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킹제임스 성경의 실체

 

[10]어느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가? 

 

q14. 뉴 에이지 운동가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신다" 또는 "그리스도는 여기에 계신다"라고 말하기 때문에 그들의 신원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그리스도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다음 질문은 싸우스 라디오 교회 방송을 늘 청취하시는 한 목사님이 물으신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박사님이 킹제임스 성경을 수호하는 사역을 반대하지 않지만, 박사님께서 새 역본들을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으로 믿는 사람들의 믿음을 파괴하고 상처 줄 수 있다고 걱정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질문하셨습니다. "뉴 킹제임스 성경은 신뢰할 만한 역본입니까?" "뉴 킹제임스 성경은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왜 박사님은 그 성경은 가짜라고 말하시는지요?" 

a. 저는 뉴 킹제임스 위원회에서 일한 사람들이 매우 선한 의도를 가진 경건한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뉴 킹제임스 위원회에 계신 두 분으로부터 매우 긍정적인 서신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한 분은 저의 책을 한 상자씩 사 가지고 자신이 가는 교회들에 나누어 주고 계십니다.  또 한 분은 제게 추천서를 써 주셨습니다. 이런 분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뉴 킹제임스가 어떻게 판명될지, 얼마나 실망스러운 성경인지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 현명하고 경건한 분들입니다.  

우리는 성경 속에서 속임수는 늘 참된 것의 모방(모조)이나 흉내내기의 모습을 취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1:6-7은 말하기를 "다른 복음 :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러나....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키려는 것이라"(킹제임스 직역. 우리 성경에는 '아니라'를 '없나니'로 되어있음-역주).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조금씩 바꿉니다. 이사야 14:14에 루시퍼는 말하기를 "나는 가장(지극히:한글 성경) 높으신 분과 같이 되리라"(i will be like the most high)고 합니다. 루시퍼는 챨스 멘슨(charles manson)과 같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장 높으신 분"과 같이 되고 싶어합니다. 그는 가능한 한 하나님과 똑 같이 닮기를 원합니다.

 디모데후서 3:8은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같이 이제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라고 말씀합니다. 이 마술사들은 모세를 똑 같이 흉내내었습니다. 사탄은 최고의 위조자(counterfeiter)입니다.  그는 최대한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을 흉내내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입니다. 그렇다면 사탄은 이 세상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겠습니까? 사탄도 빛의 천사로 나타납니다. 야곱은 자신이 형, 에서인 것처럼 가장하였을 때, 그의 말(목소리)이 그를 배반하였습니다. 저는 뉴 킹제임스 성경에 있는 말(words)이 그 성경이 위조품인 것을 밝혀 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뉴 킹제임스 성경은 매 페이지마다 약 100여 개의 단어가 바뀌었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바뀐 어휘 수는 총 6만여 개에 달합니다. 1611년의 킹제임스 원본의 어휘와  1700년대에 있었던 철자법 개정(철자와 구두점)에 따라 바뀌어진 어휘가 총 400여 개인 것과 비교해 보십시오. 

저는 예레미야 6:16의 성경 구절이 생각납니다. "너희는 길에 서서 보고 옛길, 그 선한 길이 어디 있는지 물어 그곳으로 가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들을 위하여 쉼을 얻으리라". 저는 오늘날 교회들이 쉼이 없는 것을 보면서, 옛길을 따라 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뉴 킹제임스 성경에서 어휘가 변개된 예들을 몇 가지 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이 삭제된 곳부터 보겠습니다.  

마귀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거든"(마4:3,6)이라고 말했습니다. 마귀가 질문한 것은 "그 아들"(the son)인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조롱하던 무리들도 "만약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그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마27:40)고 했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아들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분의 아들되심은 기독교의 필수 교리입니다. 사실 요한일서 2:22-23에도 말하기를, "예수께서 그리스도임을 부인하는 자 외에 누가 거짓말쟁이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가 곧 적그리스도니라. 누구든지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가 없으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가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 3:13과 26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킹제임스 성경)께서 뉴 킹제임스 성경으로 가면 종(servant)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와 유사한 예는 사도행전 4:27과 30에도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거룩한 자식(thy holy child jesus)이라고 말하고 있는 곳을 뉴 킹제임스는 종(servant)이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4:51에서 새 역본들과 뉴 킹제임스 성경에서 똑같은 헬라어 단어를 "귀족의 아들"(nobleman's son)이라고 번역한 것을 볼 때, 그들은 그 헬라어 단어가 "아들"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들되심'을 제거해 버린 것입니다. 마태복음 20:20에서도 "경배하며"(worship)란 말을 "무릎 꿇고"(kneel)로 변개함으로써  뉴 킹제임스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의 아들되심을 희석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6:64은  "권능의 오른 편"이라고 된 부분에서 뉴 킹제임스 성경은 "power"(권능)을 대문자 p로 처리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권능(power)의 우편에"6) 있다고 말함으로써 '권능'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어떤 다른 것이란 암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구절을 읽으면서 마태복음 28:8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능(power)을 내게 주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바로 그 권능의 소유자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계시록 1:6에 뉴 킹제임스 성경에 있는 또 다른 변개를 보십시오.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님 곧 그의 아버지"(god and his father)라고 하는 반면 뉴 킹제임스는 "그의 하나님과 아버지"(his father and god)라고 말합니다. 창세기 22:8은 뉴 킹제임스 성경에서 가장 열악한 번역 중의 한 곳입니다. 그 구절은 예언적 의미가 들어 있는 곳입니다. 아브라함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자신을 어린 양으로 준비하시리라"(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 뉴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님께서는 친히 양을 준비하시리라"(god will provide for himself the lamb)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구절이 예언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압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양은 어린 양(lamb)이 아니라 숫양(ram)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어린 양(lamb)이 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각별히 음미할 것 - 역주) 

