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예정론

 

성경을 잘못 가르치면 영원히 멸망합니다. 예정론을 배우는 신학교 내에서도 ‘사람들이 미리 예정되어 있다면 무엇하러 전도를 하느냐? 전도할 필요가 없지않느냐?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신다는 말씀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이 아니냐?’ 등의 질문들과 ‘하나님이 절대 주권으로 예정하셨으니 사람들이 불평할 수 없다. 정 궁금하면 천국에서 물어보라.’라는 식의 대답으로 많은 변론이 되고 있습니다.

1..먼저 성경에 나와 있는 각각의 개인구원에 관해 구체적으로 설명한 말씀들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다른 번역에는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

택한 사람만 영생을 얻을 수 있다거나 택한 사람의 죄만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구원은 각 개인의 문제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마 18:14)

2.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한 사람도 잃어지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감리교회의 교리가 더 성경적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딛 2:11).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허락된 것입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하루가 천년같이 천년이 하루같이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것은 모두가 회개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오래 참으심 안에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아직도 주님이 재림하시지 않는 것은 죄인이 회개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회개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가룟 유다도 끝까지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끝까지 배척했습니다. 만약 유다가 자살을 하지 않고 주님의 부활 때까지 기다렸다면 주님이 유다에게 나타났을 것이고 후에 훌륭한 사도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유다는 자기 죄만 큰 줄 알았지 주님의 사랑이 큰 줄은 몰랐습니다.

주님은 죄인이 회개하기를 오래 참고 기다립니다. 그러나 주님은 무한정으로 기다리시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이 구원받을 사람을 미리 정해 놓으시고,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기다리신다면 모순입니다. 하나님은 모순이 있는 분이 아닙니다. 정당하게 일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의 문제는 개인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3. 그렇다면 예정론은 어떤 말씀에서 나왔을까요?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4-5)

이 말씀은 언뜻 보면 하나님이 택하고 예정한 사람이 구원받는 것처럼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예정한 것은 ‘각 개인’이 아니라‘우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정론을 믿으면 천국에 간다는 말이 없습니다. 거듭나야 천국에 간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위의 말씀을 붙잡고 예정론을 굳게 믿고 있어도 거듭나지 않으면 지옥에 갑니다.

4. 그렇다면 예정론의 오래를 불러일으킨 위의 말씀의 참 뜻은 무엇일까요?

에베소서는 소아시아의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바울의 서신서인데, 그 주된 내용은 이렇습니다.

에베소서 1장은 교회는 창세전부터 예정되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에베소서 2장은 하나님의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몸을 이루어서 된 것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에베소서 3장은 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이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은 하나님의 교회 안에는 하나님이 세우신 사역자들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사역자들을 통해서 성도를 온전케하고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교회)을 세워갑니다.
에베소서 5장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설명했으며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됨을 강조했습니다.
에베소서 6장은 교회는 마귀와의 싸움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종합해보면 에베소서는 교회가 무엇이라는 것을 설명한 것입니다.

그중 에베소서 1장을 잘못 해석하여 예정론의 가장 큰 기초로 만들었고, 수많은 사람을 지옥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4-5절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말합니다. 창세 전에는 우리는 없었고 그리스도만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사람들이 ‘우리’ 곧 교회를 이룰 것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특별한 집회가 예정되어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이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예정에 참여한 것이고 참석하지 않은 사람은 예정에 참여한 것이 아닙니다. 참여하고 참여하지 않고는 개인의 문제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은 예수님의 구원하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실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녀들로 말미암아 교회를 이루시는 이 예정 안에 구원받은 각 개인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6)

위의 거져 주시는 은혜는 구원받은 사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또한 시간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무리들 전체에게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정리하면 위의 에베소서 1장 4-6절의 말씀은 교회를 택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과는 관계가 없는 말씀입니다.


결론적으로 성경에서 예정된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시겠다는 약속과 "교회"를 예정하신 것이지 누구는 태중에서 천국으로 예정되었고, 누구는 태중에서 지옥으로 가기로 예정되었다고 가르치는 장로교의 예정교리는 불완전한 교리이므로, 폐기되어야 한다.

옮긴글

 


 

칼빈은 교부신학자들의 신학을 바탕으로 성경을 극단적으로 해석해서 교인들에게 많은 혼란을 주고 있습니다.

 

딤전 2/4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요한 3/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whosoever) 그의 독생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십니다.

하나님의 구원 예정은 '폭군적 예정'이 아니라 '예지 예정'입니다.

