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2사단의 후방 배치에 따른 군사 전략적인 변화와 미국의 대 한반도 정책

 

남한의 안보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미군 2사단의 후방 배치가 기정 사실화 되면서 많은 분들이 염려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관료주의적인 체제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비해서 수 년전부터 준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2사단의 후방 배치는 앞으로 일어날 북한과의 전쟁을 대비해 북한의 재래식 폭격 사정권에서 벗어나려는 것입니다.
미국의 현대전 전략은 희생이 큰 직접적인 대응을 자제하고 초기에 폭격으로 상대방을 제압한 후 진격하는 것입니다.
 

* 목차

1. 미 2사단의 전투력

2. 미 2사단 후방 배치에 대한 전략적인 평가

3,  미국의 한반도 정책

 

1. 미 2사단의 전투력

미 2사단은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는 주한 미군의 핵심 병력니다.
미 8군의 편제에는 기병여단(공격헬기여단)과 항공여단(수송헬기여단)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미국 육군의 기병부대는 전차와 장갑차, 헬기로 무장한 기계화부대입니다.
그런데 8군 예하의 6기병여단만은 공격헬기로 구성된 항공부대입니다. 

기병여단에는 24대의 AH-64 아파치 공격헬기로 무장한 두 개의 대대와 이 대대를 지원하는 대대가 배속돼 있습니다.
항공부대인 17항공여단은 공중강습대대를 태우는 UH-60 기동헬기대대와 CH-47 기동헬기대대, 그리고 이들을 지원하는
대대로 구성돼 있습니다.
16기병여단은 공격헬기 여단이고 17항공여단은 기동헬기 여단인 것입니다.
이러한 8군의 항공부대와 별도로 2사단도 항공여단을 갖고 있습니다.

2사단의 항공여단은 AH-64 아파치 공격헬기 24대로 편성된 ‘공격헬기 대대’와 공중강습대대원을 태우고 적 후방으로
날아가는 UH-60 기동헬기 59대로 편성된 ‘기동헬기대대’, 그리고 M1 전차 27대와 M2 브래들리 장갑차 16대, OH-58D
정찰헬기 16대, M106 경(輕)장갑차 6대로 편성된 ‘기병대대’로 편성돼 있습니다.

8군과 2사단의 항공부대를 합치면 주한 미육군의 항공전력은 공격헬기3 개 대대(여단 규모), 기동헬기 3개 대대, 그리고
기병대대 1 개와 2 개의 지원 대대로 정리되며, 이러한 항공력은 대단한 힘을 발휘합니다.

공격 헬기대대는 4개의 공격 헬기중대로 편성되는데, 아파치 헬기 4대로 편성된 공격헬기중대는 여단 규모의 적
기계화부대를 괴멸시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공격헬기대대는 사단 규모의 기계화부대를 초토화 시킬 수 있습니다.
8군과 2사단은 도합 세 개의 공격헬기 대대를 갖고 있으니 주한미군은 군단 규모의 북한군 기계화부대를 ‘고철’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8군과 2사단이 갖고 있는 3개의 기동헬기대대는 2사단 2여단 예하의 두 개 공중강습대대원을 적 후방 60∼ 100km 지점에
투하시켜 적의 퇴로를 차단하는 작전을 합니다.
그와 동시에 8군과 2사단이 갖고 있는 세 개의 공격헬기대대와 2사단 1여단, 그리고 한국군 기갑여단이 남침하는 인민군을
몰아붙히는데 이것이 현대 지상전의 총아인 입체고속기동전입니다.

8군과 2사단은 항공부대만으로도 북한의 군단급 이상 부대를 괴멸시킬 능력을 갖고 있어 북한군이 섣불리 남침하지 못하게
억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외 8군은 유사시 한국으로 증원돼 오는 6개 사단에 대한 보급을 책임지는 19지원사령부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미 8군이 작전통제하는 부대 중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것이 501군사정보여단입니다.
한국군은 군사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국군정보사령부를, 군사기밀 유출을 막기 위해 국군기무사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미국 육군도 정보보안사령부(INSCOM: Intelligence and Security Command)를 운용합니다.
미국 육군의 정보보안사는 한국군의 정보사와 기무사, 그리고 통신감청부대인 777부대를 합쳐놓은 것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미국 육군의 정보보안사령부는 미국을 포함한 네 나라에 다섯 개의 ‘지역 군사정보부대’를 두고 있습니다(미국에는 두 개).

