직 하나이다.

타락이 이미 결정되어져 있었다라고 주장해야만 하는 그들이다. 따라서 아담과 인류에게 타락만이 결정되어져 있었다라고만 말해야 한다. 그런데 가증스럽게도 그들은 아담과 인류에게 영생도 줄 수 있었다라고 주장하는 그들의 고백이 얼마나 모순된 허구인가를 스스로 드러내 주고 있는 것이다.

장로교인들의 신앙고백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장 4절에 고백한 바에 의하면 ‘ 이렇게 예정된 천사들과 사람들은 낱낱이 변할 수 없이 계획되었으며, 그 수효도 확정되어 있으므로 증감할 수 없습니다.’(A,A. Hodge op. cit. p. 94)고 하였다.

이것은 타락을 전제로 하는 결정을 주장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아담과 인류에게 영생을 주겠다는 주장은 한마디로 거짓된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타락할 것이 결정되어져 있다면 영생따위는 생각도 할 수 없고 그럴 의사도, 가능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허구라는 것이다.

칼빈주의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었다는 율법관을 보면 아직 전 인류에 대한 결정이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기에 칼빈주의 창세 전에 택자와 유기자들을 모두 확정적으로 결정했다는 예정설은 완전한 허구라는 것을 폭로하는 것이다.
전 인류가 멸망의 타락으로 갈 것이냐 아니면 영생으로 갈 것이냐갸 결정되어져 있지 않는데 어떻게 택자와 유기자들이 모두 창세 전에 결정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예정론 자체가 완벽한 허구라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다.


(2) 칼빈주의 예정론의 역사관과 세계관의 근거가 허구라는 증거

칼빈주의 에정론의 모든 근거는 창세 전의 ‘모든 역사 과정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결정되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담 때까지 전인류가 영생으로 갈 것이냐 사망으로 갈 것이냐도 결정되어져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칼빈이 말한바와 같이 ‘아담은 자기가 원하기만 했더라면 영원한 행복에 찾아 올라 갈 수 있었다.’고 하지 않는가? 타락이 결정되어져 있는가?

중요한 것은 결정권자는 오직 칼빈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그들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만 한다. 창세 전에 결정되었으면 이미 결정되었다라고 말해야만 옳은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담은 자기가 원하기만 했더라면 영원한 행복에 찾아 올라 갈 수 있었다’는 것은 결정되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허구라는 것이다.

창세 전에 모든 인류의 운명과 역사의 전 과정이 결정을 했다는 칼빈주의 자신들의 또다른 주장에 의해서 허구라는 것이 여지없이 증명된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나, 교리적 체계로 보나 칼빈주의 예정론을 보다 심도깊게 분석해 보면 근거없는 허구적인 교리이며 사상이라는 것은 충분하게 증명되고도 남는다.

칼빈주의 5대 교리 구원론은 허구 위에 세원진 허구의 꽃이다.
허구는 어디까지나 허구이다. 허구라는 나무에 진리라는 열매가 맺힐수 없고, 진리라는 나무에 허구라는 열매가 맺을 리 없다. 칼빈주의 사상체계가 허구이기에 허구에서 죽을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죽을 수 밖에 없고 또 죽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허구이기 때문이다.


(3) 창세 전 불변적 신적 작정, 계획들이 모두 근거없는 허구라는 증거

칼빈주의 모든 체계는 오직 창세 전에 모든 역사와 세계까지도 모두 불변적으로 확정되어져 있다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하다. 역사의 전 과정도, 모든 사람에 대한 운명도, 자연과 우주에 대한 모든 것들도 모두 게획되어져 있다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하다.

역사의 전 과정도, 모든 사람에 대한 운명도, 자연과 우주에 대한 모든 것들도 모두 게획되어져 있으며 그 계획들은 일렬로 배열되어있는데 그 특징은 변할 수 없도록 불변적으로 확정되어져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불변적으로 확정되었다’는 주장이 자신들의 교리에 의해 허구임이 증명되어져 나왔다.

칼빈주의 하나님 자신이 아담에게 전인류의 삶으로 하여금, 멸망으로 갈 것인지 영생으로 갈 것인가가 결정되어져 있지 아니한 것을 보여 주었는데 어떻게 결정되어져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불변과 확정성을 말하는 칼빈주의의 창세전의 불변적 작정설과 계획설 그리고 예정설등은 모두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4) 칼빈주의의 예정설과 바울이 외친 그리스도 안에서의 예정은 다르다.

칼빈주의가 외치는 예정론과 바울이 수없이 외친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 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선택’ 등은 전혀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
바울이 외친 예정은 결코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섭리적 예정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간과해야만 한다.

물론 그들이 예정설을 처음부터 그들이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 기원이나 교리적 특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바울이 말한 ‘예정’ 이란 말을 차용해서 자신들의 방식으로 조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교리를 면밀하게 검토해 들어가면 허구라는 증거는 도처에서 발견된다. 본 서는 그 허구의 일부를 지적했을 뿐이다.

그들의 신적작정론, 구원론, 믿음론, 기독론, 이중예정설, 주권설, 영광론, 섭리론, 율법론, 타락론, 계획설, 신론, 역사관, 우주관, 세계관,---허구가 아닌 것이 없다.(칼빈주의의 교리적 체계는 스스로의 허구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기에 성경이 아니며 성경에 의해 지지될 수 없다.) 칼빈주의의 교리적 체계는 스스로 허구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건물의 중심기둥이 치명적으로 무너지면 그를 의지하고 있던 모든 것들도 동시에 무너지듯이 칼빈주의 체계자체가 그러하다.

칼빈주의 예정론의 허구를 말하면 그래도 성경에 ‘창세 전에 예정’ 이라는 말이 있지 않느냐고 하면서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예정’ 이라는 말은 칼빈주의에서 말하는 예정론과 모든 구조의 내용이나 형태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이 점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의미에서 바울은 칼빈주의자들에게 철저하게 이용당한 것이다.

심상용 목사(월드크리스챤성경학연구소 소장)

 


 

칼빈의 허구적인 주장과 기만책

 

칼빈은 어떤 기만으로 거짓을 밀봉해 놓았나?

 

 

* 거짓을 말하는 칼빈주의 하나님이 거짓의 신이라는 증거


(1)기만적인 거짓말을 하고 있는 칼빈의 거짓된 하나님

칼빈주의는 주장하기를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 –하나님은 자신의 본성으로 말미암아 통제 받으시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라고 하지만 칼빈주의의 이 말은 아주 교활한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다.

칼빈의 하나님이 창세 전에 타락을 결정해 놓았기에 타락 이외의 말을 하는 것은 모두 거짓말이다. 칼빈주의의 하나님이 이미 타락을 결정해 두었기에 아담과 인류는 결코 영생을 얻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칼빈주의 하나님은 타락을 유일한 것으로 결정해 두지 않았다고 하는가? 그렇다면 칼빈주의 하나님은 아담과 인류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영생을 줄 수 없고 테스트는 불필요한 것이다.