뉴 킹제임스 성경에는 수많은 뉴 에이지 번역이 들어 있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the christ를 정관사 없이 christ라고 변개했습니다. 리버티 대학의 학장이셨던 노먼 가이슬러(norman geisler) 박사님은 말씀하시기를, "우리는 누군가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라고만 말할 때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뉴 킹제임스 성경의 가장 나쁜 요소는 남성 대명사 he를 쓰는 대신 대문자 o로 시작하는 "the one"(유일자)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이 용어는 "유일신론", "범신론", 뉴에이지 운동가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중성신" 개념에 근거를 마련해 준 것입니다.  

팻 로버슨(pat robertson)이 발행하는 <크리스챤 어메리칸,christian american>이란 2월호 잡지에는 새 역본 편집자들 중의 한 명의 글을 인용했습니다. 그녀는 '유일신론'을 자랑하며, 중성자로서의 "여성 신"(god herself)에 대해서 언급하며 '유일자'(the one)란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이 여성 신이거나 중성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뉴 킹제임스 성경에서 남성 명사인 그(he)대신에 '유일자'(the one)란 말이 나올 때마다 기독교의 역사적 하나님을 내다 버리고 일원론주의자들이 말하는 중성 신으로 대체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또한 요한복음 4:24에서도 뉴 킹제임스에 등장하는 일원론을 볼 수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님은 한 영이시니라"(god is a spirit)라고 말씀하고 있는 반면, 뉴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부정관사(a)를 삭제하여 "하나님은 영이시니라"(god is spirit)7)고 말합니다. 알다시피 하나님이 아닌 영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뉴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계시록 15:3에서도 이와 유사한 변개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뉴 킹제임스 성경에서 제가 발견한 가장 놀라운 일은 누가복음 7:19-20의 번역입니다. 킹제임스에서는 "오실 그 분이시니이까?"(he that should come)란 본문은 뉴 킹제임스에서는 'he'를 빼버리고 대문자로 오실 분(coming one)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들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거나, 마귀가 그들이 이 부분을 번역할 때 그들을 속여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뉴 에이지와  루시퍼 숭배자들의 여장부인 엘리스 베일리(alice bailey)는 <장차 오실 분의 교리,the doctrine of the coming one>이란 제목의 책에 "오실 분"(coming one)이란 누구인가란 장(chapter)이 있습니다. 그녀가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한 번 읽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오늘날 모든 땅에 살고 있는 인류는 오실 분(coming one)을 기다려야 한다. ...죽음으로 오실 분의 목적을 성취할 것이다"(그리스도의 출현 pp. 64, 188) 

그리스도인들은 이 오실 분의 정체가 누구인지 압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9은 그가 바로 적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그가 오는 것은 사탄의 역사를 따른 것이니라"(him, whose coming is after the working of satan). 뉴 에이지 문학에서 너무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오실 분"이란 용어를 뉴 킹제임스에서 사용함으로써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의 성경에서 보고 싶지 않는  '공통의 어휘'를 다시 한번 보게 됩니다.  

뉴 킹제임스 성경의 퇴화성의 또 다른 예는 여호화 증인의 본문이라는 점입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성령의 본래적인 이름인 "위로자"(comforter 요14:6)를 "돕는 자"(helper)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여호와의 증인 성경에는 요한복음 14:6과 다른 곳에 성령을 늘 돕는 자라고 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령께서 인격(person)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믿는 성령은 단지 바람 또는 힘, 또는 그와 같은 어떤 것이며, 하나님의 어떤 속성에 불과한 것입니다.  지금 뉴 킹제임스 성경은 여호와 증인들이 사용하는 신세계 역본(the new world translation)이 사용해 왔던 번역을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뉴 킹제임스 성경은 제가 기억하기로 10여 차례 지옥이란 단어를 삭제하고 "음부"(hades)란 단어로 대체하였습니다. 하데스란 뉴 에이지에서 즐겨 사용하는 번역입니다. 그들은 구약 성경에서 지옥(hell)이란 단어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13번이나 스올(sheol)이란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부정확한 정의와 의미의 사용으로 누구나 좋아하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다시 번역하며 읽어야 할 성경을 갖게 된 것입니다.  

