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신교 부패 근원은 교회 정치

 

부패의 근원은 바르지 못한 정치 구조를 채택하고 시행하고 있기 때문

 

한국 개신교는 각 교단별로 상습화된 문제점인 재정유용, 담임목사 부자세습, 불륜 등 부패와 부도덕성의 단골 메뉴가 최근 여의도순복음교회(당회장 조용기목사)사태를 계기로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지금까지 <시사저널>에 보도된 내용과 교회개혁실천연대가 공개 질의한 내용만 살펴봐도 천문학적인 금액의 재정유용과 얽히고설켜 있다. 70세도 모자라 정년을 5년 더 연장시키고 가족들에게 당회장을 세습하겠다는 내용은 한국 개신교 부패의 총론을 보는 것 같아 답답하다 못해 참담한 마음이다. 

예수의 공생애 발자취를 쫓고 십자가의 좁은 길을 걸어가야 하는 제자들의 공동체인 교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기에 연일 언론에서 지탄 받는 걸까. 예수를 믿는다면, 게다가 목회를 하고 있다면 누구보다 정직하고 희생적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할 터인데, 교계 안팎으로부터 이리도 손가락질 받고 질타의 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일이 작금에 일어난 것은 특이한 현상인가, 아니면 오래 전부터 곪아오던 염증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인가. 이미 진행되어온 과정을 살펴볼 때 문제의 경중은 있을지언정 한국 개신교 부패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 됐고, 그 범위도 상당히 폭넓게 분포되어 있음을  각 교단의 사례와 지역적 문제를 통해 유추할 수 있다.

과거에는 언론이 교회의 문제를 성역으로 생각했기에 다소 잡음이 일어나도 보도를 자제하였다. 일반 성도들도 해당 교회 문제 외에는 타 교회나 타 교단의 일은 접할 수 없었기에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인터넷이 발달하고 교회의 문제점이 세상 사람의 이목을 끌다보면서 기독교와 관련이 없는 매체에서도 종종 교회문제를 기사화하는 등 개신교의 부패 문제는 계속해서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그렇다면 개신교의 부패와 부도덕성은 어떤 연유로 하루가 멀다 하고 전국 각지에서 터져 나오고, 교회가 몸살을 앓게 되는 것인가. 그 근원적인 문제점은 무엇인가. 어떤 현상이 교회 안에서 부정적,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 원인이 무엇이고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를 살펴야 한다. 일과성 문제가 아니라면 분명히 제도적 문제점을 안고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패하고 부도덕하게 살도록 명령하신 적이 한 번도 없으시다. 더군다나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율법을 통해서 항상 죄를 살피도록 하셨으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속죄함 받고 새롭게 거듭난 백성이 되도록 성령을 통해 견인하시는 분이시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베드로의 고백 위에 친히 세우신 몸된 교회 안에서 문제가 일어났다면, 이는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질책한 것처럼 인간의 의가 문제가 없는지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 문제의 근원에 대해 나는 개신교의 헌법을 주목한다. 왜냐하면 개신교 헌법이 바르지 못한 정치 구조를 채택하고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 헌법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기능적으로 교리헌법과 관리헌법으로 나뉘어져 있다. 교리헌법은 신조, 신앙고백서, 신앙요리문답 등이고 관리헌법은 교단별 카테고리에 있어서 다소 차이는 있지만 정치, 권징조례, 예배모범 등이 그 주요 내용이다. 따라서 교회 헌법은 베드로의 고백 위에 성경과 교단 신학을 바탕으로 이성적이고도 합리적인 진리의 행위가 규정되어 있어야 한다.

현재 각 교단의 헌법, 즉 관리헌법의 '정치' 부분을 살펴보면 불행하게도 이성적이고도 합리적인 진리의 행위성에 있어서 상당 부분 결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교회 정치에 대한 조항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진리를 담아내고 있지 않음으로 인해 <시사저널>이 특집으로 보도하고 교회개혁실천연대가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재정문제, 족벌경영, 조목사의 정년연장과 세습의혹 등이 불거져 나오는 것이다.

개신교 헌법의 모태가 되어왔던 장로교(통합)헌법과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소속된 기하성의 헌법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교단의 교회 정치가 부패의 근원이 될 수밖에 없음을 실감하게 된다. 두 헌법이 세부 조항에서 다소 차이를 보이고는 있지만 '목사의 우상화', '담임목사에 대한 권력집중', '의사결정의 비 민주화' 등에 있어서는 공통적으로 합리성과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다. 이제 기하성 헌법을 주제로 그리고 장로교 헌법을 참고로 살펴보면서 목회자 부패의 원인이 어디에서부터 출발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기하성 헌법 제36조 '목사의 의의' 전문을 그대로 옮겨 보겠다. 목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예수그리스도 장중에 있는 교회의 사자이며(계2:1) 예수 그리스도께서 택정하여 세우신 복음의 사신이며(고후 5:20, 엡 6:20) 그리스도의 양 무리를 가르치고 다스리는 감독이요(렘 3:15, 벧전 5:2~4, 행 20:28) 나라의 제사장이며(계 1:6) 은혜의 경륜을 따라(엡 3:2) 목사와 교회로(엡 4:11) 교회를 위하여 받은 성직이다. 목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여 예배를 인도하며 성례를 거행하며 교회를 치리하는 가장 존귀하고 영광스런 성직이다(롬 11:13)