적어도 칼빈주의 하나님은 자신안에서는 이미 결론이 나와 있는 문제다. 자신이 세워놓은 계획과 결정과 예정과 작정은 반드시 타락을 전제로 하고 잇다. 역사 창조가 시작되었을 때는 인간에 대한 모든 결정을 이미 내리고 시작한 역사이다. 그것은 오직 타락 뿐이다.
그런데 칼빈주의 하나님은 아담에게 율법을 주면서 그 율법을 지키면 ‘영생’을 줄 것이라고 거짓말 하고 있는 칼빈주의 하나님이다.

아담과 인류에게 어떻게 이와 같은 거짓말을 할 수 있는가?
칼빈주의 하나님은 아담에게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인류에게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영생을 줄 수 없다. 타락은 이미 자신의 절대 주권으로 결정이 나 있는 문제이고, 아담에게 율법을 줄 때는 재론의 여지가 없는 문제였다.
그런데도 칼빈주의 하나님은 그런 결정이 없었던 것처럼 위장하고 마치 아담에게 율법을 주면서 그 율법을 지키면 영생을 줄 수도 잇는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위선적이고 거짓된 행위로 인간을 속이고 기만하고 있는가? 명백히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거짓된 행위를 하는 칼빈주의 하나님의 거짓된 속성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타락을 절대주권으로 창세 전에 결정했다면. 그가 진정 공의로운 하나님이라면 ‘내가 너에게 결정한 것은 타락이니 타락하거라’라는 것이 더 정직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타락결정이란 불변적인 계획은 철저하게 숨겨놓고, 가면적인 수단들을 동원하여 그 책임을 인간에게 몰아가며 타락을 주도해 내는 칼빈의 하나님은 기만의 대명사이다.

어떻게 타락을 결정해 놓은 칼빈주의 하나님이 아담에게 영생을 줄 수 있는가?
그것은 칼빈주의 하나님으로서는 도저히 줄 수 없는 거짓말이며 거짓된 약속이다. 이 약속이 가증스러운 것은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거짓이었다.
역사 이래로 이보다 더 큰 거짓은 없었다. 신이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한 거짓이라는데서 그 신의 속성이 더욱 가증스러웠던 것이다.


(2)타락 결정론과 칼빈주의 신에게 속고 또 속은 인간

아담과 인류는 칼빈주의 하나님이 줄 수 없는 영생이라는 기만에 속고 또 속은 것이다.
창세 전의 작정 속에 영생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영생과 소용없는 테스트란 거짓된 기만에 인간은 속고 또 속은 것이다.
칼빈주의가 타락을 이미 절대주권으로 결정해 놓았다면 아담과 인류가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타락밖에 없다.

그 음흉한 계략은 감추어 둔 채 칼빈주의 하나님은 아담에게 영생을 줄 것처럼 거짓말을 하였던 것이다.
칼빈주의자들조차 자신들의 하나님이 아담에게 율법을 주면서 영생을 줄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처럼 착각하면서 아담을 원망하고 한탄하고 있지만 그것은 그들조차도 자신들의 신의 교활한 기만책에 철저히 농락당했단 것 이상의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말해 줄 뿐이다.

왜, 칼빈주의 하나님이 타락을 결정해 놓고서 아담에게 느닷없이 율법이라는 수단으로 테스트 하겠다고 하는지 그 음모는 뻔하다.
타락이라는 목적을 성취시키면서 그 책임을 인간에게 떠 넘기기 위한 고도의 기만책이라는 것이 눈에 들어 오지 않는가? 그리고 역사적 결과는 어떻게 나왔는가? 인간타락의 책임은 훌륭하게 인간에게 떠 넘겨지고 칼빈주의 하나님은 자신이 목적한대로 타락을 과연 거짓의 신(神)답게 이끌어 내지 않았는가?

여기서 인류는 칼빈주의 하나님에 의해 통렬하게 기만을 당했음을 알 수 있다. 칼빈주의 하나님은 인간에게 이미 타락을 절대 유일한 것으로 예정, 결정, 신적작정을 해 놓은 상태이다.
칼빈주의 하나님이 얼마나 가증스러운가 하는 것은 자신의 손으로 아담과 인류에게 영생을 줄 수 없다고 결정해 놓고서도 또 자신의 입으로 아담에게 율법에 순종하면 영생을 주겠노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가증스럽게도 인간이 느끼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게 정말 전능한 칼빈주의 하나님답게 인간에게 타락을 명령하면서 그 책임을 고스란히 인간에게 떠 넘기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가증스럽고 철면피한 기만적인 신인가? 우리는 이와 같은 칼빈주의 하나님이 제공하는 불가항력적인 은혜니, 무조건적 선택이니, 궁극적 구원이니 하는 것들이 얼마나 파렴치한 허구인가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3)타락을 결정한 칼빈의 하나님 원수 마귀라는 증거

칼빈주의 하나님이 타락을 처음으로 그의 의중에 설계하고 이미 창세 전에 ‘타락’을 결정하였다면 타락과 유기를 성경으로 보았을 때 그 신은 우리가 정상적으로 알고 잇는 성경의 생명의 하나님이 아니다. 그 신은 인류를 타락시킨 타락의 원흉이며 악마적 사탄에 지나지 않는다는 시실을 간파하지 않으면 안된다. 당연히 인류의 타락을 신적 작정을 이룬 칼빈주의 하나님이라면 그 신은 성경이 말하는 정상적인 하나님이 아니다.

그와 같은 타락을 계획하고 결정한 칼빈주의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의 정체는 원수마귀이다.
칼빈주의자들은 결코 일치될 수 없는 다음 두가지 사실을 동시에 주장하고 잇는데, 하나는 아담에게 율법을 주어 거기에 순종하면 영생을 주겠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자신들의 하나님이 타락을 창세전에 이미 예정해 놓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칼빈주의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받아 들여서는 안된다. 흔히 칼빈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전능성 운운하며 자신들의 하나님이 전능하다면 타락도 모두 하나님의 전능에 의해 지배되어야 한다는 괴변을 동원한다.
우리는 이러한 궤변이 성경이 아니라는 것을, 성경에서 그 대답을 찾을 수 있다.

마태복음 13장 예수님의 비유가 그것이다. 밭에 원수마귀가 와서 가라지를 뿌리고 갔다고 주인이 은밀한 계획으로 가라지 뿌릴 것을 명령했는가?
흔히 칼빈주의 예정론자들은 하나님의 전능성이라는 명분하에 타락이 하나님의 예정과 계획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며 온갖 반성경적인 주장을 하는데 우리는 그들의 교활하고 파렴치한 원수마귀적인 주장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된다.

타락을 결정한 신이라면 그 신은 명백하게 악마 사탄이다.
마태복음 13장 39절에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라고 하지 않았는가? 인간의 타락을 계획, 결정하고 실행에 옮긴 칼빈주의 하나님이라면 그 신은 분명 원수마귀이다.
칼빈주의 자들은 실제로 창세전에 타락을 결정한 신이 칼빈주의 하나님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들의 칼빈주의 하나님은 인류를 타락시킬 것을 주장한 원수마귀라는 것을 자신들의 입으로 직접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3.칼빈주의와 칼빈은 어떤 것을 주장하고 있나


(1)칼빈주의는 근본적으로 어떤 것을 주장하고 있나?

