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움직이는 군산복합체

 

부시정권을 비롯한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뒤에는 그들을 움직이는 검은 손인 군산복합체가 버티고 있다. `그림자 정부` 또는 `죽음의 상인`, `프리 메이슨`으로 불린다. 군산복합체의 원조는 다름 아닌 미국 독립전쟁 때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또 그들은 남북전쟁 때도 무기를 팔았고, 동족인 유대인을 학살하는 히틀러에게 무기를 제공했던 로스차일드-록펠러-모건 재벌이다.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투기꾼이 있지만 이 투기꾼을 뒤에서 조종하는 세계 1%의 검은 재벌, 이들을 모르고서는 복잡한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다. 세계화된 미국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신토불이의 한반도 조선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먼저 부시 일가를 움직이는 미 군산복합체 칼라일(Carlyle)그룹을 살펴보자.

`부시에게서 권력이 나오지 않는다`

칼라일 그룹을 알면 부시일가가 보인다. 이 그룹은 백악관 배후에 있는 첩보기관의 군사두뇌집단이다.

칼라일 그룹은 지난 1987년 무명의 펀드로 출발해 유명 정치인들을 활용해 현재는 164개 기업의 대주주로 사실상 미 굴지의 군수업체이자 정보통신업계를 주도하며 연평균 34%의 수익률을 자랑하고 있다. 이 그룹은 94년 월가에서 조지 소로스를 영입해 99년 당시 현금 자산만 40억 달러를 운용하는 세계 5위 수준의 투자 전문 금융사로 위장해 있을 뿐이다. 99년 당시에 이 그룹의 간부 브렌트 스코크로프트가 유고전에서 나토군을 지상군에 투입하라고 했을 정도이다.

부시 현 대통령 입장에서는 칼라일이 아버지가 고문으로 활동 중인 회사를 넘어 지난 90년 경력쌓기에 몰입했을 때 비행기 기내식 전문 자회사인 `케이터에어`의 이사직을 맡겼던 기업으로 인연을 맺고있다. 그룹의 명예회장은 미 대선 재검표 파동때 공화당 대변인을 한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이며 그는 걸프전을 주도하며 이라크 민중에게 무자비한 폭격을 자행한 명령자이다. 또 레이건 행정부의 국방장관 출신으로 칼라일의 성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프랭크 갈루치 그룹회장은 카터 정권에서 CIA 부국장, 레이건 정권에서 국방차관, 장관을 지낸 바 있다. 갈루치는 도널드 럼스펠드 현 미 국방장관과 대학동창이다. 부시 전대통령의 국방장관 출신인 딕 체니 부통령도 부통령이 되자마자 그룹 고문직을 내놓았다. 여기에다 딕 체니는 2000년 9월 부통령후보로 나서기 전에 최고경영자로 있던 석유시추사 `홀리버튼`의 주식을 팔아 2천 60만 달러를 한달 만에 벌어들인 적이 있다. 워싱턴에 사무실이 있는 칼라일 그룹의 대표이사는 루빈스타인이다.

이를 보여주듯 지난 2001년 2월, 갈루치 회장이 럼스펠드 국방장관과 체니 부통령을 만나 국방문제를 논의했다. 칼라일이 투자를 한 방산업체들의 수 십억 달러 프로젝트를 검토했다.

부시일가는 텍사스의 석유를 기반으로 칼라일에서 온 몸을 다 바쳐 꽃을 피우고 있는 잘 나가는 집안이 되었다.

부시 할아버지인 프레스코트 부시는 록펠러의 맹우인 철도왕 해리먼가의 `브라운 형제 해리먼` 사의 중역이었으며 부시아버지는 록펠러 모건의 석유회사에 텍사스 이권을 판 석유채굴업자출신이었다. 부시 아버지는 한국에 대해 가히 정력적으로 일을 한다. 한국은 그들에게 맛이 당기는 꿀단지 시장이다. 한국에 대한 칼라일 그룹의 작전은 집요하다. 92년 퇴임 뒤 시티은행 고문 자격으로 자주 한국을 드나들었다. 시티은행은 세계 3대 재벌인 로스차일드-록펠러-모건이 합친 98년 자산으로 세계최대의 금융기관이다.