뉴 킹제임스 역본은 환란 기간 동안에 온 세상을 채울 우상 숭배를 지지하는 플랫포옴을 조각하는 중입니다. 그때 그들은 "짐승의 형상에게 경배하더라"(계13:15)란 말씀대로 할 것입니다. 사도행전 17:22에 우상 숭배에 관한 바울의 엄한 꾸짖음(너희가 너무나 미신적이도다)이 뉴 킹제임스에서는 온화한 타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너희가 매우 종교적이구나). 미신적(superstitious)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그 어근이 마귀(devil)에 해당합니다! 종교적이란 말로 번역할 수 있는 어휘가 그 구절에 없습니다.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분명하게 구분해 주며 종교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이방인'(the heathen 시 79:1)이란 말을 뉴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정치적 의미를 지닌 '국가들'(nations)이란 말로 변화시켰습니다.

 이제 마술가(sorcerer)는 더 이상 마술가가 아니라 그저 놀라게 해 주는 자(astonish 행 8:9)가 되었습니다. 스스로 자문해 보십시오. "마술에 걸린 너무나 미신적인 이방인들"(kjv)과 "놀란 매우 종교적인 국가들" 중 어느 문구가 종교적 다양성을 포용하는 단일 세계 종교란 주제에 적합할까요? 우리는 뉴 킹제임스 성경내에  뉴 에이지 운동을 지지하는 번역에 대해 한 가지 더 언급해야겠습니다. 성경은 "이 세상의 끝"(the end of the world)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뉴 킹제임스는 "이 시대의 끝"(the end of the age)이라고 마태복음 24:3과 신약 성경의 대부분에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뉴 에이지 주의자들이 늘 가르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일련의 시대의 흐름에 대해 믿습니다. 한 세대가 가면 다음 세대가 오는 순환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단지 여러분의 집에 있는 달력만 바꾸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절대로 이 세상이 거대한 재앙(벧후3:10)으로 끝날 것이란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뉴 에이지 주의자들이 믿는 것은 시간을 영원히 순환하며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의 끝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다가오는 새 시대(new age)로 접근 중이라고 믿습니다.  

"신약 성경 신학 사전"(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과 같은 10권 짜리 헬라어 성구 사전(제 10권 pp.203-204)에는 킹제임스 성경이 번역한 헬라어 aion이란 단어가 본문의 문맥에서 공간과 시간의 의미로 쓰일 때, 유대-기독교의 역사적 전통에 비추어 볼 때, "세상"(world)으로 번역한 것이 정확하다는 점을 가르쳐 줍니다.  aion이란 단어의 포괄적 용례를 들어 시대(age)로 번역한 것은 그 기원과 함축적인 의미를 볼 때 플라톤에 기원한 것입니다. 새 역본들에서도 "세상"(world)이 헬라어 aion의 적절한 번역임을 인정합니다. 로마서 12:2과 디모데후서 4:10, 그리고 플라톤적 개념으로는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곳들에서는 모두 '세상'으로 번역하였습니다.

 뉴 킹제임스 성경의 출판업자들이 킹제임스 성경의 전통을 계승했다고 자랑합니다. 뉴 킹제임스의 뉴 에이지 번역은 전통 본문에 따라서만 번역한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1881년에 스크리브너의 신약 성경과 뉴 킹제임스의 신약 성경은 1611년 킹제임스 번역자들이 따랐던 본문을 따른 것이 아닙니다. 이 둘 사이에 나타난 상이점을 세어보면 56개에서 287가지에 이릅니다. 하바드의 동기생이며 "킹제임스에서 신 국제 역본까지의  영어 성경"이란 책을 쓰신  잭 루이스(jack lewis) 박사께서도 쓰기를 뉴 킹제임스는 킹제임스의 구약 성경의 전통에서 이탈하였으며, "현대 구약 성경의 본문 비평"(current old testament text criticism)과 "1966/1977판 수투가르트(독일) 성경"(1966/1977 edition of the stuggart bible p. 332)을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에 사용된 역사적인 "벤 하임 랍비 성경"(ben chayyim rabinic bible)은 1937년 자유주의 독일 신학자 루돌프 키텔(rudolf kittel)이 변개시킨 레닌그라드 ms b19a(벤 아세르 본문)을 사용한 성경입니다. 그는 자기 가족들이 히틀러가 자행한 수백만 명의 유대인 학살에 연루될 것을 확신하였기 때문에 구약 성경을 변개시켰다는 혐의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뉴 킹제임스가 사용한 70인역과 벌게이트와 사해 동굴 사본들(뉴 킹제임스의 서문을 보시오)과 같이 최근 발견된 사본들은 "천대에 이르기까지"(시편 105:8), 말씀을 영원히 보장하시겠다는 보존의 교리(시12:5,6)와도 서로 모순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본들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주후 4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세대를 빼먹으셨단 말입니까? 세속적인 진화와 발전이라는 사상이 성경에는 적용될 수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뉴 킹제임스 성경의 표지 위에 있는 희미한 666 로고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출판업자 토마스 넬슨(thomas nelson)은 이 문양이 하나님의 신격(godhead)을 나타내는 고대의 그래픽을 고안한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우리들의 믿음과 실행에 있어서 최종 권위이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신격을 나타내는 문양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사도행전 17:29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손이라면 사람의 기술(art)과 고안(device)으로 주조해서 금이나 은이나 돌로 만들 물건이 하나님이심과 같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야 할지니라"