이러한 지역군사정보부대 중의 하나가 바로 한국에 와 있는 501군사정보여단입니다.
501군사정보여단은 다양한 장비를 활용해 정보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수집한 정보는 한국군 정보사와 777부대, 한국의 국가정보원, 북한 통신을 감청하기 위해 미국의 NSA(국가안보국)가
한국에 파견한 SUSLAK, 그리고 오산에 있는 미 공군 5정찰대대가 U-2기로 찍어온 사진과 미 공군이 운용하는 첩보위성으로
찍어온 항공사진과 합쳐져 북한을 분석하는 핵심자료가 됩니다.

이러한 정보활동이 있기 때문에 주한미군은 북한군이 전쟁을 일으킬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8군의 전투력뿐만이 아니라 정보 분야에서도 강합니다.
우리나라가 501군사정보여단과 같은 정보부대를 운영하려면 500억 달러가 소요된다고 합니다. 

 

2. 미 2사단 후방 배치에 대한 전략적인 평가

주한미군의 지상군 주력부대인 미2사단의 한강 이남 감축·재배치는 더 이상 가능성이 아닌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서울 용산의 주한 미8군과 의정부, 동두천 등지에 기지를 갖고 있는 미2사단이 단계적으로 한강 이남으로 재배치될 예정입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북한 영변 핵시설을 겨냥한 정밀 폭격을 위한 사전 포석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2003년 찰스 캠벨 미8군 사령관은 주한미군 고위 지휘관으로는 처음으로 주한미군의 감축·재배치 방침을 공식 표명했습니다.
그의 발언은 지상군에 의존한 육군보다는 미사일이나 첨단 전투기를 동원하여 신속하고 직접적인 폭격이 용이한 해·공군
전력을 앞세운 운용체제로 바꾸어 나가겠다고 줄곧 공언해온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의 해외 파병 미군 재배치
운용과도 맥락을 같이 합니다.
이로써 50년 넘게 지상군 위주로 유지되어 온 주한미군 편성과 유사시 한미연합 군사작전 수행의 기본 틀까지도 변화가
불가피해지고 있습니다.

주한미군의 감축·재배치는 한미연합사령부가 설정해 놓은 작전 계획의 수정 또는 변경으로 직결됩니다.
올해 초 한·미 양국군이 새로운 작전 계획(작계) 5027 수립에 착수한다고 발표함에 따라 한반도 안보 환경은 일찍이 변화가
예고 되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미국의 군사전문 웹사이트 글로벌 시큐리티에서 한반도 전쟁 발발에 대비해 짜놓은 한미연합사의
작계5027이 공개되어 큰 충격을 던져 주었습니다.   

작계5027은 국군의 작전 계획이 아닌 미군의 작전 계획입니다.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은 전 세계를 5개 지역으로 분할하여 5대 통합 전투사령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대비해 각각의 통합 전투사령부는 관할하고 있는 지역에 맞는 작전 계획을 마련해 두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작계 5027입니다.

작계5027은 유사시 북한의 남침도발이 감행될 때 주한미군이 공격을 받게 될 경우 미군이 자동적으로 전쟁에 개입하여
한미연합사령부의 작전 통제권 아래 전면전을 대비한다는 한반도 전쟁 수행 계획입니다.
한반도에서 주한미군과 한국군이 방어를 하는 동안 미 본토로부터 69만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북한군을 완전히 격퇴한다는
것이 작계5027의 기본 골격입니다.
1974년에 처음 작성되어 2년마다 수정되어 온 작계5027의 2002년 판에는 북한의 김정일 제거와, 한국 정부와 상의 없이
북한을 선제공격할 수 있다는 계획을 추가로 상정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미 국방부에 의해 새롭게 보강된 ‘작계5030’이 미 시사주간지 <유에스뉴스 앤드 월드리포트> 7월 21일자에
보도돼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대규모 군사작전을 기본 틀로 하는 작계5027과 달리 작계5030은 대북 심리전에 주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작계5030을 대략적으로 살펴보면
▶북한의 항공 연료 소모를 유도하는 근접 정찰 강화
▶무기수출 등을 해상 봉쇄하여 자금원 차단
▶전단 살포나 허위 정보를 북한 내부에 흘려서 대규모 탈북 유도 또는 고위층 인사의 귀순 조장
▶북한군의 경계 태세를 흩트리기 위한 한반도 주변 기습 기동훈련 강화 등 심리전을 한층 강화했습니다.  