칼빈주의는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아담에게 율법을 주어 그것을 지키면 영생을 주고 지키지 못하면 멸망을 준다는 것과 창세전에 타락을 결정해 두었다는 사실을 동시에 믿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와 같은 칼빈주의의 두 가지 사실에 대한 동시 주장은 허구에 허구를 더한 기만적인 교리로써 터무니 없는 반성경적 교리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서로 일치하지 않으면서, 서로가 서로를 부정하는 두개의 허구구조가 거짓의 아성을 교묘히 위장해서 성경화 시켜놓고 성경처럼 행세하고 잇는 것이다.
칼빈주의의 두 개의 구조를 한 지붕 아래 두어 하나로 만들면 거짓이라는 대답 뿐이다. 거기서 나온 열매의 결정체가 5대 교리이다.

바로 그들의 구원론 즉 5대 교리는 이와 같은 허구 가운데 세워져 잇는 허구의 상아탑이다.
칼빈주의의 신은 인류와 아담에게 영생을 줄 수 없는 신임에도 영생을 준다는 거짓말을 한 신이기도 하지만 또한 창세 전에 인류의 타락을 계획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겨 타락시킨 원수 마귀라는 것을 자신들의 교리로 직접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교리가 기독교의 정통교리로 지금까지 통용되어 나왔는가?
그것은 정교하게 조작된 그들의 교활한 교리적인 허구를 찾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중 또는 삼중적인 허구를 역으로 성경처럼 위장하는 수단으로 사용함으로 사람들을 속여 왔던 것이다.


(2)칼빈은 어떤 기만으로 거짓을 밀봉해 놓았나?

어떤 변명으로도 패해나갈 수 없는 허구를 말하면서도 칼빈주의는 온갖 방법으로 이를 피해 나가기 위해 말장난을 하고 잇다. 때로는 어우르기도 하고, 때로는 험악한 폭력적 언어로 윽박지르면서 기만을 덮어나간다.

칼빈은 이와 같은 자신의 교리적 허구를 교리적으로 어떻게 밀봉 시켜 나가고 있는가? 그는 아담에게 율법을 주어 그것을 지키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거짓 교리를 말하면서 기독교 강요 제1권 15장 8절에서 ‘하나님은 은밀한 예정의 문제를 여기서 소개한다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라고 하였다.

칼빈주의 자들은 자신들에 불리하면 흔히 사용하는 언어적인 습관이 ‘적절치 못하다’라는 것인데 이것은 자신들의 허구를 감추는 교활한 미봉책에 불과할 뿐이다.
왜? 칼빈은 아담에게 율법을 주어 그것을 지키면 영생을 주고, 그것을 어기면 사망을 준다는 그들의 허구적인 교리에 예정의 문제를 소개한다는 것이 적절치 못하다라는 교묘한 밀봉을 하였을까?
이것이 공개되면 자신들의 논리가 허구라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칼빈이 이 문제에 왜 예정의 문제를 개입시키는 것이 적절치 못한가에 대한 것이 어떤 문제에 한정하여 말하는 것인가는 정확하게 말하지 않았다.
영생이냐 사망이냐에 대한 양자택일이라는 것이 전체 칼빈주의 자체가 허구이기 때문에 예정의 문제를 개입시키는 것이 적절치 못한 것인지, 아니면 단지 아담이 영생을 얻을 수 있었는데 사망을 선택한 문제에 국한하여 예정을 개입시키는 것이 적절치 못한 것인가를 밝히지 않은 채 문제의 심각성을 교묘히 덮어버리고 있다.

다만, 예정의 문제를 개입시키는 것이 적절치 못하다라는 주장 바로 직전에 ‘인간은 자기가 원하기만 하였더라면 자유의지로 영생에 도달할 수 잇는 능력이 있었다’라고 하였고, 또한 이 주장의 바로 뒤에는 ‘아담은 자기가 원하기만 했더라면 넘어지지 않을 수 도 있었는데, 그는 단지 자신의 의지로 타락했다’라는 것으로 보아 그는 예정론 전체의 허구보다는 아담의 타락과 관련한 문제에 한하여 이 주장을 한 것으로 판단되어진다.

하지만 칼빈은 이 주제가 내포하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렇게 될 경우 칼빈주의 예정론 자체가 와해될 것과 자신들의 교리적 신앙관적 체계가 순식간에 허물어 질 것을 알고 있었기에 ‘감추어진, 전혀 알 수 없는 원인을 하나님의 예정에서 찾아서는 안된다’라는 호구지책으로 덮어 버린 데서 이를 짐작할 수 있다.

확언하건데 이 문제에 예정의 문제가 적용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이 허구는 감추어진 것도 아니고, 사람의 판단으로 전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비밀도 예정도 아니다. 우리의 이성과 판단으로 얼마든지 판단 가능하며 거짓된 허구라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허구는 칼빈주의 예정론 전 체계가 허구라는 것을 증명하기에 부족함이 기만과 거짓임을 증명해 준다.


(3)칼빈의 허구적인 주장과 기만책

칼빈은 아담에게 영생이냐 사망이냐에 대한 기로를 주었다는 것에 대하여, 예정의 문제를 적용시키는 것이 적절치 못하다라고 하였는데 과연 적절치 못한 일인가?
칼빈의 주장한 아담에게 영생이냐 사망이냐에 대한 기로를 주었다는 것과 예정의 문제는 그들의 허구를 말해주는 치명적인 문제이다.

설사 그것이 아담의 선택과 관련한 제한적인 문제라고 하더라도 ‘만사는 하나님의 계획에 의하여 발생되며 무엇 하나 우발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고 확신하기 때문에—‘라는 주장과 함께 ‘선인이건 악인이건, 인간에, 관한 한 그 계획, 의지, 노력, 능력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지배하에 있다는 것과,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원하시는 방향으로 향하게 하시며 또 원하실 때는 언제든지 그것들을 제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예정)에 달려 잇다는 것’을 칼빈은 주장고 있기 때문에 예정의 문제를 개입시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미 창세 전에 타락을 경정해 두었다는 칼빈의 예정사상에, ‘아담에게 영생이냐 사망이냐에 대한 기로를 주었다’는 주장은 그의 주장이 얼마나 허구인가를 말해준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예정의 문제를 소개하는 것이 적절치 못하다라는 칼빈의 주장은 자신의 허구를 덮으려는 교활한 기만책에 지나지 않는다.

칼빈은 ‘인간이여! 그대의 호기심을 좀 억누르라!
그리고 알 수 없는 것도 ‘미지의 보’에 싸놓지 말며, 또한 당신의 이성으로 알 수 없는 것을 억지로 찾으려고 노력하지 말아다오!’라고 외치는 칼빈은 ‘만약 어떤 사람이 뻔뻔스럽게도 이것에 어긋나는 입장에서 탐구한다면 그의 호기심을 만족하게 해 줄 아무것도 발견치는 못하고 오히려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그릇된 길에 빠지고 말 것이다’고 하였다. 이렇게 칼빈은 자신의 교리적 허구를 덮으려고 온갖 말의 잔치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칼빈의 이러한 말들의 포장은 한갓 자신들의 허구적 기만을 감추고 덮으려는 논리적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역사 속에서는 이러한 기만이 받아 들여져 이들의 조작된 허구가 정통처럼 대접 받아 왔으나 이제는 그 거짓된 조작들이 모두 폭로되어져야만 한다.