 성경에는 그림 상징을 허락하거나 격려한 구절이 단 한 절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그림이든지 말입니다. 형상(images)은 매우 이교도적인 것입니다. 성경은 제 2 계명에서 형상에 관한 경고로 시작하여(출20:4) 사람들이 용의 형상을 경배하는 것으로 끝납니다(계19:20). 성경의 경고에 전혀 귀기울이지 않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교제하십니다. 사람들은 늘 이 말씀으로부터 멀어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말씀 바탕 문화에서 이미지(그림) 바탕 문화로 옮겨가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아이들은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은 성경 비디오를 보거나, 성경 그림책을 봅니다. 말씀을 통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가장한 사진(영화)이나 이미지로부터 얻습니다.  

 토마스 넬슨이 그 문양이 고대 종교 문양이라고 말한 것은 옳습니다.

패턴 디자인(pattern design)을 쓴 아키볼드 그리스티는 666 문형을 일컬어 "그것들은 고대 동양 종교의 문양"이라고 했습니다.  그 문양의 의미는 고대 그리스나 이집트에서 유명한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들이란 이교도들의 삼위일체를 나타내는 것입니다(비슈누, 시바, 브라마-힌두교의 삼위일체). 그러므로 이것은 절대 기독교에서 고안한 문양이 아닙니다. 비록 로마 카톨릭에서 그 문양을 도입하여 성당에서 사용하고 있다해도 말입니다.  토마스 a. 넬슨은 로마 카톨릭 교도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직접 서명한 편지에 "그리스도와 우리의 여인(lady)안에서 당신의 신실한"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삼위일체입니다.

 이 문양은 뉴 에이지 서적 중에 아주 인기있는 <물병자리 음모,the aquarian conspiracy>란 책의 표지에도 나옵니다. 비법 전수자들은 666이란 수가 강력한 신비적 수이며, 로고에 교묘하게 새겨지든 공개적으로 표면화되는 상관없이 사용되어야만 한다고 믿습니다.  이교도의 삼위일체이든 666이란 수이든 성경의 표지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출처 : http://av1611.net/



 

뉴킹제임스성경(nkjv)의 정체!!! 

 

뉴킹제임스성경(nkjv)의 정체!!!

한국 기독교서점에 가보았는가? 영어성경 가판을 보았는가? 가장 만이 눈에 띄는 성경이 무엇인가? 그래, niv 맞다. 그 다음으로는? lb 아니다. nkjv다. <뉴킹제임스역본>(new king james version) 이다. 저들은 킹제임스성경을 현대문으로 알기 쉽게 번역했다 한다. 조심하라. 뉴킹제임스성경은 킹제임스성경과는 전혀 무관한 변질된 성경이다. 그 실례를 몇 가지 들서, 이 성경의 정체를 밝힌다.


마태복음 7:14 (matthew 7:14)








    kjv

    "because strait is the gate, and narrow is the way, which leadeth unto life..."

    번역

    "생명을 향하여 인도하는 그 문은 좁고, 그 길은 협소함으로..."









    nkjv

    "because narrow is the gate and difficult is the way which leads to life,"

    번역

    "생명으로 인도하는 그 문은 좁고, 그 길은 어려움으로..."


    <풀이> 한번 물어보자. 영원한 생명에로 향하는 길이 어려운가? 아니잖는가? 뉴킹제임스의 번역은 거짓 가르침이다. 킹제임스역에서 말씀하는, "생명을 향하여 인도하는 그 문은 좁다함은" 아무나 다 들어감이 아니라 제한받는다(constricted, restricted, distressed, narrow, restrained)는 의미이다. 종교행위를 버리라는 의미 아닌가?(참조. 요한계시록 18:4).


마태복음 20:20 (matthew 20:20)








    kjv

    "then came to him the mother of zebedee's children with her sons, worshipping him..."

    번역

    "그 때에 세베대의 자녀들의 어머니가 자기 아들들과 함께 와서 그 분께 예배드리며..."

     







    nkjv
    "then the mother of zebedee's sons came to him with her sons, kneeling down..."
    번역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가 자기 아들들과 함께 그 분께 와서, 무릅 꿇으며..."


