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를 파괴해온 ‘악마적 사상들’

프랑스 프리메이슨의 대표적 상징인 루브르 박물관내의 유리 피라미드-666개의 창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류를 파괴해온 ‘악마적 사상들’ ② 프랑스 혁명과 프리메이슨

지상에 새로운 낙원을 만든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사회를 강압적으로 개조하려 했던 공산주의, 나치즘, 파시즘  그리고 프랑스혁명과 러시아혁명의 배후에는 악마를 숭배하는 비밀조직이 있었다. 이들의 계획은 기독교 말살과 시민정부 전복을 목적으로 수세기에 걸쳐 하나의 맥을 이으면서 은밀하고 조직적이며 치밀하게 진행되어 왔다. 이에 본지는 인류를 파괴해온 악마적 사상들 비밀조직의 실체를 파헤친다. <편집자주>

지난 2001년 6월 23일자 ‘르 피가로’지는 프랑스 프리메이슨의 둘째로 큰 지부인 ‘GLDF’(Grande Loge De France·1728년 창설)의 미셜 바라 회장이 6월 16일 전세계 동료들에게 자신이 프리메이슨 단원임을 당당히 밝힐 것을 촉구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그는 “오늘날 자유주의 세계를 이룩한 데 일조한 프리메이슨은 자부심을 가져야 하며 특히 사회지도층들의 경우 자신이 프리메이슨 단원임을 숨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해 중앙일보는 ‘275돌 맞은 프리메이슨’이라는 제하의 기사(6월 27일자)를 통해 비밀결사인 프리메이슨의 프랑스 지부(회원수 12만5,000명)가 2001년부터 꾸준히 커밍아웃을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신문은 또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던 몽테스키외, 볼테르, 루소를 포함해 90년대 초 독직(瀆職)사건으로 연루됐던 롤랑 뒤마 前 프랑스 외무장관도 프리메이슨 회원이라고 밝혔다.

악마를 숭배하는 ‘일루미나티’ 종단

그동안 일반 역사가들은 프랑스혁명을 1789년 7월 14일부터 1799년 11월 9일까지 약 10년간에 걸쳐 일어난 시민혁명으로 절대왕정과 구제도를 타파하고 자유평등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이었다고 설명해왔다.

그러나 프랑스혁명의 배후에는 악마를 숭배하며 기독교의 파괴를 주장했던 일루미나티(Illuminati Freemason)종단을 포함해 수많은 프리메이슨 조직들이 있었다. 혁명 당시 이들이 어떤 수법으로 사회의 분쟁을 조장하고 프랑스 국민들을 기만했는지 살펴본다.

일찍이 프랑스내 프리메이슨들은 1307년 필립 4세가 왕권신장의 한 정책으로 프랑스 내 프리메이슨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템플기사단(Ordre des Templiers)에 대해 대대적인 탄압을 가하고 지도자인 자크 드 몰라이(Jacque De Molay)와 54명의 단원들을 화형 시킨 이후 줄곧 국왕을 공적으로 간주했다. 기록에 따르면 프랑스혁명이 발발하기 직전인 1789년 파리 총종단(Grand Lodge)의 통제 하에 있던 프리메이슨 종단이 2,000여 개가 넘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혁명이 발발하기 전 프랑스는 국내적으로 루이 14세 후기부터 루이 15세 치세를 통해 대외정책의 실패와 궁정생활의 낭비로 인해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렸다. 당시 정부는 세금의 증가와 국채발행으로 적자를 보충할 뿐 근본 대책을 강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절대왕정의 기초가 무너지고 있었다.

1774년 무능한 루이 16세가 즉위하여 엄청난 국가부채 상황을 호전시킬 사람으로 독일계 스위스인 네케르(Jacques Necker·1732~1804)를 경제장관으로 기용했다. 그러나 맥네어 윌슨(McNair Wison)은 그의 저서인 ‘나폴레옹의 생애’를 통해 네케르는 프리메이슨이었고 프랑스 경제를 담당한 지 4년 만에 1억7,000만 프랑의 빚을 더 얹어 놓았다고 밝히고 있다.

프리메이슨, 왕궁과 정계에 조직적 침투

이외에도 프랑스 궁정에 침투한 프리메이슨으로는 루이 16세의 궁정 연금술사이자 마법사였던 알렉산드로 카글리오스트로(본명: 주세페 발사모·유태인) 백작이 있었다. 그는 프리메이슨의 한 지파인 장미십자회(Rosicrucians)의 단원이었다.
프랑스 인권선언의 상단에 새겨진 일루미나티(illuminati freemason)의 상징-전시안(全視眼·이집트 호루스신의 상징)

현재 장미십자회는 ‘AMORC(Ancient and Mystical Order Rosac Crucis)’라는 국제적인 조직으로 남아 있으며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 호세(San Jose)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AMORC는 서신왕래를 통해 조직의 구성원들 사이에 비밀스러운 가르침을 전달하고 있다.