그러나 작계5030은 해상봉쇄와 심리전 위주의 보조적인 작전 계획일 뿐이고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났을 때
북한군과의 전면전을 대비한 대규모 군사 작전 계획은 작계5027에 담겨 있습니다.

현재 작계5027에 비추어 보면 주한미군 미2사단은 한반도에서 전쟁 억제력의 핵심 축입니다.
주어진 임무는 서울과 수도권을 방어하는 것으로 한국군 3개 군단을 능가하는 전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북한이 오래전부터 대남 심리전으로 주한미군 철수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군사전문가인 예비역 대장 백선엽 씨는 “미2사단의 후방 재배치는 곧 최전방 방어의 공백을 가져와 북한군의 도발을 유도할
수 있다”며 미2사단의 재배치 논의는 철회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대부분의 군사전문가들이 미2사단의 ‘인계철선(Trip-wire)’ 역할을 강조하며 후방 재배치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인계철선이란 클레이모어 등 폭발물과 연결돼 건드리면 자동으로 터지게 하는 폭발 철선 장치를 가리키는 군사용어로서,
북한이 남침할 경우 휴전선 바로 남쪽에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이 자동적으로 전쟁에 개입하게 된다는 의미로 사용돼
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4월 20일 TV방송을 통해 리언 라포트 한미연합사령관은 “인계철선은 부정적인 용어이고 미2사단에게는
모욕적인 발언”이라고 규정하면서 “인계철선은 파산한 개념이다.”라며 강한 거부감을 표시했습니다.
토머스 하버드 주한 미국대사 역시 “인계철선 개념은 마치 미군이 공격받을 때까지 속수무책으로 기다리는 것처럼 비치므로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주한미군 측이 인계철선론을 부정하면서 미2사단을 한강 이남으로 재배치하려는 본래의 의도는 가공할 북한군의
재래식 포격 사정권의 표적에서 벗어나려는 데 있습니다.
용산 미군을 제외하고는 미2사단 사령부(캠프 레드클라우드)를 비롯해 항공포병여단(캠프 스탠리), 하사관학교(캠프 잭슨)
등이 의정부에 자리하고, 동두천에는 미2사단의 기계화부대(캠프 케이시)가 서울 북부 지역을 둘러싸고 주둔해 있습니다.

미사일과 달리 포격을 요격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북한군이 불시에 전쟁을 개시할 경우 포격 사정권에 있는 미2사단 1만 8천여 병력은 총 한 발 쏘지도 못하고 전멸당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 내에서는 예전부터 북한군의 야포 사정권에 ‘볼모’로 붙잡힌 주한미군 병력을 감축하거나 후방으로 빼내야
한다는 여론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북한군은 정규 지상병력만 보병과 포병, 기계화부대, 특수부대를 합해 117만 명에 달하며, 748만 명의 예비 병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중 정규군 70% 이상의 60개 사단이 비무장지대와 평양-원산 라인 남쪽으로 160km사이에 전진 배치되어 있습니다.
특히 북한군의 위협적인 포대는 휴전선 전방지역 4천여 곳의 지하시설에 은폐되어 있습니다.

북한군은 전면적으로 도발할 때 서울과 수도권을 표적 삼아 집중 공격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굳이 핵폭탄의 공격이
아니더라도 170㎜ 자주포와 240㎜ 다연장 로켓포(장사정포)를 포함한 1만 2천여 문의 곡사포를 시간당 50만 발을 포격할 수
있어 서울과 수도권 일대를 순식간에 초토화시킬 수 있습니다.