    <풀이>  이것은 하나의 사악한 의도하에서 이루어진 바꿈이다. 무릅을 꿇음은 예배와는 동일하지 않다. "예배드리다"(worship)는 1526년의 틴데일역(tyndale's translation of 1526)에 있었다. 그 단어는 1537년의 매튜성경과 제네바성경(matthew's bible and geneva bible of 1537)에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1611년의 권위역인 킹제임스역본(authorized version of 1611)에도 분명히 있었다. 심지어는 1881년의 영어 개역본(revised version of 1881)과 1901년의 미국표준역(american standard version of 1901)에도 이 "예배드리다"(worship)단어를 유지하였다. 그러다가 1952년에 현대 번역가들에 의한 개정표준역(revised standard version)이 "무릅을 꿇고"(kneeling)로 바꾸어 버렸고, 이제 와서는 뉴킹제임스성경 편집자들이 이와 동일한 사악한 오역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여러분, 예수님이 손수 증거하신 예배의 참뜻을 전하신다. <요한복음 4장>을 펴보자. <20절> 이하로 보면, 수가성 여자는 "예배드리는 장소"(where we worship)를 피력하지만, 예수님은 "예배드리는 분"(what we worship), 즉 "대상"을 강조하신다. 참예배를 받은 분이 곧 예수님 자신이심을 선포하신 것이다.

    그래서 수가성 우물가에 가셔서 그 사마리아 여자를 만난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메시야이심을 손수 증거하셨는데도(요4:26), 그리고 오순절날 사도 베드로의 그 입을 통하여 진실하게 증언하였는데도, 그들은 예수님을 그들의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

    그 후, 그들은 2000여년 동안 갖은 외침(外侵)과 핍박과 죽음을 당하고, 급기야는 주후 70년 로마의 타이터스에 의해 멸망당하여, 전 세계로 흩어지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디아스포라』(이산=diaspora)라는 고난의 길을 가면서, 특히『홀로코스트』(히틀러에 의한 대학살=holocaust)라고 하는 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였다. 겨우 다른 나라의 도움으로 1948년 5월 14일, "국가로서 이스라엘"(the state of israel)이 탄생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도, 여전히 상황은 더욱 악화만 되어가고 있으니, 이것은 사탄의 권세하에서 인간의 노력과 화해로 평화가 오는 것처럼 가장된 드라마가 한판 벌어지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특히 2001년 7월 30일 예루살렘 성전산(temple mount) 안에다 제3의 성전을 새로 짓기 위한 이스라엘 『temple mount faithful』이라는 단체가 40톤가량 되는 주춧돌(corner stone)놓으려는 사건이 벌어졌다(실제로는 이슬람교도들의 반대 시위가 예상되므로, 예루살렘 외곽에서=old city 근교에서 08:20에 형식적인 의식만 벌어졌다고 외신은 전했다/jerusalem post). 영국 bbc는 이 주춧돌이 운반되는 장면을 인터넷에 올렸고, 필자는 그것을 보았다. 이렇듯 무너진 하나님의 성전의 재건축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 자못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 날 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싸움으로 많은 사상자가 났다. 그러나 평화는 찾아온다. 그 방법은 이스라엘도 아니요, 팔레스타인도 아니다. 바로 세계정부를 주도해오고 있는 통합된 "세계종교 울타리"(big one)안으로 들어가지 아니하면, 그 때부터는 무진장한 핍박이 가해질 것이니, 참으로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는, 제자들에게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누가복음 8:25) 고 하신 말씀이 그대로 입증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주님이 다시 오실 즈음에는 "대배도"(大背道)가 일어날 것이고, <요한계시록 18:4>에서는 이 사실을 미리 사도 요한의 그 손을 통하여 보여주셨으니,『그 음녀에게서 나오라』고 마지막으로 통첩해주고 있는 것이다. 한편, 지금의 중동의 상황은 그 수순을 밟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요한복음 4:23>에 예수님이 참예배자는 "영 안에와 진리 안에 그 아버지를 예배" 한다고 말씀하신다. 이 사실을 알아서 깨어 있어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죽어있는 암흑 속에서 "종교의식"이라고 하는 독주(毒酒)에 취해 있으니(요한계시록 17:2), 가히 심각한 위기요, 제2의 소돔과 고모라요, 제2의 노아의 때가 아니라고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통곡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 본다:

    히브리서 10:14

 








    kjv

    "for by one offering he hath perfected for ever them that are sanctified."

    번역

    "이는 한 번의 제물로서 그 분이 거룩케 된 자들을 영원히 완전하게 하셨음이다"









    nkjv
    "for by one offering he has perfected forever, those who are being sanctified."
    번역
    "이는 한 번의 제물로서 그 분이 거룩케 되고 있는 자들을 영원히 완전하게 하셨음이다"

     

    <풀이> nkjv 안에서 이 불필요한 바꿈은 구원은 하나의 성스런 과정으로 주장하는로마에 의해서 가르쳐지는 이단적 복음들을 확고히 해준다. nkjv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 한번 드려짐으로써(히브리서10:10), 신자(believer)는 완전해지며, 영원히 거룩해진다는 본절의 아름다움과 능력을 완전히 파괴시킨다. kjv에서 처럼, 적절하게 번역된 본절은 구원에 관한 거짓 견해들을 막아준다. 반면에, nkjv는 혼란을 초래한다. 본절 전반부에서는 '그리스도의 드려짐이 영원히 완전하다' 해 놓고는,  나머지 후반부에 가서는 '구원 얻어지고 있다(being saved)'고 말하지 않는가? 그것은 혼란이며, 오류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왜 뉴킹제임스성경(nkjv)를 경계해야 하는가? foundation magazine의 편집자인 m.h. reynolds는 그의 글 "the new king james bible examined"에서 이렇게 경고한다:

"우리는 출판사(토마스 넬슨)가 주장한대로, 'nkjv가 kjv를 한결 낫게 만든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반면에 우리의 연구에 의하면 nkjv가 오리지날하고, 신뢰할만하고, 정확한 kjv를 가장 최고의 속임수로 더럽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원문 kjv의 '권위와 정확성'을 보존하였다고 주장하고는 있지만, 실제의 결과로는 다른 현대 성경 역본들 속에서 나타나는 변질들과 일치하가나 유사한 많은 바꿈들로 섞어놓은 하나의 혼합(잡종)텍스트(hybrid text)이다." (we do not believe that the "nkjv makes the kjv even better" as its publishers claim. to the contrary, our study leads us to conclude that the nkjv vitiates the original, reliable, accurate kjv in a most deceptive-manner. while claiming to have "preserved the authority and accuracy" of the original kjv, the actual result is a hybrid text which incorporates many changes identical with or similar to the corruptions found in other modern bible versions.)
 
reynolds는 nkjv를 거절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원문 kjv와 nkjv 간에 단어가 많이 바뀜은 고어(古語) 등을 제거한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 대신에 많이 바뀜은, nkjv 번역가들이 원문 kjv와 그 저본인 헬라어사본인 수용원문(textus receptus)을 떠나서, 그와는 반대로 그들이 일치본 논리적 근거에 의해서, 변질된 헬라어 사본들로부터 번역함으로서 발견되는 동일한 어법(語法)을 채택하였음을 나타낸다." (it is essential to know that many of the word changes between the original kjv and the nkjv are not changes which result from removing archaisms, etc. instead, many are changes which clearly reveal that, contrary to their agreed basis, the nkjv translators departed from the original kjv and its underlying greek text, the textus receptus, in favor of the very same wording found in versions translated from corrupted greek texts.)

사랑받는 여러분! <뉴킹제임스성경>이 아주 경계해야 할 중요한 이유중 하나가 있다.

우선 <뉴킹제임스성경>(new king james version)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자:

nkjv는 토마스 넬슨 출판사(thomas nelson publishers)하는 한 출판사가 재정을 대고, 번역도 하였다. nelson은 kjv의 고어체를 현대 영어로 바꾸며 나머지 부분에 잇어서는 kjv의 체제를 가능항 한 유지할 수 있는  개정본의 필요를 논의하기 위해서 1975년에는 chicago와 nashville에서, 1976년에는 london에서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성직자와 평신도를 초청하여 화합을 가졌다,
 

1976년에는 영어를 사용하는 여러 나라에서 130명이 넘는 학자들이 nkjv를 만드는데 참여하기 위해 초대되었다. 이들은 신학적으로 niv의 편집자들 같이 보수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학자들이었다. 개정을 위한 일반적인 지침을  세운 후 kjv 각 권을 자율적으로 수정할 수 있는 여러 학자들에게 맏겼다. 그후 실행 편집위원들이 그러한 수정 권고를 재검토 한후 다시 english editor에게 보내어 북미와 영국에서 온 advisory overview committee와 함께 편집하게 되었다. 그리고 최종적인 개정 승인은 구약과 신약 개정 실행위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1979년에는 신약이, 1982년에는 구약이 출간되었다. <김효상, 「영어성경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예영커뮤니케이션, 1993, p.46,>


언뜻 보기에는 대단한 스케일에 의해서 번역, 출간된 것이 바로 <뉴킹제임스성경>(new king james version) 인듯 보일 것이다. 그런데... (위 뉴킹제임스성경은 필자가  캐나다 선교여행 때, 200년 3월 20일, 밴쿠버 소재 브리티시 콜럼비아대학교 내 리젠트신학대학 구내서점에서 구입한 것이다).

아래 그림을 자세히 보자. 뭐가 보이는가? 삼각형 심볼을 주목하기 바란다. 다른 영어 성경들 중에서 흔하지 않는 특이한 상태이다. 이제부터 이 심볼을 추적하기로 한다. 그리하면, 이 성경은 『가장된 모조』(counterfeit) 임이 입증될 것이다. 판단은 후에 여러분이 하면 된다:

<고린도후서 11:14,15>에 사탄의 가장(假裝)에 관해서 경고한다:

"이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이는 사탄 자신도 빛의 한 천사로 가장함이다. 그러므로 그의 사역자들이 의의 사역자들로 가장한다 하여도 전혀 큰 일이 아니다. 그들의 끝은 그들의 행위대로 될 것이다." (kjb)

그리고 <이사야 14:14> 는 사탄의 극도의 가장을 말씀한다:

"내가 구름들의 높은 곳들 위로 올라가서, 가장 높으신 분 같이 되겠다."(kjb)