심상용 목사(월드크리스챤성경학연구소 소장)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타락 결정론에 대한 허구

 

칼빈의 '기독교 강요'의 음모와 책략

 

 

* 타락에 대한 칼빈주의의 확고한 주장과 허구라는 증거

허구는 또다른 허구를 낳는 법이다.
칼빈주의 예정론은 허구에서 허구로 연결된 허구적인 구조의 총체일 뿐이다. 앞에서 창세 전의 불변적인 예정의 작정설이나 계획설이 허구라는 것을 밝혀 보았다.
그런데 매우 기이한 현상은 허구에 또다른 허구를 대치시켜 놓음으로써 두 허구가 묘한 조화를 이루어 아주 그럴듯한 결과를 산출시키고 성경처럼 위장해 왔다는 사실이다.

칼빈주의는 타락설을 보일 듯 말 듯, 그런 주장이 있는 듯 없는 듯, 그런 주장을 하는 듯 마는 듯 하면서 수없이 쏟아지는 의문에 적당히 얼버무리며 지탱해 나왔다.
대개 일반인들로서는 여기에 대한 보다 분명한 칼빈주의의 주장을 확인할 수 없는 관계로 적당히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니 인간타락을 알고 계셨을 것이다라는 정도로 치부해 버리고 넘어가 버린다.

그러나 칼빈주의는 교활한 이중구조로 인간이 무책임적으로 불순종하여 타락했다는 타락설로 기만하지만 사실은 그들의 기본 사상은 칼빈주의 하나님에 의한 확고부동한 결정과 작정의 타락설이 그들의 기본 사상이다.
그러한데도 자신들의 타락설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단지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인간이 타락할 것을 알고 계셨다’거나 아니면 엷은 음성으로 ‘하나님이 타락을 예정해 놓으셨기에 타락이 나왔다’식으로 교활하게 피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칼빈주의가 타락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 여기에 대한 분명한 교리적 근거들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1.칼빈주의가 주장하는 아담불순종 설의 전모와 허구라는 증거


(1)칼빈주의가 주장하는 타락 결정론에 대한 허구

칼빈주의는 타락에 대하여 두가지 허구를 주장하고 있다.
그 첫째가 칼빈주의 하나님이 아담에게 율법을 주어 테스트를 하고 시험을 했는데, 아담이 율법을 지키지 못해 처벌을 받아 멸망을 당하게 되었다는 타락설이다. 여기서 칼빈주의는 인간타락을 인간의 자유의지니, 인간의 불순종이니 하는 가면적인 수단들로 몰아 세운다.

하지만 칼빈주의의 다음 주장은 이러한 아담 불순종 설이 얼마나 허구적인 가를 여실히 증명해 준다.
칼빈주의는 ‘인간의 타락, --기타 모든 역사적 사건들은 하나님이 이미 창세전부터 그의 의중(意中)에 설계하고 계셨던 것이다.’라는 전제하에 ‘이러한 중대한 사건(타락)이 자연 발생적으로 일어났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발생하였음이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칼빈은 ‘인간타락의 궁극적 원인이 인간 자신의 내부에 있다는 것을 반대한다. 비록 인간이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타락했다고 해도, 인간의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타락한 것은 아니다’고 하여 타락이 인간의 자유의지나 임의적인 선택과는 아무 상관도, 관련도, 연관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그들(아담과 하와)이 범한 이 죄를 –이(하나님이 타락을 명령한 것)는 그것(타락)을 명령하시어 (타락했다 -–‘고 하여 하나님의 절대 명령에 의해 타락했음을 고백한다.
이와 같은 주장에 근거해서 칼빈주의는 ‘아담의 타락과 그로 말미암은 인류의 타락은 우연한 사고로 일어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오묘하신 뜻 가운데서 그렇게 예정하신 것이다.’고 하여 예정론이 주장하는 타락이 어떤 성격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은 그 타락을 명령했었음에 틀림없기 때문에, 그 타락과 관련한 하나님의 역할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간단히 말한다면 하나님은 악이나 범죄의 원인자라는 문제와 직결된다’라고 주장하다.
결론적으로 칼빈주의는 ‘하나님께서 아담의 성품을 부패케 하였다’고 골든 D.클락은 ‘장로교인들은 무엇을 믿는가?’라는 저서 106쪽에서 결론 내리고 있다.

그러므로 칼빈주의 사상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주장하는 바는 ‘하나님의 예정섭리가 타락 전에 있었다는 사실에 동의한다’는 것이며 하나님이 아담의 타락을 주도하였고, 의도하였고, 명령하였고, 작정하였고 그 작정을 그의 절대주권과 섭리의 의지로 실현시켰다는 사실을 기본 교리로 하고 있다.


(2)아담 테스트론과 아담 불순종 타락설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괴리와 허구

칼빈주의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었다는 율법 테스트는 테스트가 목적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양자택일의 기회를 준 것도 아니었다.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이미 창세 전의 불변적이고 확정으로 타락은 결정되어져 있었다. 문제는 칼빈주의 하나님의 입장에서 주어진 과제는 자신이 결정한 인간 타락을 어떻게 실현시키느냐 하는 것이 과제였다.

여기서 칼빈주의 하나님의 전능성이 발휘된다. 칼빈주의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 자신의 작정, 자신의 결정에 의해서, 그리고 자신의 명령에 의해서 타락했다는 것이 표면적으로 드러나 버리면 자신에게 치명적인 문제가 돌아올 것은 뻔한 일이었다.
그렇게 될 경우 의의 하나님으로 찬양 받고자 하는 자신의 계획과 목표가 무산되고 말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러므로 칼빈주의 하나님은 자신이 결정한 대로 인간을 타락시키되 어떻게 타락시킬 것이냐에 대한 과제가 남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전능한 칼빈주의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안한 다목적 수단이 다름아닌 아담을 시험한다는 명분하에 율법을 주어 테스트 한다며 양자택일 하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결정하고 목적한 타락을 성취시켜 주면서, 동시에 타락의 책임을 인간에게 떠 넘기고, 인간을 죄인으로 몰아 넣고, 자신은 의의 하나님으로 남으면서 찬양을 받을 수 있도록 가능케 하는 칼빈주의 하나님의 고도의 야심작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될 것이 있다. 칼빈주의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최초의 인간(아담)의 자유는 신과 같이 독립적이지 않았다.
그것은 인간의 행동에 예정된 의무를 부과한 신과 그의 결정, 그리고 섭리에 의존하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칼빈주의 하나님이 얼마나 기만적이고 위선적인 하나님이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칼빈주의 하나님이 아담에게 준 자유의지라는 것은 이미 타락으로 향하도록 조립된 절대 목적지향적으로 굳어져 있는 의지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형식적인 가면적 자유 의지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도 아담이 테스트를 받는다고 하였지만 그의 타락은 이미 칼빈주의 하나님에 의해 기정사실화 되어져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표면적으로는 아담이 테스트를 받는 것 같이 하였지만, 실은 칼빈주의 하나님이 은밀하게 자신의 목적을 기만적으로 이루어 가기 위한 절대적인 예정의 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칼빈주의 하나님이 자신이 예정하고 유일하게 결정해 놓은 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아담과 하와)이 범한 이 죄를 –이(하나님이 타락을 명령한 것)는 그것(타락)을 명령하시어(타락했다)—‘라고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인간타락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내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칼빈주의에서는 그들의 하나님이 죄의 원인자라는 것을 명백히 하고 있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에서 ‘아담의 타락이 무수한 후손을 어린아이들까지 불가피하게 영원한 사망으로 끌어 넣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 이것이 무서운 결정이라는 것을 나는 물론 인정한다. –중략—따라서 (하나님이) 스스로 그렇게 결정하고 명령하신 것이므로 (타락할 것을) 미리 아셨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고 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잘 간파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라는 휘황찬란한 휘장을 두르고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검은 원수의 정체이다.

