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구원보장론, 성도의 육신대로 삶 감당 못해

 

성령 충만으로 성령의 능력을 입어 매일 같이 성화의 삶 살아야

 

칼빈의 구원보장론의 근거

칼빈은 자신의 구원의 보장(security of salvation)을 믿지 않는 신자는 신자가 아니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로마서 8장 38절을 든다(Institute Book III , Chapter 2, 16).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그는 믿음은 다음의 성경 말씀에서 안전과 보호를 발견한다고 말한다(Institute Book III , Chapter 2, 37).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시(시 46:1~2)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찌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3)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시 3:5)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너희가 원치 아니하고(사 30:15)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한고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한고로 너희를 쫓는 자가 빠르리니(16).

 

구원보장론이 감당 못하는 성도의 육신대로 삶

위에서 보는 바 칼빈이 구원의 보장의 근거로 든 위의 성경 말씀은 신자가 외부적인 환경이나 사탄의 공격에 처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신자를 보호하고 지켜주심을 말씀하는 것이지 아직도 남아 있는 죄성 때문에 신자 스스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거절하고, 육신대로 사는 죄를 범하는 것에서 신자를 보호하신다는 말씀이 아니다.

신자는 환경의 변화나 사탄의 공격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 밖으로 나갈 수 있음에 못지  않게 육신의 장막을 입고 사는 동안 벗어날 수 없는 죄성에 굴복하여 예수 그리스도 밖으로 나갈 가능성이 큼에 유념해야 한다.

야고보서는 의로운 자를 영적 사망으로 인도하는 죄 짓는 과정을 갈 가르쳐 준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4~15).

또 아래의 성경 말씀은 칭의 구원을 받은 신자 성령의 인도를 거절하고 죄를 지어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음을 잘 가르쳐 준다.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배후 2:20).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히 6:4)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5)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6)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7)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8).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히 10:26)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27).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열 처녀도 하나님께서는 쫓아내신다. 예복을 갖추지 않은 준비되지 않은 하객은 밖으로 쫓아내신다. 빚을 탕감 받았던 자도 그의 악한 행위로 감옥에 가두신다.

성경은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 3:11)고 당부한다. 이 당부는 굳센 믿음으로 성화의 삶을 사는 데 애쓰는 자는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심으로 구원의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지만, 스스로 말씀대로 사는 성화의 노력을 게을리 하는 자는 구원을 상실할 수 있음을 가르친다.

매일같이 성령 충만을 간구함으로 성령의 능력을 입어 말씀에 순종하는 성화의 삶을 살려고 애쓰는 신자라야만 구원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다.

 

김병구 byngkukim@hotmail.com

뉴스앤조이 2005년 02월 04일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은 잘못된 이해"

 

사랑이 없는 믿음은 구원을 상실하고 영생도 잃어…구원이 곧 영생은 아니다.

 

'구원'(救援)이란 첫째는 죄의 자리 또는 세속의 자리에서 의의 자리 또는 낙원의 자리로 이동을 합니다. 둘째는 죄인의 신분에서 의인의 신분으로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의 이름에서 암시하듯이 '죄'로부터의 건짐이라는 의미의 구원이지, 구원이 곧 영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성경을 이해하면 구원과 영생의 구분과 그 의미에 차이가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에는 두 종류의 믿음이 있습니다. 첫째는 내가 예수님을 믿으면 복(福)을 받겠다는 기대감으로 시작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자신의 선택과 의지와 신념으로 가능합니다. 교회는 이런 믿음의 소유자가 의외로 많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런 믿음의 소유자는 사단을 숭배하는 우상의 종교심이기에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선택권 안에서 은혜로 선물을 받은 믿음입니다(엡 2:8).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얻은 사람은 구원을 얻은 사람들이며 그의 영혼이 자유와 평화를 누리게 되어 마음에 감사와 기쁨이 넘쳐서 그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사랑'이란 두 개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인격적인 의미로써 나 자신과 타인을 위해 덕(德)을 쌓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그 덕을 베풀며 사는 것이라 합니다. 이 사랑의 요소는 사랑의 열매(고전 13:4~7)와 성령의 열매(갈 5:22~23)에서 보듯 오래 참음, 친절함, 시기하지 않음, 자랑하지 않음, 교만하지 않음, 무례히 행치 않음, 사욕(私慾)을 품지 않음, 화를 내지 않음, 앙심을 품지 않음, 이기적이지 않음, 모든 불의(不義)를 물리침, 항상 기뻐함, 화평을 사랑함, 선행을 좋아함, 거짓과 꾸밈없이 진실함, 모든 사람에게 너그러움 그리고 모든 덕을 위해 절제의 생활을 함 등입니다.

성경은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가능하다고 가르칩니다. 여기서 '의(義)롭게' 된다는 것은 '정의롭게 된다' 또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며, 바로 이런 사람이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 즉 영생(永生)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은 잘못된 이해입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은혜로 믿음을 얻은 사람들 중에서도 구원을 상실하고 영생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21~23, 25장 31~46의 말씀을 주의 깊게 묵상해 보십시오.

구원을 얻고 그 구원을 보존하는 방법은 새 계명인 '서로 사랑하라'를 실천하는 방법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를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신 말씀은 산상수훈의 말씀이며 몸소 보여주신 예수님의 삶의 모습입니다. 사랑은 구원의 완성이며 영생의 근거가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웃을 찾아가서 경험한 기쁨과 감사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증거하며(눅 4:18~19,행 1:8) 아울러 모든 약자를 긍휼의 마음으로 돌보게(Care) 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며 또한 거듭날 수 있으며 그리고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행위)으로 영생에 들어가게 됩니다. 여기서 '믿음'과 '거듭남'과 '의'(義)를 단단한 호도의 껍질에 비유한다면 '사랑'은 그 알맹이로 볼 수 있습니다. 호도의 껍질은 그 자체의  존재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알맹이를 위해서 존재할 뿐입니다. 알맹이가 필요한 것이지 껍질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알맹이는 껍질의 절대적인 보호가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껍질과 알맹이는 하나의 몸체이며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믿음'과 '거듭남'과 '의'는 '사랑'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결국 '사랑'이 믿음의 목적이요, 거듭남의 목적이며, 의(義)의 구체적인 실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에 천국에 입성(入城)하는 것은 오직 '사랑'뿐입니다. 믿음도 소망도 거듭남과 의도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만 필요한 것입니다(고전 13:13). 

다시 말하거니와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며 사랑으로 영생에 들어갑니다. 믿음과 사랑(행위)은 처음부터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랑을 분리시키고 믿음만을 붙들어 왔습니다. 구원이 곧 영생은 아닙니다. 사랑(행위)이 없는 믿음은 결국 구원을 상실하고 영생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사랑 없는 믿음은 사단을 숭배하는 이방 종교의 실체이기 때뿐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사랑'은 하나님의 형상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기준은 언제나 하나님·예수 그리스도께 두어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그 은혜의 보답으로 이웃을 향한 사랑과 봉사의 삶으로 일관하는 '작은 예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은 구원의 완성이며 영생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문(門)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의 길을 몸소 보여 주셨는데 믿음을 나의 기복과 구원을 얻는데 이기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 분의 뜻과 역행하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믿음도 없는 것이며 또한 인생 자체도 의미가 없으며 영생도 없습니다.

 

김영찬 목사 / 수원샘물교회  

뉴스앤조이 2005년 02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