여기에다 99년 5월 28일에는 부시가 자문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 인수합병 전문회사인 파나콤(주1)의 대한생명에 대한 투자문제를 위해 한국에 왔다. 이때는 김종필 총리와 박태준 자민련 총재, 임동원 통일, 조성태 국방,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 이헌재 금감위원장, 이경훈 대우회장, 최태원 SK 회장 등을 만나고 갔다. 이 날 김종필이 주최한 점심에는 스티븐 보스워스 주한 미 대사와 존 틸럴리 한미연합사령관이 자리를 함께 했다. 한미간에 군수, 경제 커넥션을 확인하고 이권을 나누는 단결의 장인 셈이다. 이날 부시 전 대통령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행사가 있었다.

1999년 5월 28일, 이 날은 칼라일 그룹의 한국사무소를 여는 날이었다. 김병주를 칼라일 코리아 사장으로 앉혔다. 김병주는 칼라일 그룹의 고문인 박태준 전 총리의 사위다. 한국의 군수업체 포항제철의 출신자들과 미국 투기 자본이 연대해 이익을 얻는 곳은 투자은행이다.

김병주를 앞세운 칼라일 그룹은 2000년 9월 미 군산복합체의 우두머리인 JP모건과 컨소시엄을 이루 11월 한미은행에 5000억 원을 투자해 은행지분을 확보한 대주주가 되었다.

이어 2000년 12월 부시가 정권을 잡자 아시아본부를 서울로 옮겨 본격적으로 한국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한국지부장 김병주는 아시아지부장으로 승진되었다. 해가 바뀌어 2001년 1월 14일 쌍용정보통신 지분을 인수해 한국 정보통신시장도 서서히 먹어 삼키고 있다. 또 세계적인 한국의 전자업체를 20억 달러에 인수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2001년 4월에는 한미은행 이사회까지 장악해 경영권을 가로채기 직전이고 하나은행과 합병을 모색하고 있다.

칼라일 투자의 3분의2가 정부의 지출이나 정책변화에 의해 영향을 받는 국방과 통신분야 기업 등 한 나라의 정치·군사적인 핵심분야에 집중돼 있다는 것은 이 그룹이 군수와 기업을 통해 한 나라를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주2) 결국 한국경제와 금융권의 구조조정의 결과는 외세자본과 손잡은 국내 반민족자본만 먹여 살리는 짜고 치는 놀이패다.

한국시장을 접수하는 부시일가

때는 한반도가 남북최고위급회담과 남북공동선언으로 화해와 통일을 위한 중요한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2000년 6월 21,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 안 신라호텔.

호텔정문 앞으로 고급 승용차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부시 전 미대통령이 타고 있었다. 이름하여 칼라일 그룹 아시아 고문 및 임원 정례회의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철저한 비공개였다. 참가자는 그룹의 아시아 담당 선임 고문인 부시 전 미대통령을 비롯 피델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 파냐라 쿤 전 태국수상, 제임스 베이커 전 미국 국무장관이자 그룹 전무 등 50여명. 솔직히 말하면 아시아는 물론 한국의 국방과 통신, 금융분야 정책변화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였다. 좋은 말로 영향력 행사지 끊임없는 돈벌이를 위해 아시아 정치권과 모의하고 자기들은 엄청난 돈을 챙기고 이익의 찌꺼기를 조금씩 나눠주며 공생하기 위해서다. 그들의 목적은 끊임없는 부의 창출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공동선언을 하고 서울에 돌아온 며칠 뒤였다. 하지만 남북공동선언이든 전쟁이든, 평화든 그들에게 돈벌이가 얼마나 되느냐 안 되느냐가 그들의 잣대이자 관심사이다.

다시 2001년 4월 17일, 부시 일가의 텃밭인 `석유유전지대` 텍사스 A&M 대학 부시행정대학원. 대학 정문 앞으로 고급 승용차가 물밀 듯 미끄러져 들어왔다. 이 행사를 위해 스스로 초청장을 보낸 부시 전 미대통령이 타고 있었다. 이 대학원의 학장이자 부시 전 미 대통령시절 CIA 국장이었던 로버트 게이츠(Robert Gates)가 주최자였다.