즉, 미리 아시고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고전 2/14 그러나 자연인(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일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일들이 그 사람에게는 어리석게 여겨지기 때문이요, 또 알 수도 없나니 이는 그 일들이 영적으로만이 분별되기 때문이니라.

유다서 1/19 그들은 분파를 만드는 자들이요, 관능적인 자들(육에 속한 사람)이며, 성령이 없는 자들이니라.

고전 3/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영적인 사람(영에 속한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말할 수 없어서 육신적인 사람, 즉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기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이 세상에는 육에 속한 사람이 있고, 영에 속한 사람이 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세상적인 것(돈, 명예, 쾌락, 유행)에만 관심을 갖기 때문에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반면 영에 속한 사람은 이 세상에 잘 동화되지 않고, 진리를 사모하며, 양심이 살아 있고, 복음을 받아 들입니다.

따라서 복음이 믿어지고, 하나님을 사모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정하신 자이기 때문에 자신이 선택 받지 않았는지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로마서 10/9 네가 네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누구든지 예수님을  유일한 구원주로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으로부터 택함과 예정을 받았느냐에 대한 조건은 없습니다.

또한 그러한 사항은 내가 알 수도 없는 사안입니다.

 

로마서 8/29~30 그분께서는 미리 아신 자들을 자기 아들의 형상과 일치하게 하시려고 또한 예정하셨으니 이는 그를 많은 형제 가운데서 첫태생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리하여 예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시고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로마서 10/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한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로마서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니라.

내가 믿음을 갖게 되고 구원 받는 모든 과정은 하나님의 계획 하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형상을 이루기 위해 미리 아시고 정하신 자들을 예정하셨습니다.

그들을 많은 형제 가운데 첫 태생이 되게 하려고 복음 전파자들을 통해 부르십니다.

부름 받은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을 가짐으로써 의롭게 됩니다.

그리고 의롭게 하신 이들을 중생, 성화를 거쳐 영화롭게 하십니다.


요한 10/11~12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내어 놓으나, 삯군은 목자가 아니요, 양들도 자기 양이 아니므로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려두고 도망치느니라. 그리하여 이리가 양들을 채가고 흩어지게 하느니라.

요한 10/26~28 너희가 믿지 아니 하는도다. 이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가 내 양들이 아니기 때문이라.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르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그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또 아무도 나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할 것이니라.

마가 8/34~35 주께서 무리를 제자들과 함께 불러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누구든지 자기 생명을 구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잃으면 구하리라.

예수님은 양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 주신 선한 목자이십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정하신 영에 속한 사람은 예수님의 음성을 알아 듣고 따르게 되며, 아무도 빼앗지 못할 영생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선 내가 가진 것들을 버리고, 자신의 존재조차도 부인하며, 자신의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오히려 영혼을 잃게 되고,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여 자기 생명을 잃고자 하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됩니다.

따라서 영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과 예수님의 특별한 인도 하에 구원에 들어서지만 이에 상응하는 최소한의 도리와 책임을 다할 때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거스틴-칼빈을 일컬어 기독교 진리의 전달자라고 하는데, 이대 교목이셨던 조찬선 목사님은 자신의 저서 ‘기독교죄악사’에서 “칼빈은 구원받지 못한 죄인”이라고 하셨다.

칼빈은 제네바 치리 시절, 16,000여명의 제네바시민들을 종교적철권으로 통치하였다.
카톨릭이 거의 천년이 되어 자행한 화형을 불과 100년도 못되어 개신교의 이름으로 자행한 장본인이니 곧 삼위일체와 유아세례를 반대하던 세르베투스를 화형시킨 것이었다.
그전부터 칼빈은 세르베투스가 자기 눈앞에 나타나면 살려두지 않을 것이라 장담하였으며 세르베투스가 자신의 예배에 참석하자 그를 곧바로 체포케하여 화형시키도록 압력을 행사하였다.

그리고는 기독교 강요 초판에 실었던 내용, 종교와 교리가 다르다고 해서 사람을 죽여서는 안된다는 내용을 슬그머니 삭제하였다.

그는 예배에 참석치 않은 자를 금식케하고 벌을 주고 카드놀이 했다고 채찍으로 때리고 자신을 위선자라고 했다고 혀에 꼬챙이를 꽂아 기둥에 묶어 죽이고 자신에게 반대하는 모든 자들을 추방 혹은 사형시키며 개신교 역사에 유래없는 신적권력을 향유하며 피의 보복을 즐겼다. 그런 자가 어찌 성령을 따르는 자이리요.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렘5:31)는 성령의 말씀은 오늘날 한국교회 칼빈의 후예들에게도 동일하게 임하고 있다.

옮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