2003년 초 여중생 추모 촛불시위로 번진 반미 정서와 맞물려 미국에서는 반한 감정이 고조되었습니다.
미국 내 반한 감정은 정치권과 언론방송보도로 번졌는데 이로 인해 미 의회의 국제관계위원장 헨리 하이드 하원의원,
공화당 원내총무 로이 블런트 하원의원, 언론계 보수 칼럼니스트 로버트 노박과 월리엄 새파이어 등이 “주한미군이 북한의
인질로 전락했다” 또는 “한국 스스로 방위를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며 강력하게 주한미군 철수론을 부르짖었습니다.   

결국 2월 11일 부시 행정부는 백악관 정례 브리핑을 통해 주한미군 감축·재배치를 논의하고 있음을 밝혔습니다.
이날 부시 행정부의 애리 플라이셔 대변인은 “변화하는 환경에서 주한미군이 최선의 병력구조를 갖추기 위해 병력 운용에
있어 재검토가 필요하며 한강 이북의 기지를 후방으로 이전 배치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3월 초에는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해외 파병 미군의 유연한 운용과 재배치를 언급하며 “한국군에게 휴전선 방어를 맡기고
주한미군을 감축·후방 배치하면서 미군은 해·공군 중심의 장거리 공격력 확보에 중점을 둘 것이다.”라며 주한미군의 지상군을
축소할 것을 명시했습니다.

5월 중순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럼스펠드 국방장관에게 북한이 미국의 한반도 방어 의지를
오판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미2사단의 한강 이남 재배치를 보류해 달라고 요구를 하기도 했으나 럼스펠드 장관은
“주한미군의 후방 배치는 미군 전력 강화라는 판단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라며 거절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국방비 증액과, 휴전선 전방의 수도 방어를 맡았던 미2사단의 공백을 한국군이 떠맡아
주기를 바라는 뜻을 내비쳤습니다.

주한미군의 공백을 메우고 동일한 수준의 전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방위비용은 대략 250~300억 달러로 지난해 국방예산의
2배 이상입니다.
꾸준히 증가되기는 했지만 지난해 우리나라는 미국에 방위비 분담금으로 4억 7200만 달러를 지불했고, 같은 기간 주한미군은
운영비로 한국군의 전체 국방예산의 24.5% 달하는 29억 7300억 달러를 지출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 이후, 6월 9일 조영길 국방장관은 국방예산 증액 문제와 관련하여 국회 대정부 질문 답변에서 “국가
경제 상황을 고려하여 우리 군의 요구를 자제하면서 내년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3.2% 내외로 증액을 건의하고
단계적으로 3.5%로 올릴 것을 검토 중에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지금 미 국방부는 공격력에 비해 해외 파병 비용이 많이 소모되는 육군을 줄이는 대신 해·공군의 전력을 증강하는 체제로
전환하고 있는데 이와 맞물려 그동안 주한미군이 맡았던 휴전선 최전방 방어 임무가 조금씩 한국군으로 이양될 예정입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주한미군 감축 시나리오는 미국 내 반한 정서의 여파로 급조된 것이 아닙니다.
본래의 밑그림은 1989년 8월 2일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채택했다가 중단된 적이 있는 ‘넌-워너(Nunn-Warner) 수정안’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넌-워너 수정안’은 당시 미 상원에서 상원 군사위원장 샘 넌과 상원의원 존 워너가 제기한 주한미군감축 5개년 계획안을
그 해 11월 상하 양원 합동위원회에서 상정하여 통과시켰던 것입니다.
이 수정안이 현재 추진되고 있는 주한미군의 감축·재배치의 기본 골격을 제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수정안의 주요 골격은
▶한반도 안보에서 주도적인 주한미군 역할을 보조 차원으로 재조정
▶단계적으로 점진적 감축
▶주한미군 주둔 비용에 대한 한국 부담금 증액
▶주한미군 병력·시설의 재배치
▶특정 임무와 작전권을 한국군에 이양·반환 등의 방안 등을 담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수정안에 따라 미국은 3단계에 걸쳐 주한미군의 일부 병력들을 철수시켰습니다.
하지만 1993년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터져 나온 ‘불바다’ 발언과 1994년의 1차 북핵 사태로 한반도 안보위기가 고조되면서
중단됐습니다.
1994년에도 거론됐던 북한 영변 핵시설을 겨냥한 제한적인 정밀 폭격설은 지금도 계속해서 미국의 강경파들에 의해 그
가능성이 타진되고 있습니다.