이름하여 대북정책을 재검토하는 한반도 학술회의가 공개적으로 열렸다. 참가자는 칼라일 그룹의 고문인 부시 전 미대통령을 비롯, 미 군산복합체의 충실한 대변자로 그룹의 전무에서 명예 회장이 된 제임스 베이커 전 미국 국무장관, 존 매클러런 중앙정보국 부국장, 록펠러의 대변인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 제리 험블 주한 유엔군 부사령관 등이었고 양성철 주미대사 등 한반도 전문가들만 300명이었다. 부시정권이 대북정책을 재검토인 시기여서 세계의 눈을 끌었다. 학술회의 제목은 "오늘의 북한 : 포용인가 대치인가".

먼저 부시 전 대통령이 들어왔다 그는 "대북정책은 오늘날 미국의 가장 중요한 외교정책" 이라면서 한결같이 정책재검토를 말하며 강력한 한미공조를 약속했다. 남한에서 날아간 제리 험블 주한 유엔군 부사령관도 `강력한 대북 억지력이 필요하다는 대북 경계론`을 폈고, 록히드 마틴의 한 군수업체 대표 윌리엄 페리는 "북한과 다룰 안보 문제의 우선 순위는 핵·미사일·생화학·재래식 무기의 순서가 돼야 하고, 주한미군을 감축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혔고, 제임스 릴리와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대사도 대북 상호주의를 훈수했다.

부시 전 대통령이 말한대로 대북정책은 오늘날 미국의 가장 중요한 외교정책이다. 그러나 최근 대북정책 재검토는 미 군산복합체의 전술차원이다. 잘 보자. 지난 2000년 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클린턴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예견되었다. 드디어 북한과 미국이 서로 체제를 인정하고 평화롭게 잘 살자고 약속하기로 잡혀 있었다. 이는 98년 8월 31일 북한의 인공위성 `광명성 1호`의 발사성공으로 미국의 정치적·경제적 지위가 흔들린 결과였다. 미국의 지위가 흔들린다는 것을 눈앞에서 확인한 미 군산복합체는 그들의 재산유지는 물론 돈벌이가 줄어드는 중대한 고비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이 때 미국의 정권교체를 틈타 미 군산복합체는 북미사이의 평화공존을 조금이라도 뒤로 미루고 싶었다. 대북정책 재검토 운운하면서 다시 한번 북한의 위협을 핑계로 NMD를 구축하면서 그 틈에 한국 등에 구식무기를 팔아먹기로 했다.

정확하게 부시정권이 들어서자마자 2001년 3월, 미국이 김대중의 통일정책을 지지해주는 대신에 100억불 달러(14조 5000억원)의 미국 무기를 사라고 (카린리, 존 페파-미국 친선봉사위원회 동아시아 담당 공동대표-의 기고문 참조) 강요한데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무기공장을 가동시켜야 하는 미 군산복합체의 충실한 영업부 책임자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 동안 미 국방부는 엔엠디 시험을 5번했다. 그 중 3번의 요격시험에서 2번은 실패했다. 중요한 것은 실패한 엔엠디 시험으로 수 십억 달러의 국가적 손실을 입혔지만 미 군산복합체에게는 그만큼 군사무기를 소비했기 때문에 이익은 남는다는 사실이다.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부시일가와 미 행정부, 정보기관은 모두 미 군산복합체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부시 일가가 한국 경제를 주무르고 정치군사 전면에 나서는 이유는 역시 앞서 살펴 본대로 끊임없는 돈벌이다.

인류의 모든 악의 근원, `죽음의 상인`

왜 한나라의 대통령이 이럴 수밖에 없는가. 전쟁의 한가운데서 `죽음의 상인` 들이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 대통령을 움직인 그 역사를 살펴보자.

미 군산복합체는 자칭 잘 나가는 부호다. 세계의 원자력 발전사업은 물론 무기판매사업, 석유, 식량, 철도, 전기통신, 철강, 컴퓨터, 인터넷, 언론, 금융, 영화, 스포츠, 대학에 이르기까지 깊숙히 개입하여 백악관과 군부, 정부기관을 뒤에서 움직이는 그야말로 인류의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보면 쉽다.

먼저 1~2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여러 전쟁도 미 군산복합체의 핵심인 록펠러- 모건 재벌과 관련이 있다. 히틀러의 나치즘, 핵무기 개발과 군비경쟁의 뒤에도 이 재벌이 있었다. 동족인 유태인을 학살하는 히틀러에게까지 무기를 팔아먹은 자들이다.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은 물론 최근의 걸프전쟁, 유고 전쟁 뒤에도 이들의 검은 그림자가 있다. 이들은 백년이 넘도록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을 지배하고 있다.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엔 `무기 팔아먹을 자유`만 있는 셈이고 결국 세계 무기시장을 쥐락펴락한 결과 미 군산복합체 록펠러-모건 가문은 20세기 세계최고의 갑부가 되었다.