칼빈주의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었다는 율법과 테스트가 테스트가 아니었다.
양자택일의 기회도 아니었다. 그런 것은 모두 자신의 의도를 숨기기 위한 가면적인 위장에 불과하였다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따라서 율법이야말로 순전히 인간을 타락시키고, 그 책임을 인간에게 덮어 씌우며 자신은 의의 하나님으로 남기 위한 고도의 음모였으며 책략이었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아담 테스트와 불순종으로 인한 타락 책임설이 터무니 없는 허구라는 것이다.


(3)칼빈주의 하나님이 이끌어내서 얻어낸 인간 범죄와 책임론

칼빈주의 하나님이 이와 같은 은밀한 계획인 율법을 통해 얻어낸 결과는 무엇인가?
‘범죄의 책임은 인간이 전적으로 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아담과 인간으로서는 기가 막힌 일이지만 전능하다는 칼빈주의 예정론의 하나님에게 속절없이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양자택일 하라고 한데서 타락을 선택했으니 또한 피조물이라는 한계존재로서 아담과 인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서 칼빈주의의 이와 같은 기만을 정확하게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양자택일하라고 해 놓고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느끼지도 못하고 마치 벌거숭이 임금님이 걸치고 다닌다는 그 신비한 옷감처럼 인간이 전혀 알아 차릴 수 없는 전능한 방법으로 그야말로 칼빈주의 하나님만이 알고 있고 행할 수 있는 초신비적인 섭리의 방법으로 칼빈주의 하나님은 타락을 주도해 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타락을 명령했다’라고 한다. 이 명령이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원수마귀요 기만자의 명령인 것이다.
아담의 면전에서는 양자택일 하라고 기회는 주는 것처럼 해놓고 뒤에서는 절대주권과 절대의지와 절대적 능력으로 타락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 타락을 명령하는 칼빈주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여실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참으로 정교하고 은밀하고 누가 보아도 완벽한 칼빈주의 하나님의 기만적인 계획에서 나온 대단함 묘책이었다. 따라서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하나님이라는 정체부터 먼저 분명하게 가리지 않으면 안되다.
이렇게 속인 칼빈주의 하나님은 인간에게 당당히 타락의 책임을 떠 넘길 수 있었으며, 자신이 목적한 타락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타락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낸 하나님은 창세 전에 목적한 바를 마음껏 펼쳐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 놓고 칼빈주의는 ‘어떻게 하셔서 그 죄를 범했던 우리의 첫조상(그리고 우리 자신들)에게 전적으로 그 죄책을 돌릴 수 있으셨는가?
여기에 대하여는 하나님 자신 이외에 아무도 이 엄청난 신비를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 두도록 하자’라고 하면서 ‘엄청난 신비’라는 자신들의 허구를 밀봉해 버리고 만다.


(4)죄가 율법과 관련하여 나왔다는 칼빈주의의 허구적인 주장

칼빈주의는 ‘죄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를 알기 위하여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율법과 관련하여 고찰하여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그럴듯한 수단을 제시한다. 그래서 ‘죄는 또한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아담이 율법을 어겨 불순종했다는 주장이야말로 칼빈주의가 내세우는 인간타락의 이유인데 그러나 이 주장은 칼빈주의의 섭리주의 사관에서 율법과 관련한 인간타락론은 한마디로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아담에게 율법을 주어 그 율법에 불순종했다느니, 의지의 결여라느니, 하나님의 법의 순종에 부족했다느니,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을 거스렸다느니, 인간이 교만하여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거스렸다느니 하고 말들은 하나같이 칼빈주의가 동시에 주장하고 있는 두개의 허구적인 구조에 철저히 농락당한 결과에서 나오는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칼빈주의가 동원하는 율법이라는 수단은 철저하게 타락의 책임을 인간에게 전가 시키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는 칼빈주의 하나님의 기만적 수단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

이것이 왜 기만적이냐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증거는, 인간타락이 칼빈주의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고, 또한 칼빈주의 하나님이 그렇게 좋게 여겼다는 주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기뻐하고 즐거워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자신의 은밀한 계획과 목적이 예정한대로, 작정하고 결정하고 계획한대로 나와 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래서 타락한 인간을 보면서 겉으로는 아주 진노한 것처럼 하면서 그 책임을 물어 사망을 명령하지만 뒤돌아 서서는 그렇게 기뻐하고 즐거워 하고 있는 칼빈주의 하나님의 가증스러운 두 얼굴을 보는 것이다.
모두 율법이라는 고도의 도구가 칼빈주의 하나님의 목적을 훌륭하게 성취시켜 주는 교활한 수단이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심상용 목사 (월드크리스챤성경학연구소 소장)

 


 

칼빈과 칼빈주의의 전적타락론(5대 교리)의 허구 1

 

너무나 많은 성도들을 죄에 빠지도록 명령하는 칼빈주의 하나님

 

 

* 구원받은 자를 또다시 죄에 빠지도록 계획하고 실행한다는 칼빈주의 하나님


(1) 구원 받은 성도에게 다시 죄에 빠지라고 명령하는 칼빈주의 하나님

칼빈주의 예정론에서는 충격적으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다. 구원 받은 백성들에 대하여서도 ‘죄에서 구출된 다음 구원에 대해 더욱 깊이 감사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우리가 죄에 빠지는 것을 종종 허락한다(L.B Bottner. Op. cit. p. 284)’는 교리적 주장이다.

이 주장은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5대 교리의 궁극적 구원론이 왜 허구적인 주장인가를 여실히 말해 준다. 칼빈주의에서는 구원 받은 백성이라고 할지라도 언제든지 칼빈주의 하나님이 죄 속에 들어가라고 허락하고 명령하면 죄 속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허락한다’는 말은 ‘명령한다’는 말과 같은 뜻이라는 것을 이미 밝힌 바 있다. 칼빈은 그의 ‘칼빈 예정론’이란 저서 247쪽(기독교문화협회 刊)에서 주장하기를 ‘하나님은 허용이란 단순한 허용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단순한 허용이 아니라는 것은 곧 절대적인 명령을 지칭하는 것이기에 그의 허용은 아주 특별한 의지와 뜻을 담고 있는 절대적인 것들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선택에 대한 허용도 특별하지만 타락에 대한 허용도 아주 특별한 것이라는 것이 칼빈주의이다.