부시 행정부 내 일부 강경파들은 북한 핵시설에 대한 제한적인 폭격이 바로 제2의 한국전쟁을 의미하는 것을 알면서도
이것이 북핵 사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부추기고 있습니다.
미 군사전문가들 역시 “주한미군의 후방 배치가 신속하게 추진되고 있는 것은 북한 영변 핵시설의 폭격을 염두에 둔 측면이
짙다”고 지적합니다.

7월 6일 북한 평양방송은 “휴전선 부근의 주한미군 2사단이 한강 이남으로 옮겨가려는 것은 북한을 선제 타격하기 위한 것”
이라고 논평하면서 “아프간 전쟁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최근 들어 미군은 가능하면 맞붙는 전쟁을 피하고 멀리 떨어진
기지에서 비행기와 미사일 등으로 선제 타격하는 수법을 쓰고 있다. 남한에 있는 미군도 이런 수법을 쓰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2003년 6월 27일 워싱턴에서 한미 양국 국방장관은 회담을 가졌습니다.
주된 안건은 역시 미2사단의 후방 배치에 대한 논의였습니다.
회담 이후 우리 국방부는 미2사단 병력이 올해 말이나 내년 초까지는 한강 이남으로 재배치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으나 이 문제는 전적으로 미 국방부의 계획에 따라 추진되고 있기 때문에 그 시기는 현재로서는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동두천에 있는 미2사단 캠프 케이시에서 근무하는 한 미군 장교는 “북핵 사태와 연계되어 예상보다 빨리 재배치될
수 있다”고 말해 의외로 빠른 시일 내에 이동, 재배치될 수 있음을 암시했습니다.

7월 8일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박길연 대사는 영변 핵시설에 보관되어 있던 8천 개의 사용 후 핵연료봉 재처리를 완료했다고
미국 정부에 통보했습니다.
핵무기 제조에 한계선을 넘어섰다는 북한 측의 통보를 미국은 더 이상 놀랄 것도 없다는 반응으로 무표정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북핵 사태가 불거지기 시작한 지난해 10월 초부터 지금까지 미국과 북한은 협상 테이블에 나설 때마다 한치의 양보 없이
서로에게 ‘위협과 협박’을 해왔습니다.  

대량살상무기(WMD)의 명분을 앞세워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킨 부시 행정부는 핵무기 보유가 거의 확실시되는
북한의 핵 협박 카드에 1994년의 클린턴 행정부처럼 언제까지나 끌려 다니거나 굴복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핵무기 보유 선언’이라는 최후의 핵카드만 남겨놓은 북한은 초조하게 미국의 그 다음 대응수순을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3,  미국의 한반도 정책

2003년 8월에 발생한 현대 아신의 정몽헌 회장의 자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계속되는 대북사업의 적자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대북 특검 수사로 인한 심리적 압박, 대북사업이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고 언론으로부터 계속 비난당한데 대한 모멸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자살한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여당과 야댱은 서로 상대방 탓이라고 하지만 이에 대해 좀 더 폭 넓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대북 비밀송금 의혹의 첫 단서가 미국 측에 의해 제공됐다는 것부터가 수상쩍습니다.
5억 달러 송금설을 처음 제기한 미 의회조사국(CRS) 래리 닉쉬 연구원의 한반도 관련 보고서가 그것입니다.
이 보고서는 지난해 엄낙용 전 산업은행 총재의 국회 증언에 의해 대북 송금 의혹이 국내에서 처음 제기된 것보다 1년가량
앞선 2001년에 발표됐고, 이 보고서는 송금 의혹을 뒷받침하는 주요 근거가 됐습니다.