미 군산복합체 록펠러-모건 재벌의 시작인 JP모건 1세는 듀퐁 대령(세계적인 군수탄약, 화학업체 `듀퐁` 창업주)과 결탁해 미국 남북 전쟁 때부터 구식 카빈총을 6배나 비싸게 되파는 방법으로 부를 늘렸으며 이어 1차 세계대전에서는 아들 잭 모건이 중요한 구실을 한다.

잭 모건은 군수업체 `듀퐁`에 지시해 탄약, 화약을 대량생산케 했고, 듀퐁은 화약제조로 남북전쟁에서 떼돈을 벌었다. 잭 모건은 `에디슨` 연구소가 군함용 전화, 대포의 조준과 발사장치등 살인 무기 발명에 몰두케 한다. 그러자 영국, 프랑스 등 연합국은 이들 무기를 사들이는 데 거금을 조성하기 위해 `채플린` 같은 영화인들을 동원해 당시 미국인들에게 우상과 같은 존재인 `희극왕`들을 좋은 선전요원으로 쓰게 된다. 그 뒤 `영화`는 모건이, 미국 `라디오`는 록펠러가 접수했다. 853만 명의 전쟁희생자의 시체 한편에서 `아메리카 드림`의 꽃을 피워가고 있었다. 유니버셜?, 파라마운트는 모건의 영화사이고 20세기 폭스사의 최대주주는 록펠러, 워너 브러더즈는 모건과 록펠러, 듀퐁이 대주주이다. 허리우드영화 스크린의 초점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한 예로 20세기 폭스사가 만든 영화 `타이타닉`을 보자. 실제인물 `로즈 데이비스`를 그린 영화다. 로즈는 미 국제 금융미디어가 지배하는「워싱턴 포스트」지의 소유주 에드워드 맥린의 내연의 처였다.

영화의 줄거리는 악질 부자에게서 동양여성의 얼굴을 한 여자를 구한다. 가난한 3등 선객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열연해 얼음바다로 사라져 가는 슬픈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최대주주 록펠러에게서 20세기 폭스사를 인수한 미디어 왕 루퍼트 머독과 로즈 극장의 소유주 로런스 티슈(미 CBS 방송 소유주)에게서 중요한 것은 블루 다이아몬드가 로즈 것인지, 로즈가 타이타닉 호에서 사망한 것인지, 1941년까지 살아 있었는지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오로지 영화의 줄거리를 `가난한 관객 편`으로 해 가난한 자인 전 세계 대중에게서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2차 대전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2차 대전의 여러 지휘관은 록펠러- 모건재벌의 고문변호사이자 회장 사장 중역들이다. 예를 들어 스팀슨 육군장관은 모건 상사의 고문 변호사였고 스테티니어스 전시자원국장은 유에스 스틸 회장이다. 그것은 군인에 의한 전쟁이 아니었다. 군수업자들이 앞장서서 스스로 군복을 입고 작전 사령관실을 차려버린 것이다. 작전본부는 증권거래소라고 보면 되었다. 군인은 군수업자를 위한 들러리였다. 전 지구가 2차 세계대전에 쓴 지출액의 7분의 1을 모건상사와 록펠러 가의 체이스 내셔널 뱅크의 총매출액라고 보면 된다.

진주만 공격 직후 월트 디즈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피터 팬` 기획을 포기하고 군용필름을 만드는 데 전력을 다했고, 미국 군인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방영된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군수업자를 위해 종을 울리는` 전의를 북돋우는 영화에 불과했다.

`진주만 공격`이라는 영화가 2001년 6월 4일 가난한 관객들을 상대로 또 상영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도 미국인들의 사기진작과 전쟁분위기 고조에는 예외가 없다.

미국의 군대는 대통령의 명령보다 군수업자인 록펠러-모건 재벌의 지시를 받아 운영되는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체이스 맨해턴 은행은 은행이 아니라 군대다`라는 말이 나온다.