따라서,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바, ‘죄에 빠지는 것을 종종 허락한다’는 것은 성도들이 죄에 빠지는 것은 칼빈주의 하나님의 특별한 명령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왜 칼빈주의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죄에 빠지게 하는 것이 특별한 명령일 수 밖에 없는가?

첫째는 창세 전에 불변적으로 결정한 절대 예정과 작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죄악 된 행위들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각기 제 위치, 아니 필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Ibid. p.287)’ (「뵈트너」p.287)이 칼빈주의의 예정론이다. 그리고 또한 개혁신학자 헤퍼는 ‘그(하나님)는 피조물들이 결과적으로 소외되고 범죄 하도록 정확히 움직이며, 그것을 통해 예정한 것을 탁월하게 성취한다(Heinrich Heppe. Op. cit. p.405)’ (「개혁파정통 교의학」p.405)고 주장한다.

두번째는 하인리히 헤퍼(H. Heppe)는 ‘개혁파정통 교의학’이란 저서 408쪽에서 ‘신이 죄를 의지한다’는 것 때문이다.
칼빈주의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요구하고 목적하는 죄와 또한 그 죄를 통해 얻고자 하는 칼빈주의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속성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하지 않고 성결한 상태를 계속함으로써 하나님을 찬양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으셨다(L. B Bottner. Op. cit. p.268)’ (「뵈트너」p.268)는 주장에서 알 수 있듯이 칼빈주의 하나님은 타락속에서 죄악 속에서 올리는 찬양과 영광을 목적으로 하고 그 영광 받으시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 인류의 타락을 칼빈주의 하나님이 기뻐하셨고 칼빈주의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다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61항에서 공식적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은 백성이라고 할지라도 칼빈주의에서는 하나님은 계속해서 죄 속에 들어갈 것을 명령하는 것이다.

‘인간이 자행한 범죄들은 하나님의 정당한 원인으로 말미암아 진행된다. 그러므로 만사의 제1원인은 하나님의 뜻이다(John Calvin. 기독교문화협회. Op. cit. p.253)’ (「Concerning The Eternal Predestination of God’ John Calvin. 한국칼빈주의연구원. 199. 3. 10. p.253」라는 칼빈주의 주장 속에는 이렇게 죄악속에 인류가 있는 것을 기뻐하여 그 속에 들어갈 것을 명령하는 사악한 하나님이 있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이 ‘인간이 자행한 범죄들’속에는 칼빈주의 하나님이 명령하고 그 범죄로 인하여 발생되는 영광을 구하고자 하는 악마적인 칼빈주의 하나님의 목적과 기쁨이 포함되어져 있다. 이속성은 분명 악마적인 논리와 속성임에도 교활하게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도용하여 그것이 의로운 일이라고 논리적 업어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2) 너무나 많은 성도들을 죄에 빠지도록 명령하는 칼빈주의 하나님

칼빈주의는 외치기를, ‘슬프게도 신자는 너무 자주 죄를 범한다(L. B Bottner. op. cit. p.218)고 주장한다.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바, 성도들이 왜 그렇게 자주 죄를 범하는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모든 것이 칼빈주의 하나님의 절대적 작정인 계획에서 나오는 것이며 그들이 주장하는 ‘인간의 죄악된 모든 행위들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각기 제 위치 아니 필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Ibid. p.267)’(「뵈트너」p.267)데서 나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또한 칼빈주의 하나님은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자신의 구원의 은혜를 더욱 감사하게 하려고 죄에 빠지도록 계획했도 죄 가운데서 올리는 영광을 받는다는 악마적 가르침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창세 전에 결정된 불변적인 계획에 따라 절대주권적인 명령으로 모든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사람들이 그 명령을 거역한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칼빈주의 하나님의 절대 예정의 계획과 명령과 계획에 도전하며 짓밟으려는 신에 대한 정면적인 도전이다.
그러므로 칼빈주의자들은 자신들 앞에 죄의 기회가 오면 하나님의 섭리와 예정에 의해 계획을 성취시켜 드려야 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죄를 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칼빈주의자들은 ‘슬프게도---‘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성도들이 짓는 죄들도 모두 칼빈주의 하나님의 명령을 이루는 것이므로 그 슬픔은 결코 실망의 슬픔이 아니다.
겉으로는 슬퍼하는 것 같이 위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칼빈주의 하나님이 전인류의 타락을 명령해 놓고 돌아서서는 자신의 영광들 드러났다고 기뻐했듯이 성도들이 범죄 하는 것을 보고서도 칼빈주의 하나님이 기뻐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그가 명령한 것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목적한 것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슬퍼할 리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무조건적으로 불가항력적으로 구원 시키는 성도들 때문에 기뻐하는 칼빈주의 하나님이지만 그렇게 구원 받는 성도들이 다시 하나님의 계획에 의하여 무조건적으로 불가항력적으로 다시 죄짓고 범죄 하는 모습을 보고 칼빈주의 신은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3)칼빈주의가 주장하는 자가당착 적인 모순된 주장

칼빈주의자 뵈트너는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하는 것은 물론 자가당착의 큰 모순이다(Ibid. p.218)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이 터무니 없는 것은 기독교인들이 죄를 범하는 것이 어떻게 자가당착의 모순인가?

그들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짓는 것도 칼빈주의 하나님이 창세 전에 절대작정으로 그렇게 계획을 세워 놓고, 지금 그렇게 명령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된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성도들이 죄를 짓는 것이야말로 계획없이 일어나는 것이므로 그렇게 된다면 그들의 계획이 불완전했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칼빈주의는 알미니안 주의를 공격할 때 ‘알미니안의 잘못된 이론에 따르면 인간이 오늘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가 내일은 악마의 아들이 될 수 있으며 자기 마음이 변하는 대로 이렇게 되었다가 갑자기 저렇게 될 수 있다는 말이 된다(Ibid. p.213, 214)’고 비판하였다. 알미니안 주의가 사람 자신에 의해서 그리 된다면 칼빈주의는 그들의 하나님에 의해 오늘은 구원 받은 백성이 되었다가 칼빈주의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내일은 악마의 종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신자들은 슬프게도 너무 자주 죄를 범한다는 주장으로 보아 그들이 그렇게 많은 죄를 다시 짓고서도 다시 하나님의 아들로 다시 회복된다고 하는 보장도 없고 또 회복 된다고 해도 또 칼빈의 하나님이 죄를 지으라고 명령할 것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칼빈주의는 자신들의 하나님에 의해 인간의 구원은 보장 될 수 없다. 더구나 칼빈의 주장에 의하면 칼빈주의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이 사탄에 의해 매일같이 온통 뒤틀려진다고 하니까 칼빈주의 하나님의 계획은 전혀 믿을 것이 못된다.
그러므로 세상의 사람들도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범죄하고 성도들도 기회가 닿는대로 어떤 죄든 죄를 지으라는 것이 칼빈주의의 메시지이다.


* 칼빈주의 5대 교리의 근거 없는 허구적 증거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튜립이라는 5대 교리의 순서를 바꾸어서 생각해 보자. 우선 제한적 선택론을 먼저 생각하고 그 다음에 무조건적 선택론을 그리고 불가항력적 구원 그리고 궁극적인 구원을 먼저 생각한 후에 마지막으로 전적 타락에 대하여 생각해 보도록 하자.