즉, 남과 북의 자주적 화해 움직임을 불온시한 미국과 국내 냉전수구세력의 합작품이라는 얘기입니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경감시키는 길은 경제협력밖에 없는데 정주영 회장의 의지로 시작한 대북사업을 정부와 언론과
야당은 그동안 전혀 지원하지 않고, 오히려 사업의 순수성이 의심된다며 연일 맹공을 퍼 부었습니다.
정부도 적자가 누적되는 금강산 사업에 지원을 하지 않고, 사업이 좌초되도록 수수방관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과정을 돌이켜 볼 때 이를 조종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남북 화해 무드가 진행되고 통일이나 경제협력이 논의되면 항상 찬 물을 끼 얹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미국이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지 않고 통일이 진행되려고 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발생한 것이 김 구 선생의 암살과 이승만 독재정권 수립, 5·16 쿠테타, 북한 핵문제, 정몽헌 회장의 자살 등입니다.

일제 해방 후 남과 북에 민주정권과 공산정권이 들어섰지만 김 구 선생은 남북을 오가며, 통일을 논의했습니다.
이를 좌시할 수 없었던 미국은 안두희를 사주해 김 구 선생을 암살했고, 안두희를 풀어 주었으며, 이승만의 어용독재
정부를 지원했습니다.
부정부패와 부정선거를 보다 못한 민중이 일어나 4·19 혁명을 일으켰고, 또 다시 남북간의 화해무드가 조성되었습니다.

남북간의 통일 논의가 점점 심화되자 미국은 박정희를 충돌질 해 군사 쿠테타를 일으켜 자주 민주정권을 뒤 엎었습니다.
박정희는 반공을 국시로 삼고 북한과의 모든 대화를 단절했으며, 많은 민주 인사를 반공을 명분으로 투옥하거나
숙청했습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아이러니 한 점은 박정희가 원래 반공 인사가 아니라 남로당 출신의 우두머리였다는 사실입니다.

즉, 남한의 고정간첩이 쿠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반공을 국시로 군사 독재정권을 수립한 어이 없는 일입니다.
박정희는 1917년 금오산 기슭에서 빈농의 5남 2녀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23세에 만주의 군관학교에 2기생으로 입학하게 되고,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여 1등으로 졸업하게 되어 일본육사에 진학할 수
있는 특전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도 박정희는 3등으로 졸업했고, 조선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일본교육총감상을 받았습니다.


당시 만주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 관동군의 주된 임무는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던 조선인과 중국인들로 구성된
항일무장단체를 토벌하는 일이었습니다.
1946년 박정희는 조선경비사관학교 2기생으로 입학했고, 얼마 후 국방경비대 장교로 임관되어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박정희가 군내의 남로당 간부란 혐의를 받고 잡힌 것은 48년 11월 11일 육사 7기 생도들의 졸업식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육사 생도대장 소령 박정희는 여수순천반란사건에 연류되어 체포되었습니다
그의 남로당 행적에도 불구하고 그가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는, 정보과에서 그의 수사담당 대위 김창룡이 박정희와는 친분이
있었으며, 그는 박정희가 자술서를 잘 썼기 때문에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자술서를 통해서 남로당 조직원들을 많이 노출시켰으며, 그가 사상적으로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인간관계에 얽혀서
또는 복수심 때문에 남로당에 가입한 감상주의적 공산주의자라는 식의 평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의 좌익 활동은 그리 깊지는 않았던 것 같으며, 결정적인 순간에 반공주의자로 돌아섬으로써 군에서 세력기반을 다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국방경비대법 위반으로 군법회의에 회부된 박정희는 1949년 2월 8일 육군본부에서 열린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심사장관의 조치에서 징역 10년형으로 감형되었고, 확인장관의 조치에서 징역형 면제를 선고받았습니다.
박정희는 육군 정보국장 백선엽의 도움으로 육군본부 정보국 전투정보과 과장에 임명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박정희는 5·16의 주역이었던 육사 8기생들을 만났습니다.
김종필을 비롯하여 이영근, 이병희, 전재덕, 석정선 등이었고, 이들은 5·16의 기획과 중앙정보부 창설 등에 깊이
참여하였습니다.

박정희가 5.16쿠데타를 서두르게 된 한 원인도 미군이 박정희의 사상을 의심하여 그를 내몰려 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쿠데타 후에는 권력을 승인받으러 미국을 찾아 갔습니다.
미국은 원래 약점이 있는 지도자를 어용 정치인으로 내 세우는 경우가 많으므로 박정희가 충성 맹세만 한다면 그의 과거는
크게 개의치 않았을 것입니다.