존슨 미국 제 36대 대통령은 베트남전쟁을 크게 확대한 책임자이며 록펠러의 도움을 받아 대통령이 된 닉슨도 베트남전 당시 북폭을 강화했고, 체이스 맨해턴 은행의 고문회의 의장이 다름아닌 헨리 키신저로 그는 데이빗 록펠러의 비서와 결혼했으며 베트남전쟁의 필요성을 이론적으로 증명한 베트남 전쟁의 1급 전범이다. 그들에게는 전쟁은 비즈니스였다. 베트남 전에서 미국은 졌지만 록펠러-모건 재벌은 막대한 치부를 했다. 부시 전 대통령도 록펠러-모건 재벌의 은행인 시티뱅크 고문으로, 전 미 국무부장관인 조지 슐츠는 세계적인 원자력 발전업체인 벡텔의 사장으로 일본을 대상으로 원전장사하기 바쁘다, 그 와중에서도 그는 몇년전 한국의 서울 평화상 추진위원회가 준 `서울 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짜고 치는 화투다. 원자력 발전업과 무기판매업이 세계에서 제일 짭짤한 장사 중의 장사라는 것은 두루 아는 사실이다.

덜레스, 러스크, 키신저, 번즈, 머스키 등 6대에 걸쳐 미국 내각의 우두머리인 국무장관을 록펠러-모건 재벌의 수뇌가 차지한 것은 우연인가. 40년이 넘도록 말이다. 조지 슐츠, 올브라이트 전 장관, 파월 현 장관도 마찬가지다. 파월이 중동평화협상과 한반도 평화협상에 바쁜 것 같지만 철저하게 미국의 국익을 위해 아니 구체적으로는 록펠러-모건 재벌의 이익을 위해 뛰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파월은 록펠러계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늘 앞세운 것은 세계와 아시아,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다는 것이었다. 그럴싸하다. 전쟁물자를 끊임없이 토해내야 하는 모건과 록펠러, 듀퐁이 가장 혐오하는 대상은 진보적 민족주의자라는 걸 숨기면서 말이다.

학문의 전당이어야 할 미국 대학은 또 어떤가. 미국서부의 `펜타곤`(국방부)`이라 불리는 스탠포드 대학을 창립한 것도 모건 집안이다. 예일대학도 모건 집안의 조상이 세웠으며 하버드 대학은 `록펠러 대학` 이고 시카고 대학은 록펠러집안의 사재로 이루어졌다. 미국의 원자폭탄사업의 `독점`을 인정하는 유엔 원자력위원회 위원장에 록펠러 재단의 이사장이 앉은 뒤 록펠러 2세가 뉴욕 유엔 빌딩이 세워질 땅을 기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2001년 2월 22일, 록펠러계인 세계 제1의 군산복합체인 록히드-마틴의 코리아 김용호 지사장은 우주항공분야 발전을 위한 록히드-마틴과 세종대학교 간 산학협력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장학금 3만 달러(약 3천 8백만원)을 전달해 한국대학생들에게 당근까지 던져주는 이미지를 쌓아나가고 있다.

록펠러-모건 재벌과 한국전쟁

전쟁의 늘 한가운데에 미국이 있었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 4일 전에 `시카고 데일리 트리뷴`지에는 1면 톱으로 `루즈벨트의 전쟁계획`이 특종으로 보도되었는데, 여기엔 루즈벨트 대통령이 얼마나 전쟁을 고대하고 있는가가 잘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결국 미국의 함정에 빠지듯이 기습을 감행했다.

한국전쟁을 보자. 4백만 명 이상의 한국민이 전쟁 때 죽었고, 그 3/4은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었다. 충복 영동군의 노근리를 비롯해서 말이다.

98년 한국전쟁 48주년 때 `38선도 6·25도 미국의 작품이다`라는 책을 썬 전 극동지역 CIA고위책임자 하리 마오 박(한국이름 박승억)은 99년 6월호 월간 `말`지와의 인터뷰에서 "6·25 5개월 전 `6월 25일 새벽 4시 남침`정보를 입수해 보고했는데 워싱턴 당국은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이 애초 예상과는 달리 2차 세계대전이 2년이나 빨리 끝나 버리자 산더미같이 쌓인 남은 무기, 전쟁물자, 농산물들 때문에 미국경제는 공황으로 치달았다. 아사지경에 빠진 미국 거대 군수산업은 줄곧 트루먼 행정부를 괴롭혔다. 결국 워싱턴 당국은 한국전쟁을 유도해 38선 언저리에서 정전을 하고, 국토재건에 미국의 잉여물자를 쏟아 붓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라는 충격적인 주장을 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일본의 진주만 기습이 미국정부의 전쟁계획이 파놓은 함정이듯 한국전쟁도 미국 군수산업의 전략적인 함정 속에 빠진 것에 다름 아니다.