1. 5대 교리의 허구적인 주장

(1) 칼빈주의 전적타락론의 허구

칼빈주의는 허구적인 두개의 타락론을 동시에 사용함으로써 자신들의 허구를 교묘하게 피해 나가고 있다.
그 두개의 허구론이란 아담 테스트론을 통한 아담이 불순종해서 그의 무책임으로 인해 타락했다는 인간책임론의 타락설과 다른 하나의 허구는 칼빈주의 하나님이 타락을 이미 결정해 두었다는 창세 전의 예정 및 결정론(칼빈의 예정론은 그 본질이 결정론적 예정론이기에 모든 사건은 고정되고 결정된 과정들이 현실화 되는 것이다)이다.

이 두가지 허구론 가운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로 접하는 것은, 전자의 아담(인간)책임론이다. 후자의 칼빈주의 하나님의 타락 결정론은 막연히 하나님은 전능하시니까 알고 타락을 선택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정도로 치부해 버리고 만다. 하지만 칼빈주의의 이 양자의 주장들은 터무니 없는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칼빈주의 5대 교리에서 말하는 전적타락론 우리는 그 배경에 어떤 허구적인 구조와 주장이 도사리고 있는가를 냉정하게 평가하지 않으면 안된다.
칼빈주의가 말하는 전적타락이란 역시 예정론을 말하기 위한 전제조건에서 이와 같은 타락설을 말하고 있는데 뉴욕이라는 도시가 높은 빌딩이 많다고 그 도시가 대한민국의 서울이다라고 말 할 수 없듯이 칼빈주의가 전적타락이라고 말해서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전적타락이라고 말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두가지의 타락론 즉 아담책임론의 타락설과 칼빈주의 하나님의 타락결정론이라는 타락론에 대해서 이미 밝힌 바 있다. 그래서 본 란에서는 여기에 대한 언급은 재론하지 않겠다. 다만 칼빈주의가 어떤 타락설을 주장하는가에 대한 증거를 분명하게 제시함으로 인간타락이 칼빈주의 하나님에 대해 전적으로 타락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힘으로써 그 허구의 일면을 고발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전적타락에 대한 허구적인 핵심 내용 10가지만 요약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① 전적타락의 제1기초는 칼빈의 하나님이 먼저 계획했다는 것이다

전적타락은 누구에 의해 설계되고 추진되었다고 주장하는가?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전적타락의 기본명제는 타락을 하나님이 창세전에 절대주권으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칼빈주의 예정론이 주장하는 타락의 유일한 주장이며 전적타락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유일하게 결정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칼빈주의는 명백하게 타락을 계획했고 결정했다고 주장한다. ‘그(칼빈의 하나님의) 섭리는 아담의 타락과 천사들과 천사들의 모든 죄까지도 포함한다. ---그런데 이러한 죄들은 그 밖에도 명령하시고 주관하시어 그 거룩한 계획을 이루도록 하신다(「The Westminster Confession」5:4)’는 것이다.

칼빈주의에서 전적타락은 전적으로 칼빈주의 하나님에 의해 설계되었고 주도되었다고 주장한다. 전적타락론을 허구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칼빈주의의 타락론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진다. 사람이 아니라 칼빈주의 하나님 자신이다.

그리고 모든 죄가 실제로 발생하는 모든 근거가 칼빈주의 하나님에게서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칼빈주의가 자신들의 하나님이 죄와 무관하다는 주장을 빈번하게 하고 있는데 이는 좋은 것과 유리한 것은 다 취하고, 불리하고 해로운 자중은 모두 내처 버리는 논리적 기만행위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② 전적타락의 제2기초는 칼빈주의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타락은 자연발생적으로 타락했다는 것을 반대하고 또한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타락했다는 것도 반대한다.
가끔 칼빈주의도 이와 같이 자유의지나 자연발생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자신들의 타락을 위장하기 위한 가면적인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칼빈의 장로교가 주장하는 타락은 전적으로 칼빈의 하나님에 의한 주권적 의지에 의한 타락을 말한다.

‘인간이 받은 저주에 대해서 스스로가 책임이 있다고 할지라도, 타락 그 자체는 하나님에 의해 명령된 것임에 틀림없는 것이다(강정진. Op. cit. 178)는 전제하에 주께서는 멸망으로 갈 줄을 분명히 미리 아신 자들을 창조하셨다. 주께서 그렇게 하시고자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Calvin op. cit. Vol. 3:23:5)’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Vol III. 23:5)라는 것이 칼빈주의 기본 개념이다.

따라서 칼빈주의에서 말하는 유일한 타락설은 칼빈주의 하나님이 인간은 타락으로 갈 수 밖에 없는 특성과 존재로 창조하였다.
사람들은 그러한 음모적 예정의 비밀을 알지 못하도록 창조하였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칼빈주의 하나님은 인간을 이미 타락하도록 하였으며 그의 타락의 목적을 성취하도록 그렇게 창조하였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결정과정과 주도적 과정을 통해 이룬 것이 전적타락이었음을 칼빈주의는 말한다.


③ 전적타락의 제3기초는 칼빈주의 하나님의 작정의 실행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칼빈주의는 인간타락이 인간내부에 있어 그 어떤 원인에 의한 타락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한다.
‘칼빈은 인간타락의 궁극적 원인이 인간 자신의 내부에 있다는 것을 반대한다. 비록 인간이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타락했다고 해도,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타락한 것은 아니다(강정진. op. cit. p.177)라는 것을 강력한 기본사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면 칼빈주의는 무엇으로 타락했는가?
‘최초의 인간(아담)의 자유는 신과 같이 독립적이지 않아다. 그것은 인간의 행동에 예정된 의무를 부과한 신과 그의 결정, 그리고 섭리에 의존하였다(Heinrich Heppe. Op. cit. p.362)’는 것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하면 하나님은 큰 역사의 윤곽만 제시하고 그 구체적인 것은 다른 운동체들에 의해 진행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으나 섭리의 정확한 개념은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의지와 개입이 가장 확실하다는 것이 섭리예정론의 특징이다.

거기에는 인간의 자유의지란 전혀 개입되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 정확하고 확실하게 칼빈주의 하나님이 개입하였다는 사실을 주장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칼빈신학자로 명성이 있는 박형룡은 ‘하나님의 섭리가 죄를 허용하려는 그의 작정의 실행을 포함한다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朴亨龍 博士著作全集」 朴亨龍 韓國基督敎敎育硏究院. 1988. 3. 15. p.432)’고 하였다. 이는 하나님의 전적인 지배와 의지에 의해서 타락하였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④ 전적타락의 제4기초는 칼빈주의 하나님의 확실한 개입으로 이루어졌다는 주장이다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전적타락의 특징은 칼빈주의 하나님이 단순히 지켜보는 것으로 이끌어낸 타락이 아니다. 칼빈주의 하나님의 확실한 개입으로 진행되어졌음을 말한다. ‘아담의 타락에 대한 신의 관계는 한가한 방관자의 태도가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능동적인 허용과 결정을 통해 그것이 <직접> 일어나도록 하였다(Heinrich Heppe. op. cit. p.450)’는 것이다. 이것은 칼빈주의가 자신들의 하나님이 인간의 타락을 단순히 지켜보는 정도에서 이루어진 타락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으로 개입하여 이끌어낸 타락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인간의 죄행 역시 하나님의 허락 하에서만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허락은 단순한 허락만이 아니다. 왜냐하면 단순한 허락만으로는 그 죄된 행위의 확실성 즉 그 죄악의 완전한 실현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L.B Bottner. op. cit. p.266, 267)고 한다. 그래서 칼빈주의는 이렇게 주장한다. ‘물론 타락의 가능성은 그가 인간 자신을 만들 때 신에 의해 주어졌다(Heinrich Heppe op. cit. p.448)는 것이다.