프리메이슨들은 이처럼 프랑스의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는 작업이 충분히 완료되자 2차 계획에 착수했다. 한편 일루미나티 단원들은 프랑스의 총종단을 흡수한 후, 아담 바이스하우프트(Adam Weishaupt·일루미나티 조직의 창시자)가 즐겨 읽던 루소나 볼테르의 사상을 위주로 합리주의와 평등주의 사상을 불어 넣었다.

이외에도 일루미나티는 프랑스의 그랜드 오리엔트(Grand Orient) 종단의 그랜드 마스터였던 오를레앙 공작을 포함해 샤트레 공작, 에갈리트와 같은 프랑스내 프리메이슨들을 종단에 흡수했다.

이들 가운데 오를레앙 공작의 경우 자신의 하수인들을 시켜 양곡을 대량으로 구입한 다음 외국으로 빼돌리거나 창고에 쌓아둠으로써 프랑스에서 양곡 품귀현상을 만들고는 국왕의 실정으로 양곡이 모자란다는 소문을 일반인들에게 퍼트렸다. 당시 이 사실을 몰랐던 프랑스 국민들 사이에서는 루이 16세에 대한 원망이 높아졌다.

한편 1787년 2월 프랑스의 귀족들은 금융 감사원장의 소집을 받았다. 귀족들은 이 자리에서 국가부채를 줄이기 위해 부유한 자들에게서 세금을 더 받아내야겠다는 말을 들었다. 물론 귀족들은 이 제의를 거절했다. 대신 귀족과 성직자와 평민의 대표들로 구성된 프랑스 의회인 삼부회의 소집을 요구했다. 물론 삼부회의 최고 책임자는 프리메이슨이자 경제장관이었던 네케르였으며 1789년 5월 5일 베르사이유 궁에서 200년 만에 개최됐다.

삼부회의 결과 제3계급인 ‘평민’이 승리를 거두었다. 루이 16세는 국민회의를 소집해 새로운 프랑스 헌법을 마련하자고 요구해놓고, 한편으로는 국민회의를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비밀리에 모으고 있었다.

이를 눈치 챈 프리메이슨들은 깡패와 군중들을 선동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으며 왕실의 친위대가 이에 가담해 바스티유를 점거했다.

이에 대해 영국의 웹스터(Nesta H. Webster·1867~1960)는 그녀의 저서인 ‘프랑스혁명’에서 “바스티유 감옥의 습격은 미리 계획된 것이며 목적은 감옥에 있는 무기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녀는 또 “당시 바스티유 감옥에는 죄수라야 사기죄인 4명, 정신이상자 2명 그리고 사회에서 위험한 인물이라고 가족의 청원으로 가두어둔 사람 1명까지 총 7명의 죄수밖에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감옥을 습격한 지 이틀 후 파리의 시장(市長)과 수비대장은 살해당했으며 프리메이슨이었던 라파예트가 국민위병대 총사령관으로 임명됐다. 특히 비밀단체의 사주를 받은 기병근위대들은 여러 도시들을 돌아다니면서 불안에 떨고 있는 시민들에게 국가를 전복시키려는 음모자들이 귀족들의 성에 은신하고 있다는 소문을 퍼트렸으며 이내 혼란과 폭력이 파리 전역을 뒤덮었다.

일반 역사에서는 당시의 막연하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공포 분위기를 ‘대공포’(Grande Peur)라 부르고 있다.

‘프랑스 인권선언’의 일루미나티 상징

급속히 확산되는 혼란에 놀란 나머지 1789년 국가의회는 황급히 자유·평등·재산에 대한 불가침 그리고 저항할 권리 등을 선언하는 ‘프랑스 인권선언’을 선포했다.

이 선언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들 대부분은 일루미나티의 유서 깊은 사상이다. 실제로 프랑스 인권선언문을 새겨놓은 기념비를 보면 당시 일루미나티를 중심으로 한 프리메이슨의 영향력을 알 수 있다.

비석의 왼편 위쪽에는 쇠사슬을 자르는 ‘자유의 여신’이 있는데 이것은 프랑스를 상징한다. 그리고 우측의 천사는 법의 하신이라 불리는데 그 천사의 오른손 끝에서 빛나고 있는 것이 일루미나티의 상징인 ‘전시안’(全視眼·이집트 호루스신의 상징)이다. 한편 이들의 상징(피라미드의 전시안)은 현재 1달러 지폐 뒷면에서도 나타난다.