그는 또 "50년 당시 미국의 GNP는 전 세계의 50%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 대국이 아무리 전후 공황이 와서 실업자들이 아우성을 친다 하더라도 이제 겨우 독립해서 살겠다고 버둥대는 한국에서 무자비하고 처참한 전쟁판을 벌여서야 되겠는가" 라고 토해냈다.

한국전쟁 최후 점검으로 당시 국무장관 덜레스를 파견하여 50년 6월 19일 38선 일대를 비밀리에 시찰까지 마친 뒤 북한을 유인한다. 전쟁이 시작되었다. 비로소 충북 영동의 노근리를 비롯한 한민족에 대한 양민학살이 록펠러-모건 재벌의 록히드사 전투기의 기총사격에서 이루어 졌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구체적으로 한국전쟁 당시의 딘 애치슨 미 국무부 장관의 직함을 벗겨내면 그는 유엔 원자력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탄약제조업체 듀퐁의 고문변호사였고. 로버트 로베트 국방장관은 록펠러 투자은행인 브라운 형제 해리먼의 중역이었고, 한국전쟁당시 전쟁정책과 전략을 수립한 리지웨이 장군은 록펠러 동지인 멜런가의 멜런 공업 연구소의 사장이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이듬해 미국본토 네바다 주에서 대기권 핵실험이 30여 차례 있었다. 50년 `영화연맹`의 회장인 존 웨인은 전쟁과 핵실험을 앞장서 주장하게 된다. 영화연맹은 모건이 나치즘을 지원하기 위해 부동산업자를 시켜 설립하였다. 존 웨인과 일행은 네바다 주에서 가까운 사막에서 촬영을 끝내고 돌아오지만 다수가 암에 걸린다. 결국 그는 79년 6월 암으로 사망하고 죽기 전까지 록펠러의 석유와 얽히고 설킨 조무래기 투기꾼 인생을 마감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신문기자들이 영화배우들의 신변잡기, 주변기사만 쫓아다니다 보니까 진짜 역사는 모르게 된다.

한국전쟁에 이어 베트남 전쟁이 비밀리에 준비되고 있었다.

록펠러 가의 축복을 받으며 재클린과 결혼한 케네디가 61년 록펠러-모건 재벌의 이익을 위해 베트남에 비밀부대를 파견하기 시작하면서 전쟁은 시작되었고, 14년에 걸친 살상극이 펼쳐진다. 한편 한국전쟁 당시의 딘 애치슨은 베트남전쟁에서도 유감없이 실력을 드러낸다. 이미 딘 애치슨은 트루먼 대통령당시 때부터 프랑스의 베트남개입을 지원할 것을 권고한 탄약제조업체 듀퐁의 고문변호사였다. 전쟁 제일보를 내딛은 미국은 비밀부대 파견 뒤 늘어나는 미군전사자를 핑계로 본격적으로 개입을 해 미국전체가 전쟁에 돌입했다.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 딘 러스크 국무장관, 윌리엄 로저스 장관(닉슨때 국무장관)등은 케네디의 막후에서 베트남 전을 확산시킨 록펠러-모건 재벌의 관계자들이다. 록펠러-모건 재벌은 쉬는 날이 없었다.

또 베트남 전쟁의 종식을 위한 파리 평화협정이 체결된 지 불과 반년만에 록펠러-모건 재벌은 오일쇼크의 발단이 된 제 4차 중동전쟁을 일으킨다. 이 전쟁은 유태인재벌을 미국 내에서 조종해 아랍민중을 벼랑 끝까지 내몰아 폭발시킨 인공전쟁이었다.

1984년 논픽션 `죽음의 상인`을 쓴 조셉 그루덴은 "이 지구상에는 불가사의한 집단이 존재한다. 세계최대의 군대와 은행을 장악하고 그 은행에 금화를 그득 채우기 위해 상당한 정도의 전쟁을 일으킬 수 있지만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무기공장을 완전 가동시켜야 하는 집단이다."라고 할 정도이다.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끝까지 무기를 팔아먹을 뿐이다."