칼빈주의 하나님이 아담을 시험한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행위였으며, 동시에 인간의 전적타락은 칼빈주의 하나님에 의해 주도되고 계산된 아주 은밀한 조작이었는가 하는 것이 다시금 확인된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그 개입의 구체성을 칼빈주의는 주장한다. ‘의심의 여지없이, 신은 그의 섭리 가운데서 이 최조의 인간의 타락에 개입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틀림없이 영원 전부터 예지되었으며, 아무도 그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Ibid. p.448).’고 주장하는 칼빈주의이다.


⑤인간이 전적타락한 것이 칼빈주의 하나님에게 이로웠다는 칼빈주의 사상

칼빈주의는 ‘주님께서 아담이 타락하는 것이 이롭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에 첫번째 사람이 타락하도록 하신 것이다(John Calvin. 기독교문화협회. Op. cit. p.328).’고 말한다.
이는 인간의 타락이 인간에게는 파멸이고 사망이지만 칼빈주의 하나님에게는 이로운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타락을 명령했고 이루어 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적 결과, 칼빈주의에서는 칼빈주의 하나님이 보는 타락과 사람들이 보는 타락에 대한 시각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칼빈주의에서, 모든 인류는 칼빈주의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모두 파멸당해야 하고, 사망과 죄악속으로 들어가야 하고, 죽으라면 전 인류가 칼빈주의 하나님의 말 한마디에 다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주도하는 죄악에 들어가라고 하면 영락없이 들어가 죄로 덮어 서야만 하는 전적타락을 당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명령으로 인간은 죄악된 세상에 들어와 죄를 덮어 쓰며 죄인이 되었으면서도 이를 주도한 한 칼빈주의 하나님을 의의 하나님으로 찬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강도 두목의 명령으로 강도질을 해오고도 피조물인 까닭에 강도 두목을 의롭고 위대한 영도자로 찬양해야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⑥칼빈주의 하나님이 죄의 원인자라는 칼빈주의의 교리와 사상

칼빈주의는 칼빈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까지도 타락을 계획하고 명령한 하나님을 죄의 원인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외치기를 ‘칼빈주의자들이 아닌 그리스도인일지라도 하나님이 어떤 의미에서는 죄의 원인자(Cause of Sin)이시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Gordon H. Clark. Op. cit. p. 58)’ 주장이 그것이다.

칼빈주의가 이렇게 외치는 저의를 간파하지 않으면 안된다.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신이 누구이며 그들이 왜 이렇게 외치고 잇는가를 직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성경에서 죄의 원인자가 누구라고 외치는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인가? 아니면 원수마귀라는 존재인가? 칼빈주의가 외치는 전적타락은 그들의 신에 의한 전적타락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칼빈주의가 외치는 전적타락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죄의 원인자로서의 칼빈주의 하나님은 성경적으로 원수마귀라는 것으로 성경이 말하고 있기에 성경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은 칼빈주의의 가르침을 배격해야 하며 그들의 신을 추방해야 한다는 것을 결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⑦ 그래서 악이 칼빈주의 하나님에 의해 발생된다는 칼빈주의 사상

칼빈주의는 악이 피조물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악이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것을 주장하는 반성경적 신앙단체라는 것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칼빈이 강력히 주장하는 바 ‘사람이 하나님을 배반한다고 하는 그 악은 어디서 왔는가?

창조(피조물)에서 왔다고 우리가 생각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는 그(칼빈의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에 대해서 시인하는 도장을 이미 찍어 놓았다(Calvin. Op. cit. Vol 3:23:8)’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악마적인 주장이다.

성경에서 가라지가 누구에게서 나왔는가를 생각하면 칼빈주의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칼빈주의는 악이 자신들의 하나님이 악이 있으라고 해서 악이 있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만일 하나님이 악이 발생하도록 허용하지 않으셨다면 악이 발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악이 발생하도록 허용하시기로 작정하셨다는 사실을 의미할 뿐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악이 발생하도록 허용하지 않으셨다면 악이 발생하도록 허용하시기로 작정하셨다는 사실을 의미할 뿐이다(R.C. Sproul. Op. cit. p.24)’는 것이다.

이렇게 악을 하나님에 의해 발생하도록 도장을 찍어 놓았다는 칼빈주의 하나님을 빋고 있는 것이 칼빈주의이다. 악을 나오도록 한 하나님은 인간을 전적으로 타락시킨 사악한 하나님이다.


심상용 목사(월드크리스챤성경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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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총신대학교 정성구 총장에 의하면, 장로교가 떠받치고 있는 시조 칼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의미있는 지적을 하였다.

‘칼빈은 로마 카톨릭의 분위기에서 성장한 칼빈이 언제 회개하고 개종했는지는 분명한 기록이 없다’라는(鄭聖久, '칼빈주의 思想大界' 總神大學出版部, 1995, 2, 28. p.74) 사실이다. 이것은 실로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엄청난 제국종교의 위인으로 추앙받으면서도 칼빈이 결정적으로 성경이 요구하는 회개하고 거듭났다는 사건이나 기록이 없다는 사실이다.

만약 칼빈이 성경적 요구대로 거듭났다면 이것은 자랑할만한 일이며 칼빈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으로 보아 그의 거듭남에 대한 엄청난 사건은 칼빈주의자들의 기념비적인 일로 선전되고 기억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밝히고 찾아보아도 칼빈이 회개하고 거듭났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카톨릭이 그러했듯이 수많은 사람들을 살상했고 그를 추종하는 수많은 칼빈주의자들 역시 그와 같이 수많은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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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려는가?
아니면 종교망나니 칼빈과 칼빈주의를 따르려는가?

이제 예수님을 사랑하는 예수중심,성경중심인 우리한국 장로교도들은. 아직도 한국교계에 기생하는 허구적인 칼빈[살인마]장로교를 , 예수님만이 오직 구주가 되시는 성령 장로교 혹은 예수 장로교로 개혁해야 할 역사적 사명이 있음을 자각하여한다.

이제부터는 사이비 종교 개혁(?)자인 칼빈과 칼빈주의를 철저하게 배격해야 할 것이며, 허구적인 칼빈주의 교리를 답습하여 종교 바벨탑을 쌓고 밥벌이 하며, 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파괴시키고자 하는 칼빈 망나니들이 한국 교회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깨어서 기도해야 할 것이다. 또한 강력한 교회 정화 운동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