에베소서 4장 11에 보면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라고 언급하여 각 직분을 분명히 구분하고 있음에도 기하성의 목사에 대한 정의는 사도, 선지자, 제사장, 교사 등 성경이 언급하는 모든 직분을 총 망라해서 기술해 놓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가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은 사도는 바울을 포함하여 13명의 사도로서 그 직분이 소멸되었으며, 선지자도 세례요한을 끝으로 더는 선지자 직분이  복음시대에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계속해서 존재하는 직분은 목사, 교사, 장로, 집사다. 그럼에도 기하성은 장로교 헌법의 ‘목사의 의의’에서 조차 언급이 없는 계 2:1, 렘 3:15, 행 20:28, 계 1:6, 엡 4:11-12, 롬 11:13 까지 추가하여 목사직분에 사도와 사자와 나라의 제사장을 포함하는 절대적인 권세가 목사에게 있는 것처럼 우상화하고 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런 절대적인 권세를 가진 목사 중에서도 더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목사와 그렇지 않은 목사를 구분해 놓은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담임목사와 부목사다. 기하성 헌법 제38조 '목사의 구분'에 보면 담임목사는 소속교회에 관한 일체의 치리권을 부여받은 목사이고, 지방회에서 취임식을 거행한 뒤 지방회장의 취임 공포로 효력이 발생하도록 되어 있다.또 유급 안식년을 가질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여기에 치리회인 당회장, 회의기관인 제직회장, 공동의회 의장을 겸직한다(62조, 63조, 67조)고 나와 있다.

반면, 절대적인 권세(?)를 가진 목사이면서 '부' 자가 붙은 목사의 정의를 한번 보자. 교회는 필요에 따라 직능별로 담임목사를 보좌할 부목사를 둘 수 있다. 부목사는 담임목사가 선임한다. 부목사는 담임목사가 될 수 없으며 임기는 1년이며 연임할 수도 있다. 단 담임목사의 은퇴(원로) 시에는 차한을 부재한다. 부목사는 당회원이 될 수 없다. 부목사는 상회의 회장이 될 수 없다.

장로교도 부목사에 대해 임기를 1년으로 제한하고 연임할 수 있도록 차이는 두고 있으나 당회원 자격은 인정함으로써 기하성과는 대조를 보이고 있다. 기타 장로와 집사 권사에 대한 조항은 목사의 조항과 비교가 안될 만큼 그 직분의 역할을 축소시켜 놓았으며, 주요 기능을 담임목사를 보좌하는 역할에 두고 있다.

이렇듯 교회헌법이 목사의 직분을 필요 이상으로 우상화 해놓고 교회에서 당회장, 제직회장, 공동의회 의장 등 모든 권한을 담임목사 한 사람에게 집중시켜 놓게 됐다. 1년 예산이 수십억에서 수백억 원에 이르는 중대형교회의 당회장은 상위 치리 기관인 노회(지방회)나 총회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 교회에서 당회장이 재정을 유용하던 족벌경영을 통해 세습을 하던 불륜을 저지르던 어떠한 경우에도 당회장을 치리하고 교권을 바로잡기란 쉽지가 않은 것이다. 이미 신의 반열에 오르도록 우상화해놓은 당회장을 감히 인간이 치리할 수 있겠는가. 그러기에 강단에서 뻔뻔스럽게 주의 종은 하나님만 치리하실 수 있다는 궤변을 늘어놓고, 주의 종을 대적하면 벌 받고 주의 종을 잘 모시면 복 받는다고 성도들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것이 아닌가.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이 있다. 한국 개신교의 목회자 부패는 현재의 교단 헌법으로는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결과의 산물인 것이다.

기하성 헌법에 보듯이 당회장이 해 교회의 모든 치리권을 갖고 있고 해 교회가 수십만의 성도들로 이루어진 대형교회라면 이런 교회의 당회장이 어떠한 잘못을 저지르든 지방회나 총회는 손을 쓸 수 없는 것이다. 교회재산이 수천억 원에 달하고 1년 경산예산이 1,600억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물질의 힘을 갖고 있는 이런 교회에서 목사의 우상화, 담임목사의 절대 권력, 의사결정의 비민주화 등 현행 헌법의 정치구조로는 결코 부패를 막을 수 없다.

예수님은 목사들이 그렇게도 사칭하고 싶어 하는 사도들인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당부하셨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마 10:8~10).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세상에서 난 사람 중에 이보다 큰 사람이 없다"고 세례 요한을 높여 주었지만 세례 요한은 오히려 자신의 제자들에게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했다. 세례 요한은 마지막 선지자다.

여의도순복음교회 및 한국개신교 당회장들한테 묻는다. 진정 사도나 선진자의 권세를 부여 받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들처럼 행동하라. 여러분들이 흥하고 예수님을 쇠하게 만들지 말고 예수님을 흥하게 하기 위해 여러분들 스스로 쇠하는 길을 택하라.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길이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가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었으면 한다.

 

뉴스앤조이 2004년 12월 20일