노병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걸프전은 또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냉전이 끝나면서 국방예산이 줄어들자 국방관련 조직과 군수산업체에는 마치 마약중독자에게 마약 투입을 중단할 때 나타나는 일종의 금단현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국방예산 감축에 따른 금단현상이 가장 심한 곳은 아무래도 군수산업체였다. 국방예산 가운데서 군수산업체 몫으로 들어가는 빵의 전체크기(군복에서부터 항공모함에 이르기까지)가 87년에는 무려 2천60억 달러였는데,92년에는 1천6백10억 달러로 22%나 줄어들었다.약 3백만 명의 노동자 가운데 10%가 넘는 31만 명의 군수공장 노동자들이 해고당했다. `적절한 위기’인 바로 전쟁이 필요했다.

걸프전쟁의 위기가 크게 고조될 당시의 한겨레신문 94년 2월 2일자 외신 면을 살짝 보자.

미 중앙정보국(CIA) 전 요원이었던 필립 에이지는 "군산복합체를 근간으로 하는 미국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위기’가 필요하며, 걸프전쟁은 바로 미국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군사적 케인스 주의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 했다.

또 지칠 줄 모르는 록펠러-모건 재벌의 007 무기 가방은 유고로 향했다..

미국과 나토의 유고에 대한 침략전쟁행위는 미국 군산복합체들의 이윤추구에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유고전쟁에서 군산복합체들이 신이 났다.

미국의 유고침략전쟁이 시작되면서 군산복합체들의 월스트리트 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었다. 미국의 침략전쟁행위가 두 달이 채 되기 전 미국하원은 99년 5월 18일 120억 달러의 전쟁 지원금을 통과시켰다. 상원통과는 물어 볼 필요도 없다.

4월 17일 `워싱턴 포스트`지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비교적 자세하게 무기제조업체들의 이윤과 그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상하원의 뒷이야기 기사를 다루었다. 물론 뉴욕 타임즈를 비롯한 굴지의 신문 방송들도 발칸전쟁 발발 이후 월스트리트의 군산복합체 주가들이 횡재 만난듯 껑충 뛰었다고 전했다.

이 기사는 미 공군이 세계 제1의 군산복합체인 록히드 마틴사(Lockheed Martin Corp.)에게 "21세기형 순항미사일"(21st-century cruise missile) 제조를 주문하는데 30억 달러를 지불했다고 밝혔다. 역시 같은 기사는 미 해군 또한 새로운 형태의 미사일개발을 위해 굴지의 미사일제조업체인 레이시온사 (Raytheon Corp.)와 8억 달러에 달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전했다. 그들은 또한 현재 소유하고 있는 624개의 구식 순항미사일을 배 모양 형태의 미사일로 바꾸는데 긴급예산에서 4억 2천만 달러를 지출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폭격이 두 달 가까워 오면서 역시 굴지의 미국 군산복합체 중의 하나인 보잉(Boeing)과 그 계열사들은 그들의 이해를 성실히 대변하는 공화당의원들을 동원하여 미 국방장관 윌리엄 코언에게 압력을 넣었다. 이 모든 무기장사꾼들의 활기 띤 거래는 워싱턴 포스트지를 비롯한 미국 주요신문들에 유고폭격에 동원되고 있는 전함과 폭격기들이 사용하고 있는 미사일의 재고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기사가 나온 직후의 이야기들이다.

미국의 건국이 원주민 대량학살로 이루어졌다면, 건국 이후의 역사는 해외침략과 전쟁, 다른 나라에 대한 내정간섭으로 이루어진 역사다. 19세기 이후 2백년 동안 미국의 해외침략사와 전쟁사, 내정간섭의 역사는 끝이 없다.