그리고 사탄의 큰 가장 중 하나가 바로 <뉴킹제임스성경>(new king james bible =nkjv). 새국제역(new international version=niv), 새미국표준역(new american standard version=nasv), 개정표준역(revised standard version=rsv), 새개정표준역(new revised standard version=nrsv) 및 다른 영어 성경들을 전혀 알지 못하거나 접근해보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은 간교한 <뉴킹제임스성경>에 의해 "속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비록 <뉴킹제임스성경>이 <킹제임스성경 1611판>과의 "유사성"을 유지하고 있다 할지라도, 여러분은 왼쪽 그림과 같이 nkjv의 표지 밑에 감겨진 모양의 심볼을 보게 될 것이다(창세기 3:1 참조). 자, 과연 이 신비의 마크는 왜 여기에 있어야 하며, 무엇을 의미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nkjv의 이 신비적 심볼에 관하여 물어 왔다.

nkjv의 발행 소유권자인 토마스 넬슨 출판사는 이 성경의 속페이지에서 이 심볼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위 내용은 이렇다: 삼각형(라틴어로 '세모퉁이' 의미)은 삼위(trinity)에 대한 고대 상징이다. 이것은 뒤섞인 아크형으로서, 구분이 되면서도 동일하고 분리되지 않음으로써, 아버지, 아들, 그리고 성령이 각각 셋 이면서 동일한 인격들이며, 불가분 한 분 하나님을 상징한다.

그러나 <사도행전 17:29>에는  그러한 상징화를 분명히 금지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손이라면,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주조된 금이나 은이나 돌이 하나님의 신격같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런데 어찌해서 뉴에이지 "핸드북"인 "the aquarian conspiracy"가 이와 유사한 심볼을 유지하고 있을까? 뉴에저들은 서슴없이 서로 얽힌 "6" 혹은 "666"을 받아들이고 있다.

the hidden dangers of the rainbow <무지개의 숨겨진 위헌들>의 저자이며, 뉴에이지운동의 권위자인 콘스탄스 컴베이는 이렇게 말했다: "the aquarian conspiracy의 표지 위에 있는 것은 하나의 뫼비어스 띠이다. 실제로 그것은 세 개의 육(666)으로서 사용된 것이다. <뉴킹제임스성경>의 표지 위에 있는 엠블럼은 삼위(trinity)의 고대 심볼로서 알려져 있다. 이 고대 심볼은 영지주의적 기원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은 기독교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영지주의적 이었다. 나는 그 엠블럼을 보는 순간 경악을 금하지 못하였다. (the new age movement, southwest radio church, 1982 p.11)

이 세 개의 비법을 지닌 "6"은 간단히 말해서 "666"이 맞물려 있다.

 

이 삼각 모형은 the institute of transpersonal psychology (itp)의 로고의 핵심으로서 사용된다. itp는 융의 심리학(오컬티스트 칼 융)을 따르는 하나의 뉴에이지 학교이다.  그들의 명문화된 목적들 가운데 한 가지를 살펴본다: 신성에 도달함을 인식하기 위함이다."(창세기 3:5 "너희가 신들 같이 될 것이다." 참조).

이와 동일한 심볼이 락 그룹 레드 제프린(led zeppelin)에 의해 묘사되어 있다. 레드 제프린의 멤버들은 사탄주의와 오컬트에 심취되어 있다. 기타리스트 짐미 페이지(jimmy page)는 실제로 사탄주의자 알레이스터 크라우리(aleister crowley)의 맨션을 구입하였다. 대개 이 심볼은 알레이스터 크라우리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이고, 666을 나타낸다고 믿는다.

다음의 그림은 사탄주의자 알레이스터 크라우리가 디자인한 타롯 카드에서 취한 "the hierophant"이다. "hierophant"는 오컬트의 한 사제이며 일루시안주의자(eleusinian)이다. hierphant의 손 안에 막대기 상단에 있는 "삼원"(three circles)을 주목하자. 그 속에 세 개의 맞물린 원들이 바로 <뉴킹제임스성경>의 심볼이다.(오른 쪽 사진은 확대)

 

 

다음은 <뉴킹제임스성경>(nkjv)의 로고를 포함시킨 사탄의 이교적 보석들을 실례로 들어본다:

<왼쪽 그림>  오른쪽 코너 상단에 사탄의 별표 반지를 주목하자. <뉴킹제임스성경>의 로고는 왼쪽 아래로 네 번 째이다. 노란 색 원으로 표시되어 있는 것이다.



 


 


다음은 아래 쪽 그림, 즉 사탄의 바포맷 염소(baphomet goat)를 주목하자. <뉴킹제임스성경>의 심볼은 두 개의 보석 목걸이 표시된 것으로 노란 색으로 표시하였다.