박정희는 5.16 쿠테타로 민주주의 싹을 짓밟으며 권력을 잡았고 마침내 유신체제를 선포해 종신독재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10월 유신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박정희가 남북통일을 악용해 영구집권을 꿈꾼 제2의 쿠테타였습니다.
박정희는 7.4남북공동선언을 통해 국민들에게 통일의 환상을 불러일으킨 후 통일을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유신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10월 유신은 평화통일을 앞당기기는커녕 오히려 남북의 냉전구조만 강화했고, 총력안보란 구실 아래 유래 없는
인권유린이 자행되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는 말로에 미국을 등지고 자주국방을 외치며, 장거리 미사일과 핵무기를 개발하려해 미국의 미움을 샀습니다.
미국이 박정희가 김대중을 죽이지 못하게 한 것은 미국은 항상 독재자에 대항하는 세력을 보존했다가 언제든 마음에 안
들면 바꾸려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박정희는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부장 김재규(예비역 중장)에 의해 암살당합니다.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 대통령 특사의 방북에서 비롯된 제2 북핵 위기도 의문점이 많습니다.
2002년 7월 북한의 과감한 시장경제 도입과 8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 특히 9월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에 의한 사상
최초의 북일 정상회담 등으로 한반도에 불어오고 있던 훈풍은 켈리의 방북 이후 차가운 북풍으로 돌변하고 말았습니다.
나아가 이미 적자에 허덕이고 있던 현대아산의 대북사업은 제2 북핵 위기가 불거지면서 더욱 어려운 곤경에 처하게 됐습니다.
2000년까지 금강산 관광에 지급됐던 정부 보조금이 금년 들어 북핵 사태를 이유로 전면 동결된 것(약 2백억원)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첫째, 미국은 이미 클린턴 행정부 때부터 북한의 우라늄농축 시도를 알고 있었으며 이러한 정보를 취임하는 부시 행정부에
모두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이에 대해 18개월간 아무런 대응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2002년 북한과의 대결 국면 조성에 이용했습니다.

둘째, 북한의 우라늄농축 시도에도 불구하고 클린턴 행정부는 미사일협상이 왼료되고 북미관계가 정상화된다면 북한의
어떠한 핵무기 계획도 무산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셋째, 미국의 독립적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의 우라늄 농축으로 핵폭탄을 만들려면 4-5년이 걸릴 것으로(따라서 긴급한
위기가 아니라고) 보고 있는 반면 부시 행정부는 몇 개월 내에 가능할 것이라며 사태를 과장했습니다.

다시 말해 이번 핵위기는 미국이 기획하고 연출한 미국발 위기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명백히 드러난 것은 미국은 어떤 국가든지(그것이 한국이든 일본이든)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독자적인
행동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남한은 극동지역의 지정학적 추축입니다.
남한이 미국과 맺고 있는 밀접한 관계는 미군이 일본에 대규모로 주둔하지 않고서도 일본을 보호할 수 있게 해주며,
따라서 일본이 '독립적인' 군사강국으로 성장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통일 혹은 중국영향권으로의 편입 등으로 말미암아 남한의 지위가 변화하면, 극동에서 미국의 지위 역시 크게 변화할 것이고
일본의 지위도 마찬가지로 크게 변화할 것입니다.

부연하자면 남한의 증대된 경제력으로 인해 남한은 어느때보다도 중요한 '공간'이 되었고, 남한에 대한 통제는 더욱 값진
것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목표는 남한에 대한 통제의 계속 유지, 그리고 미국의 뜻을 거스르면서도 생존을 유지하고 있는
북한의 굴복 및 붕괴입니다.

부시 행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인권이나 민주화 문제는 겉치레에 불과합니다.
노암 촘스키의 지적대로 미국에 대한 가장 큰 죄는 '불복종'이기 때문입니다.
한반도 주민들의 안전이나 평화, 번영은 그들의 1차적 관심사가 아닙니다.

정몽헌 회장은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는데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가 부시 뒷다리만 잡고 가면 패망할텐데, 남북이 서로 이해하고 화합하고 자주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할 텐데...
핵포기의 해법은 경협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