트리폴리 전쟁 (1801∼1805), 모로코와 전쟁 (1801∼1805), 스페인과 전쟁 (1803∼1806), 캐나다와 플로리다를 빼앗긴 위해 영국에 선전포고 (1812∼1815).... 중국 상해, 광동 침공 (1854∼1856)...조선 침공 (1867∼1872)....하와이 제도 병탄 (1898)...조선 상륙 (1904), ...니카라과 침공 (1926∼1933)...코리아 전쟁 (1950∼1953)...통킹만 무력도발 (1964), 베트남 전쟁 (1964∼1972)...칠레 아옌데 정권 전복 (1973)...이란에 대한 군사행동 (1979∼1981), 카스트로 암살 기도 (1960∼1981), 카다피 암살계획 (1981)...인디라 간디에 대한 음모 (1981)...그레나다 침공 (1983), 걸프전 (1990-1991), 소말리아 무력개입 (1992-1995), 수단, 아프가니스탄 미사일 공격, 이라크 공격 (1998), 유고연방 침공 (1999), 이라크 공격 (2000),이라크 공습 (20001 2월).

지난 200년 동안 세계 민중이 겪어온 역사적 경험은 미 군산복합체는 제3세계에 대한 지배와 약탈을 강요하는 전쟁을 일으키는 데서 미 민주당 세력이나 공화당 세력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록펠러- 모건재벌과 노벨 평화상

다만 전쟁사 그 어디에도 록펠러나 모건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꼭꼭 숨어있을 뿐이다.

위에 살펴 본 해외침략, 내정간섭, 해외비밀공작, 전쟁에 대해서도 미국은 자국에게 유리하게 거짓말을 늘어놓거나, 아니면 세상사람들이 모르게 덮어두었을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거짓말하는 버릇은 적어도 2백년이 넘는 기나긴 역사 속에서 형성되어 이제는 거의 체질화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년간의 전쟁에 깊숙히 개입한 루즈벨트, 루트, 우드로 윌슨, 찰스 도즈, 조지 마샬 등의 자랑스러운(?) 노벨 평화상 수상자 6명은 군산복합체 록펠러나 모건 연합의 대표들이다. 또 헨리 키신저도 수상자였다. 오른손으로 평화를 내세우며 왼손으로 전쟁을 수행한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면모를 보여준다. 노벨 평화상은 전쟁수행을 위한 `케인즈의 경제학상`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스웨덴의 다이너마이트 제조업자 노벨은 그의 군수공장 `보펄즈`의 미국지점인 듀퐁 탄약제조업체를 탄생케 하고 모건 상사와 1~2차 세계대전을 치룬 병기업자였기 때문에 노벨상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짜고 치는 수상잔치인 것이다.

또 재미있는 사실은 `데이비스 컵` 테니스 대회의 데이비스는 `모건 상사`와 손잡고 나치스에 융자한 전쟁금융회사 중역이었으며, 록펠러가 투자한 콜럼비아 대학에 저널리즘학과가 생기면서 퓰리처상이 탄생했고, 그래미상의 비밀 투표용지는 `디트로이트 하킨즈 세일즈 회계사무소`에 보관되는데 이 사무소는 록펠러 가의 군수산업에서 중추적 지위를 차지하며 악명높은 월스리트 가의 8대 사무소의 하나다. 퓰리처상, 그래미상, 노벨상 수상자에 대한 환상에서 언제까지 헤맬 것인가. 김대중 대통령이 이런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엔엠디는 미 군산복합체의 여론조작

다시 손자는 미 군산복합체의 여론에 휘둘리는 우리들에게 중심을 잡으라고 한 말씀한다.

`평화`로 위장된 노벨 평화상은 오늘 우리 집 앞에 배달되는 신문의 국제면까지 누가 평화를 사랑하고 누가 평화를 헤치는 지 구분도 못하게 여론조작을 한다. 북미관계나 국제정세를 부시정권을 조종하는 미 군산복합체들이 `없는 긴장도 만들어 긴장을 격화시키는` 군사주의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줏대를 가지고 세상을 보아야 어떻게 돌아가는 지 알 수 있다.

신문에서 국가미사일 방위체제(엔엠디)구축이라는 굵은 글자체만을 보지 않는다. 굵은 글자체로 뒤에 숨은 미 군산복합체를 본다. 사실 엔엠디는 미 본토를 공격하는 상대방 미사일을 땅 위에서 다른 미사일을 쏘아 맞춘다는 것인데 이는 `총알을 총알로 맞춘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어거지 군비확산 정책이다. 그럼으로 `총알을 총알로 맞추는` 공상소설 같은 세계적인 여론조작은 `별들의 전쟁`처럼 북한의 정치군사력에 의해 파탄날 날이 머지 않았다.

옮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