 

케이시 번즈 박사가 자기의 저서 <프리메이슨과 오컬트 심볼 실례> 저서에서, <뉴킹제임스성경의 심볼>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 뉴에이저인 마리린 퍼거슨이 자기의 저서 the aquarian conspiracy 위에다 삼각꼴(triskele)을 사용했다. 이것은 숫자 666의 변형꼴이다. 다른 책들과 자료들에서도 이와 유사한 디자인을 볼 수 있다...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숫자 666은 짐승의 수요(요한계시록 13:8), 악을 상징한다. 그러나 오컬리스트들이나 뉴에이저들은 이 수를 사랑하며, 신성시 하고 있다.  

world future society와 trilateral commission 같은 조직들의 심볼이 <뉴킹제임스성경의 심볼>과 일치한다. 아울러 이와 동일한 심볼을 <뉴킹제임스성경>의 표지 위에 등장함을 보는 순간, 나는 흠미감을 느낀다. (pp. 242-243).

솔직히 말해서, <뉴킹제임스성경> 출반사인 토마스 넬슨 출판사가 성경번역에다 이 심볼을 선택한 것은, 그 심볼 속에 숨겨진 비법의 중요성 때문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이 성경도 여타의 영어 성경들 처럼, 오류들과 생략들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참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이 거짓 성경인 <뉴킹제임스성경>(nkjv)을 거절하도록 하는 경고로 받아들이게 된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그 분은 어둠이 피해지고 거절되도록 그 분의 백성에게 항상 진리의 빛을 주신다.

따라서 필자는, 우리는 새로이 출간된 변질된 역본들과는 전혀 무관하며, 오직 우리가 하나님의 손을 증언하고 있다고 믿는다. 필자가 수 차례 반복해오고 있듯이, 권위역인 <킹제임스성경> 만이 단 하나의 진실되고 변질되지 않은 성경으로 남아 있다. 이것은 정확하며, 오류가 없는 성경이다. 오늘날은 킹제인스성경 속에 담겨진 능력있고,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에 의심을 부여하는 가짜 사기꾼들이 너무 많은 현실이다.

형제 자매 여러분! 이 마지막 날들에 진정한 싸움은 경제 현장에서의 싸움이 아니다. 우리의 주대적은 정치가 아니다. 대쟁투는 새세계질서(new world order)를 위한 음모자들의 계략을 이겨내는 것도 아니다. 지금 우리가 전념해야 하는 것은 인류의 영적 마음과의 투쟁인 것이다. 다행스런 것은 하나님이 이 거룩한 싸움에 필요한 무기와 해답들을 우리에게 이미 공급해 주셨으니, 바로 그 장엄하고 비교할 수 없는 <킹제임스성경>인 것이다.

끝으로, 그들이 주장하고 속이고 있는 다음의 슬로건에 속지 말자:

"<뉴킹제임스성경>는 <킹제임스역본>을 현대적 영어로 발전시킨 성경이다."

자칫하면 속는다. 경계하라!!!  <뉴킹제임스성경>은 변질된 성경이요, <킹제임스셩경>과는 전혀 무관하다. 샬롬!

<20031111_updated>

http://www.lepauo.org/bible/index.php?mode=basedata&mode2=a10&id=676




뉴킹제임스 성경을 바로알자


시내사본과 바티칸사본(부패한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원문 - 카톨릭에서 선택한 원

문이다.)을 근거로 1881년 영국의 웨스트코트와 홀트가 희랍어 신약 사본을 만들게

되는데 여기서 영어 개역본(rv, 1884년)과 개역표준역본(rsv, 1952년)등 변개된 성경

이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뉴킹제임스성경(newkjv, 1982년)도 마찬가지로 같은 계열

에서 나왔다고 보면 됩니다.


[... 1970년 이후 신약 원문비평 분야의 일각에서 한 가지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것

은 변개된 알렉산드리아 원문으로 <킹제임스성경>을 비평하고 고치던 것에서 헬라어

<표준원문>이나 <다수원문>으로 <킹제임스성경>을 공격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난 것

이다. 특히 1979년과 1980년 사이에 파괴적 비평가들은 알렉산드리아 헬라어 원문으

로 <킹제임스성경>을 비평하던 그들의 방법을 바꾸어서 비잔틴 헬라어 원문으로 <킹

제임스성경>을 바로잡는다는 주장을 펴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물로 나온 것이 변개

된 영어 번역본인 <뉴킹제임스성경, nkjv >이다.] - 월간 <성경대로믿는사람들> 통

권 101호(2000년 8월호), “영어로 헬라어를 바로잡는다(2)”, 중에서 발췌
  

[... nkjv(뉴킹제임스성경, 1982)이 <킹제임스성경>을 개정한 것인 양 알고 있지만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뉴킹제임스성경>은 또 하나의 다른 성서일 뿐이다.

nkjv는 <킹제임스성경>(kjv)과 근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asv(1901)와 rsv(1952)가

더 가깝다. 그러므로 asv, rsv, niv, neb, nkjv, 여호와의 증인들의 신세계역본,

twl 등은 모두가 알렉산드리아 계열(로마카톨릭이 체택한 원문)에서 나온 것으로

1611년 <킹제임스성경>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것이다.] - 월간 <성경대로믿는사람

들>  통권 141호(2003년 12월호), “뉴킹제임스성경을 바로알자!”,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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