의회에서는 새로운 법률과 정책들이 계속 통과되고 있었다. 프랑스혁명의 결과 영국, 아일랜드, 독일, 오스트리아, 벨기에, 이탈리아, 스위스 등지에서는 프리메이슨 계열의 혁명적 단체들이 생겨났다.

프랑스는 국내외적으로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1792년 프랑스는 오스트리아-프러시아와의 전쟁을 선포했으며 로베스피에르를 중심으로 한 자코뱅당의 공포정치가 시작되었다. 자코뱅당이 집권초기에 단행한 정책 중에는 교회폐쇄 및 교회 재산의 국유화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프랑스에서 두번째로 큰 프리메이슨 지부인 `GLDF`랏지 내부에 전시되어 있는 피라미드의 모습

이러한 기독교 탄압의 배경은 자코뱅당의 주요 인사들이 반 기독교적 성향을 띤 프리메이슨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코뱅당의 전신은 일루미나티 종단이다. 1786년 미라보 후작이 자코뱅 파리대학(Jacobins College of Paris)에 일루미나티 종단을 세우게 되는데 이들이 프랑스 혁명기간 중 자코뱅파가 됐다.

당시 자코뱅파의 주요 멤버들은 성직자이자 주교로 훗날 프랑스의 외무장관이 된 탈레랑(Talleyrand) 그리고 당통(Danton·‘9자매 종단’ 소속)등이 있었으며 1792년에는 나폴레옹도 22세의 나이에 가입했다.

‘9월 학살’로 1만 8천여 명 처형

아일랜드 출신으로 프랑스혁명에 관여했던 테오볼드(Theobald Wolfe Tone)는 그의 자서전(1893년 R. Barry O` Brien에 의해 출판)에서 자코뱅당의 지도자였던 로베스피에르의 경우 프리메이슨이자 일루미나티 종단의 단원으로 바이스하우프트와 루소의 제자였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프랑스혁명에 가담했던 사람들 중에는 루이 16세를 계속 왕으로 봉직시키고 영국처럼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왕국이 될 것으로 믿고 혁명을 전적으로 지지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프리메이슨들은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바이스하우프트의 말을 따라 이들을 철저히 혁명 내내 이용했을 뿐이다.

한편 프랑스 인권선언을 인정하지 않았던 루이 16세는 1791년 6월 해외도피를 시도했다. 그러나 그는 바렌(Varennes)에서 붙들렸다. 이 와중에 해외 여러 나라들과 프랑스 사이에서는 긴장감이 고조되었으며 1792년 프랑스는 오스트리아-프러시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전쟁과 혁명이 동시에 고조되는 가운데 프랑스는 공포정치(Reign of Terror)가 계속되었다.

한편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국가반역죄로 1793년 1월 파리의 콩코드 광장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으며 이후 수천 명의 귀족들이 같은 장소에서 처형됐다.

혁명은 이렇게 계속되었다. 1792년에는 소위 ‘9월 학살’이라는 유명한 사건을 조작해 학정에서 벗어나 자유를 되찾겠다는 혁명의 이름 아래 파리 감옥에서만 1만8,000여 명이 처형됐다. 특히 9월 학살 기간에만 220여 명의 사제와 교계 인사들이 혁명정부의 교회개편을 거부해 처형당했다. (브리태니커 사전)

이 시기 당통, 라파예트 후작, 로베스피에르와 같이 공개적 활동을 했던 프리메이슨들은 대부분 권력다툼 끝에 처형당했다. 전쟁과 폭동과 쿠데타가 한동안 지속되었고, 마침내 1799년 나폴레옹이 프랑스를 완전히 장악했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프랑스혁명의 종말을 선언했다.

영국의 정치학자인 에드먼드 버크는 그의 저서인 <프랑스혁명의 성찰(1790)>에서 “테러리스트라고 일컬어지는 수천 마리의 염병할(hell) 사냥개들이 인민을 물려고 나섰다”고 말해 프랑스혁명의 혼란상을 비판했다.

그가 이 처럼 프랑스 혁명을 비판한 이유는 혁명 과정에서 법질서가 무너져 대부분 귀족들인 수 만 명의 사람들이 정식 재판 없이 ‘인민재판’에 의해 즉흥적으로 처형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중에는 개인적으로는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귀족이라는 이유로 처형된 경우가 많았다.

한편 버크는 영국의 명예혁명과 같은 단계를 거치지 않은 프랑스혁명의 급진적 조류가 영국으로 흘러들어올 경우의 혼란을 염려했다.

 

김필재 기자  spooner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